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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61화 (60/200)

61화

어둠이 내리는 들판.

좌측의 깎아지르는 산악과 우측의 강변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초지가 보였다. 눈앞으로는 수십의 고블린 병사들이 진영을 펼친 채 맞이하고 있었다.

“손님맞이라도 나오신 모양이군.”

엘레나가 중얼거리며 창대를 꽉 잡았다. 언제든 달려 나갈 준비를 하는 참이었다. 진정하라며 네마냐가 팔을 붙들었다.

“나머지가 도망갈 시간을 벌겠다는 심산이겠지. 저 정도면 아마 이번 침략군 중에는 최정예가 아닐까 싶지만.”

일반적인 교전이었으면 궁수만 투입해서 탈짐승만 겨냥해도 기세가 꺾일 것이다. 다만 놈들은 대부분 보병이었다.

“인간! 나와 결투하여 승부를 가릴 자 없나?”

지휘관으로 보이는 고블린 하나가 긴 창을 집어 들고 앞으로 나왔다. 자못 비장하군. 하지만 무슨 속셈인지는 뻔했다. 도주시킨 병력의 상당수가 도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본다는 거다.

‘머리는 좀 쓰긴 했는데 수가 얕군.’

머리가 돌아가는 고블린이 있다면 누가 봐도 수상한 산보단 강변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기사 20여 명이 산등성이를 향해 자신들을 밀어붙이는 것만 보게 될 테다.

“고블린 대장! 네 이름이 뭐냐?”

그래도 자신이 그리엘크를 상대로 했듯,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나마 자신을 내던진 자세는 인정할 만했다. 흥미를 유발한 상대에게 정체를 물었다. 잠시 침묵하는가 싶던 고블린 대장의 목소리가 짙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그림보쉬……. 군단의 유격대장이다. 누구 없느냐? 명예롭게 싸울 인간은!”

“내가 나갈게.”

다시금 엘레나의 비장한 목소리. 네마냐가 오히려 난처해했다.

“……굳이 간부인 네가 나설 필요가 있나? 놈들이 오히려 악다구니처럼 달려들 텐데.”

“맞습니다, 부단장. 그것보단 저희 기사들이 상대하는 게 격에도 맞습니다.”

주위 기사들의 만류에도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투구와 갑주 때문에 그리 쉽게 큰 고갯짓을 하기 어려울 텐데 의지가 결연했다.

“놈은 일군의 대장으로 국경을 넘어서 숱한 양민을 학살했지. 잘못했으면 다르빌도 파괴되는 건 물론 성소까지 더러워질 뻔했어.”

말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검을 뽑는 엘레나.

“성국 방위를 책임진 기사단 간부로서 이건 이미 씻을 수 없지. 대장을 직접 처단해서 조금이나마 갚겠어.”

팔을 흔들고 목을 저으면서 준비를 하는 엘레나. 기사의 책임 의식까지 이르렀다면 이건 더는 효율의 개념 문제가 아니다. 네마냐도 굳이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간부가 직접 쓰러트린다면 기사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뼛속까지 느낄 테니.’

잠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네마냐는 두 손바닥을 들어 펼쳐 보였다. 자신에게 이의가 없다는 뜻을 표시하는 제스처였다.

“부단장의 뜻대로. 오래 기다릴 수 없는 것 알지? 10분 뒤에는 결투에 상관없이 밀고 들어갈 거야. 너무 지체할 순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들어오기도 전에 끝날 테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에서 내린 엘레나는 창을 들고 달려 나갔다. 그녀가 주로 의전용 세검을 다루었던지라 주변에선 걱정하는 눈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우습게도 그녀가 자유자재로 창을 다루자 다들 놀란 모양이었다.

‘의전용 세검으로 부단장에 초빙을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일각에서 제기된 엘레나의 자격 논란이란 어처구니없는 문제도 곧 진정될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여자란 점을 이용한 악질적인 유언비어였지. 고개를 털며, 네마냐는 옆에 있던 기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간 좀 재 주겠어? 10분 정도.”

“알겠습니다.”

신성 기사 하나가 안장의 주머니에서 새끼줄 한 터럭과 작은 수정을 꺼내 마찰시켰다. 불꽃을 내며 작게 피어오른 화염이 아주 천천히 줄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듭 1개가 타들어 가면 1분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는 간단한 마도구였다.

“헤누크.”

어느새 다른 4개 조의 병력과 합류해 들어온 헤누크가 조용히 다가왔다.

“놈들이 신경 쓰지 못하게 2개 조만 동원해서 멀찍이 후방으로 돌아가도록 해.”

“포위입니까.”

“아마 자기네 대장이 위기에 처하면 악에 받쳐서 달려들 거야. 놈들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달려들면 위험할 수 있어. 그러니 내 검으로 신호를 주면 바로 달려들어 제거하도록.”

침묵의 기사는 흉터로 수놓인 얼굴을 말없이 숙였다. 답례한 네마냐는 엘레나의 결투 장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점차 속도를 낸 말이 득달같이 상대방에게로 쇄도했다.

“큭, 인간 여자가!”

처음 맞부딪힌 충격에 손목이 얼얼했다. 인간 여자가 나오기에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전혀 오산이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배고프다지만 내가, 고블린이 밀린다고? 있을 수 없는 일!’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찼지만 고쳐 잡을 새도 없이 빈틈을 파고드는 창날을 바깥으로 쳐 냈다. 생각보다 실력의 차이가 컸다.

‘내가 전투형보단 지휘형이라지만 그래도 전사형 고블린이거늘. 그래도 밀린단 말인가? 바난드의 검이 얼마나 강한 녀석이기에?’

바난드의 검이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그림보쉬는 이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신성 기사라 오러가 넘쳐흘렀군. 내가 외모로만 평가한 모양이야.”

파고드는 창을 쳐 내면 잠깐이라도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신성 기사는 얼마든지 끊어지지 않는 연속 동작을 사용할 수 있다.

“여유로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닐 텐데, 하!”

엘레나는 반격을 받은 창을 그대로 다시 허점으로 쑤셔 넣었다.

“헉.”

헛숨을 삼키며 고블린 대장은 창대로 다시 밀어냈다. 이렇게 수세에 몰리면 일부러 자신과 호위대가 버티고 선 이유조차 없어진다. 이를 악물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쉽게 당하진 않는다.”

어찌어찌 몇 분이 지나갔다. 엘레나는 매번 허점을 찌르는 예리한 안목으로 내내 우위에 섰다. 하지만 네마냐는 그 압도적인 결투를 보고도 고개를 저었다.

‘인간과 고블린은 다르지. 쓰러트리지 못하는 공세는 의미가 없어.’

기본적으로 고블린은 체급이 다른 데다가 설사 몇 번 칼에 맞는다고 해도 인간과 달리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엘레나의 검술은 상대의 전투 능력을 마비시키는 가벼운 기술 위주라 대형 고블린 상대로는 위력이 매우 약했다.

“고블린의 종자 차이가 이렇게 심할 거라곤 나도 몰랐는데. 엘레나도 이러다간 지치겠어.”

엘레나가 지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검술 이론과 실전으로 단련된 완전판이니까. 다만 지금 상황에서 1:1 결투는 전황이나 작전과는 상관없는 부차적인 문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네마냐는 곁의 신성 기사가 들고 있는 새끼줄을 확인했다. 대략 2/3 가까이가 타들어 갔다. 6분 혹은 6분 30초 정도란 소리지.

‘헤누크는 이제 포진을 마쳤겠지.’

자기네 대장이 밀리는 것에 당황한 고블린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언제든 개입할 듯한 상태였다. 눈을 찌푸려 최대한 시야를 넓힌 네마냐의 시선에 고블린 뒤편으로 달빛에 반사된 금속이 얼핏 보인 것은 그 찰나.

“됐다.”

엘레나가 혹시 잘못되기 전에 개입하는 게……. 엘레나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 이유는 없었다. 네마냐가 손을 들려던 순간,

“흐아앗!”

엘레나의 요란한 목청이 찬 공기가 내려앉은 대기를 갈랐다. 이미 몇 번이고 방어를 뚫고 찔러도 매번 힘이 상쇄되어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해!’

자신 역시 근처 고블린 호위대의 살기가 높아지는 걸 느끼니 초조해지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투 능력 상실 쪽보다는 죽이더라도 과감하게 찔러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그 판단은 적중했다. 처음으로 유효타를 입은 그림보쉬가 동요했다.

“끼익……. 네놈, 제법이다만,”

몇 차례 찔리고 찔린 끝에 정신이 아득해진 그림보쉬가 노성을 터뜨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터뜨리려고 했다.

“크아아!”

정신을 추스르려고 목청을 높인 건 좋았지만, 그와 동시에 집중력이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끝이다!”

가볍게 녀석의 방해를 피한 엘레나의 창은 예리한 끝부분부터 그림보쉬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울컥.

인간의 붉은 피와 보색이 되는 녹색의 피. 엘레나도 산발이 되고 작은 상처가 여러 군데 났다. 녹색과 붉은색은 그렇게나 다르건만, 어두움 속에선 그저 같은 색이었다. 온천이라도 터진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검은 액체가 솟아났다. 창에 꿰인 상태로 고블린 대장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내리는 자비다.”

차가운 어조로 사형선고를 내린 엘레나의 말에 말문조차 닫힌 그림보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보냈다. 신성 기사단 부단장은 창을 버리곤 검을 들었다. 예리한 세검은 너무나도 깔끔하게 목을 잘라 버렸다.

인간 머리의 두 배는 됨 직한 대형 고블린의 머리가 경사진 언덕을 따라 굴러갔다.

“크으윽.”

“우아아아!”

고블린 호위대는 잠시 자신의 ‘지휘관이었던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더니 곧 울분을 토해 냈다.

“우오오, 죽어라, 인간!”

“같이 죽자!”

빠르게 주변을 둘러싸고 달려드는 고블린들. 이 상황을 충분히 예상한 엘레나는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곤 남는 손에 창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걱정은 단 한 방울만큼도 눈빛에 담겨 있지 않았다.

―퍽.

엘레나에게 가장 가까이 달려들던 녀석은 검을 쥔 채로 후방으로 날아갔다. 정수리에 발광하는 검이 꽂힌 채로.

“괜찮나, 엘레나?”

네마냐가 순식간에 옆으로 달라붙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후방에서 비밀리에 숨어든 헤누크의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적을 섬멸해라!”

헤누크의 지시에 따라 바가반드 기사들은 첫 작전을 수행했다. 어두워서 겨냥이 힘들기에 창이나 검은 들지 않았다. 다만 한 손에 들 수 있는 메이스로 머리건 몸통이건 고블린의 몸체를 닥치는 대로 터뜨릴 뿐이었다.

“꿰에엑!”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소리와 피가 목구멍으로 끓어오르는 소리로 곳곳이 요란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몰아쉴 권리조차 보장받을 수는 없었다.

“잘 안 보이면 그냥 말로 치어 버려라!”

―퍽.

첫 전투에 흥분한 기사들이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쓰러진 고블린들은 말발굽에 마구잡이로 밟히며 그나마도 고통스레 죽어 갔다.

몇 분이나 그런 광경이 이어졌을까.

“모두 중지! 중지해!”

불과 3분 뒤, 네마냐가 비로소 빛을 뿜어내는 검을 뽑아내며 종료를 알렸다. 거의 100여 명의 고블린 전사 모두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으하하, 다 죽어 나자빠지니 정말 속 시원하군요. 잘 뒈졌다!”

심지어 주변에 있는 신성 기사마저 아무렇지 않게 피비린내를 즐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승리의 단맛은 즐기는 법이라지만, 쯧. 보기엔 너무 지저분하군. 위생적이지도 않고.’

이내 병력을 빼낸 네마냐는 곧바로 화염구(Sphaira Pyr) 마법으로 시체와 주변을 소각했다. 전투 현장에서 의문의 전염병이라도 생겼다간 지금 상태론 수습조차 힘들어진다. 못내 시원한 장면을 남겨 둘 수 없어지니 기사들은 아쉬워했다.

“지독한 놈들이야. 도망가지도 않고 대장의 원수를 갚겠다며 달려들다니 말이야.”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엘레나가 다가오면서 검을 닦고 있었다.

“거친 세상 살기에 적합한 녀석들이지. 애초에 고블린이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를 맡노라니 여러 기억이 교차했다. 애써 가꾼 순무 밭이 타들어 가던 이미지가 괜히 살아났다.

‘쓸데없는 기억이…….’

네마냐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엘레나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고백하듯 말을 꺼냈다.

“……녀석이 정상인 상태였다면 충분히 시간을 벌었을 거야. 나도 평소답지 않게 감정에 휘둘려 버렸어.”

“네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판단을 내릴 거야.”

“우리 소영웅님께서 데뷔하던 그리엘크와의 맞짱 같은 경우 말이지?”

어느새 농담할 기운을 되찾은 모양이다.

“뭐, 그것도 그렇지. 현장에서만 보자면 어디가 이성적인 생각이었겠어?”

네마냐의 이야기를 들은 엘레나는 씁쓸한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얼결에 성공한 실패자끼리 교감하는 건가?”

“서로가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지.”

내 대답에 피식 웃어 버린 엘레나는 곧 다가온 성기사 일행에게 부러진 창대를 넘겨주었다. 걱정하는 기사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새로운 창을 하나 받아 들었다.

“그래, 준비는 다 됐나?”

“다 됐습니다!”

주변의 기사들이 곧 전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서서히 따라붙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패잔병 소탕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

어느새 깃발을 흔들며 멀찍이 달려가는 기사도 보인다. 누가 봐도 알리테스다. 코웃음을 치며 돌아선 네마냐와 나란히 말에 오른 엘레나는 다음 상황 전개를 설명했다.

“이제 잔당을 밀어붙이면 단장 일행과 앞뒤로 적을 포위할 거야.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잔당이 무너지고 있겠지만.”

“자, 그럼 추…….”

전방에서 번쩍하는 섬광이 터져 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전장에 변수가 많다지만 이번엔 원래 기억에조차 없던 상황이다.

“전방……. 섬광?”

기사단은 화약을 쓰지 않는다. 이 시절에 화약이란 연락용 신호탄으로만 사용했다.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오러와 마법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위험할 수 있다. 즉, 저 빛은 기사단이 쓴 게 아니다.

“엘레나, 너희 보조병에 마법사나 폭발 무기를 다루는 병사가 있었나?”

다급한 네마냐의 질문에 엘레나는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일말의 희망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아니. 설마 있어도 수도에 있겠지. 그렇다는 건…….”

“불길하군.”

누구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급하게 말을 재촉해 능선 가까이 다가갔다. 불꽃놀이라도 하듯 터져 나가는 빛무리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능선 너머 두 사람이 서 있는 곳까지 환하게 밝혔다.

“냄새. 마치 조금 전 불사른 시체 냄새와 비슷한데, 이건…….”

부드러운 어둠을 뚫고 전해지는 불빛이 이렇게 불길해 보이긴 처음이었다.

“어, 어서…… 가 봐야겠어!”

“서로 엄호하면서 서둘러! 전속력으로 단장의 군세와 합류한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터져 버렸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 62명의 기사는 불안한 감정을 안은 채 약속한 장소로 애써 말을 달렸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6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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