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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6화 (6/200)

6화

바가반드 본성에 네마냐와 미하일 일행이 도착한 건 사라타 광산을 찾아가 조사한 지 겨우 반나절만이었다.

“드디어.”

“설마 그 길로 바로 본성으로 달릴 줄은 몰랐다, 젠장.”

허덕이는 미하일이 다크서클 짙게 깔린 눈을 비비며 가까스로 따라왔다. 거대한 성채의 벽돌담은 머리 위로 높게 치솟아 있었다. 가스파리얀 가문의 영주는 벌써 3대째 대대로 이곳에서 넓은 영지를 다스렸다.

“본성이 크긴 커. 괜히 창세 전설에도 나온 건 아니겠지만.”

하야스단 지방에서 전하는 전설엔 그런 내용도 있었다. 하늘이 열리고 마나의 샘이 열린 첫 장소가 이곳 바가반드, 본성 자리였다는 내용이다. 영지 본성이 있는 자리에서 현재 실제로 마나가 솟아나는 마시스까지는 산맥이 이어져 있었다.

‘산맥이란 곧 지맥인데, 금속 속성이 강한 이곳 토양의 속성상 금속성 마나가 타고 흐르는 길이 되었겠지.’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이곳 바가반드와 마시스 성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날이 온다. 지금이야, 판잣집이 계곡에 늘어서고 좁다란 밭이 계단식으로 조성된 작은 산촌일 뿐이지만. 그러나 일단 용트림을 시작한 운명의 손길이 지나가면, 이까짓 변화는 5년이면 일어나고도 남는다.

“암만 생각해도 가스파리얀이랑 거래를 터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어느새 말을 나란히 붙인 미하일은 고삐를 한 손으로 휘어잡으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거래에선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게 가스파리얀이다. 항상 권력과 교묘한 방법으로 악명 높은 백작은 생각만 해도 피곤한 상대였다.

“어쩌겠냐. 광산 채굴권을 받으려면 직속 영주와 협상을 해야 하는걸. 조금만 참아. 직접 협상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으, 그렇다면야 따라가긴 하겠지만. 그 능구렁이 영감을 볼 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니까?”

영주의 성격을 닮아서 그런지, 검은색 벽돌로 쌓은 본성이 무척 음울해 보였다. 두 사람은 담장을 따라 마구간에 가서 말을 맡기고 본성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지요, 네마냐 님. 의식을 찾으셨단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저는 스프란체라고 합니다.”

집사로 보이는 낯선 인물이 다가오더니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뭐지? 영주관 사람이 나를 친절하게 맞을 때가 있었나? 아니, 이전엔 이런 사람을 영주관에서 만난 기억이 없었다.

‘설마, 회귀하고 나서 뭔가 달라진 건가.’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낯선 집사에게 웃음으로 적당히 위장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새 집사이신가요? 처음 보네요.”

“그렇지, 잘 모르시겠군요. 도련님께서 가끔 구호 사업을 베푸셨을 때 여러 번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영주님 밑에서 일합니다만.”

“아…… 그렇군요.”

‘어떻게 나를 알고 살갑게 구나 싶더니, 내가 빙의하기 전의 네마냐와 관련이 있었군.’

어떻게 돌아갈 인간관계가 될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영지의 일에 능숙한 집사와 괜찮은 사이를 유지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

“어쨌든, 잘 부탁합니다. 백작님을 뵈러 왔으니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마침 잘 오셨군요. 영주님의 기분이 좀 괜찮으셔서요. 자, 따라오시죠. 아, 옆에 계신 분은 바드란 가문의 둘째 아드님이시군요. 저번 행사 때 뵌 것 같습니다.”

“아……네, 그렇네요. 미하일이라고 합니다.”

집사 스프란체는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곤, 웃음을 터뜨리며 길을 앞장섰다.

“아침부터 훤칠한 두 장정이 찾아와서 그런지, 관저의 공기도 오늘은 들뜨는가 봅니다.”

어쩐지, 시종과 하녀들이 몰래 미하일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니. 얄미운 미하일 녀석의 발을 살짝 지르밟으며 집사의 뒤를 따랐다.

“악! 뭐 하는 거야, 대체.”

영문을 모르는 미하일도 회랑을 떠나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영주님도 곧 오실 겁니다. 차라도 좀 가져다 드릴까요?”

“차분한 느낌의 차로 좀 주시겠어요?”

“저도 네마냐와 같은 것으로 주세요, 그냥.”

“알겠습니다.”

—탁

집사가 문을 닫고 나갔다. 방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손님 자리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과 계산이 얽히고설키느라 복잡했다.

“……그래서, 무슨 제안을 할지 생각은 해 뒀어? 무턱대고 광산 좀 팔라고 들이미는 게 마냥 좋은 생각은 아닐 텐데.”

“내가 앞뒤도 없이 덤빌 사람으로 보이냐? 이미 시나리오는 다 짜 놨지.”

“호오.”

난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일정한 박자에 맞춰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일종의 자기최면으로, 뒤엉킨 타래의 이야기들을 엮는 신호와도 같았다.

“자, 일단 명단부터 확인해 보자. 광산을 양도받을 곳은 사라타 한 군데였지? 그리고 새로 채굴 승인을 받아야 할 곳이 므사타와 다비안, 쿠나타, 그리고…….”

“크사리다까지 총 네 군데야. 으아, 하룻밤 동안에 광산을 네 개나 찾느라고 뼈가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미하일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어깨를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일을 혼자 다 하신 티를 내세요, 아주.

“혼자만 아픈 줄 아네. 난 아직 회복도 다 안 돼서 원래는 누워 있어야 한다고.”

“그럼 여기 비켜 줄 테니 누워 있든지.”

잠시 녀석과 심오한 대화를 나눠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집사 스프란체가 들어왔다. 그는 백작이 곧 올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찻잔을 나눠 주곤 자리를 떴다.

—슥

찻잔을 집어 들었다. 향이 꽤 평온하고 진했다. 밤새 산길로 다녔더니 바람 비린내가 코를 찔렀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이 차, 괜찮은데? 겨우살이 같은 구수한 종류인 줄 알았는데 꽤 향긋해.”

내가 감탄하며 마시자, 미하일 녀석도 궁금하다는 듯이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왜 그런 반응인지 알겠다며 녀석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집안이 상품 작물을 취급하는 농장이니 모를 리는 없었을 터.

“포브루네.”

“포브루?”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살이랑 비슷하게 생긴 덤불 나무의 가지로 만드는 거야. 겨울에 산간지대 주민들이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거든. 맛도 좋고.”

“겨울에 나는 차인데 꽃향기도 나네. 괜찮다.”

포브루 덤불 숲. 네마냐의 옛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기후가 나빠진 상황에서 하야스단인들이 찾던 마지막 생계 수단이었다. 앞으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밭을 일구거나 산을 타며 이 풀떼기를 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좋았어. 전에는 이런 걸 마셔 볼 여유도 없었는데.’

잠깐이지만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술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효과였다. 더군다나 광산을 들른 뒤부터 자꾸 멋대로 끓어오르는 마나도 조금 진정됐다.

‘마나에도 영향이 있는 건가? 마법을 아는 사람이 이걸 알면 불티나게 팔리겠는데. 나중에 한번 검토해 볼까.’

내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걸 눈치챘는지, 미하일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돌렸다.

“채굴 승인을 받는 건 적어도 어렵진 않겠지? 어차피 지금 쓰는 데도 아니니까.”

녀석의 말대로였다. 채굴 허락을 받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지만.

“방금 말한 세 군데는 폐광이니까 채굴권을 얻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 사라타……도 유명 채굴지긴 하지만 곧 폐쇄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괜찮을 거야. 다만 문제라면…….”

“항상 문제는 돈이지.”

“그래. 우리 둘이서는 채굴 비용도 감당 못 할걸.”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숫자를 헤아리던 미하일은 내 말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부모님 몰래 돈을 빼돌려도 금화 열 닢 이상은 힘들어. 네 말대로, 채굴권 비용은 둘째 치고 광산 운영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아, 걱정하지 마. 설사 돈을 써도 금방 돌려받을 테니까, 잠자코 보라고.”

걱정할 것 없다는 태평스러운 네마냐의 말이 어처구니없던 모양이다. 녀석이 무어라 쏘아붙이려는 찰나, 두 쌍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 앞에 멈추어 섰다. 요란한 비명과 함께 문이 열렸다.

“왔군.”

“후.”

네마냐와 미하일은 소곤대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서 집사가 안쪽을 가리키며 몸을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는 건.

‘젊은 영주도 아니고, 그보다 더 교활한 아비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반가……울 리가 있겠냐, 이 개자식!’

네마냐의 인생을 시궁창 함정에 빠트렸던 장본인이었다. 들어오는 그림자는 보지도 않은 채, 일제히 고개부터 숙였다.

“가스파리얀 3세 각하를 뵙니다.”

“인도하심 속에 지혜의 빛을.”

잠시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지났다. 무언가를 씹고 있는지 우물거리던 영감은 비난으로 첫인사를 열었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우리 비호감 존재!

“요즘 젊은 자제들은 대낮에 일은 안 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군. 거기 앉지.”

“하하. 요즘이 좀 농한기인 덕분 아니겠습니까, 각하. 감사합니다.”

집무실 책상으로 향하는 백작. 가시 돋친 영감의 말을 능청스럽게 받아내는 건 미하일의 몫이었다. 가스파리얀 백작의 ‘흥’ 하는 콧방귀 소리가 추임새처럼 그 뒤에 붙었다.

“바드란가의 차남, 이름이 미하일이라 했던가. 부친이 걱정이 많겠어. 나자리안 녀석이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으니 방황할 수도 있지만. 자네는 자립하려면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데 이러고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가문이 우리 영지의 최고 모범 가문이니, 그럴수록 자네도 몸가짐을 조심해야지. 부친이나 모친의 이름을 생각해야지 않겠어?”

미리 대비했을 텐데도, 미하일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게 역력해 보였다. 내가 녀석의 무릎을 툭툭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참 그렇게 굳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말씀하신 대로 부모와 조상의 이름에 먹칠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열일곱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패드립인데. 영주만 아니었으면, 저 영감은 아마 나 아니면 밀한테 진작 죽었을걸.’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패드립 실력이었다. 네마냐는 이후에도 40년을 내내, 아버지 백작과 아들 백작에게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견제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였다. 영지라도 잡아먹을까 봐? 일개 기사가 그럴 순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이제는 내가 영지를 빼앗을 테니, 어떤 이유였는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

아직 어리바리하던 환생 초기엔 얌전히 눈을 깔고 조인트를 까면 까는 대로 다 받아 줬다. 소위 말하는 ‘짬’이 부족해서였지. 군대에 갔던 때도, 나름 순한 맛 부조리가 된 뒤였다. 이런 매운맛 부조리는 어처구니없었다.

‘하긴. 그래도 21세기 군대랑 아예 시대부터 다른 중세 세계이니까. 다를 수밖에 없겠지.’

얼굴이 굳어 버린 채 영주의 거친 말에 버티고 있던 미하일이 슬쩍 내 쪽을 보고 도움을 청했다. 뒷머리를 긁으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늙은 영주에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미하일은 네마냐의 미소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영주님. 아직 정정하셨군요.”

“그래, 그간 사고를 당했는데도 살아 있다기에 뭘 하나 했더니. 이상한 작당을 해 왔군.”

‘아직’이란 두 자에 눈썹이 꿈틀거린 영주. 본격적으로 인성질의 대단원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도 각오하고 오긴 했지만, 무작정 들이받을 수는 없다. 우리 둘은 이곳에서 협상을 하고, 거래하기 위해 왔으니까. 앞으로 좋은 기회가 오기 전까진 적으로 만들 상대가 아니었다. 여전히 여러 영지와 기사를 거느린 막강한 백작이었으니까.

‘일단 천천히 구슬려 볼까.’

“……조사할 일이나 생각할 일이 많더군요.”

“자네 부모도 그렇게 정신을 안 차리곤 시대가 바뀐다느니 어떻다느니 그러더니. 다른 데 정신을 팔면 그래서 안 된다는 게야. 분수를 알아야지.”

“…….”

‘참자. 우선 알림이 거슬리니까, 확인해 볼까.’

시선 한구석에 붉은색의 ‘1’이란 숫자가 알림을 표시했다. 며칠간 집에서 연습한 대로 눈을 감았다. 여러 상태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술의 숙련도가 3 상승. 화술 초보자가 되었습니다. ‘인내’ 특성 획득.]

‘화술 숙련이라.’

다른 사람에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집에서 간단하게 실험해서 알긴 하지만, 소리나 화면은 네마냐 자신에게만 보였다. 그렇다면 좀 더 설명을 봐도 되겠지. 무엇보다도 난 ‘인내’의 효과가 궁금했다.

[협상하는 행동에서 상대의 논리와 도발에 말려들지 않을 인내력. 협상 성공률 소폭 증가. 도발 방어 횟수에 비례해 기술 획득 확률이 증가.]

‘자동으로 적용되는 방어와 같은 기술이란 얘기군. 잠깐…….’

조금 전 백작의 도발을 막은 덕분에 기술이 하나 열린 모양이다. 화술 테크트리에 달린 기술 항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설득 - 1단계]

[협상 성공률을 증가시켜 준다. 거래 상대 1인에게 영향을 주어 거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1단계 기술. 아마 그렇다는 건 2단계나 그 이후로도 개방할 수 있단 뜻이겠지. 그만큼 강한 힘을 쓸 수 있을 테고.

‘그렇군.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강한 힘이 될 수도 있겠어. 흥정하러 온 지금이라면, 더더욱.’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다. 시야가 또렷해지자, 상태창도 모습을 감추었다. 깨끗한 시야 한구석에는 오직 영주의 음울한 회색빛 눈동자만이 잡힐 뿐이었다. 꽤 상당한 시간을 들인 것 같은데 영주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까 노인네가 친 패드립에 대답을 해야겠지.

“……제 부모는 나름대로 영지 발전과 영민을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물론 지금의 바가반드가 있는 것은 각하의 판단 덕입니다만.”

“말로는 뭔 소린들 못하리.”

그래도 자길 띄워 주는 말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한 영감님이다. 생전엔 연기와 거리가 멀었던 자신이지만, 연기가 능숙한 걸 보면 화술이 꽤 도움이 된 모양이다.

면회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영주는 책상에 놓인 장부와 보고서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아마도 저번 9월에 걷은 세금 결산 보고서일 테지.

‘모든 관심이란 돈에 쏠려 있는 구두쇠 집안이 어디 가겠어.’

이곳 바가반드 영지는 원래 풍족하지는 않아도 기근이 흔한 곳은 아니었다. 수십 년 만에 지옥으로 변한 건 최근 시작된 40% 넘는 세금과 특별세 폭탄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오직 하나.

‘사람들이 죽어나는 건 당연히 당신, 영감 백작 탓이지. 당신에겐 더 이상 영주의 자격이 없어.’

네마냐는 속으로나마 신나게 백작을 패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직 자립에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전까진 충실한 부하의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네마냐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 둘이 각하를 귀찮게 찾아온 것은 한 가지 중대한 계약을 제안하기 위해섭니다.”

“중대하다? 장난으로 꺼낸 얘기라면 큰코다칠 것이다. 기회를 줄 테니 철회해도 좋다.”

“에이, 제가 백작님께 어찌 농으로 이야길 꺼냈겠습니까? 좀 더 들어 보시죠.”

“흠…….”

‘머리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걸려들고 있군.’

이제 떡밥을 뿌렸으니, 슬슬 저 메기 같은 백작 놈도 냄새를 맡고 미끼로 입질을 할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과감하게 한번 줄을 풀어 볼까나.

“무슨 제안을 할 생각이지?”

“먼저, 이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제 명의로 물려받은 봉토 전부와 기사 작위를 보증으로 걸겠습니다. 이건 협상의 진정성에 대한 제 성의입니다.”

“뭐?”

‘미끼야, 발버둥 쳐라. 그래야 대어를 낚지.’

그때까지도 서류의 종잇장을 쉼 없이 넘기던 손이 별안간 그 자리에서 멈췄다. 작지만 빠른 변화, 먹잇감의 심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네마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더욱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 이건 사실…….”

실수했다고 생각한 미하일 녀석이 조급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네마냐의 손짓을 보곤 이내 다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마냐를 믿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가스파리얀 역시 미하일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어, 음…….”

잠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응시하던 백작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네마냐의 시선을 피했다. 두 손은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신호처럼 깍지로 얌전히 봉인했다. 방어적 자세였다.

“좋네.”

네마냐와 미하일은 백작의 목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다행히도 영주는 제안을 들어 볼 생각이 동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 각오를 하고 왔다면 내가 들어 볼 만한 내용이겠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세.”

됐다. 두 악동은 의미심장하게 눈빛을 나누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와중에 귓전에는 ‘띠링’ 하는 이질적인 소리마저 들려왔다. 예의 그 알람과 함께.

‘당장 확인은 어렵겠지만 뭔가 잘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네마냐는 백작의 눈길을 마주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중대한 거래, 아니 ‘주도면밀한 속임수’의 사기 거래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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