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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31화 (131/200)

131화

“취잇-!”

“적마정석을 뒷놈들이 작동시키면 우리가 고블린 막기가 힘들어. 뒤흔들어야 해.”

“어디,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요.”

그동안 다른 정령사들에 비해 뒤로 물러나 있었던 물의 정령사들이 나설 순간이었다. 물의 특성이 무엇인가? 공기 중과 달리 빛이나 물질의 이동 속도가 크게 느려지지 않던가.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정령술에는 마법적 원리보다야 물리적 원리가 강하다니까.’

정령술 뒤에 괄호를 친 뒤에 ‘물리’ 속성을 부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직감이 옳기라도 한 것처럼 예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운디네(Undine)여, 너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질서를 거스르는 흐름을 막아라.]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고블린 뒤편으로 물이 허공에서 솟아났다. 그 뒤에서 마정석을 조작하던 마법병들의 당황한 표정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최대한 물의 벽을 유지하도록! 다음은 놈의 차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인 고참 정령사의 지시에 따라 흙의 정령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놈(Gnome)이여, 우리의 계약을 기억하여 우리를 노리는 손으로부터 보호하라.]

지면으로부터 깊숙한 곳에서 주문에 응하기라도 하듯 웅웅거리는 진동이 전해졌다. 그리곤 대번에 거대한 가시와도 같은 날카로운 바위가 솟구쳤다.

“꾸아악!”

“정령이다!”

운이 없는 고블린 몇 마리는 그대로 몸이 꿰어 허공에 솟구쳤다. 그나마 관통당하지 않은 놈들도 거세게 들이받은 가시에 저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보나 마나 중상이겠어. 내장이 멀쩡할 수가 없겠네. 마법으로 이 정도 위력을 내긴 쉽지 않은데. 정령술이 강하다는 이유를 알겠어.’

달리 주문 영창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빠른 소환은 마법에서도 가능하다. 다만 그런 마법은 그저 원소를 현실에 생성하는 게 고작이었고, 자유자재로 활용하기엔 제약이 컸다. 그에 비해 정령술은 전술적으로 유용하게 즉석에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쩌적!

물론 자연물로 만드는 장애물과 무기는 한계 역시 있었다. 고블린들은 픽트의 단단한 어금니를 박아넣은 방망이를 휘둘렀다.

“저, 저 미친놈들!”

“저걸 부수고 들어온다니 말이 되냐?”

픽트의 어금니는 무척 튼튼해서 사람의 가장 단단하다는 정강이뼈도 한입에 으스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저 꼴을 보니 강철 방패도 씹어 먹겠는데. 확실히 제압할 수 없다면 정령술로도 한계가 있겠어.’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정령술이 고블린과 마법병을 당황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령사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다. 선임 정령사들은 고블린의 악다구니 같은 돌진에 혼란에 빠진 정령사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수습했다.

“모두 다시 준비해! 놈들이 다가오는 것을 최대한 저지한다.”

“네, 넵!”

얼이 빠져 있던 정령사들은 조금 정신을 차린 듯 부리나케 계약한 정령들을 불러들였다. 주변부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나가 소모되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직까진 괜찮긴 한데 하급 정령이라도 소대 단위로 써대니까 장난이 아니구나.’

정령술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으려면 쉴 새 없이 연속으로 방해물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적에게 소수의 병력을 축차 소모하도록 강제해야겠지. 마법처럼 그 자체로 적을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는 걸 파악한 네마냐는 재빨리 지시를 바꾸었다.

“머릿수로 밀지 못하게 왼쪽부터 토벽을 연속으로 설치해! 품질은 상관없으니 최대한 많이 만들어!”

“왼쪽으로 닥치는 대로 토벽을 만들어!”

정령사들은 다시 무어라 나지막한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순식간에 파괴된 가시와 토벽 너머로 새로운 흙담 수십 개가 솟아올랐다.

“미친-!”

“끅!”

장애물을 제거하고 다시 달려들던 고블린은 물론, 정령사의 기운이 빠졌다고 판단해 돌입하던 마법 용병까지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훨씬 튼튼한 고블린이야 날아가도 일어날 순 있다. 하지만 비교적 허약한 인간인 용병 몇몇은 일격에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저걸 봐라! 우리 힘으로 고블린과 마법도 이겨낼 수 있다. 조금만 더 힘내!”

“흔들리지 말고 왼쪽엔 그대로 적을 최대한 차단해 줘요. 경비병! 우측 전면부에 방진!”

네마냐는 그때까지 정면에 대기시켰던 경비대에 방진을 펼치도록 지시했다. 소인족의 두 번째 장기인 도끼창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좋은 기회였다.

“방진 구축!”

장교의 지시 아래 백여 명의 병력은 장애물 덕에 우측 절반에 두텁게 진형을 구축했다. 번쩍거리는 금속 재질의 갑주는 소인족이 금속 제련으로도 능력이 탁월하단 걸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였다.

“난쟁이!”

“죽여!”

과거 소인족의 소수 무장 병력은 고블린에게도 무척이나 골칫거리였다고 했다. 신체적으로 우월하진 않아도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과 무지막지한 지구력까지. 공포감을 안겨 손쉽게 방어선을 농락했던 고블린에겐 최악의 적이었다. 겁먹지도 않고 이기진 못해도 시간은 최대한 버텨 내곤 했으니까. 당연히 소인족 병사의 무장을 보고 고블린들 눈이 뒤집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캬아악!”

“다 죽인다!”

앞뒤 가릴 것이 없어진 고블린들은 애써 뚫으려던 흙담을 버려 두고 훤히 열린 길목으로 달려갔다. 정령사들이 애써 열어 둔 그곳으로.

“멍청한 놈들, 누가 고블린 아니랄까 봐!”

다친 병사와 고블린들에게 회복 마법을 잠깐 걸어주느라 시선을 돌렸던 페넬로파의 신경 돋구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빠르게 파괴 마법이 작열하는 소리가 전해졌다.

“저쪽에서 장애물을 파괴하면서 전진할 겁니다. 돌파당하지 않게 시간을 벌어줘요.”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중급 흙 정령사가 확인하듯 물어왔다. 연이어 정령에게 험한 일을 시키느라 아직 지친 건 아니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잠깐이면 돼요, 그러니까…… 달려드는 고블린의 기세를 꺾을 정도까지만. 되겠어요?”

“휴…… 모처럼 능력의 극한을 써먹을 기회군요.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성정석을 과부하 시킨 덕분에 마나와 상처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주변에서 자연 마나가 고갈되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르긴 해도 충원되는 속도도 빨랐다.

‘이 정도면 대충 한동안은 고갈되진 않겠지.’

이미 네마냐에게 고블린이나 마법병도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적마석을 쓰는 건 좀 골칫거리지만 정 거슬리면 수정의 마나를 강제로 폭발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페넬로파…….”

걱정이라면 페넬로파였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 강함을 알 수가 없었다. 전생에선 거의 평생 자신에게 비밀로 해 왔고, 지금 순간까지도 자신을 숨겨 왔던 녀석이다.

‘아직 내가 나설 단계는 아니야. 고블린 정도는 정령사로도 충분히 막을 테고. 저 녀석이 나선다면 내가 막을 수밖에 없겠지.’

그 생각을 하며 쳐다보노라니 녀석도 이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고블린들이 무시무시한 둔기를 휘두르며 방진에 들이받았다.

“창을 들어!”

“으아아아!”

“키에엑!”

금속과 방망이가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와 터져 나오는 비명이 순간 귀를 가득 메웠다. 이런 끔찍한 소리는 네마냐에게도 오랜만이었다. 그간 완전무장한 병사들끼리 대오를 맞추어 충돌하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소음과 비명은 마치…… 내가 죽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군. 학살의 소리.’

이미 스크럼을 짜고 철저하게 준비된 방진에 보병을 무작정 좁은 구역으로 밀어 넣는 건 바보짓이다. 숫자를 이용한 압박은 무의미하다. 선임 정령사 하나가 실감이 잘 가지 않는지 어색한 웃음으로 보고했다.

“하……하하. 고블린들이 후퇴합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라고 봐야겠지.”

“네? 그게 무슨 말…….”

―펑!

―퍼펑!

흙먼지가 다시 자욱하게 전면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시야는 순식간에 흐려졌다. 연막을 노린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네마냐의 눈매가 찌푸려진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역겨운 기운.”

“……설마 적마석?”

“모두 정령을 거둬들이라고 지시해.”

빠른 명령을 내릴 때마다 네마냐의 말은 다급한 하대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뉘앙스에서 긴급함을 느낀 정령사들은 명령을 전달했다.

“모두-, 정령 연결을 해제해라!”

“지체없이 모두 해제해, 명령이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사람들이 정령과 연결 해제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흙먼지의 깊은 곳에선 붉은빛이 옅게 배어들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정령들은 돌아간 모양이다.

‘이럴 때 쓸 만한 기술이…… 있군. 마나 흡수.’

탐지 계열의 경험치 축적으로 일찍이 습득한 마나 흡수가 있었다. 목표로 설정한 대상 물체로부터 마나를 강제 흡수하는 기술이었다. 바누라트의 마정석 원석을 흡수하거나 마법 장치를 무력화시킨 게 이 때문이었다.

“지금부턴 내가 적의 공세를 직접 막습니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 만약 적의 다른 움직임이 있다면, 적절히 막아 줘요.”

“나가신다니 그런…….”

네마냐는 소피의 지휘봉을 곁에 있던 흙의 정령사에게 건넸다. 정령사가 어버버 대는 사이 관심을 끄고 정면만을 노려보았다.

[탐지. 목표, 적마정석.]

적마정석의 파장을 기억하며 그 빛과 파동을 최대한 찾으려 했다. 대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어야 그다음에 마나 흡수 아니면 과부하라도 걸 수 있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탐지-이동-흡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해볼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지.’

그때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온 시스템이 갑자기 개입했다. 그전과 같았으면 기꺼워하며 반갑게 봤겠지만, 이제는 ‘시스템’이란 게 대체 ‘시스템’이 맞긴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수상한 근원이 있는 것인지 찝찝했다.

‘그래도 안 볼 순 없는 노릇이고.’

최소한 이 수상쩍은 것이 자신을 대놓고 기만하거나 속인 적은 없었다. 만약 어딘가 문제 있는 힘이라고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안 쓰면 개꿀 아닌가? 네마냐는 그런 생각으로 애써 합리화하며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매크로 스킬]

[짧은 시간 내에 몇 개의 스킬을 반복해서 써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이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 숙련도에 따라 더 빠르고, 더 많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스킬 투자치 5 소모, 상식을 벗어나는 능력으로 인해 마법사로부터 강한 의심을 받게 됩니다. 1시간 연속으로 기능하며 행동력 1 소모.]

여전히 시스템 제공 스킬 기준으론 행동력이 5였기 때문에 1씩이나 소모하는 게 작은 건 아니다. 거기다 마법사들에게 의심을 더 산다는 것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독이 든 성배다 이거군. 그렇지만.’

역시 망설일 건 없었다. 리스크 대비 효과가 대충 문구만 읽어보더라도 탁월함 그 자체다. 정령사 이상으로 마법사가 취약한 부분이 즉각적인 대응 능력이다.

「근접전 능력을 사용하는 적이 다섯 걸음 이내로 진입하면 달아나야 한다. 가장 빠른 마법도 다섯 보 내에선 펼칠 수 없다. 특히 마법사의 심리가 흐트러져 대처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결정적이다.」

기초 마법서의 후반부, 「초보 마법사를 위한 실전 조언」이란 장에서 나온 고백 아닌 고백이었다. 연속 스킬 사용이란 건 그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대상인 건 확실하다. 검술을 제법 배우긴 했어도 어느 수준 이상의 검객을 만나게 되면 맥을 못 추릴 게 분명한 네마냐가 고민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선택.]

그리고 생각할 것도 없이, 탐지-바람(Stronomias)-흡수의 세 가지 마법을 조합했다. 주문과 계산식을 조합해 외워댈 필요가 없이 즉각 발현이 가능해졌다.

[마나 탐지 – 적마석 마나]

[스트로노미아스 Stronomias]

[마나 흡수]

시스템은 재빨리 ‘스킬과 마법의 조합이 완료되었다’라며 안내했다.

“가동.”

즉시 네마냐는 매크로를 작동시켰다. 즉시 가장 가까운 곳의 적마정석의 위치가 포착되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발아래로부터 돌풍이 일어나 네마냐를 들어 올렸다.

“뭐야 저건!”

“크릉, 인간이 이상한 마법을 쓴다.”

“멀뚱하게 보지 말고 검은 던전을 열어.”

“예? 검은 던전을요?”

“어서!”

페넬로파 녀석은 이때 이미 알아차린 모양이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적마정석으로도 상대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에 정령사 곁에서 마법 용병 바로 앞까지 날아간 네마냐는 슬쩍 그런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지금부턴 슬슬 내가 승기를 거두어가도록 하겠어. 쉽게 물러설 생각 말라고. 나한테 제대로 해명할 일이 한둘이 아닌 건 알지?”

이쪽을 긴장하며 쳐다보는 페넬로파의 머리 저 위쪽 뒤로 전서구가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성공이다, 우선은.’

그렇게 씨익 웃으며 네마냐는 주변 몇 군데의 적마석을 그대로 무력화시켰다. 손을 탁탁 털며 여유로운 시늉을 보였다. 검은 던전을 한 번에 좌우 양쪽 두 군데 열어버린 페넬로파의 굳은 얼굴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만만치 않구나, 역시……. 나도 그럼 제대로 상대해야겠지.”

그리곤 녀석은 손가락을 끄떡이며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크게 한숨을 쉬는 네마냐.

‘어떻게 마저 남은 시간을 벌어봐? 아니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고민 속에서 네마냐는 고블린과 용병들의 경계를 받으며 우뚝 섰다.

- 13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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