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닷새 뒤.
바난드 왕국의 수도인 아니(Ani) 근처.
일행은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서쪽의 사막 국가들을 출발한 상인들이 낙타의 등짐 위에서 처음 보게 되는 도시가 이곳 ‘아니’다. 동쪽의 제국에서도 상인들이 각종 상품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다. 중계 무역이 이루어지니, 아니를 수도로 둔 바난드 왕국도 자연스레 부강해졌다.
“햐, 사흘 만에 도착했네. 몇 번을 내려와도 여기만 오면 탁 트여서 속이 시원하다니까.”
고삐를 잡은 채 한 손으로 해를 가린 미하일은 고향인 바가반드와 달리 넓게 펼쳐진 평원에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좁은 계곡의 연속인 바가반드와 달랐다. 아니의 커다란 도시로 가는 길에, 굽이치는 물길 사이로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린 평야가 펼쳐졌다.
“당연히 우리 동네보다 높이가 낮으니까 그렇겠지.”
별걸 다 놀라워한다며 핀잔을 주는 네마냐 역시 아니의 모습 자체엔 감탄했다. 겨울용 밀을 심은 대규모 농지가 누렇게 익어 가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바난드의 높은 탑과 화려한 건물들 따위야 이미 실컷 봤던 자신조차,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창 겨울 밀 농사를 할 때였네.”
“응. 올해는 추위가 더 강해서 우리 동네 같은 산골은 이미 글러 먹었지만.”
“뭐, 어차피 그런 농사론 본전도 안 될 테고. 이젠 날씨도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순무나 길러야겠지.”
이야기들을 나누며, 두 사람의 말은 상당히 큰 규모의 마을 속으로 들어왔다. 마침 무역 시장이 열리는 시기인지라 각양각색의 천막이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상인 조합 건물은 어디에 있는 거야? 무작정 가다간 온종일 헤매겠는걸?”
보기 드문 물건과 먹을거리들의 홍수에 계속 눈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네마냐의 관심은 길드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하일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길드? 그냥 큰길 따라가면 나오지 않을까……. 미안, 잘 모르겠다.”
“뭐야. 여기는 몇 번이나 왔었다며! 저번에도 오지 않았어?”
“집처럼 드나들던 곳은 아니야, 짜샤. 기사 생도 수업 때나 몇 번 온 거지. 주민만 7만 명이고, 신전이 열 곳은 되는데.”
이미 한번 살다 온 사람한테 뻔한 이야기를 하는 미하일 녀석. 스포일러지만, 그 7만짜리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 아포칼립스의 땅이 돼 버릴 것이다. 아, 지금부터 바꾸면 달라질 수도 있는 걸까. 정말, 돌이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콧방귀를 뀌면서 농담을 이어 갔다.
“나도 다 아는 얘기거든? 촌놈 취급은 사절한다.”
그때 마침 서방에서 들어온 향신료 가게를 지나났다. 터번을 두른 외국인 장사꾼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자극적인 향기들이 감각을 파고들었다. 냄새에 연신 코를 킁킁대면서도 미하일은 다음 계획을 제시했다.
“어쩔 수 없지. 여기 사람이면 길드를 알고 있을 거야. 물어보자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우선은 길드에 가기 전에 광물상에 좀 들렀다 가자고.”
“광물 시세 때문에?”
조금만 있으면 각지에서 전쟁이 발생하며 철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다. 정확하게는, 전쟁이 터지기 바로 직전부터 철 시세가 치솟는다. 다른 물가들도 비슷하겠지만, 전쟁과 직접 연관되는 자원이라서 그랬다. 전쟁으론 도가 튼 현대를 살다 온 덕을 여기서 보게 되는 건가.
‘몇백만 원씩 내고 들었던 대학 교양 강좌도 쓸데가 있긴 하군.’
“어. 그런 것도 있고, 기술자도 알선할 수 있는지 봐야지. 직접 채굴하는 일 말고도 당장 필요한 장부 회계 같은 실무 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잘 생각했어. 미리 알아 두면 협상도 쉽겠지. 아, 광물상이면 설마 저런 데를 말하는 건가?”
미하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하얀색 천막 아래 시커먼 돌덩어리들을 포대에 담아 두고 있는 좌판이 있었다. 가게 입구에 나무로 만든 곡괭이가 하나 세워져 있으니 확실하겠지. 나는 반가움을 느끼며 휘파람을 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바로 찾았네.”
“가서 좀 둘러보고 얘기해야겠지?”
“응. 밀, 영지에서 발급해 준 추천장은 가지고 있지?”
“그럼. 그거 얻느라 푸닥거리를 했는데 잃어버리면 안 되지. 이 미하일 님을 어떻게 보고.”
미하일이 자신을 가슴을 가볍게 치면서 대답했다. 나는 간단한 코웃음으로 되받아쳤다.
“뭐긴 뭐야. 봉으로 보지, 봉.”
“봉? 이게, 확!”
가벼운 입씨름을 하며 두 사람이 가게의 장막을 걷고 들어서려는 찰나.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코앞을 스쳐 날아갔다.
‘뭐지?’
뉴런이 정보를 물어오기도 전에, 위협을 느낀 반사신경이 먼저 반응했다. 아주 살짝 고개를 뒤로 빼지 않았다면 지금 코앞을 스치듯 지나간 무언가가 얼굴을 꿰뚫었겠지. 금속이 땅바닥을 나뒹구는 맑은소리가 울린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지시도 안 듣는 주제에 이제는 멋대로 장사 밑천까지 까먹으려 들어? 너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 버려라! 한 번 더 눈에 보이면 걷지도 못하게 만들 테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래선 뭘 알아볼 수도 없겠는데. 다른 데로 가 봐야 하나.’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려는 찰나, 안쪽에 보이는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바탕 날카로운 고성이 귀를 찔렀고, 뭔가가 부서지거나 날아다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날아오는 금속체를 피하며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군.”
네마냐가 중얼거린 것처럼, 신기한 광경이었다. 광산주 내지는 점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작업복의 여자를 향해 광분해서 날뛰는 중이었다.
‘영 모양새가 좋지 않은데,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지.’
얼마나 싸움에 집중하는지 두 사람은 가게로 불쑥 들어온 자신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무슨 말을 붙이기도 좀 민망하니 어깨를 으쓱하며 구석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여자와 점주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점주가 밀리는걸.’
딱 봐도 부실해 보이는 점주가 굳건한 골격의 여자에게 덤비는 모양으로 보였다. 그 뒤에 서 있는 가게 점원들은 말릴 엄두도 못 낸 채, 내게 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글쎄, 손해가 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든 상환해 주겠다고 했지. 그리고 이번 건은 상용화까지만 성공하면 대박 날 거라 하지 않았어? 나 정도 가공사가 가진 기술도 믿지 못하다니, 이거 지난 10년 친분이 섭섭한데?”
“10년 동안 돈이고 자원이고 펑펑 써 대더니, 아직도 변명할 거리가 있더냐? 요즘도 실험에 실패해서 깨진 돈이 얼마인데, 뭐가 하야스단 최고 금속 장인이란 거냐! 어처구니가 없군!”
더 말하기도 짜증 난 듯한 상인은 재떨이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팔을 뒤로 꺾어 던지려던 상인의 팔은 간단하게 여자에게 제압당했다.
“가만히 있으려니 손버릇 또 나오네, 이 자식이. 아버지뻘이라서 헛소리한 건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손모가지 하나 내놓을 자신 있어?”
‘에고, 살인 나겠네. 그러게 적당히 까불어야지. 자기 명을 재촉하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눈에 띄던 거지만, 금속 가공사라는 여자의 허리춤에 있는 검이 여간 예사롭지 않았다. 재질도 심상찮고, 검을 맨 방식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회귀 전에 봤었던 군인들 소지 방식인데. 전직 군인이나 용병 출신인가? 저러다 진짜 죽겠는데, 저 아재.’
그때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서 뭘 하다 온 건지 미하일의 얼굴이 쑥 넘어왔다.
“뭐야, 너 어딜 갔다가 이제 오…….”
미하일은 오른손을 어깨에 둘러 검지를 세우더니 내 입을 막고,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평소 같지 않게 눈에 열기가 올라있다.
“이것 좀 봐. 방금 우리 앞으로 날아간 걸 주워 왔는데 좀 재밌어 보여. 뭔진 모르겠지만 너라면 혹시 알까 싶다.”
미하일이 그렇게 눈앞으로 들이민 건, 날렵하게 생긴 작은 단검이었다. 그냥 흔한 단검 같았다. 밝은 은빛, 매우 가벼워 보이는 재질. 다만 한 가지, 도저히 무엇으로 만든 건지 모르겠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재질이긴 한데…….
‘철제나 청동제도 아닌데. 빛은 은 비슷하긴 해도, 은도 아니니까. 뭐지 대체…… 아! 그게 있었지.’
손가락 끝에서 은은한 빛이 나타나더니 금속제 도구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눈을 감자 나타난 결과는 뜻밖의 것이었다.
[탐지]
[특수 금속 - ???]
[마정석의 성격과 금속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마법 도구를 만들고, 특정한 마나를 전달하거나 흘려보낼 수 있도록 자연 안정화가 되어 있다. 여기에 사람의 마나를 주입하면 금속의 마나력으로 전환되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하스페다 가문에 전하는 비법 금속이다.]
눈을 뜨고, 미하일에게만 들리도록 말을 건넸다.
“밀.”
“어, 뭔지 알겠어? 특이한 거야?”
“……아무래도 저 사람, 놓치면 안 되겠다. 우리한테 절실한 사람이야. 나중의 협상에 쓸 패를 지금 쓰더라도 잡아야 해. 내 생각엔, ‘하스페다의 강철손’이 아닐까 싶어.”
네마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미하일은 가게 안쪽을 보더니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보였다.
“저 남자를 말하는 건가? 상인인 것 같은데 희한한 재주가 있네.”
“아니. 상인 말고. 딱 봐도 재미없게 생겼잖아. 그 반대편 여자분.”
하스페다 가문의 이름값이 가지는 가치는 몇 년 뒤에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무기에서부터 일상도구에 이르기까지, 마법 제조 공업의 혁신을 불러올 기술의 원천.
‘이 기회는 잡아야 한다.’
지금 해야 할 일도 밀려 있는 처지였지만, 그 생각 하나만이 뇌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 명령이었다. 가능성과 경제성은 여기서 따질 이유가 없었다. 이런 합금이 가능하다니. 이 시대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술인 것이다. 때마침 저 앞에 있는 두 사람의 옥신각신은 극한을 달려가고 있었다.
“시건방진 뻗대기도 오늘부로 끝이다! 오늘 아주 사생결단을 내자고, 이 도둑놈아!”
상인이 어설프게도 곁에 있던 곧은 검을 집어 들었다. 자기 명을 앞당기는 행위인 걸 모르는 자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스파타는 기병들이나 쓰던 장검인데 저걸 이 좁은 데서 왜…… 명을 재촉하는구나.’
더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네마냐는 상태창을 불렀다. 고민 없이, 비상용으로 남겨 둔 기초 능력치 1을 민첩에 투자했다. 곧바로 곡예술 기초 등급이 열렸다. 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술이었다. 조심스럽게 오른발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땅을 박찼다.
“……야야, 너 뭐 하는…….”
마나의 희미한 파동을 눈치챈 미하일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이미 네마냐의 몸은 앞으로 튀어 나간 지 오래였다.
“……!”
격하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상인의 스파타가 튕겨 날아갔다. 갑자기 중간으로 끼어든 그림자와 손목에 번개가 치듯 닥친 강렬한 충격. 반면, 여자 가공사는 눈빛이 잠시 흔들렸을 뿐,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꽤 고수군. 확실히 뭔가 경력이 있어.’
나는 스스로의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반면 부딪히지도 않은 상인은 기절하듯 뒤로 넘어갔다. 내 말채찍 손잡이와 맞대고 있던 가공사의 눈빛이 잠시 가늘어졌다. 갑자기 끼어든 녀석을 가늠하기 위한 것일까.
“너, 무슨 짓이지? 나와 저놈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제삼자는 빠져 주는 게 도리 아닌가? 지금 제대로 조질 참이라.”
“암만 나쁜 놈이어도 사람이 목이 달아나기 직전인걸요. 안 끼어들 수가 있나요. 무슨 일인지 모르고 끼어든 건 죄송하지만. 으음, 제 생각보다 훨씬 굳건하시군요.”
물론 그냥 말채찍이 아니었기에 네마냐가 믿고 달려든 것이기도 했다. 물려받은 얼마 안 되는 유산 중 하나인 말채찍은 저 까마득히 먼, 엘프들이나 산다는 남쪽 삼림지대의 특산물인 마가스 삼나무로 된 손잡이가 특징이었다. 어지간히 제련된 철제 날붙이는 이조차 들어가지 않는 고급품이었다.
‘그러니, 그나마 이걸로 덤비면 대화할 시간은 벌 수 있는 거지.’
의문의 가공사 역시 이 세심한 가공품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말채찍을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엘프의 솜씨가 좋군. 운 좋았어. 까딱했으면 바로 손목이 날아갔을 테니까.’
등에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칼을 애써 막았다. 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상대방을 만류했다.
“저는 별로 싸우고 싶지 않네요. 말리는 게 목적이다 보니. 그만 서로 칼을 거두는 건 어떨까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지만, 이마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부족한 요령은 마나를 보충한 완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는 어째선지 그 힘을 살살 흘려내며 언제든 밀어붙일 기세였다. 고블린과 맞서다 죽은 뒤로 처음 느끼는 공포였다.
“흥, 마가스 삼나무라. 제법 있는 집 자식인가 보군. 장이족의 물건을 들고 있다니. 하지만 끼어들어 중단시킨다고 문제가 없어지진 않지. 문제가 이제 내 손을 떠나기 전에 ‘해결’하는 게 속 편해.”
왜 저 ‘해결’이라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는 걸까. 그래도 여기서 손에 피를 묻히게 했다가는 일이 너무 복잡해질 것이다.
“진정하세요, 가공사님. 잠시 제 말 먼저 들어 보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나 힘 빠져, 이 아줌마야! 칼도 좀 내려놓고!’
잠깐 진땀 빼는 대치 상태가 이어지더니 손목으로 들어오던 압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의 힘을 다한 마나를 거두며, 나 역시 기꺼이 채찍을 거두었다. 조금 전까지의 긴장된 살기 역시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휴…… 별 지랄을 다 겪어서 남정네들 수작엔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네……. 그거 아니? 저 늙은이가 네 덕을 봤다는 거. 내 참, 뭣도 모르고 나대는 꼴이라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당사자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지만.’
나가떨어진 상인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대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아섰다. 곡예술로 빠르게 이동해 막아 내지 못했다면 상인은 일격에 죽고, 저 가공사는 살인죄로 잡혀갔겠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오히려 용감하게 덤빌 수 있는 건가. 그런 건 용감이라고 하지 않고 무모하다고 하는 겁니다, 아재!”
“넌 뭐야? 끼어들지 말고 꺼져! 너희까지 박살 내 주랴?”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전생의 내가 허둥대다 죽을 때 웃던 고블린이 떠올랐다. 그놈이 쳐 웃던 것도 이런 어처구니없음 때문이었을까.
“박살, 말 잘했네. 박살은 아저씨가 당한 게 박살이고……. 여기 계시는 귀중한 분은 제가 좀 모셔가도록 하지.”
“응? 나 말하는 건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가공사가 조금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당연히 다른 누가 있을 리 없지.
“아저씨. 초상 치르는 것보다는 돈 넉넉히 받고 입 다무는 게 건강에 더 좋을걸요? 아까도 봤죠? 바가반드 영주의 기사니까, 불만 있으면 찾아와서 소송을 걸든지 하고.”
네마냐가 왼손으로 자신의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 뒤엔 말리지만 않으면 언제고 뛰어들 듯한 맹수가 한 마리 도사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오른손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보였다. 상인은 바싹 자신감을 잃고 수그러들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장사해서 잘 먹고 살려면 우선 목숨부터 잘 부지해야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상인의 품에 던져 넣었다. 나는 그저 씩 웃었다. 좋지 않게 헤어진다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선 안 되겠지.
‘마정석 합금의 생산자를 데려오고 금화 10닢을 주는 거라면, 충분히 대박이지.’
그러면서 나와 넘어져 있는 상점주는 흥정의 끝에 도착했다.
“금화 10닢이면 충분하겠죠, 아저씨? 이 정도로 적당히 끝내자고요.”
상인이 불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벌써 밀은 의문의 가공사와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마정석 합금의 장인은 차분한 모습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그 별명대로 ‘강철손’이 맞다면 저 사람은…….
가공사는 이내 뚜벅뚜벅 걸어 내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네. 먼저, 당신의 이름은? 난 아일라 하스페다, 아마 한 번쯤 가문 이름은 들어 봤을 것 같은데.”
“그럼요. 하야스단 사람이 어떻게 못 들어 봤겠어요.”
앞으로 벌어질 대격변의 중심에도 서게 될 집안인걸.
‘아직 이 사람이 바난드에 들어왔을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뭔가 하는 바람에 전생과 다르게 바뀐 건가?’
무엇이 진실이든 중요한 건 아니지. 확실한 건 비로소 내 날개를 펼칠 기회가 왔다는 거다. 마정석 탐지와 마정석 합금의 결합, 어디까지 가능성이 뻗어 나갈지 기대되는 조합이었다. 나는 미하일과 동의를 구하며 눈인사를 나눴다. 뭐 잴 것 있느냐는 투로 아일라가 먼저 손을 건넸다. 나 역시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장차 풍운을 불러올지도 모를 조합이지만, 아무도 무슨 일일지 정확한 의의는 모를 테지. 나 자신만 뺀다면 말이다.
“그럼,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절세의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 채 어안이 벙벙한 상인을 남겨 두고,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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