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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30화 (29/200)

30화

아침이 되어 일어났을 때 이미 파드 경의 말은 마구간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다른 사람은 모두 피로와 숙취에 곯아떨어진 상태라 물어봐도 답이 없었다.

“누구, 파드 경 나가는 거 본 사람?”

“…….”

“아무도 못 봤군.”

독한 술을 계속 마셔 댔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 사라졌다.

‘괜히 바난드 제일의 기사라 불리는 게 아니군. 훈련대장이 아니라 단장을 해도 됐을 텐데.’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자기 절제 능력이었다. 네마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초 능력치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도 뒤지지 않으려면 보조적인 시스템 역시 간과할 순 없다.

“어쩔 수 없지. 그거나 잠깐 볼까.”

[네마냐]

[기초 능력]

[체력 7(-1: 사고에서 회복 중)]

[근력 8]

[민첩 8]

[이해 13]

[판단 10]

[행운 ??]

눈을 감자, 이젠 익숙해진 창이 보였다. 아래로는 가장 숙련된 중급자 수준 탐지와 아직 기초 수준인 광업 기술란이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전사 고블린 하나 잡아서 경험은 많이 얻었다만.’

기나긴 스크롤을 내리던 네마냐의 눈에 걸린 건 새로 추가된 특이한 ‘칭호’였다. [보르크의 처형자]. 네마냐가 주목하자 신이라도 난 듯, 시스템이 설명까지 띄워 주었다.

[보르크의 처형자]

[고블린 전사 보르크는 고블린 군단의 특수 작전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를 제거하여, 당신은 고블린을 잘 이해하고 더 잘 상대하게 됩니다. 고블린 군단이 당신을 인지하게 됩니다.]

“워……. 보르크 녀석이 특수 작전 지휘관이었다고? 버거웠던 게 그 이유 때문이었군.”

녀석과 서로를 베어 버릴 듯 뛰놀던 난전이 떠오르자 등덜미로 식은땀이 다시 흘렀다. 벌써 고블린 놈들의 주목을 받으면 곤란한데.

“설마 보르크를 보내온 것 자체가 나를 노린 작전인 건가? 아직은 가스파리얀 정도가 아니면 위협을 느끼지 못할 텐데.”

그렇다면 백작이 고블린들과 내통을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노렸다는 걸까. 기억에는 없던 새로운 전개에 머리가 절로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벌써 내 존재를 알아챘을 리는 없어. 알아도 대수롭잖게 생각할 테고. 그보다는…….”

고블린이 가스파리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건 전투에서 얻은 증거물인 서찰로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고블린 문제에 앞서서 최대한 신속하게 백작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휴. 어찌 됐건 고블린 문제는 당분간 조심해야지. 내가 걱정하는 대로 백작이 내통 중이라면 더더욱. 고블린을 상대하는 건 영지를 접수한 뒤부터 해도 늦지 않아.”

네마냐는 작게 숨을 내쉬며 창을 닫았다. 아침 여명이 창틀의 틈을 따라 들어와선 복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후……. 바람이나 쐬러 가 볼까.”

숙소 앞 복도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반대편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 너구나.”

“아일라? 일찍 일어났네요. 아, 하긴 어젠 술을 안 먹어서.”

“나는 술을 즐기는 거지, 중독자가 아니니까. 당연한 소리지.”

머릿속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띄우면서 네마냐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아…… 참. 파드 경은 벌써 출발한 것 같던데, 혹시 봤어요? 말도 이미 없어졌던데.”

전날 짧게 식사를 마친 뒤 조합장에게 보고할 이야기를 맞춘 두 사람은 그 길로 헤어졌다. 아침에 인사라도 할까 했지만 이미 출발한 뒤였다.

“야, 말도 마. 자기 일로 돌아가니까 완전 딴 사람이더라. 말수도 줄고. 어쩐지 좀 재수 없기도 했어.”

“하하……. 기사다운 사람이죠.”

“기사라, 그래서 그렇게 재수가 없었나.”

그런 말을 하는 아일라의 손에는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과 연장 몇 가지가 들려 있었다. 가방은 약제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대장간에 가는 거예요?”

“응. 본거지를 마련하기 전까지 거창한 작업은 못 하겠지만, 당장 들고 다닐 만한 건 미리 손을 봐두려고.”

“일정이 자꾸 바뀌니까 확정을 드릴 수 없어서 제가 미안하네요.”

아일라는 어깨를 툭 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편하게 말했다.

“그만큼 필요한 일일 테니까. 내가 너를 계약상 보스로 삼는다는 건, 네 판단을 신뢰한다는 뜻이야. 미안하거나 민망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 말과 함께 아일라는 몇 가지 대장간에서 사용할 도구를 마저 챙겼다. 그 난리 동안에도 기본적인 손질 도구는 가지고 다녔던 걸까.

“이제는 그래도 본연의 일만 생각하면 되니까 조금은 나을 것 같아요.”

“그렇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마침 이야기가 대장간 건으로 넘어왔으니 네마냐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이제 본거지로 돌아왔으니 기회가 닿는 대로 마법과 이 세계의 금속공학을 배워 둘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꼭 습득해야 할 마정 합금 기술의 기초가 될 테니까.

“그럼 당장은 됐고, 시간이 나면 마력으로 금속을 제어하는 기술 좀 알려 줄래요?”

“공부 좀 하게?”

“마정 합금을 영지의 특산물로 하려면 영주인 나도 잘 알고 있어야죠.”

네마냐는 씨익 웃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아일라 역시 음흉한 표정으로 농담조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거 되게 비싸다. 그것만 잘 알아둬. 이상하게 써먹는 것도 내가 허락 안 해.”

“에, 왜요? 제가 또 살상용으로 써먹거나 팔아먹을까 봐요?”

네마냐는 억울하다는 투로 어깨를 들썩였다. 이미 한 번 생사의 전선을 같이 넘어와서 그런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처럼 보였다. 아일라가 부스스한 머리를 슬쩍 다듬으며 말했다.

“보니까 처음 치곤 무기를 잘 쓰긴 하더라.”

“하하.”

“그래도 금속기 장인의 덕목은, 무인과는 또 다른 게 있으니까. 기초부터 천천히 닦자고.”

그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곤 곧 문을 나섰다. 네마냐는 자신이 들었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아직은 막연한 이야기였다.

“두고 보면 알겠지. 우선은 의문의 괴수를 조사해 볼까.”

그렇게 말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동행할 미하일을 깨우려고 돌아섰다. 마침 녀석은 맞은편 방에 있었다.

“어이, 밀…… 아, 이런.”

숙취와 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방으로 살짝 들어간 네마냐는 발로 툭툭 차며 미하일의 의식을 확인해 봤다.

“야, 야. 지금 괴수 찾으러 가 볼 건데, 같이 갈 거냐?”

“으우…… 응……. 크읍……!”

“어휴. 그러니까 자식아, 내가 작작 마시랬지. 아침부터 뻗어 갖곤.”

말로는 눈앞의 한심스러움을 전부 옮길 수 없었다. 이렇게 숙취에 시달리니, 미하일과 함께 가기는 틀려먹었다.

“할 수 없지. 하라드한테 같이 가 보자고 할까. 으샤아앗!”

한껏 기지개를 켜는 사이, 일찍 일어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도 미하일보단 일찍 일어나는군.”

* * *

인구가 수백을 넘어 1천에 다다르는, 그러니까 거의 작은 도시에 가까운 시장.

“그게 이곳 타티온이지.”

적게 잡아 5백 명이라고 쳐 보자. 그것만으로도 족히 1천 개의 눈이었다. 그 탐지 능력을 헤아려보면 실로 무시무시할 것이다. 1천 개의 감시탑이 제각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감시하는 노릇 아닌가.

“하아……. 그런데 대체 왜 괴수를 봤다는 놈이 없는 거지.”

참 이상한 일이었다. 족히 이십여 명에게 물어봤어도 누구나 다 아는 ‘괴수가 있다’ 수준의 이야기뿐이라니.

“괴물이 있다는 건 와전된 이야기 아닐까. 그냥 특이하게 큰 곰을 잘못 본 걸 수도 있으니까.”

함께 온 하라드마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봤다는 사람은커녕, 본 것 같다는 얘기도 없는 게 이상하잖아.”

“하긴. 밤중에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게 전부였지. 그 정도면 늑대 소리일 수도 있어.”

“흠……. 밤중에 돌아다니는 괴수인가.”

‘어딘가 놓치는 점이 있을 수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써야겠지.

‘고블린이 잠입한 걸까.’

하지만 그 가설도 지금은 기각이다. 고블린이 포착되지도, 싸우지도 않고 조용히 다닐 리도 없으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네마냐에게 하라드가 무어라 속삭였다.

“우리 근처에 뭔가 적대적인 상대가 있는 느낌이야. 아티팩트가 있는 것 같은데?”

“너도 느껴? 나는 지금 아티팩트랑 철제 도구에 마나가 반응해서 시끄러워 죽겠어.”

조금 전부터 주변의 적대적인 기운이 담긴 아티팩트와 철제 도구에 마나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단서 없는 실마리란 있을 수 없지.”

그 말에 하라드가 쳐다보았다.

“네마냐 형, 뭔가 생각하는 거라도 있어?”

“나? 물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네마냐의 손짓엔 불신하기 어려운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힌트를 찾았단 생각에 하라드의 눈빛에 이채가 드러났다.

“잘 먹고 낮잠 잘 생각을 하고 있었지.”

네마냐는 심드렁한 답변과 함께 무심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일반인이라면 느끼기 어려운 강한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와장창!

―쿠당탕!

깨지는 소리와 철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을 요란스럽게 만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기운과 소리. 그걸 들은 하라드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네마냐를 바라보았다.

“……이런 걸 노리고 있었군.”

“당황하지는 마. 우리 영주님이 선전포고에 당황하셨나 봐. 염탐꾼이나 보내고.”

‘말이 좋아 염탐꾼이지, 아티팩트의 양을 보면 거의 살인도 가능한 수준이었어. 그냥 자객을 보낸 거지.’

담담한 표정인 네마냐와 대조적으로, 하라드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마법사로 발령받고 나섰는데 너무 어렵네. 마법만 쓰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일이 너무 복잡한걸.”

“좋은 인생 경험한 셈 치자고. 안 그러면 기분이 너무 더럽거든.”

가스파리얀 가문 아래서 40년 그리고 다시 몇 달을 지내 본 경력자의 친절한 조언이었다.

“네, 네. 모든 문제의 원흉이 말이 그러시다니. 경험한 셈 쳐야죠, 네이.”

“말이나 못 하면…….”

그러고 보니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공기를 가르고 음파를 전달했다.

‘소리의 전형적인 특성이지.’

괴수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가까운 거리에서 녀석이 울음을 냈으니 들렸을 테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엔 이렇게 해 보자. 우리가 반대로 녀석을 찾아오게 유인해 보자고.”

“거꾸로? 어떻게?”

네마냐는 어딘지 비열해 보이는 웃음과 함께, 하라드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놈이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잖아? 그럼 우리도 소리로 녀석에게 우리의 강대한 힘을 알려 주는 거지.”

“아, 바람에 강한 마나를 실어 보내서 놈에게 도발을 건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도발에 걸려들까?”

하라드는 원리를 빠르게 이해하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물론 괴수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는 모르지. 하지만 이 근처에 소릴 낸다는 건 여기가 놈의 영역 근처라는 거야.”

괴수는 마나의 위상에 영향을 받아 태어나는 동물의 일종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영역에 민감했고, 그걸 건드리면 아무리 순한 종이라도 발끈하기 마련이었다.

“네가 멀리까지 소리를 퍼트릴 수 있다면 가능해.”

“응. 어제 썼던 프시키를 봤구나. 그건 마법보다는 정령술이지만, 한번 해 볼래?”

“새로운 거라면 좋지. 잘 부탁한다고, 선생님.”

말이 끝나자마자 네마냐는 하라드의 허리춤을 붙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

“우악!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도시 한 가운데서 놈을 부를 건 아니잖아? 하더라도 조금 외진 곳에 가서 해야지.”

대답은 딱히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그라소 Graso]

예전에 용병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 주고 얻어 배운 마법. 시전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발이 닿는 지면에 마나로 마찰력을 줄이는 거였지.’

구체적인 마법은 몰라도 마나만 이용할 줄 알면 최적이었다. 더군다나 마찰계수라는 현대 지식을 알고 있던 네마냐다.

‘이것보다 편하고 좋은 마법이 없었지. 여기에 속성도 물의 마나로 채워 주면, 자…….’

그야말로 서핑 보드에라도 올라탄 듯 거칠 것 없이 거리를 헤쳐나갔다. 하라드가 멀미를 호소했지만 이미 떠난 배는 멈출 수 없는 법이었다.

―솨아!

느긋한 바람이 살짝 말라 버린 잔디의 끝을 건드리자 때아닌 파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네마냐는 풀밭 위에 앉아 있었다.

“이대로 앉아 있으면 돼?”

“응, 조금만 기다려. 어차피 시작하면 나도 앉아서 해야 하니까. 멀미만 없었으면 바로 시작했을 텐데, 쳇.”

네마냐는 하라드의 뒷말은 살짝 무시한 채 잠자코 앉아 나무에 살짝 등을 기댔다. 햇볕이 따뜻해서 노곤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땅바닥에 손바닥만 한 원을 그린 하라드는 풀밭에 무릎을 꿇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고.”

녀석은 맑은 목소리로 친구를 부르듯 숨결을 불렀다.

[프시키, 부름에 답하라]

연기처럼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주 희미하지만, 일전에 봤던 빛이 꼬물거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럼 내가 본 건 단순한 마나의 흐름이라기보다도 프시키란 존재의 움직임이었군. 옛날 판타지물에서 읽었던 정령인가.’

하라드는 손바닥에 그 프시키란 것을 올려놓더니 어린아이라도 보는 듯 방긋 웃었다. 그것도 잠시, 하라드는 잘 봤냐는 듯 네마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봤지? 원래는 외부에서 자연의 마나를 불러서 정령을 소환해야 해. 보통 인간은 자연 마나를 쓸 수가 없으니까.”

“음, 그렇다면 내 경우는…….”

“필요 없지.”

오케이. 자연 마나를 일부러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체질이라면 프시키, 그러니까 정령을 소환하는 데는 최적이란 소리군.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한다.”

“응.”

하라드가 프시키에게 부탁한 건 간단했다.

“근처의 가까운 괴수들에게 두 사람의 마나 기운을 담아서 보내 줄래?”

잠시 이야기를 들은 정령은 가벼워 보이는 몸을 이리저리 공중에 날렸다.

[그걸 말이라고. 잠시만 기다려, 계약자.]

―쐐액!

날쌔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북쪽 하늘로 사라졌다.

“……아니, 지금 바로 찾으려고?”

“당연한 거 아냐? 일단 만나서 정말 위험한 놈인지 봐야지.”

“정말 위험한 놈이면……?”

“음, 대화부터 해 볼까?”

네마냐는 이마를 짚었다.

“너, 괴수 몇 번이나 만나 봤냐.”

“이번이 처음이지, 아마? 기대되는걸.”

“하.”

제기랄. 먼저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어야 했다. 아직 경력 부족한 마법사를 너무 믿은 자신의 탓이지 어쩌겠나.

“이 문제만 해결돼 봐라.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쪽쪽 다 빨아먹어 주지.”

무릎을 탈탈 턴 네마냐가 일어섰다. 저 멀리 동남쪽 하늘에서 프시키가 몸을 회전하며 돌아오고 있었다.

“괴수는 동남쪽에 있었던 모양이네.”

“동남쪽……. 그럼 성산 마시스 방면이란 건데, 거긴 괴수가 나올 환경이 아니지 않았나?”

녀석의 이야기. 성산 마시스가 멀리 보이지만, 그저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다. 네마냐는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괴수가 피난민에 쫓겨왔을지도 모르지. 일단은 녀석이 우리에게 대답할지 보자고.”

“흠…….”

성산 마시스에는 하야스단 고원에서 가장 유명한 성수가 살고 있다. 놈이 실존한다는 건, 적어도 네마냐는 알고 있었다.

‘성수가 있다면 마시스 방면에서 괴수가 생길 일은 없겠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게다가 증언에 따르면 출몰한 지 벌써 한 달인데 인명 피해도 거의 없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괴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을 피하는 괴수라면, 정말 어지간하면 인간 거주지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나?”

“보통은 그렇겠지? 아니면, 정말 사나워서 별로 상관없는 놈이라거나.”

뭔가 계속 나올 듯 말듯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위험한 놈이었으면 벌써 도시를 뒤엎고 남았을지도 모르지. 아, 머리 아프군.”

하라드의 말대로였다. 설사 피난민의 소란스러움에 밀려났다고 쳐도, 강을 따라 중류로 나오면 인간과 부딪힐 게 뻔한데 말이다. 계속되는 염탐과 피난민, 괴수까지 복잡하게 얽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상념에 잠겨 있을 수도 없었다.

“비행 괴수인 모양이야. 저쪽 하늘에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는데. 좀 흥분한 것 같아.”

기척을 느낀 하라드가 소환진을 지우고 몇 가지 주문을 빠르게 읊었다. 물리적 타격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작은 실드였다.

‘저거, 어째 좀 생각보다 큰데?’

네마냐는 이미 대형 전사 고블린도 잡아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놀랄 정도로 거대한 괴수였다. 맹금류를 닮은 거대한 날개, 그러나 몸통은 악랄하게 생긴 대형 호랑이였다.

“어, 저 녀석…….”

“저런 위험한 괴물을 보고 무슨 뭘 가만히 있어! 얼른 무기로든 마법으로든 공격해!”

겉모습을 보고 하라드는 심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네마냐는 오해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저 애는 그렇게까지 위험…….”

“쉿!”

퉁명스럽게 입가에 손을 대는 하라드. 네마냐는 약간은 곤란하다는 눈치였다.

“일단은 내가 상대해 볼게. 하지만 대화로 충분히 설득 가능한 녀석이야.”

마나를 잔뜩 주입해 놓은 단검을 가슴께에서 꺼내, 전방을 향해 겨냥했다. 거대한 몸집은 점점 더 커지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준비.”

“완료.”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눈길을 교환한 뒤 자세를 잡았다.

- 3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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