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68장 - 상담사의 악 (1)
[삼촌! 저 오늘요, 오늘요, 월말평가예요!]
엿새째 되던 날 아침에, 이아리의 전화를 받았다.
내 상담으로 삶이 뒤바뀐 첫 번째 내담자.
듣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목소리였다.
“그래, 아리야. 열심히 준비해왔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
[헤헤…… 이번에 잘하면요, 11월에 데뷔할지도 몰라요.]
“어, 그건, 참 빠르구나. 너무 급한 건 아닐까?”
[이게요, 이번에 11월에 컴백하는 걸그룹이 없다고요, 그래서 차라리 싱글 빨리 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어요.]
“그렇구나. 걱정이 많이 되겠는걸?”
[네. 저 아직, 모르는 거 너무 많아요. 그래서 대표님한테 무섭다고 말하려고 그랬는데요…… 안 했어요.]
“용기를 낸 거니?”
[응. 저요, 더는 도망치기 싫어요.]
“아리 너는 도망친 적이 없어.”
[아뇨…… 저, 그랬어요. 칼로 손목 그을 때 있잖아요? 그때, 기분이 좋았어요. 후련했어요. 왜냐면 이제는…… 이제는 더 힘들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그래서 엄마랑 아빠 슬퍼하게, 혼자 도망쳤어요……. 더는 그러기 싫은 거예요.]
“……넌 지금도 수진이를 원망하지 않는구나.”
[에이, 수진이는 잘못 없는데요?]
잘못은 있다.
동급생을 시기해 루머를 뿌려댄 수진이란 아이는, 이아리가 영원토록 증오해도 이상하지 않을 악인.
그러나 그녀는 지금도 웃으며 적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아리가 가진 것은 용기가 아닌 용서였다.
그런 내담자를 위해서 나도 용서를 발휘해야 하리라.
손바울을 돌아보는 기분이 복잡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래, 바울아.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예. 목표에 부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가을이라는 이름에 키 160 내외인 대상을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추려서 총원 2912명을 다 체크했는데, 그날 그 시간대에 마포구에 올 수 있었던 사람은 전무해요. 100%입니다. 커뮤니티와 SNS로 모자라서 민원시스템까지 동원했으니까요.”
“민원시스템?”
“예. 혹시 쓸 데 있을까 싶어서 공익 간 애들 약점 좀 잡아뒀거든요. 그걸로 연락처 따내고, 사은품 미끼로 가족한테서 직장이나 학교 알아내고, 다음엔 보험을 가장해서-”
“자, 잠시만. 그건 불법이잖니? 지난번 성착취 사건 이후로 철저히 금지됐다고 들었는데.”
사건 뒤 1년도 안 지난 시기다.
그렇지만 그 짧은 사이에 허점이 생긴 듯했다.
“그야 예전에도 불법인 건 마찬가지였죠. 바뀐 건 없습니다. 그때처럼 대놓고 공익 공공근로 부려먹지 못하게 돼서, PC 없는 자리에 몰아놓기만 했을 뿐이거든요. 그마저도 몇 달 지나고부턴 흐지부지됐다고 하고요. 애초에 철저히 관리감독할 수가 없는 환경입니다. 구청이면 몰라, 좁은 동사무소에 무슨 격리시설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공무원들이 계장 명령 따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하는 건 그쪽 사회에서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인데, 바쁘게 일 처리하다 매번 로그아웃하거나 컴퓨터 잠그기에는 너무 바쁘거든요. 역으로 한가한 시간대에는 우르르 담배 피우고 우르르 커피 마시고…… 보려고만 하면 누구든지 볼 수 있습니다. 겁 많은 애들은 힘들겠지만요.”
“……바울아. 가능하다는 건 알겠다만, 그건 심각한 범죄야. 내가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했잖니.”
“죄송합니다. 가능하면 공개된 정보만으로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나와서요.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 분명히 말하마. 너는 어디까지나 내 지시로 움직인 거야.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모든 잘못이 내게 소급돼야 마땅하다. 그러니, 다시 한번 범법이나 편법으로 내 부탁을 이행하려 한다면, 그때 난 너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그건…… 알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범죄라는 말에는 신경도 안 쓰던 녀석이, 내 엄포에는 금세 고개를 숙인다.
이제라도 민원행정의 허점을 알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나중에 주영주에게 관리감독 실태를 조사하도록 부탁해야 할 듯했다.
그러지 않으면 같은 비극이 답습되고 말 테니.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이가을 쪽이다.
정보화시스템을 이용해 검색했는데도 찾지 못한 타깃.
그 상황이 내게도 괴이쩍게만 느껴졌다.
NBSC를 통해 확인한 이름이 가짜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분명 놓친 것이 있을 터.
하지만 설마 분신술 같은 걸 쓰지는 못할 텐데……
“그 시스템에는 재외국민도 등록되어 있지?”
“예. 거소신고를 위해 제적 기록이 보존된답니다.”
“혹시 이민 2세라면…… 아니, 그 경우라면 한국식 이름을 유지할 리가 없겠구나. 돌림자라면 몰라도 우리말 이름인 ‘가을’을 구태여 해외에서 붙여줄 이유가 없겠지. 역으로 해외 입양아라면 ‘이’라는 성을 유지할 이유가 없을 거고.”
“그렇죠. 거기서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일란성 쌍둥이일지도 모르겠다.”
“흠. 같은 외모의 쌍둥이가 학교나 직장에서 자매 역할을 대신하는 동안, 본인은 몰래 마포구에 왔을 가능성이군요.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자기 이름을 알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텐데요.”
“내가 아니라 경찰을 두려워했을지도 몰라. 그 편지는, 말만 잘 한다면 가족을 위협하는 협박장으로 제출할 수도 있는 증거처럼도 보이니까. 본인이 혹시라도 용의선상에 올랐을 때 혼선을 주려고 알리바이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어.”
“아하. 역시 지혜로우십니다. 이가을들 가족관계까지 따놨으니까, 민번 앞자리 같은 자매 케이스만 모아보겠습니다.”
“아니, 그건…….”
안 될 일이라고 말하려다가, 끝맺지 못했다.
뒤늦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악을 막고자 악을 활용한다는 딜레마에 대해서.
불법으로 타인의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일은 범죄.
몰랐을 때야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알게 된 지금은 범법을 방관해선 안 될 노릇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잘라 말하지 못했다.
이가을을 찾지 못하면, 내 딸이 위험해질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지푸라기 같은 단서를 찾았으니 추적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정당한 방법이 아니니 포기해야만 할까.
“……바울아. 그 데이터들은 폐기해주렴.”
“이런. 선생님, 그건 곤란합니다.”
“해주렴. 대신 쌍둥이라는 단서로 다시 한번 인터넷을 탐색해서, 공개된 정보만으로 그녀를 찾아다오.”
“흠. 할 수 없군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손바울을 보내고 나자……
마음이 잔잔해졌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다만 나쁜 행위가 존재할 뿐.
나쁜 일을 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나쁜 일을 저지른다면, 그때 나는 어떤 당위로도 내 올바름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내와 딸에게 자랑스런 아빠이기 위해서, 나는 언제 어느 때라도 올바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손을 모았다.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기원하며.
*
[아, 꼰마님! 우와! 진짜 오셨냥! 시청자 폭발해요!]
BJ깡냥.
‘깡’ 있는 성격과 고양이를 닮은 외모로 붙여진 그 이름의 주인공은, 진대수의 지휘 속에 유튜브스타가 된 여캠이다.
다만 최근에는 컨텐츠가 약해 성적이 좋지 않다 했었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시청자의 수가 1만을 넘어섰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방송국은 평일 시청자만 해도 20만을 넘길 정도로 팽창해 있고, 그중 멀티뷰로 탐방 방송국을 찾아가는 이들의 수가 최소 1만.
원래 시청자가 몇 명이었든 만따리가 되고 말 터였다.
“반갑습니다, 깡냥님. 오랜만에 뵙네요.”
[어? 아? 꼰마님, 우리 만난 적 있어요?]
“예. 작년 프리페스티벌 때 뵀었지요.”
[헐…… 몰랐어요. 제가 사람 얼굴을 잘 못 기억해서…….]
얼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친구다.
주로 보는 것은 잘생긴 젊은 남자들.
2019년의 박대민 부장은, 아마 서너 차례 더 만났대도 그녀의 기억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기에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그 어느 곳에서나 이목을 끄는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가장 긍정적이고 멀끔한 이미지로.
어린 시절 꿈꿨던 존경스러운 어른에, 이미 도달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도 미진하다.
지금에 이르러서 그 꿈은 그저 과정이 되었기에.
종위보육원의 첫 상담 이후 결심했던 것처럼, 나는 오로지 상담사로서 많은 이들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꼰대답게 바로 사연이나 받아보겠습니다. 자, 올려주세요. 여기…… 이 사연부터 보겠습니다. 깡냥겸둥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꼰마님. F3에서 달리는 레이서입니다.”
[헐? 겸둥 오빠 레이서였냥? 우와, 멋있다?]
「깡냥겸둥 : 전에말했자나..」
「깡냥겸둥 : 우리냥이 건망증 언제고쳐..」
[아, 지성 지성! 꼰마님, 더 읽어주세요.]
“……레이서로서 사고 트라우마가 좀 있습니다. 빗길에 옆구리 들이받혀서 몇 바퀴 굴렀거든요. 그 뒤로 비만 오면 제대로 속도를 못 내고 있어요. 그거 때문에 VR 노출치료도 해보고 눈동자 움직이는 것도 해보고 했는데 잘 안 돼요. 사실은 비 오는 날은 일반 도로도 나가기 싫고 그래요. 그래서 선배들도 다 답 없는 거라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여쭤봐요.”
직업병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랩타임을 겨루는 레이스를 하면서 속도를 안 낼 수는 없고, 속도를 내서 달리다보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일반인들에 비해 운전 트라우마가 훨씬 더 많을 터였다.
그렇기에 다양한 치료요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노출치료도 EMDR(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도 효과가 없었다면 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 경우에는 언제나 안전운전을 고집하는 고루한 아저씨.
그렇기에 운전 트라우마를 겪어본 적은 없다.
깡냥겸둥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질문한 건 아닌 듯하고.
다만 트라우마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기작.
사고의 환경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노출치료도, 사고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재해석하는 EMDR도, 사실은 편법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음속에 있다.
“그 사고에 대해 여쭤보지요. 사고를 낸 운전자…… 그 드라이버는 어떻게 됐습니까?”
「깡냥겸둥 : 아네 저보다 덜다쳐서 트라우마는 없었대요」
“몸도 마음도 멀쩡하군요. 사과는 하러 왔습니까?”
「깡냥겸둥 : ㅎㅎ 당연하죠~ 제 짬이얼만데 사과안했으면 걔 업계에서 퇴출됐어요~」
“그 뒤에는요? 따로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깡냥겸둥 : 그거야 원래 잘 안친한 친구여서 머..」
“만나보세요. 만나서 드잡이를 하든 술로 밤을 새우든 해서, 마음속에 남은 앙금을 풀어보세요. 그리고 그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로 삼아보세요. 우리 뇌는 단순합니다. 좋지 않은 경험을 피하려 하고, 그렇기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와 비슷한 환경이 되면 위험신호를 보내요. 그 신호가 레이서에게는 퍼포먼스 저하를 불러일으키겠지요.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뇌에게 알려주는 일입니다. 그건 레이서로서 별반 대수롭지 않은 사고였고, 나는 그 일을 조금도 나쁘게 기억하지 않는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이 인간관계예요.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된 사고였다고 하면, 뇌도 솔깃하게 되는 거죠.”
「깡냥겸둥 : 와진짜요?? 그런게돼요?? 만나봐야겠네~」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반드시 성공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고를 냈던 드라이버가 정말 괜찮은 인성을…… 어? 잠시만요.”
깡냥 방송이 아닌 내 방송 채팅창을 스크롤한다.
그곳에 사연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이게, 욀케님의 사연인데요…… 와 미음히읗형 여기서 뵙네요. 그때 사과하고 나서 형 저 때문에 트라우마 생기신 거 나중에 들었는데, 무서워서 못 찾아뵙고 있었어요. 형 그거 때문에 유러피언 F3 탈락하셨던 건데, 인사드리면 바로 욕하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만나주시면 영광이죠……라고 하시네요. 저쪽에 깡냥겸둥님 사연도 올라왔군요. 헐 크크크. 시옷디귿이냐? 이 새키, 꼰마님방 본방도 뚫고 능력자네? 뭘 무서워, 그냥 오면 되지. 형 그런 걸로 쪼잔하게 뭐라 안 한다. 마침 잘됐다. 형 내일 쉬는 날인데 11시 반에 한잔할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임 」
「만남의광장이야??? 레이서 형들 정모야 」
「와 시청자 25만쯤되니까 지인이있어버리네 ㅋㅋㅋㅋ」
그야, 5천만 국민 중 0.5%다.
200명 중 한 명씩 들어온 비율이고, 개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10대와 20대로 한정했을 때는 훨씬 높은 비중이리라.
아는 사람 한둘쯤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마……
이가을 역시 들어와 있겠지.
유튜브 각 나오겠다며 키득거린 진대수가 레이서들에게 쪽지로 이름 물어보는 동안, 나는 이가을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NBSC는 마치 절대적인 악인인 양 죽이라고 했지만……
나쁜 사람이란 것이 존재할 리 없는데.
악인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악이라는 개념을 사회가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 선과 악의 갈림길을 바꿔잡을 수 있다.
바로 그 6분쯤 뒤의 사연이 악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깝냥님의 사연이네요. 안녕하세요, 꼰마님.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쁜 사람 없다고 맨날 하시잖아요? 근데 제가 일하면서 보면…… 그니까 제가 형산데요, 보면 더럽게 나쁜 새끼들 진짜 많거든요. 수사하는 내용 채팅에 쓰면 안 되지만, 다들 알잖아요? 예를 들면 그놈. 미성년자 강간하고 잡혀 들어갔다 나와서는, 20명을 죽여버린 그놈이요. 그런 놈도 진짜 상담만 받으면 괜찮아집니까? 그런 싸이코패스 새끼들은 미리 색출해서 격리해놓는 게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영화 <추격자>로도 잘 알려진 연쇄살인범 이야기.
이 인물의 기사를 통해 싸이코패스라는 어휘를 처음 접한 사람이 많을 정도로 센세이션한 사건이었다.
수감 중인 현재까지도 교도관들에게 갑질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고.
악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범행의 처벌 여부를 떠나,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악마.
보통 인류의 행복을 위해 배제되어야 할 돌연변이.
그는 그러한 악인의 표본이었다.
그렇지만, 나까지 그렇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나와 무관한 제3자라면.
내 지인을 해친 가해자라면.
혹은, 내 가족을 죽인 철천지원수라면……
나 역시 누구나처럼 유영철을 증오하게 될 것인가.
“……고민 사연은 아니지만, 답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들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물론 동의합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유족들을 위한 일일지 생각해봐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인자의 이름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그 이름을 더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저는 새로운 유족이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거기에 죄인을 증오하는 일은 하등의 도움이 안 됩니다. 죄인의 본질을 악마로 단정하는 현실 속에, 그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 나는 유영철 같은 스타일이니까 죽어 마땅하구나, 그렇게 공감할까요? 나를 배제하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더한 증오를 품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들이 미래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요. 깝냥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증오입니까, 더 나은 세상입니까? 저놈은 나쁜 놈이니 다같이 미워하자…… 이렇게들 외쳐봐야 연쇄살인마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증오해야 할 것은, 오직 죄뿐입니다.”
그 믿음이 잘 전달됐을지는 모르겠다.
깝냥은 깊은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오래 답이 없었고, 시간관계상 나 역시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야만 했기에.
다만 원룸을 나오던 길에 그런 얘길 들었다.
“그분이, 가족이 보복살인을 당했던 모양이에요.”
BJ깡냥의 전 편집자였던 진대수의 말.
그 말에 저간의 사정이 짐작될 법도 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언제고 내가 한번 뵐 수 있다면 좋겠다. 혹시 연락처 가지고 있니?”
“열혈이셨으니까요. 제가 한번 문자 넣어볼게요.”
“그래. 깡냥님 방에 간 건 이래저래 잘한 일이었구나.”
“하하. 그치만 걘 진짜 답도 없어요. 아니 어떻게 우리 형님 만난 걸 까먹을 수가 있지? 제가 몇 번이나 훌륭한 분……?”
말을 그친 진대수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키 160cm 내외의 젊은 여성.
그녀가 왈칵 눈물을 쏟을 듯한 얼굴로 말했다.
“꼬, 꼰마님. 저, 저 좀 도와주세요.”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성함이?”
“겨울, 이겨울이요. 저희 언니 좀…… 막아주세요.”
이겨울이라 이름을 밝힌 여인.
가을이 한창인 날, 나는 마침내 그녀를 만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