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97화 (197/200)

# 197

70장 - 구원받는 상담사 (3)

김민준 이병은 쌍둥이였다.

다른 소대의 나로서는 잘 모르고 있던 사실.

첫 번째 면회로 가족들이 찾아온 날에야, 김 이병과 완전히 같은 얼굴로 껄렁껄렁 걷는 동생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저거 저거, 얼굴은 똑같은데 훨씬 똑부러진 것 같네. ET랑 엄청 비교되잖아, 그치? 야,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함께 위병소에 섰던 사수 권기훈 상병의 질문.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장남과 차남이라는 가정 내의 위치가 만든 차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아들러라도 된 것마냥 가족구도의 출생순위가 어떻게 성격의 차이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떠들더라.

나야 그저 시큰둥했다.

기껏해야 몇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장남인지 차남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랴 싶었다.

그보다는, 사람을 부품처럼 함부로 대하는 부대의 환경이야말로 김 이병을 관심병사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은 맹목적인 발상.

동생 쪽이었다면 같은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대에 잘 적응했을지도 모른다.

쌍둥이 중 형과 동생이라는 사소한 구분조차도, 성장 과정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김 이병은 결코 그렇게 가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었다.

조금 더 부드러운 환경이었다면, 조금 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분위기였다면, 그는 삶을 놓지 않아도 됐으리라.

그 누구보다도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까지 멀리 보지는 못했다.

동생 앞에서 은근히 무게를 잡는 김 이병을 보며, 저렇게 괜찮은 녀석이 왜 옆 소대에서 까이는 걸까 생각했을 뿐.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권기훈 상병에게 부사수가 왜 나대냐고 욕을 먹을지라도, 김 이병이 결코 나쁘지 않은 군인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복귀자의 어깨를 토닥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 가족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시신의 최초발견자임에도, 나는 병사라는 신분 탓에 유족과 얼굴 한 번 마주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발견자라는 보고조차 올라가지 않았으리라.

이후 징계위원회에서도 날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모르는 사이로 살아온 이를 만나고자 이동하는 길.

운전대를 잡은 손바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투덜댔다.

“참 답답한 인간입니다. 선생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달려와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감히 자기 작업장으로 초청을 하다니요.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네요.”

“……그게 아니라, 지금은 너무 바쁘니 다음에 만나자고 말했던 거잖니. 내가 굳이 오늘 찾아가겠다고 한 거고.”

“좋게 해석하면 그렇죠.”

“어떻게 해석해도 그래.”

“흠. 아무튼 왜 굳이 보러 가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바쁘신 날인데 말입니다. 뻔뻔한 fall을 족치실 날이잖습니까?”

“족치는 게 아니라 내기의 마지막 날이지. 그리고 바로 그래서다. 지금 만나지 않으면 내가 바빠져. 앞으로는 이가을의 상담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할 테니까. 그 전에 만나고 싶은 거야. 그 사람은…… 내가 지키지 못한 가족을 오랫동안 그리며 살아왔을 거다. 그 마음은 나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어. 그러니 만나봐야 한다. 만나서, 느껴야만 해. 그래야 사람으로서 다음 걸음을 걸어갈 수 있어.”

“……하여튼 선생님다우십니다.”

선생님답다라.

자주 듣는 말이지만, 그 발화자가 손바울이어서 신선했다.

언제나 ‘저는 이해 안 됩니다’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

남들이 뭐라 말하건 자기 기준에서 나를 높이려 했던 청년이, 이제는 관점의 차이를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지난 4개월의 동행이 그 변화를 만들었다.

손바울은 이미 내게 물들어 있었다.

이것도 세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도를 갖고 변화시켰으니 가스라이팅에 해당하겠지.

종착역이 내가 신이 아님을 깨닫는 방향일 뿐, 방식 자체는 사이비 종교의 전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사실은 모든 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관계함으로써 상대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나 또한 변화한다.

어느새 서로 닮아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신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는, 그 사람 만나보고 싶었어요?”

“만나보고 싶었다면…… 더 일찍 찾아보지 않았을까?”

“근데, 그래도 안 할 수도 있어요. 양가감정이에요.”

“똑똑하구나. 그래, 맞아. 만나고 싶기도 했고 만나기 싫기도 했어. 복잡한 마음이었지.”

“그래도 지금 만나러 가고 있어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예요. 그죠?”

“그래. 그 마음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응.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에요.”

“이제 알았냐? 선생님은 그런 분이시다.”

나를 객관화하는 제자들의 목소리.

그런 대화 속에 고양시에 접어들었다.

한강변 덕운동의 야산자락에 김민원의 작업실이 있다.

“어…… 에고. 빨리 오셨네요.”

김민원은 순박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쇠와 나무를 다뤄온 투박한 손.

그것을 맞잡으며, 나는 20여 년의 세월을 순간에 느꼈다.

“하하. 표정이 복잡하신데요?”

“……아, 죄송합니다. 좀…… 그렇네요.”

“그렇죠? 형이 살아 있었다면, 이 얼굴이었을 거예요. 복장도 비슷했을 거고요. 사실은…… 저보다 형이 훨씬 더 잘했죠. 조각이 가업입니다. 원래는 형이 물려받을 예정이었고요. 그래도 뭐,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한테도 욕은 안 먹을 정도가 됐으니까요. 형도 인정해주겠죠?”

원래 말이 많은 스타일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말을 하고 싶은 모양.

김민원은 작업실을 안내하며 수다쟁이처럼 떠들었다.

“조각이라는 게…… 스케일이 클 때는 여러 명이 같이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서 하는 작업이에요. 하면 할수록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죠.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형이 원래부터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냥 어려서부터 도제식으로 이런 교육을 받다보니까…… 대학에서도 친구는 많이 못 사귀었던 것 같더라고요. 장례식장에 와준 동기가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요.”

“1학기 마치고 입대하지 않았더라면, 달랐을 겁니다.”

“그랬을지도 모르죠. 아니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저는 그런 형이 좀…… 답답했습니다. 왜 저러고 사나 했죠. 그때는 가업이라는 그 말의 의미가 막연했거든요. 이제는 압니다. 왜 형이 그렇게 열심이었던 건지. 지금은 제가 그렇거든요. 오다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마을 초입에 고철 처리장이 있습니다. 요새 매일같이 거길 가요. 가서 이것저것 재료 될 만한 걸 가져온단 말이죠. 그러면 노인장이 그런 말들을 합니다. 좀 그만 좀 와라, 이놈아. 너 올 때마다 민준이가 왔나 싶어서 놀란다. 그놈도 딱 그렇게 동그란 눈으로 쇳더미 뒤지고는 했는데. 하여튼, 부전자전이라니까.”

김민준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부친의 뒤를 잇고자 어린 시절부터 전전해온 작업실은, 그보다 스물두 해를 더 산 동생의 것.

김민원은 형이 겪지 못한 세월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 그와의 만남은 세월만큼 길지 못했다.

스스로 말했던 대로 다음 전시를 위해 바쁘게 작업 중이던 예술가를, 나는 오랫동안 잡아둘 수 없었다.

전할 수 있는 것은 짧은 사과뿐이었다.

“민원 씨…… 미안합니다. 사실은 늘 생각해왔습니다. 찾아뵈어야 한다고. 민준 씨가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 죄를, 직접 만나 뵙고 사죄해야 한다고요.”

“하하. 괜한 생각을 하셨네요. 선생님이 뭐 잘못하신 게 있다고. 아버지 어머니야…… 살아계실 적에 와주셨다면 참 반가워하셨겠지만, 전 그런 식으로 생각 안 합니다. 지금도 괜히 오신 것 같아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묘소 위치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유. 안 알려드립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고 제가 안내를 해드려야 하는데, 지금 정말 시간이 없거든요. 저 본 걸로 만족하십쇼, 선생님.”

그는 우리가 다시 차에 오른 뒤에 창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오래된 비밀을 고백하듯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해주신 거요. 아버지 어머니도 충분히 마음 풀리셨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그리고 당연히, 형도 그럴 겁니다. 제가 알아요. 보세요. 똑같이 생겼잖아요? 그러니까 그 인간이나 저나 생각하는 건 비슷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아 물론, 이제는 닮았다는 느낌도 잘 안 드시겠지만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나름 멋쟁이였던 제가 이렇게 중늙은이가 돼버린 걸 보면요. 하하하.”

그렇지만, 형의 뜻을 대신해 이뤄가는 동생에게서……

나는 마흔셋이 된 김민준을 보았다.

그가 경험해야 했을 삶의 궤적을 느꼈다.

생과 사의 길은 이미 갈렸지만……

김민준은 여전히 우리 사이에 살아있다.

그 실감 속에서, 나는 아주 묘한 기분을 느꼈다.

“……바울아. 조모께서 김포에 계시다고 했지?”

“예? 예.”

“가까이 온 김에 잠깐 들러보자.”

“흠. 드디어 그 노망난 할망구를 심판할 날이군요.”

“말했잖니. 나는 심판 같은 거 안 한다.”

정확하게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줄을 모른다.

나는 나조차 심판하지 못한 사람.

그저 사람으로서 제자의 유일한 혈육을 만날 따름이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에 ‘김포 무당’만 검색해도 최상단에 나올 정도로 널리 알려진 커다란 신당에서……

나는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노인을 마주했다.

“이런, 이런. 아침부터 살이 끼었구나.”

말의 내용과 눈빛이 전혀 다르다.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손바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반갑습니다, 어르신. 바울이의 스승 되는 박대민입니다.”

“바울이 친구 지원이에요!”

“알 바 아니고, 썩 물러들 가게.”

“진작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죄송은 무슨. 할 말 없으니 돌아가.”

“어이, 할멈! 함부로 말하지 마.”

정작 자신이 함부로 말하는 손바울을, 손을 들어 제지한다.

그리고 그 조모의 마음을 내 호수에 담았다.

“아마…… 아드님을 잡아먹은 아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시끄럽고, 나가란 말 안 들리나?”

“이 할망구가 감히-”

“피도 안 통한 범죄자의 씨앗이, 애지중지 키웠던 자제분을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셨겠지요. 볼 때마다 미운 마음이 솟구쳐 참을 수가 없으셨겠지요. 그래서 도저히 사랑을 주실 수 없으셨고…… 그래서 신당 한쪽에 방치하셨겠지요.”

손바울의 조모가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던 모양이지.

알지 못했던 이야기는 아니었겠지만.

무당의 신통력 때문은 아니다.

그녀가 어머니인 까닭.

머리카락부터 뚜렷하게 다른 손바울을, 일찍이 그 부친의 어머니였던 저 노인이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을 압니다. 당신은…… 무당이기 이전에 어머니였습니다. 자기 자식이 남의 일에 휩쓸려 살인자가 되고, 또 자살까지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셨겠습니까. 어떻게 그 원흉을 소중히 품어 기르실 수 있었겠습니까.”

“흠. 할멈, 그런 거였어? 알고 있었어?”

“……웬 헛소리를 하러 왔나 했더니. 썩 나가게.”

“맞는 거 같은데? 그건 좀…… 황당하네.”

손바울이야 거기까지는 고민해보지 않았겠지.

그저 잡신을 모시는 무당이라 제멋대로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몰래 부적을 팔아 밑천을 잡은 뒤로는 김포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을 터였다.

나는 반대였다.

모든 사정을 짐작했던 탓에,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 했다.

미워할 수 없었기에.

내 제자를 한없는 고통에 몰아넣었던 안쓰러운 노인을, 도저히 윽박지를 자신이 없었기에.

그렇기에 제자가 오해 속에 가족을 떠나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김민원을 만나며 내 착각을 깨달았다.

생과 사는 신의 소관임을.

인간인 나는, 짧은 생의 순간밖에 바라보지 못한다.

사람은 살아야만 작은 구원이라도 맞이할 수 있다.

상담사라면, 찰나의 삶을 조각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르신. 그러셔선 안 됐습니다.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그러셔선 안 됐습니다. 삶이 끝날 때까지 비밀을 지켜주시는 일에 그치셔선 안 됐습니다. 아무리 가슴이 미어져도, 볼 때마다 살의가 들끓는다 해도, 죄 없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셔서는 안 됐습니다. 당신은 비겁했습니다. 영혼이 있다면, 그래서 아드님께서 그 무서운 학대를 목격하셨다면, 원통해서 어떻게 눈을 감으셨겠습니까.”

대청마루 위의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원한과 애환을 담아 내려다볼 뿐.

그 앞에서, 나는 손바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살아서 저를 만날 수 있도록 돌봐주신 점이요. 그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별, 쓸데없는 소릴. 흠…… 점이나 보겠는가?”

“괜찮습니다. 신은 믿지 않아서요.”

“신은, 실재하네.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할 뿐.”

“알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다는 말씀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을 믿습니다. 그러니 믿음직하게 행동해주세요. 제 제자에게…… 더는 소외감을 안겨주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퉁명스러운 대꾸지만, 110의 ‘진단’은 그 아래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제 손자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워도, 참아낼 것이다.

그 손자가 조모를 미워하지 않으니까.

“할멈, 그런 건 신경 끄고 말이나 조심해. 선생님께 또 함부로 말해봐. 내가 가만 안 있어.”

“……할 말은 그게 다냐?”

“그럼? 뭐 더 말해야 돼? 가시죠, 선생님. 노망 난 늙은이랑 오래 떠들 것 없습니다. 노인공경은 나중에 할게요. 가시죠.”

노인은 손자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내 쪽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내 업보를…… 자네가 업었구만.”

“그런 적 없습니다. 손을 잡았을 뿐이지요.”

“손을 잡았다고. 허허. 그거 참…… 좋은 말이야. 가보게나.”

“예. 강녕하십시오.”

“바울이 할머니, 안녕! 다음에 또 봐요.”

손바울은 조모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그것이 그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이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제자는, 자신을 학대했던 유일한 가족을 용서했다.

“어서 타십쇼. 귀찮은 노인네 얘기는 무시하세요. 다음 걸음은 제가 걸어갈 테니까. 선생님께선 선생님 길을 가셔야죠.”

“……기억해줬구나. 고맙다, 바울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물론, 이 기억력 나쁜 꼬맹이한테 가르쳐주는 일도요.”

“나 기억력 안 나쁜데요? 바울이 혼날래요?”

투닥거리는 제자들과 함께 이동한 곳은, 종위보육원.

길을 돌아온 탓에 연구실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박 선생님? 얼른 오세요. 다들 목 빼고 기다려요.”

목 빼고 기다리던 사람은, 이수아와 한효준.

마침내 입양 절차를 마친 두 사람이 나를 올려다본다.

개중 한효준 쪽은, 알아보기 힘든 면이 있었다.

“교수님…… 거의 새로 태어나셨네요.”

“놀리지 말게, 동안마스터.”

“진심입니다. 검은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에잉.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잘 돌볼 테니, 어서 와서 앉아. 자네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먹질 못했잖나.”

일요일의 송별연을 맞이한 수아는……

예상했던 것처럼 복잡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빨리 와요. 배고파요.”

“하하…… 그래. 미안하다. 어서 시작하자.”

내 아픈 손가락이 마침내 자신만의 가정을 만나는 날.

그 오찬의 끝쯤에, 한효준은 말했다.

“내가,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전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께 독신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허. 나름대로 멋진 독신이라 생각했거늘.”

“그럴 리가요. 함께 걷는 분이시잖습니까. 홀로 계셨지만, 언제나 사람이 따랐지요. 예식 역시 성대할 겁니다.”

“……거, 교수회관 예식이 뭐 대단할 게 있겠나. 쓸데없이 늙은이들만 넘치겠지. 어찌됐든…… 고맙네. 자네 덕에 나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던 게야. 처음에는 번거롭고 불편한 변화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좋구만.”

그 순간이었다.

황금빛 글귀가 예상치 못한 변화를 알렸다.

「 메인퀘스트 “제자를 성장시켜봐요(10/10)” 완료!」

……이게,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5/10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올라간…… 것은 둘째 치고.

설마 한효준까지도 제자 범주에 들었던 걸까.

사람이 관계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킴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명확한 결과란 민망한 노릇.

한효준과 손바울과 신지원과 또 다른 누군가들은, 대체 내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다음 걸음을 걷게 됐을까

고민할 여유는 길지 않았다.

NBSC는 내가 놓쳤던 기회의 선택을 강요했다.

「 [오래된 구원] 할인권을 지급해드렸어요.

300exp 상당의 기술이 지금은 75exp!

준비되셨나요? (9:53 후 자동으로 수행됩니다.) 」

보상이라고 하기엔, 확연히 재탕이다.

꼭 필요한 기술을 아직도 못 얻었냐는 꾸중 같기도 하고.

하릴없이 준비되었다 읊조려야 했다.

그 직후에, 나는 오래된 현재를 만났다.

“박 이병님. 이병님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마흔셋의 김민원과 꼭 닮은 사내였다.

그가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있다.

그 오래전 어느 날에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저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금방 잊으시겠거니 했는데. 아니, 그러시길 바랐죠. 솔직히 끔찍했잖습니까? 목매달아 죽은 시체…… 어유. 제가 죄송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 이미 죽었지만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제 잊어주세요. 저도 다음 걸음으로 넘어가야죠. 하하. 이기자!”

이기자 부대의 자살자는, 그렇게 나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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