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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0화 (10/200)

10화

“으하!”

기합과 함께 발라당 뒤로 넘어졌다. 몇 번이고 반복 중이건만, 폭신한 침상은 매번 이 몸을 받아 주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눕는 제대로 된 침대냐!”

왕국에서 제일가는 여관이란 이름이 헛된 게 아니었다. 회귀 전엔 지푸라기를 채워 넣고 양가죽을 노끈으로 묶어 두른 염가형 침대가 고작인 인생 아니었던가. 뻐근한 허리를 애써 달랜 게 몇 년인지, 너무 오래돼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적인 침대까지는 아니지만 든든한 원목과 솜의 포근함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아일라의 서약서를 마저 살펴본 후 탁상에 올려 뒀다. 조건 없는 동행, 추후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마저 정한다. 고작 그것만 적힌, 어이없을 정도로 별 내용 없는 계약이었다. 계약 두 글자에 긴장했던 내가 우스워 가벼운 웃음까지 새 나왔다.

‘역시 대범한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재밌는 사람이라니까.’

같은 방을 쓸 미하일은 씻느라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하루 내내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하스페다 가문의 아일라와 계약까지 성사시킨 건 대단한 성과야.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는데. 회귀한 뒤로는 운도 좋아졌나.”

21세기의 세계에서 하야스단으로 발을 디뎠을 때는 맨손임에도 근거 모를 자신감은 있었다. 이런 색다른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세계의 미래를 안다는 생각, 오직 나만을 위해 세계가 기울 것이란 생각까지. 물론, 그런 호락호락한 세상은 어디도 없다는 걸 깨닫는 데 꼬박 40년이 걸렸다.

“그때는 나도 참 어렸지.”

겉모습은 영락없이 10대 후반인 자신이 하기엔 민망한 소리로 보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도도한 시간의 흐름 위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이전과 달리 해 볼 만하게끔 보였다. 그래도 자만해선 안 되겠지.

“회귀한 뒤론 모든 것이 변하고 있어. 확실해. 하지만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 새로운 미래 역시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첫 40년의 험난했던 고통이 당연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칼과 불화의 시기를 버티려면 우선 나 자신이 성장해야 하겠지. 그럼, 내게 뭐가 필요할까?”

답은 간단하다. 가만히 놔두면 영지를 말아먹을 영주를 내쫓아야 한다. 그리고 재빨리, 상공업과 무기 원료의 바탕인 광산을 영지 소유로 독점해야 한다. 이권을 지켜내야 한다.

“이러고 보니 꼭 구한말로 떨어진 것 같군.”

해결 방법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가반드의 주권을 지켜 내고, 나 역시 스스로 지켜 낼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자라야 한다. 상인 길드를 억지로라도 끌어낼 방법을 선택한 것 또한 이 과정에서 강력한 뒷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인 조합이면 금속을 지배하는 능력의 가치를 알아차릴 거야. 후원을 받으면 바가반드로 돌아가더라도 백작과 대등하게 싸우고, 고블린도 빨리 대비할 수 있겠지.”

아직 감각이 낯선 뺨을 두어 번 때렸다. 얼얼한 감촉의 자극 속에서 정신은 예리하게 날이 섰다. 살포시 풀려 버렸던 긴장이 다시 올라왔다. 어느 옛 시인의 진술처럼, 독한 시대를 마주하는 처지에선 역시 독을 차고 견뎌야 할 뿐이다.

* * *

아침 해가 뜰 무렵에 네마냐 일행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채비만 갖추고 여관을 나서진 않은 상태였다. 모두 전날에 이야기한 대로였다.

“내일,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릴 거예요.”

“오, 그럼 이른 아침부터 길드랑 맞짱이라도 뜨는 거야? 기대되는군.”

아침엔 기분이 좋은지 해맑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아일라. ‘센 캐릭터’의 모습을 줄곧 보여 주던 기억이 생생해서 어쩐지 낯설었다.

“맞짱은 서로 비슷한 체급끼리 하는 거죠. 최대한 상인 조합과 동맹 관계를 맺고 싶으니, 오히려 관계를 적당히 유지해야 하니까요.”

“동맹? 바난드 상인 조합과?”

“네. 단순 보상금보다는 훨씬 거대하고 중요한 사업과 관련된 건이죠.”

“그럼 사업을 제안해서 만나면 되지 않나?”

“아쉽게도, 저는 상인 자격이나 명성이 전혀 없어서 아예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거예요.”

그제야 아일라는 자신이 장인이자 상공 조합 자격이 있는 특수 신분이란 걸 깨달았다. 그는 손뼉을 치며,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안 됐네. 그래서 싸우러 간다는 거였구나. 그런 거면 나도 도와주지. 싸움 실력이라면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하하…….”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일까. 심심해하는 아일라를 계속 자극했다간 정말 조합 사람들과 싸우러 가게 생겼다. 나는 서둘러 본론으로 화제를 넘겼다.

“우린 사람이 가장 많이 북적거리는 대낮에 길드 본부로 가도록 해요. 사람이 최대한 많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시작합시다.”

“네마냐, 시위하는 걸 최대한 많은 사람한테 노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

미하일은 어쩐지 내가 준비한 연극 대본이 부끄럽다며 민망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명분이 정당하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 자연스레 조합이 우리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아일라는 갸웃거리면서 조합에 있는 자신의 지인을 떠올렸다.

“나도 조합의 높은 사람을 대충 알긴 하는데 정말 어지간해선, 마차에 치이는 정도로는 눈도 깜짝 안 할 사람이야.”

“그렇겠죠. 그러니까 더 써야죠, 방법을. 제가 또 필살의 비책을 가져왔으니까 잘 들어 봐요. 이대로만 하면 귀찮아서라도 얼른 돈을 주려고, 만나자며 달려들 테니까요.”

속으로는 정말 먹히는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만 그 악에 받친 한국에서도 한때는 제법 먹혔던 「뒷목 잡기」 스킬이니, 기대를 걸어볼 뿐이었다.

“뭐 해? 준비는 다 됐어. 이제 ‘드러누울 자리’만 찾으면 돼.”

미하일이 준비 완료를 외치며 다가왔다. 세 사람이 타고 갈 말과 작은 짐이 꾸려 있었다. 원래 목적이던 광산업 관련 정보수집은 광물상 사건으로 어려워졌다. 광물 상인들한텐 이미 제대로 찍힌 상태다. 그렇다면 이젠 그들의 머리, 그러니까 길드 차원에서 보상금을 빙자한 거래를 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아일라 씨께도 미안하게 됐네요. 원래대로면 어제 우리 둘이서만 하기로 한 계획인데, 갑자기 이런 걸 하게 됐으니.”

이야기를 재밌게 듣던 아일라도 문득 이 보험사기극(?)에 합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긴장한 자신들과는 달리, 아일라에게선 오히려 더욱 생글생글한 미소가 생겨나는 중이었다.

“응? 뭘 그런 걸 미안해하고 있어, 쩨쩨하긴. 날 도와주느라 일이 꼬였다니, 그 정도는 도리상 도와야지. 나는 생각보다 연기도 잘하니까 큰 도움이 될걸.”

‘저 정도 담력이 있다면 마냥 즐거운 일이려나…….’

쓴웃음과 함께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끝냈다. 아일라가 과연 얼마나 연기를 해낼지 걱정스럽긴 하다. 그래도 이 공갈 연기엔 연기력보단 이목을 끌 목청이 중요하니까.

‘남정네 둘에 여자 한 명까지 3인이 되면 호소력도 더 짙어지겠지. 없는 것보단 나아.’

“그럼, 가 볼까요?”

여관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 앞잡이 전문인 미하일이 선두에 섰다.

“그럼 여러분, 사고 보상 겸 사업 기초 자금 한턱 단단히 얻으러 가자고.”

세 사람의 공갈단이 그렇게 첫 데뷔에 나섰다.

세 사람의 발치 앞에 드러난 길드 회관. 예상대로 길드 관계자들은 배상의 의무를 규정하는 법이나 규정이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공식 사과나 보상 같은 건 기대도 마시오. 대신 위로금으로 술값이나 교통비 정도는 우리가 드리지, 뭐.”

사업 제안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길드 차원에서 약간의 지분으로 노동력과 경영 노하우 등을 제공하겠다는 정도. 당연히 예상하던 반응이었다. 느긋하게 타협할 기운이 없었던 나는 가뿐하게 듣고 넘겼다. 그리곤…….

“아이고, 목이야! 길드 놈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사람을 죽이네, 아이고!”

길드 본부의 현관을 나오면 대도시 아니의 중심가를 지나는 큰 도로가 곧바로 나온다. 하루에도 수많은 마차와 상인들이 여러 목적으로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다.

‘신용’이란 뭘까? 내 생각에 상인의 신용은 단순히 돈을 잘 지급하는 데만 달린 건 아니었다. 신용은 곧 믿음이니, 일상에서 도덕과도 결부되기 쉬웠다. 그리고 도덕이라 하면, ‘보이기 쉬운’ 부분이다.

‘보여 주는 이미지상의 도덕이 신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 그렇다면, 그 신용이 쌓이는 흐름의 중심에서 이러면 어떻게 될까?’

“멀쩡한 사람이 수레에 치여 사경을 헤매는 데도 물건 팔아먹는 데 정신 팔린 놈들! 귀신보다 독한 것들!”

네마냐 일행은 일제히 뒷목을 잡은 채로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큰 소리와 함께 모두의 이목이 뒷목 잡은 사람들에게로 쏠려 버렸다.

‘과연, 삼인성호라더니. 세 사람만 모이면 두려울 것 없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 고맙습니다, 지구의 성현들.’

네마냐 일향에게서 사기꾼한테나 풍기던 어둠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세상에. 또 무슨 일이래, 이게.”

“저 멀쩡해 보이는 여자도 피해자인가?”

“뭔데, 무슨 일인데.”

“아, 글쎄 장사치들이 수레로 사람을 이렇게 빡! 쳐서 초주검을 만들어 놓곤 입을 씻었다네.”

“저런, 우라질 놈들을 봤나!”

끼어들기 좋아하고 헐뜯을 가십거리가 필요한 사람은 어딜 가도 많다. 인간관계도 느슨한 도시에선 특히나 더. 여론을 움직이기에 완벽한 환경이었다. 나는 그 흐름을 터주었을 뿐이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과대포장이 된 채 험악한 사건이 되었다.

“뭐? 장사치들이 사람을 수레로 깔아뭉개고 가진 것을 다 훔쳐 가? 내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야, 이거 세상이 어찌 되려고. 돈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거슬리면 그냥 죽여 대는구먼.”

곳곳에서 고함이 일었고, 모여든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치안대와 병사들이 사방에서 밀려들며 재빨리 군중을 통제하려 들었다. 그렇지만 소문의 근원을 없애지 않는 한, 소동은 끝날 도리가 없었다.

“당신들 뭐야? 외지인인 모양인데, 왕성에서 감히 소란을 일으키고도 무사할 것 같나?”

경비대 장교로 보이는 사람까지 달려와 묻자 가장 어색하기 짝이 없는 아일라가 연기하기, 아니, 사연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조성된 분위기 덕에 어설픈 연기는 오히려 실감 나는 진술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끅, 다만 피해를 보전할 만한 배상을 원했을 뿐인데, 끅, 돈이 없으면 죄라는 걸 소녀, 처음 알았습니다!”

‘와, 연기 클라스……실화인가? 분위기가 잘 풀려서 천만다행이네.’

여러 의미로 소름 돋는(?) 연기였다. 구체적인 상황과 뒷목 잡기, 드러눕기 등의 방법을 알려 준 것은 자신이지만 말이지.

“저, 저, 저……!”

지켜보는 길드 관계자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미 지나가는 군중 속에서 돌이 몇 개 날아와 창문이 깨지기도 했고, 관계자들마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집단 속에선 ‘뼈를 부러뜨려라’나 ‘태워 버려라’ 등의 극단적인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이대로 길드를 태워 버리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뭐 하러? 나는 내 필생의 사업을 성공시키러 이곳에 온 건데.’

오히려 길드와 새 관계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였다. 네마냐는 길드 관계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말없이 오른손 주먹을 들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 엄지손가락은 곧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네마냐의 목 위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벌어진 입 모양은, 굳이 뭐라 확인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경고였고.

‘다들 연기에 신난 모양이지만, 이제 슬슬 끝내고 출구 전략을 찾아야겠어.’

연기에 빠져 잔뜩 신난 아일라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에 흥분한 미하일의 표정은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커다란 희열에 젖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슬슬 마무리할 때가 왔다.

“흠, 흠. 수습기사 나자리안 씨 맞으시지요?”

길드의 간부로 보이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가 말을 건넸다. 주변을 둘러싼 군중들도 모두 조용해지며 관심을 보냈다. 아주 좋은 흐름이다.

“지금 바로 조합장님과의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배상인지 아닌지만 확인해 주면 따라가죠. 어떤 건가요?”

“구체적인 내용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아이고, 뒷목이! 수레에 치인 목이, 또!”

과격한 할리우드 연기와 함께 목덜미를 짚은 나는 마치 한 마리 참돔이 바닥에서 튕기듯 요란하게 나뒹굴었다. 조용하던 군중들은 다시 놀람, 탄식, 비명과 함께 분노가 끓는 소리가 전해졌다. 이런 공갈에는 길드 관계자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하는 대사를 뱉을 수밖에 없겠지.

“……알겠소, 알겠습니다! 보상하겠소. 길드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그러니 제발.”

승리의 환호성. 주변에 모여 있었던 술주정뱅이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박수와 함께 잠시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술과 안주가 거리에 진열되고 축제가 벌어졌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와, 일행은 진땀을 흘리며 벗어나야 했다.

“어휴, 드디어 탈출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깔려 죽었겠지.”

“그래도 성공적이었으니까.”

나와 미하일은 숨을 몰아쉬며 탈출을 기뻐했다. 물론 아일라는 왜인지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그 술은 좀 아깝던데, 작은 자루라도 있으면 담아 놓을걸.”

“주당…… 어쩐지 첫날부터 술을 그렇게.”

미하일이 강제로 진압당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갔다. 관계자의 뒤를 따라 다시 들어간 조합 본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구인가 본데? 처음 보는 장소야.”

“아, 처음이겠구나. 여긴 조합원 소속인 사람들에게만 공개되는 통로야. 사업 제안이나 조합원 관련 사무는 이쪽에서 처리하지.”

“오호라.”

‘그래서 그전까지 비조합원으로 사업 제안을 해도 입구 컷을 당했던 모양이군.’

조합원이 이용하는 복도는 카펫이나 장식품의 수준도 남달랐다. 길게 이어진 회랑의 복도 한편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작은 정원으로 트여 있었다. 겨울인데도 야외로 노출된 정원이 푸르게 유지되는 게 희한한 일이었다.

“헤, 야외노출 정원인데 이파리가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한여름 같은 모습이네. 마법이라도 썼나?”

미하일의 말대로였다. 아니, 사실은 야외에 노출된 것은 아니었다. 어딘지 낯익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어디, 한번 조용히 알아볼까.’

[마나 탐지]

며칠 전 마정석 광산을 발견하면서 몇 번 탐지를 전개했더니 기술창에서 열린 특수 기술이었다. 마나의 흐름을 탐지하고, 그 방향과 대강의 위치를 알려 주는 기술이었다. 마나를 탐지하는 과정도 훨씬 정숙했다. 덕분에 이제는 탐지를 사용하더라도 일반인 정도의 시선은 끌지 않을 것이다.

‘아직 몇 가지 기술이 더 열리긴 했어도 시스템 파악이 다 안 끝났으니, 당장은 이 정도인가. 마정석에서 저번에 마나를 흡수했던 것도 그렇고.’

마정석에서 마나를 추출해 흡수한다는 기술은 네마냐도 전혀 몰랐던 스킬이다. 이곳의 마법에 존재하는 특수 기술인가 싶기도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네마냐는 잠시 길드 회관 밖에서 기다리던 중 아일라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답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뭐? 마정석에서 마력을 흡수했다고? 당연히 서클에 쌓이는 마나랑 마정석의 마력은 같은 거라 가능하긴 하지.”

“아, 정말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이봐, 아직 말 안 끝났어. 내 이야기는 이론뿐이야.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해. 마정석만 해도 종류가 한둘이 아니고 특성도 다 달라. 인체는 가뜩이나 마정석과 성분이 달라. 그럼 마나의 특성이나 저장 방식도 달라지겠지?”

그렇다. 자연 방식의 마나는 모두 같다고 해도, 인체에서 흡수해 사용하는 마나는 특정한 속성이 없었고, 마정석에 흡수된 마나는 속성을 부여받았다. 속성에 따라 마나는 호환이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는 마정석 자체 마력을 인체에 연결해도 호환이 안 되지. 충전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역시, 곤란하겠네요.”

비록 마법 역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반대로 각종 금속을 다루는 데 있어선 으뜸이라고 불리는 하스페다 가문의 일원이다. 그마저도 일반 서적과 똑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나머지야 알 만한 노릇이다.

“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야.”

“네? 가능할 수가 있어요?”

옆에서 줄곧 차나 들이켜고 있던 미하일도 궁금했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궁금증으로 따지자면 녀석도 만만치 않긴 하지.

“응.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광물에 극도의 친화력을 갖추게 되면 특수한 전환 장치가 없다고 해도 마정석에서 직접 마력을 뽑을 수 있겠지.”

당연히 이론적으론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걸 직접 해낼 수 있느냐의 실증은 없으니까. 아니,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네마냐뿐이었으니까.

“이론적으로 두 마력이 근원은 같으니까. 그게 되면 난리가 나겠지. 대마법사들도 마력을 끌어내 대단한 마법을 쓸 테고. 정령 마법 계열이라면, 정령왕과도 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정령왕이라…….”

대단한 이야기다. 그녀의 말대로만 된다면야, 이 세상의 마법을 제한하는 마나 용량을 무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거니까.

“와, 그게 가능하면 세상이 바뀌겠네요.”

“어디까지나 가능성 정도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판세가 바뀔걸? 마법사 영감탱이들부터 광업계의 땀내 나는 아재들까지 다 뒤집어지겠어. 보고 싶긴 한데.”

“정말 대단한 건가 보네요. 아예 생각조차 못 해 봐서.”

무심한 척 나는 이야기를 흐렸다. 눈만 감으면 시야의 한쪽을 차지한 채 빛날 푸른 창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 와중, 유독 활성화되어 있는 알림 하나가 있었다. 그걸 들여다본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럭키. 이렇게 습득한 정보로도 뭔가 진행이 될 수 있는 거군. 뭔가 진짜 게임 같아졌는데?’

[숨겨진 정보 획득: 광물 마나 흡수]

아일라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내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는 못한 채로 논점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전환 과정 없이 마나를 끌어낼 수도 있지. 그게 되면 다른 광물도 맘대로 조합하고 재배열하고, 합성할 수 있을걸? 그냥 세상 날로 먹는 재능인 거지.”

“역시…… 쉽지 않네요. 마법에다 광물까지.”

미하일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고개를 젓자 아일라는 노련한 기술자의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별것 없어. 너희도 배우다 보면 점점 알게 될 거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손가락을 타고 떠나간 마나의 파동이 돌아왔다. 마나는 정원 저편에 담긴 비밀을 담고 있었다. 예상대로, 천장에 설치된 유리 외에 정원은 작은 마정석 광산과도 같았다. 맑은 수정들이 바닥 곳곳을 장식한 채 생명력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아일라나 밀에게 탐지나 마력 흡수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 볼까.’

섣불리 비밀을 말해도 되나 고민하던 중, 정면에서 작은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흠칫 놀란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제법 떨어진 곳에 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어허, 남의 영업 비밀을 너무 태연하게 파헤치는 것 아닌가? 처음 오는 손님이라지만 탐지술이 적나라해서 당황스럽군.”

“뭐야, 어디서 난 소리지?”

미하일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는 긴 복도의 어두운 근처 어디에도 딱히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중년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만이 귓가에 진동했을 뿐이었다. 나 역시도 탐지술 덕분에 대강 위치를 알았을 뿐이었다.

“우리 정면에서 누군가 온다.”

저편으로부터 검은 로브를 걸친 초로의 사내가 다가왔다. 물 흐르듯 다가온 사내는 손이 닿을 법한 거리에 멈춰선 채 손을 건넸다. 커다란 너털웃음과 함께 덥수룩한 손이 쑥 튀어나왔다.

“재밌는 손님이 오셨다길래 일손을 제치고 왔다오. 이 내가 바난드의 길드 조합장 바누라트요. 그대는?”

비밀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가 위험하게 들린다기보단 흥미롭게만 들렸다. 조합장이 직접 나왔다는 건, 드디어 대화할 생각이 들었단 뜻이겠지.

‘이젠 굳이 더 숨길 것도 없겠군.’

네마냐는 손을 뻗으며 선수를 쳤다.

“네마냐…… 네마냐 나자리안입니다. 조합장께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장래의 광산왕이 될 사람이죠.”

맞닿은 두 손의 열기는 그야말로 복도를 메울 듯 팽팽하게 피어올랐다.

- 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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