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71장 - 신을 만난 상담사 (1)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사소한 경우라면 그것이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반면 실수가 거대할 경우, 향상심보다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심리가 강해져, 반사회적인 종착역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한 근원의 기억을 트라우마라 일컫는다.
일견 인간에게 해만 될 것 같은 현상.
잊고 살면 좋을 텐데, 왜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일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그 기작을 이해할 수 있다.
심리란 결국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것.
<이기적 유전자> 등을 통해 소개된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생물의 유전자는 자기복제와 번성을 위해 모든 생동을 결정하며, 육신은 거기에 활용되는 로봇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놈의 의도도 알 만한 노릇이다.
큰 실수를 저지른 개체는 ‘인류 게임’에서 트롤에 해당한다.
그 유전자는 유전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기에 과거를 되새기는 심리가 본능 수준에서 장려되고, 그 결과 스스로가 하등해 보일 경우 신경증이나 인격장애가 발현돼, 사회에서 유리되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전자는 원스트라이크로 아웃을 부른다.
수백만 년을 바라보면 그쪽이 타당할 수도 있으리라.
과거를 긍정하고 내면의 안정을 찾으라 권하는 우리 상담사들은, 오랜 진화를 부정하는 반군일지도 모른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것이다」라 했듯이.
상담사는 신에게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세계의 영락(榮樂)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신.
오직 자기 명령에 따르기만을 바라는 신.
그렇다면, 그 존재는 이 끔찍하도록 이기적인 종의 유전자와 무엇이 다른가.
유전자야말로 신이 남긴 계명이 아닌가.
그자야말로 우리의 원수가 아니겠는가.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손바울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답했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나는 신이 아니라니까.”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 충직한 유전자의 노예들이죠. 왜 싫은지도 모른 채로 혐오합니다. 왜 좋은지도 모르고 열광합니다. 그 본능을 남들에게 설명하고자 이런저런 궤변으로 유창한 합리화까지 합니다. 저도 그랬죠. 할머니는…… 그냥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만든 존재였으니까요. 본능적으로 싫었습니다. 선생님 역시 그렇게 생각해주시길 바랐죠.”
“음. 그건, 미안하다. 네게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압니다. 알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선생님께서 제 편을 들어 할머니를 같이 미워해주셨다면, 기분은 좀 좋았을 것 같긴 한데, 지금처럼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겁니다. 정답은 아닌 거죠. 저는 미움을 합리화하기 위해 악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선생님처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어요. 그냥…… 선생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 신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 남편입니다.”
“……꼬맹아. 어른들 얘기하면 좀 빠져 있어.”
“싫은데요? 바울이 왜 혼자 어른인 척해요? 별로야.”
언제나처럼 반복되는 제자들의 만담을 들으며.
나는 가만히 나의 구원을 떠올렸다.
[오래된 구원]은 기묘한 기술이었다.
다른 고가의 기술들이 그랬듯이, 도저히 상담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초능력.
그렇지만 상담사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신비.
그것은, 초혼(招魂)이었다.
「 기술 [오래된 구원]
내담자가 놓치고 만 최초이자 최후의 실수를 현현합니다. 한 명의 내담자에 단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내 경우에는 김 이병이 그 실수였다.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 개인의 안위를 위해 그의 고통을 외면했고, 결국은 그 시신을 마주해 스스로를 저주하게 되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사회적일 수 있으랴.
나는 그저 책임감으로 멀쩡한 사람을 연기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돌변해 타인을 공격하곤 했다.
그런 나를 멈춰세운 것이 진주희였다.
아내의 한없는 인정이 나를 호구로 머물게 해줬다.
나중에는 그녀도 지쳐서 한숨을 내쉬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그 안에 애정이 있었기에 나는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진주희야말로 내 진통제였다.
그렇지만 그조차도 충분치 않았다.
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밤마다 악몽 속에서 김 이병에게 사죄해야 했다.
그가 살아있지 않는 까닭에.
그와 다시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게 된 날……
내 죄는 무한한 속죄의 지옥이 되었다.
용서도 심판도 피해자의 것.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봐야 피해자가 눈물 흘리면 무의미하며, 남들이 아무리 말종이라 욕해봐야 피해자가 웃음 지으면 무의미하다.
오직 피해자의 마음만이 유전자를 이길 수 있다.
그렇기에 죽음이 거대한 마침표인 것이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닫아버리는.
살인이 무서운 악행인 것은 그래서다.
그것은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가장 잔인한 벌.
양쪽 모두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살인자가 떵떵거리고 잘 사는 더러운 꼴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천벌을 받았다.
첫 범행의 직후에.
용서받지 못한 채라면, 유전자가 그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렇기에 살인자의 여생은 도구에 불과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가짜 행복을 추구할 뿐.
남들이 부러워할 어떤 영화도 그에게는 무의미해진다.
그렇기에 죽음이란 관계의 종언을 뜻할진대……
[오래된 구원]은, 마치 무당처럼, 사자를 불러냈다.
현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명징하게.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초월한 기술이었다.
김민준은 그 순간 분명 내 앞에 실존했다.
내 구원이자 심판이었다.
내가 평생 바라왔던 하나뿐인 순간.
마침내 김 이병을 다시 만나 내 죄를 용서받자, 묶여있던 수많은 감정이 한순간에 족쇄를 풀었다.
그리고 그로써……
<거짓말의 발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흥행성적보다 훨씬 유명한 작품이다.
곳곳에서 활용되는 “아주 개새끼구만!” 짤방의 원본인 탓.
본래는 <트루먼 쇼> 같은 시츄에이션 코미디지만, 몇몇 씬을 통해서 신의 본질에 대해 논한 것이 이후 화제가 됐다.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그분은 당신이 좋은 곳에 갈지 나쁜 곳에 갈지를 결정하며, 인간의 생사 역시 관장한다.
자연재해도 관장하시나요? 네.
저희 엄마 암 걸리게 한 것도 그분인가요? 네.
내 차에 나무가 쓰러지게 한 것도? 네.
저희 아빠를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한 것도요? 네.
아주 개새끼구만!
악마예요!
비겁하게 숨어서 나쁜 짓이나 하고!
왜 우리 앞에선 못 한답니까
그 새끼가 우릴 다 죽이기 전에 해치워야 해요!
직접 본 영화는 아니지만, 그 씬이 내 마음이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NBSC라는 초능력을 통해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을 때에도,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 따위는 품어본 적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개새끼니까.
그자야말로 인간이 이 시궁창을 구르게 만든 원흉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지.
나는 왜 신을 원망했던 걸까
왜 내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힌 인간은 원망하지 않은 걸까
“……벌써 다 이긴 표정이네요?”
이가을은 그렇게 물었다.
아마도 투사(projection)이라는 기작일 것이다.
그저 그녀가 이길 자신이 없는 탓에 떠올린 마음이리라.
지금 내 표정은, 이기고 지는 것과는 무관하니.
물론 내 일행이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깝치지 말죠? 선생님 앞에서 감히 빈정대는-”
“바울아. 괜찮아. 지원이 데리고 차에 가 있으렴.”
“선생님. 보디가드는 VIP를 떠나지 않습니다.”
“보디가드까지 할 생각이니? 정말 괜찮으니 가 있어.”
“흠…….”
“그럼요, 여친은요? 여친도 가 있어요?”
“……여친은 아니지만, 착한 지원이도 차에서 기다리렴.”
“네에! 가요, 바울아. 아저씨 말씀 들어야지요?”
입술을 잔뜩 삐죽거린 제자가 차로 돌아간 뒤.
나는 카페 창가에 이가을과 단둘이 남았다.
그녀는 별꼴을 다 본다는 양 콧방귀를 뀌는 중이었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참나.”
“……가을 씨. 가을 씨는 신을 원망합니까?”
“당연하죠. 죽여버릴 거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가을 씨는, 인간도 원망하지요?”
“원망? 헛소리 마요. 경멸하는 거예요. 쓰레기 돼지 새끼들.”
……그렇게 말하면 확연히 다른 느낌이긴 한데.
신과 인간을 동시에 부정하는 이가을과, 신을 원망할 뿐 인간을 도저히 미워하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고민을 잠시 접어둔 채 사거리를 내려다본다.
진주희와 이겨울.
두 사람이 내기의 마지막 날을 맞아 마주해 있다.
그 대화가 도청기를 통해서 우리 귀에 전해졌다.
[가을 씨?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아, 저…….]
[아. 혹시, 쌍둥이예요?]
[……이겨울이에요. 어떻게 바로 아셨어요?]
[글쎄…… 원래 사람을 잘 보는 편이에요. 특별한 사람하고 오랫동안 살 부대끼며 살아서.]
[특별한 사람이요?]
[네. 세상에서 제일 자기 같은 사람. 아무리 다른 표정을 지어도 딱 보면 그 사람이죠. 그래서 연습이 좀 된 걸까?]
이가을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민망해서 씩 웃어주자, 다시 콧방귀를 뀌더라.
“미리 얘기하는데, 무승부면 내가 이긴 거예요.”
“무승부가 나오리라 생각하는군요. 둘 다 성공했다고 보는 겁니까, 아니면 둘 다 실패했다고 보는 겁니까?”
“……후자요. 댁이 뭔 짓을 했건 겨울이는 안 변해.”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동생은 이미 세뇌에서 벗어나 있었다.
김민준이라는 중1 학생으로 인해서.
“다른 얘긴데, 민준이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입니까?”
“걔 얘긴 하기 싫다고 했죠?”
“인간은 모두 돼지라고 했었는데, 그 아이도 포함입니까?”
“……아니에요.”
“그렇군요. 아니군요.”
“……그렇게 보지 마. 눈깔 뽑아버리기 전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리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가을의 트라우마는 세 가지.
부모의 입회하에 이뤄진 강간과, 그 부모에 대한 살인과, 유전자가 같은 아이를 손수 지옥에 빠뜨린 가스라이팅이다.
그 모두가 하나의 자기세뇌로 합리화됐다.
인간은 존재해선 안 되는 쓰레기들이라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없다.
강간의 주체인 제사장이 죽음으로 사죄하더라도, 쌍둥이 동생이 진심으로 그녀를 용서하더라도, 하나가 남는다.
양친만큼은 영원토록 가슴에 살 수밖에 없다.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이들이기에.
NBSC의 다른 모든 기술을 활용해도……
이가을은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러니 잔인하기만 한 퀘스트는 아니었던 거지.
부모를 망친 교단을 마침내 깨부순다고 할지라도, 드디어 복수를 마쳤다며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미래 따위 없다.
그녀는 차라리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위험요소를 내버려둔 채 교단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언니를 염려하는 동생이 있다.
나를 세상 누구보다 염려하는 여인의 앞에.
[영원교…… 맞죠? 가을 씨한테서 얼핏 들었는데.]
[아, 네…… 맞아요. 근데, 그게…… 오지 마세요.]
[오지 말라는 건, 어떤 의미죠?]
[……좋지 않아요. 좋은 종교가 아니에요. 저흰…… 나빠요.]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해요? 그건 됐어요. 원래 종교엔 관심 없으니까. 그리고 겨울 씨, 내 남편 만난 적 있죠?]
[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그럴 것 같았어. 가을 씨가 뜬금없이 찾아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이 양반이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혹시…… 아니다.]
[혹시, 뭐요? 뭔데요? 말씀해주셔도 돼요.]
[우리 남편이랑…… 영원교를 폭로할 셈이에요?]
[아, 아뇨! 아니에요. 절대 안 돼요. 그건…… 설마요.]
[설마 했던 일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라 그래. 걱정이네 참. 친정 가 있으라고 한 게 그래서였으면, 진짜 혼내줄 거야. 아무튼…… 다행이네요. 가을 씨한테 이런 동생이 있어서.]
[아, 아니에요. 그냥, 전…… 언니가 불쌍해서…….]
리시버를 귀에서 뗀다.
그 직후에 이가을이 리시버를 집어던졌다.
경악과 분노를 담아, 나를 노려보면서.
“겨울이한테, 겨울이한테 뭔 짓 했어!”
“……뭔 짓을 한 건 가을 씨 쪽이겠지요?”
“일주일인데! 고작 7일인데, 어떻게 저렇게 돼!”
“그게 아닙니다. 1년이에요. 겨울 씨는 1년 전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나도 놀랐지요. 자매가 그렇게 용호상박으로 연기력이 출중할 줄이야. 겨울 씨는, 언니를 걱정했어요. 자기가 디프로그래밍됐음을 알고 나면, 하나뿐인 동생한테서마저 도망쳐서 혼자 지내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밝히지 않았던 겁니다. 끔찍한 아바타 생활을,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거짓말하지 마! 내가 자기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았을 텐데! 그걸, 어떻게 그걸, 그렇게 해!”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자매잖아요. 쌍둥이잖아요.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더 명확하지 않겠어요? 애초에 말입니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떠올려봐요. 동생한테 밥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한 건, 가을 씨잖아요?”
11년 전 그날, 이가을은 말했다.
돼지같이 살찐 게 저녁밥까지 많이 처먹으려고 하냐고.
그 말로 인해 우울감이 커진 동생은 밥을 몇 술 뜨지 못했고, 덕분에 생존자로 남을 수 있었다.
정작 이가을은 자기세뇌로 그 기억까지 잊어버렸지만.
그 발언은 마지막 양심 같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질투하고 미워하면서도, 동생을 참 좋아하던 아이였다.
미운 가족을 결코 미워하지 못하는 호구였다.
그러니 실수였던 것이다.
이가을은 일가족의 비극을 만든 원인이 아니다.
존속살해라는 결과를 만든 것은, 외부와의 갈등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그녀에게 반사회적 행동을 추동한, 신 쪽이다.
신이 그녀를 살인마로 만들었다.
뒤틀린 채 살아가야 할, 용서받지 못한 자로 만들었다.
그러니 내가 사죄할 일이지.
뒤늦게나마 NBSC의 신에게 선택받은 상담사로서……
나는 이 아이에게도 속죄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죽음보다 못한 지옥 속일지라도,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가을 씨. 양친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씨발…… 왜…… 왜……”
“진정하고, 집중해요. 아주 짧을 테니까. 내 경우엔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참 후회가 돼요. 한 번밖에 해줄 수 없는 속죄입니다. 그러니 집중하고, 마주해요.”
“뭔, 개소리야? 또 뭘…… 뭘 하려고?”
[오래된 구원]을 사용한다.
그리고 가만히 이가을의 얼굴을 바라봤다.
경악으로, 공포로, 애환으로 물들다가, 마침내 흘러나와 두 볼을 물들이는 눈물까지.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 과정이 인지되지 않았다.
오직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기술인 모양.
[완전한 공감]을 병행한다면야 대충은 알 수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고, 그저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가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연신 눈물을 닦으며 옆자리를 바라볼 뿐.
그렇게 30초쯤이 지나서야, 무너지듯 엎드렸다.
“……왜 그랬어. 우리 엄마아빠한테 왜…… 그랬어요.”
“……오해하는 것도 이해합니다만, 나는 신이 아닙니다.”
“아니면, 뭔데요? 그…… 무당? 그런 거예요?”
“그냥 상담사라니까요. 다만, 내가 사랑하는 제자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아마 어느 신의 사도인 것 같기는 합니다.”
“……같기는 한 게 뭐야. 웃겨. 그럼…… 물어봐주면 안 돼요? 왜…… 왜 그랬냐고요. 왜 그렇게…… 그랬어야 됐냐고요. 왜 우리는 불행해져야 됐고…… 왜 이렇게 엉망이어야 되고…… 왜, 독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걸 먹었어야 했냐고요.”
……그럴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독극물 구매 과정에 동행했던 이가을의 단짝친구는, 그것을 친구 어머니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자살 용도라고 추측했을 테니.
하지만 그것은 그 부모를 죽일 독이었고……
그들은 알면서도 삶의 끝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가을은 그 마음을 신에게 묻고 싶은 듯했다.
“미안한데, 나도 그 작자하곤 안 친해요. 그러니 상담사로서 답하겠습니다. 양가감정이에요. 인간은 결코 순수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선도 순수한 악도 없지요. 그러니 모든 행동은 내면의 복잡한 갈등에서 새어나온 편린에 불과합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해서 어떻게 몰랐겠어요. 자기 딸인데. 자기 아이인데. 어떻게 그 고통을 느끼지 못했겠어요. 그저…… 모른 척하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죽고 싶었겠지요. 그게 인간입니다. 어때요? 두 사람은, 가을 씨를 용서했나요?”
“……네.”
“그랬군요. 그럼 가을 씨도 용서해줘요. 그리고…… 그리고, 동생을 만나요. 만나서 말해줘요.”
“뭘……요. 뭘 말해요. 내가, 쟤를 어떻게 봐요.”
“말 안 했나? 이건 한 번밖에 못 쓰는 기술입니다. 혹시라도 동생이 잘못되면, 그때는 정말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거예요. 실수는 거기까지만 해요. 돌이킬 수 있을 때까지만.”
이가을은 오래 고민했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눈물을 닦는 손만큼은 재빨랐다.
조금이라도 더 언니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지.
그리고 나는……
NBSC의 메시지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 에픽퀘스트 7 “이가을을 죽여봐요” 완료!
‘상담사’님께 가장 적합한 보상을 분석할게요……
신을 만날 권리를 지급해드렸어요.
준비되셨나요? 」
그것을 꽤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황금빛 글귀 쪽이 아니라, 카페 층계를 향해서.
“주희야!”
신을 만날 권리 따위, 알 게 뭔가.
내게는 나만의 여신이 있는데.
언제고 만난다면 죽도록 패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신을 용서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인간만큼은 아름다울 테니까.
이제 신을 만날 필요는 없어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