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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49화 (149/200)

149화

―타위비크 영지, 오로탄 마을.

이곳에 배치된 타위비크의 병사는 하나같이 기합이 엄정하게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협곡 고블린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바쿠란 공자님. 접니다, 아렌달.”

“기다렸지, 어서 와.”

작전 지도 상의 아군 배치를 지켜보던 바쿠란은 활짝 웃으며 동료를 받아들였다.

“무얼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이미 바쿠헨 공자님까지 함께 말씀하시고 배치를 다 결정하신 것 아닙니까?”

“그랬지. 형이야 워낙 병사들 굴리는 건 잘하니까, 병력 배치에 의심할 것도 없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바쿠란은 어딘지 심통 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형은 형이다 이거지. 고블린에도 싸울 줄만 아는 놈들이 있는 게 아니니까.”

“놈들의 마도술을 염려하신 것이군요. 그런 일이 있으시면 영지 마법사인 저에게 명령하시면 될 것을…….”

“이 방대한 영지 전체를 말이지?”

“전체요?”

아렌달은 잠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곤 이내 경악에 휩싸였다. 바쿠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오로탄 지역 작전 지도를 걷어내자 영지 전체의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영지 전체의 마법 방어 시스템을 다 점검할 생각이십니까?”

“그럼. 어제 들었잖아? 중부산맥 소영지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확실히 루프랑이니 벨루가 같은 영지가 어제 공격당한 건 확실합니다만.”

“같은, 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지. 그 두 곳은 우리 영지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면서 우리 대공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했단 말이야.”

루프랑, 벨루가. 심지어 타위비크의 영민들에게도 낯선 이름이지만 중부산맥 초입에 위치한 작은 영지였다. 약탈대라고 볼 수 없는 상당한 군대에 기습을 당한 건 바로 어제.

“하지만 그 두 곳 영주가 방심해서 당한 것 아닙니까? 단순 약탈대라고 하면…….”

“그렇진 않을걸?”

바쿠란은 의미심장하게 궁정 마법사의 말을 꺾어 버린 후 이내 한쪽 구석으로 다가가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그건 뭡니까?”

“그 두 영지의 경계선을 살피고 있던 형이 아침에 따끈따끈하게 보내 준 거야. 경한테도 꼭 보여 주고 싶었어.”

따끈따끈? 전장에서 갓 지어 만든 빵이라도 되나? 전초기지로 나가 있는 바쿠헨 공자가? 전혀 알 수 없는 힌트에 갸웃거리며 아렌달은 상자로 손을 가져갔다. 이미 차가워진 상자에선 어딘지 이상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덜컥.

“와악, 아이 씨―!”

“크하학! 그걸 진짜로 열어 보네?”

약간의 기대를 하고 열어 버린 상자 안에는 피범벅이 되어 있는 고블린…… 아니, 고블린이라기엔 너무 큰 무언가의 수급이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대체!”

“아, 진정해. 이미 죽었으니까.”

죽었다곤 하지만 지금 바로 숨을 내뿜으며 눈을 치켜뜰 듯한 포악한 외모였다. 바쿠란은 얼마 없는 그것의 머리털 없는 수급을 툭툭 쳤다.

“내 생각엔 이게 아마 단순한 고블린은 아닌 것 같고, 그 파생형 같아. 대충 표면에 남은 마나의 파형은 고블린과 비슷하긴 하거든.”

“그럼, 일전에 바가반드에서 보내 주었던 비밀 자료의 오그르니, 오크시니 하는 것들이…….”

오그르와 오크시. 고블린 군단 내부에서 그동안 비밀에 싸여 있던 ‘투사’ 혹은 ‘전사형’ 고블린의 진정한 정체였다. 마탑에서 차석으로 교육을 수료한 자칭 천재마법사라지만 란조차도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맞아. 오크시 혹은 오크라고 부르는 종족은 우리 동맹인 오체시 고블린이지. 반면 오그르는 우레이미야가 이번에 새로 정식 편성한 군단 내 제2종족이고.”

“그럼 이 머리의 생명체는…….”

“일단 우리가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오크족도 험상궂긴 하지만 적어도 인간 연합국과는 협조 관계지.”

더군다나 오크의 나라는 자유 무역으로 먹고 사는 데 바쁜 나라다. 한겨울 눈 쌓인 타위비크 중부산맥으로 쳐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이게 오그르인 이상, 우레이미야 군단의 개입은 확실하지. 우리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 어쩌면 놈들이 일부러 보란 듯이 루프랑, 벨루가를 포위한 건 우리를 마비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고.”

“마치 선제공격으로 쳐들어가실 것 같은 말씀이군요. 비어버린 곳을 마법으로 방어할…… 잠깐, 그러면 역공을…….”

“쉿!”

바쿠란은 궁정 마법사에게 순간적으로 사일런트 마법을 걸어 버렸다. 궁정 마법사 역시 4서클의 실력자라지만, 촉망받는 마법사인 바쿠란은 그 이상의 마나 압력으로 저항을 물리쳤다.

“고블린 마도사들은 변장 마법에도 제법 능하다고 하더라. 섣불리 중요한 정보를 얘기해선 안 돼, 알겠어?”

“끄으으.”

알겠다며 얼른 풀어달라는 아렌달의 재촉에 자신도 놀랐는지, 바쿠란은 정중하게 풀어준 후 옷깃까지 다듬어 주었다.

“미안. 하지만 일단 여기까지 놈들이 들이닥쳤으니 우리도 마냥 장난으로 할 수는 없어. 다행히 요 주변은 안전한 것 같아.”

적마정석의 기운을 탐지하기 쉬운 청마정석으로 주변 공기를 읽은 바쿠란은 한숨과 함께 아티팩트를 집어넣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헨 공자께서 적 가까이 주둔하고 계신 게 바로 공세를 위한 것이군요.”

“원래대로면 나도 동행해야겠지만 형이 말리기도 했고, 슈니크에 아버님만 내버려 두기도 뭣해서. 대신 이렇게 영지 방어라도 계속 살펴 놔야 안심이 되겠어.”

물론 바쿠란도 중요한 손님이 오로탄에 도착할 예정이란 것까진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동맹이 된 바가반드의 영주가 방문한다는 사실은 병력 배치보다도 중요한 극비사항이었으니까.

“자, 이제 시간이 정오쯤 되었겠지.”

그의 말처럼, 하늘에는 해가 가장 높은 곳에 떠 있었다. 미리 네마냐가 정보대라는 공작부대를 통해 보낸 편지에 있는 대로였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으십니까?”

“갑작스럽지만 지금 시점에선 그 누구보다, 심지어 황제나 아버지보다도 더 반가운 상대야.”

그때 어딘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먼 곳에서 힘차게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지는 마나의 궤적…… 정확히 남서쪽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왔군.”

“왔다니…… 이 소리는 설마?”

“강을 타고 오거나 말을 타고 올 줄 알았더니, 정말 매번 날 놀라게 한다니까!”

바깥에선 또 무슨 일인지 소란마저 일고 있었다. 바쿠란은 뛰어나가듯 군막을 젖히고 나섰다. 전혀 들을 수 없었을 거대 날갯짓 소리에 깜짝 놀란 아렌달 역시 둘째 공자를 따라나섰다.

“으아아! 용이다, 용!”

“고블린이 이번엔 용까지 동원한 거냐!”

“저건 상대가 안 된다고!”

당황한 영지의 병사들이 곳곳의 엄폐물을 찾아 엎드리거나 무기를 버리고 숨고 있었다. 개중에 용감한 병사 몇 명은 석궁과 노포를 애써 조준하며 허공에 나타난 괴생명체를 조준했다.

“아서라, 아서. 그까짓 돌덩이나 쇳덩이로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야.”

혹시나 잘못해서 괜히 성질을 돋우면 더 큰일이다. 저 괴생명체의 존재를 보진 못했어도 대번에 정체를 알아차린 란은 병사들을 말렸다.

“모두 저항 금지시키고, 정신 차리라고 해. 아렌달, 전략 마법 쓸 수 있겠지?”

“아, 넵! 알겠습니다.”

전략 마법. 전시 상황에서 병사들에게 일종의 축복 마법처럼 버프를 주고, 저주 마법처럼 디버프를 적에게 거는 마법부터 다양한 군단 보조용 마법이 속한 대분류다.

[큐레 에만티피아(Kure Emantipia)]

물론 성직자의 축복 마법은 사용 가능한 대상이 몇 명 되지 않는 데 비해 전략 마법은 대규모 군단에도 사용 가능하단 장점이 있다. 대신 그 효과가 다분히 위약효과를 동반하는 ‘임시변통’의 일시적 마법이란 것이 한계일 뿐.

“와……우우.”

“그, 그나마 마음이 낫긴 한데.”

“그래도 너무 무섭습니다!”

“정신 차려! 고블린이 진짜 드래곤이라도 끌고 오면 모두 땅바닥에 대가리 박고 죽을 거냐?”

곳곳에 숨고 도망치며 난리가 났던 병사들은 단숨에 진정되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괴생명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의 원인은 남아 있었으니 병사들은 불안해했다. 바쿠란은 병사들을 꾸짖다가 이내 조금 온화하게 말을 바꾸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아직 드래곤들은 정령화된 존재가 아닌 이상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게다가 저건 드래곤도 아니고 성수야, 성수. 성스러운 수호신.”

“성수! 그럼 저게 바로 그…… 그래서 아까 전부터 허공에 그렇게 맑은 마나가 회오리치고 있던 거군요.”

“오, 당신도 느끼고 있었구나. 맞아. 우리 시대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세계의 성수, 키메라지.”

―펄럭!

아주 느릿느릿, 천천히 날개를 휘저을 뿐인 괴이한 생명체. 사자 머리와 다리, 산양의 몸통과 용의 꼬리. 아주 오랜 옛날 아이들 용으로 출간된 「전설상의 성수 이야기 모음」에서 보았던 묘사가 정확했다.

“그리고 저기 매달린 인간들은 대충 보니 바가반드의 손님이겠고. 처음 보는 귀한 손님도 있으시지만. 여, 빨리 내려와! 다들 너무 무서워하거든.”

“많이 기다렸구만?”

허공에서 들리는 난데없는 낭랑한 청년의 목소리에 아렌달이나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히 방향은 신성한 수호자, 저 괴수, 정확히는 털로 덮인 등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 * *

“아니, 이렇게 남의 진지 한가운데서 내리면 어떡해? 병사들 놀라서 다 엎드린 거 봐.”

하라드는 진지 출입구나 으슥한 덤불 쪽도 아닌 진지 한가운데 공터에 내린 것이 못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트라야브나도 조금 황당한 표정이었다. 네마냐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몰래몰래 다니는 건 내 성격이 아니거든. 그리고 아마 여기 우리 친구도, 그렇지?”

물론 운전 미숙으로 예상 지점보다 멀찍이 내려서 진지 한가운데 내린 것이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무슨 죄를 짓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몰래 다닐 수 있지. 하지만 우린 여기에 공식적으로 사람을 도우러 온 것 아니었나?”

키마라스였을 때와 같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하라드의 고막을 크게 울렸다. 바로 곁에서 듣고 있으려니 청력이 마비될 것 같은 진동이었다. 하라드는 귀를 살짝 막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들하고 무슨 얘기를 해. 하여간 쇼맨십에는 도움이 되긴 할 테니 다행이지만.”

“자, 내리자.”

―쿠궁.

무척이나 거대해서 한 발로도 고블린 따위는 밟아 으깨 버릴 듯한 덩치였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키메라는 한쪽 등을 기울이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렇다곤 해도 요란한 진동을 피할 순 없지만.

“이크.”

“놓치지 말고. 성녀님도 꼭 잡으시죠.”

“썰매 정도는 나도 탈 줄 알아요. 옛날 세속에 있을 때 산 언덕에 살아서 많이 탔거든요.”

경사면처럼 기울어진 등은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어 마치 썰매장 같았다. 경사면을 타고 네마냐가 앞으로 능숙하게 미끄러지고 하라드는 허리를 꼭 붙잡곤 눈을 감고 따랐다.

―콰당!

물론 돌덩이 위를 구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바닥엔 완충재가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두 사람은 꼬리뼈로 전해지는 고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성녀는 하라드의 허리 위로 미끄러져 통증을 많이 느끼진 않았다.

“큿…….”

“아파. 특히 허리가…….”

“어머, 미안해라.”

“괜찮습니다. 마법사도 이런 경험을 해 봐야 앞으로 전장에서 고생을 안 하죠.”

말은 그렇게 해도, 네마냐는 하라드를 일으켜 준 뒤 먼지도 털어 주었다. 마치 약 주고 병 주고, 사람 굴릴 줄 아는 스킬이라도 쓴 것처럼.

“다친 건 아니지, 바가반드 경?”

재빨리 다가온 비쿠란이 놀람과 다소의 터져 나올 듯한 웃음을 함께 담은 묘한 표정으로 안부를 전했다.

“일단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뭣보다 당장 타위비크를 도우러 와야지. 그래야 동맹 아니겠어?”

“푸하핫, 역시 그때 관계를 터놓은 건 우리가 한 최대의 업적이었어. 막막한 공세 직전에 가장 든든한 우군이 도착해 주다니 말이야.”

“막막한 공세? 든든한 우군? 돕다니요?”

아렌달은 자신을 제외하고 서로 도란도란한 이 일행이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마나를 뿜어낸다는 걸 느꼈기에, 뭔가 큰일이 벌어지리란 생각을 떠올렸다.

“뭐긴 뭐야. 이제부터 우리가 암피에르 연합의 최일선이 되어 고블린의 연한 옆구리를 꿰뚫어 버린다는 거지, 하하.”

바쿠란 공자는 마치 뒷산 감나무에 열매라도 따러 가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적이 인간 거주지를 말살하려고 든다면, 인간도 맞서면 그만일 테니까. 더군다나 양쪽에 성자와 성수까지 대동해 버린 상황이라면! 네마냐는 망토를 휘감고 삼각 모자를 고쳐 썼다.

“그간 고생이 많았어, 다들. 지금부턴 우리가 떨치고 일어나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고.”

반격의 서광이 밝는 순간이었다.

- 15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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