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조심해. 마나가 잔뜩 헝클어져서 안쪽에 뭐가 있는지도 확인이 안 돼.”
“알았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고리 모형으로 부서져 나간 청동 대문을 넘어섰다. 먼지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로막아서 바깥보다 안쪽이 훨씬 더 어두웠다. 네마냐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검은 계속 앞으로 향한 채 걸어 나갔다.
“콜록콜록. 이야, 진짜 힘 제대로 줬는데? 이 정도면 그 그리엘크라고 해도 한 번에 쓰러졌겠어.”
“매사 크고 강한 것만 쓰는 게 정답이 아니야. 적당하고 알맞은 걸 찾는 게 먼저지.”
뒤따라오던 하라드는 말에 답을 해 주었다. 강한 것보다는 적절함. 교과서적인 답이긴 하지.
‘적절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감각인지, 너도 한번 살아 보면 알게 될 거다.’
아무렇지 않게 네마냐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엄호만 받는다면 그보다 확실한 건 없으니까.”
“맞는 말이야. 마나를 모으는 시간이 길고 보호받기 어렵거든. 적당한 조건만 채우면 훌륭하지, 가령 전략 마법과 전술 마법의 구분에서도…….”
잘못했다간 또 현장에서 강의를 늘어놓을 것 같아 네마냐는 얼른 끼어들었다.
“콜록콜록, 선생님. 입이 근질근질한 건 알겠지만 여긴 전장이야. 돌아가서 많이 들어줄게.”
전장임을 상기시켜 준 효과가 탁월했다. 학자 체질인 하라드는 잠시 구시렁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흐음.”
나지막한 소리가 황량한 건물 사이로 흘렀다. 침묵이 가라앉은 사방.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천장과 벽 사이로 햇볕이 어둠을 뚫고 들어왔다.
“빛이 파고듦에 따라 어둠이 인지된다. 빛이 깊으면 어둠은 더욱 깊어진다.”
“마법사 유카리스의 어록이군. 상황에 적절한 인용, 가점 1점 드립니다.”
네마냐가 지금 광경에 어울릴 법한 문장을 아무거나 주워 말했더니, 하라드 녀석이 채점을 하고 나섰다.
“얼씨구, 머리 위에서 논다?”
“흥, 까불 수 있을 때 까불어야 한다.”
“누구 어록이야, 그건?”
하라드가 태연하게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만든 어록이야.”
“아…… 네, 그러시군요.”
가끔 쏟아져 내리는 돌가루 외에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충격파에 얼굴 구멍으로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는 고블린 병사나 마도사로 보이는 시신이 있을 뿐이었다. 조금씩 긴장은 가라앉았다.
“아까 네 마법 충격파에 다 쓰러진 것 같아. 그래도 마저 둘러봐야겠지. 혹시 그 인간 마법사란 존재도 있는지.”
방을 몇 개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닿는 양이 줄어들고 어둠이 깊어졌다. 하라드가 별빛 마법을 시도했지만 먹히지는 않았다. 몇 번 수정을 문질러도 마찬가지였다.
“근처에 강한 적마정석이 있나 봐. 하하.”
“매복은 아니겠지.”
장난기 어린 한숨과 함께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라드의 것과 같은 마정 합금으로 된 검. 살짝 마나를 흘려보낸다는 이미지를 떠올리자, 검에서 은은하고 창백한 빛이 사방으로 번져갔다.
“역시, 아티팩트처럼 사용하니 편하네.”
“……이런 곳을 오면 의문이 생기곤 해.”
하라드는 네마냐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도 호흡을 맞춰 주었다.
“왜?”
“유카리스 말이야. 대마법사답게 썩 현명한 말을 했지. 하지만 어두운 장소를 볼 때마다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다르지 않을까 싶더군.”
잠시 침묵을 지키던 녀석이 정답을 맞히려고 시도했다.
“뭐랄까. 어둠 그 자체는 다른 무언가와 상관없이 원래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그렇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는…….”
유카리스의 책 끝부분에는 이에 대한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똑같은 구절을 함께 외웠다.
“빛이 있으니 어둠을 바라보게 된다.”
“빛이 있으니 어둠을 바라보게 된다.”
마치 고블린 문제는 있었으나, 이 사건이 터진 뒤에야 알게 된다는 것처럼. 예언과도 같은 글귀를, 네마냐는 적어도 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소름 돋았네, 젠장.”
“사실대로 말해. 내 말 따라 한 거지?”
네마냐는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았다. 하라드가 뭐라 또 불만어린 말을 중얼거렸다.
‘유카리스도 대마법사인만큼 내가 느낀 것과 같은 내용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네마냐는 무어라 중얼거리는 하라드를 모른 척하고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설마 진짜 충격파로 다 죽은 거 아닌가? 너무 조용한데.”
“내가 쓴 전략 마법은 충격이 크긴 해. 이번엔 작정하고 쏜 것도 있고. 아니면 놈들이 너무 방심했다거나.”
“그리엘크까지 당했는데 또 방심을 했을까.”
단지 수만 많을 뿐, 제대로 정비만 하면 인간에겐 상대조차 안 될 고블린이란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상단을 세우고, 실력과 세력을 천천히 구축하려 했었다.
‘결국 그 생각은 만용으로 판명 났지만.’
고블린과 연속으로 만나면서, 그리고 그리엘크와도 만나면서.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네마냐의 고블린 평가는 상당히 후했고 얘기를 듣는 사람은 이상하게 여겼다.
“놈들을 너무 고평가하는 것도 적절하진 않아, 형. 지금껏 봐도 녀석들은 수를 앞세운 심리적 압박이 거의 전부야. 이겨내면 별것도 아닌 거고.”
하라드가 기존의 상식을 다시 확인했다.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렇게 의표를 찌르고 최소한의 전력으로 최대 성과를 거두는 솜씨. 이건 지금 고원의 영주 중에서도 해낼 사람이 없어.”
“물론 없지. 나도 이번엔 충격이었다고. 하지만 모든 일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왜냐면…….”
말을 끊은 하라드는 갑자기 매서운 눈초리로 한구석을 향해 빛의 화살을 쏘았다. 긴 시간의 필요조차 없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아니마이 프실리오이(Animai Psiloi)]
그림자를 파고든 빛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크왁!
절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성이 땅을 타고 묵직하게 흘렀다. 상황을 파악한 네마냐는 곧바로 하라드의 앞을 막아섰다.
“뒤로 물러나 있어! 내가 막는 동안…….”
“쳐랏!”
다급한 호소인지 명령인지 모를 소리. 그 순간 양쪽 귓가의 마나 끓는 소리가 느껴졌다. 매복. 사방에 몇 명인지도 모를 꽤 많은 고블린. 마나의 울리는 강도로 보아…….
“왼쪽!”
번쩍이는 창백한 빛.
―서걱!
섬뜩한 감각과 함께 무언가의 물체가 왼쪽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갔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금속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동시에 각각 세 방향에서 다섯의 존재가 이쪽을 향하고 있으니까.
“핫!”
외마디 기합과 함께 정면으로 검을 뻗었다. 묵직하게 꽂히는 느낌이 손목으로 전해졌다. 손목에 다소간 부담이 오겠지만, 시스템이 갓 부여한 ‘전 능력치 +2’ 덕분에 움직임은 훨씬 부드러웠다. 칭호의 효과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렇게 세게 휘둘러도 오히려 상쾌하다니?’
워낙 강하게 달려들던 터라 검에 깊게 꽂힌 고블린을 떼어낼 시간도 없었다. 왼손을 짚고 옆으로 구르면서 검에 마나를 주입해 전방으로 세게 털어냈다.
“카악!”
쏜살같이 날아간 고블린 사체가 다른 고블린에게 적중했다. 죽은 고블린이 산 고블린을 잡는다. 그 순간에 왜 그런 헛웃음 지을 드립이 생각났는진 모르겠다. 나중에 검술서 같은 걸 만들면 넣어 볼까. 네마냐는 실없는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에필릭타 파랄라딕소(Ephilkta Paralradikso)]
느닷없는 시동어가 들려왔다. 찌릿한 감각이 손을 타고 들어왔다. 이 세계에선 번개라고 부르는 힘, 전기의 감각.
“내가 마비시킨 사이에 바로 베어 버려!”
찰나지만 번쩍한 빛 덕분에 잠깐 시야도 확인했다. 남아 있던 세 고블린은 몸을 파고드는 생소한 감각을 이기지 못했다. 일제히 울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큭…… 그리엘크에게 상처를 입혔다더니, 역시나 보통은 아니군. 인간 족장.”
“어라, 대화가 가능하네? 그리엘크만큼 유창하진 않지만.”
다시 검에 힘을 주입하자 습격당한 실내에 빛이 들어왔다. 실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응접실 정도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싶은 장소였다.
“생각보다 넓은 장소였어.”
다섯이나 되는 고블린 졸개들은 벽의 커다란 촛대 받침이나 천장의 등대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시선이 향한 그 끝에는 조잡하게나마 예복처럼 생긴 옷을 입은 왜소한 고블린이 쓰러져 있었다.
“이것 봐라? 마나의 힘을 숭앙하는 신관회도 아닌데 신관의 예복을 입고 있네.”
“이상한 소리로군. 고블린이 마나의 힘을 존경하지 않는다니? 너 역시 인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네마냐.”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눈썹을 꿈틀거린 네마냐는 고블린 신관을 세차게 걷어찼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진 몰라도 닥치지 그래? 어차피 너희들의 시도는 끝났다. 좀 있으면 다르빌의 군대도 끝장날 거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의 멸망은 이제 시작이다. 너조차도 안일하군.”
네마냐에게서 험한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하라드가 제지했다. 고블린이 너무도 기세등등한 나머지 감정에 말려들 뻔했다.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녀석에게 먼저 심문권을 주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서 온 놈들이지?”
지팡이를 짚은 하라드가 전에 듣지 못한 억양으로 심문을 시도했다. 고블린 녀석이 피식하며 알아듣는 걸 보면, 고블린들 사이의 사투리 같은 건가.
“내가 어디서 온 걸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블린의 종족이 이제 한 집안이 되고 나면, 고블린은 하나의 이름이 될 것인데.”
“너…… 우레이미야 족장의 수하냐?”
“그래, 아예 모르진 않는 모양이군.”
아까 전의 마법에 크게 당한 모양인지 울컥할 때마다 피가 계속 흘렀다.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반쯤 덩어리진 울혈이 흘렀다.
“시간을 잘 끌었으니 내가 할 일은 모두 이룬 셈이다. 후후…… 쿨럭!”
그러나 이 기이한 고블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반쯤 기대 누운 채로 이쪽을 응시했다. 살아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 보였다.
‘녀석이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 두는 게 좋겠군.’
<고블린 종족의 통일?>이라는 임무도 하나 활성화된 게 보였다.
“너희들의 진정한 목적이 뭐지? 인간들의 땅을 빼앗는 건가?”
“쿨럭! 우리가 살 곳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올바른…… 커억! 마나의 질서를 위하여. 이런 희생은 군단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교활한 놈들이 말만 횡설수설이군. 곧 죽을 놈이라 그런가.”
한없는 냉소로 가득 찬 대마법사의 평가였다. 그러나 이미 반쯤은 환상에 잠겨 든 녀석은 입가의 번들거리는 피를 뽐내며 중얼거렸다.
“너희는 과연 감당할 수 있겠나? 단결된 기세로 희생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고블린의 결의를……. 안일함과 탐욕으로 분열된 너희들이 말이다, 킬킬킬…….”
멎어 드는 숨소리로 힘겹게 뱉어내는 비웃음. 이제 목숨이 다했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하라드는 탄식을 내뱉으며 돌아섰다. 아니나 다를까, 고블린은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듯 열심히 소매춤만 만질 뿐이었다. 잠깐, 소매춤?
“녀석은 곧 죽을 거야. 그럼 우린…….”
“비켜!”
하라드를 보호하듯 나서면서 녀석의 품으로 몸을 던졌다.
“늦었……다.”
숨 한 번 들이쉴 시간보다 짧은 그 순간, 죽어가는 고블린이 움켜쥔 적마정석이 보였다. 이미 손질까지 해 놓은 듯,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처럼 붉은빛이 들끓고 있었다.
반쯤 부서진 석조 건물 내부.
일부러 과도한 마나를 집어넣었다가 폭발시켜 버릴 수 있는 적마정석.
‘자폭!’
힘껏 검을 내질렀지만, 한발 늦었다. 설사 검으로 녀석의 손을 잘라도 바닥에 저 불안한 수정이 떨어지면 폭발할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검 끝으로 다행히 저 폭탄을 살짝 쳐서 벽 건너편 구멍으로 던질 수라도 있다면…….
“죽일 수 없다면, 함께 죽는다!”
마지막 힘을 짜낸 고블린의 발악. 검날은 마침내 오른 손목을 잘라 버렸다. 하지만 이미 놈의 오른손은 마정석 내부에 꽂혀 버린 상태였다.
“제길!”
한가롭게 욕할 시간조차 없었다. 모든 청력이 사라진 이명 소리와 함께 시야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 순간.
[멈춰라]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공허 속. 귓가를 파고드는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그 목소리는…….
[파멸의 아이야, 네 길로 돌아가라]
허무하고 조용했다. 어떻게 들으면 세상에서 들은 적 없는 괴성이지만, 그 두 마디 외침은 한편으로 감미롭게만 들렸다.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던 ‘멈춰라’, 그 한마디에 멈췄다. 그리곤 ‘돌아가라’, 그 한마디에 시간이 역전하여 폭발은 점으로 소멸했다.
“끄억.”
그 옆의 고블린은 네마냐 일행관 달리 괴성에 그대로 몸이 터져 버렸다. 구역질 나는 피 칠갑 모습에 그만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뒤쪽에 있던 하라드는 충격을 덜 받은 모양이다.
“흐억……. 살아, 살아남았다.”
하지만 폭발 반응으로 인해 체내의 마나가 요동치는 모양이었다.
“후우…… 괜찮냐.”
“괜찮아. 그나저나 이건…….”
“음. 때마침 와 줬어.”
어느샌가 천장으로부터는 먼지와 함께 밝은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건축 자재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음이 폭풍처럼 청력을 강타했지만, 펄럭이는 날갯짓 소리만은 놓칠 수 없었다.
[모처럼 다시 보게 되는군, 질서의 일탈자, 나의 친구. 꼴은 영 사납지만.]
녀석은 특이한 별명으로 네마냐를 불렀다. 네마냐는 얼마나 세게 엎드렸는지 아픈 무릎을 달래며 일어났다. 강렬한 햇빛을 등지며 내려다보는, 거대한 날개를 단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보네……. 음, 친구네 집을 좀 와 봤어. 부르지 않은 손님이 좀 시끄러웠지만.”
[언제나 환영이지. 다만…… 손님을 맞이하기엔 집이 너무 누추해졌군.]
키마이라가 이곳저곳 무너진 신전을 바라보며 조금 난처한 듯 이야기했다.
“어째 우리가 미안해지는걸.”
하라드는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재빨리 지팡이를 감췄다. 키마이라는 날개를 접으며 천천히 네마냐 앞으로 내려왔다.
[상관없다. 그보다, 산 아래에서 고원의 인간과 고블린의 다툼이 있더군. 그들도 동료인가?]
이런 성수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는 알지 못했다. 회귀 전에도 막연히 지내다 보니 어쩌다 친해진 것뿐, 표정의 변화도 없는 신수는 대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의는 보이지 않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
기왕 이렇게 된 것, 네마냐는 키마이라의 도움을 받아 보겠다고 생각했다.
“맞아. 고블린들이 인간을 공격해서 몰아내려고 하는 중이야. 그 고블린의 일족들이 여기를 노려서 당신을 몰아내기도 했고.”
잠시 묵묵하게 키메라는 이쪽을 쳐다보았다.
[내가 데려다주지. 아까 산 입구에서 그대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군대가 있더군. 그들에게 데려다주면 되는가?]
“그래 주면 고맙겠어. 이 친구도 가능할까?”
키메라는 흘깃 쳐다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흔쾌하게 답했다.
[네마냐의 친구는 나의 친구다. 다만.]
“다만?”
[내 집을 부순 값은 좀 치러야겠지.]
“뭐, 뭐야! 이거 안 놔?!”
말을 마치기 무섭게 키메라는 하라드의 허리춤을 덥석 물고 네마냐에게 등을 보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하라드가 붉으락푸르락하는 모습이 재밌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출발한다. 금방 닿을 것이다.]
쏜살같이 바닥을 차고 오른 키마이라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괴성을 뱉으며 산 아래로 치달았다. 순식간에 구름 아래로 보이던 다르빌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거의 다 됐다. 조금만 기다려……. 곧 간다.”
네마냐는 익숙한 손길로 신수의 털을 붙잡고 엎드렸다. 혼절한 하라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네마냐만의 체통 지키기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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