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70화 (170/200)

# 170

61장 - 양육하는 상담사 (1)

“잠깐, 나 좀 봅시다.”

신은호는 그렇게 말한 뒤 베란다로 나섰다.

설마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려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창가에 기대어 서더라.

창틀이 좁은 채광창이라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본능적인 공포가 그저 스릴로만 느껴진다는 싸이코패스의 특성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당장은 신지원 쪽이 급선무긴 하지만……

저 남자야말로 아이의 양육자.

그의 의문부터 해소해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바울아. 지원이랑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있어.”

“예, 선생님. 가볍게 게임 좀 해도 되죠?”

“……그래. 맡길게.”

베란다에 나서자, 신은호는 안쪽 유리문을 닫고 돌아섰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말씀이십니까?”

“지원이가, 울었잖아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앤데.”

“그건 거짓말이군요. 우는 모습은 자주 보셨을 겁니다.”

“……이거 그건가? 셜록꼰즈? 그야, 가짜로 울긴 했죠.”

“가짜였다는 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빠니까. 내 딸이 정말 슬퍼서 우는 건지 아니면 뉘우친 척해서 상황을 무마하고자 우는 건지는, 잘 압니다.”

그저 아빠라서 아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신지원에 대해 설명했다.

“제 소견으로는, 지원이가 소위 싸이코패스…… 선천적으로 사회적이지 않은 성향을 크게 타고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껏 정말 울고 싶어질 만한 일은 겪어본 적 없겠지요.”

“흠. 그래요. 나도 그런 거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방금은 정말로 운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싸이코패스한테는 그런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경험한 바일 터.

신은호는, 있을 수 없는 기적을 목도한 심경일 것이다.

그렇기에 황급히 날 불러내 독대하려 한 것.

그 마음을 곱씹으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싸이코패스들은…… 감정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합니다. 아이일 때도 그렇지요. 다른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일에 집단적으로 깔깔대며 웃을 때, 지원이는 함께 웃지 않았을 겁니다. 우는 엄마를 봐도 고개만 갸웃거렸겠지요. 그렇지요?”

“……예. 뭐 그런 원론적인 얘기는 넘어가고-”

“넘어가지 마세요. 원론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아니, 난 쟤가 왜 울었는지가 궁금한 건데요.”

“이어가죠. 그 감정의 부족이라는 것은, 분명 선천적이지만, 명백히 사회적입니다. 선천적이지 않은 저감정자 역시 세상에 많은 것을 보면요. 역으로 그걸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있는 감정이 왜 발현되지 않았을까요?”

“그거야, 성장환경 문제 아닙니까?”

“맞습니다. 성장환경. 예를 들어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그때는 높은 확률로 후천적 저감정자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런 걸까요?”

“그거야…… 흠. 잠깐만요. 알 것 같은데? 혹시…… 타잔 같은 걸 이야기하려는 겁니까?”

이해가 비정상적으로 예리한 것 역시 특징적이다.

보통 부모였다면 아이 걱정에 논리적 사고가 마비됐을 터.

그렇지만 저감정자는, 지능 수준에서 큰 결손이 없다면, 본질에 접근하는 일이 수월하다.

감정이 만들어내는 왜곡이 적은 까닭에.

“그렇습니다. 늑대들이 키운 타잔이 금세 인간답게 변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영국의 밀림에서 원숭이들과 성장했다는 여인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두 딸을 원숭이처럼 양육했다고 하지요. 그것이 환경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저감정을 타고난 아이는 어떨까요? 어떤 집에서 자라야 행복할까요?”

“그야 당연히, 평범한 부모 슬하에서 자라야죠? 그래야 보통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틀렸습니다. 자신과 같은 저감정자들에게 양육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정서를 계발할 수 있습니다.”

신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잠깐 그것을 굴리다가, 이내 탄식했다.

“하…… 외눈박이 마을.”

“정답입니다. 이른바 싸이코패스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사랑해야 마땅할 부모조차 미지의 대상입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당황하고, 자신에게는 없는 감정을 강요하며, 때로 공포에 질린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그 환경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물론, 짜증나는 일이죠.”

“짜증. 예. 저감정자의 세계에서는 그 정도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다행인 셈이겠지요. 저 같은 보통 인간이라면, 그 환경 속에서 정신이 온통 망가지고 말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다행일 뿐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도 스트레스를 안깁니다. 다른 애들은 왜 저렇게 쓸데없이 웃는 거지? 동생은 왜 저렇게 시끄럽게 우는 거지? 엄마는, 사랑하는 엄마는, 왜 내가 뭘 할 때마다 이상한 표정을 짓는 거지?”

“……처연한 얼굴이, 이상하게도 보이겠죠.”

신은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 표정에는 짜증 외에 다른 감정이 많지 않다.

생각에 집중해, 감정을 연기하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저것이다.

싸이코패스가 끔찍한 범죄를 일으키곤 하는 것은, 그 자신이 필연적으로 범죄자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해받은 경험이 없기에.

가족에게조차 부정당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 믿게 돼버렸기에, 내가 먼저 세상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다.

“그 환경입니다. 나는 배제되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감각. 가족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괴물이라는, 직관적 인식. 그 안에서는 성인군자라도 파멸하고 맙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나는 저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그렇게 왜곡하며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이때는 당연히 법률과 규범을 무시하게 되지요. 안 그래도 약했던 사회적 공감대가 급격히 무너져, 이익을 위해 남을 조종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받지 못한 아이는 필연적으로 범죄를 일으키고 맙니다.”

“그래서…… 차라리 저감정자 부모가 낫다는 거군. 물론 그렇게 망가지지 않은 케이스를 의미하는 거겠죠?”

“예. 자길 불가해의 괴물로 바라보지 않는. 자기와 유사한 사고회로를 가졌지만, 사회규범을 해석하는 논리를 알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이 지원이를 잘 키워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칼럼 같은 걸 보면, 싸이코패스를 정상적으로 사회화시킨 케이스는 사랑이 넘치는 부모였다고 하던데요.”

“서술의 오류입니다. 그 사례들은, 부모가 아이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긍정해, 그로써 아이의 관점에서 사랑을 베풀어준 케이스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보통 부모의 사랑으로는 오히려 아이를 망치고 맙니다. 인간 아이를 늑대들이 키우는 일이, 강아지를 인간 아이처럼 키우는 일이, 문제를 낳듯이요.”

신은호는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갸웃거리며 또 물었다.

“잠깐만. 아직 원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다 말했습니다. 난 지원이에게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사랑. 그녀의 다름까지도 포용하는 사랑. 그건 대단한 감흥을 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원이에겐 생전 처음으로 경험해봤을 감각. 기적처럼 느껴졌겠지요. 짧은 생애 내내 느껴왔던 짜증을 한순간에 풀어헤친 지각변동이었겠지요.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랑하는 엄마와 같을 수 있다는, 기적적인 결론을 각인시켜줬겠지요.”

“사랑…… 사랑이라.”

혀를 차듯 중얼거린 신은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면 저희도 주고 있었는데요.”

“……죄송하지만, 두 분은 사랑하는 부모님이 아니었습니다. 신지원이라는 아이는 온전하게 사랑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환경 때문에 사회성이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풍부한 감성의 모친 때문에요. 타입이 다른 사랑이었지요.”

“흠. 그래서 외눈박이 마을이라는 거군요. 저런. 큰일이네요. 저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데.”

“장난치지 마세요. 왜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까? 은호 씨가 제일 문제였습니다. 알고 있었잖습니까? 저 아이가 당신과 같다는 걸. 그래서 마음 여린 은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그렇다면 당신이 나섰어야지요. 의식적으로나마 사회화된 은호 씨가, 당신을 닮은 친딸에게 사회의 시선과 무관한 사랑을 줬어야지요. 당신에게도 사랑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정을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잖습니까?”

마침내 본론에 접어든 직후.

신은호는, 비밀을 들켜 몹시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짜증을 담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런……. 확신하고 있는 것 같네요? 왜죠?”

“은호 씨도 아실 텐데요? 딸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로, 분명 그 원인을 찾아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칼럼에서 읽어보게 되셨겠죠. 모노아민산화효소-A를.”

“으, 역시 그거군. 이래서 여기저기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건데. 애 때문에, 잘 숨기고 살던 나까지 드러날 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참…… 곤란하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 난 그거 알려지는 게 싫은데. 어떻게 할까? 친구인 은주한테, 남편이 싸이코패스라는 걸 감춰주실 리는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 대민 씨 입을 막을 수 있을까요?”

신은호는 안쪽 유리문에 기대 선 채다.

나는 13층 외부와 유리창만으로 단절된 바깥쪽 포지션.

그가 실수인 척 날 죽이고자 한다면, 매력적인 기회이리라.

이용덕이 걱정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일 터였다.

하지만……

무섭기보다는 그저 슬픈 이야기였다.

“은호 씨의 부모님은…… 이해해주지 못하셨군요.”

“하하. 말 돌려보려는 거? 그렇죠. 그 인간들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평생 숨기고 살라고 했죠. 그러지 않으면 분명히 사회적 사망 상태에 이를 거라고. 일리 있는 얘기였어요. 나도 그 논리는 이해해요. 그래서 숨기고 싶은 건데……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네요? 내가 사람 표정은 잘 읽는 편인데.”

“그게 자랑입니까? 읽어봤자 공감도 못 하면서.”

“하하. 그렇긴 한데, 왜 자극하는 겁니까?”

“당신이 너무 멍청하니까요. 정말 멍청해요. 내가 댁을 괴롭힐 이유가 뭡니까? 적어도 자기 딸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응? 그게 뭔 말이에요?”

“지원이 말입니다. 유전학적으로 당신이 선천적 저감정자임을 알릴, 세상 그 무엇보다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은호 씨에겐 절대적 약점이었겠지요. 친부인 만큼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죽일 기회가 많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어요. 왜였습니까?”

“어…… 글쎄요? 그건 생각도 못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그런 쉬운 해결책이 있었네요? 진짜 멍청했는걸?”

“그래서, 죽일 겁니까?”

“흠. 별로 안 내키네요. 왜지? 제일 깔끔한 해결책인데.”

이러니 멍청하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예리한 척하고 있을 뿐, 신은호는 정말로 무척이나 멍청한 싸이코패스였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가장 극명한 약점을 일곱 살이 되도록 살려둔, 당신의 사랑을. 그렇기에 지원이의 마음 역시 믿을 수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다른 쪽이었어요. 당신은 알면서도 그저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은주가 홀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게 만들었어요. 지원이에게 가장 공감되는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입장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보통 사랑이 필요하잖아요? 애들한텐, 그런 게 필요할 텐데.”

“한참 얘기했는데 다 까먹었습니까? 외눈박이 마을입니다. 외눈의 사랑은 지원이에게 오히려 박탈감만을 안겨줘요. 당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저 아이가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사회화된 저감정자로 자라나려면, 당신이 사랑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겪었던 세상의 그 잔인하고 폭력적인 몰이해로부터요.”

우울한 영화가 인기를 끌 때, 누군가는 말한다.

그게 왜 재밌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코드가 안 맞아서, 그딴 영화는 얘기도 듣기 싫다고.

자신의 감수성이 사회 보편적인 감성과 다르다는 감각은 그런 식으로 부적응적 행동을 불러온다.

선천적 저감정자라면,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차이를 절감할 테니까.

비록 처음에는 짜증과 안타까움 정도의 감정만을 느끼겠지만, 쌓인 시간이 길어지면 문제행동도 커지고 만다.

“두 딸을 기르는 모친은 위험천만한 언니에게 순수한 사랑을 주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지원이를 사랑해야 해요. 그것만이 당신의 가정이 행복해질 길입니다.”

“거참…… 희한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해요. 당신은 아니잖아요? 나랑 다르잖아요? 당신은, 그러니까…… 이 두눈박이 세상에서도 특히나 눈 많은 인간 아닙니까?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사연들에도 눈시울을 붉히고 그러는 거잖습니까? 그런데 왜…… 어떻게, 지원이한테 사랑을 보여줬다는 겁니까? 우리가, 불가해의 괴물 같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 지점이 관건이었다.

내가 신지원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지가.

NBSC의 상담사가 10000 이상의 감정을 가져야 [암시 구조화]를 통해 내담자에게 100 이상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환상의 수용]을 그녀에게 사용해 극단적 두눈박이인 내 삶을 상상케 하는 데에는, 압도적인 사랑의 정서가 전제조건이었다.

그렇기에 오래 고민했던 것이지만……

사실 그런 염려는 필요치 않았다.

“저는 은호 씨도 사랑합니다. 두눈이건 외눈이건…… 아예 눈이 없더라도, 사랑스럽습니다. 좀 바보 같은 사람이라서요.”

“……바보 같다. 흠. 흥미롭네요. 흥미로워. 당신 같은 사람을 좀 더 빨리 만났다면, 나도 더 나은 인간이 됐을까.”

“당연한 일이지요. 지금도 충분히 멍청하신 분이니까.”

“하하. 이거 참…… 요즘 말로, 킹받네요?”

“아빠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애 앞에선 은어 주의하세요. 보편적인 어휘보다 자극적이어서 감정에 좋지 않습니다.”

“거참. 뭐 이렇게 태연한지 모르겠네. 아무튼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믿지 않을 수도 없네.”

신은호는 옅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인 신지원이 보인 것만큼 큰 기적은 엿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엔, 약간의 감동과, 충분한 사랑이 있다.

그렇기에 마침내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

손바울은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자. 이건 바퀴벌레야. 맞을까, 아닐까?”

“으…… 으…… 아 뭐지? 궁금해. 맞아! 아…….”

“멍청하긴. 감이 엉망이구나? 내가 방금 ‘바’ 말하면서 억양 흔들린 것도 눈치 못 챘어? 한심한 녀석 같으니.”

“아, 왜요? 그게 왜요? 그게 왜 거짓말 증거예요?”

“사람의 무의식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할 때 버퍼링을 만들어. 그게 제일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목소리지. 콜드리딩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 명심…… 선생님, 나오셨습니까. 잠깐 게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저게 아마 바퀴벌레 게임이었나.

상대가 발화와 함께 제시하는 카드의 앞면을 보지 못한 채, 그 명제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맞추는 심리 게임이다.

“바울아, 그거 미리 준비한 거니?”

“예. 제가 어렸을 때 즐긴 거거든요. 신당 복도에 줄 선 아줌마들한테 권하곤 했죠. 표정 읽기 연습에 좋았습니다.”

“지원이한테 그걸 권한 이유는?”

“아시겠지만, 저희 같은 타입에겐 남 속이는 일이 진짜 짜릿하거든요. 그거 말고는 딱히 재밌는 게 없어서죠.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고 다니다 들키면 욕먹을 게 뻔하고. 어떻게든 탈출구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게임 정도면 적절하죠. 돈 걸고 하는 게 아니면 문제가 되진 않으니까요.”

부적응적 충동을 게임으로 해소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좋은 발상이라 생각돼, 제자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 행동에 신지원이 반응했다.

“왜요? 왜 칭찬해요? 저는요? 저는 칭찬 안 해줘요?”

“글쎄? 어떤 부분을 칭찬받고 싶니?”

“얌전히 기다린 거요. 아빠랑 아저씨랑 하는 얘기 궁금했는데요, 얌전히 기다렸는데. 칭찬받을 일 아니에요?”

“칭찬할 일이긴 하지. 하지만 다른 부분을 칭찬하고 싶구나.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칭찬받고 싶다고 고백한 일. 그게 무척 대견하다. 앞으로도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렴. 은주 너도 기억해둬. 지원이에게 칭찬은 도리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칭찬은 이 아이에게도 꽤 기분 좋은 일이거든. 그렇지만 그 외에 마땅한 즐거움의 요인이 없다면, 중독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어. 칭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이 늘어가는 거야. 그건 정서 발달에 좋지 않아.”

“으, 응. 그…… 주의할게.”

“그리고 지원이 교육방침은…… 은호 씨한테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넌 내가 볼 때 마음이 너무 여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은호 씨 지침에 맞춰서 행동해줘. 종종 나랑 통화하면서 진행되는 상황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신은호를 보며 다음 지시를 하려던 때였다.

오른팔이 무거워져 돌아보니, 신지원이 소매를 쥐고 있었다.

“아저씨, 왜요? 통화만 하고, 안 올 거예요?”

“음. 알다시피 아저씨가 꽤 바쁘거든. 자주 오지는 못할 거야. 왜? 아저씨 보고 싶어질 것 같아?”

“응! 아저씨, 사랑해요. 아저씨랑 결혼할래요.”

송은주가 숨을 들이삼키고, 신은호가 고개를 흔들고.

40세 연하인 소녀의 프로포즈에 나까지 머리가 아파졌다.

손바울만이 무릎을 치며 크게 기뻐했다.

“야, 너 아주 바보는 아니구나? 그래야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바람직한 태도야. 훌륭해.”

“왜요? 왜 오빠가 난리 쳐요? 난 아저씨한테 한 말인데.”

“그것도 좋아. 굿. 남의 말은 씹어야지, 암.”

“……바울아, 잠깐 조용히. 지원아? 이유를 말해줄래?”

“이유요? 저는요, 아저씨 사랑해요. 너무 좋아요. 좋아요. 아저씨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데요, 근데요, 근데…… 신기해요. 막 사람 죽은 거 보면서도, 무서워 안 하고, 미안하다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이건 그냥 상상인데요…… 그랬을 거 같았어요. 아저씨, 좋아요. 아저씨랑, 맨날 같이 있을래요.”

그 말을 들으며, 착오를 절감해야 했다.

내 사랑을 전해 [환상의 수용]을 일으키는 일만 생각했다.

아이가 외눈박이 세상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인 ‘목숨이라도 바칠’ 사랑이 아이에게 어떤 내적 충동을 일으킬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음. 지원아. 아저씨는……”

“그렇게 하죠.”

신은호가 그런 말로 끼어들었다.

“학교는 내년부터 들어갈 거니까, 그때까지만 박 선생이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주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냥 그럴 것 같았는데. 아닙니까?”

맞다.

나는 다가오는 내담자를 피하지 못하는 사람.

신지원처럼 앞날이 걱정되는 내담자라면, 특히 그렇다.

그렇게 새로운 제자를 받게 되었다.

미취학 상태의 아동이, 내 양육의 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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