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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33화 (133/200)

133화

“선배님, 고블린 팔 한 짝 더 가져왔는데 어디에 버립니까?”

“야, 고블린들 사체는 진작에 수거해 갔다고.”

“오늘 또 신병 하나 얻어맞겠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당황한 신병의 얼굴이 흙빛이 되는 게 아주 볼만한 광경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선임들이 낄낄대는 사이에, 그나마 친절한 하나는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 산등성 쪽 수풀로 따라가 봐. 운 좋으면 아직 흙을 덮어 두진 않았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신병이 고블린 팔이 들었을 자루를 들고 황급히 뛰어갔다.

“요즘 신병들은 일이 다 끝나면 일거리 들고 오는 게 버릇이야?”

“그쯤 해 둬. 적당히 놀려먹어야 나중에 전장에서 뒤통수에 칼을 안 맞지.”

“크크, 이 정도면 우리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안 했구먼, 뭘.”

낄낄대는 병사들의 우스갯소리가 멀리서도 잘 들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떻게 생긴 거랑 장비는 달라도 하는 장난은 똑같은지. 그나마 가혹행위 같은 건 아니니까 다행이지만.”

네마냐는 잠시 진상조사에 협조해달라는 미크라야크의 요구로 군영에 머물고 있었다. 현장에서 방문 사실이 알려지자 얼마나 분위기가 쎄했던지.

“모처럼 감동 분위기가 한 방에 날아가긴 했지만 미크라야크 쪽 반응도 나쁘진 않았어.”

일전에 미크라야크 기사단의 반응으로 보아 상당한 적대심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모습을 드러낸 왕 슴바트와 기사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지나쳤을 뿐이었다.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기억이란 게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단 건 회귀를 하면서 느꼈다. 자신이 소문으로 잘못 아는 것도 있었고, 페넬로파처럼 자세하게 알지 못해 오류를 일으킨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슴바트 왕이 정신적으로 불안하단 건 알고 있는 얘기였는데. 오늘은 너무 멀쩡했지. 아니면…… 숨기는 데 능하다거나.”

“뭘 숨겨?”

“힉.”

어깨에 와닿는 촉감에 딸꾹질이 솟구쳤다. 그렇게 한참을 딸꾹질에 시달리는 네마냐를 바라보며, 아일라는 새삼스럽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이럴 때 얘기 걸러 올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겠어. 놀라긴.”

“놀라죠, 당연히. 슴바트 얘길 하고 있었는데.”

“아, 괜히 꼬투리라도 잡힐까 봐? 조심성도 많으시네, 우리 영주님.”

네마냐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계곡 건너편을 보던 시선을 아일라에게 맞추었다. 그리곤 허리춤에 달린 무언가에 관심이 쏠렸다.

“허리춤의 그거…… 뭐죠? 아까는 전투 중이라서 미처 얘기할 틈이 없었는데.”

“아…… 이거?”

그 이야기에 아일라도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허리춤을 살폈다. 망치? 그래, 정확히 생김새는 대장간에서 담금질할 때 쓸 법한 망치였다. 하지만 보통 장인들이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크기가 작았다. 그 대신 지금 갓 만든 것처럼 화려한 금빛을 내고 있었다.

“제련용 망치 같은데, 너무 작지 않아요? 이걸로 대장간 일을 보려면 한세월이겠는데.”

“이걸 처음 본 사람들은 다 그런 소릴 하지. 자, 그럼 어디 볼까.”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인지 아일라는 망치를 양손으로 잡고 뽑아 들었다. 가벼워 보이는데 웬 약한 척을…… 아니, 잠깐.

“이렇게 내가 주인이란 걸 인정하게 되면 본래 크기를 되찾게 되지. 그러면―”

“어어?”

이미 금빛을 내고 있던 망치는 환한 빛을 뿜어내며 커져 갔다. 옛날 서준이 500원 뽑기에서 뽑았던 공룡처럼 물에 넣어 불어나듯 덩치가 커졌다.

“이게 뭐죠, 대체? 도시에서 찾은 아티팩트예요? 하지만 주인이 설정된 아티팩트라니 그런 건…….”

아티팩트. 마법사가 발에 채이도록 많아 고용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원하는 마법을 쓸 수 있을 확률은 더 낮다. 그래서 마정석 등을 활용해 마법 술식을 각인시켜 놓은 아티팩트가 존재하는 의미가 생겨난다. 효율, 비용에 상관없이 무조건 마법이 필요할 때에 대비해 마법사조차도 몇 가지는 챙겨 둘 정도다.

그런데 아티팩트는 보통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팔 수 있고 또 중고로도 판매가 가능한 아주 똘똘한 상품이니까. 하지만 예외적으로 주인이 설정되는 물건도 있다. 분실하면 큰일이 난다거나 대대로 전해야 할 정도로 소중한 물건이란 뜻이다.

“응. 우리 집안에서 옛날부터 전해졌던 물건인 모양이야. 아까 소피를 데리고 전서구 방으로 들어갔을 때 발견했거든.”

“대대로 가보라고 해 놓곤 전서구 방에서 찾았다고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이 광산 도시 자체가 고대 난쟁이들이 쓰던 곳이라고 했잖아. 소피 일행이 다시 정착한 것도 고작 십 년 남짓이거든.”

아일라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연신 그 무지막지하게 커진 망치를 어루만졌다. 소인족 기술의 정수라도 녹아 있는지 이야기대로라면 천 년은 족히 넘었을 제련 망치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어떤 아티팩트예요?”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조상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었지.”

「강철손 친구」

아일라의 말에 따르면 아티팩트 제작자가 붙인 이름이었다. 작명 센스 따위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 기능은 대강 짐작이 가능했다. 그러면서 아일라는 이것과 얽힌 일화와 자신이 아콜타데리움 합금과 투쟁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아티팩트가 하스페다 가문의 전설적인 제련술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인 거죠?”

“그래. 제련의 완성도가 올라가서 훨씬 튼튼해져. 일반적으론 만질 수 없는 고급 재료도 쓸 수 있지. 작업 속도도 엄청 빨라지고.”

너무 오래 휴면 상태였으니 아티팩트 자체를 활성화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걸 사용하게 되면 아콜타데리움까지 훨씬 쉽게, 더 완벽하게 제련할 수 있다.

“그런 보물이 여기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랬으면 훨씬 일찍 와 보는 건데.”

“그럴 리가 있겠어.”

핀잔이라도 주는 것처럼 타박하는 말투 같지만 실려 있는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본인에게도 이 반쯤 묻혀 있던 지하도시에서 이런 물건을 발견한 건 대단히 의외였을 테니까. 얼굴에는 살짝 씁쓸하고 슬픈 기운과 감개무량한 감정이 뒤섞였다.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사연이 있는 건 분명하네요. 그런 표정, 처음 보는데.”

“좀 더 조사해 보고 기능에 관한 이야기가 정리되면 그때 제대로 얘기해 줄게. 오늘은 찾아낸 것만으로도 싱숭생숭하네.”

“그럼요.”

아일라의 부탁을 못 들어줄 건 없었다. 네마냐가 싱긋 웃었다. 얼굴을 마주 본 아일라도 찬 바람 때문인지 상기된 얼굴로 끄덕였다. 계곡은 깊어가는 겨울 때문에 몹시도 추웠지만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은 서 있었다.

* * *

계곡에만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바람이 진영 안으로 불면서 기껏 피워 둔 모닥불도 한껏 움츠러들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전하.”

“왔군. 찾았다네, 호바니스.”

호바니스는 자신의 군주를 향해 뛰어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고블린의 잔당을 추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잔당은 어떻게 되었나?”

“도망하는 놈들을 따라가 백여 마리를 더 쳐 죽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복면 차림의 인간 십여 명도 있었습니다.”

“흥, 아버님을 배신한 인간 귀족들도 많았네. 고작 고블린에 붙은 배신자가 없으려고?”

왕은 자신의 기사에게 일어나도록 권했다. 호바니스가 일어나 다가오자 주종의 대화법은 끝나고 평어로 돌아갔다.

“아슬라니아 공녀는 잘 쉬도록 했나?”

“고블린 출현에 관한 사정 청취 정도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잘했네.”

말을 마친 슴바트는 다시 원래대로 시선을 어두운 계곡 옆 제방길을 향해 돌렸다. 그러자 호바니스도 흘낏 눈길을 주면서 물었다.

“이 차가운 밤에 무얼 보고 계셨습니까.”

“생각할 게 좀 있었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제방에 재밌는 손님이 계시더군.”

슴바트가 턱짓한 곳을 향해 기사는 신중하게 시선을 드리운다. 어두컴컴한 공기 사이로 어딘지 낯이 익은 사내 하나와 처음 보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저 사람…… 바가반드의 영주로군요.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랬지. 네마냐 나자리안. 세상천지를 뒤집어 놓았다더니 기어코 닫혀 있던 우리 영지까지 발길이 닿았군.”

“뭔가 우리 왕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 조치할 수 있습니다만.”

「조치」.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얼어붙은 그 단어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비수처럼 고막을 찔렀다. 슴바트는 살짝 나무라는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네도 정녕, 내가 미쳐서 급기야 고원의 영웅마저 제거했다는 세간의 얘깃거리로 만들 셈이군. 내가 자네 봉급을 몇 달 정도 밀렸던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충성을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

“농담이야.”

농담 같지 않은 목소리로 툭 한마디를 던졌다. 이어 슴바트는 두어 발짝 진영의 경계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시다면 어째서 적국 바난드의 제후, 심지어 전하께 충성을 바치는 가스파리얀을 제거한 자에게 이리 관대하십니까?”

“관대라…….”

슴바트는 잠시 턱을 손으로 받친 채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가스파리얀, 오랜만에 들어 본 이름이다. 하지만 선뜻 반갑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이름이기도 했다.

“어쩐지 눈에 거슬리기야 하지. 그렇다고 바난드나 마탑이 떠드는 것처럼 사람을 죽여서야 쓰나. 똑같은 놈이 되어서야 내 대의만 이지러질 뿐이네.”

“주군…….”

“그러니 자네도 성질을 좀 죽이고.”

“아얏!”

느닷없이 이마에 꿀밤을 맞은 나이 지긋한 기사의 외마디 비명이었다. 손을 털면서 슴바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폐쇄적으로 대응하라고 한 건 적의 첩보질을 주의하라는 거지, 애먼 사람까지 공격하라고 한 건 아니야. 내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게.”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슴바트는 희미한 웃음과 함께 시선을 다시 계곡을 향해 틀었다. 그 모습을 조심스레 올려다본 호바니스가 되물었다.

“전하, 그러시다면 한번 직접 대화를 나눠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안 그래도 그래 볼 생각이야. 자네도 이제 그만 돌아가서 병력 점검을 좀 하게. 추운데 나와서 병사들이 곤두선 모양이더군.”

슴바트는 자신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군사령관에겐 어딘지 썩 개운하게 들리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래, 자신의 의도이기도 하다. 네마냐가 보았던 병사들 간의 갈굼을 자신은 훨씬 가까이에서 보았으니까.

‘그러나 영웅님과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건 심술궂게 보여도 이런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호바니스는 한쪽 구석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재빨리 복명했다.

“곧바로 조처하겠습니다.”

“너무 고생은 하지 않도록.”

말을 마친 슴바트는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디뎠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굳게 얼어붙은 흙바닥의 촉감이 선명했다.

“엘레기스 쪽에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지하도시가 이런 규모로 있단 건 미처 몰랐군.”

찬 공기에 속이 괜히 들끓는 기분이었다. 어의는 여러 기억과 경험으로 화가 가득해 장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화를 쌓지 않아야 한다’라고 처방했다. 피식하는 비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신의 삶과는 정확히 반대의 경로였다.

“아직 원한도 못 풀었는데 멋대로 풀어 버린다고 해도 그럴 수가 있나. 우선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 슴바트는 이쪽으로 이미 시선을 돌리고 황망해하는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섰다.

“반갑네, 손님들. 아마도 합법적인 입국은 아닌 것 같으나 이미 들어온 사람을 어쩌겠소.”

대화체와 선정한 단어는 가볍고 스스럼없었다. 하지만 차가운 눈빛과 일반인 중에선 신장이 크다는 네마냐도 살짝 올려다보는 체구였다. 그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꽤나 위압적이었다. 그 분위기조차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가진 광기의 군주, 슴바트는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고원을 한때 날아올랐던 권위의 키메라가 이제 그 날개를 꺾이고 숨죽여 울고 있는 곳. 미크라야크에 온 것을 환영하지. 군주인 슴바트라고 하네.”

무척이나 흉흉한 소문과는 제법 다른 세련된 옷차림과 이지적인 첫인상을 안겨준 슴바트와의 만남이었다.

“바가반드의 네마냐라고 합니다.”

복잡한 수식 없이 네마냐는 그저 딱 필요한 정보만을 드러냈다. 속으론 온갖 생각과 긴장에 찬 시나리오가 오갔지만.

- 1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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