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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02화 (102/200)

102화

겨울 안개가 강줄기를 따라 짙게 낀 아침. 이런 날은 보통 암초나 강변에 부딪힐 우려가 있어 배를 띄우지 않는다.

―스윽.

물 흐르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새벽녘을 나룻배 하나가 물살을 헤쳐나갔다.

“영주님, 곧 있으면 아니 항구에 도착합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시길 바랍니다.”

“일단, 사공. 영주님 그 세 글자부터 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

“아이고, 제 입버릇이 그만. 죄송합니다.”

“어차피 도착만 하면 사공은 큰 상관 없을 테니까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돼.”

그것을 끝으로 네마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이유보다도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 놓았다지만 대장인 자신이 직접 잠입해야 하는 임무였다.

‘최근 이런저런 활동도 잦았으니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고. 그나마 조사를 받지 않는 신관으로 위장했으니 망정이지.’

마나회의 신관은 보통 그 신분을 존중받고 사법적 책임을 개인이 아니라 지케른 성국이 지게 되어 있었다. 덕분에 신관에 대해선 검열이나 검문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신앙이라곤 없다시피 한 네마냐가 사제복을 걸치는 건 오직 그 때문이었다.

“네마냐 님, 엘레나 전하도 성국 기사단장 아닙니까. 펜자르크 일당은 성국도 믿을 수 없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기사단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성직자를 무턱대고 건드리긴 어려울 텐데.”

“어차피 제국에서도 마나교는 허황한 것이라고 틈나는 대로 공격하지 않습니까. 그걸 핑계로 들먹이면 얼마든 깎아내릴 수 있을 겁니다.”

위험하다고 만류했음에도 끝내 따라나선 알리테스가 지적했다. 어느 흔한 신전 종자의 옷으로 위장한 녀석의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 펜자르크라면 당연히 생각할 만한 명분이겠지. 녀석도 고민할 만한 이야기야.”

그렇다고 네마냐가 진작에 그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금기를 당연하게 어기는 게 일상인 적이 성국조차 공격하리란 예측은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할 지점이 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절실한 건 당장 이기는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지.”

“뭡니까 그게?”

“뭘 것 같아?”

그 물음에 알리테스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민망하게 볼을 긁는 녀석의 모자를 바로잡아 주면서 네마냐는 자신이 생각해 본 시뮬레이션을 펼쳐 놓았다.

“펜자르크가 왕국의 실세로 거듭나려면 아쇼트 왕자가 명실상부 후계자로 자리를 잡아야지. 아니면 바로 왕위 계승하도록 하든지. 그렇지?”

“그래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쓰는 것 아닙니까?”

“아니지. 모든 건 오직 아쇼트, 그리고 펜자르크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아냐.”

이미 금기를 대놓고 어긴 상태에서도 펜자르크 일당은 여전히 적마정석 금지를 표명했다. 심지어 보두앵이 전해 준 소식도 황당했다.

[최근 아니 근교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폭동 사건은 적마정석으로 무장한 집단의 소행으로 보인다. 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아쇼트 왕자와 후견인 펜자르크를 노리는 목적인 것이다.]

“펜자르크는 오히려 적마정석 사용자를 자신들에 대한 적으로 선언했지.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아?”

“설마 자신들의 수단을 적으로 돌리면서 정당성을 마련한다, 이겁니까?”

“두 가지의 장점이 있지.”

사공의 노질을 따라 배가 조심스레 강기슭을 헤쳐나갔다. 그 광경을 보면서 네마냐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나는 자신들이 적마정석 금지라는, 인간 국가들의 금기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지.”

명분에 대해선 알리테스도 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니 선선히 수긍했다. 그런데 네마냐는 그보다는 나머지 두 번째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거라고 본다고 얘기했다.

“다른 하나는 오히려 펜자르크가 도구와 자신과의 거짓 싸움을 선언하는 거야.”

“거짓 싸움한다고 얻는 이득이 있을까요?”

녀석의 물음에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자신과 아쇼트가 정당한 집권의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원하는 대로 권력을 얻게 되면 적마정석 문제는 자연스레 흐지부지되겠군요.”

“자신이 손에 그 목줄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더 이상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펜자르크가 직접 마정석을 이용한 자객 부대를 고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거기다 적마정석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이라……. 마법 길드에서도 그 정도 대량 인원은 구하기도 힘들지.’

과연 그 정도의 마법 역량을 가진 인원을 어디서 차출할 수 있었을까. 잠시 스스로 생각에 잠겨 있던 알리테스도 그 의문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설마, 그 인원을 보내 주는 곳이…….”

“쉿.”

네마냐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검지를 세워 알리테스의 입을 막았다.

“확실해지기 전에는 아예 입 밖엔 꺼내지 않는 게 좋아.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지. 나도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아. 그리고 그게 정답이겠지.”

안개가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강을, 그렇게 나룻배는 하염없이 헤쳐나갔다.

* * *

“도착했습니다.”

“수고 많았네, 사공.”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미리 주의를 단단히 들어 둔 사공이 이번엔 제대로 인사말을 건넸다. 네마냐는 만족했다는 듯 은화 1개를 건네주었다.

“어이쿠, 이렇게 큰돈을 주셔도……!”

“이런 위험한 날에 기꺼이 배를 띄워 주었으니 내 감사의 뜻을 보여야지. 그럼 사흘 뒤 아침에 다시 이곳에서 보자고.”

네마냐의 뜻 모를 진한 미소에, 사공은 슬쩍 뒤편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왔군.’

네마냐는 더 이야기하지 않고 돈을 사공의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그리곤 신관들이 사용하는 목도리를 걸쳤다.

“예에, 나으리, 감사합니다! 그럼 소인은 그만 가 보겠습니다.”

네마냐 뒤편의 눈치에 지레 기겁한 모양인지 사공은 재빨리 돈을 주머니에 넣은 뒤, 배를 재빨리 몰아 떠나갔다.

“죄송합니다만,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도시에 들어오려면 검문을 거쳐야 합니다.”

“무슨, 무엇이 필요하다고?”

얼굴을 굳힌 네마냐는 냉정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몸짓에 병사 두어 명이 움찔하며 두어 발짝 물러섰다.

“섭정 펜자르크 백작의 지시에 따라 도시로 진입하는 모든 사람은 검문에 응해야 합니다. 예외는 없다고 했습니다.”

“감히, 세속의 인간들이 누굴 조사하겠다고?”

불편하다는 듯 커다란 소매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펄럭였다. 로브의 모자 부분이 무척 크고 깊어서 누군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기왕 예외 대상이었지만 이번에 섭정 백작님의 지시가 있었으니만치…….”

“지금 너희들 왕국이 누구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데 누구를 불순분자로 생각한다는 거냐?”

거기까지 쉴 틈 없이 몰아붙인 네마냐는 시종으로 위장한 알리테스에게 손짓했다.

“그것을 내어주거라.”

“예.”

두 살 아기의 키만큼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두루마리의 태양 무늬 봉인. 네마냐는 그것을 직접 손으로 떼 내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눈이 있다면 이걸 가져가서 봐라. 너희들이 우리 신관들을 무단 억류했다는 소문에 신관회가 즉각 진상을 알아보도록 나를 보냈다. 그런데 나를 또 검문하겠다니. 정말 성녀께서 좋아하시겠어.”

“고, 고정하십시오, 사제님! 윗대가리라면 몰라도, 성국이 손을 놔 버리면 적마정석과 그림자 던전이 지금이라도 도시를 덮어 버릴 겁니다.”

알리테스는 평소 부끄럼이 많더니 오늘은 또 새로운 연기 배우의 자질을 뽐내고 있었다. 나름 간곡해 보이는 설득에 검문을 나온 병사들도 당황하면서도 동질감을 느낀 모양이다. 네마냐는 맞장구를 치면서 수위를 높였다.

“그러니 하는 소리 아니냐. 마나가 언제라도 오염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 그런데 그걸 막겠다는 놈들이 정작 막는 데 가장 핵심이 될 신관회를 차단한다고?”

불과 하루 만에 만들어 낸 급조 논리이긴 하지만, 그만큼 호소력이 막강한 주장이었다. 단숨에 안보를 위한 검문 이슈를 펜자르크의 진정성 논란으로 옮겨 버리는 것이다.

“…….”

“…….”

병사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어색한 헛기침을 흘렸다. 그러더니 한 명이 한 발짝 가까이 와서 조금 작은 목소리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통제권이 없는 병사들일 뿐이라 명령만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는 걸 들어보면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도 따르기 어렵군요.”

“……자네도 마나회의 신도였나?”

조금 누그러진 기색으로 네마냐가 다가온 병사에게 말을 건넸다. 병사는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보였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다가 귀엣말을 속삭였다.

“신관이시니 믿고 말씀드리는 부분이지만, 솔직히 지금 도시 내에선 불안이 팽배합니다. 펜자르크에 협력하지 않거나 방관적인 사람들은 돌연 행방불명되기까지 합니다.”

“오호…….”

도시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던 참에 좋은 정보였다. 병사 하나의 증언으로 일반화하는 게 위험해도 내부에서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 마나의 섭리를 섬기는 사제로서 반드시 약속드리지. 성국의 명예를 걸고 이 문제는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걸.”

성국의 인장과 봉인이 기입된 두루마리 문서. 그리고 누가 봐도 당당한 젊은 사제의 약속. 네마냐는 어떤 맹신적인 믿음이나 성국과 신관회라는 권위만을 믿고 움직인 게 아니었다.

‘하야스단 사람들에게 마나교란 곧 자신이 자신임을 드러내는 전통이지. 펜자르크의 행동은 어떤 우회 방식을 쓰더라도 기존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사람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해도 구멍이 생길 테니까.’

하야스단 사람들이 존중하는 전통과의 결별. 그건 펜자르크와 아쇼트 일당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면서도 양자의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릴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괜찮겠어? 혹시나 상부에서 알게 된다면…….”

“우리만 조용하면 괜찮아. 정말 현 정부가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면 신관회와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았을 테지.”

“하, 그래. 우리는 명령을 듣는 병사이기에 앞서 우리 고장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까.”

병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지만 네마냐는 조금 초조해졌다. 안개가 짙게 끼긴 했어도 항구 주변은 몸을 가릴 만한 지형지물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경비병이나 간부라도 오게 되면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좋지만, 들여보내 줄 생각이라면 어디 다른 곳에라도 움직이는 게 어떤가? 이런 탁 트인 곳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건 사절인데.”

“아, 그렇군요. 근처에 거리로 나가지 않고 시내로 곧장 갈 수 있는 지하 통로가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죠.”

“지하 통로?”

“직접 보시면 아실 겁니다. 바로 가시죠.”

근처에서 다른 경비병들이 왁자하게 몰려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로스톰과 기비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두 사람은 재빨리 네마냐 일행을 으슥한 한쪽 골목으로 이끌었다.

“정말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구나.”

전생에서 몇 번이고 도시를 방문했던 네마냐에게도 낯선 광경이었다. 기나긴 계단 아래의 통로는 저 안쪽 도심 아래 지하로 이어졌다.

“난쟁이족 시절에 만들어진 지하 통로입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괜찮을 겁니다. 지하층은 신관회가 관리하는 곳이니 들어가시면 곧 관계자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 이름이 로스톰과 기비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지하 입구로 들어가는 난간을 붙잡은 네마냐가 이동하려다 말고 슬쩍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어쩌면 당신들의 도움으로 이 바난드가 살아날지도 모르겠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네.”

“미사 때마다 읊는 마나의 섭리, 그 다섯 글자의 염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저 같은 사람은 그저 기쁠 겁니다.”

마나에 어떤 목적성이 있는 의지가 있다고 믿고, 인격신의 존재처럼 인식하는 것이 마나교의 가르침이다. 어찌 보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힘에 대해 미신적인 믿음일지도 모른다. 네마냐 자신도 옷만 신관 복장이고 관계자들과 친할 뿐,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분명히 실체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믿음이라도 사람들이 버티고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

제국과 마탑에서 기회가 날 때마다 비이성적인 광신으로 공격받는 마나교다. 그러나 하야스단 사람을 이해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컴컴한 지하 통로로 걸음을 옮기던 네마냐는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를 흘렸다.

“펜자르크는 바로 이런 중요한 도구를 너무 우습게 보고 쉽게 이용하려고 했지. 그리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거고.”

“얼른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영주님. 바누라트 님과 약속한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리테스의 재촉에 기껏 했던 멋들어진 이야기가 축축한 지하 공기 속으로 묻혀 버렸다. 멋쩍은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네마냐도 고개를 끄덕했다.

“얼른 가자고. 자기 발밑이 무너지는 줄도 모를 펜자르크를 깜짝 놀래켜 줘야지.”

“……거기, 누구십니까?”

어두컴컴한 통로 저편에서 조심스러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경계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네마냐가 지금 입고 있는 성직자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 빨리 만났군.”

“누구십니까? 정부의 관리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면식이 있는 신관도 아니신 것 같은데.”

“면식은 없지만 내전을 그만 끝내기 위해 온 사람은 맞지. 아니 대신관에게 나를 안내하지 않겠어?”

펜자르크의 강력한 결계, 그 안에서 네마냐는 스스로 최종병기의 위력을 보여 줄 참이었다.

- 10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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