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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91화 (90/200)

91화

“어서 오게, 백작.”

문이 열리고 불빛과 함께 나타난 얼굴은 바난드 왕실기사단장 파드 경이었다. 소릴 내선 안 되는 상황이니 우선 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고맙습니다, 이 새벽에. 경께서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말씀을. 이 시간대에 오라고 전해 드린 것도 죄송한데.”

문지기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쪽문을 닫았다. 이렇게 쉽게 내성으로 들어올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벌써 몇 번이나 성도에 왔던 것 같은데.”

“그럴 겁니다. 이 문은 안보상의 이유로 곡 필요할 때만 공개되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파드 경도 바난드의 기사인데, 그런 이야기가 목젖까지 올랐지만 가라앉혔다. 성국과 바난드가 유달리 관계가 남다르긴 하지. 그러는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드가 다시 네마냐에게 물어왔다.

“이미 성녀님이나 엘레나 단장에게서 들으셨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알고 계시지요.”

“음, 아주 간단하게만 말입니다.”

상황을 대충 알고 자세히 알고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현재 바난드의 상황에서 내분이 일어나려면 움직일 만한 대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움직임이건 결국엔 아쇼트 왕자로 귀결되지 않겠습니까. 물증을 잡아내느냐가 문제겠지만.”

“바로 그겁니다, 물증.”

파드가 답답하다며 깊은 새벽에도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어깨에 걸쳤다.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한다. 어째서 겨울철에 더위를 호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쇼트 왕자겠죠, 그 외에 다른 누가 있을 리도 없고. 하지만 누가 같이 움직입니까?”

“음, 역시 대충 짚곤 계셨군요. 펜자르크라고,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풀벌레 소리도 없었다. 야산의 외로운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한층 죽인 파드 경이 물어왔다.

“펜자르크라, 예전부터 동부 변경에 그런 이름을 가진 대제후가 있단 건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파드가 다시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지요. 제국과 맞닿은 곳에 살코라 지방이 있습니다. 현재 마테우 펜자르크라는 자가 그곳의 이라크시스 백작령을 다스립니다.”

“그가 내란 음모를 꾸미는 중심인 거군요.”

“이 역시 소문으로 퍼졌을 뿐이지만요. 워낙 펜자르크 일당의 세력이 결속이 튼튼한지라 물증 확보가 어렵습니다.”

총총걸음으로 두 사람은 달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마당을 건넜다. 1층 복도의 한편, 벽처럼 보이던 곳을 밀자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곳에 밀실이…….”

“원래 악마의 던전은 가장 신성한 곳에 있다고 하죠, 하하.”

신관이라도 들었다간 큰일 날 소리를 하며, 두 사람은 쓴웃음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밤중에 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엘레나와 성녀 트라야브나를 비롯해 가기크 부종정도 나와 있었다. 성국에서도 바난드의 위기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뜻이겠지. 트라야브나가 평상복인 듯 하얀 비단옷을 입은 소매를 휘둘렀다.

“조금 늦었습니다. 저희 영지에서도 취해 놓을 조치가 좀 있어서.”

“필경 그랬을 겁니다. 우리도 황당하지만 급히 움직이곤 있으니까요.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사양하지 않고 네마냐는 자리에 앉았다. 벤치 형식으로 사방의 벽에 붙어 설치된 의자였다. 한참의 침묵 속에서 촛대의 불이 일렁였다.

“바난드 내부의 분열이 심각합니다. 그 배후에 어느 세력이 개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숙부 바누라트의 봉서입니다.”

엘레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 명씩 편지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이내 한 사람씩 한탄 어린 감탄사를 내뱉는 건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나오듯 자동으로 이어졌다.

“그럼, 저 바누라트 조합장은 정녕 아쇼트 제2왕자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단 말입니까? 이 상황에서?”

“정확히 하자면 제2왕자를 충동질하는 펜자르크와 그 일당들이죠. 마나 징수제의 피해자들.”

“흥, 자칭 피해자들, 말이지. 그간 속 편하게 법 테두리 밖에서 누린 이익은 아주 합당하게 자기들 것이고.”

남의 나라에서 성토를 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성녀는 엘레나 눈치를 보며 거기까지만 얘기했다. 겉으로 보아 속내를 알 수 없는 엘레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일단 이라크시스 백작령은 자치의 권한이 있고, 여차하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제국으로부터도 상당수 지원을 받는 곳이죠.”

“제국이 독립을 후원한다는 뜻인가요?”

가기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하야크 왕국이 제국의 분열책에 무너지던 상황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작 동방 제국의 군대는 바난드와 협력하는 중이고, 제국은 바난드보단 동남쪽 이와니, 상 타위트를 노리고 있죠.”

“그거야 모르는 겁니다. 더 고분고분한 자를 앉히고 영향력을 넓히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만약 제국이 마탑에 행사했던 것처럼 개입한다면 우리라고 해서 무슨 방법이 생기진 않겠지. 그건 확실해.”

성녀의 차가운 판단이 옳았다. 하야스단 지방 정중앙인 콜라케르트에 제국군이 주둔한 이상, 각 제후들은 서로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제국이 병탄 혹은 부분 점령에 나선다면 막을 수 없을 거야.”

“혹시 펜자르크에 동조하는 세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마침 순서가 돌아왔으니 서한을 읽어 봐.”

파드 경이 읽고 건네준 것은 바누라트의 편지였다. 그 내용에 따르면 이라크시스 영지와 함께 세 곳의 국왕 직할령에서 이탈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케시번, 카르시, 파르티즈. 정확히 동부 지역 거의 전체로군요.”

“게다가 왕국의 인력과 식량의 1/3을 생산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고. 거길 잃으면 바난드의 군대는 축소될 수밖에 없지.”

파드의 친절하면서도 무서운 설명. 네마냐는 순간 이전, 훨씬 늦은 시점에서 터졌던 반란을 생각해 보았다. 한창 고블린을 저지 중이던 왕국군은 반란을 막지 못한 채 후방을 내주었다. 이미 인사불성이던 국왕은 유폐되고, 제2왕자 아쇼트가 곧바로 즉위했다.

‘하지만 군대와 영주, 주민 일각에선 복종할 리가 없고, 내전만 커지는 결과를 낳았지.’

그런 스토리의 끝은 곧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반란 조짐을 미리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엘레나 단장은 어떻게 제국이 여전히 그 배후가 아니라고 봅니까?”

“……저도 제국의 의도는 의심스럽습니다. 다만.”

“다만?”

답을 재촉하는 가기크의 바람과 달리 엘레나는 답변을 조금 지체했다.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지. 괜찮겠어?”

트라야브나가 대신 승낙을 얻은 뒤, 숙부 가기크에게 대답했다.

“실은, 이번에 반란 첩보를 전해 온 게 바로 제국군 사령부라서 그래요. 정확히 무슨 의도로 정보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국군이 반란 첩보를 줬다, 이거군요. 무슨 의도인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제국이 배후에 없으리란 단정은 해선 안 됩니다.”

“흠.”

무슨 일인지 상황을 알 만한 것은 얼마 전 아나무이라를 다녀온 네마냐 정도였다. 그리고 이 자리의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총대는 가장 연배가 높은 가기크의 몫이었다.

“나자리안 백작, 이쯤 해선 아나무이라에서 특사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으면 싶군요.”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레나도 동감이라며 말을 얹었다. 사람들의 궁금증에 찬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네마냐는 마침내 아나무이라에서의 일을 말했다.

“……제가 조심스럽게 저들의 목적을 짚어 보자면, 연합군의 지휘권은 물론, 각 군의 통제까지 내어달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 무슨……!”

울분이 차오른 건 대뜸 분노를 터뜨린 가기크만은 아니었다. 말을 꺼내지 않을 뿐 눈빛으론 이미 섬뜩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당장 당사자인 파드 경이 형형한 눈빛을 뿜으며 물어왔다.

“저들이 그걸 진지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랍니까? 우리가 어떻게 반발할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네마냐는 말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단 생각에서겠지. 문제는 일개 군사령관도 아니고 특사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야.”

“특사에 한해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보면서 군부와 저울질을 할 태도더군요. 시종일관 모호했습니다.”

이 자리에선 결코 결론을 내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장 관문의 경비를 강화하고 첩보를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성녀인 내 처지에선 아주 곤란한 일뿐이야. 유일하게 도움이 될 만한 동맹이 내란에 휩싸여서야. 게다가 고블린이 때를 정확하게 맞춰서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비가 한 번 오면 억수같이 쏟아진다더니, 불운도 이 정도면 옛날 던전 사태가 무색하겠습니다.”

“나자리안 백작, 잠깐 가까이 와 주어요.”

“예.”

성녀의 부름에 네마냐는 앞으로 다가가 예의를 취했다. 상위군주에게는 무릎을 꿇는 게 예절이지만 그건 직속 군주에게만 하는 법이다.

“좀 더 가까이.”

성녀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귀를 좀 더 가까이 들이대었다. 트라야브나가 허리를 조금 굽혀 가까이 다가왔다.

“만약 제국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조만간 그대의 영지에도 손을 뻗을지 몰라.”

“예, 그 점은 각오해 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하야스단 지역에선 제가 뜻하지 않게 민의를 대표한 셈이 되었으니까요.”

니키타스 총사령관과 니콜라스 특사의 묘한 눈빛은 잊히질 않았다. 어떻게든 손을 쓰리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금방 움직일 줄은 몰랐다.

‘역시 천 년을 묵으면 여우뿐 아니라 나라도 영악해지는 모양이지.’

자신의 뜻하지 않은 회귀가 아니었다면, 하야스단은 말 그대로 생간까지 뽑힌 채 제국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국의 손바닥 위란 소리니까.

“저들도 정작 침략 같은 건 하지 못할 겁니다. 자신들의 명분이 암피에르 조약 준수와 하야스단 보호에 있으니까요.”

“반란 건은?”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고 하겠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중요한 건, 이걸로 저들이 우리의 실력과 태도를 시험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길 기다리고 있겠군.”

“그래선 안 되겠지만요.”

네마냐의 머릿속에선 벌써 여러 시나리오가 돌아가고 있었다. 조건은 간략하게 추려졌다.

1. 제국군과의 연합 작전에서 개별 군의 지휘, 통제권은 지켜야 한다. 연합지휘권 이상의 힘을 내줄 수 없다.

2. 바난드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 펜자르크의 영지는 어쩔 수 없어도 나머지의 이탈은 막아야 한다.

3. 분열을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내전을 막아야 한다.

잠시 눈을 감자 생각한 그대로 이벤트처럼 화면으로 떠올랐다. 여전히 산같이 쌓여 있는 고블린과 영지 운영 관련 임무 외에 하나가 더 생겨났다.

[특수 미션 : 바난드의 내전, 종료 기한 2주]

[수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박한 고블린 내전에 모든 신경을 쏟을 수 있습니다.]

‘정말? 수행하지 않아도 되면 안 해도 될…….’

물론 한국어는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건 진리에 가까운 격언이었다.

[그러나 수행하지 않아 고블린, 영지 관련 임무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선 시스템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페널티 작용이 가능합니다.]

‘이런 개…… 결국은 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애초에 바가반드 같은 소영지에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은 바난드 왕실과 길드의 후원 아래 진행된다. 더군다나 에살하톤 상단도 바난드의 교통로가 있어야만 필수적인 교역이 가능하다.

“……제가 생각해 본 게 있습니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분열은 몰라도 내전까지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의구심에 찬 트라야브나가 묻는 소리가 제법 크게 밀실에서 울렸다. 가기크나 엘레나까지 움찔할 만한 크기였다.

“진정하시죠. 저들이 대놓고 일어나는 원인은 계승 구도의 변화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그걸 모호하게 해서 전선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왕국의 계승 구도. 아쇼트 왕자의 성년식을 성대하게 치러 계승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엘레나를 기사단으로 보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한동안은 왕국은 안정될 것이었다.

‘아마 엘레나가 내 도움으로 공도 세우고 단장까지 오르면서, 자연스레 왕위 계승의 가능성을 높인 게 이번 사건과도 관련이 있겠지.’

자신의 회귀가 겹치면서 이 부분에서도 상황이 꽤 바뀌었다. 그렇다면 고블린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선 네마냐가 직접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덤빌 수밖에.

“엘레나 경만 좀 빌려주십시오. 환자에게 중대한 시술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니, 바난드의 상속권자에게도 그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아서요.”

예전과 달리 조금 가혹하고 험난한 바난드 여행이 시작된 일정이었다.

- 9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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