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64장 - 상담사와 실수 (3)
중학교 3학년 시절, 대부분의 친구들은 덩치도 크고 공부도 곧잘 하는 나를 학생들의 리더로 떠받들었다.
나 역시 그 평판을 즐겼고.
중학생 오블러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처지.
그러나 그의 사연을 들으며, 그 무렵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배추를 판 돈 중 500원을 떼어 쥐어주셨다.
학용품 사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리더 노릇을 즐기던 나는 처음으로 친구들 군것질이나 시켜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방과후에 가방을 확인해보니 돈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히 친구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대체 어떤 놈이 대민이 돈을 훔쳤냐며 수소문을 시작했다.
말이 수소문이지 거의 검문이었다.
교문 앞에 몇 명이, 뒷산으로 이어지는 개구멍 앞에 또 몇 명이 가서 버티고 선 채, 의심스런 동급생들을 겁박했다.
어리숙한 꼬마들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범인에게 내 돈의 소재를 알려준 공범을 금세 붙잡아, 그 아이를 안내역으로 앞세운 채 범인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는 내내 나는 말 없이 뒷짐 지고 서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만족하며.
용돈을 도둑맞은 일에 화가 나기보다는, 친구들이 날 위해 애쓰는 모습에 흡족해했다.
어차피 그 친구들을 위해 쓰려던 돈이었으니까.
그렇게 적국의 영토로 원정을 떠나는 길.
포로의 걸음은 실개천으로 향했다.
인적은 줄어들었고, 그 대신 길가의 수풀이 우거졌다.
그렇게 주소지나 제대로 등록되어 있을까 싶은 판잣집 앞에서, 발견하게 됐던 것이다.
날벌레 많은 텃밭에 퍼질러 앉아 빵을 삼키는 범인을.
내 돈의 용처를 짐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충격적이었다.
가난한 동네였긴 해도 그런 집은 처음 봤다.
그래서 뭐라 말도 못 한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
범인 역시 나를 발견하곤 몹시 당황한 듯했다.
몸집이 작은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1학년 때는 함께 메뚜기를 잡으며 놀곤 했던 사이.
반이 갈리며 한동안 소원해졌을 뿐 괜찮은 녀석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날은 내 돈 훔친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내 친구들은 화를 내며 범인을 밀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와 친했던 행동대장 격의 친구는, 범인을 향해 주먹을 날려 쌍코피를 터뜨렸다.
그걸 말리려던 공범 역시 배를 맞고 풀밭을 굴렀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아주 못된 폭행은 아니었다.
500원이면 당시에 정말 큰 돈이었다.
정의는 분명 우리 쪽에 있었다.
그렇지만 뒷짐 지고 가만히 보자니,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내가 죄인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을 말리고 원정을 중단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고등학생 시절에 다시 그 아이를 만났다.
막 하교하던 무렵의 교문 앞에서.
예기치 못한 마주침에 멋쩍게 쳐다봤던 것 같다.
그때라고 형편이 나아지진 않은 듯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히죽거리면서 천 원을 내밀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일을 하는 중이라며, 늦게라도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했다.
이미 옛날에 다 잊어버렸는데, 왜 굳이 찾아왔냐고.
그랬더니 또 히죽거리며 말하더라.
그때 남은 빵을 뺏어가지 않은 게 그렇게 고맙더라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갚으리라 다짐했었다고.
가난이란 맹수에 쫓겨 악의 동굴에 들어선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어두운 굴을 빠져나왔다.
그때 비로소 내가 알던 예전 모습이 드러났다.
선한 것까지는 몰라도, 결코 악하지는 않은 아이가.
그 가난은 꼭 물질적인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을 쫓는 맹수는 금전의 가난만이 아니다.
정서의 가난은, 때로 등과 배가 달라붙는 굶주림보다도 무서운 기세로 악행을 충동한다.
흉악한 범죄자들이 때로 한탄하는 말이 그런 관점이다.
그때 부모님이 날 학대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선생님이 내 결백을 의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동정을 바라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수시로 학대당하고 차별당했다고 해도 범죄가 미화될 리는 없으니, 긍정적으로 들어봐야 신세 한탄에 불과하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사례도 넘쳐나고.
그렇기에 핑계 대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 반응이 흔하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이란 한마디는 지나친 축약.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양친에게 사랑받는 아이도 있고, 부유하되 끔찍한 학대와 차별 속에 울부짖는 아이도 있다.
어떤 개인도 완전히 동일한 환경을 살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한탄을 들어야만 한다.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서.
경험이 인간의 선택을 변화시킴을 알아야 한다.
우리 중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학창시절에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편견으로 바라봤다면, 자살을 조장하는 꿈나무 악플러들과 무엇이 그리 다르겠는가.
피해자들에게는 똑같이 미운 존재일 텐데.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보편적인 사람들이 모두 악인인가.
그럴 리는 없다.
편견도 악플도,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정서의 가난이 자꾸만 악행을 조장할 뿐이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악행은 실수다.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비틀린 행동.
나쁜 사람 없는 이 세상에서, 오직 그릇된 경험이 만든 가난한 마음만이 타인을 수렁으로 몰아간다.
오블러카를 소외시킨 동급생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라 해서 어떻게 사악한 괴물들이겠는가.
확률론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 중 다수는 분명 사랑스러운 소년들일 것이고, 일부는 어른이 되어 주변에서 인격자라 받들어질 터였다.
실수가 아니고서야 그 악행을 설명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부분이 내 실수였다.
자살자 몇 사람을 바꿔 예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열 시간을 들여 한 서브퀘스트를 달성하는 사이에, 마음 가난한 이들이 수십 명의 취약한 이들을 괴롭힐 테니.
분명 알고 있었다.
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그렇기에 접근성이 좋은 인터넷방송으로 수십만 시청자의 가난을 몰아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게 할 셈이었다.
그랬던 목표가 투트랙으로 분열된 것은……
조미소의 서브퀘스트가 발생한 이후부터.
자살위험군이 발견되어야 발생하는 그 퀘스트는, 내 상담이 김 이병들을 구해내는 과정을 황금색으로 시각화했다.
그렇기에 하나하나의 퀘스트가 쾌감이 되었다.
그것이 실수의 시작이었다.
오아시스를 향해 걷던 사막에서, 국지성 호우를 만나버렸다.
그 촉촉함에 취해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무수한 생명을 구하고 있던 곧은 걸음을.
사실은 뒤늦은 발견이리라.
NBSC의 에픽퀘스트는,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코 exp가 넘쳐날 수 없는 까다로운 시스템이니.
10분의 시간제한이 걸린 그 할인권들은, 잘 사용하라며 수여해준 상품이 아니었다.
그저 재촉.
기술도 구입하지 못한 채로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암시.
감당하기 힘든 내담자를 곧 만나게 될 테니 철저하게 준비를 해두라는, NBSC 나름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게는 그 경고가 너무 뒤늦게 찾아왔다.
인방이라는 편법으로 빠르게 exp를 확보해, 여섯 차례나 에픽퀘스트의 할인권을 써먹었기에.
덕분에 이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진작 떠올렸어야 할 퀘스트의 본질을.
NBSC의 서술은 대부분 진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를 속인다.
에픽퀘스트만이 아니라 서브퀘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살리라는 서브퀘스트는, 죽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서로를 괴롭혀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5exp짜리 보상이 나를 유혹할 수 있다.
사실은 애초에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상담사의 진짜 길은, 자살하려는 이를 위기에서 구원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위기 자체를 없애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나는 자살을 막기 위해 가난을 방조해왔다.
몇 사람을 구하고자 수천만의 가난을 잊고 있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한 실수가 또 있을까.
그렇기에 주먹을 꼭 움켜쥐게 되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법.
이제는 내가 빵을 훔친 값을 치를 차례다.
“여러분. 제가 그동안 VR상담을 열심히 진행해왔지요?”
「넹 ㅎㅎ」
「분신술쓰시는줄ㅋㅋㅋㅋ」
「피곤하지 않으세요 」
“피곤하지요. 그래서 다시 토요일만 하려고요. 대신 다른 걸 해보겠습니다. 오늘부터는 두 차례에 걸쳐 인방을 하겠어요.”
「두차례 」
「지금이 2부잖아요 」
“2부라곤 하지만 편의상 나눠놓은 기준이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자정부터 진행할 방송 얘기예요. 매일 열한 시에 방송을 마치면, 집에 가서 가족들과 잠깐 시간을 보낸 뒤, 서재에서 추가 방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예고 없는 선포에 진대수와 손바울의 눈이 동그래진다.
즉각적으로 매니저 채팅창이 움직였다.
「Paulus : 선생님 안됩니다 몸 생각하셔야죠」
「Paulus : 이제야 좀 쉬시려나 했더니」
「찐death : 맞아요형님 저 밤엔 집가야되는데유」
“그 방송은, 꼰마 상담소의 연장선상은 아닙니다. 재미 하나도 없는 심야 라디오예요. 무거운 사연이 있으신 분들만 잠 조금 줄이시고 찾아와주시면 될 듯합니다. 유튜브에도 하이라이트 말고 풀 스트리밍으로 올릴 거예요.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일인데, 여러분은 주무셔야지요.”
「오앙ㅎㅎㅎㅎ 그래두볼래요~~」
「꼰마님 두탕뛰신다!」
“두탕이 아니래도요. 여러분께선 지금처럼 저녁 방송 위주로 오시면 돼요. 그 뒤에는 꼰마크루나 다른 BJ들의 방송을 봐주세요.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검색어예요.”
「실검여 」
「실검 많이가셨잖아요 ㅋㅋ」
“이번엔 좀 다릅니다. 실검이 아니라, 연관검색어. ‘자살’의 연관검색어로 ‘꼰마상담소’를 맨 앞에 올려주세요. 자살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제 새벽 라디오를 찾아올 수 있도록.”
「아.. 꼰마님 ㅠ」
「새벽에 자살이 많으니까구나..」
「진짜 왜이렇게착해여ㅠㅠㅠ」
4분할된 시간대별 자살 통계를 보면, 00~06시에 발생한 사건이 다른 시간대의 두 배에 달한다.
일상을 어렵사리 마치고 베갯잇을 눈물로 적실 무렵.
오늘을 반추하고 내일을 생각하다가, 새 태양이 밝아오기 전에 죽음을 택하는 피해자들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시간대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핵심은 그쪽이 아니다.
정말로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 쪽.
정말 자살을 없애고 싶다면, 자살자가 아닌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대신 이 저녁 방송은 앞으로 탐방 위주가 될 예정입니다. 과분하게도 프리TV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 토크 방송에 아예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도 많으세요. 잠깐 구경 와봤다가도 노잼이네 하면서 다른 채널로 가버리셨겠지요. 그게 아주 마음에 안 듭니다. 제가 꼰대라서 그런지, 전 국민이 시청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보기만 하면 팬으로 만들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원정을 떠나려는 겁니다. 남캠이든 여캠이든 롤방이든 먹방이든 다 찾아가서, 그쪽이 무슨 컨텐츠를 하고 있든, 전부 상담해버리겠습니다. 1부는 꼰마크루와 함께, 2부는 불특정다수의 탐방과 함께. 어떠세요?”
「와우 도장깨기ON」
「ㅋㅋㅋㅋㅋ상담해버리겠다!!!」
“꼰대 모드 끄고 다시 설명하자면…… 도장깨기보다는 상생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프리월드 창립멤버입니다. 지금은 과분하게 많은 시청자 분들과 호흡하는 BJ 입장이지만, 사실 저나 꼰마크루 말고도 정말 훌륭한 BJ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그래서 프리TV가 트위치도 유튜브도 물리치고 최강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더 돈을 많이 벌겠지요.”
「ㅋㅋㅋㅋㅋㅋ 탐욕의 후원마」
「꼰마님 탐방 기대대여!」
지금껏 탐방이라곤 받기만 했지 가본 적이 없다.
내 시청자들을 위해서 상담방송의 정체성을 지켜야 했기에.
그러나 이제부터는, VR상담과 꼰서트만이 아니라 새벽 라디오까지 사연을 분산시킬 수 있다.
나를 모르고 사는 이들에게 다가갈 적기였다.
물론 그래서야 exp의 충족은 요원할 것이다.
자살시도율이 가장 높은 새벽 시간대라고 할지라도, 프리월드가 홍보하는 VR상담에 비해서는 접근성이 부족할 터.
100일로 예상한 시점이 한참 미뤄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을 살리는 일과 죽음을 줄이는 일은 결코 다르지 않다.
이가을의 딜레마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미뤄서는 안 될 일.
나는 성공을 믿고 꿋꿋이 전진해야 한다.
도세나를 위해, 이아리를 위해, 그리고 내 딸을 위해.
“마침 사연도 다 상담해드렸고 하니, 지금 바로 첫 탐방을 떠나볼까 합니다. 어디가 좋을까요? 여러분, 의견 올려주세요. 데스 너는 탐방 준비하고. 별사탕 좀 충전해놔.”
상의도 없이 플랜을 밀어붙이는 나를 보며 진대수는 울상을 지었지만, 그 옆의 손바울은 씩 웃는 중이다.
그 입모양이 왠지 쉽게 읽혔다.
이제야 제 신다우시네요…….
신이 아니래도, 쟤는 참.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딱히 재밌어 보이는 곳이 없네요. 가만. 양학 씨 전역해서 방송하고 있던데?”
「 」
「어우 양학은시러여」
「그방개더러움 가지마세요;;」
“그래도 가보고 싶은데. 데스야, 어떻게 생각해?”
“혀, 형님. 거긴 좀. 상담이 먹힐 방송이 아닙니다.”
내가 부상하기 이전에 플통령이라 불리던 BJ다.
TV에 나온 것은 인터넷방송의 폐해를 조명한 뉴스 정도지만, 대중들에게도 연예인 수준으로 유명했던 인물.
한 시대를 풍미한 방송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였다.
그때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그 호불호라는 것이, 나와는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야만스러운 즐거움의 추구자.
원래 성격인지 컨셉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방송 태도가 예상치 못한 것을 즐기는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그러던 중 영장이 나와 방송을 2년 가까이 쉬었다.
전역한 뒤 한 달이 지나 프리TV에 복귀한 것이 지난달 말.
지금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3~5만 수준의 시청자를 복구해,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르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서는 기세가 꺾인 셈이라, 감을 잃었다는 비난도 많이 받는 모양이고.
개인적으로는 부장 시절에도 관심 없던 BJ였다.
방송을 잠깐만 봐도 기분이 몹시 나빠졌기에.
과장스런 컨셉과 욕설로 무장한 방송이 몹시 염려스러워, 딸애에게 양학 방만큼은 절대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물론, 가자미눈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입대 전에는 10만 시청자도 수시로 넘겼던 방송.
자극적인 컨텐츠를 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며, 그 갈급한 욕구에도 분명 마음의 이유가 있으리라.
상담사인 나는 이제 호수의 아래를 바라봐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나 다른 컨셉인지라, 대수가 종종 빛의 플통령 어둠의 플통령 하는 식으로 대조하곤 했다.
당장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우려 일색.
전혀 다른 방향으로 프리TV를 지배한 두 방송인에게, 탐방을 진행할 공통분모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아주 상극이라고 볼 수는 없고.
실제로 몇몇 멀티뷰 시청자들이 채팅을 남기곤 했다.
「지금 거기 술먹방임여~」
「전역하고 힘들다고 쌍욕중임ㅋㅋㅋㅋ 가지마셈」
내 방송도 보고 양학 방송도 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르고 다른 것 같아도 분명 같은 인간인 것이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우리는 편견을 깨부술 수 있다.
그렇기에 서브모니터 쪽 브라우저로 양학 방에 입장했다.
그는 이미 소주 두 병을 비운 상태였다.
[씨바…… 뭐! 야, 이만큼 길렀으면 됐지 왜 계속 빡빡이래? 죽을래? 여러분. 내가 씨바, 술이 술술 들어가네요. 안 그래도 큐빙이랑 싸워가지고 빡치는데, 채팅 좀 제대로 치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ㅈ」
「다음컨셉」
「소주에 물탄거 다안다 ㅋㅋㅋㅋㅋ」
[하 나 진짜 좆같네. 너네는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찐death님 별사탕 100개. 안녕하세요. 저 꼰마님 방송 매니저인데, 혹시 탐방 되나요? 안 되면 안녕히 계세요.]
[어? 이거 뭐야. 찐……데쓰? 이거 뭔데?]
「와 씨바 먼데 」
「꼰마가 탐방온다고 」
[이거 뭔데요? 진짜예요? 이 새끼 꼰마방 매니저예요?]
「ㅇㅇ」
「야 씨바 전통령 현통령 맞다이네? ㅋㅋㅋㅋㅋ」
[가만, 봐봐. 워 씨. 이거 뭐야? 24만 명? 미친놈이세요?]
「ㅋㅋㅋㅋㅋㅋ양학아 너랑차원이다름」
「근데 형 받지마 저방 씹노잼」
「씹선비들 24만명 모여있는방임ㅋㅋㅋㅋ」
[씨바, 안 닥치세요? 그래도 24만이면 피 빨아야 되는 건데요? 나도 모기 한번 돼볼 건데요? 오라 그래, 오라 그래.]
[찐death님 별사탕 100개. 하. 그래요. 곧 올게요.]
후원을 마무리한 뒤, 대수는 허탈한 듯 나를 쳐다봤다.
저쪽에서 거절해주길 바랐겠지.
하지만 24만의 시청자에 곧바로 설득된 양학은, 기다리지도 않고 내 방송에 접속해 있었다.
[워 씨…… 진짜 어려 보이네. 아저씨 저 보여요?]
“예. 반가워요, 양학 씨. 회사에서 몇 번 봤지요?”
[그랬나? 기억 안 나는데. 암튼 뭔데요? 해봐요.]
“뭘 보여주려고 온 건 아니고…… 날 좀 봐주겠어요?”
물과 기름처럼 나와는 섞일 수 없는, 전 플통령.
그러나 때로 급류는 밀도마저 극복해내는 법이다.
「 [암시 구조화]를 사용합니다 > 양학
100의 ‘사랑’이 스며듭니다…… 」
“이렇게 보니까 참 좋네요. 그때는 내가 편견이 많았어요. 양학 씨처럼 호탕한 청년이랑은 안 맞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어…… 그게…… 제가 좀 그런 이미지죠? 근데 저도 뭐…… 평소에도 정병처럼 지랄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정병이라니. 양학 씨, 정신질환이 있어요?”
[예?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제가…… 아 뭐라고 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병학한테 질환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쫌 웃지 마세요! 아, 아이고. 아저씨, 이거 채팅창에 말한 거예요. 그 정병이 진짜 정병이 아니고, 저한테 정병 있는 거 같다고 애새끼들이 말을 막 해가지고…….]
「근데 하꼬양학 졸라굽신거리네 답답하게」
「병 형신이야 」
「정병학 정병차려!」
“아하. 별명처럼 굳어진 거군요. 그래도 정신병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쓰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채팅창 양빡이 여러분도, 그래주실 수 있겠지요?”
「 [암시 구조화]를 사용합니다 > 내담자 42,195인
100의 ‘포근함’이 스며듭니다…… 」
「ㅋㅋㅋㅋ근데좀 보기싫긴했지」
「우리누나 진짜 정신질환있어서 안썼음좋겠긴함」
「아니.. 보기싫을까봐 정병이라고 줄인건데요 」
“그랬군요.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표현에 주의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 줄임말까지도 상처를 주는 용어로 사용되는 게 요즘 인터넷이에요. 그보다는…… 지금 양학 씨 보니까, 아주 친절하시네요. 정병학보다 친절학이라고 불러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저기는 식물갤이냐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근데 은근 개웃기네」
「아저씨 말빨쥑이네여 ㅋㅋㅋ」
“양학 씨? 반응이 괜찮은데요? 어때요?”
[아…… 친절……해요? 제가…… 긍가? 하하하하!]
“하하하. 아무튼 제 소개를 하자면, 고민상담 방송을 하는 신입 BJ 꼰마입니다. 양빡이들 사연도 받아봐도 될까요?”
[아, 뭐, 그러십쇼! 형님들, 뭐 사연 있어요? 좆같은…… 나쁜 사연 올리면 바로 강퇴합니다. 아시겠어요?]
ㅋㅋ가 넘치는 채팅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양학 씨부터 먼저 해주시면 어떨까요? 시범 삼아서.”
[시범요? 아 뭐…… 그냥 저는 뭐, 고민 같은 건 없는데. 아니 그냥 뭐…… 어제 여친하고 개판 싸웠거든요? 그 년…… 걔가 저보고, 전에 술 먹다가 딴 여캠한테 실수한 거 아니냐고 의심해서…….]
“그렇군요. 혹시 정말로 실수를 하셨어요?”
[아뇨! 어디 미친…… 그런 짓을 했겠어요? 안 했죠.]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러면 답은 간단하네요. 제게 여친 분 연락처 알려주세요. 오해를 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어, 믿으시는 거예요? 제 말을요?]
“물론이죠. 컨셉은 잡아도 거짓말은 안 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런 소리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눈만 깜빡이는 양학.
그를 향해 웃어주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시작해보자.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희 모두를 상담해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