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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77화 (76/200)

77화

다르빌의 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세는 바쁘게 돌아갔다. 척후와 변경 감시대에서 매일같이 고블린의 기동에 관한 보고가 올라왔다. 파발마가 지날 때마다 푸닥거리를 겪어 본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상단에서 찾아왔는데 항구 시설 재건이 거의 완료됐대. 내일부터는 일 목표량의 절반 정도가 도착할 거라는데.”

며칠 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네마냐는 읽던 책을 소리 나도록 접으며 하라드의 소식을 반겼다.

“좀 늦었지만 잘됐어. 우리 영지에서 갖다 대는 것도 한계가 오던 상태인데.”

“아라가트의 건설 장비가 결정적이었지. 생각보단 무척 협조적인 모양이던데? 며칠 만에 진행이 엄청 빨라졌거든.”

마탑의 마법으로 강화된 건설 장비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만큼 절약된 인적, 물적 자원이 콜라케르트 재건 속도를 높이는 데 투입됐다.

“음, 생각보다 쉬웠지. 제국의 압박이 크기도 했지만. 그 말카시안이 짜증이 나도 억지로 웃는 척하는 걸 너도 봤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듯한 하라드의 말에 네마냐는 오히려 의아했다. 말카시안이 마탑의 유망주라지만 북쪽 사막 지대까지 이름을 떨쳤던가? 거기에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아, 어떻게 아느냐고? 그 재수 없는 녀석, 우리 학교에 고문으로 왔었거든. 에데시온 아카데미아랑 마탑이랑 곧 갈등이 벌어져서 돌아갔지만.”

“맞다. 아카데미아끼리 인적 교류 제도가 있었지. 그런데 갈등?”

“응. 마법 연구 자료를 빼돌리려다가 발각당했거든. 마탑 차원의 시도란 게 알려져서 결국 두 학교는 관계를 끊었어.”

“아, 그렇게 된 거군.”

자신이 미처 모르는 곳에서도 이미 마탑은 악명을 쌓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은 정보군, 스승님. 참고해야겠어.”

네마냐는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외투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보던 하라드가 따라나서려 하자 네마냐가 만류했다.

“여기 있어. 나는 바흐람을 만나러 잠시 나갔다 올 거야. 도시 밖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정보대 때문이었군. 안전하게 여기서 보는 게 낫지 않아? 아직 도시 밖은 치안이 엉망이야.”

걱정은 고마우나 코웃음이 나올 일이다. 전직 정예 기사단 출신 정보대가 기껏해야 고블린 산적을 두려워할 일은 없었다.

“그냥 정보대의 신상은 노출하지 않는 게 좋아서 그런 거야. 그게 바로 생명과 직결되니까. 비밀리에 접선하기로 한 장소가 따로 있어.”

“용의주도하셔라, 우리 영주님.”

지독하다는 듯한 녀석의 반응에 네마냐는 웃음으로 답하며 이마를 가볍게 톡 쳐 줬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자재들 도착하면 바로 현장으로 투입해 줘.”

“제길, 마법 대학 나와서 마법보단 공사 현장 업무 처리하는 실력만 늘고 있다니.”

“직장이 있는 게 어디냐. 그럼 난 간다.”

망토를 두르곤 목덜미 왼쪽 아랫부분의 양쪽 끝을 파불라라고 부르는 핀으로 연결했다. 짙은 초록색 계열의 망토는 수풀과 뒤섞여 시선을 많이 끌지 않을 것이다. 사냥 때 쓰는 흔한 모자마저 쓰자 한층 더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완전 무장까지 하니까 더 못 알아보겠네. 잘하고 와.”

“그럼, 수고.”

작은 건물을 나서자 도로를 오가는 수레 행렬이 복잡했다. 다르빌 도시의 문장을 새긴 수레들이 연신 온갖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항구가 채 재건되지 않았는데도 백여 대는 족히 되어 보였다.

“지금 부족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곧 해소되겠지. 마탑에서까지 도와준 건 다행이었어.”

다른 쪽 골목에선 제국 총독부가 파견한 인력이 곳곳에 쌓인 잿더미를 치우고 거리를 정돈하는 중이었다.

‘두 주 정도면 정상화되겠지. 그렇게 짧게 해도 다르빌 재건이 시작되려면 여전히 시간이 모자라지만.’

총독부에서 발행한 통행증을 보여 주고 성문을 나섰다. 말고삐를 틀어쥐고 얼마나 길을 따라갔을까. 길가 한 편의 나뭇가지에 매인 노란색 끈을 맞닥뜨렸다. 나뭇가지 끝의 매듭을 손으로 당겨 풀어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침 먼저 도착한 모양이군.”

말에서 내렸다. 수풀은 사람이 지나가지 못하는 길처럼 보였지만, 나뭇가지를 살짝 들어 올리면 아주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정보대에서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갓길이란 뜻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고 길을 걸어 들어갔을까.

“주군.”

작은 공터를 맞닥뜨리자마자 프리기아 모자를 쓴 평범한 여행객 차림의 일행들이 무릎을 꿇으며 그를 맞았다. 정보대를 식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망토를 고정하는 파불라의 녹색 방패 무늬뿐이었다.

“수고 많았어, 다들. 내가 부탁한 걸 그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다르빌에서 소모한 시간이 마냥 헛수고는 아니게 됐다.”

“어디까지나 계약에 따른 의무를 다하는 것뿐입니다.”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잡아낼 수 없는 무뚝뚝한 바흐람은 무릎을 털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네마냐는 기다렸다는 듯 상의 주머니 한 곳에 욱여넣었던 꾸러미를 꺼냈다.

“수고했어.”

마치 처음 만났을 당시, 바누라트가 자신에게 주던 것처럼 꾸러미를 던졌다. 바흐람은 눈 한 번 미동 없이 주머니를 두 손으로 잡아채듯 받잡았다.

“제가 말씀드린 자금보다는 훨씬 많군요.”

“좀 더 두둑하지? 영지 사정이 생각보다 빨리 개선돼서 기왕이면 넉넉히 주려고.”

“이것도 주셨군요.”

그새 주머니를 열어 본 바흐람의 손 위에는 금화도 은화도 아닌 원형의 금속 조각이 있었다. 방패 형태의 틀 안에 X자 표식만이 들어간 기초적인 형태였지만, 그건 분명히 가문과 영지를 상징하는 ‘문장’(Coat of arms)이었다.

“이런 문장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제게 주신 걸 보면 바가반드 문장입니까?”

“벌써 봤군. 천천히 얘기하려고 했더니. 맞아, 이번에 새로 제정한 영지 문장이야. 공식 석상에 설 땐 정보대 문장 말고 그걸 차도록 해.”

“세련되어 보이긴 하군요.”

세련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아직까지 문장을 쓰고 있는 그 어느 동네도 이 세련된 형태를 쓰지는 않았으니까. 지금 네마냐가 가져온 건 앞으로 족히 30년 뒤에나 등장할 미래의 디자인이었다.

“이제 그걸로 우리 영지 표식을 삼을 거야. 앞으로 각지의 에살하톤 상단에서 그 문장을 보여 주면 지부에선 50개, 본부에선 300개까지의 은화를 받을 수 있어.”

“무한정으로 말입니까?”

벼락이 떨어져도 변할 것 같지 않던 얼굴에 드디어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돈만 넉넉하다면 정보를 구하는 업무는 훨씬 쉬워진다. 네마냐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카톤 측과 협의해서 영지에서 차후 대금을 지급할 거야. 너무 많이는 쓰지 말고. 영지 수입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한계는 있으니까.”

“영주님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군요. 단시일 내에 이렇게 빚 청산은 물론 작전비까지…….”

정보대, 더 정확하게는 나샤와 생존자들. 그들은 다르빌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반대했다. 부족한 영지 재정과 임박한 침략을 생각해 보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흐응, 그러면 다르빌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건 아직도 마찬가진가?”

네마냐가 떠보듯 의견을 물어보자 바흐람은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해선 안 될 선택은 아닙니다. 하지만 곧 쳐들어올 적의 코앞에서 도시를 재건한다는 건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래. 그것이 네마냐가 그 의심 많고 독립성을 강조하는 정보대에 첫 장기 임무를 붙여 준 이유였다. 네마냐는 깍지 낀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살짝 놀리는 듯한 말투로 바흐람에게 물었다.

“자, 그래서 정보를 구해 보니까 생각이 어떻게 됐어? 아직도 단기전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이내 묘한 표정이 된 바흐람은 부하들에게 그만 가 봐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요원들이 공터 너머 수풀로 사라지자 정보 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뭉치를 네마냐에게 건넸다. 비밀 엄수를 위해 방패 문양의 인장을 새긴 봉인이 있었다.

“비밀 엄수를 할 정도의 서류야?”

“나중에 보셔도 괜찮습니다. 나코르잔까지는 길이 끊겨 직접 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상인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교류를 할 순 있었습니다.”

“그럼, 이게 그…….”

굳이 주저할 필요도 없이 봉인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우악스럽긴 하지만 숲속 공터에서 봉인 제거용 칼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몇 번 접힌 종이를 펼치니 조금은 낯선 필체의 글씨들이 춤을 추듯 지면 위에 흘러내렸다.

“예상대로네.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터질 분위기라니. 진짜 나코르잔 영주의 친필 서한을 받는 건 예상 못 했지만.”

확인을 마친 네마냐는 두루마리를 접어 허리춤에 끼우며 바흐람을 쳐다보았다. 정보대장은 벌써 평정을 되찾았는지 회색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블린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으리란 것을 어찌 확신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추측을 하신 겁니까?”

“하하, 그거 칭찬이겠지?”

‘진짜, 저 회색 눈동자는 무표정하면 더 무서워진다니까. 아군인 게 다행이군.’

진땀이 흐를 것 같은 속내를 애써 감춘 채, 고블린 분쟁에 대한 자신의 추측이 가능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물론 전부 하나같이 나중에 알아본 자료로 지어내거나 짜 맞춘 것들이다. 양심에 찔리지도 않냐고? 이봐, 그런 걸 생각하고 앉았으면 벌써 고블린에게 두 번 더 찔려 죽었을 거다.

“간단한 추측이야. 원래 고블린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생활하는 종족이잖아. 지금처럼 전투만을 위한 군단으로 바뀐 것은 소위 동부 군단이라는 놈들 때문이고.”

“오무르타그라는 고블린 지도자 이야긴 저희도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바흐람은 잠시 모닥불 가까이에 앉기를 청하며 대화를 자연스레 이어 나갔다. 굳이 사양할 것은 없었다. 다르빌 문제는 거의 해결된 데다가 하라드 녀석으로도 나머지 문제는 충분했으니까. 즉, 시간은 넉넉했다. 바흐람이 끓는 물로 내린 차를 건네주었다.

“좀 쌀쌀했는데 잘됐네. 고마워.”

잠시 목을 축이며 네마냐는 바흐람을 흘깃 쳐다보았다. 의아한 눈빛을 한 무심한 기사가 맞받아쳤다.

“다 드시거든 말씀하시지요. 뜨거운 물에 입 데이십니다.”

“……별로 말할 것도 없이 하찮은 이야기야. 고블린 통합 전쟁을 기록한 80년 전 연대기를 하나 찾은 게 결정적이었지.”

“대마법사 오니아스(Onias)가 남긴 「우리 세계 바깥의 역사」를 읽으셨나 봅니다. 고블린 통합 전쟁은 사람들이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일 텐데. 저도 이름만 알고 있죠.”

네마냐는 피식 웃으면서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그걸로 모닥불의 약해진 불을 들쑤시니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화력이 다시 강해졌다.

“고블린이 싫다고 그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외면해선 안 되겠지. 자네들 정보 부대도 유념해 두는 게 좋아. 적을 정말 싫어하려거든, 제대로 알아야지.”

아직 이서준의 몸으로 살 때 흔한 자기 계발서에서 지겹게 보던 문장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자신을 알고 남을 알면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는 이치였던가.

“중요한 건, 바로 그 오니아스의 연대기에 나코르잔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야. 고블린 세계에서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도시. 고블린 자유국의 수도.”

“고블린들이 자유와 해방을 주장했다니, 어째서 제 고향 사람들이 그 책을 괴서라고 불태웠는지 알 만하군요.”

바흐람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경멸감을 토해 냈다. 색다른 고블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뒤틀리는 듯한 감정을 토하는 건지. 짐작은 가지만 그래선 안 되는데. 네마냐는 무어라 당부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저 고통 속에 쌓인 좌절을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데 아직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겠지. PTSD 치료법이라도 알고 있으면 좋으련만.’

나샤와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저 살아남든지 고블린과 싸우든지, 앞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네마냐 역시 얼마든지 돕겠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않는 한, 마음 안의 상처는 다시 터질 것이다.

“하긴, 이번엔 당신들에게 무리한 일을 맡기지 않았나 싶어. 고블린 건은 아직 심리적으로 극복하기엔 너무 최근 일이니까.”

아무리 싸움에 초연하고 목숨을 내던지는데 익숙해진 집단이라고 해도, PTSD까지 없을 순 없다.

‘철위 기사단 출신 사람들이 냉소하거나 고블린 문제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결국 PTSD의 일환이겠지. 조심해야겠어.’

주철로 대충 두드려 만든 조잡한 찻잔을 내려 두며 자리를 일어섰다. 바흐람도 따라서 일어났다.

“이 문제는 지금부터 내가 직접 조사를 할게. 바흐람, 자네는 지금부터 정보대를 이끌고 우리 영지의 안전과 관련된 첩보에 집중하도록.”

“설마, 호위도 없이 고블린 저항군의 본거지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수긍하지도 않지만 역시 부정하지도 않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네마냐는 편지를 들어 보여 주었다. 무척이나 꼬부랑거리는 글씨의 고블린 언어로 쓰인 한 단락 아래, 하야스단 방언으로 쓰인 짤막한 번역문이 있었다. 고블린어로 쓰인 그의 이름의 오탈자만 빼면 완벽했다.

[투쟁하는 오체나시움 자유국은 바가반드의 영웅인 니마니아 나자리아 백작을 초청합니다. 인간과 고블린 모두의 진정한 적에 대하여 기탄없이 얘기하기를 희망합니다.

- 오체나시움 민의회 의장 슈라크]

“역시, 나는 현장에서 뛰어야 제격인가 봐.”

네마냐가 민망할 정도로 바흐람은 여전히 무표정을 지켰다. 그래, 뭐 어때. 열심히 구르다 보면 언젠간 저 굳은 벽도 허물어지겠지. 어쨌건 이젠 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순간이었다.

- 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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