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68장 - 상담사의 악 (2)
진대수는 먼저 차를 몰고 떠났다.
깡냥겸둥과 욀케의 술자리에 따라가서 인터뷰를 따겠다나.
그것을 하이라이트 뒤에 붙여서 유튜브에 올리면 꽤 감동포인트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그 뒤 나를 카페로 이끈 이겨울은……
무척 간절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처럼, 스물다섯이나 됐을까 싶은 하얀 얼굴이 공포에 일그러진 채 내 일거수일투족을 좇고 있었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가을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가을이랑 저는, 쌍둥이에요. 일란성. 똑같이 생겼죠. 그렇지만 모든 게 달랐어요. 걔는…… 악마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TV 보면서 이런저런 표정을 연습하기도 하고, 저한테 이렇게 때리는 건 괜찮아? 이렇게 꼬집는 건 괜찮아? 그런 식으로 테스트해보기도 했어요. 싸이코패스…… 맞죠? 아,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어요. 맞아요. 사실은 저도…… 저도 가을이랑 비슷할 거예요. 원래는 크게 다르지 않았겠죠. 하지만, 걔를 보면서 점점 공포가 커졌어요. 난 절대 쟤를 이길 수 없겠다…… 아주 어린 시절에 그걸 확신했던 것 같아요. 네. 저는 무기력한 싸이코패스예요.”
굉장히 곤란한 케이스다.
의도를 모른 채 듣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입을 열 타이밍은 신중히 정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르니.
“그래서 저는…… 가을이한테 굴복했어요. 걔한테는 스페어가 필요했거든요. 자기 일에 써먹을 바둑알이요. 얼굴도 같고 성향도 비슷한 저라면 쓸모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를 지배하려고 들었죠. 처음에는 채찍으로, 나중에는 당근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그게 더 집요해졌어요. 안 그래도 슬퍼 죽겠는데 그런 식으로 괴롭히니까……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어요. 그럴 때 제 실종신고를 내버렸죠. 그게 11년 전이에요. 그래서 지금 저는…… 사망자예요. 존재하지 않아요. 세상 어디에도, 저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 가을이의 대역으로서만 살아있는 거예요…….”
……일단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두 가지다.
이가을은 사람을 속이는 데 능한, 천부적인 연기자.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로부터 발현된 능력인 듯했다.
또한 그녀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준거가 충분치 않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입을 꾹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저는 도구예요. 남한테 못 시키는 일들을 시켜요. 대신 회사에 나간다거나…… 걔가 싫어하는 일들은 제 몫이에요. 그때는, 제가 이가을이에요. 다들 절 이가을이라고 불러요. 걔가 돼서 걔가 해야 될 일을 하니까요. 사람들은 이겨울이 있다는 것도 몰라요. 그래서…… 거부할 수가 없었어요. 아시죠? 가스라이팅, 그런 거 같아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이름까지 잃어버린 저는, 게다가 싸이코패스이기까지 한 저는…… 이제 혼자서 살 방법이 없다고 믿었어요.”
가스라이팅이란 것은 고의적인 세뇌를 이르는 말.
연극 <가스라이트>에서 유래한 용어다.
주인공은 보석을 얻으려 위층 사람을 죽인 살인자.
그러나 윗집의 가스등을 켜면 다른 집들의 등이 어두워지기에, 그곳을 수색할 때마다 자기 집의 등을 어둡게 만든다.
그 상황을 감지한 아내가 자꾸 등이 어두워져 있고 위층에서 발소리가 난다고 말하는데, 그때마다 주인공은 네가 정신적으로 약해져서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라고 대꾸한다.
반복되는 무시에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아내는, 조금씩 자존감을 잃고, 이내 주인공의 말만을 믿게 된다…….
현실에서도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사례다.
의식적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이들은, 남들이 반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도록 만들 수 있다.
주로 폭력적이거나 말을 잘하는 부모가 자식을 의지박약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이 가스라이팅에 해당한다.
최근 이용덕과 통화한 바에 따르면, 싸이코패스들이 이 가스라이팅에 능숙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과의 차별점을 알고 타인을 속이는 연습을 해나가는 까닭.
게다가 자기 감정에도 잘 휘둘리지 않아, 이성적으로 세뇌를 시도하는 일이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신지원의 교육에 참고할 화법들을 배우게 됐다.
그러니 모든 것이 이치에 들어맞는 이야기.
이겨울의 설명은 마치 <가스라이트> 같았다.
뒤늦게 조력자를 만나 조종당했음을 깨닫는 결말까지.
“그러다가 꼰마님 말씀을 듣게 된 거예요. 원래는 가을이가 감시하라고 해서 보고 있었던 거지만…… 싸이코패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나아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다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이제야 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가을이한테서 도망치게 도와주세요. 가을이만 없으면 저도…… 저도 이제는, 이겨울로 살 수 있어요…….”
……NBSC의 “죽여봐요”가 혹시 그런 의미였을까.
자기 친동생조차 세뇌하는 악마, 이가을.
그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도구로 전락한 이겨울에게 스스로 살아갈 자존감을 돌려주라는 얘기였을까……?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신 거예요? 아, 제가 좀 성급했나요? 자세히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꼰마님은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시는 분이니까, 가을이도 좋은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죠? 가족이니까 같이 치료를 받아야 된다거나……? 그런데, 아니에요. 가을이는…… 사이비 종교에서 높은 위치에 있어요. 12교육장의 수좌…… 신도들한텐 성녀님이라고 불리죠. 교주가 걔를 총애해서 그렇게 됐대요. 그 사람도 이제 가을이 부하나 다름없지만요. 그리고 몰래 가을이 역할을 대신하는 저는, 그 교주한테…… 매일, 당해요. 오연하게 웃으면서요. 그때는 이가을이니까, 즐기는 척해야 되는 거예요. 지옥이에요. 저는 정말…… 저로 살고 싶어요, 꼰마님…….”
매일 강간을 당하는 성녀……
친자매에게 그런 끔찍한 처지를 강요했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가을은 정말 악마라고밖에는 불릴 수 없는 괴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호수는 누구나 찾아와 목을 축일 수 있는 오아시스.
그 말을 되뇌며, 비로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겨울 씨는 어디 있습니까?”
“……네? 저, 여기, 카페에 있잖아요?”
“그래요. 동생 쪽은, 정말 실종선고로 사망자가 됐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실종선고 당한 동생이에요.”
“실종 얘기는 사실이군요. 다음 질문입니다. 도청기는 누구한테 달았습니까? 나? 아니면 바울이?”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도청기요?”
“내 옷 쪽이군요. 방송국 쪽에도 신도가 있는 걸까. 다음 질문입니다. 싸이코패스라는 것은 거짓말이지요?”
“무슨 소리예요? 가을이도 저도, 싸이코패스예요.”
“거짓말이었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가을은…… 당신은, 악마입니까? 어떤 경험으로도 변화할 수 없는 존재입니까?”
“와…… 진짜, 미치겠네. 이거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겨울이라고 주장하던 여자는, 허탈한 듯 멍하니 웃었다.
그 반응에 마음속으로 탄식을 내쉬었다.
지레짐작이 들어맞아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내 눈앞의 여자가 이가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 내담자 명 : 이가을
평가 결과 :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 몹시 긴장하고 있다. / 출중한 연기력의 소유자. 」
이겨울을 보며 쓴 기술이, 이가을의 보고서를 갱신시켰다.
그리고 두 번째 문구를 확인하자마자 실시간으로 ‘출중한 연기력’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눈앞의 여자가 누구인지는 거기서 분명해졌다.
그 체크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정말 쌍둥이가 있었구나 하며 한탄하던 찰나였다.
단지, 첫인상으로 상대를 예단하지 않고자 만나는 사람마다 [내담자 평가]를 사용해온 것이 지난 몇 달 동안의 습관.
그녀가 겉으로나마 내게 도와달라 요청하며 NBSC에 내담자로 인식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로써 동생을 사칭하는 언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분명 속아넘어갔겠지.
110의 ‘진단’으로도 꿰뚫어보기 힘든 정교한 연기였으니.
바로 그렇기에 곧바로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꾸며낼 줄 아는 이라면, 타인이 꾸며낸 감정 역시 쉽게 알아챌 터.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의심을 들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말없이 이가을의 행동을 분석했다.
도저히 진실일 수 없는 이야기와 충분히 진실일 법한 이야기를 구분하며,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관찰했다.
그랬는데도 심리를 흔들지 않고선 답을 찾기 어려웠다.
배우를 꿈꿨다면 언제고 세계를 놀라게 했을 법했다.
실은 지금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정곡을 찔러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라포가 없는 탓에 [완전한 공감]에는 번번이 실패하는 중.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정문의 일침]이나 [암시 구조화] 역시 아껴둬야 할 터였다.
스스로를 악마라 지칭하는, 연기와 세뇌의 전문가.
도무지 약점이 없는 강적이다.
그녀와 마주보고 있는 현재가 몹시 부담스러운 이유였다.
“하…… 대체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권능 같은 건가?”
“글쎄요. 그런 것이 중요합니까, 가을 씨?”
“중요하죠. 지금…… 혹시 당신이 신 아닐까 싶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가을 씨의 행동이 달라집니까?”
“당연하죠. 신 같은 게 존재하면, 죽여버려야지.”
휘몰아치는 분노와 희열……
잠시 가면을 벗은 여인이, 상반된 두 감정으로 노려본다.
나로서는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신을 증오하는 이들이 있다.
단지 보이지 않으니 믿지 않는다는 합리주의가 아니라, 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 마땅하다고 저주하는 사람들.
오직 거대한 적개심으로 신비를 부정하는 파괴자들이다.
신이 용납한 범죄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이들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 증오를 뿜어내곤 한다.
“……나는 신이 아닙니다. 평범한 상담사예요.”
“그럼 어떻게 알았죠? 당신은 편지 한 장 받고서 내 이름을 알아냈어요. 잠깐도 지체하지 않고 광신도 같은 제자를 불러서는, 이가을을 찾아내라고 말했죠. 이름이야 fall에서 유추했다고 쳐도, 성 쪽은 다르잖아요? 사이코메트리 아니에요?”
그때부터 도청을 당하고 있었구나.
내 주변에 숨어든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 가을에 접어들며 입게 된 외투 어딘가에 도청기를 넣은 듯했다.
아니면 애초에 내게 PPL을 주고 있는 의류브랜드 LP가 그들의 주구일 수도 있겠고.
그녀가 불통의 상징인 협박편지를 보낸 것은, 내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굳이 답장이 아니어도 확인할 방법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솔직히 겨울이인 척해본 적은 없지만, 연기는 자신 있는 분야예요. 보자마자 의심하는 눈초리나 보이다가 대뜸 가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요. 심지어 바로 오늘 아침에 쌍둥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이제야 찾았다며 기뻐해야 되지 않아요?”
이가을은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도청을 통해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로써 내가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꾀어냈다.
청산유수 같았던 대사는 필시 미리 짜둔 것.
손바울의 추적이 말소된 주민등록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황급히 적합한 플랜을 실행에 옮겼을 터였다.
곁눈질로 틈틈이 관찰한 카페 내부도 그랬다.
멀찍이 포위하듯 앉은 남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대화가 들릴 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이가을이 신호만 내리면 곧바로 달려들어 공격하리라.
카페 바깥에 정차한 봉고에 태워 납치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 외통수다.
나는 이가을의 덫에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
플랜A야 이겨울인 척 접근해 내 정신까지 조종하려는 방향이었겠지만, 그게 어그러진 지금 플랜B로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
비로소 찾아온 일곱 번째 에픽퀘스트 내담자를……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을까.
8월 중순부터 일정의 중점을 인방 쪽으로 돌린 탓에, 아직도 exp는 200에 조금 못 미친다.
[오래된 구원]을 구입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양.
무슨 효능일지도 모를 그 기술이 못내 아쉬웠다.
가진 exp를 모두 투자해 다른 특성이나 기술을 얻어본들, 이 증오로 가득한 고슴도치를 돕지는 못할 듯해서.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간을 버는 것.
이가을이 당장 공격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려고 할 만한 상황을……
[암시 구조화]와 [정문의 일침]으로 조성해내야 한다.
“……쫑알쫑알 시끄럽네요. 그런 부분까지 설명해줄 시간은 없습니다. 자정이 되면 새벽 상담소를 열어야 해요.”
“와. 이 와중에 인방 얘기예요?”
“예. 이제 40분쯤 남았네요. 그러니 이제 내가 질문합니다. 이겨울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도 교주에게 당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까지 설명해줄 시간은 없는데요?”
“멍청한 질문이었군요. 가을 씨가 늦은 밤까지 신도들과 함께 있으니, 오늘만큼은 동생도 편히 쉴 수 있겠어요.”
“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걔도 구해주고 싶어요? 될 리가 있나. 영원교는 허접한 소규모 사이비가 아니에요.”
영원교.
1970년대에 창시됐다고 알려진 종교단체로, 영원불멸한 교주 아래에 투신해 다시 태어나자는 교리를 갖고 있다.
그 규모는 자타공인 아시아 최대.
그럼에도 뉴스 한 번 타본 적 없을 정도로 신비주의적인 집단이라고들 했다.
수십만 명이 시청하는 내 방송에서도 그랬다.
다른 사이비 종교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사연은 그래도 종종 나왔지만, 영원교 얘기만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강력한 세뇌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야말로 가스라이팅이 필수적인 업종.
적어도 유일신을 주창하는 한, 개중 단 하나의 종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사이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짜 교리를 믿게 만드는 일이 정신을 지배하는 세뇌 없이 이뤄질 리 없다.
영원교는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젊은 이가을이 그곳에서 세를 형성한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천부적인 연기력과 타인을 조종하는 세뇌 능력.
사이비 종교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재능은 없다.
교주 역시 그것을 알아봤기에 그녀에게 중책을 맡겼으리라.
그러다가 그 자신마저도 잡아먹히고 만 듯하지만.
말하자면 그곳은 세뇌의 전당이다.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몸이고 돈이고 전부 다 바치게 만드는 피의 제단.
그 구성원에 의한 마인드컨트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순진한 사람들을 나락으로 끌어들인다.
세상을 바꾸려는 상담사에게, 그곳은 악마의 제단이었다.
그렇지만……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행을 강요하는 것은 독을 품은 마음의 호수일 뿐.
사람이 사람일 뿐임을 믿는다면, 친동생을 늙은 교주의 노리개로 만들었다던 이가을도 참회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 [암시 구조화]를 사용합니다 > 이가을
100의 ‘너그러움’이 스며듭니다…… 」
“……가을 씨. 나랑 내기 하나 해보겠습니까?”
“참나. 당신, 진짜 희한한 사람이야. 알아요?”
“사람이라고 해주니 기쁘네요. 대단한 내기는 아닙니다. 심리전이지요.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면 끝나는. 겨울 씨인 척하며 설명한 가을 씨의 가스라이팅. 그리고 상담사인 내 디프로그래밍(세뇌 해제). 그중 어느 쪽이 위일지 겨뤄보는 겁니다. 그동안에 내 가족이나 지인들을 괴롭히지 않는 조건이지요. 그러면 나도 검찰을 동원해 영원교를 추적하지 않겠습니다.”
“동등한 조건이 아닌데요? 검찰 따위 뭐 대수라고.”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동생을 아끼는 검사장의 추적이라면, 약간의 귀찮음 정도는 생길 거예요. 무엇보다 보상이 확실한 내기입니다. 도저히 가을 씨의 세뇌를 지워낼 수 없음을 확인하면…… 초능력 같은 내 진실을 알려드리지요.”
“그런 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데요?”
“저 신도들을 시켜서 날 잡아갈 셈이겠지요?”
“……관찰력도 좋네요.”
“상담사의 기본기입니다. 어쨌든 고문이나 자백제로는 알기 어려울 거예요. 신은 아니지만, 꽤 특이한 사람이라서. 내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더해서 신의 선악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설명을 해드릴 수 있는데-”
“신의 선악……에 대해, 설명한다고요? 당신이요? 정말로?”
역시 그쪽이 역린인가.
아주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이가을
주제 ‘신의 선악’
> ‘아브라함’ 」
손이 덜덜 떨려온다.
가장 사악한 악마 같았던 이가을의 본질.
지상 최대 종교의 시조로 추앙받는 전설의 이름을 통해서, 나는 그녀의 분기점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가신 양친 중 영원교 신도가 있었습니까?”
“갑자기 죽은 사람 얘긴 왜 꺼내는데요?”
“당신이…… 죽였습니까?”
“무슨, 말도 안 돼. 내가 왜요? 사이코패스 아니거든요?”
“당신의 양친이, 당신을, 바쳤던 겁니까? 아들을 제단에 올렸던 아브라함처럼?”
이가을은 표정 없이 굳었다.
그 얼굴이, 이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