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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7화 (7/200)

7화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선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위와 봉토 일체의 반납.”

두 번째로 던지는 대사도 첫 번째와 똑같았다. 하지만 가스파리얀 백작의 동공은 마찬가지로 다시 흔들렸다.

‘나이스. 생각대로다.’

40년 만에 만난 늙은 백작은 여전히 노련하고 음험했다. 하지만 그 앞에 선 네마냐는 재앙과 전란이 넘치는 난세로 단련되어 있었다. 계산적인 인물이 보기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자신이 가진 사실상 모든 것, 작위와 봉토를 모두 던졌다. 바보 같아 보이겠지. 바보 같은 인간.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나자리안?”

당혹과 의아함이 묻어나는 물음. 당황스러운 백작 영감의 표정은 처음이다. 나는 반갑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신중하신 영주 각하를 설득하려면 이 정도의 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예의상으로도 맞지 않습니까?”

영주의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나 이 제안이 무슨 의도에서 온 것인지에 집중하느라 복잡한 생각은 못 할 것이다. 논리의 파도 위에서 떠다니다 잡아먹히는 것이 영주의 역할이었다.

‘떡밥은 이제 잘 먹혀든 것 같군. 그럼 진짜 미끼를 슬슬 쳐 볼까. 어디 한번.’

“앞뒤 미사여구는 빼겠습니다. 바쁜 시간을 더 뺏어선 곤란하니까요.”

백작은 이제 세금 문서 같은 건 내팽개치고 온 신경을 네마냐의 입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간단합니다. 광산 다섯 군데, 그리고 채굴에 대한 자문을 구할 기술자의 고용을 원합니다. 장기 고용을 바라지만 단기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꿈도 야무지군. 그래, 광부는 어떻게 고용할 생각이지? 광부 고용에도 상당히 많은 돈이 드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모를 리가. 한동안 광산업이 하야스단 고원에서 사양 산업이었던 건, 애초에 채굴 시도를 할 만한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년간 전쟁에 시달린 덕분이다. 아직도 상인 길드조차 신규 광산을 팔 만한 엄두는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거기에 대한 해법도 마련했지만.’

내가 생각해 놓은 건, 우선 순수한 광산 산업보다는 일종의 구빈 대책으로서의 광산 채굴이었다.

‘초기 비용은 절감하고, 바가반드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지.’

내가 꺼낸 이야기는 바로 그런 논리였다.

“올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을 대상으로 광부를 모집하면 덤으로 구휼도 가능할 겁니다. 일정 비율만큼 불하하는 것으로 비용을 대신할 생각입니다.”

“…….”

“…….”

집무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잠시 계속된 고요함은 백작의 웃음과 함께 깨졌다. 살짝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허허, 그야말로 광산에 미쳐 버린 가문이 있다면 나자리안 가문이 아닌가 싶군. 야망도 참 원대하지.”

그리곤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광산이 다섯 곳이지만 그나마 채굴이 되는 곳은 한 곳뿐인데, 굶주린 농민들을 구제하겠다라! 자신이 어엿한 기사라도 되는 줄 아는가? 하물며 이젠 영주 노릇을 하려 드는군.”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15살 때의 네마냐는 즉시 부친의 기사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물려받는다고 미성년 자녀가 기사로 인정받는 건 아니었다.

[조건적 기사 가업 계승 제도]

전대 기사가 갑자기 죽는 경우, 직계자손에게 임시로 기사의 특권과 작위가 3년간 계승된다. 영지민과 마을을 보호하는 기사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하고, 동시에 부모를 잃은 고아를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2년 넘게 지내다가 기사 작위랑 영지까지 뺏길 뻔했지. 안내장이 나와도 가로채신 어느 백작님 덕분에.’

어쨌건 눈앞에 있는 그 백작은 바로 네마냐의 그런 사정을 지적한 것이다. 원 역사대로 훼방을 놓질 못하니,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을 떠올린 게 이것이었다.

‘기사의 본분도 지키지 못하면서 딴 데로 눈을 돌리느냐는 뜻이겠지.’

미하일이 중간에 나서려는 눈치를 보이자 네마냐는 살짝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의 중재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밀을 안심시키고 나설 때였다.

‘난관을 직접 돌파해야지. 내 능력도 확실하게 입증할 겸.’

“일개 기사까지 생각하심에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교육을 거쳐 시험을 치러야 할 유예 기간은 아직 2년가량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흉작으로 인해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식량이나 돈을 주고 굴이라도 파려 합니다. 영지 사정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1년 반 동안 광산 채굴을 빙자한 복지 사업에 기사 수련까지 준비하겠다니, 네 오만함이 끝이 없구나.”

‘바로 지금.’

“기사 작위가 신분이나 검술 실력만으로 나오는 줄 아시다니요. 아무리 촌이라도 그렇지, 정보 최신화가 너무 더딥니다, 각하.”

“뭣이?”

깊게 파인 미간에 골이 잡히는 것이 보였다. 분위기 잡치지 말고 웃으셔야지. 네마냐는 변함없는 미소와 함께, 못 알아들은 영주님께 똑같은 대사를 정확하게 다시 일러주었다.

“촌.”

이 글자에 힘을 주어 찬찬히 짚어주니 얼굴 위로 힘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이 진풍경이다.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모습에 흔들리는 마나의 파동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야기는 계속됐다.

“최근 동방 제국을 시작으로 콜카신과 바난드 왕의 땅에서도 새로운 기사 면허가 도입될 예정입니다. 전략 자원 광물을 분석하고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아직은 동방 제국에서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는 정도겠지만, 알게 뭐람. 먼저 저지르고 나서 그때도 없으면…… 그때 걱정하지 뭐.’

오지 않은 미래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영주에 맞설 만큼 성장하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니까. 네마냐의 속내는 모를 가스파리얀은 자신의 문답을 이어 갔다.

“……그런 게 생겼다고 해도 1년 안에 준비를 마쳐서 입학 시험을 치를 수도 없겠지. 얌전히 농민들이나 타일러서 세금이나 잘 내거라.”

들으나 마나 한 훈수는 들어 줄 필요가 없다. 아무 말 없이 오른손에 그동안 모아 놓은 마나를 집중시켰다. 확인하지 않는 사이에 요란스러운 창들이 많이 떴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자, 시끄럽게 굴던 알림은 모두 조용해졌다.

‘마나 수련을 아직 하지 않은 몸이라 마나의 흐름을 다스리기는 힘들군. 화려한 기술은 힘들어도 형체를 만드는 정도까진 되겠지.’

정식 수련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마나 흐름을 신체 특정 부분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재능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는 그 재능이 없어 평생을 ‘탐지’ 기술 하나에 의존했다. 손가락에 모인 마나의 빛을 볼 때마다 얼마나 신기한지, 며칠 내내 손가락 끝만 보며 웃곤 했다.

[스타투아 리타(Statua Lita)]

집게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살살 문지르니, 긁은 자리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마나가 이전보다 더 요동치는 것 같군. 무슨 일이지? 상태창도 크게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네마냐는 의아해하면서도 글씨를 써 나갔다. 이내 바가반드라는 글자 형태로 빛이 솟아나 탁상 표면에 붙었다.

“……마나를 실체화시킬 수 있다고? 수련, 아니 시험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이 녀석이 워낙에 좀 별종이라서 말이죠. 중요한 건, 마나 실체화가 가능하다면 기사 실습 과정 편입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각하께서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잠시 기다리던 미하일도 전면에서 공세를 펼쳤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지방 변두리의 백작이 갖가지 미래의 이야기까지 끌어다 쓰는 합작 사기단을 당해낼 수가 있나. 문득 속상한 빛이 눈을 스쳤다. 네마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감정이 잘 노출되니 쉽네, 쉬워. 이걸 그때는 그렇게 무방비로 당했다니.’

다시 자리로 돌아온 백작은 어쩔 수 없이 흥정을 개시했다.

“그래, 정말 그 정도로 자부한다면 내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원한다는 광산이 어디지?”

기다렸다는 듯 네마냐는 품속에서 잘 말아 놓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촥 하는 소리와 함께 펼쳐, 탁상 위에 올렸다. 양피지는 바가반드 일대의 지도로 바뀌었다. 거침없는 집게손가락이 표시한 몇몇 지점을 가리켰다.

“므사타, 다비안…… 쿠나타, 크사리다 그리고…… 이곳, 사라타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하나같이 채굴이 끝나거나 끝나가는 곳인데.”

“고갈된 광산이라고 자원이 없진 않습니다. 영민들에 제공할 연료용으로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영지 근처 사라타는 아직 고갈되지는 않았지요. 제대로 광산을 운영하는 건 여기 정도가 되겠군요.”

바가반드에서도 알짜배기인 광산 5곳. 겉으로야 영민을 돕고 광산업을 하는 것으로 포장했다. 그럴싸한 명분이면서 바보 같기도 할 것이다. 수익성도 낮은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꼴이니, 당연한 생각이었다. 보통 바보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그 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가스파리얀도 탄식을 흘렸다.

‘무슨 생각을 하든, 미래의 일을 아는 나와의 도박에선 이길 수 없지.’

그나마 이것저것 생각해 봤는지, 가스파리얀은 의심이 가는 것들을 물어왔다.

“석탄이나 명반석 조금 나오는 것을 연료용이나 수출용으로 쓴다면 모르지. 하지만 대부분 몇 달 안에 폐쇄될 거다. 영지를 반납한 것 치곤 너무 값이 적지 않나?”

“영주님께 달리 손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야 당장은 작아도 현재 검증된 광산을 저렴하게 운영해서 경험을 쌓으면 충분합니다. 영민을 겸사겸사 지키면 더 좋지요. 그러기엔 다섯 광산이면 충분할 겁니다.”

‘거의 다 됐다, 이서준. 평소대로 신중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매번 촉박한 일정에도 배짱을 부려 가며 기어코 멱살 잡고 팀을 이끌었던 자신이다. ‘멱살캐리’라는 별명이 여기서 진가를 발휘했다. 네마냐의 계속된 이야기에, 가스파리얀은 점점 동요하는 표정을 보였다.

“……확실히, 제안대로라면 나에게 해가 되진 않고 영지에 이익이 되겠지. 그러나 영민의 욕은 내가 다 듣고, 덕은 자네들이 가져가는 모양새 아닌가? 내가 그 위험을 감수할 의무는 없지.”

미친놈. 그럴듯하게 미친 소리. 네마냐와 미하일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백작이나 되는 제후가 기사 봉신들을 관리하면서 영지 주민들의 세금을 받는 이유가 뭐겠는가. 주민들 보호하고 도우라는 의미지. 당장 걷을 돈 생각밖에 없는 태평한 처지라니. 정부에 대한 욕이라면 환생 전이나 이후나 꾸준히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욕이 뼈에 사무치기도 처음이었다.

‘으…… 웃자, 웃어!’

본격적으로 흥정이 진행 중이니 조금 더 참아야 했다.

“당연히 각하의 이름으로 그 사업을 시작하는 게 마땅합니다. 공고를 내어 각하께서 계획했다고 밝히고, 빈 일손을 모집한다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영민들도 각하를 칭송하고, 당장 굶지 않아도 될 겁니다.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흠, 꽤 치밀하게 짜 왔어. 그래, 그럼 채굴한 광물은 어떻게 할 계획이지?”

천천히 백작의 마음은 넘어가는 징후가 보였다. 세금 문서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가지런히 마주 잡은 저 손이 그 증거였다.

“제 예상으론, 채굴하게 되면 C급 명반석이나 D급 석탄을 얻을 겁니다. 명반은 조합으로 공급 계약을 넣어 볼 예정입니다. 석탄은 겨우내 연료용으로 영지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이곳 세계에서 광물은 대충 5개의 등급으로 구분되었다. C급 광물은 가공을 거치지 않으면 제값을 받기 어려운 등급이다. 어쨌든 판매는 가능한 수준. D급부터는 얘기가 좀 달라져서, 상품성이 없어서 산업용 혹은 저렴한 제품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야기로 보자면 네마냐 자신은 크게 남는 건 없지. 그저 치기 어린 계획이라 보겠지.’

아직 망설이는 영주를 위해, 마저 쐐기를 박아넣었다.

“명반석 판매 수익은 광산 운영 및 주민 보조금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농사 인원을 빼내었으니, 그만큼 줄어든 토지세를 보충하도록 영지에도 일정액을 세금으로 제공하겠습니다. 어느 정도로 드리면 될까요?”

“훌륭하군. 자네가 기사와 봉토를 다 저당으로 잡겠다고 제안했으니, 나 역시 그에 걸맞게 조금만 받도록 하지. 250골드 상환이면 적당한 조건이겠지?”

‘250골드라. 정말 미쳤군.’

속으론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대형 금광을 캐도 생산비, 인건비, 유지비를 빼면 대략 1,000골드를 거두는 게 전부다. 세금도 무거운데, 쓰레기나 다름없는 광산 5개를 250골드를 더 내고 쓰란 얘기였다.

‘바가반드 1년 수입이 500골드도 안 되는 걸 내가 아는데. 아예 날 파산시킬 작정이군.’

5개 광산의 진정한 제 가치에 대해서까진 알지 못하는 미하일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저, 각하. 어느 정도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250골드나 되는 돈을…….”

가스파리얀은 왜 그러냐며 웃는 표정으로, 다 낼 필요는 없다는 자비로운 척을 부렸다.

“당장은 계약금으로 25골드만 내도 좋다네. 천천히 갚게.”

미하일이 흥분해서 뭐라고 말하기 전, 네마냐가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녀석에겐 안심하라며 비밀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주의 계략은 아쉽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내가 언급한 5개 광산은 영주가 요구하는 사용료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노다지였거든. 네마냐는 자신 있게 손을 들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각하! 계약금을 10골드로 해 주시면 나머지 잔액을 합쳐 6개월 안에 갚겠습니다. 혹시 채굴 기술자 및 인력과 정보를 알선하게끔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 음…… 당연히 그 정도는 문제 없지.”

너무나 간단한 승낙에 미하일만큼 놀란 걸까. 아니, 그 이상으로 가스파리얀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서준이 빙의하기 전 네마냐는 부모 뒤에 숨어서 말도 꺼내지 못했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배짱 흥정을 부리는 것이다. 백작의 당황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계약은 끝나 버렸다.

“그럼, 저희는 하루가 급하니 바로 나가 보겠습니다. 어쩌면 반년 뒤까지는 뵙지 못할 수 있겠군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백작의 무탈을 기원하는 네마냐였다. 그 사이에 상태창은 뭔가 대단한 거라도 있는지 요란스럽게 반짝대고 있었다. 가스파리얀은 완전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야기를 마쳤는데도 불안했다. 대체 뭘 놓쳤지? 왜 저렇게 당당한 것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 불안감은 어째서 나오는 걸까. 허탈한 감탄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허.”

* * *

“아, 더러워. 퉷!”

난간의 돌기둥에 침을 뱉은 미하일은 하늘을 쳐다봤다. 여전히 해는 기울지 않았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많이 쌓였어?”

네마냐는 놀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미하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도저히 갓 열일곱 된 소년이라고 볼 수 없을 이 느긋함은 뭘까. 미하일은 이해를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야, 너는 속도 좋다. 그 능구렁이 영감의 공갈에 어떻게 비위를 맞춰 주냐?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계약까지 체결해 버리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미하일은 뭔가, 자신이 꿈이라도 꾸는가 싶은 표정으로 물었다.

“응? 일단 마정석 광산이 우리 손에 들어왔는데 무슨 걱정이야? 일단 이게 들어오고 나면 가스파리얀이 아니라 황제가 와도 손을 못 댄다고. 까짓거, 250골드 주고 씻어 버리는 거지.”

손에 들린 재산 서류를 탁탁 치며 네마냐는 호언장담했다. 잠시 돌처럼 굳는가 싶었던 미하일도 한참을 웃곤, 많이 변했다며 네마냐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아, 수레에 한 번 치여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정말 그러면 나도 한번 치여 봐?”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만 하셔. 특제 수레로 정수리부터 잘근잘근 쳐 줄 테니까.”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다시 마구간을 향해 걸어갔다. 관저 입구로부터 마구간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걸어가면서도 한참의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은 자신의 애마로 다가갔다.

“……그건 그렇지만, 정말 250골드를 낼 수 있을까? 백작이 말로는 기술자도 지원해 준다지만 움직이지도 않을 거고. 마을 사람들은 광산 일 안 해 본 사람들도 많을 테고.”

“넌, 젊은 새끼가 걱정도 팔자다!”

걱정을 늘어놓는 녀석의 등짝을 화끈할 정도로 세게 치며 주의를 돌렸다. 황당해하는 미하일의 눈치를 뒤로하며 나는 안장에 올랐다.

“며칠 전에 내가 치였던 수레 소유주를 찾는다고 의뢰했던 거, 기억하지?”

“응? 아, 그랬지. 찾고 말 것도 없이 그쪽에서도 연락해 왔잖아. 바난드 쪽 길드였지, 아마.”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하일 녀석에게 다음 목적지를 얘기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새나가지 않도록 귓속말로 건넨 한마디였다.

“아니(Ani). 바난드의 수도에 본거지가 있어.”

“그렇다면 거기서 배상금을 받을 생각이겠군. 왕국 배경을 둔 조합 상대로 얼마나 뜯어먹으려는 거야? 갈수록 싸움 상대가 대단해지네. 하하.”

‘뭔가 단단히 잘못 물린 것 같은데, 이미 빠지기엔 너무 늦었겠지.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시길.’

속으로 단단히 잘못 걸린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며 미하일은 말을 몰았다. 두 사람이 향하는 목적지는 당연히 ‘아니’였다.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 있는 바난드 왕국의 수도. 부유한 상인들의 통행으로 북적이는 동네. 그 모든 게 아니를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어허, 아직도 두 눈에 불신이 가득하군. 잘 보라고. 이 한 몸을 희생해서 어떻게 길을 헤쳐나가나. 이런 기술은 마법이나 소드 마스터의 검술로도 얻을 수 없는 거니까.”

‘오직 교통사고와 공갈치기가 횡행하던 21세기 한국의 거친 도로에서 얻은 스킬이니 당연하겠지만.’

“……좋다고 따라오긴 했는데, 잘하는 짓인진 나도 모르겠다. 잠깐 집에 들러서 씻고 좀 쉰 다음에 움직이자고. 며칠 내내 피곤해 죽겠어.”

다크서클이 볼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늘어진 미하일을 보니, 애잔하기 짝이 없었다. 잠도 안 재우고 사방을 끌고 다니고 독한 영주까지 만났으니, 뭐 하루 정도는 쉬어도 무방하겠지.

“그래, 좀 쉬자. 우리의 역사적인 사업이 첫 발을 뗐으니까 기념으로 뭐라도 배를 좀 채우고 들어가자고.”

말 몇 마디에, 투덜대던 미하일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정말? 그럼 나도 드디어 얻어먹는 건가?”

“……무슨 소리야? 내가 돈이 어딨다고. 당연히 ‘아직은’ 더 잘 사는 네가 사야지.”

순박하기 짝이 없는 하야스단의 고원, 한국에서 수출된 생존 스킬은 거침없이 피해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수(?)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바난드 왕국의 수도, 아니를 향해 뻗어 가고 있었다.

-지도로 이어집니다 -

- 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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