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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59화 (58/200)

59화

―히힝!

진창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말들의 소리가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널빤지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해라!”

-옛!

내딛는 말발굽은 널빤지를 밟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이어졌다. 해자의 물길을 막는 둑이 긴급 복구되어 진창이 더 번지는 건 막았지만 강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놈들이 기어코 깔아서라도 오려고 할 땐 눈엣가시였는데. 우리가 나갈 때가 되니 도움이 되네.”

“오……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 이제 고블린 유화론자로 바뀌는 거야?”

엘레나가 묘한 감정을 담아 말을 꺼내자, 나란히 말을 이끌던 네마냐가 파고들었다. 네마냐의 말에 엘레나는 정색하며 턱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농담인 걸 아니까 망정이지, 일반인이 그런 소릴 했다간 첩자로 잡혀가기 딱 좋은 소리라는 거 알지?”

“고블린도 그 이야기 들으면 오싹하겠어. 그래도, 개중에 나쁜 놈들만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너무 가능성을 닫아 두지는 말자고. 우리가 이용할 수도 있으니까.”

엘레나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설명을 추가했다.

“놈들도 극한의 환경에 몰리기 전에는 목축과 장사를 했었지.”

“4, 5년 전의 이야기야. 하지만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한 거 아니겠어?”

“딴에는 그렇지만.”

머지않아 새롭게 쌓인 그 상식마저 털어내야 할지도 모를 일. 그렇지만 우선은 현재의 인식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급한 건 지금 도망치는 저놈들이지.’

네마냐는 멀리 강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엘레나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엘레나가 물어왔다.

“놈들은 어때?”

“재정비도 재정비고, 다들 지쳐 있는 모양이야. 속도가 너무 느려서 얼마 가지도 못한 모양이네.”

“보급품도 없는 건가……. 놈들, 진짜 도시를 함락하고 보충할 속셈이었나 보네.”

“고블린 수뇌부에선 뺏는 게 안 되면 죽으라고 보낸 거겠지. 우리 힘을 빼 두거나 시험하는 게 목적이었을 거야.”

매우 잔인한 수법이지만, 고블린의 숫자는 너무 많았기에 보급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잔혹할지언정 합리적인 판단인 건 분명했다. 엘레나는 찌푸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인정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만만한 놈들은 아니지. 그걸 사람들도 알아줘야 할 텐데.”

두 사람은 묵묵히 말을 이끌었다. 성기사 30명과 바가반드 기사 30명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자, 그래도 금방 진창은 빠져나왔다.”

“딴 길로 돌아갔으면 두 배는 오래 걸렸겠지.”

다르빌 아래편 진창지대를 마침내 빠져나왔다. 이제는 말발굽이 진창에 빠져 허우적 댈 염려도 없었다. 기사들의 맨 앞에서 말을 모는 네마냐는 신전에서 만났던 고블린 마도사의 말에 다시 생각이 미쳤다.

‘고블린들의 통일이라…….’

우레이미야 부족이 강력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벌써 고블린 통일까지 시도하고 있단 건 의외였다. 실제보다도 너무 빠르지 않나? 그리엘크를 무찌른 뒤부터 묘하게 속도감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정보 부대를 보내서 알아봐야겠군.’

이 시점에 고블린은 정주 세력과 유목 고블린의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세력은 금속 가공업이었고, 이들은 인간과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문제는 유목민들일 텐데…….’

유목 생활을 하며 무역에 종사하던 유목 고블린들은 꽤 달랐다. 그중에서 인구도 많고 강한 세력이라면, 어느 인간이라도 ‘우레이미야’ 다섯 글자를 댈 것이다. 말이 향하는 방향을 조절하면서도 네마냐의 생각은 계속됐다.

‘겨울 추위가 유목민들을 남쪽으로 내려오게 만든 원인인 건 변함 없어. 하지만 벌써 놈들이 전쟁 준비를 마쳤다는 건…….’

생각하기 꺼림칙하지만 네마냐 자신이 회귀하여 일어난 변화가 그 원인일 수밖에 없었다. 정답이라도 맞췄다는 듯 <고블린 통일> 임무의 클리어 조건이 ‘1/10’에서 ‘2/10’로 바뀌었다.

‘약간 달라진 상황에 철두철미하게 임하는 녀석들. 내 생각보다도 두려운 강적들이지. 그래도…….’

좋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진행되는 편이 훨씬 좋았다. 무력하게 당하는 것보단 정신없이 전개되더라도 치열하게 맞서는 게 나았으니까.

“……마냐, 듣고 있어?”

“어……! 물론이지.”

엘레나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살짝 당황한 네마냐의 되물음에 어딘가 수상쩍은 표정으로 네마냐를 쳐다보았다.

“아하하, 오랜만에 하는 새벽 등산으로 긴장해서 그런지 오락가락하네.”

“그래. 고맙긴 한데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잔당 추격은 우리도 충분할 텐데.”

고삐를 잡고 능숙하게 말을 몰면서도 엘레나의 걱정스러운 눈길은 여전했다. 네마냐는 애써 손사래를 치면서 품속에 담아 둔 백수정을 꺼내 보였다.

“정말 피곤할 때는 회복술을 쓰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두 개 있는데 하나 쓸래?”

“백수정이라고? 그 귀한걸…… 아냐, 됐어.”

엘레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네마냐는 그녀의 손 위에 백수정 하나를 올려 두었다.

“신성 기사단은 복장도 딱 눈에 띄기 좋은 은색이니까.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좋아.”

그 말에 엘레나는 내키지 않은 건 여전하지만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래, 고마워.”

구슬치기용으로 딱 좋을 크기의 수정은 손바닥 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엘레나는 잠시 손바닥에 올려진 수정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은 채 그 감각을 느꼈다. 어깨를 들썩이며 놀란 건 그 직후였다.

“……이게 그냥 시제품이라고? 마탑에서 독점 공급하는 상등급이랑 비슷한데?”

상등급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의기양양해진 네마냐는 백수정의 사연을 늘어놓았다.

“다행히도 영지의 광산에서 좋은 품질이 나오더라고. 외지인들이 점유하기 전에 장악해서, 우리로선 다행이었지.”

네마냐는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정보도, 자본도 없는 가난한 영지에서 고급 자원이 나온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일단 나쁜 결말 하나는 막았으니 기뻐하기엔 충분했다.

‘이럴 땐 식민지국 출신이란 기억이 유용하게 쓰이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생각을 접고 전방을 살펴보니 이제 널빤지 길이 거의 끝나갔다. 곧 너른 평원이었다.

“그나저나. 그 생각, 난 듣고 솔직히 놀랐다고 얘기해 둘게.”

푸르릉거리는 말의 울음 정도를 제외하면 사방이 조용해지자 다시 엘레나가 말을 꺼냈다. 내심 기쁜 표정이다.

“아, 다르빌 재건안 말이지?”

“어떻게 생각한 거야?”

영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우리 영지에서 했던 일을 참고한 것뿐이야. 나는 것보단 과연 그 제안을 성국이나 도시에서 받아들일지가 더 걱정이었지.”

다르빌 재건안.

도시 코앞의 황금빛 백사장마저 적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에 도시를 지킬 대책이었다.

“도시를 버리느냐 마느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너머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인상 깊었지.”

물론 다르빌의 상황을 참고한 네마냐의 아이디어였다. 계획이 희망적일수록 부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바가반드 백작은 회의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자유 도시를 선언합니다. 이걸 유지하기 위해선 다음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이란 다음과 같았다.

1. 피난민을 정착시킬 수 있는 대규모 건설 사업과 공공부조를 도입한다.

2. 거기다가 민회를 도시 의결기구로 삼아 영지 마나 시스템을 마련한다.

3. 성국 및 동맹국과의 방위 동맹을 구축한다.

회의장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었듯이, 네마냐 자신도 그 조건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영지 마나 시스템부터가 문제였으니까.

“민회를 의결기구로 삼고 주민의 마나를 징발하겠다……. 이건 고원의 영지를 다스리는 토호나 유력자들이 반대하겠지, 격렬하게.”

뭐, 그건 어찌어찌 누를 수도 있었으나 엘레나의 걱정은 토호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마법을 무기화해서 정치적 이익으로 만든 마탑까지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인 건 성녀께서도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트라야브나 성녀께서도?”

뜻하지 않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 내가 급하게 전신망으로 요약만 전하긴 했는데. 출발하기 직전에 짤막하게 답이 왔어.”

“그 활달한 분이 짤막하게? 뭐라고 하셨는데?”

엘레나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고 트라야브나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음, 괜찮은 조언이라고 생각함. 다만 워낙 여러 이해관계를 건드릴 것임. 좀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

“그래. 역시 성녀님도 잘 알고 계시는군.”

괜히 성녀인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재의 성녀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정책과 비슷하기도 하고. 엘레나도 마침 그 이야길 꺼낸 참이었다.

“원래 트라야브나는 대신관일 때부터 영지 마나 도입을 주장했거든. 아마 기회만 잘 잡으면, 다르빌 재건안도 통과 가능할 테지.”

“아닌 말로, 영토 일부를 반자치로 독립시키겠다는 소리인데도?”

개인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성국이 자신의 영토인 대도시 하나를 포기할 수 있을까?

‘선량한 개인이 조직을 이끌 순 없지.’

하다못해 네마냐가 영지를 개혁하려는 것마저도 가장 개방적인 하라드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성녀도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야. 일단은 계획을 좀 다듬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분명한 건, 자유 도시를 허락한 이후가 진정한 문제라는 거지.”

“그렇지.”

네마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어떻게 도시를 지킬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할 때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대 악은 아니기 때문에, 설득해야 할 테고.”

“겨울이 깊어지면 전쟁이야. 그전까지는 충분히 우리 편을 만들어 두자고.”

엘레나의 말이 십분 맞다. 반대자라고 마냥 악인일 수는 없다.

‘다른 존재를 죄악시할 만한 여유조차도 없는 게 하야스단의 상황이지.’

우선 충분히 함께 갈 사람들을 꾸리고 다독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수확한 것들에서 가라지를 걸러낸 다음 태워 없애 버려야 비로소 다시 농사를 지을 것 아닌가.

“영주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전방에서 척후가 하나 말을 달려왔다.

“영주님! 아즈디샤트의 고블린이 막 출발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출발했다는 소식. 엘레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느릴 수밖에 없는 보병들이나 하라드는 아예 도시에 두고 왔다.

“지금부터 신나는 달리기 시간이로군, 부단장님.”

“신나셨어, 백작님.”

지금부턴 기병의 속력을 발휘하는 추격이 시작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척후병이 다시 모습을 감췄다. 천천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내고, 지휘관인 부단장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부단장님. 지시를 좀 부탁합시다.”

그런데 어째 엘레나의 반응이 이상하다. 평범하게 얘기해도 다 들릴 텐데 유독 목청을 키워 대답했다.

“지시랄 게 뭐 있겠어. 그보다 이번엔 네가 해 보는 건 어때?”

“내가?”

야무진 주먹이 흉갑을 툭툭 두들겼다. 엘레나가 강한 눈빛을 쏘았다.

“바가반드 역전의 영웅께서 지휘해 주면, 성기사들의 사기도 오를 것 같은데.”

“에이, 그래도 엄연히 지휘 계통이 다른데…….”

그때, 몇 발자국 뒤에 있던 성기사 두어 명이 다가왔다.

“바가반드 영주께서 저흴 지휘하시는 겁니까?”

“영광입니다! 아…… 뭐, 부단장님 지휘가 맘에 안 든다는 건 아닙니다만…….”

부단장의 눈치를 보면서도 젊은 두 기사는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눈가리개도 올리지 않은 상태지만 어쩐지 초롱초롱한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 같은 게, 지난 번 켈리도니온에 들렀을 때 만났던…….

“저번에 봤던 두 기사군.”

“와, 저희를 기억해 주시다니!”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대접에, 네마냐는 당황스러워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투구를 쓴 채였기에 엄한 금속 긁는 소리만 났다.

“이렇게까지 원하는데 한번 해 주지 그래? 나도 실력이 보고 싶어졌어.”

“하, 참.”

난처한 처지가 되어 머리를 긁었다. 기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격전은 단순한 농성전이나 일대일 결투와는 결이 다르다. 기사 수업 때 보았던 병서를 떠올렸다.

[적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따라가면서도 적의 유인은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이동 속도도 워낙 빠르다 보니, 진형의 전개와 전투의 호흡을 재기도 쉽지 않지. 그렇지만.

‘물러나고 움츠려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지. 결국, 남는 건 맨땅에 헤딩이라도 한 뒤였어.’

한숨을 토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힘 닿는 대로 해 볼게. 대신 좀 도와줘야겠어.”

“물론이지.”

엘레나의 답을 듣고 안심했다. 바가반드 백작이 손에 들린 검을 높게 들었다. 은백색의 특수 합금은 햇볕을 받아 사방으로 반사시켰다. 60명 정도의 기사가 갑주에서 뿜어내는 빛마저 억눌릴 정도의 위압감.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놈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기사단별로 나누어 아즈디샤트까지 이동한다!”

“후아!”

60여 가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 폐허가 된 담벼락 위, 나뭇가지의 새들이 놀라 흩어졌다. 우렁찬 대답에 네마냐도 덩달아 피가 끓어올랐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적과 부딪혀 볼 기회가 온 것이다.

“이랴!”

발로 박차를 가하자 앞으로 내달리는 네마냐의 말. 그 호령에 기사들 역시 신이 난 것처럼 서둘러 뒤를 따랐다.

- 6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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