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72화 (172/200)

# 172

61장 - 양육하는 상담사 (3)

“쟤는 뭐야?”

박지수는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신지원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외쳤다.

“언니, 사랑해요!”

“어…… 쟤 왜 저래?”

“하하. 유명한 꼰순이 언니가 참 좋은 모양이구나.”

“아니…… 쩝. 안녕? 너 이름이 뭐야?”

“신지원이요. 일곱 살이에요.”

“난 박지수. 열네 살. 반가워.”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날 뒷좌석에서 끌어낸 딸은, 직업교육 차원에서 친구 딸을 동행시키고 있다는 말에 당황했다.

“아빠가 왜? 아빠 구몬 쌤이야?”

“하하. 아빠가 구몬 쌤이면, 아구몬 쌤이네?”

“아, 개드립 치지 말고.”

“박지수! 선생님께 말조심해라.”

손바울의 외침에, 딸은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차 안까지 닿기에는 작은 목소리였기에.

첫째 제자가 독순술에 능하다는 설명은 미뤄둔 채, 나는 딸에게 가상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저 바울이처럼, 지원이도 상담이라는 업무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나이도 어린데 참 가상하지?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체험해보게 해주려는 거야.”

“아니…… 일곱 살이 뭘 알아?”

“지수 너도 일곱 살 때 멋진 꿈을 꿨잖니?”

“내가? 그랬어? 뭐였는데?”

“대통령, 장군, 우주비행사, 뭐 그런 것들. 유치원 학예회 때도 연극에서 왕 역할 했었잖아? 친구들이 다 너 추천했다면서?”

“아…… 애기 때였잖아. 그땐 뭘 몰랐지.”

“유튜버하고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아니, 현실적이지가 않잖아. 대통령이 말이 돼?”

대통령보다 유튜버가 현실적인 꿈인 것은 맞다.

유튜버라면 해마다 수천 명씩 등장하지만, 대통령은 동년배 중 한 명도 나오기 힘든 법이니.

그렇지만 진짜 현실을 논하자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통령을 꿈꾸던 이들은 실패한다 해도 지자체 의원이나 국회의원 보좌관 등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있지만, 실패한 유튜버는 먹고살기도 빠듯한 곤경에 빠지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딸의 현실적인 꿈을 회의하고 있다.

내 딸로 알려져 있으니 구독자야 빨리 늘겠지.

그러나 노력 없이 얻은 유명세는 질시로 이어진다.

그런 불안한 미래보다는,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 대통령에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판단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의 딸’에서 ‘의’는 소유격 조사가 아니니까.

양육이란 결코 단방향이 되어선 안 된다.

만약 한쪽이 일방적인 관계를 강요하려 들 경우, 백이면 백 문제행동이라는 반작용이 가정을 망치고 만다.

신지원 케이스 역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평범해지길 바랐다.

이뤄질 수 없는 그 바람이, 신지원에게는 자신을 부정하는 강요가 되었고, 그로써 부적응적 행동이 자라나려 했다.

그렇지만 그 집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면, 충분히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양육자가 있기에.

“그래서 엄마가요, 지현이한테서 인형 뺏어줬어요. 제가 동생한테 화 안 내고 기다려줬다고, 칭찬해줬어요.”

“그래. 지원이의 인형이라는 소유권을 존중해주셨구나.”

“네. 지현이는 울었는데요, 쓰담쓰담 해주니까 그쳤어요. 걔가 저 좋아하거든요. 억지로 웃어주는 건데 걔는 몰라요.”

“잘했다. 동생 마음도 헤아려주고, 참 좋은 언니네?”

“그죠? 헤헤. 칭찬받았다.”

그 대화를 룸미러로 지켜보며, 지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남의 딸에게 친절한 아빠를 지켜보는 일이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입을 열어 그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내 딸은, 비록 친동생은 없지만, 참 괜찮은 언니감이었다.

차에서 내려 내 곁에 붙은 뒤에 한 말도 그랬다.

“아빠, 나도 동생 갖고 싶어.”

“……동생은 갖기 힘들지 않을까?”

“왜? 아빠, 엄마랑 그거 안 해?”

“음…… 어험. 지수야, 정말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아니 그냥, 아빠 애들 좋아하니까. 전에 그랬잖아? 둘째 낳으면 꼰서트 나온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보낼 거라고.”

“소진희 내담자 얘기구나. 그건 그냥 마음을 표현한 거지.”

“아무튼. 나도 다 컸으니까, 엄마도 애기 나한테 맡기고 일해도 되잖아? 그럼 동생 낳아도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목적사업에 돌입한 대민재단 일로 바쁜 아내가, 중1짜리 딸만 믿고 임신하는 것은 좀 어려울 텐데.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관점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내 딸은, 자기도 동생이 있다면 신지원보다 훨씬 잘 돌볼 수 있음을 피력하고 싶은 듯했다.

“아빠가 엄마랑 한번 상의해볼게. 우리 지수가 이렇게 믿음직하니까, 다른 문제가 없다면 둘째 갖는 것도 좋겠지.”

“히히. 근데 아빠, 그거는 나 없을 때 해.”

“어, 음.”

“좀 이상할 거 같아. 아빠랑 엄마랑 그러는 거.”

“그, 그래.”

“나는 애기 많이 낳을 거야. 한 명은 외로울 거 같아.”

“그렇구나. 둘? 셋?”

“셋. 아들 하나 딸 둘. 좋겠지? 같이 재밌게 놀 거야.”

“그래. 손자손녀가 그렇게 많으면, 아빠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서두르진 마, 지수야. 남자 보는 눈을 키워서 좋은 남편감을 찾는 게 먼저니까.”

“헹…… 아빠, 진호 오빠는 어떤 거 같아?”

아이가 이성에 관한 의견을 묻는 것은, 대단한 행복.

보통은 엄마에게도 잘 꺼내지 못하는 얘기다.

그런 생각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진호도 괜찮은 아이지. 겉으로는 장난기가 넘치지만 마음은 깊은 녀석이야. 단, 사귄다고 해도 스킨십은 안 된다.”

“응? 아 뭐래? 아니, 내가 뭐, 그 오빠랑 사귄대? 어이없어. 나 눈 높거든? 나는 그냥, 어떠냐고 물어본 거지.”

“그렇구나. 아빠가 설레발 떨어서 미안해.”

“아, 진짜 어이없어. 나는 유튜버 해서 아이돌이랑 연애할 거거든? 민쭈 오빠가 나 성인 되면 데이트 해준댔어.”

“어…… 민성 군이? 어…… 일곱 살 차이라……”

“왜? 안 돼? 일곱 살이면 궁합도 안 본다는데?”

“그건, 도저히 궁합을 볼 나이가 아니라는 뜻 아닐까?”

“아 왜? 아빠도 엄마랑 일곱 살 차이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헛기침만 반복했다.

그 어색한 와중에, 신지원이 도도도 달려왔다.

“언니, 마흔 살 차이는요?”

“뭐? 뭐가?”

“나랑 아저씨랑 결혼하면요? 궁합 봐야 돼요?”

“……아빠, 얘 뭐라는 거야?”

“하하, 글쎄. 요즘 애들 농담이겠지. 자! 가자. 아빠가 맛있는 거 해줄게. 바울아, 얼른 나와. 잘못하면 방송 늦겠다.”

내가 떡갈비를 꺼내 해동하는 동안, 신지원은 날카로운 눈으로 집안을 살폈다.

그 모양새에 지수가 짐짓 어른인 척을 했다.

“야, 지원이. 남의 집에 오니까 좀 어색하지?”

“아뇨? 저 체크하고 있는 건데.”

“뭔 체크?”

“집이 어떤지요. 됐고요, 저 화장실 갈래요. 어디예요?”

“어…… 저쪽. 싸고 손 잘 씻어.”

“언니도요. 집 들어와서 손 안 씻었죠? 그럼 세균 걸려요.”

“세균은 걸리는 게 아니라…… 아, 말을 왜 끝까지 안 들어?”

신지원은 아마도 영역표시를 하고 싶은 듯했다.

캠퍼스에서도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부터 섭렵했듯이, 내가 주로 생활하는 모든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것.

그러는 동안 딸이 내 옷을 잡아당겼다.

“아빠, 쟤 이상해. 애가 일곱 살 안 같아. 애늙은이야.”

“하하. 그런 애도 있는 법 아니겠어? 지수도 어른스럽잖아.”

“나? 나야 뭐, 어른이지. 그쵸, 바울 오빠?”

“몰라. 오빠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해? 아저씨?”

“그래. 그 정도 거리감이 좋다.”

“아…… 진짜 이상해. 아빠 제자들은 다 왜 저래?”

“지수야, 너무 그러지 마. 바울이가 저래 보여도, 너 괴롭히는 사람은 쫓아가서 손가락을 다 부러뜨리겠다는 애니까.”

“아, 진짜? 오빠, 진짜예요?”

“비슷하긴 한데…… 네가 좋아서 한 말이 아냐. 개인으로서는 관심 없다. 선생님 딸이라는 특권에 감사하며 살아라.”

“아…… 진짜 희한해. 다 이상해.”

그렇게 투덜댄 딸만큼, 신지원 쪽도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 한 말을 들어보면.

“지수 언니는 좋겠네요.”

“어떤 면에서?”

“아빠랑 말이 통하잖아요.”

“그래 보였어? 계속 엇갈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랬는데요, 아닌 거 같아요. 이해해주니까 하는 말이에요.”

“……지원이 너는, 아빠랑 말이 잘 안 통하니?”

“몰라요. 아빠는 나랑 얘기 안 하니까. 변호사라서 맨날 집에 늦게 오는데요, 와도 말 안 걸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요. 다른 집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기도 한가봐.”

“아빠도 이제 달라질 거야. 얘기 많이 들어줄 거야.”

“진짜요? 아저씨한테 그런다고 했어요?”

“그래. 지금까지는 지원이한테 나쁜 영향을 줄까봐 엄마한테만 다 맡겨뒀던 거래. 하지만 아저씨가 그게 오해라는 걸 알려드렸어. 이제는 지원이한테 좋은 아빠 돼줄 거야.”

“……그렇구나. 아빠도…… 나 좋아할까요?”

“지원이는 어때? 아빠 좋아?”

“네.”

“아빠도 그럴 거야. 아니, 지원이보다 더 좋아할 거야.”

“헤헤.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저 좋아요?”

“그럼. 되게 좋지. 재혼 얘기만 안 한다면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예정보다 일찍 귀가한 아내가, 우릴 보며 반색했다.

“여보! 바울 학생하고…… 네가 지원이니?”

“네. 아줌마가 아저씨 부인이에요?”

“그래. 지원이 얼굴 보고 싶어서 빨리 왔는데, 엇갈릴 뻔했네? 오늘 아저씨랑 공부 재밌게 했어?”

“네. 사랑하는 아저씨랑 데이트 재밌게- 아야!”

“야, 따라와. 넌 나랑 결판을 짓자.”

“아 뭐야. 아, 당기지 마요. 당기면 없애버릴 거야.”

“선생님 앞에서 망신당하기 싫으면 조용히 따라와.”

손바울이 신지원을 데리고 차로 이동한 뒤.

아내는 나지막이 말했다.

“어휴…… 진짜 무서워 죽겠다. 이제는 2차성징도 안 겪은 애들까지 사랑한다고 그러고 있네.”

“미안해, 주희야. 당신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아.”

“어쩌겠어, 잘난 남편 만난 탓인걸. 쟤, 지수한테는 이상한 소리 안 했지?”

“어, 응. 지수가 이상한 얘길 하긴 했는데.”

“뭔데?”

“음…… 동생이 있었으면 싶다나.”

“그래? 그건…… 위험하지 않을까? 나, 마흔인데.”

“위험할 수도 있지. 그냥 그랬다는 거야.”

“후후. 그러면 뭐…… 산부인과, 한번 들러볼게.”

어째선지 기분이 좋아진 듯한 아내와 헤어져, 파주로 가며.

나는 서쪽 하늘의 노을에 자주 시선을 줬다.

떠올리는 것은 일곱 살 박지수와의 대화였다.

“왜 안 왔어! 온다고 약속했잖아!”

“미안해, 지수야. 아빠 회사가 이전을 했잖아? 그쪽에서 중요한 문제가 생겼던 거야. 도저히 시간을 내기 힘들었어.”

“왜 맨날 그래? 왜 맨날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왜 맨날 당연하게, 당연한 척해? 아빠한테 나는 안 중요해? 나는 아빠한테 회사보다 안 중요해? 나 발표회는 하나도 안 중요해?”

“아냐, 지수야. 그렇지 않아. 지수도 정말 중요해.”

“……지수도 중요해? 왜 나도 중요해? 나한테는, 아빠가 오는 게 쩨일 중요한데, 아빠한테는 왜 나는 ‘지수도’야?”

“지수야. 아빠네 회사는-”

“나는 아빠네 회사 싫어! 아빠네 회사 망했으면 좋겠어! 아빠 맨날 뺏어가니까, 쩨일 싫어!”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님에도, 기억이 가물가물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 가슴팍을 두드리던 딸애의 울음 외에는…….

신은호는 오늘도 아파트 초입에 나와 있었다.

시각은 아직 일터에 있어야 마땅할 무렵.

그렇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벤치에서 일어서고 있다.

“……지원아. 일어나자, 다 왔어.”

“으웅…… 아, 나 잤어요?”

“그래. 아침부터 여기저기 다니느라 피곤했지?”

“아니요. 데이트 해야 되는데, 자버렸어.”

“야, 꼬맹이. 데이트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뭐가 데이트냐? 이건 나랑 선생님의 공적인 일정이고, 넌 그냥 덤이야.”

“덤 아닌데요? 내가 데이트 하는 거고, 아저씨는 기사예요.”

“하…… 이 꼬맹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그래도 안 돼. 니가 그런 소리 자꾸 하면 사모님이 기분 나빠지신다고. 선생님 가족들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거 기억 안 나?”

“아, 치사해. 팩트로 때리냐?”

“어디서 반말이냐? 얼른 안 내려?”

“아저씨, 사랑해요. 나 내릴…… 어? 아빠네?”

차에서 내린 신지원은 쭈뼛거리는 태도를 감추지 못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일에 퍽 당황한 눈치.

그런 아이에게, 신은호가 성큼성큼 다가섰다.

“오늘 재밌었어?”

“으, 응! 재밌었어요.”

“어떤 게?”

“어? 응…… 아저씨가, 서울대 구경시켜줬어요. 그리고, 아저씨네 집에서 밥 먹었어요. 아저씨네 딸이랑 부인도 봤어요.”

“그게 재밌어?”

“으, 응…….”

“……그래, 잘됐네. 가자. 아빠 손 잡고.”

“응…… 아빠, 손 차가워요.”

“그래. 여름이 아직도 덜 왔나보다. 저녁엔 춥네. 저 아저씨한테, 내일부터는 몇 시 몇 분에 도착할 건지 아빠한테 톡 보내라고 그래. 그래야 30분씩 안 기다리지.”

“저 기다렸어요? 30분씩? 왜요?”

“몰라. 아빠는 그렇게 해야 된다더라.”

“아…… 응! 아빠…… 사랑해요.”

“그래. 대민 씨, 내일 아침에 봅시다.”

돌아오는 내내, 나는 신지원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사랑해요.

그 말을,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봤을까.

내 딸은 참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무관심한 부모에게 늘 냉정했던 나와 달리, 박지수는 따뜻했던 기억이라곤 유년기 몇 년뿐인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그저 못 이기는 척 채팅 하나를 남겼을 뿐.

가장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아빠에게는, 결코 쉬운 말이 아닐 터였다.

그 생각에 그날은 방송 내내 마음이 울적했다.

가족 사연은 사소한 것이라도 코끝이 찡해져, 눈물을 막기 위해 자주 천장을 바라봐야 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퍽 즐거워했던 모양이고.

그렇게 방송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딸과 마주쳤다.

“지수야? 뭐 사러 나왔어?”

“응. 아빠 왜 이제 나와? 방송 아까 끝났잖아.”

“어, 정리회의가 좀 길어졌어. 대수가 열정이 넘쳐서.”

“대수 삼촌, 약간 오타쿠야? 아빠 방송에 미친 거 같아.”

“하하. 그만큼 참 고마운 친구지. 지수 너는, 뭐 샀어?”

“야식. 나 오늘 두 시까지 공부하다 잘 거야. 내일 1교시 자습이라, 그때 좀 더 잘려구. 아빠가 안 늦게 깨워줘.”

“그래, 그럴게.”

“어. 약속 지켜.”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었다.

세상 전부보다 소중한 딸에게, 약속을 지키는 아빠가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프리월드가 가산동에서 판교로 이전한 2013년.

그때도 마포에 거주했던 나는, 이동 중에도 업무 현황을 파악하고자, 매일 두 시간 이상을 전철 위에서 보내게 되었다.

숙직실이 생겨 밤샘 야근이 일상이 된 것도 그 무렵부터.

그것이 내 딸이 딱 일곱 살이 된 시점이었다.

그렇게 딸애의 유치원 학예회마저 잊고 일에 매달렸던 날.

가슴팍을 두드리는 딸에게 나는 덧없는 약속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다시는 딸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겠다고.

나를 닮아 감정이 넘치는 그 아이에게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배신감을 안겨줬다.

이후 7년 동안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나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아이와 거리를 뒀던 신은호와.

그리고 7년이 지나 남의 딸을 차에 태웠다.

학예회 날도 아닌데, 구몬 선생님도 눈높이 선생님도 아닌데, 내 딸에게는 주지 않았던 애정으로 남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내 딸은……

일곱 살이 뭘 알겠냐고 말했다.

내 딸은, 약속을 어긴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

“……지수야. 아빠가…… 참 잘못한 게 많지?”

“뭐? 뭐가? 아, 어제 늦은 거? 됐어.”

“괜찮아? 화나지 않아?”

“화내면 뭐해. 아빠는 내 말 하나도 안 듣는데.”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럴게. 지수 말 잘 들을게.”

“그럼 나 유튜버. 아빠가 책임지고 100만 구독자 만들어줘.”

“그건 좀 다른 얘기고.”

“거봐. 하나도 안 들어주면서.”

잠깐 생각을 가다듬느라, 열 걸음쯤 더 가서야 다시 물었다.

“지수야. 유튜버는 왜 되고 싶은 거야? 진지하게.”

“나 맨날 진지하거든? 유튜버 하면, 좋잖아.”

“우리 딸한테 유튜버의 어떤 부분이 좋을까?”

“아빠가 볼 거 아냐.”

“아빠가?”

“아빠는, 맨날 유튜브만 봤잖아. BJ들 컨텐츠 분석한다고, 맨날 그것만 봤잖아. 나 뭐 하는지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야, 딸에게서 비닐봉지를 뺏어 들었다.

“아 뭐야. 인제 들어주냐? 치사하다 아빠.”

“……아빠 손 잡을래?”

“시른데 시른데.”

입술을 삐죽거리던 딸은, 곧 내 오른손을 잡았다.

그 손이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내가 나오길 30분쯤 기다린 사람처럼.

“……지수야, 사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 뭐래. 아 닭살. 난 민쭈 더 사랑하거든? 메롱이다.”

“그래도 두 번째로는 아빠 사랑하지?”

“아니거든? 엄마거든?”

“그러면, 세 번째는 아빠지?”

“……대충 그 정도?”

그보다 행복한 대답이 또 있을까.

아이의 찬 손을 꼭 쥔 내 마음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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