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어느덧 57년 1월이 시작된 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폭설이 그동안 두세 차례 내렸고 강한 바람이 북쪽으로부터 불어 왔다.
“어, 추워라. 올해부턴 아예 일 년에 삼 분의 일은 꼼짝없이 겨울 되겠는데?”
“너무 춥죠. 얼른 들어오세요.”
외풍이 너무 심해서 영주관에는 모든 출입문마다 중문을 달아놓았다. 네마냐가 손을 내밀어 외투를 맡아주자 아일라는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하며 중문을 닫았다.
“오, 문 하나 더 달았을 뿐인데 안쪽이 훨씬 따뜻한걸. 어디서 가져온 발상이래?”
“간단하지만 확실하죠. 실내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대표적인 장소가 문이니까요. 약간의 공간만 마련해 줘도 느껴지는 게 달라지죠.”
“그렇지. 다들 요즘엔 하도 마법이 어쨌느니 하느라 모든 원리를 다 그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니까. 사실 이런 간단한 물리적 원리만 알아도 요긴한데.”
무심코 지나치는 아일라의 일침에 네마냐도 슬쩍 움찔했다. 중문 설치에 이어 영주관에 마정석을 이용한 바닥 난방도 도입할 거란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거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나중에 좀 더 분위기 좋을 때 꺼내 봐야겠지.’
겨울 추위가 적당하면 사람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준다. 물론 그러려면 충분한 영양과 보온이 필수적이다. 슬슬 상식선을 넘어가려는 하야스단의 추위에 맞서려면 한국식 겨울나기 비법을 들여오는 편이 좋았다.
‘겨울에 싸우고 돈 아끼고 다 하더래도 따뜻하게 사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지. 전생에서도 그놈의 난방이 안 돼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니까.’
“요즘 영주관도 난방은 아마포로 하는 중이야? 장작을 쓰면 메케한 공기가 있기 마련인데 멀쩡하네.”
“기름 절인 아마포는 방마다 두는 화로에서나 써요. 펑펑 써댈 수는 없으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이렇게 따뜻하게 유지하긴 어려울 텐데?”
네마냐는 영주관 본청에 위치한 화로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2층 절반의 영역까지 모두 부수고 탁 트인 복층 구조로 만든 1층 영역. 그곳 바닥에 큰 바닥식 화로를 만들어 둔 것.
“석탄으로 난방하는 줄 알았는데, 숯을 쓰고 있는 건가? 그런데 숯은 아마보다도 훨씬 비쌀 텐데.”
“숯은 공기에 온기만 유지하는 용도예요. 당장은 석탄으로 외부식 난방을 돌리려고 하고 있죠.”
석탄은 겨울이 다가온 영지에서 집중적으로 캐기 시작한 광물이었다. 영지 재정 및 전략 자원으로 필요한 광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력이 석탄을 지금도 캐는 중이었다. 물론 과도기적이지만 석탄식 난방 자체도 저렴한 것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석탄은 저렴하다고 해도 석탄 난방 시설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섣불리 집 안에 시설을 설치하면 유해 기체에 중독될 수도 있고요.”
“맞아. 그래서 석탄을 많이 캐긴 하는데 생각보단 영지민들에게 효과가 크지 않았지.”
“그래서 우선은 유휴 인력을 동원해서 가정별로 하나씩 작은 방을 만들까 생각 중이에요. 외부에서 석탄 난방을 할 수 있는 독방으로 말이죠.”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당장은 아마포만으로도 작은 가정은 겨울 동안 온기를 잃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온다고 하지 않던가. 안 그럴 것 같으면 네마냐도 진짜 다 뒤집어엎어 버리고 말 거다.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네네. 그렇죠. 말이 길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손이라고 녹이시죠.”
“그럴까. 하도 기술자한테 흥미로운 얘길 해서 현관에 서 있는 줄도 몰랐네.”
능청맞은 아일라의 답을 들으며 두 사람은 안쪽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로비 안쪽 난로 근처에 몇 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영주관 고용인들과 집사들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늘어놓거나 가져오기 바빴다.
“오늘은 소위 그, 뭐라고 하더라.”
“박람회요, 아일라.”
“아, 그래. 뭐 그런 복잡하게 일을 벌이는지는 모르겠다만. 다 뭔가 뜻이 있어서겠지?”
“물론이죠.”
박람회 또는 전시회란 용어는 아직 하야스단 세상에 없었다. 보여 줄 만한 산업이 발전한 시대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억지로 ‘남들에게 노출하다’라는 동사를 명사로 만들고 그 앞에 ‘대놓고’라는 형용사까지 붙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박람회란 게 그러니까, 남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 준다는 뜻이잖아요? 이번 우리의 행사는 우리 영지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성격인 거죠.”
“영지민들에게 보여 준다. 이 정도까지 나왔다고 약 올리는 행사야 물론 아닐 테고.”
“불안감을 마저 가라앉히고 자존감을 주기 위한, 뭐랄까 버프 마법 같은 거라고 보면 되죠.”
강대국의 군대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한다는 전략 마법.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게 아군 능력과 사기를 높여주는 버프계 마법이다.
“버프 마법 자체는 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 마법이지만 우린 얼마든 다른 것으로도 그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박람회가 바로 그거다, 이 말이군.”
“적어도 영민들은 자신들의 영지가 가스파리얀 때와는 다르다는 걸 알 필요가 있죠. 아마도 오늘은 새 체제의 결과를 보여 주고 앞으로의 전쟁을 알리는 새 장소가 될 겁니다.”
전쟁은 누군가에 따르면 사람 숫자에 달려 있다. 좀 더 유명한 누군가는 돈이야말로 전쟁의 모든 것이라고 했었다. 네마냐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병사 숫자고 돈이고, 결국은 그걸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한 거니까요.”
두 사람이 실내 안쪽으로 들어와 걸음을 옮겼다. 2층에서 다른 동료들도 속속들이 내려왔다.
“또 네마냐 녀석이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군. 난 돌아가야겠어.”
이미 아일라가 오기 직전까지 신이 난 네마냐의 박람회 썰을 듣던 미하일. 지친 나머지 이젠 영주 얼굴만 보고도 탈출할 욕구가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혼자 고통받을 생각이 없는 하라드가 가볍게 제지했다.
“명색이 재무관님이 영주님의 생각을 더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 게다가 오늘 행사에도 돈이 한두 푼 든 게 아닐 텐데?”
“윽, 녀석 아픈 데를…….”
자신이 직접 물건 관리까지 감독할 필요성은 컸다. 그냥 놔뒀다간 네마냐가 슬쩍 필요한 사람에게 하나씩 나눠 줄지도 몰랐다. 그런 전례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영주님, 주민 대표들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홀 옆의 작은 방에 나누어 머물게 했습니다.”
집사 스프란체가 다가오더니 내놓은 답이었다.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는 다 되었느냐고 되물었다. 물론 며칠 전부터 이미 영지의 이름을 걸고 준비하던 행사였으니 돌아오는 답은 긍정적이다.
“이제 손님들에게 모두 나오시라고 전해 줘. 새 시대, 새 체제의 결과물을 볼 때가 됐지.”
초청받은 주민 대표와 근처 이웃 영지의 방문단은 홀 중앙에 배치된 부스를 둘러보았다. 종류별로 세공된 마정석과 그것을 활용한 기계 장치들이 가장 관심을 받았다. 물론 아일라가 동네 대장장이들을 굴려 만들어낸 아콜타데리움 합금 장식품들도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가벼운데 놀랍도록 탄탄하고 어디 하나 불균일한 것도 없군. 우리 영지는 이런 것 못 만드나?”
“낫도 툭하면 부러뜨려 먹는 우리 동네에서? 일단 철 수급도 제대로 안 된단 걸 알아야지.”
“거 참.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철광석도 잘 안 주는 상단 쪽 거래는 끊고 바가반드에나 거래를 부탁해 볼까.”
타위비크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눈인사를 나눈 네마냐는 조금 서먹하게 주변과 분리되어 있는 오체나시움 대표단을 찾아갔다.
“와주어서 반갑습니다. 나코르잔 대표시죠?”
“정말 반갑습니다. 그나마 영주님 아니면 얘기를 나눌 사람도 딱히 없던 터라…….”
“아아, 그렇죠.”
주변을 대충 살펴보면 주민들이나 미하일, 하라드 등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네마냐와 정보대 장교 바흐람 등이 나코르잔 고블린 부족은 동맹임을 얘기했으니까. 그렇지만 역시 어색함은 쉽게 극복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점차 익숙해질 겁니다. 사실 인간의 영역에 고블린 대표단이 방문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발전이니까요. 혹시 무례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저들도 다들 친절하게 맞아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민회 의장님과 총사령관께서도 안부의 인사와 편지를 전하셨습니다.”
“따로 시간을 낼 테니 그때 독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좋군요, 허허.”
고블린, 아니 이젠 저들의 말대로라면 「오체시」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하지만 이 경우, 네마냐에겐 보다 좋은 생각이 있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설정을 현대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던 서준의 기억력 덕분이다.
‘그 종족 이름도 괜찮은지는 한번 몇 가지 언어 사전을 찾아봐야겠다.’
오체시족 대표와 네마냐는 우선은 앞으로의 일정을 간단하게 얘기했다. 그리곤 한쪽 팔로 서로의 어깨를 맞잡고 다정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이만…….”
“저, 혹시 귀빈들께서 요번 고블린 부족을 막아 내셨다는 그 나코르잔의……?”
“맞습니다만.”
“오오!”
네마냐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관심이 있다는 듯 주변 영지의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일부러 네마냐가 이미 인사를 나눈 한참 뒤에 주변의 시선을 끌며 다가온 이유였다. 오체시 사절과 인사를 나누면, 당면한 고블린 침공과 관련해서라도 이목을 끌 수밖에 없을 터.
“원래 낯선 것에 익숙하려면 그럴 법한 미끼를 던져주는 법이지. 이 경우엔 내 존재감이려나.”
“그럼 저 손님들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다과상을 가져다드려야겠군요. 이미 그렇게 조처했습니다만.”
“좋은 생각이야.”
눈치가 좋은 집사를 두길 잘했다는 소감이 다시 드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도 다른 곳에서 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어허, 그러다 마탑이나 제국 감찰국 같은 데 걸리면 큰일 날지도 모르는데. 안보 물자의 임의거래는 금지되어 있다는 걸 모르나?”
“알게 뭐람. 그놈의 보호 조약만 믿고 있다가 벌써 몇 개의 영지랑 수비대가 몰살당했는데.”
바로 국경을 마주한 제국보호령 마구스타나 수비대에서 온 관계자들이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정체를 확인한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 내부를 목적으로 열긴 했지만 충분히 과시도 되겠지. 아마도…… 제국 대표단도 와 있긴 할 거야. 바가반드와 바난드 없이는 제국만으로도 고블린을 상대하기 힘들다는 걸 보여 줄 좋은 기회야.’
한편 주민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먹여 살리고 지킬 새로운 수단을 둘러보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보호할 결계 장치, 각 가정으로 온기를 보낼 크리스털 장치 등에서 화려한 빛이 솟고 있었다.
“와, 그러니까 이게 다 새 영주님께서 그간 하신 결과물이란 거지?”
“당신이 부지런히 나가서 캐 온 광석이기도 하잖아.”
“아, 이제 저 보온 장치도 보급이 되는 건가? 저게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거지?”
“네. 이쪽을 보시죠. 도시 모형을 보면 도심 중앙에 부유 수정이 설치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기에 영민들로부터 거둔 마나의 핵이…….”
기술자들과 영지 마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마법사들이 오늘은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굳이 시제품과 시연회 수준을 넘어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간 자신들이 내린 결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실제 물증으로 보여 주는 게 효과는 제일 좋겠지.’
네마냐는 어느 정도 사람들이 각종 장식품, 무구에서 시작해 점차 마나 영지 시스템 자체로 관심이 옮겨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영주의 시선은 역시나 자신을 바라보던 하라드와 마주쳤다.
“그럼 영주님, 시연식을 시작할까요?”
“그럽시다.”
하라드는 고개를 숙여 보이곤 수하 마나 활용사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미리 입을 맞춘 대로 집사는 하인들에게 모든 이중 창문을 틀어막게 했다.
―펑!
“뭐야, 무슨 소리야?”
“꺄악!”
모든 빛을 꺼트린 상황에서 터진 폭발음. 남녀를 막론하고 갑작스런 폭발음에 손님들은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네마냐는 당황하지 않고 진정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발동되는 스킬.
[설득 2단계.]
일반적인 사람 집단을 대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2단계 설득 스킬을 발동했다. 기존에 네마냐가 써왔던 1단계 스킬은 협상의 직접 당사자에게만 효력이 미쳤다. 하지만 2단계부터는 협상과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름 히든 스킬이라더니, 대체 나 말고 누가 또 이 시스템을 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구시렁대긴 해도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쓰는 방법을 찾아내는 네마냐였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군중을 상대로는 너무도 매력적인 기능이었다.
―파팟!
영주관의 높은 2층 천장에 공들여 매달아 놓은 거대 수정으로부터 마침내 옅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형광등에 전기가 처음 연결되었을 때의 그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 이건 안정기가 그리 좋지 않았던 90년대 살던 집의 얘기겠지만.
“영주님, 축전 수정에 에너지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영지 중앙의 축전기에서 마나가 전달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음, 그냥 미리 채워 놓을 걸 그랬나?”
“아니요. 화려한 빛이 어두운 회랑을 조금씩 채워 가는 것부터 보여 주는 게 집중시키기엔 최고죠.”
“불꽃놀이 같은 이치군.”
씩 웃은 하라드는 어느덧 축전 수정에 마나 에너지가 충분히 쌓였다는 걸 빛으로 확인했다. 그리곤 손가락을 튕기며 신호를 보냈다.
―쏴아!
일전, 처음으로 바난드 길드에서 마나를 개통했을 때의 소리가 들렸다. 복잡한 결계 장치로 흘러간 마나는 곧이어 반투명한 막을 주변에 둘러쳤다.
“와!”
“이게 예전 가스파리얀을 내쫓을 때 썼던 그 결계구나.”
각종 마정석으로 된 조명 장치나 보온 시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영지 곳곳에서 비상 경계령과 동원령이 떨어지는 등의 혼란한 상황도 함께였다. 네마냐는 손뼉을 가볍게 치며 앞으로 나섰다.
“잘들 보고 계십니까?”
아직 평화로운 시대를 과시라도 하듯, 네마냐와 초대받은 손님들은 모두 제각기 물과 포도주잔을 든 채 참석하고 있었다. 이 순간, 바가반드 영주 관저만큼은 평화로운 하야스단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영주의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의 휘파람과 박수로 돌아왔다.
―휘익!
―짝짝짝!
“감사합니다. 오늘 바가반드에서 여러분께서 보신 이 환상적인 모습은 결코 환상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지에 적용하거나 실체화되는 단계를 밟을 것들입니다.”
그 사이에 지팡이를 가져온 하라드가 가볍게 화살 형태의 불 마법을 결계로 쏘았다. 이전의 결계에선 그저 반발력을 이용해 튕겨냈을 테지만, 이젠 충격조차 없이 그대로 흡수했다. 사람들의 탄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반년 동안 많은 연구자와 기술진이 고생 끝에 희망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임박한 전쟁에서 우리 영지는 물론, 하야스단인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말입니다.”
군침이 절로 삼켜졌다. 마나가 맥을 타고 각 장치로 전달되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주민 대표와 귀빈을 막론하고 모두 네마냐를 주목하고 있었다.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느끼면서 네마냐는 조심스레 종이를 꺼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암피에르 상호 방위 조약이 발동될 겁니다, 여러분. 코앞에 육박한 전쟁에 대비하십시오. 하지만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은 짧지만 우리는 충분히 채비를 갖추었으니!”
마지막 문장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건 사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굳은 결의를 다지는 차원이기도 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멋대로인 운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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