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71장 - 신을 만난 상담사 (2)
이겨울은 조막만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때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고마워요.”
“……행동과 말이 다른데요?”
“그리고 죄송해요.”
“뭐가 말입니까?”
“그냥 이것저것…… 다요. 사실 전…… 진짜 솔직히 말하면, 언니가 싫었어요. 안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옥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언니한테 상담을 해주셔도, 소용없을 거고…… 어쩌면, 디프로그래밍 되면, 언니가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부탁했어요. 그래서…… 부탁했어요. 저, 더럽죠? 나쁜 애죠……?”
“뭘 그런 얘길 새삼스레.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어요?”
“예. 그리고 겨울 씨가 모르는 것 또한 알고 있지요. 그렇게 표층의식이 증오하는 친언니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용서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언니를 죽이고자 했다면 방법은 많았잖습니까? 가장 간단하게는, 독도 있었겠지요.”
“……불가능해서 안 한 거예요. 언니는, 의심이 많으니까.”
“그럴까요? 밤에는 당신이 이가을인데요? 내게 한 것처럼 태블릿으로 믿을 만한 이에게 독극물을 가져오라 일렀다면, 그 사실이 가을 씨에게 전달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지요. 겨울 씨는 용서하고 있었어요. 그걸 알기에 당신을 상담하지 않았습니다. 필요치 않았으니까요.”
“그런…… 거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게 해볼게요.”
배시시 웃은 뒤, 이겨울은 곁눈질로 아내를 살폈다.
“근데, 괜찮은 거예요? 화 많이 나신 것 같은데.”
“맞아요. 꽤 화가 났습니다.”
“저, 저 때문이에요?”
“나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원교의 디프로그래밍을 시작할 거라 말해줬거든요. 그랬더니 저렇게-”
“아, 안 돼요! 화내는 게 당연한데요…….”
“겨울 씨까지 그러지 말아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교단에서 성녀로 추앙받는 이가을이 내 편입니다. 우리가 함께 움직여서 한 명 한 명 치료한다면, 금세 끝날 일이에요.”
“저, 정말요? 금세…… 얼마나 걸려요?”
“아마 하루면 되겠지요.”
“어떻게요? 어떻게…… 50만 명인데요?”
“그중 45만 정도는 성전 위치도 모르는 교육생이지요. 교육장을 비롯해 핵심 인사 백여 명 정도만 상담하고 나면, 영원교는 자연스럽게 와해될 겁니다. 교단에 많은 것을 빼앗긴 신도들이 금세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상담하면 언젠가 돌아올 거예요. 사람은 그만큼 강한 존재니까요.”
“사람이 강한…… 줄은 잘 모르겠어요.”
“강합니다. 충분히 강해요. 따뜻한 관계만 있다면, 우리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도 일어서서 악과 싸울 수 있어요.”
그 이야기가 충분한 답이 되진 않은 듯했다.
사실은, 나 역시 원래는 자매만을 빼낸 뒤 검찰을 움직여 깨뜨리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내 안위를 우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오래된 구원]을 얻고자 쌓아온 exp는, 그것을 75exp라는 할인된 가격에 구입한 이후 차고 남는 상황.
그것으로 특성이든 기술이든 잔뜩 사들이면 된다.
그러면 광신도든 그들을 등쳐먹던 사기꾼이든 모두 치료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들 모두를 사회로 돌려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빼앗기기만 한 신입 신도들이야 아량으로 바라봐야 하겠지만, 그들을 착취해온 윗선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컬트 세뇌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될지는 법리해석의 문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처벌을 달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반성하도록 이끌어주는 일까지였다.
“……선생님은 참, 신기한 분이세요.”
“그렇습니까?”
“네. 참 좋은 사람…… 같은 사람 같지가 않아요.”
“같은 사람이 맞습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한때 멸종위기종이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되고 있지요. 유전적 차이가 커봐야 0.1%에 불과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전 인류에게 위협을 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내게는 겨울 씨가 더 놀랍습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아…… 말도 안 돼.”
“돼요. 그러니, 믿어주세요. 당신이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것을.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겨울 씨에게도 상처가 많겠지요. 그 아픔들을 이제는 놓아주시길 바랍니다.”
“아픔들을……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어요?”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언니 옆에 있어요. 그러면서 지켜봐요. 밉고도 사랑스러운 이가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러면서, 배우면 되는 거예요?”
“아닙니다. 옆에 있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예요.”
이겨울은 끝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리라.
그 모진 풍파에도 놓지 않은 사랑이, 그 사소한 감정이, 스스로 마음의 색깔을 바꾸는 기적을.
사람은 그런 종이다.
홀로 있으면 터무니없이 약하고, 지나친 수가 모이면 서로를 학대하고 살해하지만, 사랑 속에서는 다르다.
우리는 따스한 관계 속에서 정신적으로 진화한다.
때로는 생물학적 진화보다도 더 현격하게.
그러니 이제 자매에게서는 마음을 놓아도 되리라.
일주일 동안이나 헤어졌던 가족과 재회해야 하니.
잔뜩 굶주린 내 사랑을 충전할 시간이다.
“아빠 아빠! 나 왔어! 뭐 해? 빨리 가자.”
“왜 그렇게 급하니? 수아네 집들이는 아직 멀었어.”
“아니이, 집에 가야지! 행복이 빨리 봐야 돼.”
……나보다 고양이를 더 보고 싶어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런 딸이 더없이 사랑스러워서, 한참 웃고 말았다.
*
영원교의 디프로그래밍은 내 생각보다는 거창한 일이 됐다.
우선은 한효준이 팔을 붙들고 나섰다.
“자네, 제정신인가? 혼자 그 소굴에 가겠다고?”
“논리적으로 위협 요소는 없어서-”
“논리는 무슨! 시끄럽고, 기다리게. 내 전화 한 통 넣지. 날짜를 보면 적어도…… 100명쯤은 올 수 있을 게야.”
“죄송하지만, 어디에 전화하신다는 겁니까?”
“어디긴 어디야, 상담학회지. 따로 운동을 하는 치들은 아니지만, 그 정도 수가 모이면 그래도 안전할 거 아닌가.”
“아…… 그렇군요. 스스로 탈출한 것이 아닌 사이비 신도를 상담하는 과정은, 분명 상담사로서 소중한 경험이겠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던 것 같네요.”
“……허. 그래. 그렇게라도 동의한다면, 됐네.”
그 대화 직후에 생각했던 것이다.
단순히 상담과 처벌로만 끝날 일은 아니다.
개중 심하게 착취당해온 몇몇 신도들은, 신앙으로 지워왔던 박탈감을 한 번에 느끼며 현실에 좌절하게 될 터.
그것을 제도적으로 도와줄 방법도 필요할 터였다.
그렇기에 주영주에게 연락을 넣었다.
꼰미디어 이슈 속에서도 당적 제명은커녕 명성만 크게 높아져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그녀는, 흔쾌히 답했다.
[그런 거라면, 호재네요. 말씀하신 대로 교단 자체가 와해될 수만 있다면 부정 축재된 거대한 금력이 국고로 환수될 테고, 그 일부를 착취당한 이들에게 돌려주는 건 국민 정서에도 합당하죠. 하지만 그걸 일시에 분배하면 분명 다른 방향으로 문제가 생길 테니…… 후후. 이런저런 방향이 생각나는데요? 무엇보다 미디어에서도 미친 듯이 집중할 특종이고……]
뭔가 음흉한 수를 생각 중인 모양.
다음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은 미안해졌다.
“성영준 대통령도 시간을 낼 예정입니다.”
[……대통령이 거길 왜요?]
“국민의 일꾼으로서 직접 와야 할 자리라고 하더군요.”
[아, 젠장. 그럼 더더욱 빠지면 안 되지. 이 시기에 이슈 선점당하면 다음 대선이 나가리니까요. 좀, 선심 쓸 거면 제대로 쓰면 안 돼요? 나한테만 연락해도 될 걸 꼭…….]
사실은 선심 제대로 쓸 생각이었는데.
가볍게 운만 띄운 말에 성영준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할 줄은 몰라서, 순간적으로 알겠습니다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여야의 거대 정치인들이 동참해준다면 일은 잘 풀릴 수밖에 없을 터.
미디어의 높은 주목도 역시 잘만 이끈다면 영원교도의 사회 복귀에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그러는 동안 이가을 역시 준비작업에 매진했다.
이미 성녀의 추종자가 된 제사장을 이용해 교단의 간부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2주 뒤에 3천여 명이 평택의 성전에 모일 예정.
그때 나와 상담학회 베테랑들이 그들을 하나하나 상담해 디프로그래밍을 완수할 예정이다.
그러는 동안 검찰은 교단의 압수수색에 돌입한다.
파렴치한 범죄와 착취를 벌인 사기꾼들은 물론이고, 정재계에서 그들의 뒷돈을 받은 이들까지 일망타진할 계획.
내부자인 이가을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실현 불가능한 전쟁이었다.
그 끝에 어떤 엔딩이 기다릴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사이비 종교는 인간의 약점을 파고드는 세뇌.
개중 대부분의 약점을 NBSC로 치유해줄 수 있을 것이나, 천려일실이라고 한 명이라도 놓친다면 큰 후회가 될 터였다.
준비가 철저하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연구실 인력에 학부생들까지 총동원해 긴급 프로젝트로 컬트 세뇌에 대한 토론을 연일 이어갔다.
그 성과로 전필 과목의 중간고사를 대체한다고 했기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기존 이론들의 오류를 찾아내고자 애썼다.
그날은 그런 나날 중의 하루였다.
내 생애 첫 주례의 날.
내 생애 첫 내담자가, 하늘이 높은 가을에 결혼식을 열었다.
“진짜…… 아저씨, 완전 멋있어요.”
신부 대기실의 정보람은 그렇게 말했다.
멋쩍어진 날 대신해 아내가 대답하더라.
“주례 치고 너무 젊죠? 염색이라도 해줄 걸 그랬어.”
“하핫! 아녜요, 아녜요. 요즘은 주례 없는 예식도 많은데요 뭐. 애초에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에 아저씨 모르는 분도 안 계세요. 청첩장 보내드리기도 전부터 홍보 다 했으니까.”
“어머. 끝나고 팬싸인회 되는 건 아니겠죠?”
“귀찮게 굴지 마시라고도 벌써 말씀드려놨어요. 오늘은 편하게 있다 가세요, 사모님. 아저씨도…… 진짜, 고마워요.”
더 멋쩍어져서, 그 자리에는 오래 있지 못했다.
과연 로비로 나오자 시선들이 쏟아졌다.
일찌감치 도착한 양가 친지들이 날 알아본 것.
그렇지만 정보람의 언질이 효과가 있었는지,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한순간, 뭔가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멈춰 있다.
내 아내와 딸을 포함해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오지 나만이 두리번거리며 정지한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한 명이 더 있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자아이.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인왕킹 학생……?”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꼰마님. 미쳐 미쳐.”
내 초대석 게스트였으며, 한때 유행했던 꼰마 키드 중 하나.
딸과 같은 나이의 중학교 1학년생이 그곳에 있다.
철없는 목소리로 자기 유행어를 내뱉으며.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현실이었다.
“네가- 아니, 당신이, 신입니까?”
“네. 닉네임부터 그렇게 정했잖아요? 말씀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니, 인간의 왕이로다. 인왕킹입니다.”
“……그런 뜻이었군요. 그런데, 여긴 왜……?”
“겨울이 따라왔죠. 아, 겨울 누나요.”
“예?”
“예가 아니라, 만나고 싶어하셨잖아요? 김민준.”
김민준.
이가을이 구출해낸 중학교 1학년생의 이름이다.
동시에,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떠나보냈던 불행한 조각가 지망생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 이름 밝힘 앞에서 나는 아연해졌다.
대체 이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겨울 씨의 피보호자인 김민준이, 인왕킹입니까?”
“그저 왕이라고 불러주시면 될 것 같아요.”
“……왕이, 초대석은 왜 신청하셨습니까?”
“왜는요. 사도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리 없잖아요? 호기심 해결차 참여해봤죠. 사실 그건 중요치 않은 문제예요. 어차피 잊힐 이야기니까. 이렇게 바로 알아보시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한 일인 거죠. 왜인지는, 아시죠?”
눈앞의 아이를 살펴본다.
평범한 소년의 얼굴.
어떤 특색도 찾아보기 힘들어, 초대석까지 진행한 내담자임에도 특별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그렇기에 겉핥기 상담만을 진행하고 돌려보냈다.
그날이 하필 김서현의 집에 방문할 날이었기에.
이후 그 사실을 자책해서, 김지연에게 눈앞의 내담자가 아닌 다른 곳에 신경 팔고 있었음을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바로 1주일 전에 진행했던 도세나의 초대석은 어떠했던가.
대면 상담 경험이 일천한 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격동되었고, 아주 작은 문제조차 해소해주고자 안달을 냈었다.
그랬는데 겨우 7일 만에 그토록 나태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본래 그런 사람이 못 된다.
고작 중1이라 해도, 무릇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무거운 아픔을 품고 있는 법.
그날 인왕킹의 고민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했던 것은……
내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제 ‘진단’이 억제됐군요. 타의에 의한 인지 왜곡……. 그러니, 신은 실재한다.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할 뿐.”
“노파가 한 말이네요? 맥락이 좀 다르긴 한데, 비슷해요. 저는 관찰되지 않아요. 어떤 사람도 이 존재에는 집중하지 않죠. 그런 제가 옷까지 갈아입고 예상외의 장소에 나타났는데, 곧바로 알아보신 거예요. 참 이상한 사람이야.”
“이상한 겁니까?”
“네. 박대민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과학적 어휘로 표현하자면, 돌연변이. 문학적으로는 히어로. 수치상으로는…… 777분의 1에 해당하며, 77억 7777만 7777명 중의 단 하나예요.”
“……숫자가 묘하군요.”
“묘할 건 없죠. 그 숫자가 된 날, 777명이 선택됐으니까.”
격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5월쯤에 세계 인구가 77억 8천만을 돌파했다고 들었다.
그것이야 추산이 크게 적용된 수치라고 하지만, 내가 NBSC를 얻게 된 4월 초라면, 7이 반복되는 그 숫자가 유의미했을 법도 했다.
그리고 7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수.
이겨울과의 성경공부는, 비록 보여주기식이었지만, 적어도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히 알려줬다.
창세는 6일의 역사와 1일의 안식으로 이뤄진다.
노아의 방주는 승선과 하선에 7일의 여지를 두었으며,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번 용서하면 되냐는 베드로에게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일렀다.
요한묵시록에는 장마다 7이 나올 정도.
기독교에서 7이란 완성의 숫자라고들 했다.
그리고 이가을의 에픽퀘스트는……
일곱 번째였다.
그것의 완수 이후로, 더는 퀘스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하나의 보상을 거부했다.
신을 만날 권리를.
“제가…… 혹시 실수로 보상을 수락했던 겁니까?”
“아뇨. 오늘은 어디까지나 김민준으로서 참석한 거예요. 그래도 이야기에 종지부는 찍어야죠. 제게도 입장이 있으니까.”
“입장……. 777명이라고 하신 건, NBSC 얘기입니까?”
“네. 이름은 각자 달랐지만요. 개중에는 젊은 후보자도 적지 않았으니까.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 777명 중에 몇이나 에픽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방금 하신 말씀까지 고려해보면, 일곱 번째 퀘스트를 완수한 것은 제가 최초인 모양이군요. 하지만 정규분포로 생각해보면 적어도 백 명 이상은 에픽퀘스트에 진입했겠지요.”
“평균을 어디에 잡은 거예요? 직관적 추론 능력은 영 별로네. 전혀 아니에요. 모두 다 깨라고 만들어놓은 튜토리얼 빼고는, 반복퀘스트조차 달성한 사람이 드물었어요.”
그것은 정말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야, 에픽퀘스트는 분명 어려운 미션들이었다.
인방으로 exp를 잔뜩 번 내게도 퍽 까다로웠으니.
하지만 반복퀘스트 쪽은 다르다.
경청하고, 상담하고, 행복하게 만들면 되는 것들뿐이었다.
“퀘스트의 내용이 사람마다 달랐던 겁니까?”
“설마요. 다 똑같아요. 이러니 추론을 못 한다고 말할 수밖에.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말이 쉬워서 행복이지, 어지간해선 달성되지 않아요. 조건이 많거든요. 상담 내용이 현실에 잘 적용되는가. 내담자의 인지도식을 꿰뚫었는가. 그 과정에서 상담자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주고 있다고 내담자가 느낄 수 있었는가……. 그걸 전부 고려해서 평점을 매기죠.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단순히 상담사란 직책을 갖고 내담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달성되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상담자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해야 해요. 그리고……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이게 걸작이죠.”
“그건, 그저 듣거나 보면 되는 퀘스트가 아닙니까?”
“전혀요. 상담사의 퀘스트예요. 그냥 듣기만 한다고 오를 리가 있나요? 모든 잡념을 버리고 상대의 회복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 없이는, 단 1도 올리기 어려워요. 수치 좋아하는 사람이니 통계적으로 말해드리죠. 세 반복퀘스트를 도합 열 단계 이상 완수한 사람은, 777인 중 일곱 명뿐입니다.”
……난이도 조절 개나 줘버린 망겜이었나.
해외토픽을 검색해봐도 초인적인 상담사 얘기는 나오지 않아서, 오직 나만이 얻게 된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777개나 뿌려졌음에도 공략이 전부 실패했을 뿐이었다.
“대체 왜입니까? 제게는 어렵지 않았는데요?”
“수치로 말하면 좀 어색하지만, 박대민은 처음부터 ‘관계’가 극단적으로 높았죠. 아, ‘관계’의 의미는 알고 있죠?”
“……상대와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겠지요.”
“더 정확하게는, 나를 버리는 힘. 순수하게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고작 채팅 나부랭이를 보면서 경청 퀘스트를 달성하고, 자기소개만으로 내담자 퀘스트를 달성하고, 풋내기 상담으로 행복 퀘스트를 달성한 것이, 그 마음의 힘이었죠.”
“제 생각보다 표준편차가 작았던 모양이군요.”
“그렇죠. 박대민은 15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5니까. 82면 천 년에 한 번쯤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에요. 그렇다곤 해도 누구에게나 확률은 있었어요. 튜토리얼에서 ‘관계’를 30 올렸다면. 그러길 바라며 그 능력을 맨 앞에 뒀죠. 그렇지만 776명이 ‘외모’에만 30을 투자했어요. 사람이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생물이니까. 느끼셨겠지만, 외모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절대적인 권능이에요. 6시그마에 해당하는 30의 변화라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해주죠. 이전까지 이타적으로 인간을 긍정하며 살던 이들조차 정반대로 변했어요. ‘외모’의 향상 이후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쏟아지는 호의를 바라보며, 인간을 경멸하게 된 거죠.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차이니까요. 그간 나는 2등인간이었구나…… 그렇게 느끼면 배신감이 들 법도 하죠. 그러라고 준 ‘성장’이 아니었는데.”
6시그마라면, 정규분포에서 하위 2.1%가 상위 0.1%로 이동할 수도 있는 거대한 차이.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대도 당연하다.
기존의 내 삶은 무엇이었나, 그런 회의감도 들었겠지.
이후 퇴폐적인 즐거움에만 탐닉하게 됐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내 경우에는, 경우가 다르다.
드높은 ‘관계’ 때문에 사회 속에서 박탈감을 느낀 적이 드물었으니.
대표이사의 질투로 실직하게 된 것이 최초의 박탈감이었다고 하면, 분명 터무니없는 행운의 삶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시점은 아니지.
인왕킹-김민준-신을 바라본다.
굳이 만나볼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만난 이상, 나는 그에게서 해답을 구해야만 했다.
“그러면, 왜였습니까? 왜, 그 ‘성장’의 힘을 내려준 겁니까?”
사실은 그 외에도 묻고 싶은 것은 많다.
왜 인간은 선하고도 악한가.
우리는 대체 언제쯤 다름을 인정하며 살 수 있나.
나는, 정말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내 연약한 마음의 투사.
후진 없는 상담사에게 더는 중요치 않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그저 오아시스를 찾아 걸어갈 테니.
그렇게 간추리고 간추린 하나의 질문.
신은 무심한 눈으로 대꾸했다.
“심판 전의 유흥이었어요.”
나는, 그 말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