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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81화 (80/200)

81화 나코르잔 도착

아무런 짐도 없이 두 사람만을 실은 마차는 광란에 가깝게 질주했다. 이 세계에 도착한 뒤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멀미 기운. 거친 진동이 전해지는 마차에서 네마냐는 줄곧 밖을 보고 있었다.

“몇 시간은 족히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지나는 사람이 없네. 분명히 슈니크 영지 근처일 텐데.”

어지럼증을 참아내고 계속 지켜봤지만, 반대편에선 마차는커녕 말 한 마리, 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워, 워.”

―히힝

말이 힘겨운 소리를 냈고, 마차는 점차 속도를 늦추었다. 때가 벌써 오후가 깊어가고 있었다. 거의 이틀 만에 수백km를 주파한 것이다.

“읏차.”

마차에서 뛰어내린 네마냐는 마차 앞으로 다시 움직였다. 뒤쪽만 보다가 앞쪽을 보니 어지럼이 좀 줄어들고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

또 하나의 참극을 지켜보는 일만 아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을 것이다. 마부석에 잠자코 앉아 있는 바쿠헨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무겁게 버티고 앉아 북동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르함……. 우테이스, 네가 가기로 했던 곳이지. 이제는 없어져 버렸다만.”

“그……. 음, 그렇네. 저곳도 불타 버렸어. 이 동네에선 자주 있는 일인 거야?”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네마냐가 바라보고 있는 바쿠헨은 경악으로 물든 얼굴이었으니까.

“협곡의 부족들이 이렇게까지 날뛴 건 처음이었어. 골짜기에서 산적으로 날뛰긴 했어도 먹을 것을 주기로 협정한 뒤론 괜찮았는데.”

치가 떨리는 것처럼 고삐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네마냐는 그 광경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땀이 가득 찬 손에서, 바쿠헨이 장갑을 벗다가 드러난 황금색 인장 반지를.

‘아까 거기서 헤어질 때 나누던 인사는 용병대 선후임이 나누던 인사는 아니었지. 차라리 영주와 가신에 가까웠으니.’

네마냐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모른 체 시선을 돌렸다. 아래쪽 계곡 지역에선 축제라도 열었는지 연기와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럼, 난 이제 가 봐야겠어. 막판에 심란한 일이 많은데도 도움을 주지 못해서 곤란하군.”

“그르함으로 가지 않아도 되겠어? 아니, 거기로 애초에 가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바쿠헨은 부질없게도 그르함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누는 시선에서 이미 그런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다.

“조금 더 깊은 지역에 들어갈 일이 있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거든. 내 지위와 명예를 걸고.”

“지위와 명예라…….”

바쿠헨이 한숨을 퍽 내쉬며, 역시 잿더미가 된 성채를 바라보았다.

“늦지 않게 결단할 줄 아는 네가 처음으로 부러웠다. 어서 가 봐. 협곡에 있는 놈들은 지금 축제 분위기라 그나마 통과하긴 쉬울 테니까.”

“그래, 고마웠어. 바쿠헨, 대장이라고 하나?”

“쿡……. 어차피 너한텐 남일 텐데 이름을 뭘 고민하고 있어?”

“그렇긴 하지.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꼭 서로 도왔으면 싶어. 자.”

네마냐는 다가가서 악수를 청했다. 바쿠헨 역시 악수하면서 뭔가 다른 할 말이 생긴 모양이지만, 끝내 입을 열진 않았다.

“나는 그럼 가 볼게. 얼른 돌아가 봐.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걸어가는 녀석이 마차 탄 놈을 걱정하는 거냐? 오지랖도 넓다.”

“그럼, 이 험난한 길에 오지랖이라도 있어야 함께 미친 짓을 해 줄 친구도 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웃음을 교환한 뒤, 네마냐는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이미 2/3 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아직 위험천만한 길은 많이 남아 있었다.

“후……. 꼼짝없이 도보로 가게 생겼군.”

“어이, 설마 맨발로 걸어갈 생각이었냐.”

“어?”

“받아.”

갑자기 뒤편에서 날아온 물체를 받아보니 말채찍이었다. 바쿠헨은 빠른 손놀림으로 마차를 끌던 말 두 필 중 한 마리를 풀어주었다.

“이 은혜는 곱절로 갚으라고, 우테이스.”

네마냐가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돌리는 바쿠헨. 잠시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마저 한마디를 던졌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이름을 밝혀야 할 거다!”

말 한 필과 마차 한 대를 데리고 급하게 떠나가는 잠깐의 인연을 바라보며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가 된다면 이름 없는 용병으로서가 아니라 동료로 다시 전장에 설 때겠지.”

그러곤 재빠른 손놀림으로 말의 고삐를 잡아챘다. 네마냐의 뜻을 알아차린 영리한 말이 다가와 손을 받아들였다. 협곡의 중턱인 이곳으로부터 나코르잔으로 흘러가는 이라크시스 하류까지는 꼬박 반나절은 달려야 했다.

“자, 그럼 다시 힘을 내보자고, 네마냐!”

양손으로 뺨을 후려치며 한 명의 그림자가 빠르게 산길을 내달렸다. 거센 호령과 함께.

* * *

이라크시스 강변.

협곡 지역을 점령했다는 현지 고블린 부족은 네마냐를 눈치채지 못했다. 고삐를 잡은 채 다시 골짜기 위를 바라보는 네마냐는 땀으로 흥건했다.

“휴, 한탕 해서 축제가 벌어진 게 다행이지. 아예 통과도 못 할 뻔했네.”

소매로 땀을 훔쳐낸 네마냐로선 다행히도 강변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제는 중부 산맥이 끝나고 서쪽으로 넓은 평야가 열려 있었다.

“그럼, 가 보자. 아마 도시 근처까지만 가면 거기도 군대가 있을 테니 안전할 거야.”

말을 건넬 상대가 없으니 자연스레, 어느 순간부턴 말에게 자꾸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마 말도 없었다면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블린에 쫓기는 일정만 아니었어도 이런 절경은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쩝.”

북서쪽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다시 이어진다. ‘우레이마’라고 부르는 미지의 산맥이었다. 고블린의 군벌화와 대전쟁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서쪽으로는 아마 긴 평야가 바다처럼 큰 호수까지 막힘 없이 뻗었다고 했지. 군단이 이런 풍요로운 지대를 미처 장악하지 못한 게 다행이면 다행이군.”

여기에 직접 오기 전까지는 이라크시스 강 하류가 이렇게까지 비옥할 줄은 몰랐다. 낮은 둔덕 너머로 경작지로 쓸 만한 습지대도 널려 있다. 자연적으로 자라났을 나무도 풍성하게 열매가 열려 있었다.

“만약에 나코르잔이 무너진다고 해도 정말 큰일 나겠는데.”

고블린들이 강 하류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군단에 저항하는 고블린 최후의 보루뿐이었다. 상류가 살아남으려고 해도 반드시 하류에서 놈들을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응?”

그때 심상치 않은 느낌이 전해졌다. 단순한 직감이라기보다는 파동과 같은 감각이었다. 잠시 고삐를 잡고 말을 멈춘 네마냐는 눈을 감고 기운을 느꼈다.

“무척…… 흥분하고도 들뜬 마나로군.”

그 정도쯤 되자 비로소 후방에서부터 요란스러운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편자가 단단한 강바닥을 두드리며 달리는 소리. 그 불길한 소린 회귀한 뒤로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고블린 기병대!”

고삐를 당기며 급하게 뒤로 돌아섰다. 이라크시스 강이 우레이마와 중부 산맥의 사이로 굽이치며 흘러나오는 계곡.

―두두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탈 짐승 픽스를 탄 고블린 기병대가 나타났다. 첫 번째 삶에서도 후반부에나 볼 수 있었던 고블린 정예 병력이다. 전생의 마지막에 바가반드를 습격했던 고블린들이 바로 이 기병대였다.

“쳇, 하필이면 혼자 있을 때 저놈들이 나타나다니. 운도 지지리도 좋군.”

지리적 위치로 보면 저 기병대는 북부 산악 군단이라고 하는 부족에서 나온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놀라운 점은 아니었다.

“설마 지금까지 상류 지역이 안전한 이유는…….”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었지만 몹시도 설득력이 높은 전제가 떠올랐다. 네마냐는 인정하기 싫은 감정과 함께 애써 떠올린 전제를 구겨 버렸다.

[고블린 전쟁의 다른 측면]

하지만 임무를 알리는 창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생각이 무언가 암시가 된다는 의미였다.

“아, 젠장.”

더는 느긋함을 부릴 수 없었다. 힘차게 말을 재촉하며 전속력을 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말의 다리가 픽스보다 훨씬 길다는 점이다. 산지에선 픽스가 기동성이나 지구력에서 월등하다. 하지만 평지에선 말이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보인다!”

후방 멀리 고블린 기병대가 따라붙은 채로 네마냐의 말은 빠르게 강변을 질주했다. 바쿠헨이 넘겨준 말은 그냥 마차를 끌던 것과 달리 상당한 준마였다.

“이대로만 죽 달리면 나코르잔이 나온다고 했으니까, 제발 매복조만 없어라.”

다르빌 전투와 직후 추격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강변의 모래밭은 안전하지만 바로 그 곁엔 울창한 수풀이 높게 자라 있었다. 그 안엔 딱 고블린이 긴 무기를 들고 숨어 있기 좋았다.

“이럇!”

네마냐는 당연하게 모래밭으로 계속 이동했다. 고블린 기병대들도 열심히 재주껏 짐승을 부리며 따라왔다. 하지만 평야에서 말을 쫓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우!”

“잡아라, 인간!”

그러나 어째선지 고블린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네마냐는 계속 달렸다.

[탐지]

순간적으로 쓴 탐지에선 고블린만의 마나 파동이 물줄기 위에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수상 부대! 놈들이 수적까지 부리는 건가?”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다. 뗏목도 아니고 어설프지만 군함처럼 생긴 작은 배, 노와 닻, 돛을 모두 갖추었다. 세 척의 배가 그렇게 고블린을 가득 실은 채 네마냐를 따라왔다.

“제길, 물을 타고 흐르는 배를 따돌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강변을 벗어날 수도 없고.”

외로운 안장에 의지한 채 속도를 높여 보았다. 그러나 급류를 타고 돛을 펼치고 노까지 젓는 배를 어찌 따돌리겠는가.

“개자식들, 이쪽으론 아주 별의별 것을 다 만들어 놨구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고블린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서부 사투리가 다는 아니어도 얼추 이해되었다.

“잡아, 잡아!”

“분명 반란자들에게 가는 첩자임이 틀림없다, 취익!”

“활이다, 활, 이놈들아!”

머지않아 대충 쏘아붙이는 화살이 귓전으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단숨에 신경이 곤두섰다. 네마냐는 몸을 바짝 말에 붙이고 말을 더 재촉했다.

―히힝!

[카스텔리온](Kastellion)

그간 네마냐의 마나를 흡수하고 있던 백마정석이 단숨에 작은 벽을 만들어 냈다. 거대하고 강력한 실드 마법인 카스트라(Kastra)의 소규모 버전이었다.

―팅, 팅!

조잡한 화살들이 연이어 날아와 제법 위험할 뻔했지만, 실드 덕분에 남김없이 튕길 수 있었다. 화살은 다행히도 피했다. 하지만 점점 고블린이 탄 배가 가까워졌다. 그림자가 네마냐에게 드리울 정도인데, 말은 점점 호흡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힘이 빠지면 안 되는데. 더 달릴 수도 없고.”

수상 부대를 따돌리려면 강변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 말인즉슨 덤불 지대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그만 빠져나가자!”

옥죄던 고삐를 조금 풀어주며 속도를 늦춘 후, 네마냐의 말은 그대로 덤불로 뛰어들었다.

―부스럭

“다행이군, 여기까진 고블린 보병이 오진 않은 모양…….”

“끼에엑!”

“죽어라!”

어설픈 말투와 함께 기다란 장대를 가진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무척이나 근거리에서 달려든 것이라 피할 수 없었다.

―푸히힝!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흙먼지가 일었다. 고블린 병사 하나가 내지른 장대에 스텝이 꼬인 말이 그만 무너졌고, 네마냐와 말, 고블린 병사 두엇이 뒤엉켜 버렸다.

“욱!”

허리와 갈비의 뼈마디가 부서진 듯한 격렬한 통증이 따랐다. 하지만 그 통증을 신경쓰다간 목이 날아갈 것이다. 네마냐는 곧바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어딜 감히, 죽어 개새끼들!”

“끼아아악!”

“비명도 징그럽네, 개자식들.”

“인간이 감히!”

고블린 하나가 다시 도리깨 같은 장대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검신을 치켜들며 그 힘을 빗겨나가게 만든 네마냐. 거리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바로 검을 들어 올려 힘껏 집어던졌다.

“켁!”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가 꿰뚫린 고블린 병사 하나가 다시 쓰러졌다.

“어떻게 해냈군. 운빨이 반은 넘은 것 같지만.”

그러나 수풀 바로 바깥으로 그새 고블린 함선이 닿으려 했다. 말도 자신도 다리가 부상을 입은 느낌이다. 이 조건에선 당장 저 부대를 피해 도망할 수도 없다.

“하……. 오늘은 기어코 운빨을 다할 것인지 죽음을 물리칠 것인지 테스트하게 생겼네.”

죽은 고블린에게서 검을 뽑아낸 천천히 네마냐는 검을 들어 올렸다.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으로 시스템의 보호라도 기원하는 찰나.

“쏴라!”

“반란군을 쳐라!”

“우우!”

다른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보던 앞이 아니라 뒤에서 들렸다. 아, 사실은 이미 포위를 당한 상태였던가. 절망이 들었다. 곧이어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 비명이 들려왔다.

“응, 비명?”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에겐 관심도 없이 두 세력이 싸우는 형세였다. 비로소 눈을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네마냐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황토색 바탕에 ‘자유’ 두 글자를 새겨놓은 간단한 깃발이었다. 단정하고 통일된 무장을 입은 고블린 창병대가 전진했다. 깃발과 나팔의 신호에 따라 대열은 일정했다. 그리고…….

“철쇄를 들어 올려라, 녀석들아!”

“올린다, 올린다!”

폐허인 줄로만 알았던 낡은 탑에서 무언가 맷돌 같은 게 돌아가며, 물길은 가로막혔다.

“부딪친다!”

“놈들 배를 집중적으로 공격해라! 탈출하는 놈도 죽여! 모조리!”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고블린 자유군은 수백 명으로까지 불어난 추격대를 농락했다. 완벽하게 깔끔한 솜씨였다. 네마냐는 일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장면에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이게……. 겨우 소수인 저항군 고블린의 힘이라고? 대체…….”

자신에게 갑자기 날아온 편지는 결코 단순한 어그로가 아니었다는 확실한 증거. 그토록 찾고 찾았던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

“드디어!”

네마냐는 젖은 머리칼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확신에 찬 표정으로 황홀함에 빠졌다. 덩그러니 남은 그의 곁에는 다친 말 한 마리만이 웅크린 채 지키고 있었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8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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