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영주께서 오셨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알마스트 님.”
나샤와의 당당한 기사단장이 있었을 때는 모두가 자신을 사모님 혹은 영부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안온했던 시간은 흘러간 지 오래. 이젠 모두가 자신의 이름만을 존칭에 붙여 부를 뿐이었다.
“아직 바슈니크 산맥의 봉우리에 눈이 녹지 않았을 때 만났었죠.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젠 누가 봐도 당당한 영주가 되셨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최근 들어본 칭찬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드는 찬사였습니다.”
네마냐가 알마스트를 만나러 찾아온 곳은 응접실이 아니었다. 알마스트는 지금 피난민촌 출신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 중 하나에 들어와 있었다.
―달그락.
현명하게 늙는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 주는 듯한 노인. 알마스트는 최종 생산되어 마정석 공장으로 운송될 각종 기계 장치를 만져 보았다.
“참 세련되고도 정교하군! 내가 처음 바가반드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런 건 상상조차 못 했었는데.”
“여러모로 우수한 장인들을 모으느라 고생을 좀 했습니다. 거기다 가공 수준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아일라 씨도 있었죠.”
“시의적절하게 경쟁에서 밀리던 상단과 유리한 지원까지 받아 내기까지 하고.”
웃으면서 듣곤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조심스레, 네마냐는 본론으로 들어갈 각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응접실에서 대접해 드리려 했는데 공장에 계실 줄은…….”
“물론 응접실에서 이야기한다면 훨씬 깊은 이야기도 꺼낼 수 있겠죠.”
잠시 옷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알마스트는 부채를 꺼내어 몇 번 흔들었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정착한 백성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옛 피난민촌과 바가반드의 관계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돈독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그래서, 보시고 나니 생각대로였습니까.”
“기대 이상이죠. 이걸 영주님께 전해 드리렴.”
하인 하나가 자그마한 편지를 받아들더니 집사 스프란체에게 건네주었다. 네마냐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아보며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당장의 관심은 내용보단 편지의 재질에 쏠려 있었다.
“이건, 파피루스보다도 부들부들한 게 느낌이 괜찮군요.”
종이. 현대식 펄프지로 만든 종이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다. 그러나 종이가 있고 없느냐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나샤와에 제지술이 있었던 건가? 이거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가능한데, 아무도 그걸 모르고 썩히는 중이었군.’
이곳에 처음 오고 나서 종이가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몇 번이고 찾아봤던 네마냐였다. 하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마땅한 기술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네마냐는 회귀 이후에도 미련을 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답을 얻은 셈이라. 묘하군.’
아니나 다를까 종이 관련 퀘스트도 생겨났다.
[제지술의 도래]
[나샤와의 사람들은 어째선지 수입산 파피루스나 양피지가 아닌 색다른 필기 수단이 있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영지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정석이 대단하긴 하지만 산업 하나에만 기댈 수는 없으니까요.]
[제지술에 관해 알마스트에게 물어보자.]
[보상: 알 수 없는 효과에 의한 연쇄 이벤트. 또 새로운 전용 효과가 영지에 두루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완전히 두루뭉술한데. 만약 어중간한 주인공이었으면 미심쩍어서 대충 미뤄 뒀을지도.’
여기서 40년 동안 수입산 파피루스나 양피지만을 써 왔다. 솔직히, 익숙해지면 나쁜 필기 수단은 아니다. 물론 그건 종이가 없을 때의, 종이를 모를 때의 이야기다.
“오, 알마스트 님. 혹시 특수 파피루스 종이입니까?”
우선은 짐짓 모른 척 노인에게 공손한 질문을 던졌다. 빙긋이 웃는 알마스트의 표정엔 이전엔 달리 볼 수 없었던 여유로움과…… 모종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영주님. 그것은 저희 영지에서 오래전에 동방에서 가져온 면 종이라는 겁니다.”
“면 종이라고요? 하긴 처음 만져 봤을 땐 살짝 옷감의 질감도 느끼긴 했는데…….”
영주의 이야기에 알마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마저 이어 나갔다.
“필기하기에 썩 좋은 질감은 아니지요? 그렇긴 한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답니다.”
“그렇습니까?”
“한번 추측해 보시겠어요?”
어디 한번 추리력이라도 보겠다는 것처럼 귀부인은 부채로 눈가 아래를 가렸다. 하지만 눈꼬리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묘한 웃음을 짓는 건 확실했다.
“시험이시군요. 시험이라면 학을 떼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호호, 천천히 답을 해 주어도 된답니다.”
네마냐가 어깨를 으쓱하자, 곧바로 자신에게만 들리는 딸랑이는 소리가 전해졌다. 즉석 퀘스트가 나왔다는 소리.
[시험지]
[제지술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시험. 알마스트는 당신이 정말 영지를 일으킬 만한 안목을 가졌는지 알아보길 원합니다. 통과하게 되면 제지술에 대한 비밀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영지의 특산품으로 종이가 추가되며, 제지법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종이를 통해 풍부한 정보가 축적될수록 사용자가 내린 결정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능력치 보정 판단 +5.]
‘5씩이나 높여 준다고?’
이해력과 판단력의 두 가지 척도는 체력이나 민첩과 같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고민을 해야 할 경우,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보조해 준다.
‘능력이 15가 넘어가게 되면 분명 뭔가 선물이 있었지.’
전 능력 중 현재 네마냐는 이해가 18로, 유일하게 15가 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젠 「통찰」이란 패시브 스킬이 개방되어 있었다. 높은 정확성으로 네마냐 자신이 가진 현대와 전생의 지식에 비추어 미지의 사물, 사건을 해석하게 도와주는 능력이었다.
‘얻어서 나쁠 건 없겠지.’
무엇보다도 이미 「통찰」 덕분에 네마냐는 알마스트의 물음에 답할 준비도 끝난 상태였다.
“그럼 지금 답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벌써요?”
단호한 대답에 조금 당황한 알마스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네마냐는 종이의 장점이랄 것을 제시했다.
“첫째는 값이 저렴하다는 겁니다.”
“어째서죠? 면화가 마냥 저렴하진 않을 텐데.”
“굳이 면화가 필요하진 않죠. 섬유가 필요한 조건이라면 하야스단에서도 충분히 재배 가능한 아마가 있잖습니까.”
아마는 기후에 잘 적응하면서 동시에 섬유와 기름을 모두 제공한다. 덕분에 추위가 날로 심해지는 하야스단에서 생필품과 상품작물의 자리를 겸하고 있었다. 알마스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군요. 또 있나요?”
“물론입니다. 두 번째로 꼽을 만한 장점은 합리적인 생산성입니다.”
“생산성이라.”
알마스트는 관심이 동했는지 부채를 접고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물론 합리성이란 개념은 하야스단에선 식자층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고급 논리였다. 현대인은 논외로 해야겠지만.
“네. 양피지는 양 한 마리를 죽여야 대형 양피지 겨우 두 장이 나옵니다. 겨울엔 그나마 생산도 안 되어 난리죠. 반면 파피루스는 수급은 괜찮지만, 수입하는 데 거리가 너무 멀고 보관비가 많이 듭니다.”
그러니까 고급 재료인 양피지는 생산 능력도 효율도 떨어진다. 파피루스는 그 점은 보완된다지만 머나먼 남쪽 바다 건너에서 수입되는 게 문제였다. 보관비와 운송비가 원가보다 몇 배로 비싸게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질이 떨어진다고 해도 기본만 받쳐 준다면 섬유 종이는 좋은 대안이죠.”
“놀랍군요. 예전에 협상하러 불쑥 오셨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이 피난민촌의 우두머리는 애초의 목적으로 돌아갔다.
“저희는 섬유를 수입해서 써 왔죠. 이번에 아마를 피치 못해 써 보니 굳이 수입할 필요는 없겠더군요. 훌륭히 답해 주셨으니 그 식견을 믿고 제지법을 공유해 드리죠.”
“고맙습니다. 또 의지하는군요.”
“서로 의지하는 건 좋은 일이죠. 아! 그러고 보니 정작 제가 드릴 말씀은 안 드렸군요. 그 초청장을 뜯어 보시죠.”
“초청장이요?”
네마냐는 손에 들고 있던 종잇장을 내려보았다. 편지봉투의 봉인 안에 어떤 초청의 내용을 담았을까. 미리 준비한 집사로부터 편지 칼을 받아들고 봉인을 조심히 뜯어냈다.
“나샤와에서 가져온 봉인을 쓸 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하.”
“이건…….”
서찰을 뜯어 살펴보니 그 내용은 간단했다.
[나샤와 피난민들의 새 고향, 이리네폴리스의 창건 기념 행사가 열립니다. 일자는 1월 8일입니다. 영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연하장 겸 초청장을 보냅니다.]
[나샤와 주민 일동.]
“하하. 이런 뜻이셨군요. 살 만한 터전을 닦으시느라 그간 바쁘셨던 거군요. 지원이 필요하시면 얼른 말씀하시지.”
“미하일 재무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재무관께서 비밀 선물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얘길 하더군요. 저도 동의했습니다.”
“아, 그래서…….”
어째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나서는 자신을 미하일이 흐뭇하게 보더라니. 이런 걸 꾸미고 있었군.
“알겠습니다. 8일이로군요. 다행히 고블린이 침공하기까진 시간을 좀 벌어 둔 상태니 참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때 제지 공장과 관련된 사업 확장도 함께 얘기해 봅시다. 바가반드 영지를 위해서나 우리 주민을 위해서도 일은 크게 벌이는 게 좋겠죠.”
“물론입니다. 내친김에 역제안으로 보두앵 지부장도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오,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두 사람은 공장의 노동자들이 저녁을 먹으러 퇴근할 때까지 환담을 계속했다. 영지의 장래 계획과 두 사람이 나누었던 언젠가의 ‘약속’에 대해서도.
* * *
모처럼 고요했던 아나무이라의 특사 집무실의 문이 벌컥 젖혔다. 모처럼 자작나무로 아름답게 문양을 새겨 놓았다고 아끼던 문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희랑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어떻게 이런……!”
“뭐?”
황제와 영상통화를 마친 뒤 이제 막 원로원에 보낼 공식 보고서를 쓰고 있던 참. 니콜라스 특사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잠시 총기를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네는 누군가?”
“저를 그새 잊으셨습니까. 니키타스 아닙니까. 황제께서 동부군 작전사령관에 지명하신.”
“……아, 그래. 그 꼴통. 아주 몹쓸 놈이지.”
상황을 파악한 니콜라스는 꽤나 불쾌해진 표정으로 보고서를 덮었다. 깃펜을 잉크병에 담그며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던 어조에서 단숨에 무미건조한 것으로 옮겨갔다.
“무슨 일이지, 니키. 그대의 업무는 어디까지나 군사에만 제한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러나 모든 것, 심지어 정치까지도 군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특사 어른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그렇지. 거기 앉게.”
니콜라스는 차디찬 웃풍에 제멋대로 저리는 관절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난로 위에 올려 둔 주전자에서 찻물을 내리는 사이, 니키타스 장군은 모피로 된 외투를 벗었다.
“어떤가, 하야스단은. 많이 춥던가?”
“이 오지 놈들의 고향은 정말 살을 에는군요. 난로가 있어 봤자 쓸모가 없을 정도니.”
“하하. 추워야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지 않나. 이참에 좀 시원하게 사는 습관을 들여보게.”
간단한 농담 두어 마디를 던지고 니콜라스는 니키타스가 앉은 탁상으로 다가와 앉았다.
“감사합니다.”
찻물을 호로록 들이켜는 장군을 보며 늙은 환관은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불만인지는 안 봐도 알겠어. 바가반드 쪽에 산업기지 구축을 허락하겠다는 걸 문제 삼으려는 게지?”
“앗뜨……. 그건 마신 뒤에 얘길 하시지.”
하지만 뜨거운 물에 혀를 데는 한이 있어도 할 말은 하겠다는 모양이다. 군부가 제법 많이 성장했구나. 감개무량함과 분노가 동시에 피어오르는 니콜라스. 하지만 자신은 사소한 감정은 위장 웃음 뒤에 감추는 데 익숙한 환관이다. 프로의 표정을 한 채로 전권특사는 시건방진 항의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제국의 대외정책은 일관됐습니다. 하야크의 반발을 사는 것은 피하지만 결국엔 제국의 지휘권 아래 합병하도록 한다, 그것 말입니다.”
“그랬지. 하지만 모든 정책엔 때가 있고 변형할 기회가 온다면 바꾸는 것이지.”
“고블린이 이미 우리의 전초 기지 두 곳을 휩쓸었습니다. 암피에르 조약군을 예정대로 우리 휘하에 두어 어서 진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가반드에 힘을 싣다니요?”
동방의 군부에선 역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알메니아, 그러니까 현지어로 하야스단의 주민들은 매번 제국의 개입에 반대해 왔다. 이미 이곳을 제국의 영토라 생각하는 군부는 그럴수록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건 황제께서 윤허하신 일이야. 원로원에서도 동의를 구했고. 군부에서 불만이 있는 건 아네만…….”
“우리 군부가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나라 안의 일은 원로원과 황제께서 잘 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경의 군사 업무는 전적으로 우리 군부의 관점이 관철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좋게 타이르려던 니콜라스의 눈썹 꼬투리가 살짝 틀어졌다. 하지만 이미 추위에 약주를 반 잔 정도 걸친 니키타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동방군 6만은 우리 군장성의 지휘 아래 있고 그들과 협력해야만 국가의 안보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반드시 양해를 얻어야만 합니다.”
“…….”
과연 황제가 군부의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소리를 갑자기 왜 하나 싶었다. 니콜라스는 니키타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황제께서 내게 직접 여길 맡기신 게 우연이나 단순한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군.’
하야크의 장기적인 병합. 지난 십 년간 추진했지만 쉽게 이룰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계속된 전쟁으로 힘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군부의 성장까지. 황제는 마침내 성장하는 바가반드와 바난드 내전의 추이를 듣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군부와 속국의 영주를 상호 견제하게 한다니. 깔끔한 모양새는 아니로군. 그래서, 폐하께서 나를…….’
나지막한 한숨이 나왔다. 지금까진 그저 늘그막에 바깥 세계라도 보고 오는 차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국 내부의 권력이 얽힌 갈등. 그리고 그걸 톱니바퀴처럼 알메니아의 제후와 고블린 전쟁에까지 연결하려는 계획이 훤히 드러난 것이다.
“하아.”
“어떻습니까. 군부에서도 정부의 고민에 대해선 나름 양해할 테니…….”
“차분하게 말하지. 군의 인사권과 통수권은 폐하께서부터 나온다네. 이의가 있다면 공문서로 정부에 보내서 항의하도록.”
니콜라스는 조용히, 그러나 전쟁이라도 선포하듯 단호하게 끊어냈다.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군이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당신의 짐을 지고 앞에 나서라시면 나서야겠지요. 이것도 인생 마지막 순간의 종이 바칠 만한 충성이겠지.’
니콜라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어라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리곤 한 손으로 전권대사에게 주어진 상징인 지휘봉을 한껏 움켜잡았다.
―쾅!
“이것이 폐하의 뜻이다. 더는 바가반드에 대해 내려진 제국의 결정을 왈가왈부하지 않도록.”
어떤 이야기로 치닫든 세계의 가장 거대하고 엉덩이 무겁다는 주사위가 던져졌다. 이제부턴 온갖 폭풍과 파란이 몰려들겠지.
‘되는대로 되겠지.’
어쩌면 하야스단의 운명을 뒤바꿀지도 모를 이 결정. 사실 아주 약간의 귀찮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참 허무할 것이다. 비록 정확한 진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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