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61장 - 양육하는 상담사 (2)
집으로 향하는 길에, 손바울이 참을 수 없다는 듯 투덜댔다.
“무책임한 부모입니다. 상담을 부탁할 거면 돈을 내든가.”
“식비와 유류비로 월 100씩 보내겠다고 했잖니.”
“그거야 기본이죠. 매일 파주까지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니 당연한 거고, 추가로 월 200 정도는 내야 합니다.”
“과한 계산이구나.”
“과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선생님의 인건비를 최저한도로 계산했을 때의 셈법이죠. 선생님께선 방송만 켜면 시간당 200도 버시는 분이십니다. 월 300이면 감지덕지예요.”
“그렇다고 지원이 때문에 내가 일을 못 하게 되지는 않잖니. 무엇보다 은주는 내 친구야. 친구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은, 금전적인 거래를 떠나 마음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 상냥한 마음에 기대 이득을 보는 기생충이라니까요.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친구 분도 무책임지수 100%입니다.”
송은주는, 사실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껏 해온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장녀의 특이성을 알아본 것이 무려 3년 전.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아이를 정신과에 보내지 않은 채 사회화시키기 위해 엄마로서 무수한 노력을 경주했다.
그럼에도 신지원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단순한 이유.
내 친구는 본질을 잘못 짚었다.
딸의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고 거기서 공포를 느꼈다.
부모의 감정을 예리하게 알아채는 아이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노력보다 그 몰이해 쪽이 더 크게 느껴졌을 법했다.
그러니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송은주는, 무책임하다기보다는, 지친 엄마였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생각해보렴. 너는 이제 현서와 연인이 되어 마음을 배워가고 있지만, 3년 전에도 그럴 수 있었을까?”
“안 됐겠죠. 당장 1년 전만 해도 힘들었을 겁니다. 다 선생님께서 바꿔주신 거죠.”
“그건 아니야. 너 스스로 바뀐 거다. 어쨌든 그만큼이나 힘든 일인지라, 친모라고 해도 몇 년 안에는 아이의 독특한 특질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 그것을 바꿔줄 가능성을 놓치기 싫은 건 자연스러운 심리지. 날 이용해서 득을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거야.”
“그야 뭐…… 힘들어 보이긴 하더군요. 둘째 챙기면서도 눈은 계속 첫째를 좇고 있었죠. 바퀴벌레 게임 하면서 애가 가끔 어렵다고 소리치고 그랬는데, 거기에 움찔해서 안절부절못하고 그랬습니다. 흠. 핏줄이라도 그 정도 차이면 무서울 수 있겠죠. 좀 그렇네요. 어쩌면…… 저도 그렇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부모님께서 일찌감치 돌아가신 게 다행일지도.”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선후가 바뀌었어. 바울이 너는, 부모님과 함께였다면 분명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 됐을 거다. 지원이와 게임 하면서 지었던 표정을 보면 알아.”
“흠. 제가 어땠습니까?”
“상냥했다. 딸을 바라보는 아빠처럼, 상냥했어.”
“흠. 흠.”
콧노래 같은 감상을 남기고, 손바울은 입을 닫았다.
내 집 앞에 도착한 뒤에야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다름이요.”
“네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말이지?”
“예.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선명한 감정들이 좀 불편합니다. 친구 분의 그 두려움이나, 점점 짙어지는 현서의 애정이나, 뭐 그런 것들요. 남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내 아이가 그런 걸 보여줬을 때는…… 아무래도 괴리감에 휩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지원을 대하는 친구 분보다도 더…… 훨씬 더 무책임한 부모가 될 확률이, 70%는 됩니다.”
“그야 걱정할 만한 일이지. 모든 부모가 그런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70%는 아니다. 넌 누구보다 마음이 넓은 아이니까. 너는 지원이와는 분명 달라. 원시우주처럼 광활한 그곳에 감정의 씨앗이 꽃을 피우면, 그때는 나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 거야.”
“흠…… 글쎄요. 꼰마 미만 잡이죠. 들어가십쇼, 선생님.”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오랫동안 스스로가 보통이 아니라 믿어, 그리하여 경멸스러운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단정했던 아이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역전되었다.
선천적인 다름을 가진 신지원에 비해서는 자신이 분명 평범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저런 혼란을 느꼈을 법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이 우열이 아님을 아는 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을, 그래서 속으로는 매번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손바울은 언젠가 부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자신을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맹신이야말로 배척의 근원.
누군가를 과하게 사랑하면 이른바 ‘**미만잡(** 미만의 존재들은 모두 잡스럽다)’이라는 심리가 생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에도 우월성을 매기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는, 내 딸을 신지원의 위에 놓고 있지는 않은가.
“왜 인제 와! 일찍 들어온다며! 아침 일찍 들어오지 왜!”
……‘우리 딸 걱정 안 하게 일찍 들어올게’라고 했었지.
외도를 의심할 만한 외박은 아니지만, 자정이 넘어서 들어온 것은 일찍 들어온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딸애 입장에서는 배신당한 기분도 들었으리라.
가족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겨 그 스스로 약속을 어겨본 적 없는 딸에게는, 이런 문제가 사소하지 않을 테니까.
마음이 크기에 표현이 거칠어지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감정을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감정이 강하지 않아 대부분의 표현이 이성적으로 통제될 신지원과 비교하면, 한참 언니임에도 훨씬 유치해 보일 정도.
오히려 이쪽이 문제아처럼 보일 법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박지수를 사랑한다.
신지원과 굳이 비교하자면……
백만 배 이상, 천만 배 이상, 내 아이를 사랑한다.
그러니 아직도 부처는 못 되는 것이다.
때때로 신과 같은 기술을 사용할 뿐, 나는 모든 가치에 해탈한 성인은 아니다.
“우리 딸, 점점 엄마 닮아가네?”
“……바가지 긁는 거 아니거든! 아빠가 약속 어겼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엄마도 아빠가 약속 어기는 걸 정말 싫어했거든. 그런데 오늘은, 혼내는 역할을 너한테 맡겼네?”
“몰라. 엄마 자.”
“하하. 고마워, 지수야. 아빠 늦는데도 기다려줘서.”
“아니, 나 아빠 늦어서 짜증난다니까?”
“그래. 사랑해, 지수야.”
“아…… 진짜, 아빠 싫어!”
말이 안 통하는 아빠는 싫겠지.
그럼에도 미움보다 사랑이 훨씬 크다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딸이, 날 닮은 바보임을.
*
“부럽다…… 그렇게들 말하곤 하더군.”
한효준은 그렇게 말하곤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신지원을 바라보는 표정에 안타까움이 넘쳤다.
“열일곱 명. 내가 만나본 천 명 정도의 내담자 중 열일곱 명이 선천적 ASPD(반사회성 인격장애)였네. 확률적으로 따지기는 어려운 일이지. 애초에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 케이스들이라, 상담사를 잘 찾지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세상엔 선천적으로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이 그만큼 높은 확률로 존재하는 게야.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사회적 인간들을 경원시하며…… 부러워하고 있었지.”
“부러워하는 것은 어떤 지점인지요?”
“그 사회성 자체…… 그리고 그로써 비롯되는 인간적인 관계들이야. ASPD 환자들은 통제되지 않는 감정을 동경하네. 타인을 의도적으로 극한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그 반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일그러진 양가감정으로 인한 일이야.”
동경과 경원의 양가감정.
심리학적으로는 자연스러운 혼재였다.
그래도 어린 신지원에게는 약간 불쾌한 화제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쪽으로는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관찰하며 한효준이 설명을 이었다.
“어린 내담자들은, 나도 언젠가 저렇게 보통이 되겠지…… 그렇게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되지. 태생부터 다른 존재라서, 평생 평범함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동경은 이내 적개심과 경멸로 변질되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는 식으로 사고하게 되는 게야.”
“그 결과가 부적응적 행동이라는 것이군요.”
“그래. 십중팔구 그런 기작에 의해 문제행동이 발생하지. 참으로 안타까운 케이스들이야. 차라리 신체적인 장애라고 하면은…… 요새는 틱 장애조차 사회적으로 인식 수준이 나아지고 있는 실정. 그러나 ASPD는 다르다는 것이지. 부모조차도 이해보다는 편견으로 바라보니,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 마음을 닫고 말아. 그럼에도 종종 동류의 어린아이를 볼 때는 약간의 연민을 보여주곤 하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케이스는 드물지만,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인간성의 부재 어쩌고는 반증할 수 있을 게야. 그저 자신을 부정하는 세상 속에서 일그러진 피해자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지금도 신지원은, 한효준이 자길 두고 뭐라 떠들든 관심 없다는 듯 뚫어져라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 얼굴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
반대편에 앉은 손바울이 키득거리며 말을 받았다.
“쟤는 그렇게는 안 되겠네요. 폴인러브 상태니까.”
“흐흠. 그렇게 확신해도 문제는 없겠어. ASPD 케이스에서 가족 아닌 타인에 대한 애정이 발견되는 사례가 드물지는 않으나, 그 대부분은 왜곡된 지배욕의 형태. 저렇듯 순수한 애정이 마음에 가득하다면…… 결코 세상을 증오하게 되지는 않을 테지. 그 기대가 배신당하지 않는 한은.”
그 포인트에서는 신지원도 귀를 쫑긋거렸다.
이내 내 팔목을 흔들며 묻더라.
“아저씨, 저 배신할 거예요?”
“글쎄? 지원이가 말하는 배신은 뭘까?”
“저, 이상한 애라고 할 거예요? 미워할 거예요?”
“그런 배신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저씨는 지원이를 절대로 미워하지 않아. 평생, 어떤 경우라도.”
“제가 지현이 칼로 찌르면요?”
“동생을? 그러면 많이 슬플 거야. 그래도 미워하진 않아.”
“그럼, 제가 고양이 해부하고 놀면요?”
“너무 슬픈 일이구나. 그렇지만 미워하진 않을 거야.”
“그럼요, 제가 바울 아저씨 팔 자르면요?”
“뭐? 이 꼬맹이가 보자보자 하니까-”
“그때도, 아저씨는 지원이를 미워하지 않아. 그저 나 자신을미워하겠지. 네 마음을 지켜주지 못한 셈이니까. 그러니까 기왕이면 사람들이 싫어할 일은 하지 말아주렴. 지원이도 아저씨를 슬프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
“응. 헤헤. 아저씨, 사랑해요.”
“아저씨도 많이 사랑한단다.”
손바울이 짜증난다는 듯 발을 구르고, 한효준이 한숨처럼 해설했다.
“타인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도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 스스로는 짜증 외에는 이렇다 할 악감정도 잘 느끼지 못하니, 나에 비춰 남을 판단할 수 없네. 그러니 직접 행동하거나 질문함으로써 보편적 사회와 자신의 차이를 확인해나가는 게지. 그 지점에서 자네의 어깨가 무거운 셈이지만…… 일단은 안심이 되는구만. 자네야 저 손가 녀석도 이렇듯 잘 다독여온 사람이니.”
“예? 거기서 제 얘기가 왜 나옵니까? 비슷하긴 하지만 다릅니다. 제가 나이가 몇 갠데.”
“스물셋이나 일곱이나, 나한테는 애야.”
“참나. 이래서 노땅들은.”
“어흠.”
“바울아. 내 스승님이야. 예의를 지켜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저엉말 큰 잘못을 저질렀네요.”
“어흠…… 어른들끼리 잠깐 진지한 얘기 좀 하지.”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낸 뒤, 한효준은 날 창가 쪽으로 이끌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내 보면, 부친도 유사할 듯한데. 비밀로 해줄 셈인가?”
“예. 지금까지도 별다른 문제행동 없이 살아온 케이스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인지 왜곡이 있지만, 아내와 딸만큼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요. 종종 만나 상담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리라 확신합니다.”
“믿어도 괜찮겠나? 혹시라도…… 자네가 놓아준 범이 자네의 친구나 자네의 내담자를 해친다면. 그런 결과도 감수할 수 있겠냐는 말이야.”
“믿습니다. 진심으로 믿는다면, 보답해줄 사람입니다.”
“허. 거참. 속내를 읽어내는 부분이야 자네가 나보다 낫겠지. 부모가 아이를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겼으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충분히 사회성을 함양해줄 수 있겠고. 그러니 다 잘된 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어.”
‘사회성’이라는 말의 정의가 ‘보편적인 감정 수준의 사회인들과 동일한 감성’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싸이코패스들은, 결코 사회화될 수 없다.
애초에 기질이 다르니까.
억지로 사회화를 강요하는 것은, 인간을 바다에 던져 넣고 아가미로 숨 쉬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괴롭힘이다.
그 무지야말로 싸이코패스를 범죄자로 만들 몰이해였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의식적 사회화가 활용된다.
다름을 동경이나 경멸로 바라보는 대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특이성을 감춰나가는 순응.
신지원에게는 반년간 그것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사실은 그조차 미안한 노릇이다.
비유하자면, 아가미로 숨 쉬라고 강요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을 점자블록 없는 거리에 방치하는 느낌.
너희는 틀린 존재들이니 알아서 우리에게 맞추라는 식이다.
현대에 이르러 장애인들을 향한 편견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정신질환에 한해 여전히 다름이 틀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까지도 내가 바꿔가야 할 세상이겠지.
휴리스틱에 의거한 인지적 구두쇠 현상을 극복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가진 공포가 일부 지워지는 데에 물경 반세기가 소요된 것을 보면.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볼 때였다.
한효준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리고 준엄한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허나, 내 말했지. 길고양이는 그만 들이라고.”
“하하…… 집이 있는 아이인데요?”
“그런 소릴 하는 것이 아니잖나. 부친 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예상했다면, 홀로 그 집을 찾아가선 안 됐어.”
“바울이와 함께였지 않습니까.”
“이, 못난 자 같으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나? 자칫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냐는 게야. 저 아이의 부모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로써 문제의 소지가 있는 그 부친에게 짜증을 불러일으켜, 자네 자신이 그의 적이 됐다면.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칼이 자네를 노리게 됐다면. 그때는 도대체 어찌하려 했나? 죄송합니다 하며 당해주려 했나? 그보다 멍청한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네만 믿고 있는 내담자들을 위해서라도, 자기 몸을 더 챙겼어야지!”
“교수님, 밖에 들릴 것 같습니다.”
한효준은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일반적으로는 상대에게 몹시 실망했다는 제스쳐.
하지만 그 마음에도 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젯밤 바라봤던 딸애의 등이, 사랑으로 가득했던 것처럼.
“교수님.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저는 위험하더라도 찾아가야 했습니다. 외줄이라도 타야 했습니다.”
“이런, 못난……. 그게 할 소린가? 희생적인 것도 정도껏이야. 자네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딸은, 뭐가 되겠나?”
“희생이 아니라, 아내와 딸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무슨 헛소린가?”
“하하. 무슨 헛소리냐고 물으신다면 답이 애매합니다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어제 지원이를 만나기 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의식적 사회화 이전에 정서적으로 사회를 사랑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요. 그러려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시켜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평생 보통 감정을 연기하는…… 박탈감 속에서 살게 될 터였습니다. 그 부친처럼 말이지요. 저는 지원이에게 분명한 사랑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 아이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효준은 이를 딱 부딪쳤다.
‘닥터 프로스틀’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아직은 전부가 본인의 생니여서, 둔탁하기보다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 이후의 목소리는 어둡고 촉촉했지만.
“불가능하네. 그들이 우리를 의식적으로 해석하듯, 우리 역시 그들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그 다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하. 예. 정말 그렇더군요. 제 딸과는 너무 다른 아이였습니다. 다름이 극에 달해, 한쪽이 옳다면 한쪽은 그른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그 어둠에 삼켜질 뻔했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나, 저는 한때 제 딸애조차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제 기대와 다른 대꾸에 서운함을 느낀 적도 많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서로에게 세상 전부보다 소중합니다.”
“그야, 제 가족을 미워할 수야 있겠나.”
“예. 그 마음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제 아이라면 어떤 잘못을 저지른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더라도, 정말 결단코 사회화될 수 없는 괴물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간에게는 그 사랑의 힘이 있습니다. 비록 팔이 안으로 굽어, 바깥쪽에는 잘 닿지 못하지만 말이지요.”
그 연장선상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인간은 사회적이며 반사회적이다.
이타적인 척하는 이기적 유전자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욕하는 싸이코패스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신지원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내 딸과 다른 존재라 해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지원이 역시,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였습니다. 은하수처럼 빛나는 모친의 마음을 우러러보는 아이였습니다. 제 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없어도, 공감이 없어도, 사랑할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신지원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저는 제 딸 역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었습니다. 저라면 할 수 있으리라고요.”
“……그렇다면 내 묻지. 제 친동생을 해치고, 고양이를 해부하고, 손가 녀석의 팔목을 자르고…… 그 끝에 자네 딸마저 해친다 할지라도. 그때도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겠나?”
“예. 그렇다 할지라도 사랑합니다. 가족이 다친다 할지라도 변치 않습니다. 제 사랑은 그 가족을 위한 것이니까요. 제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제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악의 결말일 테니까요.”
“흥……. 아주 끔찍한 아비로구만. 자네 딸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야.”
“아닙니다. 분명 이해해줄 겁니다. 절 닮아서요.”
대화를 마치고 복도에 나서자, 신지원이 손바울에게 퉁명스레 따지는 모습이 보였다.
대화에 집중했는지 내가 나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그니까요, 재혼하면 되잖아요?”
“미친 소리 말라니까. 넌 선생님 딸보다도 어려.”
“걔가 문제면, 걔가 없어지면 되겠네? 그럼 되죠?”
“너…… 그런 짓 하면, 내 손에 죽는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씩 잘라 죽인다.”
“아, 그건 좀. 아저씨부터 먼저 없어져야겠어요.”
“흠. 좋아. 그 전에 내가 널 없애야겠네.”
“얘들아.”
사고실험의 살인 게임으로 열을 올리던 제자들이 돌아본다.
그들 앞에, 나는 사랑을 가득 담아 말했다.
“신지원, 손바울, 아내, 딸,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 중 누구라도 다른 이를 해친다면, 난 죽을 거다.”
“흠.”
“아, 안 돼요!”
“안 되니까 하지 마. 서로 사랑해주렴. 많이 사랑해줘.”
“흠.”
“네! 알았어요! 사랑해요!”
이걸 제대로 된 양육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참 사랑스러운 내 딸이, 이 사랑까지 이해해줄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