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다시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켈리도니온에서 돌아온 네마냐는 다시 영지의 일에 모든 관심을 돌렸다. 물론 새벽이 되면 벼락처럼 들이닥치는 하라드의 수업도 들었다.
‘정신없는 일정이군.’
그런 생각을 하며 피곤한 아침을 먹고, 밤새 쌓인 업무를 처리했다. 그게 끝나면 아일라와 함께 마정석 가공 기술을 익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영지의 업무를 처리하다가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이거 완전, 직장 생활보다 빡센데?!’
하지만 어쩌겠나. 나 스스로 짐을 지기로 한걸. 멱살 잡고 캐리하지 않았다간 몰살 루트로 갈 거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 생각만 하자니 열불이 터져서…….
“조심, 조심. 마무리할 때는 마정석의 마력 분출을 제어하는 부분을 건드리거든. 호흡 조심하고 최대한 살살.”
“……휴, 잡념이 자꾸 끼어들어서 문제네요.”
대장간에서는 오늘도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떵떵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지만, 동시에 오늘은 어떤 때보다도 세심한 감각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합금 또는 비장의 ‘마정 합금’ 가공이면 내가 직접 해도 상관없지. 다만, 마정석 가공은 꼭 그렇진 않으니까.”
아일라의 말을 들으면서 네마냐는 떨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마무리했다.
“아, 된 것 같은데? 마정석에서 피어나는 마나의 울렁거림이 가라앉았어요!”
“어, 그렇게 빨리?”
몇 번 만지다가 막혀서 고민하겠거니 하던 아일라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재빨리 작업대로 다가가 가공된 마정석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둘러보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정말…… 정말이네. 아니, 참. 뭐라고 해야 하나. 감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성공할 수도 있나.”
“초보자의 행운이 있었다지만 너무 고평가 아니에요? 하하.”
애써 건넨 농담에 아일라는 정색을 하고 답변했다.
“그럴 리가. 내가 처음 합금을 익힐 때도 이 정도로는 못했거든. 보통 사람 같으면 3년을 내내 두들겨도 못 해.”
그러면서 두 사람은 다시 결과물을 바라본다. 합금이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마름모꼴로 가공된 마정석. 아일라는 마정석을 작업대에 가만히 올려 두었다. 인간의 체내 마나에 반응하며 푸른 기운을 뿜어내던 마정석이 조용해졌다.
“다행이네요. 시행착오 같은 건 배부른 소리가 될지도 모르는 시대에 바로 익숙해진다니.”
열기로 달아오른 망치를 한편에 내려놓았다.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훔치고 나니 이미 완성해 선반에 올려둔 마정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셋, 넷…… 아홉. 아일라 씨가 미리 페트론 합금을 준비해 두어서 그래도 꽤 많이 만들었네요.”
“그러게. 나도 얘기로만 듣던 마나핵(核) 장치를 직접 만들어 본 건 처음이야.”
“마정 합금을 너무 많이 쓴 건 아니죠? 이거 만드는 건 더 어려울 텐데.”
누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게 익숙지 않은지, 호탕한 웃음을 지은 아일라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써먹으려고 만든 거지, 아껴서 어디에 쓰겠어. 좋은 데 쓰는 게 훨씬 좋은 거야. 양산 방법을 완성하기만 하면 훨씬 나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그보다 아일라가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이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제국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장치 아니었어?”
은은한 푸른 빛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치의 힘 덕분에 마정석에 머물고 있었다. 네마냐는 잠깐 그 빛에 반한 척 시선을 고정했다.
‘뭐라고 이야기할까. 지금 제국에서 쓰는 버전보다도 개선된 건데.’
마나핵 장치는 림 마누스(Realm Manus)의 원천, 그러니까 영지 내부의 인간 마나를 징발하는 데 필요했다. 영주나 행정관, 총독이 주민과 마나 계약으로 마나를 징세하고 영지의 운영에 사용하는데, 이 복잡한 징수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기본적인 마나 장치가 있어야 했다.
“어려운 개념은 아니잖아요? 백성에게서 마나를 ‘징수’하고 ‘축적’한 다음, 사용할 곳으로 끌어와 사용하는 거니까요.”
“그래. ‘어떻게’ 마정석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느냐는 건 기술적인 이야기지. 기술자들이 달려들어도 실패했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마정석은 워낙 귀하기도 하지만 가공 역시 까다로웠다. 조금만 잘못 손질했다간 내부의 에너지가 유출되거나 폭발해 버렸으니까. 잘못하면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셈이었다.
“가공 시도만 하려고 해도 마나를 안전하게 유도할 장치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마법사와 장인도 비싸게 고용해야 해.”
그야말로 어지간한 뒷배경과 재력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일이었다.
‘이런 물건을 제국의 마법 장인들은 용케도 수백 년 전부터 만들어 왔던 건가. 그만큼, 제국과 나머지의 격차가 엄청나다는 소리겠지.’
손을 펼쳐 내려다보며 떠오른 소감이었다. 고블린 침공이 본격화되면 제국도 기존 시스템의 허점을 고치기 시작할 터.
‘그러나 맹점이 크지.’
제국의 기술로도 당장 완성된 기술을 구축하는 데만 3년은 걸린다. 더군다나 영지 마나는 고도의 기술력만 필요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금속, 특히 마정석의 마나가 제게는 제약 사항이 아니니까요. 그건 확실히 제국에 비해서도 유리한 점이죠.”
회심의 표정과 함께 손을 들어 보여 주자, 아일라는 어떻게 잊겠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자연계 마나도 아무렇지 않게 소통할 수 있다면 뭐든 못 하겠어? 그럼, 자세한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비밀 때문에 못 하려나?”
“하하, 그럴 리가요. 어차피 이 시스템을 실시하려면 공개 회의로 승인을 얻어야 하거든요. 오늘 일행들이 모이면 이야기를 나눠 보죠.”
네마냐는 지난 몇 주간 묵힌 피로를 풀어내기라도 하듯 한껏 기지개를 켰다. 오른쪽 아래에 아예 붙박아둔 상태창 화면은 그동안에도 숫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결과적으론, 시간 대비 수치 성장의 성능 자체는 마정석을 만지는 작업이 가장 빨랐지? 아무래도 이게 시스템이 추천하는 공식 루트인가 보군.’
[마정석 제어 장치 제작 (8/8)]
마지막으로 완료가 끝난 임무 아래로 그간 갈고 닦은 성장이 수치로 드러나 있었다.
[네마냐]
[기초 능력]
[체력 9(+1)]
[근력 8(+2)]
[민첩 9(+4)]
[이해 13(+2)]
[판단 11(+3)]
[행운 ??]
그동안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반영된 수치였다. 뜬금없는 강적들과 싸우면서 반강제적으로 민첩해졌고, 적을 속이거나 동지를 회유해서 이해와 판단이 성장했다.
‘이제 막 회복된 상태라지만 체력, 근력 성장이 조금 더딘 건 아쉽군. 당장 영지 운영에는 이해, 판단이 중요하다지만.’
지난 몇 달 싸운 것만 따져도 수치가 20은 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어쩌겠나. 본격적으로 고블린 학살을 시작하면 제대로 올릴 기회 또한 올 거다. 거기에 지금 대장간 일도 체력 단련을 겸해서 하는 중이니, 성장이 기대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능력치 창을 띄워서 계속 보는 거지만.’
‘대체 뭘 자꾸 저렇게 흘깃거린담.’
아일라는 네마냐가 무언가를 자꾸 의식한단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같은 곳을 봐도 작업대의 마정석 꾸러미들에나 눈이 닿을 뿐이었다.
‘야, 정말 지독할 정도로 마정석에 매달리는 모양이네. 저 자질에 집중력까지…….’
아일라는 당해내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은근한 자기 고백을 뇌까렸다.
“정말 엄청난 마법 장인의 자질이라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나랑 같이 산에 들어가서 쇠질이나 열심히 하자고.”
젊은 영주는 쓴 약이라도 마신 것처럼 한껏 표정을 찌푸리며 거절했다.
“으, 싫어라. 아일라 씨가 굴릴 걸 생각해 보면 고블린 밭에서 구르는 게 더 낫겠어요.”
“뭐?”
“농담이에요, 농담.”
고블린보다 무서운 누군가의 눈빛이 차가워질 것 같아 얼른 손을 털고 앞치마를 벗었다. 이것저것 갈고 불을 지지느라 그을음이 묻긴 했다. 그래도 작업복을 벗으니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손을 마저 탁탁 털면서 아일라와 눈을 마주쳤다.
“언젠가 쉴 때가 오면 좋겠지만 당장은…… 급한 문제가 우선이니.”
“고블린이라든가, 고블린이라든가, 고블린 같은 문제 말이지.”
“뭐라 덧붙일 것도 없이 간결하네요. 자, 그만 식사나 하러 가죠.”
두 팔을 들어 뒷목께로 깍지를 낀 채, 아일라는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네마냐도 천막을 걷어 공방 밖으로 나섰다.
“맛있게 드십시오, 영주님.”
“먼저 들어가 볼게요.”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뭔가를 두들기던 장인들이 인사하러 일어나려 했지만, 네마냐는 미리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원래는 영주가 드나들 때마다 인사하는 게 원칙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나 인사하면 됐지. 무슨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심지어 제국도 그런 건 안 하더라.’
재밌는 건, 동방 제국에선 정작 상급자가 계속 드나들어도 하루 중 처음 봤을 때 한 번만 인사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예절 차리느라 시간 버리는 일은 막을 수 있지.’
그 사례를 가져와 내세운 덕에 귀찮은 반발은 쉽게 막아 냈다. 안 그래도 조만간 한번 제대로 ‘푸닥거리’를 치를 처지였으니, 이 또한 필요한 일이었다.
“해도 뜨기 전에 들어왔더니 그새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네. 하, 이래서 일찍 일어난 벌레가 잡아먹히…… 아니, 이게 아닌데.”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혀가 꼬였고, 아일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10월의 햇빛이 밀려오는 소리가 귓전으로 밀어닥쳤다.
―쏴아.
정확하게는 말라 버린 나뭇잎을 쓸고 오는 바람의 소리였다.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던 3월만큼이나 공기가 차가웠다.
“으, 서늘해라.”
아마도 지금쯤이면, 열대의 화산에서 쏟아진 화산재와 연무가 하늘을 가려 버릴 것이다. 온도가 이렇게 내려갈 정도면…….
‘어디, 하늘은…… 오우야, 뿌연 거 보소.’
뿌연 하늘에 고개를 절레절레 지은 네마냐는 옷깃을 꽉 동여맸다. 떨리는 몸짓이 눈에 분명하게 들어올 정도였다. 아일라도 춥다면서 불평했다.
“아 씨, 추워라. 어째 올해 초보다도 더 추워진 것 같아.”
“그러게요. 아직 겨울도 아닌데. 보고로는 올해 처음으로 서리도 내렸다죠.”
“뭐? 이제 고작 10월 9일이잖아?”
아일라가 서리 이야기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정작 그 표정은 네마냐가 더 짓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잖아도 식량을 모으는 중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에요, 참.”
“그래도 타 영지에 비하면 우리는 넉넉하다고 하더라. 미하일 녀석이 투덜대면서도 그거 하나는 인정하던데.”
“미하일 녀석을 좀 달달 볶긴 했죠. 저랑은 다르게 영지 관리를 배운 녀석이라서. 덕분에 제가 좀 숨을 돌렸어요.”
보폭을 넓혀 금세 아일라를 따라잡았다. 차갑게 굳은 바닥의 단단함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서늘한 감각이 닿을 때마다 마음 밑바닥에는 답답함이 계속 쌓였다.
“……다만, 지금까지 준비한 것 이상으로 월동 준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연료 문제가 시급해서, 그것도 오늘 회의 주제예요.”
“오늘은 원래 영지 마나 관련해서만 민회 소집 논의하려던 것 아니었어?”
원래는 그랬지만, 다급하게 전진을 재촉하는 날씨 때문에 행보를 바꿔야 할 지경이었다.
“어쩌겠어요. 당장 겨울이 문제니 이걸 넘기고 봐야죠. 광물들도 손해를 보더라도 미리 팔 생각이에요.”
아일라는 열악한 현실에 숨이 막히는 듯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럼 나도 점심 먹고 공방 쪽에 전해 둘게. 장인들 쪽에도 뭔가 식량, 연료 문제에 의견이 있으면 알아보고.”
“아, 그래 주시면 고맙죠.”
정말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생각해 둔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는 것보단 나은 편이긴 했다. 모두가 생각을 모아 준다면 감사하게 받아서 잘 써먹으면 될 뿐이었다.
* * *
오랜만에 모든 일행을 불러모았다. 거의 매일같이 지나가며 인사하긴 하지만 하라드까지 함께 식사하는 건 오래전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다 모였던 게 8월이었나? 그때는 다들 광산이니 연구니 해서 지금보다도 정신이 없었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다, 후……. 따뜻한 빵에 수프만 찍어 먹어도 눈물이 나네.”
하라드가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로 웃었다. 제대로 된 노동법이 있는 나라였다면 나는 진작에 잡혀갔으려나? 뭐, 그런 건 없는 세계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본인들도 동의했으니까!
“수고했어. 덕분에 영지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은 준비가 끝났어.”
“정말? 그거 꼼짝없이 반년은 걸린다고 해서 예산 때문에 골치였는데. 어떻게 한 거야?”
잘라 놓은 고깃덩이를 푹 절인 포도잎에 올려놓던 미하일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지, 포크까지 내려놓은 채로 하라드에게 물음을 던졌다. 하라드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괴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쿡, 내 실력을 어떻게 보고! 연구실에서 마법사 인력들까지 탈탈 털면서 운용 방법들을 알아냈지. 그래서 죽을 만큼 피곤할 뿐이야.”
“어휴, 얘기만 들어도 잔인하네. 하라드, 이것도 먹어.”
아일라는 열일곱 마법 공돌이의 처지가 안쓰러웠는지 아직 남은 자신의 고깃덩이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이 작은 대마법사님의 눈빛은 예전보다 더 생동감 있었다.
“나도 놀랐다니까요. 형, 아니 우리 영주님이 마나핵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분석해 보니까 제국에서 쓰는 것보다도 더 개선된 형태더라고.”
“정말?”
“……체할라. 천천히 먹어.”
낯부끄럽게 얘가 또 비행기를 태운다니까. 뭐, 하긴 신형 마나핵 기술은 원래 먼 훗날에나 보급되는 기술이니까. 예전에 제국 기술서를 읽어 둔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론 선구안이 됐다.
“원래 제국에서 사용하는 방법대로라면 마정석을 금방 갈아 줘야 해. 마정석의 자연적인 에너지가 영지에서 거둔 주민들의 체내 마나랑 호환이 안 돼서 계속 소모되거든.”
빠르게 비운 접시를 옆으로 치우며 하라드가 유감이란 듯 고개를 저었다.
“마정석 고유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게 아닌 이상은 불가능해. 하지만 우린 영주 형이 마나를 불어넣은 금속재로 에너지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100%에 가까운 전환이 가능해진 거지.”
“오, 그러면 인간의 마나와 마정석 내부 에너지가 막힘 없이 흐른단 거지? 크, 취하겠다.”
미하일은 오래전 배운 상식이 무너지는 걸 이제는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라드는 담담히 받아서 한 가지 장점을 더 말해 주었다.
“마정석을 건들지 않아도 되니, 수명도 반영구적으로 늘어나서 유지비도 줄고.”
“좋다!”
“물론 그만큼 자유자재로 제 마나를 잘 받아낼 수 있는 합금을 주신 건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는 분의 덕이지만요?”
미하일의 장단 사이로 네마냐의 칭찬이 들리자, 칭찬의 당사자인 아일라는 어색함에 가벼운 잔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크흠, 앞으로도 합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얘기해. 꾸준히 만들어 둘 테니까. 이런 말 하면 이상해 보이겠지만, 마법을 부여하는 데는 마정 금속만 한 것도 없을 거야.”
직접 만져 보고 그 월등한 능력을 느꼈던 네마냐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하라드가 남은 접시를 마저 비우며 옆으로 밀었다. 지켜보던 집사, 스프란체가 재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스프란체?”
“네, 영주님.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영지 이야기할 테니까 자리를 치우면 오늘은 그만 쉬어도 돼. 다른 사람의 출입은 막아 주고.”
“네, 그리하겠습니다.”
변화 없는 무뚝뚝한 표정.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믿음이 가는 집사였다. 가스파리얀이 안고 있기엔 과분한 케이스였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기꺼이 남겨 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자기 생각을 읽고 처리해 주니.
“자, 그럼 식사는 마쳤고. 다가오는 겨울 이야기를 좀 해 보죠. 어제 보고는 다들 받아 보셨죠? 제가 다 돌렸었는데.”
겨울 이야기. 그 다섯 글자에 사람들이 다시 골이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다. 싫기야 네마냐만 하겠냐마는, 꼭 해야 할 일이었다. 그때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사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스윽.
나가기 전의 평온한 얼굴과 달리 긴장한 기운이 역력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온 끝에 네마냐의 귓가에 상반신을 기울였다.
“정보대라고 하는 이들이 면회를 요청해 왔습니다. 성문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가스파리얀의 시신과 관련된 이야기랍니다.”
“……가스파리얀의 시신?”
네마냐의 되물음에 방 안의 분위기는 다시 일변했다.
“전 영주가 죽었다고?”
“고블린은 어떻게 된 거지? 그리엘크는?”
자신 역시 궁금한 이야기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자녀들이자 영지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페넬로파나 젊은 가스파리얀의 문제도 있었다.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도 향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우선 침착하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네마냐는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문을 열었다. 집사만큼이나 전혀 파헤칠 수 없는 무표정함을 담은 채.
“우선 가 보죠. 우리 모두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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