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62장 - 수용하는 상담사 (2)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촬영 도중에 차를 몰고 신지원을 집에 데려다준 손바울은, 상담 시퀀스가 모두 끝난 직후에 복귀했다.
그리고 오자마자 내 곁에 붙어 현황을 보고했다.
“꼬맹이가 불독 교수한테 사랑에 대해 물었던 모양입니다.”
“사랑에 대해? 그거 혹시 비밀 얘기 아니었니?”
“예. 그렇지만 꼬마는 꼬마니까요. 살살 꼬드기니 알아서 불더군요. 선생님께는 절대 말씀드리지 말라고 강조했지만요.”
“그런 걸 내게 말하면 어떡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걔가 제 내담자도 아닌데.”
“네 내담자는 아니지만, 라포를 형성해야지. 너도 상담사를 꿈꾸고 있잖아? 가까이 있는 사람과도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초면의 내담자와는 더 어려울 거다.”
“흠. 그래도 이것까지만 보고드리겠습니다. 그 녀석도 슬슬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에요. 자기 정신상태가 특이한 건 알고 있는 애니까요. 그런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혹시 감정을 연기하는 거짓말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자연스러운 의심이다.
그렇기에 이용덕의 대답 쪽이 궁금해졌다.
“이 교수님은, 뭐라고 답해주셨다니?”
“사랑이란 변연계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이라고요. 이른바 각인효과처럼 상대를 우상화하는 일시적 현상이라 했습니다.”
“……그분도 참, 일곱 살 아이에게 그렇게 설명하시다니.”
“꼬맹이는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깔끔한 설명이라나. 그 뒤에 되물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선생님께서 자길 사랑하는 것도 그렇게 첫눈에 반한 거냐고요. 그랬더니 불독 교수가 정색을 했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냐면서요.”
“그럼, 나에 대해선 뭐라고 설명했을까?”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요. 페닐에틸아민이 아니라 도파민과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넘쳐나서, 자길 칼로 찌르는 사람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할 만한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내가 그런 이미지인가?”
“예. 불독 교수가 웬일로 맞는 말을 했죠.”
그야 이용덕은 늘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나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데.
어디까지나 용서할 수 있는 존재들까지만이다.
단적으로 말해, 나는 이춘엽을 사랑하기 힘들었다.
멍청한 사람이었다.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않은 상황에서, 기쁘고 즐거운 기억만을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가족을 향해 소리나 질러댔다.
나는 그 내담자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정말 걱정된다면 더 신중했어야지.
부정적 감정을 억누르고 철저히 계획을 세워, 가족들이 자기 사후의 미래에 대비하도록 이끌어줬어야지.
그저 비통해하며 화만 내서야 될 일도 안 된다.
착해빠진 가족이 아니었다면 진작 충돌이 생겼을 터였다.
그렇기에 상담을 성공시킨 것은 내가 아닌 NBSC.
문제행동으로 일그러졌던 이춘엽은, 대화 사이사이에 곁들인 [환상의 수용]을 통해 아내와 딸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들이 가장의 죽음을 부정해야만 했던 이유를.
그 기술이 작동한 것을 보면, 이춘엽은 아내와 딸을 자기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하지 못했던 인물.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과거의 박대민이 딱 그런 아빠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에.
이런 심리를 동족혐오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런 나와 달리, 상황실에서 이춘엽 가족의 이야기를 듣던 한효준은 자꾸 콧물을 삼켰다는 듯했다.
조명기 교수가 놀리듯이 한 말.
하지만 내 차 뒷좌석에서 한숨을 내쉬는 스승의 얼굴을 보면, 그게 아주 장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교수님.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응? 허허. 고민보다도, 그런 생각이 들었네.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혹시, 부친께서?”
“뭐? 아, 이런. 오해를 샀군. 고양이 얘길세.”
“아. 나비 말씀이시군요.”
“그래. 교수회관 근처에서 업어온 뒤로도 15년이 됐지. 이제는 상당한 장수묘라고 하더군. 슬슬 끝이 다가오는 셈이야. 아까는 내가 여상스럽게 잘 지낸다고 답했네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더는 캣타워에 오르지 않네. 거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일도 줄었고. 그저 터벅터벅 창가쯤이나 가봤다가, 느긋하게 내 발치에 와서 잠들곤 하는 게야.”
“……그랬군요.”
“한낱 미물임에도, 그 모양을 보는 것이 괴로워.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얼마 뒤부터는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잊고 산다네. 스스로 못 오르니, 내가 캣타워 역할을 해주곤 해. 스스로 못 뛰니, 그놈을 대신해서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렇게라도 해야 어제와 오늘이 또 다름을 모를 것 같아서.”
“좋은 집사님이시군요.”
“좋기는 무슨. 아무튼…… 15년을 데리고 산 고양이도 그럴진대, 20여 년을 함께한 가족이라면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게지. 잠시라도 이별을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게지. 받아들였다가는, 은연중에 현실을 암시했다가는, 죽음을 앞둔 이가 일상을 잃고 말 테니까. 신음하다 지쳐 잠든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마음. 화장실에서 쓰러져 정신 잃은 아비를 마주했던 딸의 마음. 그들을 그저 연약한 사람들로 치부했던 환자의 마음도 모를 것은 아니나…… 기실 그들이야말로 이춘엽을 지키고 있었던 게야.”
말하자면,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셈이다.
미래가 고정된 이가 소외감 속에 떠나지 않도록.
이성으로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사실을 감성으로 부정하며, 일상이 지워지는 일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어쨌든…… 착해빠진 가족이었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는 가정이 요새는 흔치 않지. 잠시나마 행복할 게야. 현실의 한계가 통증을 만들고 있었으나, 자네가 깨뜨려줬으니.”
“깨뜨려준 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별 것 아닌 이야기들에도 공감을 해주시기는 했지만……”
“속이 빤한 겸양은 떨 것 없네. 실패했다고 생각했다면, 이렇듯 속 편하게 촬영을 마치지 않았을 사람이니. 다른 때는 자정까지 촬영 강행하고 그때부터 인터넷방송 켜곤 했잖나. 확신이 있었으니 조기 퇴근을 지시했겠지.”
“지시라니요. 저야 교수님들 의견을 여쭤본 거지요.”
“그게 그거 아닌가? 우리야 결재나 해주는 게지. 사실은 자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상담임을 모두가 알고 있어. 유종찬 PD가 뭐라고 하든, 이미 끝난 상담을 길게 끌어 뭐 한단 말인가? 가족들끼리 보낼 시간만 축내게 되는 셈인데.”
그런 얘기까지 들으니 머쓱해지고 말았다.
운전석의 손바울은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양 씩 웃었지만.
그때는 나도 한효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만에 부고를 받아들게 될 줄은.
신이 아닌 우리는, 세상이 결정한 죽음을 예상할 수 없었다.
“교수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오지 마.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갈 사람이 간 게야.]
“아닙니다. 스승의 부친상인데,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
[내 이럴까봐 굳이 전화로 알리고 있는 거 아닌가. 그 콘서트가 어디 혼자만의 일이야? 상담사는 그래서는 안 돼. 장례라면 며칠간 열리지만, 자넬 기다리는 내담자들은 단 한 순간도 기다리지 못할 수 있으니.]
“……콘서트만 마치고 바로 가겠습니다.”
[내일 오라니까. 첫날은 친척끼리 보내는 게야.]
“설마 교수들에게도 안 알리신 겁니까?”
[알려 무엇하겠나. 대학교수가 무슨 대단한 관계도 아닌 것을. 그저 조명기나 불렀네. 그 정도면 충분해.]
충분할 리가.
한효준에게는 친척이 없다.
양친의 이혼 뒤 외가와는 연이 끊어진 처지.
부친도 마약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한 뒤로는 호적에서 지워진 셈이 되어, 부계를 빈소에 부르기도 어려울 터였다.
그렇기에 부산의 꼰서트 내내 마음이 조급했다.
귀경길은 손바울의 차량 대신 국내선 항공을 이용했다.
그렇게 최단시간에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호삼소의 송은진이 벌떡 일어선 것이 시작이었다.
“어? 부장님! 부장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요?”
“어…… 너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저요? 저야, 한 교수님 가족상이면 와야죠.”
“어…… 그래?”
“네. 우리 엄마 제일 친한 친구니까요. 그런데 놀랐어요. 이렇게 북적거릴 줄 몰랐거든요. 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조문객들 안내도 못 할 뻔했잖아. 저 오길 잘했죠?”
신발장 안쪽으로 보이는 접객실에 조문객들이 넘쳐난다.
한효준이 연락했을 것 같지는 않은 대인원.
마침 분향실에서 김지연이 나오는 참이라, 급히 불러 사정을 캐물었다.
“김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박 선생님. 저, 조 교수님께서…….”
“설마, 조 선배님께서 연락을 뿌리신 겁니까?”
“네. 심리학과 동문들한테 다 연락하셨다지 뭐예요? 서울대 심리학과 석좌교수 한효준 선배의 부친상입니다, 이렇게.”
“이런…… 상주의 의견을 무시해버리셨군요.”
“네. 전 마침 은진 씨랑 같이 저녁 먹던 참이라서 같이 오게 됐고요. 근데…… 개인적으로는 잘된 것 같아요. 우리 교수님, 좀 너무 폐쇄적이시잖아요. 가족도 없으신 분이 혼자 어떻게 버티시려고, 저한테도 연락 안 하시고.”
“원래는 내일 연락할 셈이었다고 하시더군요.”
“말만 그렇게 하고 안 하셨을걸요? 그…… 아시다시피요.”
그 부분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아온 가족의 장례에, 사적으로 가깝지 않은 이들을 부르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렇게 생각해서 한효준의 뜻을 존중하려 했던 것인데……
분향실의 조명기 교수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픽 웃었다.
“그냥 확 불렀지. 안 부르면 후회할 테니까요.”
“왜 그렇게 판단하신 겁니까?”
“글쎄…… 내가 한 선생님 사정을 잘 모르긴 해요. 그러니까 내 기준에 맞춰서 판단해야 했지. 잘은 몰라도 얼추 비슷했을 겁니다. 내 선친은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는, 아시다시피, 이후로 검경 이런 부류까지 미워하게 됐거든. 그래서 부친과는 연을 끊고 지냈어요. 장례 때도 사적인 지인들은 한 명도 부르지 않았지. 그게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혔어요. 그래도 마지막인데.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였는데. 거기서라도 내 지인들에게 부친에 대해 토로할 수 있었다면, 이후로 오랫동안 선친을 증오하며 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한 선생님은 그런 후회를 안 남기길 바랐어요. 다시는 기회가 없을 테니까. 지금 풀어내지 않으면…… 평생 가슴속에서 그 갈등이 되풀이될 테니까.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을 강요하시다니. 세간에서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릅니다.”
“하하. 맞아요, 난 꼰대지.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꼰대는 불쾌한 기분을 안기지만, 적어도 후회를 만들지는 않거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는 꼰대가 필요해요.”
평소 우스갯소리를 즐기지만, 조명기는 셈이 깊은 사람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틀리지 않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삶의 끝을 전별하는 장례라면, 선험자의 간섭이 필요치 않다고는 말하기 힘들 터였다.
그렇지만 그 진리를 수용하기가 힘들었다.
한효준의 현재에 비춰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 과거를 상상하는 조명기와 달리, 나는 그의 소년기를 직접 들은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괴로워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명기의 행동이 옳았다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교수님께선 어디 계십니까?”
“몰라요, 어디 있는지. 나 때문에 몰려든 조문객들 꼴 보기 싫다고, 분향 대충 마치고는 핸드폰도 놔두고 나가버렸어.”
“그러실 만도 했지요.”
“하하. 오시면 바로 알려줄 테니까, 가서 식사 좀 하고 있어요. 부산에서 밥도 못 먹고 달려온 거잖아? 먹어요, 먹어.”
상주 없이 혼자 분향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멋쩍게 접객실로 이동하자, 날 아는 재학생들이 반겨줬다.
그 틈에 중년 남자가 하나 끼어 있었다.
과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연이 닿은 정한길이라 했다.
낯이 익은 박사과정 몇몇과 술잔을 비우던 그는, 내게 자신을 소개한 뒤 따로 구석진 자리를 잡길 권했다.
아무래도 어린 학생들과의 합석은 불편하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전 한심한 인생이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도 이혼해서,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 권유에…… 친구라고 믿었던 나쁜 놈의 꼬드김에, 약을 하게 됐어요.”
“마약 말씀이시군요.”
“예. 그걸 끊는 일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굳게 마음먹고 현실로 돌아오려 노력해봐도, 막상 돌아오면 그게 지옥이었거든요. 제 몸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가족은 전화조차 받지 않고, 세상 어디에도 제가 일할 곳은 없었죠. 그래서 그런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또 약을 찾고…… 그런 과정이었어요. 그때 한 교수님을 뵈었지요. 그리고, 고인도요.”
“고인을 뵌 적이 있으십니까?”
“예. 울면서 구해달라고 한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주셨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해주셨죠. 이미 식사도 용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그저 병상에 누워만 계셨던 고인을…….”
한효준의 부친 이야기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기에 정한길의 목소리는 낮아져 있었다.
“고인에 대해 이런저런 말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했더니, 잠깐 고민하시다가, 박대민 선생이 오면 둘이 얘기 나누는 건 괜찮아, 이러시는 겁니다. 그 표정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박 선생님께서 그분을 도와주셨음을요.”
“제가 감히 도와드렸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는 그날…… 그 병원에 갔던 날, 처음 봤습니다. 한 교수님 눈이 울분으로 불타오르는 걸요. 세상 제일 인자하신 그분이, 자기 부친을 향해서 그러고 계셨던 거예요. 그때 정신을 차렸습니다. 내 아들이…… 그때야 아내한테 가 있어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내 아들이, 날 보면서 저런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그건 정말,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제일 끔찍한 지옥 아닐까 싶더군요. 덕분에 간신히 약을 끊을 수 있었던 건데…… 하하. 오늘은 그런 게 없으셨어요.”
“그렇습니까.”
“예. 고인을 말씀하시면서도…… 옅게 웃으시더군요.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으셨겠지만서도,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연락하신 것만 봐도요.”
많은 사람에게 연락한 것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한효준과 함께 고인을 만나본 전 중독자의 말에, 그나마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슬픔만이 남지는 않은 듯해서.
내 스승은 미움을 벌써 다 지운 모양이다.
용서까지는 어려웠겠지만.
마약이라는 것은 때때로 인간성을 삭제해버린다.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필로폰이 특히 그랬다.
도파민 수용체가 영구적으로 손상돼 정서가 파괴된다.
치아와 잇몸이 기괴하게 손상되다.
대사량은 폭증하는데 식욕은 사라져, 신체가 말라가고 장기가 약화돼, 오래 복용할 경우 심폐기능까지 망가진다.
고혈압과 뇌출혈과 발작과 심장마비가 뒤따른다.
심한 경우, 병상에서 벗어나면 하루도 살기 어렵다 했다.
그리고 수십 년간 필로폰을 복용했다는 고인을……
한효준은 ‘산송장’이라고 칭했었다.
말기 위암의 통증과 시한부의 스트레스로 폭언을 퍼붓게 된 이춘엽은, 그럼에도 아내와 딸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지만.
한효준은 고인을 사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몸으로 망가진 과거를 상징하는 상태였으니.
내게 과거를 토로하며 어느 정도 응어리를 풀어냈다 해도, 부친을 마주해 그 죄마저 감싸안는 일이 쉬웠을 리야.
그렇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호삼소를 지켰다.
그리고 30분이 지나 한효준이 돌아왔다.
“……자네, 왔나.”
“예, 교수님.”
“……들어오게. 분향해야지.”
조문 이후, 나는 흰머리의 상주를 오래 바라봤다.
그의 마음이 바라보는 지점을 상상하며.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로 아들의 정서를 망가뜨린 부친.
그것으로도 모자라, 약에 취해 가정을 도외시하고, 끝끝내 좋은 아버지로 돌아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간 고인.
한효준은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뭘 그리 빤히 보나? 가서, 식사나 해.”
“식사는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 피곤해.”
“예. 그러겠습니다만…… 교수님. 고 한중원 선생님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교수님께서는, 고인을 용서하셨습니까?”
“그럴 리 없음을 알잖나. 그런 자를…… 어찌 용서하겠어.”
나는 그때, NBSC가 오류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한효준의 얼굴에 명백한 사랑이 엿보였기에.
그것이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저…… 교수님? 혹시 말입니다. 혹시…… 고인의 삶에 대해 조사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없어. 그런 건 왜 자꾸 묻나? 조명기를 닮아가는 게야?”
“그렇다기보다는…….”
한효준이 고인을 용서하지 못했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뚜렷한 사랑으로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문득, 이용덕이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자길 칼로 찌르는 사람에게도 사랑한다 말할 만한 사람……
그 표현은, 내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 [환상의 수용]을 사용합니다 > ‘한효준’
‘고인’의 처지가 수용됩니다. 」
한효준은 고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기 목숨까지 바쳐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는 해. 평소에도 그랬는데, 오늘따라 별 시답잖은 가능성까지 떠오르는구만. 아무래도 이런 자리라서 그런 걸까……. 이를테면, 이런 거였을지도 몰라. 한국전쟁 때에…… 당신 가족들이 많이들 돌아가셨다 했어. 그래서 나한테 지금 친척이 몇 없는 것이지만은…… 그게 단지 전쟁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잖나. 한 가족 안에서도 서로 뜻이 다른 사람이 많았을 수 있어. 그래서 그,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도 나왔지 않은가? 음. 애들 영화만 보는 자네야 모르겠지만.”
“……저도 그 영화 정도는 봤습니다.”
“그랬나? 아무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아비는 천주교 교인이었단 말이야. 술을 안 마셔서 날 때리지 않은 날에는, 잠 잘 자라고 성경을 읽어주곤 했지. 그것이 만약…… 나라가 분단되기 전부터였다면 어땠을까. 동네에서 이름난 수재로서 선교사들에게 예쁨받는 자유주의자였다면. 그런 와중에 집안에서도 이념이 갈려버렸다면…….”
“고인께선, 가족에게 위협을……?”
“그랬을지도 모르지. 몇몇 가족들이 철저한 공산당이었다면. 그래서 당 전체의 안위를 위해 위험분자를 배제하려 했다면.”
“그래도, 가족이지 않습니까?”
“나야 뭐, 그저 상상해보는 게야.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당신은…… 평생 가족이 겨누는 칼이 두려워 악몽을 꾸고, 술이든 약이든 집어삼켜 현실에서 벗어나야 했던…… 시대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하고.”
그저 상상일 뿐이라며 손을 내젓는 스승.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어렴풋이 상상하는 그 가능성이, 오류 없는 진실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