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65장 - 상담사와 각성 (2)
7월 31일 아침에, 첫 탐방의 하이라이트가 업로드됐다.
밤새 편집에 편집을 거듭한 진대수의 작품.
그것이 하루가 지나기 전에 100만뷰를 기록했다.
‘꼰마 vs 양학 플통령 캐삭빵?!’이라는 어그로 덕분에.
사실 대결구도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우리는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맞장구를 쳤고, 그 가운데 양학 방 시청자들의 상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마지막엔 양학이 ‘이젠 형님이 플통령이십니다 인정합니다’라고 말하며 웃기까지 했다.
다만 그 포인트가 오히려 전파의 기폭제가 됐다.
안타깝게도 ‘정병학’이라 불리던 양학.
그러던 그가 내 앞에서 ‘친절학’으로 변모해서는, 시청자들의 고민에 공감하며 친절한 상담을 해주려 노력한 것이다.
마치 꼰마를 만나 다시 태어났다는 듯이.
커뮤니티 게시물이 꼬리를 물듯 재생산된 것도 당연했다.
덕분에 8월 1일이 된 시점에 200만뷰가 완성됐다.
1000만뷰를 돌파한 것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흐른 뒤.
그 시점에는 탐방 하이라이트도 꽤 쌓이고 꼰마 계정의 구독자 수 역시 400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희소식이 가득한 시점.
진대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흠…… 형님. 제가 가만 보면 형님은 BJ를 하기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슴다. 진짜 BJ의 신이 강림한 느낌이야.”
“정말 강림하신다면 상담의 신이 더 좋겠다만, 과장은 하지 마라. 400만 구독자도 1000만뷰도 처음이 아니잖아?”
“예 뭐 최초는 아니긴 한데…… 그리고 이 정도 클래스로 성장하실 거라고 어렴풋이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거든요. 진짜 신기해요.”
“어렴풋이 기대하고 있었다는 게 더 신기한데?”
“저야, 유튜브 계속 분석하고 있었으니까요. 단순히 조회수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거기가. 지속시청률이 어디까지 이어지느냐가 진짜 포인튼데, 형님 영상은 초창기 하이라이트도 거의 90%가 켠 김에 끝까지 봐버렸단 말이죠. 썸네일 말고는 자극적인 거 쥐뿔만큼도 없었는데. 그러니까 각이 나왔죠. 도저히 망할 수 없는 각이.”
“그거야 네가 잘 편집해준 덕분이지.”
“하하. 예 뭐, 저도 10% 역할은 한 거 같아요.”
편집자 진대수는 유튜브 수익 중 10%를 가져간다.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때의 계약.
내 유튜브 채널 수익이 이제는 프리TV 후원금보다도 한참 커져, 그 1할로도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될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일까.
그가 아니었다면 난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텐데.
“대수야. 슬슬 20%로 올리자. 너 집 살 거라면서.”
“아 진짜. 형님, 그건 안 된다니까요? 5월에 9천으로 시작해서, 6월에는 애드센스로만 1억 6천이었고, 7월에는 조회수 인센티브 붙은 PPL도 있고 해서 4억 충분히 찍을 각임다. 10%만 해도 세 달 만에 5천 벌었거든요? 저 벌써 인감도장 만지작만지작 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어떻게 더 받아요?”
“내가 널 잡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천만뷰 영상 만드는 편집자가 흔하겠어? 돈이라도 줘서 잡고 싶다.”
“에이. 이번 영상은 아이디어부터 형님 거였잖어요? 전 솔직히 반대하는 스탠스였고. ‘꼰양대전’은 누가 만졌어도 천만 각이었슴다. 더 주시면 재단에 후원해버릴 거예요.”
“그건 네 자유고. 솔직히 말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서 이렇게 흥미진진한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 있겠니?”
“제가 있습니다, 선생님! 대수 형이 싸가지 없이 비율 올려달라고 그러면 바로 자르십쇼. 제가 편집 잡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바오로 또 들이대네.”
“바울입니다.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 진드기 형.”
손바울을 보며 키득거리는 대수를, 흡연구역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연봉 협상을 시작했다.
“20% 받아. 앞으로 네가 해줄 일이 많아서 그래.”
“진짜 감사하긴 한데…… 형님, 아닌 것 같슴다. 솔직히 저한테야 다 소득이 되지만, 형님한텐 세금으로 빠지는 돈 충당하는 용도잖어요? 그런 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별사탕 수익은 많아야 월 2억이야. 유튜브에서 그만큼만 벌어도 생활비는 나오는데, 지금은 4억이 나오고 있다. 거기다 일주일 만에 구독자 100만이 더 붙었어. 그게 다 네 덕분이야. 당연히 수익을 나눠야지.”
“제 덕이 아니라니까요. 이번 꼰양대전만 해도 그래요. 형님이 구상하셔서 형님이 시작하셨고, 전 구경만 했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국내 400만 구독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지만, 힐링 계통으로는 최초예요. 형님이 가시는 길이 왕도입니다. 디렉터랍시고 제가 할 일이 없어요.”
“아니지. 나한테는 다른 BJ들 시청자 분석하고 탐방 갈 곳 리스트업 할 여유가 없어. 모든 걸 네가 해줘야 해.”
“그건 그런데…… 그래도 20%는 과해요. 진짜 반 뚝 떼서 대민재단에 보내버릴 겁니다.”
“그거야 네 자유래도. 그렇게 해라. 나야 고맙지.”
고개를 갸웃거린 뒤, 대수는 화들짝 놀란 투로 물었다.
“설마, 출연금 분산 전략? 더 많이 기부하고 싶은데, 형님은 이미 세제 한도 한참 넘게 내고 계셔서 더 기부해버리면 세금 감당하기가 힘드니까, 차라리 사업자로서 인건비 처리한 뒤에 제 손으로 기부하게끔 만드시려는 거?”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소오름. 형님, 제갈공명이세요?”
“그런 생각은 안 했다니까. 그냥 주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너한테도 기부는 좋은 경험일 거다.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식하면, 그 관계 속에서 마음의 각성 효과가 나타나.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돼서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거야.”
“엥! 저 지금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
“지금도 참 좋은 녀석이지. 그렇지만 너 자신에게 아무 자부심이 없잖니. 그래서 은진이한테 답장도 안 하는 거잖아.”
“앗…… 아닌데요?”
“셜록꼰즈 앞에서 숨길 생각 마라.”
“잉…….”
대수의 호수에는 송은진이 살고 있다.
BJ와 편집자로서 의지하며 ‘썸’을 탔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단정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게 됐다고.
그 원인은 자격지심.
진대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저주하며 살고 있었다.
계기는 과거 송은진이 겪었던 로맨스 스캠 의혹.
당시 그녀에게 푹 빠져 있던 대수는, 그 민감한 문제를 사촌인 진갑수 대표에게 가져가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호통 속에 쫓겨나고 만다.
대신 문제를 해소해준 것은 참견쟁이 만년부장이었고.
그 과정에서, 진대수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정말 송은진을 믿었다면 더 강하게 나갔어야 했다고.
마음속에 의심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위로하지도, 최선을 다해 지켜주지도 못했던 거라고.
그렇기에 송은진의 순정을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의심한 것이 아니라, 잠시 머뭇거렸을 뿐임을 모르고.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 짝사랑 아닌 짝사랑.
그 부분이 못내 안타까웠다.
남들 고민은 다 해소해주면서 정작 내 곁의 동료는 후순위로 미뤄둔 것이, 심정적으로 미안하기도 했고.
“내일 한 교수님하고 임 여사님 모시고 식사 한번 할 거야. 은진이랑 수아도 동석할 거고. 너도 나와라.”
“어우…… 끝사랑의 맞선 자리 아님까? 거길 제가 왜 가요?”
“프로불참러 되지 말고, 수아 보호자 입장으로 나와.”
“수아 보호자는 형님 아니심까?”
“난 교수님 모셔야지. 수아는 네가 챙겨라. 나레이션 관련해서 연락 자주 한다며?”
“그거야 공적으로 피드백 주고받는 것뿐인데요?”
“이번에도 공적으로 나와. 안 오면 수익배분 안 올려준다.”
“아니…… 올려주시지 말라니까요?”
“아니시에이팅 하지 말고, 나오라면 나와.”
“아니, 이런 꼰머…… 푸핫.”
시원하게 웃은 뒤, 진대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하여튼 형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아냐. 그냥 흔한 꼰대다.”
“하하. 저 있잖슴까? 바울이, 원래 되게 싫었거든요.”
처음엔 싫어했었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라면서, 제발 원룸에 데려오지 말라고 사정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요새는 바오로라고 부르며 친동생처럼 대하는 중.
“애가 지멋대로 촬영 따라오고 그래서 좀 역했었는데, 그냥 형님이 불쌍하게 여기시는 애라서 봐줬던 거거든요. 그랬는데 요즘 보면…… 확실히 괜찮은 구석이 있다 싶어요. 형님이 왜 좋은 애라고 하셨는지도 좀 알 것 같고. 근데, 그게 정말로 손바울이 좋은 애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슴다.”
“……말이 모순되는데?”
“과정이 있다는 거죠, 제 말은. 처음엔 진짜 별로였어요.”
“별로인 사람은 없어, 대수야.”
“예, 예. 나쁜 사람 없다는 말도 이젠 믿을 수 있을 거 같어요. 형님 옆에서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라다니면서,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제 느낌엔 그랬어요.”
“그래. 관계 속에서 바람직한 모습을 되찾을 수는 있지.”
“하하. 그걸 되찾는다고 표현해주시는 게…… 원래 나쁜 새끼가 아니라 잠깐 흔들렸을 뿐이라고 말해주시는 게, 참 좋슴다. 그래서 저도 좋은 사람 됐나 싶을 때가 있어요. 지금도. 진짜 20% 받기 싫거든요. 돈 밝히던 내가, 연봉동결이라니!”
“원래 좋은 녀석이었다. 그걸 알아서 편집 맡긴 거야.”
“하하. 그래서…… 뭐 노력은 해볼게요. 내일 수아 픽업하면 되죠? 거기까진 오케이요. 자, 들어갑시다. 우리 바오로 혼자 또 제 컴 뒤지고 있겠어요. 빨리 가서 적발해야지.”
원룸에 들어섰을 때, 손바울은 과연 진대수의 디렉터석에서 인터넷 탐색 기록을 뒤지고 있었다.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은 당연한 수순.
그렇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미움은 보이지 않는다.
노르아드레날린보다는 도파민이 더 많아 보였다.
저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가 다름을 분명히 인식해, 그로 인해 가까워지기 싫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가 된다.
증오보다는 애정으로 함께 걷게 된다.
그런 공생 속에서 우리는 정서의 부자가 된다.
도파민의 각성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나로 이끌어준다.
그렇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사람을 찾는다.
혼자서는 미움의 화신밖에 되지 못함을 잘 알기에.
관계를 상실한 호수는 이윽고 썩은 냄새를 풍긴다.
물론 공존이 불편할 때도 있다.
서로에게 서로가 괴로움을 안기고 마는 순간.
좋아하던 사람과 함께 있음에도 소외감을 느끼고, 자괴감에 시달리고, 미움 속에서 헤어짐을 생각하게 되는 시기다.
주로 연인들이 권태기란 이름으로 그것을 구체화하곤 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콩깍지의 호르몬’인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가 줄어들며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하지만 호르몬이라는 것도 결국은 신경계의 결과물.
어떤 권태기도 도파민을 막을 수는 없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라면, 콩깍지 속에서 무시했던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의 발견으로 종종 실망하더라도, 이내 울고 웃으며 사랑을 외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 탐방하기로 한 준태X세나 방이 좋은 사례.
BJ 최장수 커플인 한태준과 정시내는, 한때 오해 속에서 헤어짐을 준비했지만, 내 도움으로 재결합에 성공했다.
그들의 합동방송이 오늘 탐방하게 될 첫 목적지였다.
[야, 시청자 갑자기 늘어난다. 들어오셨나?]
[들어오셨나봐! 소리, 소리.]
[꼰마님 방송 사운드…… ON!]
[부장님, 어서 오세요!]
“……어, 반겨줘서 고맙다. 혹시 예지력이 있니?”
[하핫. 부장님 방송 요새 재밌다고 해서, 이쪽 모니터에 켜놓고 있었거든요. 오늘 탐방할 데가 커플 방송이라고 해서 바로 알았어요. 저희가 또 프리TV 대표 커플 아닙니까?]
[꼰마님, 왜 이제 오셨어요? 저희 방송부터 오셨어야죠!]
“음. 그 얘기를 요새 여기저기서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잘 모르는 BJ들부터 많이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은 게임방송이나 먹방 위주로 다녔습니다.”
[너무해. 저희 주례도 봐주셔야 되는 분이.]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주례는 좀……”
[신랑, 신부를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해주세요.]
“시내 씨. 제 방송에는 솔로 시청자도 많아서요.”
[아 한번만요. 빨리요.]
“……신랑, 신부를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아이고…….]
[대답 안 해?]
[예에…….]
[똑바로 안 해? 오빠 목에 키스마크 좀 남겨줘? 이 여름에 목폴라밖에 못 입게 만들어줘?]
커플척결을 외치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민심을 위해서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아시다시피 제가 탐방 돌면서 각양각색의 고민 사연을 받는 중입니다. 우리 ‘준나’ 방 시청자 분들께서도…… 아, 벌써 하나 올라왔네요. 준나좋아님 사연인데요.”
[저 형, 저희 진짜 오래 응원해준 형이에요.]
[꼰마님, 상담 잘해주세요!]
“예. 그럼 한번 읽어보지요. 안녕하세요, 꼰마님. 준나 방에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이라이트로만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저 마침 요즘 고민이 있었거든요. 제가 깨 볶아야 되는 신혼인데 식성 때문에 힘들어 죽겠습니다. 와이프가 매운 음식을 진짜 좋아해요. 떡볶이도 엽기적인 거 아니면 안 먹고, 전에는 둘이 먹다가 하나는 죽는다는 매운 돈가스 먹으러 가서 진짜 반쯤 죽어서 나왔습니다. 전 매운 거 진짜 젬병이거든요. 그래서 진지하게 우리끼리는 멀쩡한 거 좀 먹자고 했는데, 안 된대요. 그것도 못 맞춰주면서 어떻게 맞추고 살 거냐면서요.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맞춰주면서 자기만 배려받으려고 그러잖아요.”
「아 매돈 그거 뒤지지 ㄷㄷ」
「..늬들은 결혼하지마라.. 진심이다..」
「시발새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왜라고 물어봐야지..」
「왜」
「그냥 하지마 이 시발새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방송 애청자들은 인터넷 밈으로 신나게 떠들고 있다.
그에 비해 준나 방 채팅창은 진지한 분위기.
연애 7년차임에도 깨 볶는 커플 합방이라서, 애초에 솔로보다 커플 시청자가 훨씬 많은 듯했다.
「이건좀아니지않나 매운거싫어하는사람한텐 통증인데」
「근데 매운거좋아하면 딴거는 진짜 맛없어여」
「매돈급까지 가면 너무 과한거아님 」
「애낳으면 먹고싶어도못먹을텐데 지금먹어야죠~」
「근데 신혼때 데이트하다 땀 뻘뻘흘리면 별로잖아여」
「먹고 물티슈로 닦으면됨 배려해줘도 될거같음」
「그냥 아내분이 안매운거 계속 먹으면서 익숙해지면 될거같은데요」
「안돼여 매운거에는 매운거의 쾌감이있어여 남편분이 그걸 이해해주면 다 해결될거에여」
그 채팅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사랑과 차이와 배려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는 조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오해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 우선은 매운 음식의 선호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한국인은 매운 음식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과한 경우에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요. 그건 왜 그런 걸까요? 알고 계신 분?”
「유전적인거 아님? 보통 여자들이 환장하던데」
「남자들도 좋아하지않아여? 남친이 짱잘먹음」
「ㄴㄴ 남자는 싫어하는사람이 훨많아여」
「맞아 여자중엔 매운거싫다는사람 한명도 못봄」
「여자들이 약간 M성향인가 」
「여자들 좀 그런거있음 ㅋㅋ 통증을 즐겨 ㅋㅋ」
“남녀의 차이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은데, 어디 꼰대마스터 앞에서 꼰대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나? 여러분은 의견만 내면 됩니다. 결론은 누가 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꼰마님여」
「여윽시 플통령.. 개쎄다..」
「꼰마님 빨리 얘기해줘요 위키마려움」
“위키피디아에도 아마 안 나왔을 것 같은데…… 정신건강의학적으로는 이런 분석이 있다고 합니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세로토닌과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해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데에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다시 여쭤보죠. 왜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할까요?”
「스트레스 많이받는사람이 좋아하나 」
「여자들이 좋아하는이유가있네요 스트레스를 더받아서」
「남자들도 많이받음 그냥 술담배로 푸는거지」
「술담배 남자들때매 여자들이 더스트레스받음!!」
……뭐든지 남녀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요즘 메타랬지.
아무래도 질문보다는 해답을 줘야 할 듯했다.
“다 틀렸고, 이런 겁니다. 우리가 뭉뚱그려서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종류가 있어요. 세로토닌은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의 균형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져 있지요. 그게 핵심입니다.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은, 불안감보다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은 세로토닌의 부족으로 인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요.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경향성의 문제입니다.”
「오.. 뭔가 일리있네요」
「맞아요 ㄹㅇ빡칠때는 매운거보다 소주 ㅎㅎ」
「ㅇㅇ 약간 짜증나고 애매할때 매돈먹으면 풀림」
「준나좋아 : 마자여 와이프가 대인관계 분위기? 그런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서 맨날 저한테 그런얘기만 해여」
“그렇군요. 예. 특정한 상황에 분노하는 경향이 큰 사람도 있고, 인간관계 속 서운함 등 사회적 관계에 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거기에 체질적으로 캡사이신에 강하거나 취약한 등의 차이가 가미될 거고요. 그걸 어떤 집단의 문제로 치환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준나좋아님 사연 같은 경우에는…… 확실히 해결이 필요해 보이네요. 매돈이란 걸 먹어보진 않았지만, 부하직원 중이 그거 먹고 와서 저녁까지 헐떡거리던 걸 본 적이 있거든요.”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나좋아 : 진짜 피똥쌈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 해결법은 단순합니다. 아내 분이 불안감 느끼지 않게 해주세요. 그거면 앞으로 피똥 싸실 일이 줄어들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쭤보죠. 아내 분은 원래 매운 걸 좋아하셨습니까, 아니면 결혼 뒤에 그런 경향이 강해졌습니까?”
「준나좋아 : 어.. 원래도 좀 좋아하긴 했는데.. 결혼하고나서 약간더 심해진듯한..? 결혼하고 인테리어 직접 한다고 집에만 있는데요, 처음엔 좋아하다가 요샌 좀 귀찮대요.」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집의 채광 상태는 어떻지요?”
「준나좋아 : 채광요?? 고층빌딩에 가려서 좀.. 왜요 」
‘조정 호르몬’ 세로토닌은, 마음속 호수의 평화유지군이다.
과하면 독재고 부족하면 무정부.
어디까지나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만, 적절한 행복감과 적절한 긴장 상태를 조절해,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준나좋아의 아내는 무정부 상태인 듯했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되고, 그것이 세로토닌의 분비를 돕습니다. 실내에 오래 있거나 흐린 날에 우울해지는 게 그런 까닭이에요. 그에 더해, 결혼 후 집에만 있는 생활도 문제입니다. 그전까지는 친구들과 약속도 잡고 자기계발도 하며 여러 가지 즐거움을 느끼셨을 텐데, 그게 갑자기 뚝 끊긴 느낌을 받으셨을 테니까요. 신체가 불만을 느끼고 우울감을 강화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지요. 문제는 매운 음식 쪽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자기 스스로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라고 해도 될 거예요.”
「와우 ㄷㄷ 그게그럴수도있구나」
「준나좋아 : 으아.. 글면어떡해요?? 계약 한참남았는데 이사갈수도없는데.. 저는 낮에는회사에만있는데.. 어떡해요 」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점심때는 휴게시간 있잖습니까? 그때마다 불러서 채광 좋은 테라스에서 데이트하세요.”
「준나좋아 : 아.. 회사사람들이랑 먹어야되는데..」
“그런 비인도적인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딴 부조리가 중요합니까, 사랑하는 아내가 중요합니까? 까라면 까세요.”
「준나좋아 : 으엌ㅋㅋㅋㅋㅋ 아진짜 꼰머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네」
「근데 아내가 진짜좋아하겠네여~」
「잘풀렸으면좋겠다!! 담에후기올려줘여!!」
호수가 불안하게 출렁거리는 것은, 햇볕이 가려진 탓.
강아지라도 입양해서 산책이 강제되면 조금은 나아지리라.
그러나 세로토닌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인 빛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태양보다도 화사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걸어가야 한다.
정서가 넘치는 오아시스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