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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45화 (44/200)

45화

온갖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나귀와 양의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성문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용케 불평하지도 않고 익숙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자, 자! 서두르지 말고 밀지도 마쇼! 줄만 잘 서면 삼십 분 안에는 모두 끝나니까.”

노련하게 상황을 정리한 문지기는 한 무리씩 천천히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이내 한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매우 젊어 보이는데 옷은 은근히 고급스러운 걸 보면 지체가 높은 귀족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찬가지로 신분증을 요구했다.

“오, 바가반드의 영주님이시군요.”

신분을 입증할 인장 반지를 본 사람을 비롯해 주변의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지케른의 신성 기사단 부단장의 요청으로 왔습니다. 바가반드의 백작인 네마냐 나자리안입니다.”

켈리도니온이 신성한 마나로 모든 도시와 영주들 위에 우뚝 선 것은 맞지만, 병사라는 입장에서 영주를 볼 때면 고개가 굽혀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거, 기사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느낌이네. 역시, 아무리 작아도 한 영지의 주인에게는 대우가 다른 법이군.’

애써 웃음을 지은 네마냐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고개를 들라고 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기사단장의 초빙을 받아서 왔는데 길을 모르겠어서요. 혹시 기사단 본부가 어딘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병사는 공손히 기사단의 초청장을 받아 읽어 보았다.

“기사단 본부 말씀이군요. 직접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영주님?”

“아, 그럴 필요는 없어요. 방향만 알려 주시면 찾아갈 테니까요.”

“네! 저기 보이는 정면의 대로를 따라 쭉 진행하시다가, 두 번째로 나오는 갈림길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전히 번화한 성국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전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바가반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번화가였다.

“……에서 신분과 용건을 밝히시면 됩니다.”

병사의 말이 끝나자, 네마냐는 다시 눈을 병사 쪽으로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고마워요. 이제 들어가도 되겠죠?”

병사의 허락과 함께 도시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번화해 봤자 서울 밤거리의 발치는 따라갈까 싶지만, 확실히 바가반드보다는 북적거림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낙원이라 할 만하네.”

호객하는 상인들과 장을 보는 주민들, 오줌 냄새를 풍기며 무두질에 열심인 가죽장이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아니(Ani)도 큰 도시고 번창한 편이지만, 켈리도니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온갖 신기한 향신료나 동물, 색다른 꽃들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네마냐도 시선을 뺏기기 일쑤였다. 드디어 어느 한 행상에 이르러 발마저 굳어 버리고 말았다.

“향긋한 차 사세요! 시테(Sytai) 분지 특산물, 장미차를 특별히 열 단지만 팔아요!”

“장미차……?”

이름은 익숙해도 이곳의 장미는 네마냐가 다른 이름을 쓰던 곳과는 꽤 달랐다. 이 세계에서는 붉은 장미는 존재하지 않았고, 진한 푸른빛과 하얀빛이 어우러진 장미가 유명했다.

‘동북쪽 작은 분지 평야에서만 자생하던 식물인데……. 향이 우아하다고 인기가 많았지.’

하지만 시테의 장미는 명성은 높아도 좀체 볼 수 없는 물품이었다. 보관하기 까다롭기로 이름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싸긴 해도 시중 소매상이 몇 단지씩 팔 정도면…….

“거기, 젊은 양반! 풍채도 좋아 보이는데 한 단지 사지 그래? 가족이랑 연인에게 주기 좋다니까.”

“흠.”

장미차는 우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꾸밀 수 있어 각광을 받았다. 연인의 고백에도 사용되기도 했다. 그만큼 수요가 높아 한 단지에 은화를 3개나 받는 고부가가치 생산품이었다.

‘시테 지방도 우리만큼이나 궁벽했지. 하지만 덕분에 알부자가 되었다고 했어. 부럽군.’

네마냐는 장미 향에 대한 감상보단, 어떻게 하면 바가반드에서도 저런 번듯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뭐, 잘됐네. 맨손으로 처음 방문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성국을 처음 방문하니 선물이 필요했는데, 마침 좋은 물건을 만났다. 시장 조사라고 스스로 애써 변호하며 네마냐는 행상에게 다가섰다.

“시테 지방도 꽤 궁벽했다고 알려졌는데, 내놓은 차들은 상등품인 것 같네요.”

“아이고, 젊은 양반. 그게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새 영주님이 오신 뒤로는 고장 특산물을 상품화해서 거리도 번듯하고 사람들 때깔부터 달라졌다니까?”

“특산물의 상품화라…….”

지금 네마냐가 추진하는 일도 넓게 보자면 그런 활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시테의 새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해졌다.

‘뭐…… 지내다 보면 만날 날도 오겠지.’

그렇게 바가반드에도 장미, 아니면 지구에 있을 때 유명했던 인삼 같은 상품 작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추워지는 대로 번창할 식물이 하나쯤 있을 법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대로 한번 알아봐야겠군.’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는 생각에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에라, 기분이다. 앞으로 나아갈 힌트를 줬으니 장미차나 좀 사 볼까.

“마침 선물로 좀 사 갈까 하는데…… 하나에 얼마인가요?”

“아이고, 잘 생각했어, 총각! 내가 한 단지에 한 단지 더 얹어서…… 딱 은화 1개에 줄게!”

“은화 1개라…….”

예전 가격을 생각해 보면 거의 70%의 마진을 붙인 금액이었다. 스킬을 쓸 수 있으니 사람을 믿기가 어려웠다. 네마냐는 손에 옅은 마나를 두른 채, 들떠 있는 상인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 * *

옅은 붉은색 벽돌로 한 줄을 만들어 포인트를 주었다. 사암과 비슷한 색의 벽돌로 바탕을 쌓은 건물이었다.

“그냥 보면 어느 부자의 저택이나 도서관인 줄 알겠는데.”

놀랍게도 이 건물이 기사단의 본부라고 했다. 멀리 건물 중앙에 있는 거대 돔 위로 흩날리는 깃발이 보였다. 만약 깃발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믐달 그림이 아니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멈추시오.”

고대 그리스 신전의 파사드(Facade)처럼 생긴 문에 다다르자, 잘 차려입은 무장 인력이 길을 막았다. 기사단 수습생 중에서 가려 뽑기라도 했는지 외모도 우수했다.

“기사단 본부에 무슨 용건이 있습니까?”

“역시 잘 왔군. 여기, 부단장이 보낸 초청장입니다.”

“클로루스, 확인해 봐.”

조금 연차가 있는 선배인지 곁에 있는 조금 더 앳된 후보생에게 지시했다. 네마냐는 품속의 주머니에서 초청장을 꺼내 내밀었다.

“부단장님 인장이 맞습니다.”

“좋아, 돌려드려. 부단장님께서 말씀하신 손님이시군요. 기사단 방문을 환영합니다, 백작님.”

두 수습생은 마찬가지로 아직 기사 수습생이지만 백작이기도 한 특이한 경력의 네마냐에게 경례했다. 어색한 지위의 소유자인 네마냐도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경례를 받았다.

“……엘레나 경은 잘 지내십니까? 워낙 바빠서 만나지 못할 각오도 했는데.”

“저번의 고블린 사건 이후로 각지의 경계 태세가 강화됐습니다. 우리 기사단은 꼭 필요한 곳에만 투입하는 것으로 근무 원칙이 바뀌었죠.”

자신을 필리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젊은 기사는 그런 말을 마치면서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네마냐를 쳐다보았다. 마치 신기한 거라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본인께선 잘 모르실 것 같지만, 으흠! 각하의 무훈이 각지에 파란을 일으켰답니다.”

“무훈이요?”

네마냐가 이상하단 눈치로 되물었다.

“그리엘크의 광역 마법과 산만 한 덩치를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 듯 상대하던 장면! 구원군이 올 때까지 거, 어디더라…….”

“자루아나죠, 선배!”

어디가 덩달아 신나는 포인트인지, 제일 들뜬 어린 기사 클로루스가 덧붙였다.

“아, 그래. 자루아나를 홀로 지켜낸 그 전공은 아마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기사로서 유감없는 데뷔군요.”

“하하…… 어, 꽤 과장됐군요. 구원군이 곧 올 것을 알고 시간을 번 것뿐이라서.”

네마냐는 제대로 된 현실을 짚어 주며 들뜬 분위기를 진압하는 데 힘썼다. 하지만 이미 흥에 취한 기사들은 네마냐가 겸손하게 군다고 여겨 더 야단이었다.

“세상에, 영주께선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역시나 그리엘크를 무찌른 게 맞았군요!”

‘거 참……. 녀석이 방심하지만 않았으면 내가 오히려 질 가능성이 더 컸는걸.’

괜히 시야를 새까맣게 메우며 전신을 조여들던 녀석의 적색 오라가 떠올랐다. 관절이 시큰거렸다. 두 번 떠올리기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차마 젊은이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뭐, 그리엘크 정도는 한번에 때려잡죠.”

“풉!”

아뿔싸. 재빠른 시선이 복도 건너편 방면을 향하니 마침 그곳엔 그 ‘부단장’께서 계셨다. 난생처음 보는 어떤 공녀와 함께. 엘레나는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양념을 마구잡이로 치기 시작했다.

“그랬죠, 분명? 나비처럼 날아 매보다도 빠르게 날았으니까. 주변 마나를 자유자재로 부려서 그리엘크의 예상을 뒤엎은 것도. 녀석의 표정을 모두 봤어야 했다니까.”

아,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군. 친하게 지내기로 하자마자 훅 치고 나오는 엘레나에 살짝 당황했지만, 네마냐도 바로 반격에 나섰다.

“흥. 제가 아무리 잘나도, 계곡풍을 따라 검날로 석양의 그림자를 베어 버린 전설의 검사만 하겠습니까.”

“야, 이…….”

물론 나와 관련된 소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엘레나에게도 충분히 흑역사가 있었다. 미처 그건 생각하지 못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내뱉던 부단장은 말을 돌리고자 방에 들기를 청했다.

“장난은 그만하고, 너희들은 돌아가서 근무해. 우리도 이제 들어가고.”

“음, 아직 이야기할 건 많은데. 못내 부탁하신다니, 그러실까요?”

못 이기는 척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등 뒤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세 사람은 준비된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해.”

“바쁘긴. 나야 어차피 실무는 동료들이 대부분 도와주고 있어서. 나는 오히려 네가 바쁘지 않나 해서 미안했지.”

“원래 부기사단장 정도쯤 되면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어렵지, 뭐. 근데 그건 뭐야? 웬 꾸러미?”

그제야 네마냐가 품고 있는 꾸러미가 보인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보려나? 뭐, 어때. 어차피 선물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네마냐는 거침없이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야, 나는 명목상 상관인데 소개도 안 해? 기사단 기강이 해이해졌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이 뜬금없는 투정을 부렸다. 덕분에 엘레나와 네마냐 모두 살짝 당황했다.

“그새를 못 참고…… 너도 참. 네마냐, 소개할게. 여기 이 친구는 성녀 트라야브나. 너를 초대해 보라고 부추긴 원흉이…… 아, 왜 꼬집어?”

“소개만 하랬지, 누가 잡설을 섞으래?”

뜻밖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내가 보는 저 사람이 아니와 자루아나에서 철벽같던 엘레나가 맞단 말인가? 잠자코 짐꾸러미를 앞으로 밀었다.

“장미차야. 마침 시테 영지산 상등품이 있더군. 처음 온 기념으로 사 봤어.”

“장미차……?”

“어머 어머…….”

잠시 또 이상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엘레나는 단순한 의문이었지만 그 뒤에 적절하게 따라붙은 ‘누군가’ 씨의 적절한 분위기 메이킹은 완벽했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냥 빈손으로 오긴 뭣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들고 온 거야.”

“물론 그랬겠지. 여기서 제일 신난 누구만 빼고 말이야.”

그 소리에 트라야브나가 코웃음과 함께 팔짱을 끼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다. 네마냐는 포장 밖으로 새어 나오는 우아한 향을 느끼면서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자, 이제 바가반드 영주인 나를 부른 이유를 성녀께 여쭤볼 차례인가? 비밀 연락을 한 걸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빠른 본론. 엘레나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옆자리의 성녀와 눈을 마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평소처럼 부단장의 역할로 돌아왔다.

“지금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 보고 싶어서 불렀어.”

“뭘 물어본다고?”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였다. 누구보다도 세계의 정상에 앉아 돌아가는 꼴을 잘 보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왜 그런 반응인지 이해한다는 투로 엘레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바보 같은 질문이란 건 우리도 알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어떤 게 궁금한 거야?”

“…….”

엘레나는 잠자코 옆에 있는 트라야브나를 쳐다보았다. 행동거지로 보아선, 아마도 성녀가 이번 삼자 회동의 주최자인 모양이었다. 계속 호기심에 찬 눈빛을 빛내며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여하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차를 들던 찰나.

“당신, 이 세상 사람이 맞나요?”

“푸흡…… 쿨럭!”

갑자기 열려 버린 기도 덕분에 격렬한 기침이 나왔다. 어찌나 격렬했던지 트라야브나조차 아무 생각조차 못 하고 미안해할 정도였다.

“어…… 미안해요. 그 정도로 사레가 들릴 줄은 몰랐네.”

“콜록콜록……. 아, 괜찮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아서.”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엘레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성녀는 한숨을 쉬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모양. 어쩌다 보니 잘 수습되었으니 잘됐지, 그래.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기존의 제후, 영주들과 다른 건 사실이에요. 단순히 정치력이 뛰어나거나 활약상이 크다고 영주를 만나고 싶어 할 성녀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네마냐를 바라보는 성녀의 시선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대화는 본격적으로 주제에 접근할 참이었다.

- 4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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