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62장 - 수용하는 상담사 (3)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별수 없는 일이겠지. 어떤 철인인들 그 과거를 극복하고 정상인으로 살 수 있겠나. 미워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가능성이야. 정말 그런 거였다면…… 난들 어쩌겠어. 그저 새로운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할밖에.”
그렇게 말하고, 스승은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이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질문해도 대답할 수 없게 된 죄인의 영정 쪽으로.
한효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정폭력의 환경에서 자라나, 그로써 자기 자신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증오하지도 못하는.
부정적인 경험마저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수용하는.
어쩔 수 없는 상담사였다.
“예, 교수님.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에잉. 함께 노력하기는. 자네가 훨씬 더 많이 해야지. 나야 이제 늙은이 아닌가. 고생은 젊은 자네가 해.”
“그야 물론이지요. 많이 고생하겠습니다.”
고생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으리라.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인간적 정서를 마비시킨다.
공산주의든 자유주의든 마찬가지.
사회를 위한 일이라는 정의감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가족까지도 처단하는 냉혈한으로 변모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의 유전자가 그것을 명령하는 까닭에.
그 자체가 나쁜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보다 전체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역으로 말하면, 자기 가족의 안위만을 우선하는 사람을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집단이기주의의 싸움이라면 화는 나도 서로 납득이 된다.
그러나 이념에 충실한 가해는, 불가해의 충격을 안긴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공감이 안 된다.
그런 배신감을 느껴본 이들은, 휴전 후 70년이 임박한 지금까지도 PTSD에 시달리고 있다.
고 한중원 역시 그랬을 것이다.
가족에게 칼부림을 당한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았으리라.
실제 가해자들과는 죽음이나 분단으로 이별하게 되었겠지만, 이후 그 자신에게도 가족이 생겨났으니까.
그는 새 가족을 위해 오랜 망령을 극복하지 못했다.
가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그로써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대물림해, 쉰일곱 평생을 폐쇄적으로 살게 만들었다.
너무도 무력하게 사회의 폭력을 가정으로 옮겨왔다.
그렇지만……
“우습지 않나? 애 패고 약 맞다가 가버린 양반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상상하고 말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지……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이. 이제는 받아들일 걸세. 나는…… 저 양반을 용서는 못 하겠어. 그렇지만, 사랑은 하고 있다네. 못난 제자를 닮은 탓이려나.”
전쟁도 트라우마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세상이 무너져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중원은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 아들이, 용서까지는 힘들었어도, 사랑은 품고 있었기에.
“저 때문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그런 분인 탓이지요.”
“거, 듣기 좋은 아첨이로구만.”
“아첨이 아닙니다. 실제로 오늘도…… 조명기 선배를 부르셨지 않습니까. 그 간섭쟁이 후배가 여기저기 연락을 돌릴 것을 모르셨을 분도 아니신데.”
“허. 조명기가 그러더군. 하나뿐인 가족의 장례에 제자들도 초청하지 못하는 스승이라면, 후배님 보기에 얼마나 실망스럽겠어요……라고. 하여튼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이야. 제 부친상에는 어떤 동문도 부르지 않았던 주제에. 그렇지만, 아무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불원천리 와줘서 고맙네, 박 군. 자네와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참 편해진단 말이지.”
“누구 제자인데요.”
“허허. 그래. 저 양반 돌아가시기 전에, 자네를 한번 데리고 가볼 걸 그랬어. 그럼 조금은 더 편하게 가셨을 텐데.”
“충분히 편하셨을 겁니다. 하나뿐인 아드님이 이토록 존경받는 위인이 되셨으니 말입니다.”
“거, 입발림은 그만-”
“아이고! 아이고, 이 문 일이고!”
“엄마, 왜 이제 와? 교수님, 엄마 오셨어요.”
송은진의 모친인 임정희가 들이닥친다.
억척스러운 경상도 여인은, 한효준의 손을 꼭 잡고 오랫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볼이 붉어진 스승이 내게 턱짓으로 가라고 하더라.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한 척 곁을 지켜줬다.
다음날에는 손바울이 신지원의 손을 끌고 입장했다.
“너, 지원이는 왜 데려왔어? 아직 어린데…….”
“지가 오고 싶다고 해서요. 내보낼까요?”
“왜요? 저 왜 내보내요?”
“보통 직계가족이 아니면 아이들은 빈소에 데려오지 않아.”
“왜요? 왜 안 데려와요?”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잘 모르니, 시끄럽게 떠들거나 울면서 유족들의 심기를 어지럽힐까봐 그런 건데……”
말하며 바라본 신지원의 얼굴.
호기심에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시끄럽게 떠들거나 울음보를 터뜨릴 확률은 어른들보다도 낮은 아이다.
그 사실을 한효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데리고 들어와. 왔는데 분향은 시켜야지.”
“아저씨, 할아버지가 된대요.”
“……그래. 들어가자꾸나.”
한효준의 곁에 앉아, 두 제자의 재배를 지켜본다.
내 스승은 그 상황이 못내 감개무량한 듯했다.
“내 제자의 제자들이니, 말하자면 사손(師孫)들이구나.”
“사손이 뭐예요? 삼손 형이에요?”
“음. 이름이 신지원이었지? 너는 죽음이 뭔지 아니?”
“네. 개미를 머리 가슴 배로 자르면 죽어요.”
“음. 그래. 그렇게 죽은 개미를 볼 때 기분이 어땠니?”
“재밌었어요.”
“음…… 그래. 허나 미물의 죽음과 사람의 죽음은 다르단다.”
“왜요? 왜 달라요?”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같은 종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며 사랑하게 될 수 있단다. 예를 들면, 너는 박대민 아저씨를 좋아하지?”
“네, 사랑해요. 재혼…… 아, 죄송해요.”
“……그래. 그렇게 박대민 아저씨는 네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 되었단다. 하지만 만약에 그 이전에. 네가 박대민 아저씨의 소중함을 깨닫기 전에, 그가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후의 세계에 네가 사랑하는 박대민은 없겠지?”
“저는 아저씨 안 죽이는데요?”
“네가 죽인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이 친구가 없었을 경우에 대한 얘기야.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면 기분이 어떠니?”
“기분 나빠요.”
“그래. 그 마음이란다.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어. 꼭 나 개인이 아니라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어제 죽은 누군가를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우리는 얽히고설킨 채로 사랑하며 살아간단다. 죽음은 그 가능성을 앗아가는 게야. 그렇기에 너무나 슬픈 일이지.”
잠깐 고민하던 신지원은, 이내 나를 돌아봤다.
“아저씨도, 사람이 죽으면 슬퍼요?”
“그럼. 무척 슬프지.”
“그럼요, 지원이 죽으면 얼마만큼 슬퍼요?”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아마 지원이가 아저씨 죽으면 슬퍼질 것만큼 슬프지 않을까? 다시는 지원이랑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할 테니까.”
“헤헤. 맞아요. 아저씨, 오래오래 살아요.”
“꼬맹아. 남의 빈소에서 만수무강 비는 거 아니다.”
“왜요? 왜 안 돼요?”
“유족들의 심정도 생각해야지. 저 노인네 표정 안 보이냐?”
“뭐라고 안 하는데요? 할아버지 화 안 내는데요?”
“그거야 꼬맹이랑 말다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100%다. 그 간단한 이치도 모르면서, 스승님 제자를 자처하지 마라.”
“저 제자 아닌데요? 여친인데요?”
“근데 이 꼬맹이가…….”
제자들이 습관처럼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한효준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앞으로 참 고생이 많겠다며 염려하는 듯이.
실제로, 고깃국에 밥을 말아 먹던 신지원이 비인간적인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거는 소고기 들어있는데? 소들도 슬프겠어요.”
“……그러니? 소들이 슬플 것 같아?”
“네.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슬프잖아요? 그러니까 소들도 소들이 죽으면 슬플 것 같아요. 왜 채소국 안 먹어요?”
“하하. 우리 지원이가 참 마음에 넓구나. 그렇지. 죽음을 기리는 자리에서 고깃국을 먹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지. 하지만 인간은 채식만 하고서는 잘 살기 힘든 동물이란다.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육류는 필요해. 우리는 그저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이 식사에 감사하면 된단다.”
“그렇구나. 아저씨는 채식주의자 싫어해요?”
“그건 또 전혀 그렇지 않고.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지. 동물의 심정까지 걱정해서 육류 소비를 줄이고자 자기 섭식을 제한하는 일이니, 얼마나 따뜻한 발상이니. 다만 인간이 충분히 진화하지 못해 아직도 육류 섭취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하단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길 강권할 수는 없겠지.”
“그렇구나. 근데요, 아저씨. 그러면 사람은 동물을 죽이면서 사는 거잖아요? 그러면 사람도 죽여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빼면, 상관없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것도 자연의 이치잖아요? 사람들은 전쟁도 하고 살인도 하고 그러잖아요?”
치기 어린 생각이고, 싸이코패스다운 논리지만.
그것은 분명 이치에 닿는 이야기다.
동식물을 학살하는 인간이 인간에게만큼은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족 보전을 위한 도덕률.
그것을 의심하는 목소리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지원아. 사람의 역사에 전쟁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건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아니란다.”
“왜요? 살인자 계속 신문에 나오는데요?”
“너는, 만화를 안 보고 신문을 자주 봤구나? 그래. 육식을 거부하기 힘든 신체처럼, 우리 정신도 때때로 타인에게 과도한 악의를 품곤 하지. 그렇지만 이쪽은 분명히 바뀔 수 있다. 바뀔 수 있다기보다도…… 해소될 수밖에 없어. 인간은 미워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니까. 한정된 자원 속에서 종을 번성시키기 위해 약자를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을 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원은 풍부하고 유통망도 충분해. 이제는 사랑하며 살아도 돼. 죽이지 않아도 돼.”
“응…… ‘죽이면 안 돼’ 아니에요? 이상해. 그러면요, 때리는 건 괜찮아요? 경찰들이 안 잡아갈 정도로만요.”
“하하.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니. 그렇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분명 있단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야 해.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왜요? 왜 행복해요? 짜증나는 애들은요, 때려주면 속이 시원하던데요? 죽이면 더 기분 좋지 않을까요?”
“기분이 후련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함정이란다. 당장은 좋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과정일 뿐이고,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 업보가 돌아오게 돼.”
“왜요? 천벌을 받아요?”
고대의 도덕률은 이런 대화를 통해 형성됐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면 천벌을 받으니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그렇지만 상담사의 논리는 아니었다.
“천벌 같은 건 없을 거야. 살인자가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경우도 많으니까. 다만…… 스스로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분명해. 그 자신도 사람이거든. 사람을 가축이나 무생물처럼 대해버리면, 그 경험으로부터 내가 바뀌게 되는 거야. 잔인한 행동은 나 자신을 더욱 사회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몰고 가.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람을 만나며 행복해질 수 없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꾸, 저것도 인간인데, 죽일 수 있는 살덩이에 불과한데, 그런 소리가 울려퍼지게 되거든.”
“아, 진짜요? 저도 그런 생각 해봤는데.”
“너야 의식적으로 결론을 도출한 거잖니. 충동적인 목소리에 지배되는 상황과는 다르지. 살인자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못하게 돼. 지원이 너도 그래?”
“아뇨? 저는 아저씨랑 있으면 행복해요.”
“그래. 엄마아빠랑 있을 때도 그렇겠지? 그게 핵심이야. 인간의 길을 벗어난 이들이 잃어버리는 핵심. 어쩌면…… 그걸 천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 사람다워야 해. 공격하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죽이지 말아야 해.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싸이코패스가 선천적인 전사의 유전자라고 한다면, PTSD는 후천적 전사를 양성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발작 상태에서는 광전사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쟁이 수월했으리라.
그리고 전장에서 돌아온 광전사는, 사람의 행복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채로, 또 자기 사회 속에서 광전사를 양성해낸다.
아들의 정서를 망가뜨릴 뻔했던 고 한중원처럼.
한효준이 아니었다면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슬픔이 만연한 대한민국은, 그 대물림의 작품일 터였다.
그렇기에 상담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존재.
나는 고인의 아픔을 수용하지만, 그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일으키고 마는 잘못이라 할지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에.
“해선 안 되는 일은 없어. 세상이 강제하는 상황이라면, 폭력도 살인도 욕할 수 없을 거야. 다만, 슬픈 일이지. 지원아.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수리하고 패치해서 다시 가동할 수 있는 기계가 아냐.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돼. 그래야 미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어. 그래야 나 자신의 행복을 망치지 않을 수 있어.”
“……응. 알았어요.”
신지원은 이튿날 아침에도 손바울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황당해져 빤히 바라봤더니, 첫째 제자가 변명하더라.
“죄송합니다. 신은호가 협박을 해서…….”
“은호 씨가 너한테? 뭐라고?”
“오늘 발인에 꼬맹이를 데려가주지 않으면, 올여름에 워터파크 가기로 한 계획을 엎어버릴 거라고요.”
“……그쪽 집안 계획이, 협박이 될 수 있니?”
“예. 꼬맹이는 그 집에서 워터파크를 안 가면 분명 선생님을 졸라서 가려고 할 거고, 그러면 아직 안심하기 힘든 코로나바이러스가 선생님께 피해를 입힐 수 있죠. 그런 부분이 걱정돼서 하는 수 없이 데려오게 됐습니다.”
“음, 그래. 논리를…… 알 듯도 하구나. 그렇지만 은호 씨는 왜 그랬을까? 구태여 널 협박해서 아이를 보내다니.”
“글쎄요. 미친놈이라 잘 모르- 아. 아파. 치기 전에 놔라.”
손바울의 허벅지를 힘차게 깨물었던 신지원은, 이후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순진한 소녀를 코스프레했다.
“아저씨, 바울이가 괴롭혀요.”
“하하. 바울이라고 부르면 더 괴롭힐걸?”
“근데요, 바울이가 먼저 우리 아빠 신은호라고 불렀어요.”
“이런. 그것도 그렇구나. 지원이가 잘못한 게 아니네.”
“그죠? 계속 바울이라고 부를래요. 알겠지 바울아?”
“……흠.”
“알겠지 방울아?”
“바울이다, 꼬맹아.”
‘아저씨’와 ‘바울아’ 중 꽤 오래 고민했던 손바울이 그렇게 결론을 내고.
입관의식을 앞둔 한효준이, 그 아이들을 불렀다.
“박 선생이야 겪어봤겠지만, 너희들은 처음이겠지. 따라와보겠니? 고인의 가는 길을 나 혼자 배웅하기는 뭣해서.”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요.”
“아저씨 가면 같이 가요.”
“……끙. 이봐, 박 군.”
손바울이야 그렇다 쳐도 신지원은 좀 염려스러웠다.
아이의 교육에 적절한 일일지 알 수 없어서.
고인께 너무 큰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렇지만 한효준의 귓속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생명의 끝자락부터 보여주는 것이 맞네. 개미의 머리 가슴 배를 나누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인간의 죽음을…… 느껴보게 해주고 싶어. 저 양반도 이해할 게야. 제가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예…… 교수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입관은 처음이 아니지만, 고인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효준을 연상시키는 외모는 아니다.
뼈 위를 살굿빛 랩으로 감쌌다고 말해도 위화감이 없을 만큼, 고인은 처참하게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그 시신 앞에서 신지원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도 울지는 않았다.
하나뿐인 친아들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듣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지나치게 죄투성이었다.
사랑할 수 있다 해서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당신이 가는군요. 나는 그래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어. 언젠간 당신이 쾌활하게 웃으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읽어줄 거라고. 그런데 아니었군요. 이렇게 갈 줄 알았다면, 그 전에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줬으련만. 지금은 그것조차 의미가 없겠지. 아버지. 잘 가시오. 사후세계라는 곳이 있다면…… 가서 예전 가족들 찾지 말고, 날 기다려요. 손잡고 좀 걸으면서…… 내가 욕 좀 할 테니까.”
진담 반, 화풀이 반.
한효준의 인사가 끝난 뒤에 시신이 관에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짐을 챙겨 운구차로 이동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상여를 메고 곡을 하며 장지까지 가기도 하지만, ‘가나 관짝 밈’처럼 유쾌한 분위기에서 망자를 위로하기도 한다.
한중원의 운구는 그 중간쯤이었다.
곡을 하며 고인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화려한 발재간으로 분위기를 띄우지도 않은 채, 그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시신을 화장터로 옮겼다.
신지원이 입을 연 것은, 타오르는 화장로를 보면서였다.
“아저씨처럼은 안 되나봐요.”
“응? 뭐가 말이니, 지원아?”
“시체요. 보면은, 아저씨 같은 생각이 들까 했거든요. 아. 이거는 제가, 상상했던 건데요.”
“……그래. 어떤 상상을 했었는데?”
“아저씨가 군대에서요, 누가 자살을 했는데요, 그거를 발견한 거예요. 그랬는데 시체 보면서 울어요.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미안해서요. 지켜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요.”
[환상의 수용]이 남긴 잔재다.
보통은 ‘내가 뭔 잡생각을’ 하고 잊어버릴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공상처럼 재미있는 일이 또 없는 법.
신지원은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었다.
“저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아저씨 사랑하니까, 아저씨가 좋아하는 할아버지 아빠? 죽은 거 보면 미안할 것 같았어요. 근데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웃기던데.”
“저런. 혹시라도 한 교수님께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네. 근데요, 아저씨는 왜 화 안 내요? 엄마는 이런 말 하면 화냈는데. 너 왜 그러냐고 막.”
“화를 낸다고 해서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진 않지? 강요받은 감정은 마음에 좋지 않아. 그래서 화 안 내는 거야.”
“그게 아니라요, 화가 막 나서 못 참지 않아요?”
“나쁜 마음이 아닌 걸 알면, 화가 안 난단다.”
“헤헤. 저는요, 아저씨가…… 그래서 좋아요. 저요, 절대로요, 아저씨 화 안 나게 할게요. 할아버지한테도 기분 나쁘게 말 안 하고요, 다른 애들 아프게 안 할게요. 그러니까…… 아저씨도요, 저 절대로 미워하지 마요? 알았죠?”
나는 사실, 여전히 신지원을 알지 못한다.
[환상의 수용]은 그녀에게 사용한 기술.
내 쪽에서는 아이의 모든 삶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꼭 기술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동류의 아빠는 일부러 그녀를 외면했다.
타입이 다른 엄마는 그녀가 두려워 몸을 떨었다.
그 환경 속에서, 싸이코패스라 해서 편안하기만 했으랴.
미움받고 말 거라는 두려움에, 사랑받을 수 없으리라는 짐작에, 아닌 척하면서도 매일 눈치를 살폈을 텐데.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미워하지 않을게.”
“……다행이다. 고마워요, 아저씨.”
신지원은 내 다리를 꼭 안았다.
그 온기와 촉촉한 물기 위에, 황금빛 메시지가 떠올랐다.
「 에픽퀘스트 6 “신지원을 쓰러뜨려봐요” 완료!
‘상담사’님께 가장 적합한 보상을 분석할게요…… 」
슬프고 기쁜 이야기.
아이는 이제 세상에 받아들여질 것이다.
비록 천성적인 자기 모습으로 학교 친구들을 대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을 미워하지 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녀 스스로 세상과 다른 나를 수용했기에.
죽거나 죽이지 않고, 신지원은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 메시지가 이어지기 전까지는.
「 에픽퀘스트 7 “이가을을 죽여봐요” 발생! 」
죽여봐요.
그런 퀘스트가 나타났다.
내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최악의 명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