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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9화 (9/200)

9화

짧은 대화를 끝낸 나와 미하일, 아일라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 곳은 여관이었다. 상점가에서의 말썽이 알려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길드를 먼저 방문해서 돈을 뜯어내고 느긋하게 일정을 보내려던 계획은 미뤄야 했다.

‘괜찮아. 길드를 늦게 가더라도, 이런 횡재를 놓칠 수야 있나.’

나는 그저 감개무량했다. 새로운 의지가 생긴다는 게 이런 느낌이려나. 미하일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뭘 하는데 불길하게 웃음을 짓고 있어. 무섭게.”

미하일이 어깨를 툭툭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섬찟 놀란 내가 현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현관에 도착한 뒤였다. 바람을 받아 흔들리는 나무판자에 ‘바튀스 리악스’란 이름이 선명했다.

“자, 여기가 어렵사리 예약한 고급 숙소라 이 말씀이지. 이름하여, 바튀스 리악스! ‘깊은 계곡’이라니. 동방 제국 말인데 좀 과장 같아. 이 지역은 우리 기준으론 계곡이 아니라 그냥 평지인데.”

“아, 여관 이름이 하야스단 말이 아니다 싶었더니 제국어였구나. 어째 촌스럽더라. 주인장이 그럼 제국 출신인가?”

아일라 역시 말하는 투로 보아 처음 알았다는 눈치다.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스페다 가문은 자신들의 일인 금속 가공 외에는 관심이 없이 사는 집안사람들이니.

‘여긴 어디까지나 제국 영토가 아닌 자유로운 하야스단 인들의 땅이지. 다시 와 보니 참 번영했었군.’

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검은 머리가 반쯤 곱슬곱슬한 아일라의 겉모습. 이거야말로 살아 숨 쉬는 하야스단 사람이란 증거겠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풀무의 열기에 그을린 듯한 구릿빛 얼굴은 스물일곱이라던 나이와 비교해서도 어리게만 보였다.

내가 이런저런 사소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미하일이 설명을 길게 읊었다.

“일부러 찾아 배우지 않으면 몰라요. 이유도 별것 없어요. 주인장인 페트랄리파스가 제국 출신이라, 멋진 이름이라고 갖다 붙여서 별 뜻도 아니니까요.”

“아, 그렇군. 별일은 아니네.”

나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공식적으론 처음 방문한 자신이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아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 테니.

문을 밀고 들어선 ‘깊은 계곡’에서는 고기의 누린내가 코를 찌르듯이 쏟아졌다. 뒤늦게 밀려드는 향기들은 그 누린내를 잡기 위해 냄비로 쏟아지는 허브향이겠지. 빙의하기 이전에도 나는 방아라고도 부르는 배초향 냄새를 꺼렸었다. 남도 지방의 모 지역에서 즐기는 그 냄새는 유독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여기선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지. 마늘 같은 거라도 있었음 대체했겠지만. 익숙해지는 데 거의 10년은 걸렸던가. 음식 냄새를 잡긴 해야 하는데 다른 향신료를 구할 수가 없으니, 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향신료 자체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가끔 귀족 가문의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 실제로 마늘이나 후추, 고추 같은 건 봤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백작 가문만 되도 고기에 허브보다는 육두구나 후추 같은 걸 쓰던데,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런 걸 농사지을 만한 데도 없을 텐데.”

현대 지구에서야 동남아에서 재배한 향신료를 수입하고 가공해서 쓰면 된다. 하지만 여긴 현대 한국도 아니고, 전생과 환생을 통틀어 생각해 봐도 같은 지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곳이다. 역시나 멀리서 수입한 거겠지만.

“아주 가끔 서쪽 사막을 건너오는 대상들이 들여오곤 하지. 워낙 비싸서 거의 고급 마정석이나 순금과 같은 무게로 계산을 할 정도야.”

“오, 그렇군요.”

아일라와 나는 향신료의 가격 등을 두고 한동안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귀족 중에서도 영지가 어느 정도 부유한 급은 되어야 구할 수가 있다더군. 일정한 급 이하는 상인들이 아예 상대도 안 한다더라고.”

오랜만에 사람들 모인 시끌벅적함이 좋긴 한데, 그놈의 땀내는 적응하기가 아직도 힘들었다. 마치 점심을 먹고 체육을 한 뒤 들어온 교실의 퀴퀴함 그 자체랄지. 아직 남아 있는 현대인의 기억 중에서도 강렬한 건 역시 냄새였다. 익숙해서 별 감각이 없는 모양인지, 미하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것도 있고, 요즘엔 동방 제국에서도 들여오고 있어요. 바가반드 백작 같은 수전노들은 서방 육로로 들어오는 비싼 향신료엔 엄두도 못 내니까.”

“동방 제국으로 들어오는 거면 바닷길인 건가? 바닷길로 온다고 저렴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아일라가 되묻자, 미하일도 바다까진 알 수 없는 모양인지 답하지 못했다. 이번엔 네마냐가 살짝 몇 마디를 얹었다.

“낙타 등짐에 올리는 것보단 배에 싣는 게 훨씬 많을 테니까요. 덕분에 요즘엔 해운업이랑 보험업도 크게 발전하는 추세라고 해요. 바다 무역보단 육로 교역이 중요한 바난드에서 그런 팔자 좋은 소릴 떠들 상황은 아니지만.”

“산 사람이 바닷물에 들어갈 판이라니, 세상이 다 망했구나 싶다.”

“하하.”

그렇게 이야기하며 앉아 있던 중 드디어 점원이 다가왔다.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여간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일라 언니.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어, 오랜만이네. 오늘은 미래의 고용주님이랑 비즈니스로 만난 거라 빠르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우려고.”

“드래곤 통찜의 초벌이 지금 막 끝나서 빨리 드실 수 있어요. 곁들인 나물도 한창 철이라 괜찮아요.”

“드래곤 통찜?”

이곳 여관은 나도 이따금 와 봤지만 ‘드래곤 찜’이란 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아니, 사실 바쁘게 살며 알뜰하게 지낸답시고 요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는 게 맞겠지. 여기서 또 탄로가 나는군.

“아, 네마냐도 별수 없는 촌사람이네. 이곳의 명물인데 못 들어 봤어?”

미하일 녀석이 도시인인 척 우아한 손짓을 하며 성질을 긁었다. 녀석을 한심스레 쳐다보던 아일라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주문을 계속했다.

“그거 3인분에 술 3병. 국물은 서비스로 좀 부탁해도 되지?”

“에이, 누구 부탁인데요. 언니쯤 되는 큰손이면 육수가 아니라 식사도 한 끼 드려야죠.”

아일라가 눈을 찡긋하며 말하자, 점원이 웃으며 받았다. 아, 지금 봐도 아니에서 왜 그렇게 이름이 높았었는지 이해가 가는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수납 칸에 담긴 포크와 칼을 나눠 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와…… 아일라 씨 ,큰손인가 보네요.”

“뭐, 나는 장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사업가 같은 일도 하다 보니 이런 데서 미팅도 자주 하거든. 덕분에 익숙해졌지.”

“이런 난장판에서요?”

접시 깨지는 소리, 왁자지껄한 소음에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일라는 손사래를 치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항상 이런 건 아냐. 여긴 고급 식당을 지향하는 곳이라서, 가을 무역 시장이나 지역 축제가 아닌 이상은 조용한 식당이거든. 그리고 사업 일로 온 손님은 1층의 이런 테이블이 아니라 2층이나 3층의 예약실을 쓰고 있어.”

이전에는 그저 빨리 기사 자격을 딴 다음에 농업에 집중하느라 흘려보냈던 삶의 자투리 조각이다. 한결 여유를 가지고 환경을 대하니, 전생에선 보지 못했던 넓은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느낌이었다.

“일상에는 통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네요. 식당도 이렇게 재미난 곳이라니.”

“고용주님께서 이렇게 천진난만하시다니.”

“주문하신 요리 나왔습니다.”

이야기가 다시 끊기고, 이것저것 나오는 큰 그릇과 접시의 혼잡함이 눈앞의 고민거리를 지워 버렸다. ‘드래곤 통찜’이라고 해서 괜히 긴장했지만, 어느 귀족이 사냥 후에 드래곤 고기인 척 멧돼지 통찜을 조리했다는 전통을 복각한 것에 불과했다.

“음, 괜찮은데요? 너무 푹 찌지도 않아서 먹을 만하네요.”

이것저것 들어간 나물이 적절히 간이 배어 있었다. 거친 빵에 순무를 씹느라 잃어버렸던 미각이 돌아오는 맛이었다. 행복…… 이런 사소한 여유를 언제 가졌었지? 환생 전, 아니, 사실 환생 이후에도 정신없이 목적을 위해서만 내달린 삶이었다. 이번 삶은 목적과 여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내가 궁금한 건 고용주 되실 분들이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냐는 거야.”

적당히 먹고 난 후 아일라는 천으로 손을 닦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직설적인 사람이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광산 경영, 그리고 판로 개척과 같은 건데…….”

“그건 나 같은 기술자가 도와주기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조언 정도면 몰라도.”

“네. 여기까지만 있다면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죠. 좀 더 들어 보세요. 정확하게는 아까 흘리신 ‘이것’의 상업화에 관심이 있어서요.”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내가 품속에서 꺼낸 것. 바로 상점가를 방문했을 때 발치에 떨어져 있던 검집이었다. 반짝이는 빛이 누가 보아도 남다른 물건임을 알게 해 주었다. 단숨에 알아본 아일라의 눈빛은 다소 매섭게 변해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당신이 갖고 있었군. 그래, 그걸 가지고 있던 이유는?”

아일라는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년이 하스페다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 훗날을 살아봐서 아는 거지, 지금 어찌 알 수 있을까. 이 마정 합금이야말로 권력도, 돈도, 영지도 없는 나를 일으켜 세울 만큼 대단한 소재라는 것을. 어떻게 정답을 댈지 고민한 끝에, 나는 조금 특이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남들 눈치채지 않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음, 예컨대 시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시?”

티끌보다 가볍지만

두드림이 함께함에

아, 힘을 뿜는 쇠뭉치, 굳어진다네

시를 만드는 수업을 잠깐 들었던 기억을 살려 만들어 본 자유시. 리듬은 엉망이지만 내용만은 알찼다. 미하일은 어리둥절했지만 유일한 기술자인 아일라는 그 뜻을 알아차리며 조금 놀란 모습이다.

“자연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마정석. 보존성 좋고 튼튼한 금속. 그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발하는 금속이라면, 탐이 나는 물건이죠.”

말은 그럴듯하게 이었지만 네마냐 본인은 손가락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전생에 시학을 더 배울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틀 안에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갔어.’

미하일은 몰라도, 아일라는 직접 몸으로 얻은 경험이 있었다. 비밀을 꿰뚫은 스무 글자만으로도 충격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차후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의 기초를! 어느 탐욕스러운 궁정에서 보낸 첩자라 생각한 걸까. 아일라의 손이 저절로 허리춤으로 향했다.

“잠깐, 잠깐! 혼자 무슨 오해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재빨리 잡고 있던 고기를 놓곤, 양념 묻은 손을 미하일의 목덜미 뒤로 돌려 어깨동무를 했다.

“저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일라는 단검집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수상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 믿지? 너희는 누구고, 그 금속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공식적으론 알려지지 않은 기술인데.”

우리 집 삽이 그 재질이에요, 극한직업 다큐멘터리에서 봤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만이 떠올랐다. 그런 소리를 했다간 당장 간첩 혐의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현대 스테인리스를 생각해 합금 개념을 떠올렸다거나, 나중에 고블린 전쟁 때 써먹었다든가 하는 변명은 안 되겠지.’

적어도 이 시대 사람들이 들어도 의심하지 않을 법한, 그럴듯한 고민을 생각해 내야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는 여지없이 한심한 소리였다.

“집에 옛날 책들이 좀 많아요. 심심할 때 읽다 보니 알게 됐죠. 명반석에서 재료를 뽑는다던가…….”

“심심할 때 읽은 책에서 나오곤 했다고? 집이 무슨 왕립도서관도 아닌데, 그런 귀한 정보를 담은 책이 있다고?”

없는 책을 읽어 봤다고 티를 내려니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뭐라 덧붙일 필요도 없이, 미하일이 적당하게 둘러댔다.

“아, 이 녀석 부친이 오래전부터 광업을 연구해 왔거든요. 그래서 이놈 집에 별의별 책이 다 있죠. 아마 운 넘치게 그중 하나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 봐요. 제가 봐도 희한할 정도로 특이한 녀석이긴 하죠.”

역시 너스레를 떨면서 주위 돌리는 데는 선수라니까.

녀석의 호들갑에 다행히 아일라는 의심이 꽤 가라앉았는지, 눈빛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좋아. 바가반드의 연구자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너희들은 아콜타데리움(Akoltaderium)에 대해서 알게 된 최초의 사람들이야.”

“아콜데리움?”

미하일뿐만 아니라 나 역시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나는 전생과 빙의 이전의 기억을 몽땅 떠올렸다. 하지만 ‘아콜타데리움’이란 이름으로 이 금속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자신이 살 수 없는 건 둘째치고, 당시에 이것을 마정-합금이라고 불렀다는 건 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일단 나는 아일라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 막힘없는 힘이란 뜻의 아콜리토스, 강조형의 타토스, 쇠란 뜻의 시데리움을 합성한 단어지.”

‘막힘없는 힘’ + ‘한층 단단한 쇠’.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고 얘기했던 마정 합금의 속성이었다.

“말 그대로 두 가지 금속의 힘을 갖는다는 거군요.”

“하, 그래. 책을 읽었다더니 뭔가 알긴 하는 모양이네. 아주 오래전 난쟁이들이 쓰던 단어야. 이건 스파이들도 알아채지 못했지.”

“스파이…… 위험한 자들도 따라붙나 보군요.”

“그렇게 됐지. 아직 상업화할 만큼은 아니라서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찾는 중이긴 하지만.”

“하지만 아까 상인과 말싸움하던 걸 들어 보니, 그것도 사실은 거의 완성 단계고 말이죠.”

백반의 원료가 되는 명반은 한국에서 내가 질리도록 사용했던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게 소위 마정-합금과는 조금 다른, 별세계의 명반이라는 건 분명했다.

‘알루미늄을 대량으로 생산했다고 보기엔, 이곳의 산업은 아직 중세시대 수준이니까.’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의 존재만으로 아일라를 놀라게 할 수 있을 만큼 이 시대의 금속 기술은 저개발 상태였다. 즉, 뭔가 현실과는 다른, 더 유용한 광물이란 거겠지. 네마냐의 생각은 여기에까지 미쳤다. 아일라는 그 이야길 듣곤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일라 씨는 최소한 이윤이 남을 수 있도록 명반을 추출해서 그, 마정 합금…….”

“아콜타데리움.”

아일라는 다시 고개를 젓고 아콜타데리움을 강조했다. 하스페다의 기술 상속인 고집이 세다는 얘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심해 보였다.

“네, 아콜타데리움. 바로 그 합금을 아일라 씨가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겠네요. 그걸 설득하는 과정에서 아까 상점주와 싸움이 붙었던 거고요. 제 얘기가 맞나요?”

이해를 해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열어 가니, 아일라도 이젠 기분을 좀 풀고 이야기를 받아 주었다.

“……그래. 내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다들 믿질 않더군. 이해야 가지만, 정작 엮이고 싶지 않은 놈들만 잔뜩 밀려오고.”

“첩자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왔던 거군요.”

“말로는 다 못 할 이야기야. 얼마 전에는 총독부에서도 왔는데, 그래도 난 거절했어.”

국가에서까지 집착할 정도면 편하게 살 수 있지 않나? 왜 고생을 자처하는 거지.

“국가 소속으로 일하면 훨씬 말썽도 없고 지원도 넉넉히 받을 텐데. 괜찮지 않아요?”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며, 아일라는 자신의 걱정을 조금 더 털어놓았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야. 그놈들이 왜 관심을 보이겠어? 너라면 새롭고 뛰어난 금속으로 뭘 할 것 같아?”

이야기하는 동안 술병을 잡은 아일라는 순식간에 술을 따른 후 곧장 잔을 비웠다. 술도 참 말술로 마시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생, 전생 어디에서건 술을 가리지 않는 나 역시 빠르게 빈 잔을 채웠다. 원샷 하지 않는다고 구박받는 미하일만 불쌍할 노릇이었다.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결국 무기만 만들게 되겠죠.”

신기술의 무기화. 전쟁의 종식을 가져오려던 순수한 희망을 담은 신기술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리곤 사람을 한층 더 떼로 죽이는 무기로 돌아왔지. 다이너마이트, 기관총, 전투기, 원자폭탄까지. 입이 피곤할 정도의 사례들이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맞아. 그걸로 쌈박질이나 열심히 하겠지. 사람 죽이는 데는 기가 막히게 먹히겠다는 느낌? 만드는 순간부터 나도 느꼈어. 아마 손에 넣는 놈들은 열심히 써먹고,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가면서 종족 도살 기구로 쓰이겠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일라의 이야기는 분명했다. 위기에 임한 세계가 원하는 새로운 돌파구, 그러나 그 돌파구로 인해 깊어지는 어둠까지.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마정 합금을 충분히 무기로 전환해서 사용할지도 모른다. 아일라의 바람대로 평화와 번영, 건설만을 위해 사용하기에는 미래가 너무나 어두웠으니까.

‘마정 합금은 너무나 유용하지. 그저 농사만 짓던 예전의 나라면 모르겠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지금은…….’

고블린과의 일전은 지척까지 다가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득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생각해냈다.

“저, 지키는 데 쓰이는 무기라면, 아일라 씨에게도 조금 다르게 느껴질까요?”

“지키는 데 쓰는 무기?”

아일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반쯤 먹어치운 식사는 점점 차가워졌지만 이미 배가 고픈 사람은 없었다. 답 한마디에 모든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대답에 따라 내 답도 달라질 것이다.

“좀 어려운 질문인걸?”

“마저 식사하시면서 생각해 보시겠어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아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배는 벌써 불러. 그러지 말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당분간은 당신과 가계약을 하고 같이 다녀 볼 테니.”

“네, 좋네요.”

곧바로 제안을 수락해 버린 내가 뜻밖이었는지, 아일라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어라, 실망하진 않았어? 단번에 계약도 가능할 뻔했는데.”

“전혀요. 오히려 생각보다 상대가 긍정적이라 한시름 덜었죠.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거래 상대라니, 더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나, 네마냐의 이름. 그것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게 우선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 이름의 뜻을 배웠을 때부터, ‘네마냐’란 단어는 심상찮은 의미로 다가왔다.

‘기회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자. 제때 기회를 잡는 자.’

설사 누군가의 바람과 호의를 저버린다고 해도, 이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입을 연 내 태도는 제법 진지했다. 마치 운명적인 흐름에 내 모든 것을 맡기듯, 천천히 말했다.

“아일라 씨. 그럼, 대략적으로나마 합의해서 가계약을 해 보죠. 이것도 계약은 계약이니까, 조금 더 진지하게.”

시끄럽고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의 한 테이블. 음식을 남겨 둔 채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 1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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