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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52화 (152/200)

152화 루프-루가 전투 (2)

―크아아아!

그렇게 용이 울부짖었다. 아니, 키메라가 울부짖었다. 어둔 밤에 잠긴 계곡과 덤불마저 그 위용에 놀라 떨었다.

‘……꼭 어릴 때 읽었던 그 글이 떠오른다니까. 하지만 적어도 눈앞에서 울부짖는 저 존재는 확실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단 건 다르지.’

경고의 뜻으로 먼저 키메라는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았다. 그만 물러가라는 고도의 상징이다.

‘문제는 저걸 알아들을 지능이…….’

어차피 형식적인 문제니 키메라 마음이 편하다면 내버려 두면 그만이었다. 어쨌거나 고블린 진영은 갑작스러운 성수의 출현에 놀라 반쯤 마비되어 있었다. 이때야말로 좋은 기회였다.

“지금이다, 달려나가자!”

“고원의 성수가 우릴 지켜본다!”

“나가자, 싸우자!”

역시 기회를 보고 있던 바쿠헨의 외침 아래 키메라 덕분에 힘을 되찾은 전사들이 호응했다. 병사들은 채 만들지 못한 방어선을 넘어서 오히려 돌격을 시작했다.

―촤악!

―푹!

주춤하며 돌격의 의지를 잃어버린 고블린과 오그르는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 우오오!

―인간들이 달려든다!

참 근년 들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신나서 득달같이 레이드를 달려드는 인간 전사들. 기가 잔뜩 죽어 달아나는 고블린과 오그르들.

“병신같은 놈들! 썩 멈추지 못하나!”

키메라의 소리와는 다르게 삭막하고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계곡을 타고 전해진 바로 그 순간. 바삐 뒷길로 통하는 바위를 오르던 고블린들이 우수수 굴러떨어졌다. 오그르들도 그만 그 자리에 일제히 멈췄다.

“뭐, 뭐지?”

“으아, 고막이 터지려고 했어!”

―히힝!

인간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고, 군마들도 경기라도 들린 듯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이놈의 말이 왜 이래, 정신차려!”

바쿠헨과 바쿠란 형제는 각기 말에게 채찍을 때렸지만 말은 좀처럼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무슨 일인지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마냐만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이 경고했던 그 상황임을.

“오그르 3대장 중 2인자, 더브렉. 녀석이 온다. 모두 조심하도록 해.”

네마냐는 혹시나 몰라 고삐를 잡은 채, 합성검을 뽑아 들었다. 벌써 몇 번이고 전장에 섰던 검이라 처음처럼 마나가 뿜어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아예 의지할 데조차 없는 것보단 낫다. 하라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 전투 스케일에 기가 죽은 듯 중얼댔다.

“오그르의 2인자라고. 대체 왜 그런 걸…….”

“그런 위험한 녀석을 여기까지 보냈다니. 정말 우리를 위험하게 본 모양이로군. 놈들, 제법 센스 있는데?”

바쿠란이 태연하게 지팡이를 다시 잡았지만 이미 광역 마법을 사용한 뒤였다. 힘들어하는 표정만 보아도 마나가 퍽 소진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측면의 오그르들이 다시 달려들려고 합니다, 공자님! 어떻게 할까요?”

“또?”

후방으로 타위비크의 주력이 움직이자 압박을 받아 죽을 지경이던 측면은 금세 살아났다. 오그르들이 다시 방망이를 들고 동료의 시체를 방패삼아 돌격하고 있었다.

―쿠당!

“크윽…… 개새끼들.”

“어, 어떻게든 막아야…… 컥!”

[스파이라 피르]

[에드라미 파오스]

급한 대로 네마냐 역시 알고 있는 주문을 몽땅 동원했다. 위력은 약해도 이것저것 현란한 불똥이 튀니 잠깐이나마 측면의 적을 저지할 수 있었다. 네마냐는 그 사이에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휘휘 둘러보던 중 눈에 들어온 절벽.

“저기 벼랑! 벼랑 쪽에서 늘어지는 덤불 쪽으로 불화살을 쏴! 측면의 적을 화공으로 쓸어버려!”

“바가반드 영주의 말대로 해라! 불화살을 쏴서 적을 막아라!”

바쿠헨은 곧바로 네마냐의 말뜻을 알아듣고 지시를 바꾸었다. 후방쪽을 경계하면서도 측면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던 궁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측면을 쏘았다. 불화살용 화살에 타르를 묻힌 수건에 불을 붙이고 연이어 불화살은 하늘을 갈랐다.

―화르륵!

―쩌적, 쩍!

불쏘시개 조금만 닿았을 뿐인데 겨울철 강추위에 메말랐던 가시덤불은 신나게 불타올랐다.

[실프]

하라드는 실프를 연이어 소환해 가시덤불 쪽에서 계곡 쪽으로 늘어선 고블린 군단을 덮치도록 했다. 불화살과 정령의 조합일 뿐인데 거의 조금 전 불 토네이도 마법과 맞먹는 불길이 고블린 진영을 덮쳤다.

“끄에에엑―!”

“후퇴, 후퇴! 인간, 비열한 수를 썼다!”

“전쟁에 비열한 수가 어딨어, 이 미개한 녀석들아!”

왁자지껄 떠들며 측면의 고블린 부대들은 마침내 철퇴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삼면에서 압박을 받아 섬멸당할 뻔한 위기를 넘긴 것이다.

“됐다, 측면은 풀렸어!”

“우측도 마찬가지야!”

기뻐하는 바쿠란과 하라드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정면부, 더브렉이 직접 지휘하는 오그르 정예 부대였다. 픽스 기병은 덤이고.

“어떻게 할 거야? 오그르 정예 부대는 창질 몇 번이나 활 몇 방으론 죽지 않아. 거기다 그들 뒤엔 픽스 기병도 있어서 언제든 앞으로 치고 나올 수 있다고.”

바쿠란은 흩어졌던 부대들을 재편하는 형에게 달려가 다그치기 시작했다. 네마냐가 보기에도 바쿠헨은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방의 강고한 고블린 정예 부대를 상대하긴 어려웠다.

“전방에 나선 부대가 혼란한 적을 붙잡는 사이에 측면 창병진을 수습해서 창벽을 구축한다. 그러면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어.”

“시간을 번다니, 이기는 게 아니라?”

“엘프족 중왕국에서 원군이 오기로 했잖아. 몇 시간만 버티면 아빌리스가 군을 거느리고 도착할 거야.”

아빌리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교류는 거의 없었지만, 엘프족 중왕국의 대표라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엘프족 군대가 도착한다고?”

“그래! 그때만 오면 우리가 이제 수적으로 적의 세 배는 되니까 역으로 포위할 수 있어!”

그러나 바쿠란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못 해도 서너 시간은 걸릴 텐데, 협곡 고블린이 본 영지로 쳐들어오면 어떡할 거야? 그럴 게 아니라 지금 후퇴하는 척 놈들을 유인해서 섬멸하자고.”

“야, 이 오밤중에 그런 작전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냐? 그러다 정말 사기가 무너지면 그대로 몰살이야!”

“후방의 고향이 없어질 판인데 어떡하자는 거야!”

상황은 다시 다급해졌다.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 괜찮았던 바쿠헨과 바쿠란의 말다툼은 거의 칼부림 직전의 분위기로까지 치달았다.

‘안 되겠어. 이대로면 아무것도 못 하고 통째로 궤멸하게 생겼어. 좀 힘들겠지만 나라도 나서서…….’

물론 네마냐가 나선다고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저번에는 요행히도 뒤에서 기습한 셈이라 오그르 대장이라도 쉽게 제압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도 훨씬 강한 2인자를 상대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눈을 꼭 감으며, 네마냐는 시스템을 다급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라도 급히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방에서 벌써 기운이 눌린 아우성이 들리던 그때,

[……안 되겠군. 어지간해서는 물러가지 않을 끈질긴 놈들이다. 내가 직접 적의 수괴를 상대하도록 하지. 그 정도면 나머진 그대들이 상대할 수 있겠지?]

“키메라!”

먼저 피를 보도록 부탁을 하긴 망설여지는 키메라다. 단순히 성수가 피를 보길 꺼리는 것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학살로 인해 마나가 오염되는 것과 흥분한 키메라가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인데…….’

살기를 가지고 마나를 이용해 상대를 죽일 경우 강제로 상대 체내의 마나는 유출된다. 그 강제적인 유출 순간에 자연 마나와 공존할 수 없는 체내 마나는 오염물이 되어 버린다. 특히나 아주 순수한 마나 자체를 생명의 정수로 삼는 키메라에겐 치명적인 요소다.

“……부탁할게. 무리는 하지 말고 이상한 게 느껴지면 바로 돌아오고. 알았지?”

[그래.]

마지막 순간에 녀석은 이쪽을 슬쩍 내려다본 것 같았다. 네마냐가 손을 들어 흔들기도 전에, 이내 그 육중한 그림자는 이쪽 하늘을 떠났다.

―크아아아!

산야를 울리는 키메라의 울음소리는 다시 계곡 전체로 울렸다.

“간다.”

“우릴 위해서 싸우는 건가, 역시…….”

“시간을 벌 수 있겠다, 어서 후방으로 물러나도록 병사들에게 알려라!”

발 빠르게 타위비크군은 정신을 차리고 방어 대형을 갖추고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계곡 위에서부터 중량을 앞세워 밀고 내려오는 고블린 최정예를 예상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형, 영지 본토에서 불꽃이 오른다!”

“정말이냐? 협곡 놈들까지 동시 공세로 나온다, 이거군. 예상은 했지만 최악이야.”

바쿠헨은 부질없이 후회하기보단 움직이는 쪽에 가까웠다. 검 손잡이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잡고, 첫째 공자는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불안하지만 일단 키메라가 갔다면 승산은 우리에게 있겠지. 뭣보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인다. 녹색 형형한 거대 오그르들 사이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탈짐승의 등에 올라탄 그것. 네마냐가 고블린들에 죽기 직전에 맞닥뜨렸던 대장 중 하나였다.

“돌고 돌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물론 지금 다시 싸우더라도 내가 이길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러나 네마냐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굳이 싸우지 않아도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수단 아닐까.

[고블린 너희들 가운데 강자는 썩 나와서 나와 사생결단을 가르는 결투를 하자! 전투는 이것으로 끝내야 하리라!]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지만, 마나를 가진 생명체라면 그 뜻을 받을 수 있는 전언이었다. 얼어붙은 고블린과 오그르를 제치고 가장 위압적인 대장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좋아, 와라! 신께서 안배하시고 대군장께서 힘을 내려주신 나, 오그르 대장 더브렉이 네놈을 상대해 주마.”

옛 질서의 수호자. 그리고 그를 올려다보며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새 질서의 도전자. 그 싸움이 바야흐로 시작될 참이었다.

* * *

[건방진 놈, 감히 신을 운운하다니. 드래곤과 신의 마지막 후계자인 나 키메라가 너에게 교훈을 가르쳐 주마.]

―쿠르와앗-!

무시무시한 자연마나가 분노한 키메라의 몸으로 모여들더니, 꾸역꾸역 붉은 기운을 뿜었다. 불타오르는 용암과도 같은 불길이 더브렉을 향하여 쏟아졌다.

“마법사, 마도사! 모두 대응해라! 결계를 쳐!”

고블린 진영 가운데서 수상한 마나가 피어오르며 재빨리 결계를 쳤다. 보통의 고블린 마도술사들은 오로지 공격형 마법만을 쓰기 때문에 이 결계를 친다는 것 자체는 굉장한 변화였다.

―콰앙!

두 강대한 마법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충격파가 계곡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나머지 고블린과 인간들은 모두 충격파의 반대편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키메라와 더브렉 둘은 전혀 미동도 없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댈 뿐이었다.

“이 도마뱀 녀석아, 비겁하게 허공에서 불이나 뿜지 말고 어디 한번 내려와 봐라! 왜, 정작 일대일로 싸우면 질 것 같지? 꼬리나 떼고 도망갈 도마뱀 같으니.”

―쿠구궁!

도마뱀이란 황당한 모욕을 당한 키메라의 몸 주위로 강력한 전기라도 흐르는 듯 누런빛의 구름이 둘러쌌다.

‘저게 소위 버서커 상태가 된 성수인 건가.’

네마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눈치라도 챘는지 하라드와 바쿠란도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제법 덤덤한 네마냐와 달리 몸을 덜덜 떨면서 안장에 겨우 앉아 있었다.

“저 정도로 분노하게 만들다니, 저놈 저거 미친놈 아니야?”

“저렇게까지 분노했다는 건 600년 전의 마계 대전쟁을 서술한 역사서에서 봤을 뿐인데. 적어도 저놈 부대는 지상에서 사라지겠지. 하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겠어.”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중 높은 곳에 머물던 키메라가 지상으로 내리꽂았다. 거의 반응조차 하기 힘들 그 속도에 모두들 충격을 대비하며 간신히 몸을 숙였다.

―파카앙-!

“우왓!”

이상한 굉음과 함께 사방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삐- 하는 이명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도저히 청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크기의 소리였던 모양이다.

“쿨럭, 쿨럭!”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네마냐는 먼지 구름 사이로 벌어진 광경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세상에…….”

거대한 구덩이. 그 주변으론 숱한 고블린과 오그르들, 아니 그랬던 것들이 있었다. 완전히 녹색 핏자국만 선연한 채였다.

“저, 저기 중앙을 봐! 더브렉은 아직 살아 있어!”

“아니, 살아 있다고?”

병사들까지 웅성댈 정도였다. 부대 하나가 거의 통째로 전멸하는 상황에서도 오그르 대장은 용케 칼을 쳐 내어 키메라의 강철보다도 단단한 표피를 막아 낸 것이다.

“아냐, 막아 내긴 했어도 이미 전신이 으스러졌을 거야. 딱 봐도 녀석의 몸에서 마나가 마구잡이로 흩어지고 있거든.”

―크아아아!

―이게 내 마지막 힘이다, 도마뱀!

두 상대는 마침내 상대방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뻗었다.

―쿠궁.

묵직한 진동이 사방의 수 킬로미터로 퍼졌다. 네마냐는 그 소리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끝났다. 끝났어.”

길게 이어질 것 같았던 싸움은 그대로 끝을 향해 달려갔다. 키메라의 복귀.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싸움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15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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