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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화 (1/200)

1화 - 프롤로그

일의 발단이란 어느 드라마나 소설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사소한 데 있었다.

“에라, 이렇게 된 거 원하는 대로 나가 주고 말지. 개자식!”

한동안 끊임없는 주문과 갈굼이 이어진 톡방 덕분에 업무용 핸드폰이 뜨거웠다. 정리도 되지 않은 침대 위로 불지옥 같은 핸드폰을 내던졌다.

―까똑, 까똑!

“지랄한다.”

한껏 속에 있던 말을 내뱉은 서준은 의자를 힘껏 밀어 여러 개의 작업 창이 떠 있는 모니터 앞으로 돌아갔다.

“……아이, 정말 더러워서 보기도 짜증 나네.”

스프레드시트의 숫자조차 갑자기 꼴도 보기 싫어졌다. 21세기 최첨단 시대, 난데없는 전염병으로 재택업무를 한다지만 집에서도 이어지는 상사와의 충돌은 최악이었다.

“변동 사항이 있었으면 취합하기 전에 미리 얘기라도 하던가. 기한도 이틀 앞이라서 난리인데 자꾸 갈굼이야, 어휴.”

집안에서 야근이 확정되어 버린 시간. 점심도 지나 버린 채 오후 3시를 가리키는 시계. 어둡게 방치된 방 안에서 한동안 손으로 얼굴을 포갠 채 숨을 가라앉혔다. 미처 말리기도 전에 집어넣은 세탁물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똑딱똑딱

시계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준은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직장인은 사직서를 맘속에 품고 다니기 마련. 자신도 이직 생각이 굴뚝같은 건 어쩔 수 없다.

“진짜 진지하게 이직할까. 이러다가 진짜 스트레스로 사망할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모은 돈으로 귀농이나…… 어디.”

생각난 김에 아무 말이나 꺼내는 대로, 지친 손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귀농인 모집은 찾기도 쉬웠다. 욜로니 워라밸이니 하다가도 결국 분노에 받힌 사람들은 귀농으로 치닫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퍽 좋은 ‘세상’ 아닌가.

“으응, 이 태평성대에. 이 태평성대에, 말이지. 물론 귀농해 봤자 환상도 깨지고 돈은 돈대로 깨지겠지, 휴.”

호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만 빼면.

좋아하는 「태평성대」의 대사를 중얼거리던 서준의 눈에 무엇인가 눈에 띄었다. 조건도 좋고 지원자도 없는, ‘신세계 귀농 힐링 프로젝트’.

“이름도 참 속 보인다니까. 누가 보면 대기업에서 하는 이벤트인 줄 알겠어. 어차피 지방에서 청년들 적당히 이미지에 써먹는 거겠지.”

생김새는 그럴듯한 링크를 한 번 클릭했을 뿐이다. 발단은 이렇게 아주 사소했다.

―지직

클릭을 위해 마우스를 눌렀고, 그 순간. 마치 무슨 가상 공간에 접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노이즈가 낀 누런색의 무언가가 시야에 가득 찼다. 어지럼증과 두통도 한가득이었다.

“아 씨…… 갑자기 웬 어지럼이야.”

울렁이는 속을 안고 정신을 차렸다.

“휴…… 살았다. 하마터면 토할 뻔…… 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그곳, 차원을 몇 개는 건넜음직 한 중세 농촌의 풍광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조잡한 나무틀에 끼워진 유리 창문 밖으로. 이것이 신천지도 아닌 별천지에 떨어진 사정이었다.

* * *

혼란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마차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자신도 중태에 빠진 열일곱 살의 네마냐.

“영영 이제 돌아갈 길은 없겠지. 이서준…… 그리고 욕이 입에 붙었던 그곳으로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자신은 이미 고달픈 직장인 이서준이 아니었다. 작은 영지의 농장을 가진 고아 출신 기사였다. 기사 가문의 고아라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담배나 한 개비…… 아, 담배도 없지, 참.”

창가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는 시늉이나 하며, 네마냐의 몸에 일어났던 지난 기억을 돌아보았다. 처음엔 깨질 듯 아프더니, 이서준의 기억이 아닌 네마냐의 기억이 흡수되었다.

“풋. 이 녀석은 나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데. 이게 대체 어딜 봐서 힐링이란 거야.”

조그만 영지, 기사직을 세습하는 신분. 조금 시간이 지나 보니 적당하게 땅을 일구며 살 만한 처지였다. 그저 몇 가지 장애물, 좀 심각한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지. 그때마다 충실하게 배워 둔 욕을 대방출하는 시간이었다.

“또 욕 나오네…….”

사고로 보호자를 잃은 고아로 시작한 환경 자체는 문제도 아니었다. 처음엔 친절하고 자비로운 척 연기를 하던 영주란 놈은 도움은커녕 기사 시험비란 명목으로 영지의 반 이상을 빚으로 떼어먹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호위 기사 알바를 뛰며 빚을 돌려막고 땅을 지켰다.

“그래도 생전엔 땅 한 평 못 가져 봤었지만, 부동산은 가지고 시작했으니까. 수업료 제대로 치른 셈 칠까.”

그렇게 씁쓸한 표정으로 낯선 세계의 익숙한 고통을 다시 마주했다. 그냥 평범한 자신만으로는 이곳에서도 실패하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이 처음 든 순간이었다. 백수 생활과 가족으로부터 받던 압박, 체념하듯 보냈던 직장 시절의 기억은 마치 주술처럼 내 정신을 지배했다.

“귀농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그때는 정말 달리 살고 싶었지. 그런데 심지어 차원을 넘어서도 세상살이에 치어살다니, 거 참.”

어느 순간부턴가 나, 그러니까 서준은 네마냐의 신체이면서도 서준으로서의 기억과 생활 습관이 돌아왔다. 직장 상사 뒷담을 하던 입버릇이 영주와 영주의 관리들에 대한 뒷담으로 옮겨간 정도가 다르달까.

이후 말 그대로 수십 년 동안의 고생길이 훤하게 열렸다. 시작부터 반쯤 날아가 버린 농토는 간신히 소작을 쳐 가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나는 미래를 다시 생각할 겨를을 찾았다. 무엇보다, 부모가 갑자기 죽어 잠깐 유예받았던 기사 자격이 곧 만료될 예정이었다.

“영주놈이 사기만 치지 않았어도 벌써 기사 면허는 받았을 거야, 씁. 예전엔 주식 말아먹었는데 여기 와서도 작전 세력에 당하기나 하고, 어휴. 이서준 이 녀석.”

잠시 고민한 이서준, 아니 네마냐는 결론에 다다랐다.

“하, 어쨌든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도 기사학교에서 뭔가 배우는 게 낫겠지.”

고향 농장이 있는 바가반드에서 말을 달려 3일은 꼬박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드디어 바난드 왕국의 수도 아니(Ani)의 기사단 양성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날 도와줄 귀중한 지식을 수없이 접할 수 있던 것은 정말 귀중한 기회였다. 다시금 희망을 찾고 자수성가해 보려는 그 순간.

전쟁이 발발했다.

그때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고블린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때맞춰 전쟁이라니. 이건 무슨 운빨이지? 졸업하는 기사들은 착착 기사단의 깃발을 들고 전선으로 나갔다.

“차라리 나도 전장으로 나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친구 놈들이랑 다니는 게 차라리…… 아니다, 그나마 있는 영지라도 지켜야지.”

혈연이 없어 농장을 지키고 운영해야 하는 네마냐였다. 징집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고 친구들과도 헤어졌다. 전장에 떳떳이 서지 못할 몸이라면, 차라리 다른 방법이라도 선택해야 할 것 아닌가. 배운 것을 토대로 나는 악착같이 생계를 찾아 헤맸다.

“식량. 그래, 밀을 팔자. 식량 공급지로 바가반드를 키우면, 다른 곳에서도 바가반드를 지켜 주겠지.”

고블린 전쟁이 심각해지며, 하야스단 고원 곳곳에선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기온도 매년 떨어져서 농사지을 땅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난 농지를 최대한 사용해 자급자족 및 판매를 계획했다.

‘전시에는 식량이 부족하니까, 내 땅에서 길러다 팔면 되지 않겠어? 무엇보다 전쟁 때는 나랑 소작민들도 자급자족이 중요하니까.’

딴에는 현대인의 합리성까지 활용한 계획이었다. 문제는 이미 토지의 절반과 소작인 상당수가 시작부터 영주의 사기질에 넘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바가반드의 백작인 가스파리얀은 그 외에도 가혹한 세금을 거두며 영토 확장을 꾀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너무 꼬여 버렸다니까. 그냥 확 누가 회귀시켜 주면 안 되나. 여기로 보내 준(?) 놈이나 시스템 같은 게 있다면, 하.”

물론 말이 그렇지,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난 전생 이전, 직장에서 ‘악바리’로 불린 것답게 매사에 달려들었다.

“까짓거, 맨땅에 헤딩이라고 들이박고 또 박다 보면 언젠가 되지 않겠어? 의지의 차이라고. 한국인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문제는 나 자신이 살던 2020년의 지구와 달리, 차원을 넘어 도달한 이곳 하야스단 고원의 세계는 한랭화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매년 점점 더 추워지니 농사는 지어 봐야 망치기 일쑤였다. 망칠 때마다 땅은 줄어들고, 남은 땅은 점점 황폐해졌다.

“오, 빚이 밀렸다고? 손을 벌리려면 뭐라도 있어야…… 아, 자네 땅이 있지 않나!”

“……잘 부탁드립니다.”

빚이 생기는 걸 무척 반기는 영주에게 영지를 담보로 빚을 내는 게 일상이 되어 갔다. 엎친 데 덮친다고, 고블린 산적마저 사방에 넘쳐나 농작물 씨앗마저 구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유통망이 무너지자 개미가 되어 버려,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안락한 생활은커녕, 감자 몇 알과 순무 몇 뿌리를 껴안은 채 몽둥이에 맞아 쓰러졌다. 구역질 나는 녹색 고블린들이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다. 의식마저 흐릿해졌고, 시선은 자꾸만 어둠 속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내뱉은 한마디가 영혼의 너머로 울려 퍼졌다.

“젠-장…… 나, 돌아갈래!”

그 ‘돌아간다’라는 건, 2020년의 한국, 내 집을 가리킨 걸까. 그렇다면 필경, 귀농은 이제 됐으니 그만 돌려보내 달라는 발악이었으리라. 그런데 내 바람을 들은 어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운명의 신처럼 눈이 먼 게 아닌, 귀가 먹은 게 틀림없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 * *

“아 씨, 머리가 깨질 듯이…….”

긴긴 어둠을 뚫고 도착한 그곳. 익숙하고 낯선 거친 이불이 만져졌다. 낡아서 바람에 덜컹거리는 유리창, 얼기설기 엮은 나무 대들보까지.

“뭐야, 이 낯익은 천장은!”

벌떡 일어난 이서준, 아니…… 아직도 네마냐로 남아 있는 그 몸의 맨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차원 전이를 했던 그 시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격하게 반가웠던 네마냐는 허약한 몸으로,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환호를 내질렀다.

“쉬바아아알!”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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