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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95화 (95/200)

95화

“전 조합장님 말씀이요?”

“전 조합장? 바누라트 님 말하는 것 맞소? 대관절 모두 아는 얘기를 갑자기 묻는 저의가…….”

너무 당당하게 조합본부 현관으로 들어섰지만, 클로루스는 말문이 턱 막혔다. 처음 들은 대답부터가 예상과 꽤 달랐다.

‘아무래도 낯선 인물이라 경계하는 것 같네.’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라, 네마냐가 나섰다.

“내가 직접 이야기하지.”

“예? 아, 네네, 알겠습니다.”

“바가반드의 영주, 네마냐 나자리안이네. 바누라트 님, 아니지, 아니온에 그간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은데.”

“…….”

상인 조합의 간부가 침을 삼키느라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정말 바가반드 백작이 맞으십니까?”

“맞아. 바로 뒤에 엘레나 공주도 같이 왔잖아. 안심해도 돼. 혹시, 이 모든 일에 펜자르크 백작이 개입된 건가?”

일단 간부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말로 미루어 보아 적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 판단으로 곧바로 훅 치고 들어갔다.

“후……. 이야기를 하려면 좀 깁니다. 들어오시겠습니까. 안에서 말씀드리지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간부는 조심히 현관을 열어젖혔다.

“고맙군. 우리도 들어가자고.”

“그럴까.”

나머지 일행을 들여보낸 뒤, 망토를 크게 떨치며 짐짓 위세를 부렸다. 혹시나 스파이가 보고 있다면 기가 눌리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일행은 빠짐없이 조합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예, 모두 네 명입니다.”

머지않은 골목길에서 역시나 예의 그 검은 인물이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어두컴컴한 골목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쏴아!

비가 거세게 내렸다.

“그럴 수가. 숙부께서 미처 연락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화급하게 피난하셨다고?”

“그렇습니다.”

못 믿겠다는 엘레나의 물음에 재차 확답을 건네주는 조합 간부였다. 번개 불빛이 번쩍하고 조용한 조합장 사무실 안을 강타했다.

―우르릉!

“어디로 가신다는 건지에 대해선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팔짱을 낀 네마냐의 물음에 물끄러미 쳐다보던 직원은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그는 텅 빈 책상의 어딘가를 뒤지더니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다만, 책 한 권 이야기는 하셨습니다. 종종 읽으시던 책이라면서 나자리안 경께서 오시면 넘겨주라더군요.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읽을 수 있다니? 다른 사람은 못 읽는다는 소리야?”

“직접 보시죠, 공주님.”

“제가 대신 확인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클로루스가 대신 받아 책장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책을 읽는 시간이 길수록 그의 표정은 당혹스러워졌다.

“이건……?”

“뭔데, 내가 읽어 볼게.”

네마냐가 뺏듯이 책을 빼앗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무슨 이유에서 표정이 당혹스러웠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옆에서 같이 들여다보는 엘레나도 적지 않게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책에 내용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네. 진짜 하나도 없어.”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확인해 봐도 알 수 없었죠. 다행인 건 그 덕분에 펜자르크가 들이닥쳤을 때 무사했단 겁니다.”

“바누라트 경과 무슨 문제가 있던 모양이군.”

다시 한숨을 퍽 내쉬는 간부의 말은 점입가경이었다. 불과 며칠 전, 아니온 주변에서 불길한 빛에 대한 목격담이 소문처럼 퍼졌다. 마나 징수제도가 도입되고 얼마 뒤라 불온한 소문이 떠돌았다.

“조합장께선 파드 경을 성국에 보내 자문을 받게 하고, 직접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아니온은 비어 있는 상태였겠어. 펜자르크가 바로 그때 출현한 건가?”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상황이 이 정도면 그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지. 계속 얘기해 봐요.”

펴 놓았던 책은 어느새 옆구리에 낀 채로 네마냐는 계속 간부를 재촉했다.

“원래 아쇼트 왕자께선 국왕 대리로 시찰을 위해 동쪽 영지에 머무르셨죠. 그런데 바누라트 경이 출발했던 그 날 밤에 폭음과 화재, 의문의 습격이 터졌습니다.”

“습격이라……. 마치 우리가 겪었던 그 자작극 같군.”

엘레나의 냉소 어린 한마디. 네 사람은 으스스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계속 청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펜자르크와 아쇼트 왕자의 군대가 들어온 겁니다. 그러곤 하룻밤 만에 전권이 그 둘의 손에 들어갔죠.”

“흠.”

조합 본부에서 얻을 수 있었던 건 이 정도의 정보였다. 한 권의 책만을 얻은 채로 일행은 건물을 나섰다.

“비는 좀 그쳤군요. 이동하긴 괜찮겠습니다.”

“우산이 없었으니까……. 네마냐, 그 책을 읽을 방법이 좀 생각이 나?”

“글쎄. 대관절 빈 책을 줘 봤자 내가 알 방법도 없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네마냐는 한 발짝을 내밀었다.

“어이쿠.”

무심코 내민 한 발짝이 물웅덩이에 살짝 스쳤다. 잔잔한 수면에 파동이 지나갔다. 파동……. 수면에 자국을 낸다?

“잠깐, 잠깐만.”

네마냐는 황급하게 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몇 장을 넘기면서 표면을 슬슬 만졌다.

‘나라면 읽을 수 있다는 뜻이라면 그건 반드시…….’

“네마냐? 대체 무슨…….”

사방이 트인 건물 앞 거리에서 그렇게 한참을 책을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장을 더듬던 손길에 짜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거다.”

주변 사람은 알아듣지 못할 외마디를 남기곤 네마냐는 바로 눈을 감았다.

[탐지 1]

[바누라트의 전언: 이 아이템은 흙의 마나로 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해제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흡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조건: 마나 친화성을 가진 사람.]

‘마나 친화성이라. 마나 흡수 이야기겠지.’

손을 지면에 얹은 채로, 네마냐는 정신을 집중했다. 하라드는 무의식중에 마나를 흡수하고 방출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통제하는 방법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 이후론 오랜만에 해보는 마나 흡수였다.

―쏴아아!

바누라트의 목걸이나 왕궁 집사장의 시계를 흡수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됐다. 이제…….”

“어? 글자가?”

엘레나와 네마냐의 시선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막 너머로 휘갈긴 글자가 들어왔다.

[할야크 남작에게로 피신. 성국과 제국 등에 요청하여 반격이 필요. 펜자르크의 배후에 고블린과 관련된 무엇인가가 있음. 이후 첨부된 자료 확인 필요.]

―탁.

빠르게 읽은 네마냐는 책을 바로 덮었다. 고블린 연루까지는 읽지 못한 엘레나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필로칼리스도 물어왔다.

“무슨 내용입니까? 바누라트 경께서 가신 곳에 대한 겁니까?”

“……그 내용도 있지.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얘기해 줘야겠지만.”

“그렇다면 이제 말씀드려도 될까요.”

“……클로루스, 너도?”

네마냐와 클로루스는 맞추기라도 한 듯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골목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래 머물다간 위험할 것 같아. 잠시라도 도시를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벗어난다고, 갑자기?”

후드를 갑자기 쓰며 얼굴을 가리는 네마냐의 이야기에 엘레나도 놀라서 되물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느낀 듯 섬찟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시겠지?”

“그럼. 적어도 국왕을 해코지해선 이 나라에선 발붙일 수 없지. 그건 누구보다도 자녀인 너희들이 잘 알 테니까.”

물론,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오기에 찬 마음을 먹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들이 원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평화적인 왕위 계승이라면 엘레나와 바누라트를 밀어내는 정도겠지.

“현 국왕 전하처럼 사람들의 지지를 받던 분이라면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확신까지 할 수야 없다지만, 온전한 권력을 노리는 탐욕이 있다면 오히려 그 덕분에 이쪽은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얼른 칼주안 관문의 파드 경에게 연락을 보내고 우리도 나가서 반격을 준비하자고.”

어젯밤보다 훨씬 강렬하고, 훨씬 넓은 구역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기운에 몸서리가 쳐졌다.

* * *

“공주님, 어서 오십시오! 안 그래도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막막했는데. 너무 때를 잘 맞추셨습니다.”

“고마워요, 바바스. 마브리쿠폴리스는 덕분에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군요.”

바누라트의 전언을 확인한 일행은 재빨리 아니온을 탈출했다. 전날 밤의 폭발과 혼란으로 도시가 혼란에 빠진 상태라 가능했다. 불과 얼마 뒤 일행을 노렸던 것처럼 성벽 한 귀퉁이가 폭발한 것은 덤이었다.

“이 바라스바치스, 적어도 맡은 일만은 해내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소식을 듣곤 바로 아니온을 가 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러지 않길 잘했어요. 지금은 도시가 온통 아수라장이라. 잘못 움직이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어요.”

바라스바치스라는 마브리쿠폴리스의 시장은 그도 그렇다며 수긍했다. 곧이어 그가 네마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유명하신 나자리안 경을 이런 상황에 뵈어 안타깝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중요한 건, 저들을 막는 것이 우선이란 겁니다.”

“바누라트 숙부가 분명 이리로 피신했다고 했을 텐데요.”

“맞습니다. 지금은 근처의 독립 영주들을 방문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이어지는 대화의 주제는 어느 정도 네마냐가 짐작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아니에 처음 들어가면서부터 불쾌했던 느낌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 사건이 벌어진 날부터 도시에 불길한 마나의 기운이 일렁인다는 겁니다. 조합장님이 확신하셨는데, 지금은 행방불명된 아니의 마나 신관들이 마나가 오염되었다느니, 그런 얘길 했답니다.”

“마나회 신관들도 그랬다고요?”

“예.”

엘레나는 그 소리를 듣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마나교의 신관들까지 오염되었다는 걸 느꼈다면 상당한 문제였다.

“마나 신학에서 배운 바로는 마나가 오염되었다는 건, 보통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엘레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와 같은 마나 징수 제도에선 공동체 중에서 불온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도 알 것 같은데. 적마정석으로 인한 마나 오염이지?”

네마냐의 이야기에 엘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마 둘 다 모두에 해당하겠지. 그렇게나 많은 적마정석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군다나 신관들도 아무도 모르게 납치할 정도라면…….”

“좋아, 그 정도면 대강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어떤 식으로든 고블린 군단과 관련이 있을 거야.”

고블린 군단. 현재까지 적마정석을 대량으로 운용하는 세력은 그들뿐이다. 그 마정석의 출처가 음험한 마탑일지, 아니면 그 ‘탑의 마법사’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맞아, 얼마 전에 나코르잔에 가서 정보를 얻어왔댔지?”

“응. 어떤 경로로든 고블린 군단으로부터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정말 큰일이군요. 만약 그게 모두 의도된 작전이라고 하면, 정말 큰 위기는…….”

“서쪽에서부터 다가오겠지.”

네마냐는 말을 마치곤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섰다. 남은 한 손으론 영지 문장이 장식된 핀으로 망토를 고정했다.

“당분간 엘레나는 여기 머물면서 사람들을 모아 줘. 나는 영지를 잠시 살펴보고 고블린 쪽 상황도 점검해 봐야겠어.”

“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엘레나, 국왕 전하가 총명을 잃고, 아쇼트 왕자가 반역을 결심한 상황에서 나라가 의지할 건 너 정도야.”

“하지만…….”

네마냐는 후드를 덮어쓰고 고정끈을 마저 죄었다. 그러고 나선 재차 엘레나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은 단장보다는 왕국의 제일 후계자로서 행동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왕국에 대한 생각은 없었는데…….”

“동감하지.”

왕국 후계권을 둘러싼 분열을 막기 위해 기사단으로 나왔던 엘레나. 지금 그 마음이 어떨지는 차마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리석든지 욕심이 월등히 뛰어난 아쇼트 왕자가 바보같이 나선 이상, 엘레나도 칼을 뽑을 수밖에 없다.

“곧 돌아올게.”

말을 마친 네마냐는 곧바로 입구의 문으로 향했다. 엘레나와 바바스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대꾸도 없이 지켜보았다. 문을 막 밀쳐 열기 직전, 네마냐는 잠깐 몸을 돌리고 눈가를 가린 후드를 살짝 들어 보였다. 최대한 웃는 눈매와 함께.

“좋은 소식과 함께 돌아오지. 화려하게 고블린 전장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문을 열자, 새로운 한바탕이 남았다는 걸 예고라도 하듯 거센 햇발이 네마냐의 품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 9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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