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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08화 (108/200)

108화

“여기가 바로 우리 도시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텃밭입니다. 도시 내부 곳곳의 빈공간을 모조리 색출해서 만들고 있죠.”

다르빌의 구르간 시장이 엘레나와 네마냐 일행을 안내한 곳은 도심의 어느 작은 공터. 밀집한 주택가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햇살이 비치는 곳이었다.

“저건…… 순무?”

일행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네마냐가 한창 주민들이 살피고 있는 작물을 알아차렸다. 바로 순무였다.

“오, 저게 순무였구나.”

“순무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기사만 되어도 잘 드시지 않는 식품일 텐데.”

네마냐가 망설임도 없이 순무임을 알아내자 구르간이 좀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하하……. 저도 출발은 가난한 기사 집안이었거든요. 덕분에 순무를 좀 길러 봤습니다. 품질이야 하찮았지만요.”

순무의 푸릇한 이파리만 보아도 감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회귀하기 전 생애의 후반을 대표하는 게 있다면 단연 순무였다.

‘그때도 정말 악착같이 순무에 매달렸지. 척박한 날씨와 토양에 키울 만한 식품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정말 악몽과도 같은 40년이었어.’

이렇게 돌아와서 다시 접하게 된 순무는 푸르딩딩한 이파리에 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막 한겨울이 시작된 쯤 아니었던가?

“지금 한겨울인데, 순무가 생명력이 강하긴 하지만 얼어 죽지는 않을까요?”

“하하, 역시 그 부분을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구르간은 텃밭 주변을 두르고 있는 천막을 걷어 올렸다.

―스윽.

천막을 걷어 올린 시장은 어떠냐는 듯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주위 기둥마다 하나씩 빛나는 수정이 박혀 있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아, 마정석?”

엘레나가 천막 안에서 쏟아지는 온기와 빛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광정석이로군.”

네마냐는 따스한 노란빛에 괜히 더 안도감을 느꼈다. 적마정석은 사람의 마음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 외의 마정석은 대부분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마정석 정보]

[주홍석: 강한 파장과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제국 마법원 규정과 암피에르 조약에 의거해, 오직 통신구와 영상구로만 쓸 수 있음.]

[황석, 황정석: 노란 파장을 내며, 주홍석보다 마나 보유량은 그럼에도 상당하다. 불을 밝히고 열을 전달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마법학 기초를 배우면서 자주 찾아보는 정보는 이렇게 정보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눈만 감아도 쉽게 되짚을 수 있었다.

“설마하니 마정석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고안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하군요.”

네마냐의 지시로 바가반드에서도 식물을 기르는 여러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문제는 네마냐 본인은 현대에서 흔하게 보던 식물원 구조, 즉 유리온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가반드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참관한 우리 주민이 꽤 감흥을 받은 덕분입니다.”

“네, 우리도 연구는 진작 시작했죠. 하지만 꾸준한 보온, 보습을 위해 유리로 통짜 건물을 짠다는 게 쉬운 게 아니어서…… 차라리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좋았겠네요.”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엉성한 초기작인 만큼 한계가 훨씬 많은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분석]

네마냐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위화감과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정리했다. [분석]은 이해 15, 판단 10이 넘을 때 개방된 스킬이었다. 현재 사안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도와준다고 할까. 금세 분석한 결과물이 나왔다.

[1. 값비싼 마정석으로 가장 저렴한 식물인 순무 약간만을 기르는 것은 경제적 효용이 없다.]

[2. 천막을 천장과 공간에 두르는 것으론 보온, 보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3. 마정석도 비싸고, 그 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 공조 장치를 갖추는 건 더 비싸다.]

그 외에도 수많은 부정적인 문제점이 잇따라 목록을 이루고 있었다. 어째서 바가반드의 연구소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는지 알 만했다. 구르간 시장은 네마냐의 그런 생각은 알 턱이 없지만 낯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보다 보면 아시겠지만, 저런 값비싼 장치를 고작 손바닥만 한 텃밭에 하나씩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비상시가 아니라면 섣불리 쓸 수 없는 방법일 겁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어느 때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식량을 모아야 하니 예외겠지만요.”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네마냐는 지긋이 분석 결과를 닫아 버렸다. 골목길 아래 피어나는 잡초도 뽑아다 식량으로 써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쁜 방법은 아니다.

“좋은 흐름입니다. 우선은 이대로만 진행하면 될 겁니다. 돈 걱정은 마세요. 성국과 저희 영지 공동자금도 넉넉한 데다, 특별 방위 성금 모집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걱정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성녀께서도 이미 다 양해하신 문제니까요.”

“감사합니다.”

엘레나와 네마냐는 그 이후에도 마저 시내 농장과 텃밭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이어진 도시 시찰 및 방위 상태 점검이 끝난 건 오후 햇볕이 한창 추위를 물리고 난 뒤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급변이 가능하게 했던 주인공의 의견을 묻지 않았는데. 감상이 어때, 보두앵 지부장?”

아침 추위 때문에 둘렀던 외투를 벗은 네마냐는 보두앵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녀석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티를 냈다.

“흠, 제법 노력해서 궁리한 냄새가 나더군. 저렇게 살뜰하게 최대한 활용하는 걸 보면 그래도 물건 판 당사자로선 흐뭇해지지.”

“사실 그것보다 궁금한 건 따로 있지 않아?”

네마냐가 아픈 곳을 찔렀다. 애써 헛기침을 삼킨 끝에 보두앵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본인도 잘 알고 있었군. 그 공조기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거야? 게다가 3가 공조기던데. 보통 쉽게 구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공조기? 마나 공조 장치 이야기야? 설마 바가반드에서 그걸 만들어 낸 거야?”

엘레나도 놀라움과 궁금함이 반쯤 섞인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멈칫한 보두앵이 말투를 공손히 바꾸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정석 자체의 마나는 일시 소진되면 아주 조금씩 자연적으로 충전됩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마나로는 충전이 안 되죠. 음, 정확하겐 네마냐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래서 네마냐 경이 특히 주목을 받았던 거겠지만요. 그런데 네마냐, 무엇 때문에 공조기를 주목한 거지? 필요 없잖아?”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네마냐 자신에게 그런 체질이 있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다. 특히 속성을 가리지 않는 친화성 덕분에 그리엘크니 보르크니 하는 산만 한 고블린 등쌀도 버텨 냈다.

“나만 잘 쓰고 버티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걸 혼자만 할 수는 없어. 싸우면 싸울수록 그런 생각이 드네.”

“그러니까 이 공조 장치가 전쟁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이 말인 거군.”

“재사용이 가능한 마정석이란 건 엄청난 도움이 되지. 전쟁에서도 마법 사용을 훨씬 오래, 더 많이 할 수 있게 될 테고. 당장 더 적은 인력으로도 밀집 농사를 지을 수 있지.”

네마냐의 시야는 이미 전술적인 병력의 이동이나 특이한 작전의 범주를 벗어났다. 그런 것이야 전장을 제집 안방처럼 구르던 기사와 지휘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하다못해 용병들만 해도 자기들이 알아서 작전을 짤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의 요건은 돈과 인력, 그리고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산업력이지.”

확실히 시대를 많이 넘어서는 이야기다. 기껏해야 중세 정도의 기술력인 이 세계에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정석 공업만큼은 달라. 이걸 가지고 잘만 써먹으면 상당한 부를 뽑아낼 수도 있고 원시적인 산업을 성장시킬 수도 있어.’

마정석으로 된 각종 공산품은 가치는 커도 생산은 잘되지 않았다. 캐는 지역 따로, 만드는 세력 따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마냐가 새로 개조하는 바가반드는 공업기지로선 입지도 좋았고, 훌륭하게 바뀌고 있었다.

“내년까진 현재 오십 명 규모인 마정석 가공 공장을 스무 배 이상으로 성장시킬 거야. 내년 초에 이미 백 명으로 노동자를 늘리기로 했지. 그만큼 빈민이 줄어들겠지.”

“가공 기술 습득은 꽤 어렵지 않았나?”

“그랬지. 하지만 기술자 아일라 씨가 교육을 진행하니까 3가 장치는 쉽게 만드는 것 같아.”

보두앵은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토록 어떤 제안에도 버티면서 사람 무안을 주던 아일라 아닌가. 그 철벽의 기술자가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네마냐 자네가 그만큼 사람을 잘 끌어내고 큰 계획을 잘 잡은 덕분이겠지.”

“그럼 그 공조 장치가 정교해질수록 마법을 쓰긴 더 쉬워지겠군요.”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품에 아직 가지고 있던 6가 장치를 꺼내 두 사람에게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신기하게 만졌지만 보두앵은 특히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호환을 거치도록 술식을 부여한 마정석을 여럿 배치할수록 효율은 좋아집니다. 인간 몸속의 마나를 더 많이 마정석과 교류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말 그대로 혁명이군. 앞으로 한 해만 지나도 어떻게 될지 모를 지경이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보두앵이 이야기하듯이 격변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 이거 못 참겠군. 얼른 바가반드로 가자고. 당장 안 보고는 못 배기겠어.”

연신 입맛을 다시는 보두앵의 투정 아닌 투쟁에 엘레나와 네마냐는 잠시나마 웃었다. 이미 바가반드의 공업기지 계획은 통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점점 인간들의 대비도 그 속도를 빠르게 높여 나갔다.

* * *

“바난드의 내전이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이거군. 쿨룩.”

“그러니까 어설프게 어중이떠중이로 장난쳐 봐야 소용없다고 얘기했잖아.”

검은 옷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영롱하여 옥쟁반을 구슬이 구르는 듯했다. 연신 가래 섞인 기침을 토해내는 대족장은 뭐가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흘렸다.

“흐흐……. 어차피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었다면 됐어. 더군다나 상류의 인간들도 깜짝 놀랐겠지.”

대족장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위에 전시된 권력자들의 낡은 옷가지와 뼈다귀가 거대한 몸짓에 맥없이 흔들렸다.

“이대로 다르빌로 진군할 생각인가, 우레이미야? 네 공작이 막혀버린 이상 지금 다르빌로 간다고 해도 원정이 잘될진 보장할 수 없다.”

“그새 다르빌의 상태도 보고 온 모양이군.”

성큼성큼 연단 위에서 내려온 거대한 고블린 전사는 커다란 장죽을 꺼내 물었다. 재빨리 시중을 드는 하인 하나가 빻아 둔 연초 가루를 넣고 불을 붙였다.

“쓰읍, 후…….”

역시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던 마법사는 몸을 일으켜 곁으로 다가왔다.

“나코르잔을 다녀온 뒤로 계속 저기압이야. 그렇게 충격적인 패배였나? 고블린 군단이 아무리 무력시위라곤 해도 무력하게 당했다는 게.”

“정말…… 인간은 맘에 안 든다니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찔리는 말을 던지고, 후.”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엄청난 양의 연무가 근처 사방을 메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법사 역시 능숙하게 마법으로 자신의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 손놀림을 보며 우레이미야는 고백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설마, 중부산맥의 그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 구원군을 보낼 줄은 몰랐지. 이상한 일이지. 어째서 그 녀석의 동선이 겹칠 때마다 내 계획이 자꾸 어그러지는 느낌이야.”

틈틈이 담뱃대를 물었다 빼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굴뚝처럼 쉴새 없이 연무가 흘렀다. 마법사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그럼 이제 좀 계획을 바꿀 생각이야?”

“쿡쿡……. 그럴 리가. 고블린 전사에게 생명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전의 의식이다. 오히려 저렇게 저항할수록 피가 끓는 법이지.”

“정말, 네가 받았다는 그 계시가 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무엇이 그렇게까지 널 충동적으로 이끄는 걸까.”

이야기만 듣자면 비꼬거나 꼬집는 내용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우리 전(前) 공녀께서는 그렇게 맘에 안 드신다고? 하지만 본인께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던 것 아니었나?”

“…….”

위대한 정복자로 고블린 군단의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자, 그의 물음엔 답이 오지 않았다. 우레이미야는 다시 코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인간 시종 하나가 튀어나와 절도있는 행동으로 마법사에게 잔을 건넸다.

“나샤와 정복 당시 빼앗은 기사단장의 술이다. 인간의 것이라곤 질색이다만 이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만큼은 마음에 들더군.”

그리곤 자신도 한 잔 받아들고는 손을 내밀어 마시라는 신호를 보냈다.

―꿀꺽.

―꿀꺽.

성마른 목을 뜨끔한 알코올이 자극하며 지나갔다. 체온이 살짝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 아니 존재는 완전히 비워낸 잔을 이내 바닥으로 던졌다.

―쨍그랑.

―쨍그랑.

정성스레 가공된 유리잔은 제법 앙칼진 소리와 함께 장막 안의 무거운 공기를 찢어발겼다. 폭풍 전날 밤의 고요는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세상에 마땅한 운명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로 군단은 온전히 제 몫을 다할 것이다.”

“…….”

대족장의 차가우면서도 파괴욕에 집착하는 듯한 대사는 장막 안을 메웠다. 그리고 슬슬 달이 떠오르는 바깥으로도 퍼져 나갔다.

올해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 10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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