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80화 (180/200)

# 180

65장 - 상담사와 각성 (1)

「ㅋㅋㅋㅋㅋ아저씨 고생했음여」

「꿀잼이었음ㅋㅋㅋ 놀러갈게요」

「우리 양학이 좋게봐줘서 고맙슴다」

「플통령님 앞으로도 방송 계속해줘요~」

양빡이들의 작별인사를 들으며, 나는 괴이쩍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순조로울 줄은 몰랐는데.

‘피로’로 인해 능력치가 꽤나 떨어진 상태라서, 양학 방 원정 상담에서는 극복해야 할 갈등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암시 구조화]로 바꾼 분위기는 일시적이니.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 건의 상담이 전부 유튜브 각이었다.

정신이 또렷하고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맑아, 지금이라면 이가을이 나타나도 두려울 게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본방송의 후원자들 역시도 비슷했다.

탐방을 마친 직후에 전자녀 목소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마구니님 별사탕 5000개. 감동했습니다. 좋았어요.」

「케바케님 별사탕 2000개. 꼰마님 겁나 멋져브네요.」

「dosena님 별사탕 3000개. 역시는 역시. 사랑해요.」

「꼰마야놀자님 별사탕 500개. 최고예요 진짜. 어제보다 오늘 더 멋진 꼰마님 너무 좋아요. 너무 보고 싶어요.」

……이게 이렇게까지 환호를 받을 일인가.

양학 방의 시청자들까지 내 애청자로 끌어들임으로써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보기 싫어하던 BJ를 20분 동안이나 보게 강제한 컨텐츠였는데.

그게 너무 당황스러워 상태창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예상치도 못한 변화가 눈에 띄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6 (70/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100

환기 : 100 / 지도 : 69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크리스마스 캐럴” (진단 +10)

“증거기반 개입” (외모 +10)

“호밀밭의 파수꾼” (화술 +10)

‘피로’ (관계-15 진단-22 화술-24 외모-31)

‘각성’ (관계+15 진단+22 화술+24 외모+10) 」

새 스테이터스가 ‘피로’의 페널티를 거의 만회하고 있다.

‘외모’는 아직 21 감소된 상태지만, 그거야 다크서클과 푸석푸석한 피부 때문일 터.

나는 초인적인 기본기의 상담사로 돌아와 있었다.

‘각성’ 덕분에.

각성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필로폰 등 각성제에 의한 피로 억제와 집중력 향상 작용이다.

이때는 며칠 밤을 지새운 사람도 푹 잔 것처럼 행동한다.

암페타민이 ADHD의 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이 이런 각성 작용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각성제를 복용한 적이 없는데.

오늘은 커피조차 한 잔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도파민 때문이려나.

도파민이란 것은 아드레날린의 전구체(이전 단계).

과하면 조현병이 되고 부족하면 파킨슨병이 된다.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로서, 운동 조절, 인지, 기억, 행복감, 식욕, 성욕, 창의력 등 무수한 활동에 관여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기능하는 근원인 셈.

사랑에 빠지고 감동하는 모든 일들이 도파민의 힘이다.

그렇기에 시중 진통제의 수십 배 효능을 가진다.

이용덕이 말했던 것처럼, 이 도파민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칼에 찔리면서도 가해자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도파민은 일명 ‘신의 마약’으로 불린다.

실제로 암페타민류 마약이 이 도파민 촉진제.

노력 없이 자원을 얻는 치트키처럼, 체내의 마약을 과다분비시킴으로써 인지능력을 증가시키고 행복감을 고취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망가진 도파민 수용체로 인해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편법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감동적인 경험을 했을 때, 예술적인 희열이나 지적인 깨달음을 얻었을 때, 도파민은 커다란 행복을 보상한다.

그렇게 도파민이 증가하면 피로 따위는 무의미해진다.

아프거나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도 웃을 수 있다.

보름째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나 역시 마찬가지.

의욕과 자존감이 넘치고, 보이는 모든 것에 사랑이 샘솟아, 비로소 내가 나답다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박 로저스’가 되었다.

사랑이 넘쳐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못하는.

그러니 참 한심한 일이었던 거지.

가짜 수용제인 서브퀘스트의 메시지만 추구하던 때에는,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흐려졌다.

피로가 가속되고 부정적인 마음이 커져간 것도 당연했다.

손바울의 미소도 그것 때문이었으리라.

어딘지 일그러진 채 상담에만 몰두하던 나를 보며, 예민한 그 아이가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그것이 회복된 각성의 순간에는 절로 웃음이 났을 것이다.

비로소 그가 믿던 스승이 돌아온 것이니.

이것이다.

이것이 진짜 나다.

정서의 가난을 몰아내고 마침내 행복을 전달할 수 있는, 내 자아가 평가받아야 할 가장 진실한 형태다.

그러니 인문학적으로도 적절한 표현인 거지.

도파민은 인간을 ‘각성’시킨다.

나답게 보고 나답게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풍요로운 도파민 속에서는, 어떤 사람도 타인을 괴롭히거나 범죄로 이득을 추구하려 들지 않는다.

도파민의 행복 앞에서 악행의 쾌감이 너무도 미약하기에.

악의가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흐릿해져, 오직 너그러운 사랑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 아들러의 목적론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내면의 용기로 자신의 목적을 이해한다면, 그 깨달음이 도파민의 분비로 이어져, 자연히 문제행동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와 맥락이 같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인 왜곡만큼은 유의해야 할 일이겠지만.

방송을 끝마친 뒤, 진대수가 그런 맥락의 말을 꺼냈다.

“형님…… 크으. 진짜 형님은 뭐 하시는 분입니까? 전투민족 ‘프리어인’ 중에서도 호전성 최강이라는 양빡이들을, 교화시켜버리시다니……! 제가 진짜 크게 개안을 해부렀습니다. 오늘 잠이 안 오겄어요. 바로 편집 들어갑니다잉!”

“케바케 내담자 말투 따라하는 거야?”

“아따, 지도 사투리 쓰면 잘 쓰지라!”

감동적인 경험으로 인한 도파민의 분비.

110으로 회복된 ‘진단’이 그것을 알아본다.

아마 편집하는 내내 졸림을 느끼지 못할 듯했다.

그런 한편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각성도 볼 수 있었다.

자정이 되어 서재에서 켠 새벽 라디오의 첫 사연이었다.

“안녕하세요, 꼰마입니다. 반갑습니다. 벌써부터 많이들 들어와주고 계신데…… 이 새벽 라디오는 후원도 인사도 없이 그저 고민상담만을 진행합니다. 아, 원유님의 사연이네요. 저 빡치는 일 있어서 잠이 안 오는데요. 경기도 살아서 새벽에 출근해야 되는데 도저히 못 자겠어요. 어떡해요?”

인간의 감정을 좌우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셋이라고들 한다.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그 관계를 아주 개괄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도파민은 사랑을, 노르아드레날린은 미움을, 세로토닌은 둘 사이의 균형을 관장한다.

원유의 사연은 그중 노르아드레날린의 각성을 암시했다.

우리는 때로 분노와 증오로 피로를 잊기도 한다.

사랑의 대척점인 감정이 유사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다.

반대 성향의 꼰마와 양학이, 양쪽 모두 플통령이라 불리며 무수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그러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미움으로 각성한 이들은,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생동감과 활력을 느끼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원유님. 방송 켜자마자 사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통화 연결해도 괜찮을까요? 음성은 제가 이쪽에서 변조를 하겠습니다. 쪽지로 톡 알려주시면 연락드릴게요…… 예, 왔네요. 바로 연결해보겠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프트웨어적으로 변조된 음성은, 듣기 어색했다.

그렇지만 NBSC의 청력은 그 안에 담긴 분노를 읽어낸다.

적어도 장난으로 보낸 사연은 아닌 듯했다.

“예. 반갑습니다, 원유님. 제 방송은 처음이시죠?”

[예…… 전에 하이라이트는 한 번 봤는데, 방송 보지는 못했는데요. 제가 퇴근할 때는 롤챔스를 주로 봐서…….]

“아, 롤챔스 팬이시군요.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에 출근하시려면 슬슬 주무셔야 할 시각인데, 목소리가 생생하시네요? 정말 불쾌한 일을 겪으셨던 모양입니다. 상담을 위해 그 내용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예…… 상사 때문에요. 그 개년이…… 아, 욕하면 안 되죠?]

“상담을 위해 솔직한 심정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 조금만 순화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예……. 그 인간이, 평소에도 저 싫어하는 건 알았는데, 오늘은 여직원들 모아놓고 제 뒷담을 했더라고요. 제가 전에 성형한 여자 싫어한다는 말을 한 번 했었는데, 대놓고 그랬대요. 멍청한 남자들 중에 성형 싫다는 애들이 있다, 성형은 자기만족일 뿐인데 지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한다고 착각하는 거다, 지들이 뭔 심판관인 줄 안다, 이러고요. 그냥 이상형 얘기 하다가 제 취향 말했을 뿐인데. 존나 빡쳐요 진짜.]

“그러실 만도 하네요.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으셨나요?”

[아뇨. 거기서 그 얘기 들었던 동기가 말해줬어요. 근데 제가 잘못한 거라고, 앞으로 성차별적인 발언 주의하라잖아요. 걔도 짜증나요. 그냥 개인 취향인 건데, 뭐가 차별이라고. 이딴 걸로 감정소비하는 것도 진짜 빡치고…… 여초 회사 진짜 못 다니겠네요. 걍 이직하는 게 나을까 싶기도 해요.]

“그렇군요. 밤잠을 설치시는 것도 당연한 상황이네요.”

소위 ‘감정소비’라는 말은 분비된 도파민의 재흡수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분비되는 도파민은, 부정적인 경험 속에서는 재흡수되어, 그로써 우울감을 강화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부정적인 환경을 증오하고 회피한다.

그 환경의 판단이 인지심리학적으로 과장되고 왜곡되기에, 때로는 무시해도 좋을 상황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상사 입장에서는 아마 장난스런 호박씨였을 것이다.

진지하게 비난했다면, 동기가 전달해주지도 않았겠지.

그렇지만 장난이라 해도 정도는 있는 법.

원유가 불쾌감에 치를 떠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벼운 위로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사연.

[암시 구조화]의 대상이 된 적 없는 내담자니 억지로 안정감을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효능은 한시적이다.

지금은 갈등의 근원을 들어야 할 때였다.

“우선은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여쭤보고 싶네요. 원유님께서는 ‘성형수술 한 여자’들을 싫어하시는 겁니까?”

[그거요? 아니 그냥…… 남자도 싫은데요. 아니 그니까, 진짜 외모에 뭐 화상이나, 흉터나, 안검하수나, 그런 것처럼 수술해야 될 이유가 있으면 그건 인정이죠.]

“그렇다면 성형수술 자체를 싫어하신다고 이해해야 맞겠네요.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싫어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예? 아니 그냥…… 그냥 싫은데요?]

“심리학적으로 ‘그냥’이란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걸 평가하기 위해 여쭤보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말빨이 좀 되거든요. 그 상사랑 혹시 설전을 벌이게 됐을 때 써먹을 비법이 있어서 그래요.”

[어…… 그 마녀랑 말싸움 할 거면 그냥 그만두는 게 나을 거 같긴 한데…… 그냥 그런 생각은 있어요. 성형이란 게, 요즘은 많이 싸지기는 했지만, 먹고 살기 빡센 애들한테는 거의 불가능한 거잖아요? 그니까 이게…… 자본주의가 외모까지 양극화시키는? 근다고 뭐 제가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닌데, 그래도 돈으로 뭐든지 한다는 건 좀 싫지 않아요? 돈 많으면 학원 이빠이 다닐 수 있고, 유학도 맘대로 갈 수 있고, 생활비 걱정 없이 석박사까지도 갈 수 있잖아요?]

말하는 과정에서 점점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던 내면의 인지도식이, 노르아드레날린이 강화한 비판적 사고 속에서 실타래를 풀어냈다.

[그것만 해도 벌써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졸라 부러운 환경인데, 그나마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외모까지, 후천적으로 지들이 더 낫게 되고 싶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거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닙니까? 자기만족? 그냥 취미생활 하면 안 돼요? 꼭 수술해서 남한테 보여지는 외모를 바꿔야 자기만족이 되는 거예요? 저희 누나는요…… 그 자기만족이란 거 하고 싶어했어요. 성형은 말고요. 그딴 건 관심도 없고, 그냥 남들처럼 교환학생이라도 한번 가보고 싶었대요. 근데 항공권에 생활비에 돈 최소한 수천 깨지고, 학생비자라 일도 못 하잖아요. 누나는 한국에서 과외 몇 탕씩 뛰면서 우리집 빚 갚고 있었는데. 그래서 못 나가봤대요. 개나 소나 다 가는 해외여행을, 누나는 제가 첫 월급 타서 보내줄 때까지 못 가봤어요.]

“……그랬군요.”

[예. 그런 사람 아직도 한국에 많아요. 아저씨도 알죠? 근데 그년은…… 뭐? 자기만족에 수백 수천을 써? 그럴 돈으로 장학재단 같은 데 기부라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걸로는 그 대단한 자기만족이 안 느껴지나? 그리고 대체 뭐가 자기만족인데요? 한국에서 외모 잘생기고 이쁘면 얻는 게 얼마나 많은데, 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개소리야? 지들 성형한 외모 때문에 면접 붙으면, 원래 붙었어야 됐는데 떨어진 애들은? 썸 타고 있던 애가 성형한 애 보고 마음에 들어서 대시하면, 원래 사귈 뻔했던 애는? 자기만족 때문에 피해를 입는데요? 그렇게 실제로 이득을 볼 거면서, 남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라고 변명만 하면 다예요? 학생 때 컨닝하는 것도 자기만족이겠네요? 성적 콤플렉스 있던 애들은 한 번이라도 잘 받고 싶을 거 아냐? 근데 그게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 그건 자기만족이라고 자위하면 안 되잖아요?]

성형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라면 편법쯤은 될 수 있다.

사소하게는 SNS 팔로워 수부터 시작해, 사적이고 공적인 모든 인간관계에서 큰 이득을 얻게 될 테니.

성형수술로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그렇다.

심리학적으로는, 외모지상주의 사회 속에서 남들보다 우월해지길 바라는 내면의 충동을 드러내는 발화법.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혼자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말이 좋아 ‘자기’만족이지, 근원을 살펴보면 자기를 타인에게 보임으로써 얻는 충족감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가진 왜곡이 바로 그 지점이다.

아들리안은 개인이 개인으로써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인 이상 열등감 속에서 허덕이기 마련이되, 용기를 갖고 노력하면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담사의 신뢰와 사랑을 통해 내담자를 돕고자 하는 인간중심치료와는, 일견 유사해 보이나,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들리안은 말한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트라우마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원인론적 진단을 하면, 그건 핑계에 불과하며, 개인이 변화를 거부했을 뿐이라 반박한다.

여기에는 아들러 개인의 경험담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 병약했으며 만능의 형과 비교하며 괴로워했음을 근거로, 스스로를 ‘열등감의 화신’이라 일컬었다.

그럼에도 더 나아지겠다는 ‘목적’을 품었기에 노력을 통해 우수한 학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거기서 ‘야, 너도 할 수 있어’를 외치는 목적론이 나왔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보다는 아들러를 좋아하는 편.

그의 인지도식이 아들러 성향의 내담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다.

임신을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남성 같은.

군대를 4박5일 캠프쯤으로 치부하는 여성 같은.

아들러는 어린 시절 매일 밤 얻어터지거나, 성폭행을 당하거나, 감금을 당하거나, 전쟁터에 나선 적이 없다.

병과 사고로 고생했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지만, 그에게는 그를 끔찍이 아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행복해 보일 환경.

그럼에도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개천에서 난 용인 내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되는데 다들 노력을 안 해서 서울대 못 오네요’ 말했다면, 옳은 일일까.

나와 유사한 학생이라면 그 말로 용기를 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가정에서 형성해줬어야 할 최소한의 집중력조차 함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이야기가 된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까지만 보는 법이다.

내 경우엔, 아들러보다도 훨씬 더 행복하게 자란 사람.

원래대로라면 원유의 마음을 짐작도 못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NBSC가 있다.

그렇기에 원유의 호수가 시야에 담긴다.

용기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괴물, 트라우마의 모습이.

“원유님은…… 누나를 보며, 괴로우셨습니까?”

[……저요? 제가 왜요? 힘든 일은 누나가 다 했는데. 저 대학 입학할 때는 빚도 다 갚아놔서, 전 공부만 했는데요.]

“그런가요? 무척 괴로워하셨던 것 같은데. 그렇게 들렸어요. 누나는, 원유님께 마치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엄마가 없긴 한데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물어본 겁니다. 누나는, 살아 계시지요?”

[당연하죠. 옆방에…… 근데 그건 왜요?]

“그 누나한테, 참 이래저래 죄책감이 많지요?”

[그거야…… 왜 물어보시냐니까요?]

사실은 한참 상담해서 근원까지 치유해주고 싶지만……

다른 시청자들의 사연도 쌓여가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편법을 좀 써야지.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원유

주제 ‘죄책감’

> ‘절름발이’ 」

……나는 알고 있다.

수술로 해소되지 않는 장애처럼, 트라우마가 실재함을.

그리고 그를 극복하게 해주는 용기란, 개인의 것이 아님을.

열등감에 시달리던 어린 아들러가 장애인 서커스 곡예사를 보고 용기를 품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살인자로 치부하며 저주 속에 살던 박대민을, 진주희라는 여인이 치료해줬던 것처럼.

원유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깨달음이 아니다.

울분에 가득 찬 그에게는, 도파민의 각성이 필요했다.

“그럼 됐네. 전화 끊고 누나한테 가요.”

[예? 아니, 뭐예요? 상담 안 했잖아요?]

“거의 다 했습니다. 내일 회사 가면, 그 동기랑 티타임 좀 해요. 오늘 원유님 입으로 얘기했던 것들 중에서 핵심적인 부분들만 추려서 얘기해요. 그러면 분명히 이해해줄 겁니다. 왜 성형수술을 부정적으로 봐야만 했던 건지. 상사하고 직접 풀려고 하면 답 없어요. 3자를 통해야 됩니다.”

[아니…… 그건 원래 그러려고 했고, 잠이 안 온다니까요?]

“그래서 말했잖아요. 누나한테 가라고요. 가서 딴소리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얘기하세요. 미안해, 누나. 고마워, 누나.”

[예? 아니 그게…… 아저-]

전화를 끊고 다음 사연으로 이행한 뒤, 15분.

원유는 전자녀의 목소리로 마음을 전했다.

[원유님 별사탕 100개. 충천 첨해보네요. 열받아서 다시 전화하려다가 참고 시키는대로 해봤는데, 좋네요. 잠은 안 오는데 걍 좀 걍. 이거는 후원하실때 보태주세요.]

“사랑합니다, 후원자님. 다음엔 저녁방송 때 와요.”

「원유 : 아 태세전환 우디르냐고요 어이없어ㅋㅋㅋ」

우디르급이 아니라 우리급 태세전환인데.

우리는 단수가 아니다.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관계와 신뢰와 사랑만이, 우리를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것이 각성한 박대민의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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