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드디어 오늘 픽스를 보겠구나.”
정보수집차 읽어 보았던 동물지에서 처음 보았던 짐승의 이름. 이 짐승은 고블린들의 탈것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컸다. 어지간한 소나 말에 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수뇌부 급을 제외하면 대부분 픽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래? 기병을 따돌리려면 타고 달려도 모자를 텐데. 역시나 보병이 대부분이었군.”
예상대로였지만, 그만큼 이번 침공 병력은 던지는 수에 불과한 잡병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태세를 시험해 본 거겠지.
“산 넘어 산이라더니.”
추격대가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아즈디샤트의 담벼락이었다. 급하게 떠난 듯 텅 빈 천막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네마냐가 마을 폐허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엘레나는 척후의 보고를 받았다.
“놈들은 지금 어디까지 향했나?”
“부지런하게 걸어서 지금은 마다케르트로 향하는 다리 근처까지 간 상태입니다.”
“아, 그 분기점? 생각보다 많이 움직였네. 그래도 우리가 30분이면 닿을 거리지. 하지만 도망친 거로 보면 쫓기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 소용없다는 것도 알지 않나?”
벌써 몇 번이고 전초전을 치러 봤던 엘레나는 고블린 지휘관들이 꽤 애먹이는 존재란 걸 경험으로 알았다. 특히 이들이 잘 써먹는 유인, 매복 전술은 주의할 만했다.
“혹시 매복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엘레나는 무언가 조언을 바라는 듯 네마냐 쪽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유인책을 쓰는 걸까?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봐선, 놈들에게 그럴 여유는 없을 텐데.”
“판단이 정확하네, 엘레나. 바로 그거야.”
네마냐는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하지만 엘레나는 못내 석연치 않은 모양이었다. 리더로서의 신중함인 것 같았다. 그에 맞춰, 네마냐도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지금 놈들 숙영지를 둘러봤는데 불을 피우거나 조리한 흔적 같은 것도 전혀 없었거든.”
“전략론에선 놈들이 날음식을 섭취할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라는 당부를 하던데.”
아이고. 그래, 전략론. 자그마치 천 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
“천 년 전 아가페디아스가 책을 쓸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이제는 북쪽의 미식가 경연 대회에서 고블린 주방장이 고블린식 요리를 유행시킬 정도야. 녀석들도 날음식은 먹지 않아.”
“아, 그럼 놈들의 매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하긴, 우리 단장이면 매복 정도는 충분히 파악했겠지만.”
고블린 요리 중 비싼 기름에 채소를 튀기는 야채 튀김이 특히 유명했다. 회귀한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였다. 자기도 모르게 솟는 입맛을 다시며 네마냐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놈들이 여기서 제대로 식사도 안 하고 보급 부대도 빈약한 걸 보면, 결론은 하나지.”
“지치고 피곤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겨우 천여 명의 병력만을 잃을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을 보면 회귀하기 전의 ‘다르빌 추격전’과 똑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까지 충성스럽게 따르는 거라면 놈들도 대단한 거지만.”
“네 분석이 정확하다면 우리가 놈들을 압박하는 데는 무리가 없겠어.”
“그래. 딱 하나만 조심하면 상관없을 거야.”
“딱 하나라니?”
“휴대용 석궁.”
네마냐는 권총이라도 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곳 중세풍의 세계에서 그런 무기는 딱 하나가 있었다.
“놈들의 석궁. 확실히 순간 당황을 유발해서 상황을 바꾸는 수법이긴 하지. 하지만…… 우리가 입은 갑옷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히 겨뤄 볼 만해.”
엘레나가 자신의 갑주를 두드리자 판판한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네마냐는 그런 엘레나에게 짐짓 모르는 척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그럼. 더군다나 단장의 기사단 주력이 오매불망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순간 놀란 표정을 지은 엘레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꾸며 두 손을 들었다.
“단장이 매복하고 있을 거란 건 어떻게 안 거야? 혹시 단장이 미리 연락이라도 했어?”
“그럴 리가. 오늘 만나면 그게 처음이겠지. 계속 적은 병력으로 부단장이 유인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한번 추측해 본 거야.”
이미 다르빌 추격전으로 명명될 이 싸움을 책으로, 증언으로 보았기 때문에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해’, ‘화술’의 효과가 발동해서 엘레나가 쉽게 알아들은 게 다행이었다.
“자. 그럼 가는 길까지 마저 작전 수행 부탁드립니다, 영주님.”
“기꺼이.”
엘레나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나직한 웃음으로 네마냐는 지휘봉을 건네받았다. 묵직한 나무의 감각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사령관의 지휘봉은 영주랑은 또 다르군.”
“아무렴. 전문직인걸.”
정성스레 치장된 지휘봉을 들며, 네마냐의 첫 지시가 시작되었다.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이 불을 끄고 모여들었다.
“10인씩 조를 지어 천천히 조여 들어간다. 무모하게 움직이지 말고. 놈들을 압박하는 게 중요하다.”
“네!”
“하하…… 모두 힘내 봅시다.”
이미 그들은 전문가였다. 이 정도의 지시면 충분했다. 알리테스가 옆으로 다가와 잠시 맡겨 두었던 검집을 돌려주었다. 검집을 건네주는 녀석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알리테스, 너는 사실상 오늘이 첫 싸움이지?”
“아, 네! 혹시…… 티가 났습니까?”
“티가 나긴. 기사다워서 까먹을 뻔했다고.”
네마냐는 녀석의 머리에 씌워진 투구를 톡 쳐 주며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녀석의 긴장이 조금 풀린 걸 보며 네마냐도 검집을 허리춤에 찼다. 사슬로 만들어진 장갑은 쥐는 맛이 조금 어색했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바가반드 경.”
필로칼리스란 이름의 낯익은 성기사가 경례하며 상황을 알려왔다. 뜻하지 않은 인기인 신세라서, 사인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네마냐는 무어라 이야기할까 고민하다 기껏 말을 꺼냈다.
“이번에 새로 전장에 드는 우리 신참 좀 함께 챙겨 주면 고맙겠군요, 기사님.”
“아, 신참 기사 말입니까? 염려 마십시오! 기대에 부응하도록 잘 돌보겠습니다!”
바짝 언 알리테스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신성 기사 몇 명과 함께 곁을 떠났다.
‘저들이 곁에 있는 이상 잘못될 일은 없겠지.’
한결 후련해진 네마냐는 고삐를 조금 더 당겨 잡고, 바가반드 병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준비된 것 같으니 출발하자고. 지금부터 몇 시간 몰이 사냥을 정신없이 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거야.”
말은 최대한 가볍게 했다. 그러나 전투는 언제나 생명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최대한 쓸데없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두 이동!”
* * *
그림보쉬는 픽스의 고삐를 잡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주변에서 호위 중이던 기병들도 덩달아 뒤를 돌아봤다.
“뭐냐, 대장.”
“아무것도 없는데.”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친 채로 피곤한 걸음을 옮기는 패잔병들 외엔.
“무슨 일이냐, 대장?”
“……함성이나 거대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그림보쉬가 이제는 우리 픽스들 발굽 소리에도 놀라는 모양이다. 낄낄낄…….”
“네페치, 너도 듣지 못했나?”
비웃음을 흘려대던 검은 옷은 뚝 그치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림보쉬는 그것만으로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놈들이 기어이 추격하려는 모양이군.”
네페치는 비릿한 웃음을 여전히 흘리면서 고블린 입장에선 뱉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어차피 대족장의 입장에선 마시스 산도 점령하지 못한 머저리들 아닌가? 버려도 본전이겠지.”
“죽는 일이야 전사로서 당연한 보상이다. 다만 군단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그건 섭섭한 일이군.”
그림보쉬는 네페치의 험한 말에도 담담하게 원칙을 이야기했다.
“어리석은 작자군. 휘하에 아직도 700명이나 되는 부하가 따르는데 죽을 자리부터 찾는 건가.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쪽으로 달아나라. 역습으로 기사단을 치겠다는 건 바보 같은 소리다.”
그림보쉬는 코웃음을 쳤다. 딱 본거지를 떠나 다르빌까지 이동할 만큼의 보급을 챙겼을 뿐이다. 먹을 것도 없는 병사들은 이미 걸음이 처진 상태였다.
“지금 함부로 움직여 봤자 인간 기병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반격이라도 하는 게 낫다.”
네페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림보쉬 쪽으로 채비를 몰았다. 무어라 속닥이는 소리와 함께 그림보쉬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네페치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불경한 놈들의 이야기를…….”
“크하핫.”
네페치가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맘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계속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너는 불경하다는 그놈들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네페치는 부상병을 살핀다며 뒤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모른 척하던 그림보쉬는 얕은 한숨과 함께 하나의 단어를 읊었다.
“오케즈-갈이라.”
* * *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었다. 주인을 잃은 농장에는 제멋대로 자라 말라 버린 밀과 잡초가 넘실거렸다. 말을 타고 농장을 지나는 기사들이 보였다.
“바라즈케르트가 망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는 주민이 많았어. 목화나 기름용 콩을 기르면 상인들이 밭떼기로 가져갔고.”
익숙한 목소리는 엘레나였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혼잣말 같은 대사를 읊조렸다.
“그 많던 주민들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많은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 반쯤 무너져가는 울타리에 팔을 올렸다.
“그거 알고 있어? 켈리도니온의 인구가 원래는 3만 명이었던 거.”
“지금은 얼마나 되는데?”
“묻지 마. 작년 연말에 5만이 넘으니까 다들 숫자 세는 것도 포기했거든.”
최소 두 배 이상. 각지의 식량 물가가 폭발하고 각종 자원이 고갈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얼른 이라크시스 일대도 재정비해야겠는데. 놈들 막기 전에 대기근이 터지겠어.”
“동감이야.”
말이 끝날 즈음. 지평선 쪽 먼 곳에서 꾸물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죄였던 말고삐를 조금 풀며 지휘봉을 높이 들었다.
“적 출현! 전방!”
주변의 기사들도 신호를 보곤 속도를 줄였다. 중얼거리는 네마냐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흘러갔다.
“이제 얼굴을 보는군.”
“제대로 말 위에서 똑바로 보니 공성전에서 볼 때랑은 딴판이야. 방어 태세를 시험해 보려던 거란 게 이제는 확실하네.”
“기사단장이 매복한 지점이 어디랬지?”
과거 일어났던 그대로라면 곧 기사단 주력이 매복을 통해 잔당을 소탕할 것이다. 슬슬 그 위치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네마냐.
“아, 성국과 미크라야크의 경계에 야트막한 산지가 있어. 도로가 그곳으로 이어지거든.”
“미크라야크, 거기로군”
네마냐는 휘파람을 불었다. 미크라야크 소왕국 경계의 협곡은 매복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뭔가 다른 변수가 없는 한은 무사히 작전은 끝날 것이다.
“자, 그럼 천천히 몰아왔으니 이제 강하게 압박하자고. 목표까지는 10분만 내달려도 닿을 거야. 혹시나 놈들이 강변으로 가지도 못 하게 막아야 하고.”
“알았어. 그러면 2개 부대는 강변 쪽으로 우회해서 압박하라고 하자.”
엘레나의 이야기를 들은 기사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쪽을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그럼, 이제 속도 좀 내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고삐를 짧게 잡아챘다. 속력이 점차 가팔라지고 말의 가쁜 숨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공격!”
재빨리 알아들은 기수가 최대한 빛을 잘 반사할 수 있도록 작은 붉은색 깃발을 앞으로 기울였다. 공격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뒤따르던 신호수 역할의 필로칼리스가 산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었다.
―부우우!
* * *
“젠장! 역시, 인간들은 밤이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게 맞다.”
그림보쉬는 누구의 귀에도 분명히 들리는 소리에 진저리를 쳤다. 아직 병력은 수십 명의 기사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평소만 같았어도 나가서 싸웠을 텐데.”
픽스와 고블린 병사들 모두 탈진과 배고픔에 시달렸다. 가뜩이나 먼 길을 오가느라 힘이 더 소진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느리게 도망쳐 봐야 전멸할 뿐이다. 그림보쉬는 깃발을 땅에 박아 넣으며 크게 외쳤다.
“달아나는 건 소용 없다! 다 잡혀 죽는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방진을 쳐!”
어둠 속 공기를 타고 울리는 말발굽 소리. 나팔 소리에 겁먹은 고블린 사병들은 그나마 그림보쉬 주변에 모여 급한 대로 둥그런 진형을 짰다. 멀쩡한 병사들이 외곽에 서고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안쪽에 두었다. 결사 항전의 태세였다.
“멍청한 짓을! 하지 마라, 그림보쉬!”
어둠을 가르고 급하게 달려온 상대는 네페치였다. 급하게 달려온 그의 짐승이 고블린 대형 일부를 뭉개고 방진 안으로 들어왔다. 그나마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림보쉬는 형광색 눈을 부라렸다.
“뭐 하는 건가, 지금처럼 급한 상태에서?”
“지금처럼 어두운 상태에선 놈들도 무턱대고 달려들진 못한다. 소음을 죽이고 최대한 잘게 부대를 나눠 움직이면 돌파할 수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몇십 마리 단위의 소규모 고블린일 때나 해당하는 얘기였다. 그림보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병력은 700이나 된다. 몰래 빠져나갈 수는 없다. 차라리 맞서 싸워 놈들을 저지하는 게 낫다.”
“저런 무력한 놈들 700명이 있다고 기사를 막을 것 같은가? 저놈들을 물리쳐도 어차피 뒤쪽 고개에 매복한 적도 있다.”
매복. 네페치의 이야기에 그림보쉬는 당황한 듯 굳어 버렸다.
“매복이라고?”
“걱정할 것 없다. 강변 쪽 갈대숲으로 돌아가면 된다! 놈들도 매복을 두려워할 테니.”
“…….”
“시간이 없다, 그림보쉬!”
“대장! 어떻게 하나? 놈들이 곧 근처까지 다가온다!”
판단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점점 다급해지는 소리 속에서 꼼짝없이 죽을 일만 기다리는 고블린들의 눈동자 속엔 두려움이 역력했다.
“……소부대로 각자 쪼개져서 이동한다. 최대한 강변 쪽으로 이동하라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쉽진 않을 거다. 대신 네페치, 너는 산길 쪽으로 가는 병사들을 최대한 보호해서 탈출해라.”
네페치가 지팡이를 고쳐잡더니 자신에게 지휘권을 맡긴다는 이야기에 흠칫했다.
“네가 지휘하지 않는 거냐?”
“……마지막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미친 소리. 네가 목숨으로 버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될 것 같나?”
“……얼른 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보쉬는 쥐고 있던 장창 끝부분으로 네페치가 탄 픽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네페치가 뭐라 떠들었다. 어차피 아우성 속에서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가 떠나자 호위 병력을 제외한 고블린들은 사방으로 혼란스럽게 흩어졌다.
“……너희들은 가지 않나?”
“…….”
“고블린에게 의리란 걸 다 느껴보는군. 자…… 그럼 준비하자.”
어지러이 펼쳐진 사방이 진정될 때쯤, 어두운 길 너머에서 화려한 무장을 걸친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느냐.”
그 맨 앞에는 단연 돋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긴 창을 들고 고블린의 대장은 앞으로 나섰다. 주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픽스의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림보쉬는 그 두 명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대사를 읊었다.
“연극의 주인공이로군.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상대방의 침묵은 끝도 한도 없어 보였다. 반면에 그르렁대는 소리는 그림보쉬의 깊은 속으로부터 점점 크게 우러나왔다.
- 6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