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77화 (177/200)

# 177

64장 - 상담사와 실수 (1)

현재 NBSC의 exp를 얻을 수 있는 기작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반복퀘스트의 달성.

둘째는 서브퀘스트의 달성.

전자는, 내담자 퀘스트와 행복 퀘스트가 이미 한계치를 만족해, 10만 건의 소통을 수행할 때마다 1exp가 부여되는 경청 퀘스트만 남은 것이 문제였다.

퀘스트를 만족시키려면 집중력을 갖고 들어야 한다.

인방에서 채팅을 읽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 3만 이상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즉, 짧아야 열흘쯤에 3exp를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에 비해 후자는 훨씬 더 빠른 방법.

자살의 위기에 처한 내담자를 상담해 삶의 의욕을 되찾아줄 때마다, 나는 매번 5exp를 확보할 수 있다.

전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 퀘스트를 경험치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건 상담사의 길이 아니니까.

내담자를 숫자로 바라보고 그 치유를 이익을 위한 목표로 의식하는 순간, 상담의 가치가 훼손되고 말 테니까.

그렇기에 느리지만 신중하게 미래를 계획하려 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나는, 한참 전부터 목표에 매진했어야만 했다.

VR상담 일정을 늘리자마자 쏟아진 서브퀘스트들을 보면.

열흘 동안 여섯 건의 자살을 막았다.

짧은 기간에 회복될 수 있었던 내담자의 수가 그 정도고, 새로 발생한 서브퀘스트의 수는 열네 건에 달했다.

나는 그만큼이나 많은 생명들을 놓칠 뻔했다.

그만큼이나 많은 생명들을……

놓쳐왔을 것이다.

매주 1회의 VR상담을 진행하며, 민원식 팀장에게 의뢰했다.

거친 어휘가 사용된 사연부터 채택하게 해달라고.

랜덤 선정이라는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그런 알고리즘으로라도 당장 마음이 벼랑에 몰린 이들을 우선시하고 싶었다.

덕분에 매주 공개상담과 비밀상담에서 네다섯 명의 서브퀘스트 내담자를 새롭게 마주하곤 했다.

그러나 열흘 사이에 열네 명을 만난 적은 없었다.

일차적으로는, 성향의 스펙트럼 때문이었다.

어떤 감정은 너무 뜨거워 푸르게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

때로는 가장 차분해 보이는 사연의 주인공이 서브퀘스트를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시간일 터.

마음이 무너져 당장 위기에 처한 이들이, 내 상담을 며칠씩 기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몰랐다.

자살의 트리거는 단 하루 만에 당겨질 수도 있는 법이니.

모른 척할 생각은 아니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고 자부한다.

워커홀릭답게 자는 시간 외에는 일에 매진해왔다.

꼭 해야 할 공부를 하고, 꼭 해야 할 방송을 하고, 꼭 해야 할 상담들을 진행해왔다.

그렇지만 꼭 지켜야 했던 사람들을 지키지는 못한 듯했다.

열흘 사이에 열네 건.

그들 중 토요일의 공식 일정으로 만나게 되었을 이들이 어림잡아 네 명이라고 하면, 10일에 10인이다.

하루 한 명꼴로 서브퀘스트를 놓쳤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들 중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던 이들은 몇이나 될까.

오류 없는 NBSC의 특질을 생각하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대부분이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저주했고, 이가을에게 감사했다.

새 에픽퀘스트가 아니었다면 깨닫지도 못했으리라.

방송인이자 셀럽인 박대민을 칭송하는 목소리에 파묻힌 채, 가장 서둘렀어야만 했던 일을 덮어놓고 있었음을.

“오늘도 가신다고요? 선생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손바울의 질문에 대한 답이 그것이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판교에 있어야 한다.

더는 한 명의 내담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에 운전석의 손바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도 선생님을 살려야 되겠습니다.”

“맞아요 맞아요. 아저씨 아파 지금. 병원 가야 돼요.”

신지원까지 가세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내 상태가 정말 별로긴 한가보지.

거울을 볼 것도 없이, 황금색 메시지가 증명해주고 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6 (53/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100

환기 : 100 / 지도 : 69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크리스마스 캐럴” (진단 +10)

“증거기반 개입” (외모 +10)

“호밀밭의 파수꾼” (화술 +10)

‘피로’ (관계-15 진단-22 화술-24 외모-31) 」

첫째 날 밤을 꼬박 새운 뒤에 새 스테이터스가 나타났다.

네 개의 능력치를 잔뜩 떨어뜨리는 ‘피로’.

‘외모’부터 시작해 ‘화술’과 ‘진단’과 ‘관계’에까지 이른 하락치는, 체력의 한계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나마 특성인 ‘환기’와 ‘지도’는 무관한 듯하지만……

그것 역시 ‘화술’과 ‘관계’에 영향을 받을 테니, 지금의 나는 분명 예전보다 한참 부족한 스승이리라.

제자들의 경우 그런 것보다는 ‘외모’에 해당하는 다크서클을 보고 느꼈겠지만.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의 외양은 아닐 것이다.

싸움도 못 하고 마법도 못 쓰는 나는, 그저 나를 갈아넣는 공돌이 마인드로 미래에 대처할 수 있을 뿐이니.

잠을 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상담이란 잠시 내담자를 마주하는 활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담자는 각자가 각자의 우주를 가진 고등생물.

인격장애가 의심되면 유사 사례들을 면밀히 조사해야 하고, 가족역동이 염려되면 가족들과도 통화해서 다독여야 한다.

나트륨 유저 케이스 역시 그랬다.

VR상담에서는 모친과 만나게 해준 것으로 일단락했으나, 이후 밤마다 의존성 인격장애를 연구하고, 두 사람과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생활 속에서 문제가 줄어들도록 도왔다.

그럼으로써 나흘 만에 자살을 단념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트륨 유저가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떨쳐낸 것.

다만 자기 루머를 바로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것은 아니고, 험한 악의를 견뎌낼 자존감을 함양한 정도였다.

오류 없는 자살을 멈춘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말하자면 응급처치.

일곱 살 신지원처럼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새 인지도식을 획득하는 것은 어려워, 지속적인 연락과 관리가 요구된다.

NBSC의 보조를 받는 나조차 한 케이스에 열 시간 이상은 할애해야만 회복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매일 네 시간 인방을 수행하는 와중이다.

<토크꼰서트>나 대민재단 관련 일정으로 전국을 누비는 한편으로, ‘나사없’ 촬영이 잡힌 날이면 종일 카메라 앞에 있어야 해, VR 내담자들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가족을 도외시한다면 본말전도가 될 터.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수면뿐이었다.

그래서 하루 두 시간쯤만 자고 있는 것이다.

첫날 밤을 새운 뒤 생긴 ‘피로’가 날로 악화되고 있긴 하나, 아직까지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

꼰서트를 끝마친 뒤 판교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난 괜찮아. 정말 상태가 심각하면 너희가 쉬지 말라고 해도 쉴 거다. 그러니까 오늘까지는 이해해주렴.”

“선생님…… 왜 그러시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만, 안 됩니다.”

“왜요? 바울이는 왜 그러시는지 아는 거예요?”

“알지. 꼬맹이는 몰라도 되는 사정이고.”

“왜요? 저도 알래요. 저한테도 알려줘요.”

“넌 몰라도 된다니까. 아무튼 선생님,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바울아.”

“바울아, 왜요? 왜 몰라도 되는 사정인데요?”

“아 거참…… 아무튼 오늘은 제발 좀 쉬십쇼. 내담자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혹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맞아요. 아저씨 이러다가 쓰러지면 안 돼요.”

고집이 센 녀석들이다.

토 달지 말라고 화를 낸다면 포기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하기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시점에 문득, 조미소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람을 살리는 서브퀘스트의 첫 번째 주인공.

그녀라면 괜찮은 타협책이 될 것도 같았다.

“너희 말에도 일리가 있긴 해.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가는 것보다는, 종위보육원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가면 딱 수영이 낮잠 시간일 거야. 같이 잠깐 잔 뒤에, 중등반 아이들과 앉아서 과자나 좀 먹자. 그렇게 하면 어떻겠니?”

“흠. 내일 가기로 한 보육원에 미리 방문해서 휴식과 일정을 동시에 확보하실 셈이군요. 나쁘지 않네요.”

“왜요? 왜 병원 안 가요? 바울이 왜 이랬다저랬다 해요?”

“넌 좀 가만히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저도 아는데요? 왜 바울이 혼자 아는 척해요?”

“혼자 아는 거니까. 선생님 잠깐이라도 쉬시게 조용히 해.”

손바울이 혼자 아는 것은, 내게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

유하늘의 자살을 예견한 일로 입증된 부분이다.

나야 에픽퀘스트 타깃이기에 탐색을 부탁했던 것이지만, 손바울 입장에서는 독심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네 살 정수영의 보육사인 조미소 역시 비슷했다.

죽음을 생각하던 중 나를 만나 회복된 아이.

신을 상정하는 손바울만큼은 아니지만, 내게 자살위험군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있다는 점은 눈치채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내 최근 행보에 나름의 의견을 개진했다.

“아저씨, 힘들어 보여. 지친 거 같아.”

“하하. 그래 보이니?”

“응. 다른 일들 대충 자리 잡았으니까 자살하려는 애들 찾아다니고 있는 거지? 힘들겠다. VR상담, 그거 앉아서 하지도 못하고 계속 서서 얘기 들어줘야 되는 거잖아?”

“그렇지만도 않아. 다수를 상대하는 집단상담 쪽은 서 있어야 하지만, 비밀상담은 앉아서 진행한단다.”

“근데 요새 집단상담 더 많이 하잖아. 아저씨, 불쌍해.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렇게 사람들 살리려고 그러는 거야?”

“사람이 죽는 게 싫거든.”

“아저씨 쉬면 뭐, 그 사람들이 다 죽어?”

“그럴 거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일은 아니잖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삶을 놓는 이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럼 내 옆에 있어. 나 아저씨 없으면 확 죽어버릴 거야. 그니까 여기 누워. 여기서 수영이랑 같이 코 해.”

원래 그럴 의도로 찾아오긴 했지만, 코 하라니.

40년쯤 어려진 느낌인지라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말하는 조미소의 얼굴 때문에 더욱.

“빨리 눈 안 감아? 뽀뽀해버린다?”

“……미소야. 너는 아저씨가 밉지 않니? 아는 사람도 없는 여기에 혼자 놔두고, 일하느라 자주 와보지도 못했는데.”

“미워. 그니까 코 해.”

“안 밉다니, 다행이다. 여기 생활에 고민은 없고?”

“있어. 그니까 코 해.”

“없는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아, 왜 맘대로 아니래? 있다니까? 어이없어.”

“그래. 실은 아저씨가 고민이 하나 있는데.”

“어? 진짜? 뭔데? 나한테 상담해. 내가 들어줄게.”

샐쭉한 기색을 지우고 눈을 빛낸다.

내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서 저러는 거지.

눈을 감고 그 마음을 음미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열흘에 여섯 명. 아마 그 정도 속도가 한계인 듯해. 그러니까…… 이렇게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어렵사리 100일이 된다. 그 안에는 구해줄 수가 없어.”

“……뭔 말이야? 말을 알아듣게 해.”

알아듣게 말해주기는 어려운 신비.

그저 한숨처럼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 얘기야. 일종의 경험치 같은 거.”

“경험치는 또 뭐야? 아저씨, 게임 때문에 그래? 롤? 롤 하느라 밤에 잠 못 잔 거였어?”

“하하. 비슷해. 아저씨는 사람들을 많이 살려주고 싶어. 그렇지만 실패할지도 몰라. 한 사람을 구하려다 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지도 몰라. 이렇게 애써봐도 100일 안에는 그 경험치를 채울 수가 없어. 여섯 개의 에픽퀘스트에 100일이 채 안 걸렸는데…… 앞으로 100일 동안 아무 일이 없으리라고는 도저히 희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스스로 말하면서도 우습다 싶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아이에게 하소연하는 꼴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약해진 걸까.

고작 열흘간의 강행군이 마음까지 깎아내고 만 걸까.

이가을은, 지금껏 진행해온 에픽퀘스트의 추이를 생각할 때, 늦어도 이달 안에는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내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며.

제2의 루트를 만들어줄 [오래된 구원] 없이는 나라 해도 딜레마에 빠지고 말지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340exp를 채우고자 애써봤지만……

열흘 동안 잠을 줄여봐도 얻을 수 있는 성과는 32exp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나는 죄인이다.

VR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집중해 exp를 확보했다면, 할인권으로 [오래된 구원]을 구입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시적 목표로 방송과 언론에 신경 쓰느라, 정작 미시세계의 죽음들을 외면해왔다.

NBSC가 내 바람과 꼭 맞는 서브퀘스트까지 주었음에도.

“지금이라도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자살 상담에만 매진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하면 조금은 속도가 오를 텐데. 하지만…… 그럴 수도 없어. 나만 믿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 재단도 미디어도, 콘서트도 가정방문도,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어. 편안하게 잠이나 자느라,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어휴. 진짜 뭔 소린지.”

눈을 살짝 떠 바라보자, 잔뜩 인상을 쓴 소녀가 보였다.

“바보 같아. 그게 뭔데? 뭘 그렇게 속도를 내야 되는데?”

“음…… 그런 게 있어.”

“그런 거 없어. 뭔진 몰라도, 아저씨가 자기 몸 아프게 해가면서 해야 될 이유 없어. 그냥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내비둬. 아저씨가 자살하는 사람들이랑 뭔 상관인데?”

“상관이 있지. 같은 사람이니까.”

“같은 사람이니까, 상관이 없지. 딴 사람들은 뭐 애기야? 아저씨가 기저귀 갈아줘야 살아? 각자 알아서 살면 돼.”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야. 상담사가 남의 인생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을 거야. 하지만 아저씨는 생각한단다.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게 살인과 무엇이 다를까.”

조미소는 한동안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 미숙이잖아?”

“……그래. 아직 개명은 안 했지?”

“못 했지. 신청하려면 엄마아빠랑 같이 가야 된대.”

“아직 미성년자라서 그런 거구나.”

“응. 그래서 놔뒀어. 이름 때문에 연락하긴 싫어서.”

짐승 같은 부친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집을 떠난 아이.

조미숙이라는 이름도 싫겠지만, 그 이름 때문에 부모에게 연락하는 일은 더욱 싫을 터였다.

그렇기에 서브퀘스트가 “조미숙을 살려봐요”였던 것이다.

“그 이름이, 좀 그랬어. 부르면 ‘미숙아’가 되잖아? 미숙아는 좀 그렇잖아. 미숙한 애 같잖아.”

“그래…….”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다 미소라고 부르라 그랬거든. 근데, 웃기다? 그렇게 미숙이 아니게 살려고 했는데…… 소미가 미숙아였어. 신기하지? 이름 빨리 바꿨으면, 안 그랬을까?”

“……이름하고는 무관할 거야.”

“그냥 그랬어. 나 때문에 안 건강하게 태어난 거 같았어. 그래서 더 잘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안 보는 데서 아파하다가, 죽었어. 맞아. 나 살인자야. 우리 소미, 내가 죽였어.”

“미소야.”

“미소, 아니야. 내가 왜 미소야. 난, 미숙이야. 미숙해서…… 엄마답지 못해서, 애기 죽게 만들었어.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근데 아저씨가 못 죽게 했잖아. 나 살고 싶게 만들었잖아. 그래놓고 왜 이래? 왜 아저씨가 그런 소리 해?”

……내가 해선 안 될 말을 했구나.

뒤늦게 깨닫고, 마음이 아파졌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응. 그니까 얼른 코 해. 자장 자장 우리 아가.”

“하하. 고맙다, 미소야.”

꿈에서, 나는 김 이병을 만났다.

그는 로프를 만지작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오물거렸다.

나는 독순술을 쓰는 손바울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저 때문인지 말임?

히히, 그건 좀 웃기지 말임.

박 이병님은 노력했지 말임.

노력했는데도 못 구했으면, 그건 실수가 아니지 말임.

……얼굴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네 살배기 정수영의 놀란 눈이 보인다.

“아, 우아, 들켜따!”

“이런. 아저씨 얼굴에 낙서한 거야?”

“어, 어떠케 알아떠?”

“수영이가 손에 사인펜을 들고 있어서 알아버렸지?”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유아실을 나섰다.

문 앞에는, 조미소가 찌뿌둥한 얼굴로 서 있었다.

“미소야, 왜 나와 있어?”

“아저씨, 일어…… 어?”

“수영이가 장난을 쳐놨지? 무슨 낙서를 한 거야?”

“아빠라고, 써놨네.”

“아.”

“……그냥 장난이야. 엄마아빠놀이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그래…… 아빠가 많이 그립겠지.”

“그런 거 아냐. 수영이 행복하게 잘 있어. 걱정하지 마.”

“하하하. 날 걱정시키지 않으려 애쓰는구나?”

“아저씨는…… 지금 아저씨 일만으로도 벅차잖아. 수영이는 내가 지켜. 그러니까 아저씨는 신경 쓰지 마. 알았어?”

그렇다고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 작은 아이만큼이나, 성년을 앞둔 조미소가 신경 쓰였다.

아직은 개명 신청에 친권자 동행이 필요한 나이.

이 소녀 역시 부모다운 부모가 그리울 터였다.

그렇기에, 아빠 같은 날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이리라.

“미소야. 아저씨는…… 고맙다. 이렇게 미소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잘 있어줘서. 자기 일만이 아니라 아저씨까지 걱정해줄 수 있는 아이여서. 그래서 정말 고마워.”

“알면, 걱정 좀 시키지 마.”

“하하. 미안해. 아저씨가 걱정 좀 시킬게. 많이 걱정해주렴. 아저씨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치. 웃겨 진짜. 피곤할 땐 나한테 와. 수영이랑 아저씨랑 코 자라고, 자장가 불러줄게.”

얘는 내가 자기 갓난아이일 무렵에 이미 사회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긴 아는 걸까.

귀여운 참견에 씩 웃어주고, 생각했다.

남의 죽음은 분명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에 상관을 느껴야 마땅하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다시금 나를 갈아넣어보자.

누구도 스스로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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