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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35화 (135/200)

135화

―달칵.

문이 다시 열렸다. 원래 계획대로였으면 잠깐 다녀오고 말 일정이었지만 이미 저녁 해가 저물고 있는 시간이었다.

“같이 가 줘서 고마웠어. 혼자서 갔다간 어떻게 됐을지도 모를 텐데.”

선물로 받은 고급 마정석과 몇 가지 재료를 한가득 등짐에 진 아일라의 감사 인사. 하지만 네마냐 역시 고민스러웠던 문제를 해결한 터라 만족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저도 정령사를 어떻게 만나나 고민했는걸요. 피차 잘 됐죠. 저한테 얘기하기로 마음먹기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소인족이 기본적으로 타 종족에 대하여 품는 감정은 의심이었다. 하야스단에서의 주도권을 잃은 뒤로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정치적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영향력을 잃어온 탓이었다. 곳곳의 광산과 지하도시,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건 폐쇄적인 태도였다.

“……나쁜 사람들은 아냐.”

“알아요. 오늘 얘기하고 싸워 보니 알겠던걸요.”

“네가 편견이 없는 편이라서 거리낌이 없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도 서로 겁을 집어먹고 상대를 미워하는 것으로 안전함을 찾는 거죠.”

슴바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네마냐가 느낀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상대방이 실제로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떠나 최소한 상대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로 위험한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달라지는 사건 속에서 정확하게 행동하기 어렵지. 섣불리 단정하고 공격하거나 협조하지 않아서 공연히 일만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지.’

그리고 그런 일이 수십 번 이상 반복되어 일이 꼬일 대로 꼬인 것이 오늘날의 하야스단이다. 네마냐 자신조차 얼마나 숱하게 타인, 타 종족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매번 고쳐 나가는 일이 적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교류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군.”

“뭐, 아직은 요원한 얘기라 희망 사항이지만요.”

“아냐. 내가 보기엔 벌써 달라진 게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봐. 불완전하지만 암피에르 조약이 제힘을 발휘했지. 바난드 왕국도 일부나마 제정신을 차렸고. 그리고 오늘은…….”

어제 먹은 술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는지 홍조가 진하게 올라온 아일라의 말이 길어졌다. 어제 맡았던 과일 향과 술 냄새가 진했다. 어쩐지 아침에 소피 정도를 빼면 소인족들이 어딘지 넋이 나가 있더라니 아침까지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일단 취기가 아직 있는 것 같으니 좀 늦게 저녁 들 때까지 쉬고 오세요.”

“난 이 정도로 안 취한다니까!”

“네. 푹 쉬시라고요. 갔다 왔으니 짐 정리도 해 둬야죠. 혹시나 하라드나 키마라스가 왔을지도 몰라서 찾아보려고요.”

“아, 그래. 그럼 난 좀 쉬다 내려갈게.”

역시나 취기가 오르는지 평소 같았으면 고집불통이었을 아일라는 금세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오랫동안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모양새였다. 혼혈이라지만 여전히 소인족에 깊이 가지고 있는 감정도 감정이고…….

“집안 가보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한데 나중에 제대로 물어보는 게 좋겠지. 지금 괜히 물어봤다간 TMI 홍수에 빠져 죽을라.”

그렇게 소피 공녀로부터 받은 선물과 계약서를 들고 네마냐도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응?”

뭔가 기시감이 느껴진 건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골목에서의 일이었다. 어쩐지 반갑지 않은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이 골목을 돌아 방이 있는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보일 것처럼.

―삐걱.

나무 바닥이라 소리가 완전히 안 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세상에선 여전히 쥐라는 강력한 천연의 어그로꾼이 있어서 웬만한 기척은 쥐인 척 위장할 수 있었다. 작게 심호흡한 뒤 네마냐는 쏜살같이 복도 너머로 뛰쳐나갔다.

“왁!”

“우와아악!”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요란하게 넘어졌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놀란 경비병들까지 헐레벌떡 달려왔을 정도였다. 재빨리 다가간 네마냐는 쓰러진 상대방에 올라타 손발을 제압했다.

“너, 뭘 하는 놈인데 내 방을 기웃거려?”

“아파, 아파! 나 당신 마법사야, 형! 하라드! 그새 이름도 까먹어 버린 거야?”

“아…… 어휴, 뭐냐. 왜 네가 내 방 앞에서 수상하게 기웃대고 있어.”

한껏 억눌렀던 손아귀 힘을 풀고 숨통을 트여 주었다. 켁켁거리며 연신 기침해대는 녀석이 네마냐가 일어나자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휴, 죽는 줄 알았네.”

한참 기침하던 하라드는 조금 진정된 듯 바닥에 나뒹굴던 지팡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뭘 하고 있던 거야? 방에 내가 없으면 나중에 오면 되지 기웃거리기나 하고.”

“솔직히 말해. 어딜 다녀온 거야?”

녀석의 추궁은 제법 예리했다. 그나마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녀석의 이야기를 받았다.

“어딜 가긴. 멀리 갈 수나 있나. 아일라하고 한나절 정도 어디 다녀왔지. 이야기도 하면서.”

“한나절 어디 나갔다 온 것치곤 아주 심각하게 어디서 진흙을 묻혀 왔는데. 더군다나 이 냄새…….”

몸 가까이 다가와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녀석의 얼굴을 살짝 밀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파고드는 하라드는 알아챘다는 듯 눈길을 마주했다.

“이거…… 형 어디서 또 검은 마나를 만났구나. 나 몰래 대체 어딜 다녀온 거야!”

“하, 일이 좀 진행이 되면 천천히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얼른!”

재촉하는 마법사란 은근히 무서웠다. 자백하는 마법이라도 일으킬 듯한 강렬한 호기심이 담긴 눈빛이 채근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네마냐는 하라드의 팔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안에서 이야기하자. 혹시나 모르니.”

“무슨 일인데 그 정도야?”

주변에 아무도 없단 걸 확인한 두 사람은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왔다. 네마냐는 전날 이른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듣기 시작한 하라드가 슬슬 놀라는 표정이 되더니 막판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블린 별동대를 격파한 뒤에 정령사 본부와 협의를 마치고 슴바트 군주와 교섭도 했다고? 그리고 그게 어제부터 지금까지 한나절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고?”

“믿기지는 않겠지만 사실이랍니다.”

녀석은 믿기지 않는지 의자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네마냐는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뭘, 정령사 합류? 좋지.”

“정령사 건도 그렇지만 미크라야크 말이야. 어느 정도 적당히 마무리하긴 했지만 워낙 중대한 일이라서 말이야.”

“제국이나 바난드의 일을 염려하고 있었군. 하긴 이쪽에서 오래 살진 않았지만 미크라쪽 얘기만 꺼내면 다들 얼굴이 굳더라고.”

왜 아니겠나. 아무리 타지 출신의 속 모르는 이야기라고 해도, 겉에서 볼 땐 별것도 아닌 지역감정 정도라지만.

‘본인들에겐 쌓이고 쌓여서 터져 나온 문제니까.’

그런 점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뜻 슴바트가 손을 내민다고 해도 문제다. 암피에르 조약을 구성하는 제후들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들 염려대로 슴바트가 옛 반란자들과 화해할 생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잠깐의 연대라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최근 몇 번의 침공으로 사람들도 정신을 좀 차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반쯤 망가졌던 암피에르 조약이 다시 모일 수 있었고.”

“어…… 부담스럽지 않을까? 솔직히 정령사 건도 의심을 품은 사람들 설득하기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당장 열어 놓을 필요는 없지. 어차피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니까. 흐르는 전황이 심상치 않을 때 얼마든 선택지로 제시할 수 있지 않겠어?”

그래, 하라드의 말대로다. 어쩌면 아직도 미래를 급하게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동안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어느 정도 분명하게 드러난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고블린 군단 쪽으로 기울어졌던 균형을 빨리 잡는 것에 집중해 왔다.

“그래. 이제 중요한 건 빠른 속도로 뒤따라 잡는 건 아니게 됐어. 여전히 우리가 유리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온 이상 쉽게 패배하진 않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제발 이제 불안해서 조급해할 것 없단 이야기야. 그 슴바트가 지금 당장 제안해야 한다면 직접 당부하지 않았겠어? 형을 신뢰하기로 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행을 형에게 맡겼겠지.”

거기까지 말을 한 녀석은 손을 잡고 군소리 없이 토닥였다. 한참 어린 녀석한테 마치 상담이라도 받은 모양새라 좀 민망한 일이지만. 물론 녀석도 그저 좋은 이야기만 해줄 생각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괜히 성적 우수자 위주로 뽑히는 게 아닌 걸 입증이라도 하듯.

“정령사 건이야 이미 반쯤은 해결되어 있었고, 미크라야크 건은 기회를 봐서 함께 풀자고. 나도 기회를 봐서 도울 테니까.”

“괜찮겠냐? 정령사 문제와 달리 이건 귀족 제후나 마탑에 성국도 쉽게 설득할 수 없어. 자칫하면 파문을 당할지도 모르지. 너도 마법사로 나가야 할 날이 한참 남았는데.”

“안 되거든 까짓것, 형이 책임지고 제대로 키워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네가 먼저 떠나는 게 아니면 내가 너만 한 마법사를 어디서 얻겠냐. 안심하라고.”

네마냐는 주먹으로 가볍게 하라드의 가슴께를 툭 쳤다. 녀석은 아픈 척 엄살을 부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어쩌다 내 방을 기웃거리고 있던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거기다가…….”

그동안 내내 떨어질 기색 없이 하라드와 붙어 다녔던 키마라스도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이 곤란할 정도로 넘치는 키메라가 싸돌아다니지 않다니, 이상한 노릇이다.

“아, 키마라스 말이지. 안 그래도 그 인간 때문에라도 형을 찾아온 거였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무슨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지 하라드는 멋쩍게 볼을 긁을 뿐이었다. 그 태도가 더 수상해서 추궁하니 무겁던 녀석의 입이 드디어 황당한 소리를 뱉어냈다.

“아니, 그…… 키마라스가 지금 제국군 사령관들하고 대작을 뜨고 있어서 말이야. 오늘 종일 그쪽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모양이야.”

“뭐?”

순간 귀가 잘못되어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 네마냐였다. 페넬로파 녀석이 근거리에서 폭발을 날려댄 게 청각장애를 일으켰나?

‘그래, 그런 거겠지. 나중에 그 녀석도 잡으면 제대로 보상금을 받아내든가 해야겠어.’

하지만 잠시 자기합리화에 빠졌던 네마냐에게 다시 하라드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키마라스가 지금 니케타스 장군하고 진짜 술 대결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오는 길이라니까? 그래서 형한테 알려주려고 왔던 거야.”

“이건 또 무슨…….”

니케타스와 키마라스의 만남은 조금 위험할 수 있다. 심지어 그냥 독대도 아니고 술까지 곁들이다니. 수호성수일 만큼 순수하다는 키메라가 술을 마셨을 때 무슨 소릴 할지 누가 알겠어.

“아직 키마라스가 뭐라고 이상한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누가 우릴 잡으러 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대로 지켜보려니까 가족 이야기에 친구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해서 불안해서 말이야.”

“앞장서. 지금 바로 데려오자.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아?”

“마신 양에 비해선 멀쩡하긴 했어. 하지만 얼굴의 홍조로 보면 언제든 곯아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앞장서. 지금 바로 잡아 오자.”

자리에서 일어난 네마냐를 인도하듯 하라드는 재빠르게 문을 열고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제국군 숙소는 우리랑은 꽤 다른 데다 멀기도 할 텐데 거기까지 들어갔네.”

“아마, 형이 없는 사이에 제국군 장교 몇 명이 이리저리 기웃대면서 정보를 캐려고 했던 모양이야. 아마도 형이나 영지에 불리한 건수를 건져서 쓰려던 게 아닐까?”

“잠깐 전쟁을 쉬면서까지 휴전을 하자는 줄 알았더니, 야비하게 굴고 있었군.”

그러나 네마냐는 피식 웃을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요 며칠간 자기 숙소 근처에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나 했다. 처음엔 다른 수상한 집단인가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겠지만.

“키마라스도 아마 괜찮을 거야. 하지만 어쨌든 이제 그만하게 해야지. 그 친구에게도 물어볼 게 하나 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제국군의 장교들이 묵는다는 거대한 회당으로 향했다. 회당의 문이고 창문이고 모조리 틀어막혀 있었지만 눈으로만 보아도 술 냄새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내가 왔다, 키마라스! 이제 그만 마시고 돌아가자, 얼른!”

지독한 냄새와 술독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신음을 뚫고, 밝은 빛과 함께 네마냐의 소리가 회당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13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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