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67장 - 상담사의 선 (3)
[오찬을 마친 뒤 진행된 대국민 담화. 성영준 대통령은 서두에서부터 이례적으로 민간 상담사를 거론했습니다.]
[심리상담이라는 걸 저는 오늘 처음으로 받아봤습니다. 박대민 상담사님이신데, 현재 우리 대한민국 육군의 심리 건강을 책임져주고 계신…… 두 달 동안 병영 내 인명사고가 0건을 기록했습니다. 저 역시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마음이 참 편해졌는데요……]
[대통령은 담화의 끝에 심리상담의 대중화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니 이 상담이라는 것이 정서적으로 참 좋은 일이더군요. 제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도 그걸 몰랐습니다. 나를 지키고 또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한 번쯤 심리상담을 받으실 수 있는……]
[정신건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현대에, 행정부 차원에서 국민 상담 지원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MBC 김은호 기자입니다.]
아침 뉴스에 귀를 기울이던 딸은, 이내 얼굴을 붉혔다.
“아, 뭐야! 아빠 얘기 안 나오네.”
“내가 중요한 뉴스가 아니잖아. 단신이기도 하고.”
“짜증이야. 아빠 신문에도 얼굴만 나왔는데.”
“얼굴이 1면에 실린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야, 지수야. 아빠가 대사나 대통령도 아니잖니. 별 것 아닌 사람한테 집중해서 기사를 작성하기는 곤란했을 거야.”
“몰라. 아빠 인터뷰 안 내보내면 바보들이야. 시청률 보증수표인데, 그것도 모르고.”
물론 MBC 뉴스에 내 인터뷰가 나가면 화제는 되리라.
과거 초대석에서 날 선 공격을 했던 인물이니.
그나마 내가 주축이 된 프로그램이 두 개나 방영 중인 상황이기에 길게 나간 것이지, 아니었으면 10초도 어림없었다.
다른 방송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이야기가 많건 적건, 이런 뉴스를 목도한 대중 입장에서는 나를 대통령에게 인정받은 상담사로 각인하게 될 터.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상담의 가치를 알릴 호기였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번 일로 선의 침식이 가속화되겠지.
그간 나를 애써 무시해온 이들까지 박대민이나 꼰마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게 될 것이다.
그로써 자기 가치관과 상충하는 내 지론에 반감을 키우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한 ‘꼰마 안티’의 기수인 이가을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회의차 만난 손바울도 꽤나 지친 기색이었다.
“참…… 도저히 안 나오네요. 본명까지 알고 있는데도 도무지 안 뜹니다. 커뮤니티마다 어그로 끌고 별별 방법으로 검색해보고 있는데도요. 사회와 단절된 채 혼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히키코모리라든가요. 바깥에 지인이 한 명도 없다면, 제 방식으로는 무리입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
현실에서도 웹상에서도 늘 혼자여서 사회관계망 추적으로 찾을 수 없을 정도라면, 그 대상은 분명히 무해한 존재.
NBSC가 죽임까지 거론하며 타깃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지금껏 적어도 필요성만큼은 명확한 퀘스트들을 줬던 시스템이니.
“그 부분은 내가 장담하마.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렴.”
“흠. 물론입니다. 누구 제자인데요.”
그렇게 제자를 매일같이 고생시키고, 가족을 히키코모리로 만드는 와중.
내 경우에는 이가을을 잊은 채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대통령 이슈 덕에 인방이고 VR이고 사연이 폭주한 까닭.
그 내용은 이제 일상적인 고민에 한정되지 않았다.
“손가락질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저는 조금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스물한 살 대학생입니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계열사 사장님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임원이셔서 모자란 거 없이 살 수 있었어요. 그건 저도 잘 아는데, 가끔 편견 때문에 힘들어요. 대기업의 횡포라고 하면서 소상공인 죽인다고만 뭐라고 해요. 신문에서는 대기업 임원 연봉 엄청 과장해서 내보내고요. 사실 그중에서 세금 빼고 이런저런 쓰시는 거 빼고 나면 중산층밖에 안 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누가 아빠 뭐 하셔 물어보면, 그냥 회사원이라고만 말해요. O 계열사 사장이라고 하면 다들 편견으로 볼 테니까요. 그냥 답답해서 토로해봤어요. 저희 좀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큰일이네요. 저도 이미지 안 좋기로 유명한 인방 일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제 딸이 아빠 직업 소개 못 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안 그래도 잘해준 게 없는 아빠인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이게무슨소리야? 대통령 상담한 플통령님이 」
「갓마님 거 장난이 너무 심한거아니요!」
「이미다알잖아요 꼰순이는 ㅋㅋㅋ」
「꼰마귀욤 : 난 아빠 완전 홍보할건데!!!」
「앗 꼰순이다!」
「꼰순이 요새 인스타 왜 안해~~ 보고싶어~~」
「꼰마귀욤 : 아 좀 바빠서용..」
사실은 바빠서가 아니라 학교에 변명해둔 결석 사유에 맞추기 위해 SNS는 일절 끊고 있는 상황.
그 부분에 채팅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었다.
“저 역시 그래서 종종 BJ라는 소개가 멋쩍기도 해요. 지난번 뉴스만 봐도, 거의 대부분의 기사에 제가 BJ꼰마 아닌 상담사 박대민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사실은 아직 상담사도 아닌 수련생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업종이다보니 기자 분들께서 좀 더 편한 어휘를 택하셨던 것 같아요. 손가락질님께서도 그렇게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임원도 회사의 식구라는 관점에서는 ‘회사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대리 과장 차장 부장도 통칭해서 회사원인데, 임원만 따로 구분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에요. 그러니 계속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제가 BJ꼰마 이전에 상담사 박대민으로 소개되는 것처럼, 손가락질님 부친께서도 O 계열사 사장이기 이전에 회사원이라 소개될 수 있어요. 그 이상은 굳이 언급하지 않으셔도 괜찮지요. 직급이 어떻게 되시냐고까지 물어보는 무례한 사람은 드물 테니까요.”
「손가락질 : 근데 친구가 나중에 배신감 느끼고 그러더라구요 거짓말했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데, 별일이네요. 친구 분은 대체 어떤 부분에서 배신감을 느꼈을까요?”
「손가락질 : ?? 아빠가 사장이라고 안말한거요」
“말이 헛도네요. 정말 그게 배신감의 원인일까요?”
「손가락질 : 그니까 이게요 아빠가 사장이면 저는 다이아수저고, 그냥 차장이나 그러면 은수저정도니까 그래서 다른거죠 그게 속였다는 느낌을 준거같아요」
말은 아직도 헛돌고 있다.
이번 내담자는, 비일상적인 사고방식에 갇힌 상태.
문제의 핵심을 모른 채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아주 일상적인 고민일 뿐인데도.
“손가락질님. 친구 분이 정말 거짓말로 속였다는 느낌 때문에 배신감을 받았다고 믿고 계신데, 그거 착각입니다.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 쪽이 문제일 수 있어요. 이런 겁니다. 만약 제 딸과 손가락질님이 방송 아닌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칩시다. 그때 제 딸이 손가락질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 그냥 IT쪽에서 일하고 계세요. 틀린 말은 아니지요. 꼰미디어의 투자자이기도 한 저는, BJ이자 상담사인 동시에 IT기업 관련인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저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BJ인 까닭에, 그 대답이 거짓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건 불쾌한 일인가요?”
「손가락질 : 아뇨 저는 안불쾌한데요 걘 그런가봐요 아무래도 흙수저라서 피해의식있을수도있구요..」
다이아수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마치 인도의 카스트처럼,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계급을 나누는 청년들의 신조어다.
그 시초는 금수저.
금으로 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부유한 경우를 보통 사람들과 구분한 것이 발단이었다.
현실적으로는 타당한 해석이다.
일부일처제 속에서 사회안전망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좌우되는 성장기의 경험들이, 아이에게 분명한 차이를 만드니.
단순히 고액과외를 받고 ‘빽’을 쓰는 편법 이전의 문제.
꼭 흙이라도 파서 동전을 찾는 극빈층 ‘흙수저’들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환경은 분명히 가족역동의 편향을 부른다.
상대적인 가난은 부모의 열등의식을 자극한다.
그러면 그들은 남들보다 몇 배 더 일해서 ‘상류층’으로 올라가려 할 수 있는데, 이때는 맞벌이 부모의 방치로 인해 아이의 사회성이나 지능 발달이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
‘지위 상승’을 포기한 부모라고 해도 마찬가지.
아이에게 훌륭한 부모가 못 된다는 자기인식은 반드시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알코올중독 등의 문제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모든 난관을 뚫고 승천하는 용이 어찌 흔하랴.
두메산골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나는 분명 특이케이스.
사범대 등을 제외한 서울대 대부분의 학과에 금수저들이 넘쳐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학대의 트라우마 속에 허우적거리던 사람도, 금수저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사람도, 올바른 관계로 보듬는다면 PTSD 아닌 PTG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가족역동은 일개 요인일 뿐 결정인자가 아니다.
그러니 거둬야 할 것은 나 자신의 편견이다.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나눠서 생각하지 말아요. 선을 긋고 안팎에서 서로를 바라보지 말아요. 단지 사람과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어야 나에 비춰 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친구’ 쪽이라는 점을요.”
「손가락질 : ??? 친구요 」
“예, 친구요. 제 딸과 손가락질님은 친구가 아닙니다. 서로 친밀한 사이가 아니니, 불편한 시선을 피하고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로 회피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친구 사이라면 다르지요. 해야 한다고 생각한 말을 친구에게 하지 않았다면, 그건 당연히 배신감을 줍니다. 불신의 표현인 까닭이에요. 친구가 손가락질님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재단하리라 지레짐작해 정보를 숨긴 셈이니까요. 그건 친구가 아닙니다.”
「엌ㅋㅋㅋ 오늘 친구하나 깨시겠는데」
「꼰머님 꼰머꼰머해여!!」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사이에 손가락질의 것은 없다.
당황해서, 또는 불쾌해서,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모양.
나는 그의 손가락질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눈을 감고 내담자의 마음을 그린다.
NBSC의 힘이, 5초 동안 나를 그의 호수로 데려갔다.
“……손가락질님의 사연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한 사람이, 왜 편견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일까. 친구조차도 이해해주지 못하리라 생각하면서 대체 무슨 수로 오해를 풀 생각인 걸까. 자기부터 다이아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선을 긋고 있으면서, 대체 어떻게 그 흙수저들에게 이해받을 셈인 걸까.”
「손가락질 : 아니근데.. 진짜그게쉬운게아니라서요..」
“쉬운 일은 없습니다, 손가락질님. 경제적인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예요. 일례로 남자와 여자를 들어볼까요? 인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그 성별들은, 서로 경험의 차이로 커다란 몰이해를 겪고 있고, 그래서 서로를 경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정의 골이 대기업 임원 자제와 소년가장 사이의 이질감보다도 더 클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매일 무수한 커플이 탄생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사실을 믿어주세요. 제가 장담합니다. 진심은 분명히 전달돼요. 자, PIP모드로 카톡 들어가세요.”
「손가락질 : 카톡요 」
“들어가서 친구한테 메시지 하나 보내세요. 누구누구야. 정말 미안해. 솔직히 말해서 너한테 이해받지 못할 줄 알았어. 어렸을 때부터 임원 자제라고 하면 이상한 눈총 받았던 경험이 많아서, 너도 그러지 않을까 의심했어. 그래서 얘기하지 못했던 거야. 그게 미안해. 친구라면 믿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는데, 너한테 난 좋은 친구가 아니었어.”
「손가락질 : 아니..그냥 피해의식아니에요 」
“그냥 친구예요. 믿던 친구에게 의심받았다는 감각은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배신감입니다. 그게 정말로 미안하지 않으시다면, 대기업 임원 집안이라고 해서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불평하지 마세요. 그 친구에게는 손가락질님의 편견이 오히려 더 뼈아픈 칼일 테니까요.”
「손가락질 : 으아..너무해요..」
대기업 임원의 가정이라면, 분명 물질적으로 풍족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손가락질 본인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소한 부분에서 남들과는 다른 경험들을 해왔겠지.
그 차별성을 절감하는 ‘흙수저’들로서는 그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지점이 아니다.
편견은 결코 단방향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선다면, 선은 없는 것과 같다.
여유가 있는 쪽에서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봐줘야만 한다.
그 결과는……
10분 뒤, 손가락질의 손가락이 입증했다.
“다음은 손가락질님의 사연……이 아니라 후일담이군요. 꼰마님이 시키신 대로 톡 보냈는데요, 방금 답장 왔어요. 어디서 그렇게 반성문의 정석 같은 걸 배웠냐고 웃어요. 이제 미안해하지 말래요. 제가 친구라고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서 속상하긴 했는데, 저 나쁜 애 아닌 거 믿었대요. 미안하다고 말해준 걸로 충분하대요. 부잣집이어도 괜찮대요. 신기해요……. 신기할 게 뭡니까? 그게 친구라는 거예요. 답이 그렇게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친구가 아니었던 셈이겠지요.”
「ㅋㅋㅋㅋㅋ 좋은친구같음」
「친하게 잘지내여~~」
「손가락질 : 힝.. 고마워요 다시친구못할줄알았어요」
[완전한 공감] 속에서, 나는 손가락질의 마음을 들었다.
그녀는 참 좋은 아이.
차별화된 경험이 만든 편향 속에서 선을 그어왔을 뿐, 사실은 누구보다 선하게 사람을 볼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금수저인 까닭이 아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날아오르는 용이, 반드시 개천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기에.
“이건 사연과는 무관한 얘깁니다만…… 제가 아는 어떤 금수저 친구는,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난 내가 부럽지 않다고.”
「 」
「꼰대타임 끝나고 이제 마스터타임 」
“마스터타임까지는 아니고, 개인적인 소회입니다. 그 친구도 아버지가 대기업 임원이셨대요. 그랬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족을 그리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부모님 얼굴을 못 그렸다고 해요.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임원 목숨이 파리목숨인 대기업인지라, 말단 사원들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셨다고 하더군요. 어머니 쪽도 다른 엄마들과 모임을 열심히 할 뿐이고 아이에겐 관심을 못 줬대요. 그래서 어린 시절엔 베이비시터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손가락질 : 헐..」
「손가락질 : 저도그랬는데..」
“손가락질님도 비슷하셨나요? 신기하군요. 어쨌든 그 친구는, 그게 너무 싫었대요.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했대요. 학원 마치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가 집에 들어가면 엄마아빠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야단치는. 그러지 못하고 집에서 과외만 받다가 잠드는 게 참 싫었다고 합니다. 공휴일도 반납하고 더 윗선의 임원들 모시는 아빠도, 그 부인들한테 저희 애랑은 비교도 안 되네요 같은 아부만 하는 엄마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웠대요. 아빠가 그 회사에서 잘리기만을 바랐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금수저니 뭐니 하면서 부럽다고들 말하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었대요. 친구들이 니가 부자니까 좀 사라, 넌 그런 집이라서 행복한 줄 알아라, 그렇게만 말하는 게 너무 괴로웠대요. 왜 나는 너희랑 다른 건데? 내가 잘못한 거야? 나는 너희랑 친구가 아닌 거야? 아빠 직급을 말하는 순간 남이 돼버리는 거야? 그렇게 힘들어하던 나날 끝에 결심했다는 겁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아빠에 대해 설명하지 않겠다고요.”
「어우 좀 짠하네」
「자수성가형 임원이면 고충이있겠네여」
「손가락질 : 아.. 불쌍해.. 되게 공감되네요..」
물론 공감이 되겠지.
몇몇 사정들만 고친 손가락질 본인의 이야기니.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내 마음은, 동정이 아니다.
나는 그저 우리의 선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흙수저는 금수저 좀 까도 된다고들 합니다. 외식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우리 입장에서는, 너희가 말하는 고민은 사치스런 말장난처럼 들린다고들 합니다. 흑인이 백인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듯 가진 자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논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선은 혼자서 긋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금수저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부자들이 스스로를 귀족 취급하며 그렇게 불렀나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그들과 선을 그었습니다. 부모의 재력 말고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람 사이인데도, 먼저 그들에게 ‘너희가 행운아임을 인정해라’라고 강요했습니다. 그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행운이 아닐 수는 없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아시지요? 행운과 행복이 다름을요. 이를테면 아직까지도 여성의 사회진출에 제약이 큰 몇몇 국가들에서, 남성들은 행운을 타고난 셈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행복일까요? 그들은 무조건 비난만 당하면 되는 것일까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환경이, 선을 그을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닌것같기도하고..」
「에이..그건좀.. 얻는게있으면 잃는것도있어야죠」
「외않됀데 」
「행운 있으면 행복 좀 잃어도 되겠죠머 ㅋㅋㅋ」
이 채팅들 역시 분명 아픔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행복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가치다.
“안 되지요. 저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급 재벌이지만 행복하고 싶어요.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밍아웃 」
「꼰마님이 먼재벌이에여 다기부하면서 ㅋㅋㅋ」
「친구분피셜 떠서 흙수저인거 다압니다~~」
친구피셜이라는 것은 대학동기 정호성의 썰풀이 얘기다.
심심풀이로 구경하던 유머사이트에 나를 노력 없이 성공한 남캠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아주 조금 있었다는데, 그걸 보고 분노한 나머지 내 동의도 없이 사생활을 폭로한 것.
그 덕분에 자수성가의 아이콘 같은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흙수저가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었다.
“저는 재벌입니다. 오성급도 아니고 거의 구글급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사랑 속에 자라나, 세상 그 어떤 이보다도 감정이 넘쳐나거든요. 남들보다 훨씬 많이 가진 마음의 재벌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제 아내와 아이와 동료들과 내담자들이 모두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나쁜 욕심 한번 좀 부려봅시다. 야, 내가 좀 행복하면 안 되냐? 내가 좀 행복할 수도 있잖아?”
「ㅇㅈ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앙마를보았다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아써요ㅋㅋㅋㅋㅋ 까짓거 행복합시다~」
「재벌도 행복합시다 ㅋㅋㅋㅋ」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재벌이라도 행복해야지요. 그래야 그들도 내가 아닌 남들을 위해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는 세상이 오겠지요. 그러니 계급 같은 건 잊읍시다. 누군가 더 많이 가진 자가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해줍시다. 보세요. 저도 여러분 사랑을 먹고 쑥쑥 커서 기부천사 됐지 않습니까? 행복한 사람을 만들어야 행복한 사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손가락질님께 할 말 있으신 분?”
「아웈ㅋㅋㅋㅋㅋ」
「손가락질님 사랑해요~~~」
「손가님 꼰마님처럼 좋은재벌 돼주세여 ㅋㅋㅋ」
「다이아-손 파이팅!!! 」
[손가락질님 별사탕 10000개. 아 진짜 꼰마님은진짜]
“수금각은 이렇게 잡는 겁니다. 후후후. 악마를 보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쳨ㅋㅋㅋㅋㅋㅋㅋ」
원죄 2세대인 카인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깨달았는데도, 인류 최초의 친족살해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써 더욱 먼 동쪽으로 쫓겨나 평생 헤매게 되었다고.
에덴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는 선악을 알았기에 악인이 될 수 있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선해지는 길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길.
그럼으로써 누군가를 반드시 악하게 만드는 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함으로써 악의가 가득한 세상을 추동해왔다.
나는 그렇지 않아야만 한다.
악마처럼 두려운 이가을의 선 안으로 성큼 들어가, 그 고슴도치를 껴안아야만 한다.
그녀가 그로써 올바르게 바뀌기를 바라는 까닭이 아니다.
나와 그녀가 사람으로 마주보기만을 갈망하며, 서슴없이 가시의 바다로 뛰어들 따름이다.
그것이 마음의 재벌인 내 기부.
마음의 흙수저 이가을을, 나는 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