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96화 (196/200)

# 196

70장 - 구원받는 상담사 (2)

계절을 담은 자매의 이름은 흥미로운 특징이다.

원래는 그중 하나만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겨울.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한 겨울에, 부모는 아름다운 순백의 삶을 기원하며 계절의 이름을 예비했었다.

그랬던 것이 검진 후 쌍둥이로 밝혀지며 바뀌었다.

태어난 계절을 언니에게, 잉태된 계절을 동생에게.

그로써 자매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만약 두 사람이 쌍둥이가 아니었더라면……

이가을 없이 오직 이겨울만 태어나, 모친이 주부 모임에 나가기보다는 홀로 육아법을 공부하는 선에서 그쳤더라면.

그랬다면 그 가정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겨울의 순수함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시간이란 폭력 앞에서는 무의미한 가정이다.

인간은 무슨 수를 써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준이라는 이름은 내게 꽤 특별했다.

내가 지키지 못한 김 이병의 이름과 같기에.

내가 무력하던 과거에 내 눈앞에서 스스로 삶을 끊은 이병이, 바로 김민준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 자체로 아주 특별한 이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김씨는 한국의 최다 성씨.

민준이란 이름 역시 2008년 이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지어진 이름 1위에 해당했다.

살면서 김민준을 만나본 경험은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잊고 싶어한 무의식에게 세뇌되었던 탓에.

비로소 기억을 되찾은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중1 학생은, 김 이병을 기억하는 박대민이 처음으로 만나는 김민준.

아무래도 특별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가 내 구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수한 자살자를 구해왔지만, 마음은 늘 헛헛했다.

내담자야말로 내 오아시스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구해내지 못한 과거의 존재에 얽매였다.

나는 김 이병의 위령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그러던 내게 다시금 김민준이 찾아왔다.

NBSC가 내려준 최악의 퀘스트를 해결할 열쇠로서.

그렇기에 하루빨리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일까.

그는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학원 일찍 끝난다고 했는데…… 늦네요.”

욕조에 앉은 이겨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도 이가을이 뭔가 언질을 준 것이리라.

그녀 역시 자기 약점을 어렴풋이는 짐작하고 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무튼 슬슬 나갑시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니까요.”

“종교에 대해……요? 꼭, 해야 되는 거예요?”

“예. 가을 씨에게 디프로그래밍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까닭도 있고, 그 자체가 가을 씨의 상담이 되기도 할 겁니다.”

“상담이……? 아, 이게, 나중에 다 확인해볼 테니까요?”

“그렇지요. 우리가 나눈 대화를 들으며 가을 씨도 사고의 방향을 넓혀갈 수 있을 겁니다. 내용적으로는 무관하겠지만요.”

내가 이겨울과 나눌 대화는, 영원교의 교리에 대한 논박.

그 내용은 이가을에게 무의미할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 교리를 증오하고 있으니까.

이가을을 세뇌하고 있는 것은, 영원교가 아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세뇌했다.

존속살해에는 어느 정도로 큰 감정이 필요할까.

그것도 고작 열세 살 소녀가 자기 부모를 한꺼번에 없애버리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은 보통 결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끔찍한 짓을 당했다고 해도, 일반적으로는 양가감정 속에서 부모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가을은 자신의 가정을 깨뜨렸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기세뇌였다.

자기세뇌란 것은 주로 어린 친구들이 혹하는 유사과학.

외모가 예쁜 연예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예뻐질 수 있다든가, 자신이 이미 부자가 됐다고 믿는다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둥, 자기암시의 효능을 허무맹랑하게 과장한다.

그러나 완전히 무의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스스로를 세뇌하는 데 성공한 아이를 보면.

부모에게 완전히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때, 이가을은 생각했다.

저 부모는 처음부터 완전히 글러먹은 존재였다고.

인간이란 원래 그 모양 그 꼴이라고.

돼지 같은 인류를 박멸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삶은 언제나 피해로만 가득할 것이라고.

그 확신이 소녀를 살인마로 만들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가장 끔찍한 경우의 수.

그녀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고슴도치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겨울과의 이 대화는 무의미하지 않다.

스스로 세뇌되어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는 마녀에게, 저항 없이 이야기를 듣게 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지요. 특히나 현대처럼 파편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이 겪는 소외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종교라고 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이겠고요.”

“어…… 왜 그런 거예요?”

“종교는 선하니까. 신이 인정한 집단이니까. 그 안에 소속되어야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인지하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든 광신도가 되려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쁜 것은 개개인이 아니에요. 그들을 이용하는 사기꾼 집단이지요.”

“아, 하하. 그렇지만, 선생님? 신은 실존하세요. 그리고 성경을 잘 공부하면, 그분의 뜻에 맞게 살 수 있어요. 심리학적으로 사기꾼한테 이용당하는…… 그런 사이비랑은 달라요.”

이겨울은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중이다.

스타를 영원교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열성 신도의 모습.

나 역시 겉으로는 그녀를 디프로그래밍하려는 상담사의 자세를 견지했다.

“신께서 실존하신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렇지만 현대에는 무수한 종교들이 난립해 있지요. 한국만 해도 인구의 50%가량이 종교인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이비 종교보다야 대형 종교에 소속된 이가 많겠지만…… 그중에서 과연 몇 개의 교리가 신의 뜻에 합당하겠습니까? 많아야 하나겠지요?”

“물론이죠. 딱 하나의 진짜 성전을 찾아야 해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성전을 찾아봐야 되겠네요. 무수한 여러 종교를 찾아가 그 교리를 비교하고, 개중에 어떤 가르침이 신의 말씀일지 확인해봐야 되겠어요.”

“하지만, 그건 너무 불경한 일이 아닐까요? 믿어야 해요.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답을 내려주세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교되지 않은 정보란 심리학적으로 세뇌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세뇌된 사람은 머릿속으로 얼마든지 신의 계시를 상상해낼 수 있어요. 우리 쪽에서는 그것을 조현병의 일종으로 분류하지요.”

“……종교인들이 다 정신병자라고요?”

“그렇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신이 아니니 어떤 종교가 진리일지 모르지요. 대신, 날 포함한 모든 인간이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취약합니다. 누군가 마음먹고 홀리고자 한다면, 연약한 정신이 그것을 진리로 믿어버리고 말아요. 우리가 신이 아닌 까닭입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에서, 끊임없이 의심해야 해요.”

“말씀이…… 너무 독선적이시네요.”

실제 종교인들이 들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그리고 나 역시, 실제로 이렇게 답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길, 너희는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장차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자신이 그리스도라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말씀입니다. 성경을 공부해보셨으니 잘 알고 계시겠지요?”

“예, 물론, 그런데, 거기서 속지 않는 방법은-”

“비교입니다. 직접 여러 종교를 경험하고 하나하나 비교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무수한 이단 교인들이 그와 유사한 이단을 학습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오류를 알아차리곤 합니다. 진리를 설파한다면서 하는 짓이 참 저열하거든요.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이른바 타산지석이지요. 나와 내 집단이 진리인지 확인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세간에서 욕먹는 가짜 종교들에 대해 조사해야지요.”

“……아무튼, 목적지는 그렇지 않은 종교잖아요? 교인도 참 많고, 나쁜 사건으로 알려지지도 않은, 그런 진짜 종교요.”

“예. 나쁜 사건을 일으켜놓고도 돈의 힘으로 무마해버리지는 않는, 그런 진짜 종교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많은 사이비 종교에서 대형 종교에 대한 교육이 활발하다.

그러나 정작 다른 이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곳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타 이단에 조금이라도 파고들면,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신도를 늘리는 자기 종교 역시도 사이비임을 깨닫게 되는 까닭.

실제로 디프로그래밍에서도 주로 쓰이는 기법이다.

코로나 사태 때는, 일약 유명해진 신천지의 전도법 등을 보고 JMS 등의 교단에서 탈출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자기객관화라는 것은 그토록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지만 오늘 내가 해야 할 디프로그래밍은 다른 방향.

이제부터는 오직 이가을만을 위한 이야기다.

“종교는 소속감과 함께 선민의식을 선사합니다. 무시당하기 일쑤인 현대인에게는 너무도 강한 안정감이지요. 그러니 평온하지 않은 이는 쉽게 휩쓸립니다. 다 가족들의 잘못이지요.”

“가족들의 잘못이요?”

“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디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연인? 학교? 회사? 동아리?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등한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인간도 혈육이 아닌 이에게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기 힘듭니다. 답은 가정밖에 없어요. 가족의 힘으로 근원적인 내면의 모순을 극복해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니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모든 인간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렇게 전락하도록 내버려둔 가족이야말로 죄인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반성해야 할 피해자입니다. 자살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기에 평생 가슴에 못을 박고 사는 유족들처럼요.”

“그런…… 그런 끔찍한 말씀이 어디 있어요?”

“있어야지요. 그렇게 끔찍하게 말해야지요. 그러지 않는 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이 죄인이 될 수 있음을 모른다면, 부부는 서로 경멸할 것이고, 아이에게 자기 인생관을 강요할 것이며, 아이는 그 가슴에 대못을 박을 겁니다. 엄마 때문에 난 다 뺏기고 살아. 엄마 때문에 친구들이 나 미워해. 엄마 때문에 나 자꾸 감기 걸리고, 엄마 때문에…….”

[환상의 수용]이 보여준 몇 가지 이야기들.

이가을이 스스로를 세뇌하며 잊었을 과거들.

그것을 입에 담는다.

도청기를 통해 슬픈 마녀에게 전달되도록.

이가을의 모친은 선하지만 연약한 사람이었다.

쌍둥이를 낳고 육아에만 힘쓰며, 물론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보는 일에 행복을 느꼈지만, 그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기도 했다.

무뚝뚝한 남편이 좀처럼 고운 말을 할 줄 몰랐기에.

아이들이 아니면, 그녀는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를 원망했다.

쌍둥이였기에.

태어나자마자 서로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있다고 느낀 꼬마들은, 말을 배운 직후부터 질투와 원망을 표출했다.

그것이 어떤 칼이 되어 엄마의 가슴을 후벼팔 줄 모른 채.

아이들의 행동이다.

그것을 감히 죄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어린 시절에 그런 투정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이가을이 이후 겪게 된 무시무시한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모친은, 사실은 십여 회에 걸쳐 정신을 차리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딸들이 우는 엄마에게 짜증만을 돌려줬기에.

취약해진 마음이 그 단절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 여인은 오직 영원교에서만 위로받을 수 있었다.

사소한 언행들이 쌓여 만든 구멍에 바이러스가 스며들 때, 이가을의 모친은 오히려 그 맹독성을 탐닉했다.

사악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마음이 차가워지면 누구라도 그리 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기에 인간은 아름답다.

“사람은 분명 몹시 연약합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가장 끔찍한 범죄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누가 잘못했는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러지 않게 도울 수 있었던 존재입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미워해 마땅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나쁜 기억도, 나빠졌던 기억도, 사람과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하하. 개똥철학입니다. 오늘은 이쯤 하지요. 슬슬 가서 방송을 준비해야 되겠어요.”

“아, 네! 저…… 오늘은 좀 까다로운 얘기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내일도 와주실 거죠? 계속 뵙고 싶은데…….”

“물론이지요. 저 역시 가을 씨를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CCTV를 보던 진짜 가을 씨는 달랐던 모양.

그날따라 방송 시작도 전에 원룸 앞에 찾아온 이가을은, 대놓고 이를 드러냈다.

“적당히 해요. 작작 좀 해. 사람 속 긁지 말고.”

“내가 속을 긁었나요? 도청하는 사람이 잘못 아닐까요?”

“이…… 적당히…… 네? 좀, 어? 인내심의 한계예요.”

“정확히 뭘 적당히 하라는 건지요?”

“……들어오지 마요. 나한테…… 들어오지 마세요.”

“들어가다니. 일반론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하지 말라고, 혓바닥을 뽑아버리기 전에. 당신이 뭔데 날 아는 것처럼 말해? 뭔데? 대체 뭔데? 신이야, 뭐야?”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았던 걸까.

그녀 역시도 어렴풋이는 기억하는 모양이다.

모친도 부친도,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모범적인 언니라는 칭찬이나 들으려고 그 기회를 놓친 것은, 이가을 본인이었음을.

“……신이 아닙니다. 내가 신이었다면……”

말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신이었다면.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였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신이었다면, 가을 씨를 이렇게 고통받게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을 겁니다. 나는 그저 상담사에 불과해요. 너무도 힘이 없는…… 평범한 사람. 그래서 미안합니다. 내가 좀 더 일찍 상담사가 되지 못해서. 아파하던 당신의 가족을 모른 채 살아서. 나를 용서하기가 힘드네요. 당신의 부모가 저지른 죄와, 당신이 그로 인해 저지른 죄까지도, 전부 다 내 탓입니다. 그러니까 사죄하고 있는 거예요.”

“……뭔 개소리야. 댁이 뭔 잘못을 했는데요.”

“너무 늦게 전진했거든요. 내 앞에 있는 저 많은 슬픔들을 외면하고, 그저 자기만족만을 즐기고 있었거든요.”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보다, 민준 학생은 잘 지내나요? 요즘은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 모양이던데.”

“……몰라요. 친구들이랑 축제 준비하느라 바쁜 거니까, 신경 끄세요.”

마지막 말은 좀체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구태여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은 아닌 모양.

그 확신에 마음이 조금쯤 편안해졌다.

그 뒤로 5일 동안.

나는 이가을도 김민준도 만나지 못했다.

그저 매일같이 무수한 방송 일정을 진행하며 이겨울과 가짜 상담을 진행하는 나날이었다.

그 날들 중에 종종 희소식이 들려왔다.

마구니 이혁권의 테이크게임즈는, 2020 롤드컵 조별리그를 전승으로 장악하며 당당히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도세나의 기획팀장은 최단기간 3억뷰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아리는……

[삼초온! 저, 저, 11월에 데뷔해요! 멤버 소개 영상이랑 티저랑 해서 내일부터 매일매일 올라간대요. 저…… 잘했죠!]

“그래. 정말 잘했구나. 고생이 많았어.”

[헤헤헷.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저, 더 잘할 거예요.]

그런 시점이었다.

내기 종료를 하루 앞둔 날, 편지가 도착했다.

「 저 김민원이라고 합니다. 회사로 팬레터를 보내면 일일이 읽어주신다고 해서 이렇게 몇 자 써봅니다. 제 형 이름이 김민준입니다. 전에 그 이기자부대 연설 영상에서 말씀하셨던 자살한 병사가 제 형인 것 같아서……. 실은 왠지 낯이 익은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가족 처음 면회 갔던 날 위병소에 있던 이병이, 외출 갔다 돌아오는데 형 어깨 토닥여주셨는데…… 혹시 그분 아니셨나 싶네요. 형이 그때 저렇게 좋은 선임도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하하……. 」

편지를 쥔 채, 나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하염없이 추억 속의 장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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