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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82화 (81/200)

82화

말을 일으켜 세운 네마냐가 ‘자유 오케시 1대대’라는 깃발을 따라간 곳. 그곳은 네마냐가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웅장한 도시였다.

“이곳이 나코르잔……. 내 생각보다도 더 번영한 도시였잖아?”

망명자들의 도시, 혹은 패배자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그곳이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는 숱하게 지저분하고 패배주의에 물든 도태 고블린의 음모가 숨 쉬는 곳이었다.

“이곳에 와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곤 한다. 우스운 노릇이지.”

네마냐를 마중하기 위해 하루 세 번씩 도시 근교를 순찰했다는 고블린의 대장이 꺼낸 말이었다. 녹색 빛의 피부를 볼 때마다 네마냐는 옛일이 떠올라 흠칫했지만, 애써 아닌 척했다.

“그대도 군단으로부터 피해를 본 적이 있었나? 약간의 거부 반응이 보이는데.”

“아, 응. 조금. 좋은 일로 엮인 건 아니었지.”

저번 생에서는 아예 대놓고 죽어도 보고 이번 생에서도 끈질기게 괴롭혔지만.

“안타까운 일이군. 우리로서도 진정한 공존의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 같아서 고민이지.”

“그래, 어쩌면 군단이 노리는 게 그 지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을 꺼내면서 네마냐는 품속에 넣어 두었던 책 한 권을 꺼내 보여 주었다.

“혹시, 오체나시움에도 이 책이 알려져 있나?”

“책 제목은…… 처음 보는군. 하지만 오니아스라면 어린아이라도 다 알지. 인간임에도 고블린과 우애를 다진 최초이자 마지막 대마법사.”

최초이자 마지막.

고블린이 이렇게 의미심장한 단어를 쓸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여러모로 충격이 큰 네마냐다.

“그래서, 나를 여기에 초대한 이유가 뭐지? 백작이라고 해도 내 지위는 자작이나 남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인데.”

정말로 이곳의 고블린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물색한다면 바난드 왕이나 성녀 트라야브나, 하다못해 제국 황제에게 읍소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피동적으로 움직일 뿐이지, 그렇지 않나? 우리가 원하는 건 함께 정세를 이해하고 움직일 수 있는 동료거든.”

“동료라…….”

아마 바가반드에 있는 동료들이라고 해도 이 소리엔 패닉에 빠질 것이다. 고블린과의 전쟁을 앞두고 고블린과 동맹을 맺다니. 직접 보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믿을 수 없겠지.

“귀국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정말인가?”

오히려 반신반의하듯 네마냐에게 물어오는 상대방. 그러고 보니 이야기만 실컷 나누고 정작 이름은 묻지 않았다.

“물론이지. 나는 군단을 막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자네의 이름은?”

“유그하르그다. 직책은 마이스트라 밀리테스, 그러니까 제국이나 당신들 말로 총사령관 정도 되겠군.”

“나는 바가반드 백작, 네마냐 나자리안.”

“우리는 친우와 악수를 하는 편인데, 당신네들은 어떤가? 악수해도 괜찮겠지?”

“아무렴. 제국에 가면 제국법을 따라야지.”

도움을 찾아 북서쪽 끝까지 찾아온 인간, 그리고 저항군 고블린의 대장이 처음으로 악수하는 순간이었다.

* * *

깔끔하게 정비되고 관리된 도시를 지나 네마냐는 중심부 시가지로 들어섰다. 오니아스가 책에 기록한 대로 결코 작거나 조잡한 도시가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청동 투구를 쓰고 절도있게 안내하던 고블린 병사 하나가 친절하게 안내했다. 물론 고블린 종족 언어의 특징상 ‘존대’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네마냐는 이미 이들의 언어 습관을 대충 알고 있어서 편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민회 의사당으로 간다. 오키시에 찾아온 국빈의 예에 준하여 모시라는 엄명이 있었다.”

“그렇군. 오체시의 국빈급으로 민회 초빙이라.”

이곳 고블린들은 자신들을 ‘오체시’라고 불렀다. 이 지방이 아주 오랜 옛날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 부여받은 ‘오르케시아’란 이름에서 파생된 이름이었다. 이제는 단순히 지역 이름을 벗어나 군단의 전유물이 된 고블린에 대응하는 의미로 확장되고 있었지만.

“이곳이다.”

“오…….”

거대한 청동 문과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정직한 사각형의 건물. 청동의 문짝에는 엄청나게 많은 무늬, 아니 정확히는 오체시들이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

“오체나시움의 역사라도 표현해 놓은 건가.”

대충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살짝 훑어보았다. 대충 발전한 문명 고블린과 산악에 살던 야만 고블린 사이의 갈등을 기록한 듯했다.

“들어가라. 안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참, 그렇겠지.”

네마냐는 손에 힘을 주어 청동 문을 힘껏 밀었다.

―끼익

무거운 문이 힘겨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쏟아지는 한낮의 볕과 온기는 서늘한 석재 회의당 안으로 밀려들었다.

―웅성웅성

바난드나 켈리도니온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광경. 최강의 군단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안으로 들어선 네마냐를 바라보았다.

“다들. 머나먼 곳에서 군단을 상대로 동맹을 구하러 온 우리의 친구를 환영하자, 박수!”

한가운데 서 있던 장신의 오체시족 의원 하나가 자신을 반기며 꺼낸 첫 발언이었다.

“와!”

“인간족과 오체시의 화합을 위하여!”

“반란군 군단 놈들을 쳐 죽이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지만 도저히 고블린 출신자들이 내는 소리라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하하……. 별난 광경이로군.”

네마냐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수십 명은 족히 될 법한 고블린 대의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우리 오체나시움 자유국은 나자리안 경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회의장이 워낙 좁아서 2층 별실에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장께선 존대어를 쓸 줄 아시는군요?”

고블린, 딱히 군단만 아니라 이곳의 고블린들도 대부분 존대어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교양인들의 경우엔 이웃 언어도 열심히 배우느라 존대어 개념을 배웁니다. 나름 교재로 일반 주민들에게도 존대어를 보급하려는 중입니다.”

또 하나의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의장의 환대에 응하기 위해 네마냐는 두 손을 맞잡아 인사했다.

“궁벽한 산골에서 갑자기 뜻하지 않은 초대를 받게 되어 놀랐습니다. 다르빌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으신 건가요?”

“예. 그러니 산골 영지엔 얼마 계시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그나루르그. 민회 의장입니다.”

원래 민회 의장이 그런 이름이었던가? 의아해진 네마냐가 다시 초대장을 열어 이름을 확인했다.

“절 초빙했던 분은 분명 의장 슈라크라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잘 모르시겠군요. 저희는 반년에 한 번씩 선거로 대의원과 의장을 교체합니다. 마침 며칠 전에 바뀌어서 이름이 다를 겁니다.”

그러더니 그나루르그 의장은 난간 아래쪽을 향해 슈라크를 불렀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풍성한 흰 수염이 가득한 대의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슈라크는 저쪽입니다. 아마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대관절 무슨 용건으로 저에게 연락하셨나요.”

“그건 나자리안 경께서도 어느 정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같은 뜻으로 나코르잔 쪽에 밀사를 보낸 것 아니었습니까?”

선뜻 의중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진 않는 말투. 네마냐도 속내를 보이는 것은 삼가면서 그나루르그의 생각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제 생각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아니 상관은 없는데, 나코르잔 쪽의 의견을 알 수는 없죠. 일단 종족부터도 사뭇 다르니까요.”

“오니아스 대마법사였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의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80년 전 사람이니까요. 지금은 고블린 세 글자에 사람들의 이목과 원한이 집중된 시기 아닙니까.”

“압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한숨을 쉬는 그나루르그. 그는 얘기가 조금 막힌 것 같다며 식사를 권했다. 이야기가 왠지 길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을 그도 느낀 모양이었다.

“오시는 길에 식사는 하셨답니까.”

“마지막 두 끼는 못 지었군요.”

“저런. 변변치 않지만 좀 대접을 할 테니 천천히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의장이 대접한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이곳에 온 뒤로는 매운맛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매운맛을 낼 수 있는 고추 등의 향신료는 너무 비쌌다.

“여기 음식은 하나같이 고급 음식이군요. 맵고 짜고. 영지에서도 욕심을 못 냈던 음식인데.”

“저런, 너무 간이 셉니까? 저희들이 좀 강렬한 맛을 좋아하다 보니.”

“아니요, 아니요. 너무 좋다는 얘깁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맛이거든요.”

향신료를 맘껏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란 걸 새삼 느껴 보는 네마냐. 어떻게 이렇게 대량의 향신료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것일까.

“향신료를 구할 수 있는 유통로가 있습니까? 최근에는 군단이 등장하면서 거의 막힌 줄 알았는데.”

“아, 이곳도 마냥 넉넉하진 않습니다. 자급할 정도는 되는 정도랄까요. 서쪽 평지를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호수가 나오는데, 그 건너편으로 무역로가 이어진 거죠.”

사소한 대화 같지만 네마냐는 자세하게 기억해 두었다. 향신료. 분명 자신의 기억하기로 지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교역 상품이었다.

‘원래 사용하던 교역로는 현재 군단이 점령했지. 향신료 무역의 이익은 상당하니까 차후 나코르잔을 경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것도 좋겠지.’

“자, 그래서…….”

숟갈을 내려놓은 그나루르그가 본론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재 군단의 만행 덕분에 고블린과 인간 사이의 공조는 처음부터 틀어진 상태입니다. 군단에 굴복하는 부족이 늘어가면서 더 심해지고 있죠.”

“지금의 정확한 상태죠.”

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귀공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고 요청드리는 겁니다. 우리 오체나시움은 북쪽 하류, 인간들의 국가는 남쪽 상류에서 군단을 포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음……. 공동 작전을 펼치자는 건가요?”

“상류로 적의 본대를 유인해 발목을 잡아 준다면 정예 병사로 꾸린 우리가 허술한 후방의 적을 부술 겁니다.”

아직 공동 작전은 무리였다. 다르빌을 최종 저지선으로 선택한 것도 매서운 군단의 공세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쳐들어오지 않는 적을 일부러 쳐들어오게 유도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선택지.

‘어쨌든 스킬을 다시 쓸 때가 온 것 같군. 동맹으로서.’

네마냐는 고민하는 얼굴로 손으론 마나를 모아 스킬을 개방했다.

[설득]

[10분 동안 의장 그나루르그가 당신에게 설복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네마냐는 오히려 반대 논리를 전개했다.

“제 생각엔 그렇게 접근하려 들면 필패할 겁니다. 우리가 동맹을 맺어 상대하는 건 당연하지만, 적의 대응에 발걸음을 맞추어 움직여야 합니다.”

“너무 수동적인 움직임 아닙니까. 방어전으로 선회를 하면 차츰 피해가 누적될 텐데요.”

“군단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공격하고 싶은 곳이 어딜까요. 추측이 가십니까?”

그나루르그는 무어라 다른 대답 없이 잠자코 이야기를 기다렸다. 처음의 자신만만했던 태도에 비하면 심심한 반응이다. 이것이 설득의 효과인가.

“…….”

“저들이 지금 가장 노리는 건 당신들 오체나시움, 그리고 나코르잔이야.”

생각해 보면 초반엔 줄곧 그랬다. 틀려먹어 버린 전생의 흐름이 그랬다. 전쟁 초반엔 어디까지나 우레이미야 군단은 인간들에게 소수 병력만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코르잔의 우수한 인적 자원과 향신료 무역로를 독점하는 걸 우선시했던 거겠지.’

일단 고블린 내부의 저항자가 사라지면, 군단의 고블린 지배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누구도 그걸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직접적이진 않아도 네마냐는 에둘러서 그런 위협을 이야기했다.

“결국은 초반부 전쟁에서 군단의 검은 다르빌이 아니라 나코르잔의 반항자를 향할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못 할 전력으로.”

“그게…… 확신할 수 있는 건가?”

“정말 온다면 혼자서 막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정공법으로 야전에 도전한다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막을 수 없겠지. 하지만 놈들이 그런 머리 좋은 기만책을 쓸 수 있을까, 과연.”

물론이지. 마나 원천을 마비시킬 뻔했다지만, 고작 일천의 병력을 버리듯 투입한 다르빌 전투부터가 그랬지.

“우선, 여러분들이 숫자는 적어도 하나같이 정예병 아닙니까. 버텨 주세요. 우선 버티는 동안, 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건네줄 테니까.”

“돌파구……?”

“기술력이 조악하다지만 인간들의 마나 공학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 이 기회에 보여 드리죠.”

말을 마친 네마냐는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해 둔 계획들을 찬찬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 8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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