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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43화 (42/200)

43화

며칠 뒤. 에카톤 상단으로 마정석 가공 기계와 생필품 주문이 들어갔다. 영지의 업무 장악이 일단락될 무렵, 전서구 담당자가 네마냐를 찾아왔다.

“그러니까 영지의 식량 소모량에 주의해서 언제까지 배급할 수 있는지 매번 확인하도록 해요.”

“예,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정보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불안한데, 왜 그…….”

―똑똑.

“백작님, 보고드릴 것이…….”

반쯤 열린 문으로 상반신을 내민 채 전서구 담당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네마냐는 손짓으로 들어오게 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앞으론 매일 자료를 대조해요. 만약 소모량이 예상보다 빠르면 언제든 지원을 요청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인력이 더 필요하니 인건비를 추가로…….”

요즘 새로운 영주가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있다면 그건 ‘인건비’였다. 중세 세계관인데도 사람을 쓰는 데는 무조건 그놈의 돈이 들어가느라 노이로제가 걸릴 판이었다. 손을 바짝 들어 휘휘 저으며 강하게 선언했다.

“아, 인건비는 계산하지 마요.”

“그럼, 인력을 어떻게…….”

“제가 아는 기사들한테 술 사 주는 대신 협력을 받기로 했으니까. 나중에 여건이 좋아지면 지급하기로 합시다. 필요하면 작위라도 담보로 내주고 계약서를 써 주도록.”

그리고 얼른 나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강한 거부감에 역시 놀랐는지, 관리는 보고를 마치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필요하면 작위도 있는 대로 내주라고 했지만, 이것으로도 오래 버티긴 힘들겠지.”

자꾸 아슬아슬하게 초과하려는 예산들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렸다. 아프지도 않은 관자놀이를 괜히 꾹꾹 눌렀다. 물론 원인이 두통이나 혈류 이상이 아니니 나아질 리는 없다.

“이 이상 예상외 비용이 나가는 건 막아야 해, 그렇고말고…….”

“저…… 영주님?”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주문을 되뇌는 백작이 안타까운 담당자였다. 그렇다곤 해도 할 일을 빼먹을 순 없는 노릇.

“전서구 연락이 몇 통 들어왔습니다. 보고드릴까요?”

한숨을 쉬면서 네마냐는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여 봐야 영주로서 자신에게 이로운 건 없었다. 영지가 장차 강해질 것을 기대하고 움직일 뿐이었다.

“상단 쪽에서 온 소식이 있으면 그것부터 합시다. 그게 지금 제일 급하니까.”

“네, 마침 보두앵 지부장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와 있던 참입니다. 나흘 전에 보냈던 기자재와 생필품 목록에 대한 건입니다.”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답신을 받기 충분했는데 나흘이나 걸렸다. 그만큼 필요 물량을 확인하고 계산하는 데 시간이 걸렸겠지.

“어디 보자……. ‘수수료는 제하고 금화 800개’로 받겠다는군요.”

“800개라.”

딱 들어도 막대한 금액이었다. 평균적인 사이즈의 대농장에서 1년 치 수확량을 팔아치우면 대략 금화 100개 정도다. 그 8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현재 영지 예산을 탈탈 털어도 모르겠군요. 괜찮겠습니까?”

기존의 영지 예산 규모는 다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청구 비용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마냐는 의외로 덤덤했다.

“생각보단 괜찮네요. 어차피 당분간 지불은 유예하는 것으로 했으니까.”

마정석 채굴과 가공이 제 궤도에만 오르면 그 정도 빚은 갚고도 남는다. 마정석에서도 A급은 이제 부르는 게 가격이 되는 세상이므로.

“그럼 어떻게 답할까요. 승낙하는 것으로?”

전서구 담당자에게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도 광산 프로젝트는 끝없이 돈을 갉아먹는 사업이었다. 각오하긴 했지만 제대로 가동될 때까지 얼마나 더 비용이 들지는 아무도 모를 터.

“그럼 다음은…… 성국에서 온 자고새 전신이군요. 영주에게만 전하라는 특수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죠.”

“갑자기? 아직 나한테 뭘 연락하기엔 너무 접점이 없었는데.”

담당자가 건네준 것은 손바닥만 한 편지였다.

“붉은 비단이라. 확실히 성국은 돈을 아낌없이 쓰는군.”

값비싼 붉은 색 비단으로 된 전신은 최고 직위자에게만 직접 전달하라는 ‘비밀 엄수’를 의미했다. 성국(聖國)이 겨우 산골동네 영주 하나 바뀌었다고 관심이 생길 리는 없을 텐데, 무슨 일일까.

“지금 연도가 어떻게 되죠?”

“네?”

“말 그대로야. 올해가 몇 년인지.”

“아…… 네네. 지금은 세계 기원 6556년, 10월 23일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신도 보시기 전에.”

“56년 10월 23일…….”

흐릿한 이미지들의 조각이 표류하는 머릿속. 눈을 감고 뚜렷한 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기억 조각을 조립했다.

[이해력 발동 : 정보 개방]

[단서와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한다.]

어딘가 그동안 찜찜했던 감이 하나의 기억으로 몰려갔다.

“아!”

기억났다.

‘두 달 후, 혹한의 찬 바람이 몰아치는 57년 1월이 되면…….’

그 당시엔 워낙 개인사에 경황이 없어 기억의 한 구석에 묻어 버리고 별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었다.

“미안합니다, 전서구를 보내서 상단에 최대한 빨리 거래를 실행해 달라고 하세요. 다른 건 두고 당장 그것부터.”

알겠다는 말과 함께 담당자는 서둘러 방에서 모습을 감췄다. 영지 장악전 이후로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국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꾸 신경이 쓰이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보두앵과 하라드 덕에 진정된 맘이 다시 조급해졌다. 엘레나를 볼 때도 어딘가 못내 밟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공세 시점이 거의 눈앞까지 다가왔으니, 참.”

물론 시간대로만 보면 지금 성국에서 보낸 기밀 전신이 ‘그 사건’ 때문에 온 건 아닐 것이다.

“일단은 나라도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봐야지.”

가만히 영주의 인장 반지를 붉은색 촛농에 가져다 댔다. 미묘한 반응과 함께 붉은색 봉인된 인장이 두 장의 종이를 분리했다.

“오케이, 처음치고는 잘 됐어.”

길게 말려 있는 종이를 펴자 족히 단어 열 개는 들어갈 공간이 나타났다. 새의 다리에 단단히 고정해야 하는 물건이라 이게 최대 크기였다.

[고블린, 방문 요청, 부단장 드림]

엘레나의 편지였다. 뜻하는 것은 분명했다.

“고블린 출현.”

이미 바가반드에서 역사가 뒤집혔다. 그러다 보니 고블린이 달리 움직일 것이 두려운 네마냐였다.

“당장은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은 것 같군.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아마 그대로 무너졌을 거야.”

아직 대처 불가능할 정도로 뒤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마 엘레나가 또 참전 요청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내가 안 싸우겠다는 건 아니라고 얘기했건만.”

잠시 손가락을 팔걸이에 튕기면서 앞으로의 일정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앉아서 고민할 만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꼽아 보아도 단지 두 개만이 접힐 뿐이다.

“두 달……. 다르빌이 공격을 받기까지 남은 게 두 달인가. 시간 참 빨라.”

기억하는 대로 앞으로의 사건이 진행된다면 고블린들은 주도면밀하게 다음 공격을 진행하게 된다. 비록 바가반드는 어쩌지 못했지만, 이번엔 직접 다르빌을 공격하게 될 터.

“성국이 아직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 때 방어선을 걷어낸다는 계획인 건가, 대담하군.”

다르빌은 성국의 변경에 있는 대도시다. 1년 반 전에 멸망한 나샤와에서 남쪽으로 불과 100km 부근에 있었다. 9개월 전에 멸망한 황금 모래 영지로부터는 6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지도로 이렇게 표시하니까 훨씬 잘 드러나는군, 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최근 몇 년 동안 고블린의 움직임을 색상으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 지도. 네마냐가 주문해서 걸어 놓은 것이었다.

“일시적인 기동 같지만, 몇 년간의 기록을 보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지. 조심스럽게 세운 장기 계획이란 뜻인 것 같지만…… 이게 다 계획이라면 소름이 돋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닭살이 돋았다. 이런 고도의 작전과 기만술,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한 수뇌부가 지휘를 잡다니. 대체 인간들은 자신들이 누굴 상대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엘레나에게도 이야기해 둘 필요는 있겠는데. 성국의 안전과도 직접 관련된 문제니까.”

어찌 되었든 같은 뜻을 가진 동지인 엘레나를 보아서라도 성국에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바쁘다고 파드 경이나 엘레나도 제대로 배웅을 못 했었지. 이번엔 인사도 제대로 해야겠네. 영지도 영지지만 외부의 친구들과 잘 지내는 일도 필요하니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영지의 모두가 자기 일에 바쁘니 자신도 슬슬 안심하고 외부를 다녀올 수 있을 터.

“있냐.”

방 밖으로 나와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미하일이 다시 맑고 빛나는 눈을 되찾아 고개를 내밀었다.

“야, 잘 잤구나? 원래대로 동안이네.”

“응. 급한 것만 처리하고 몇 시간 쉬었지. 근데 너 어디 가?”

“켈리도니온에서 나를 찾는다네. 그래서 잠깐 다녀오려고.”

“켈리도니온? 이제 성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지셨군. 잡혀가서 악마나 이단인지 실험당하는 거 아니냐?”

“아침 댓바람부터 저주를 거네……. 참, 생필품 소모 점검을 수시로 하기로 했으니까 증가분 인건비는 네가 알아서 보충해라.”

맑은 아침에 벼락이라도 쳤는지 미하일은 심술 섞인 네마냐의 답변에 부들거렸다.

“뭐, 뭐…… 야! 뭔 소리야!”

“켈리도니온에 가야 하니까 이의는 다음에 받기로 하지.”

폭탄을 던져 주고 유유히 자리를 떴다. 묘하게 열 받는 천연덕스러운 녀석의 표정이 구겨지는 건 세상살이의 몇 없는 낙이었다. 미하일이 보지 못하게 뒤돌아선 네마냐는 웃는 낯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작업은 좀 어때. 진척이 있어?”

“아, 영주님 오셨군요. 하라드 님을 찾으러 오신 거면…….”

“술렁이는 걸 보니까 네마냐 형이 왔나 봐? 맞네.”

밖에서 내내 입던 로브는 벗어 둔 채 작업복 차림으로 다니는 하라드가 작업실 안쪽 문을 열고 나타났다.

‘물론 말이 수수하지, 저 흰색 작업복에 마법 처리하려면 돈이 장난 아니게 들었겠지.’

자연적으로 색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옷을 표백만 하려고 해도 재료와 인건비가 소모된다. 더군다나 마법사에게 필요한 기능까지 갖추려면…….

‘자꾸 돈 생각하면 쫌생이 되는 기분이야. 이럴 땐 마음을 비워야지.’

네마냐는 돈 문제를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채 하라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는 잘하고 있냐? 잠이랑 밥은 잘 챙기면서 하라고.”

“애초에 마법학의 기초 이론으로 진행하는 거니까. 고마워, 바빌리. 형, 여기 앉아.”

소파에 앉으라는 제스처와 함께 녀석은 바빌리라는 연구원이 건네준 나무 의자에 거꾸로 앉았다. 의자 등받이 위에 올린 팔에 턱을 괸 녀석이 물었다.

“차 내줄까? 그 커피라는 가루는 없지만.”

“아니야. 잠깐 들러서 곧 가야 해.”

성국으로 가기 전에 들렀단 이야기를 꺼내자, 녀석도 납득하곤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 영지 마나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는 이미 얘기해 줬잖아? 그때 형이 영지 마나의 축적과 활용법은 마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가 문제라고 했지.”

“어째, 장로단을 끝내 믿지 못했다는 소리로 들린다?”

녀석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나자리안 백작이 영지를 구원하고 빠른 속도로 재건한단 이야기는 긍정적이야.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피난민들조차 협력하도록 끌어냈으니까.”

네마냐에겐 낯부끄러운 소리이긴 하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닌 진술이니 담담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권력이 변화하는 데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있지. 우리처럼 외부인들이 개입된 경우라면 특히.”

확실히, 급격한 상황 전개와 예상치 못한 경제적인 이득은 영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한편으론, 위기 동안 잠시 억눌렸던 장로나 유력자들 사이에서 권력에 대한 욕구가 되살아나는 촉매가 된 것도 사실.

특히 바가반드 영지의 경제적 중심지라 할 자루아나에서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이미 장로단 사이에서 몇 개의 세력이 형성되어 세를 불리는데 열심이란 소문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자신의 자유로운 마나를 세금처럼 거두어 영주가 담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던가.’

다음 대사를 조금 생각한 네마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 하루 이틀 일이어야지. 영지 마나 개념을 여기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방해해 왔으니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하지만 영지의 안전을 위해선 가장 필요한 수단인 건 맞으니까.”

당연한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아직 취임 초기라 말발이 가장 셀 때 먼저 밀어붙이자고 내가 제안한 거 아니겠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네마냐는 자연스레 다리를 꼬는 자세를 잡았다. 하라드는 계속 자세를 지키며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일단 지금은 복수의 마정석으로 안정적인 마나 포집, 저장 기능을 만들고 있어. 아마 효율만 따지자면 동방 제국에서 하는 것과도 큰 차이 없을 거야.”

“그래, 실무적인 기능은 당장 네게만 맡겨 둘 수밖에 없는 건 안타깝지만. 실제로 시행할 때가 되면 우리 바가반드의 체질도 바뀌겠지. 그러니까 기왕이면 최대한 완벽하게 해 줘.”

무언가 준비되고 있다는 걸 하라드는 단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지하는 모양이다.

“체질이라. 뭔가 또 크게 한 판을 계획하는 모양이네? 바난드 조합 앞에서 신파극 하나 찍었던 것처럼.”

능청스레 손사래를 치며 받아 주었다.

“에이, 그런 너절한 기억은 접어두라고. 처음엔 길바닥에서 연극을 했고, 둘째 번에는 진흙탕을 구르며 싸우긴 했지만.”

양손을 들어 서로 지저분하게 싸우는 모습을 흉내 내며 영주는 이야기를 이었다.

“이번엔 정치란 게 뭔지 확실히 보여 줄 테니까. 물론…… 여기서 말하긴 어렵고 나중에 알려 줄게.”

“외람되지만.”

아까 하라드에게 의자를 건네주었던 녀석이 끼어들었다. 주변의 사람들까지 당혹스럽게 쳐다봤는지 잠깐 침묵을 지킨 바빌리라는 연구원.

“괜찮아, 이야기해 봐.”

“바빌리, 할 말이 있으면 해 봐.”

물론 대화에 끼어든다고 누군가를 조진다는 건 가스파리얀 같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너그러운 영주가 목적인 네마냐는 너그럽게 얘기하라는 손짓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영지 마나의 최대 반대자라면 영주의 강한 힘을 두려워하는 이들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들을 조용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게 마땅할 겁니다.”

‘음?’

아주 잠깐이었지만 흥미를 끌어올 만한 이야기였다. 권력 구조 재편이란 문제는 워낙 어려운 문제라 일부러 시스템의 임무 제안도 승낙하지 않은 채 미뤄 둔 상태였다. 이따금 반강제로, 스팸 광고 뜨듯이 ‘접수를 결정하지 않은 임무가 있습니다’란 문구가 떴다.

‘방법을 찾기 전까진 미뤄야지.’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참곤 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네마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던 연구원은 계속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따라서 아예 새로운 권위를 만들어 내어 그 출처에서 힘을 끌어내 쓰는, 이른바…….”

“……거기까지.”

적절하게 끊었다. 정말 자기 생각과 같은진 확인하지 않았다. 정말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니까.

“당신, 성함이 어떻게 되지요? 재밌는 사람이 있었어.”

“저는…… 바라타시빌리라고 합니다. 제국령 디베리아 출신입니다.”

활달한 성격은 아닌 듯 진땀이라도 흘리는 투로 대답했다. 디베리아, 그러니까 서방 제국의 서부 변경 출신.

‘수백 년 전부터 기술을 써 온 제국 출신이라면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라드 역시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우린 별명으로 바빌리라고 불러. 바라타시빌리 가문은 디베리아에서 꽤 한몫하던 집안이야. 내가 말했던 ‘사회적 맥락’이란 부분도 바빌리가 알려 준 거고.”

“모처럼 탐나는 인재인데. 진작에 나한테도 얘기 좀 해 주지 그랬냐.”

“형은 인재 욕심 전에 먼저 나랑 해야 할 일부터…… 읍!”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번개 같은 반응이었다. 잽싸게 일어나 하라드의 입을 막은 뒤 바빌리를 보며 짧은 윙크를 건넸다. 의아한 표정의 바빌리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

“영주참사관의 자리를 줄 테니 오늘 일정 끝나면 재무관 미하일 바드란에게 보고하세요. 내가 지시했다고 하면 알아듣고 자리를 줄 겁니다.”

바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네마냐는 바로 좋은 대답을 얻어 좋다고 장단을 맞추었다.

“좋아요. 그럼 난 지금부터 켈리도니온에 다녀올 테니 계속 연구 부탁합니다.”

그리곤 영주는 재빨리 연구실을 벗어나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지켜보던 마법사들이나 조수들은 모처럼 뜬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라드는 부질없이 그늘 속으로 사라진 사람에게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갔다 와도 공부는 빠지면 안 돼! 내, 참. 바쁜 사람을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영주님이 꽤 유쾌하시군요, 활달하기도 하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만나면 피곤하면서도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니까.”

비로소 간밤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 고개를 터는 하라드. 연구실 안쪽에선 피곤에 찌든 다른 마법사들도 나타났다.

“수석 마법사님…… 마나 안정화 실험은 끝났습니다. 방금 500회차…….”

피로가 쌓여 말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 이들의 소리. 하라드도 까먹었다는 듯 손뼉을 쳤다.

“내 정신 좀 봐! 한창 마법 술식 만지다가……. 자, 자! 모두 자리로 돌아가요. 졸린 사람은 실수하지 말고 자러 가고, 읏차!”

젊은 영주가 잠시라도 불어넣는 이 활력 덕분에 그래도 연구원들은 표정이 밝아졌다. 경험자들은 입을 모아, 일종의 ‘회복 마법’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냥, 대화를 하다 보면 기운이 나더군요. 마치 맑은 마정석 옆에서 쉬는 기분이랄까.]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법한 사람들은 이야길 들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덕분에 이상한 미스테리는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 4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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