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68화 (168/200)

# 168

60장 - 저 감정 (2)

그날 저녁 방송에 찾아온 정승규가, 그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사과로 딸애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렇게 악플러를 감화시킨 일이 또 화제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킹마’의 신화가 강화되고.

<토크꼰서트>의 1화가 MBC 방영을 앞둔 7월 4일까지도, 신지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지원이란 이름 자체가 대단히 희귀하지는 않으니.

주변인들을 통해 이런저런 신지원에 대해 듣게 되기도 했고, 나 스스로 구글과 페이스북 검색으로 수백 명을 살펴보기도 했으며, 그중 심리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수십 명에게 메일로 접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내가 만나야 할 인물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름만 가지고는 찾기 힘들지 않을까?”

TV를 바라보며 한 아내의 말은,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정말 이름밖에는 몰라. 그냥 기다려봐야지.”

“여보. 이유도 말 안 해주고 비밀리에 수소문해달라 그러면, 내가 흥신소 직원이에요 그런 말 안 들어?”

“음…… 다들 그냥 알겠다고 해주더라.”

“참 인망도 좋으셔.”

“미안해. 당신한테는 얘기해줘야 되는 건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 내담자 비밀보호는 정말 중요한 직업윤리라서.”

“됐어. 무슨 사정인지는 대충 알겠으니까. 헤어진 가족 찾는다거나 뭐 그런 거지? 내담자 본인도 이름 말고는 기억하는 게 없고. 그렇다고 SNS에 대대적으로 수배하기에는, 걔가 소심해서 걱정이 많은 편이고. 대충 알 것 같아.”

아내도 그렇고 다른 지인들도 그렇고, 대충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NBSC를 소심한 내담자라고 하면 어폐가 좀 있지만……

하얀 거짓말에 대해 마음속으로만 사죄했다.

사실 가장 빠른 방법이라면 TOX 주민성이나 천수연의 SNS에 ‘신지원을 찾습니다’를 게재하는 일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가 도리어 숨을 수 있다.

내 접근이 두려워 자살을 시도했던 유하늘의 사례를 생각해볼 때, 공개수배는 아무래도 무리수일 듯했다.

따라서 최선책은 지인들을 통해 비밀리에 수소문하는 것.

그리고 익명으로 찾아온 시청자들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의 상태가 몹시 불안해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자살 위험군을 찾아내는 서브퀘스트가 발동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신지원이라고 확신해도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숙제 때문에 바쁜지 방에서 나오지 않던 딸이, <토크꼰서트> 방영시각에 맞춰 내 핸드폰을 들고 나타났다.

“아빠, 폰. 서재에 있었어.”

“아, 그랬구나. 깜빡했네. 고마워, 딸.”

“……카톡 왔던데. 내일이 동창회야?”

퉁명스러운 말투에 아내가 씩 웃는다.

아빠의 외도를 걱정하는 딸이 못내 귀여운 모양이지.

나 역시 같은 심정인지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소소하게 몇 명씩 모인 적은 있지만, 크게 자리 마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모양이야. 그게 결국 아빠 때문이라는 듯하고. 그런 식으로 얘기가 돼놔서, 아빠가 빠지면 그림이 이상해질 것 같아. 낮에 미리 방송 하고 가보려고.”

“아 뭐래. 아빠 연예인병이야? 가기 싫음 안 가면 되지.”

“아빠도 한번 가보고 싶긴 하지.”

“……왜?”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고, 신지원도 찾아야 되니까. 그렇게 사람 많은 자리에서 수소문해보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6단계 가설도 있으니.”

“아, 그거 알아. 케빈 베이컨 법칙?”

법칙이라고까지 말할 것은 아니긴 한데.

좁은 세상 네트워크 등의 가설이, 헐리우드의 배우 케빈 베이컨을 중심으로 한 게임으로 증명되어 유래한 별칭이다.

16만 명에 달하는 배우 중 7명을 제외하면 모두 6단계 안에 그와 연결되었다나.

당시 헐리우드가 그만큼 폐쇄적인 네트워크였기에 나온 결과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에 오면 오히려 의미가 커진다.

해외여행과 SNS 등을 통해 외국인과 교류하는 청년들이 많아진 시대.

북한이나 제3세계 등의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정말 대부분의 인류가 6단계 안에 연결될지도 몰랐다.

“그래. 아빠가 대놓고 신지원을 찾습니다 외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동창들 하나하나 만나면서 물어보면 한 명쯤은 연결돼 있을 수도 있겠지.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주렴.”

“……그런 거면, 알았어.”

“우리 딸 걱정 안 하게 일찍 들어올게.”

“걱정 안 하거든? 걍, 낮에 하면 내가 방송 못 보니까.”

“하하. 대수 삼촌한테 하이라이트 잘 만들라고 할게.”

의심을 얼추 삭인 듯한 딸은, 곧 TV에 집중했다.

화면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다.

[암시 구조화]로 100의 즐거움을 전한 뒤였기에, 관객들 역시 날 바라보는 얼굴이 해사하기만 한 상황.

신지원 역시 저 모습을 보고 있으리라.

이전의 다섯 케이스가 전부 날 알던 이들이었던 것을 보면, 그 역시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내게 관심을 두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히죽히죽 웃으면서 시청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를 갈면서 노려보고 있을 수도 있고.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이유로 NBSC의 퀘스트에 올랐을까.

나는, 그를 구할 수 있을까.

복잡한 고민 속에서 TOX의 등장 씬을 바라본다.

언제나 ‘레벨업’을 외치던 주민성이, 이제는 마음까지 레벨업 해서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내게 작게나마 보답할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해내야지.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마음을 담아, 누군지 모를 신지원까지 행복해지도록 도와야지.

그것이 상담사 박대민의 사명이니까.

*

“대민아아! 마이 프렌드!”

부분가발을 쓴 잘생긴 중년, 정호성이 달려든다.

나 역시 밝게 웃으며 끌어안아줬다.

그 뒤로 신경미와 이호성이 키득거리며 다가왔다.

“호성인 참, 호들갑은. 대민아, 잘 지냈어?”

“그래. 염려해준 덕분에.”

“진짜 진짜. 너 고생 많겠더라. 매일 인방 하는 거 힘들지 않아? 방송도 몇 개씩 찍고 국회의원 상담까지 해주면서? 앗, 아이고. 빨리 들어가자. 사람들 엄청 알아보네.”

정호성의 외침 때문에 모여드는 시선을 피해,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서도 수십 쌍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바깥의 그것과는 달리, 복잡하고 진한 눈빛들이다.

“박대민!”

“대민이, 왔구나!”

“어머 어머, 대민아! 이게 얼마 만이야?”

“박-대-민! 박-대-민! 빠빠, 빠빠, 박-대-민!”

캠퍼스를 즐기지 못하던 내게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벗겨져가는 모발에 대한 상담으로 가까워진 정호성이나, 을지로의 우연한 구조로 추억이 생긴 신경미와는 달리, 대부분 2학년 이후로는 인사 정도만 하고 지냈던 이들.

그런 이들이 너나없이 일어서서 내 이름을 연호한다.

그 얼굴들이 영 기이하게 느껴졌다.

나는 저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

전역하기 전까지 교우관계에 무척이나 허술했던 까닭.

대학 동기들과 진심으로 교류해본 일은 썩 많지 않았다.

어쩌면 제자인 손바울만큼이나.

별수 없는 일이긴 했다.

집에 돈을 부쳐주기 위해 숙식 가정교사 일에 열중했으며, 학교에선 장학금을 타고자 늘 학업에만 몰두했으니.

그 흔한 막걸리 한번 같이 마신 적이 없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총동문회도 아니고 과 동기들끼리 모이는 자리에는 초대조차 받지 못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창들은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내 방송을 재밌게 보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립서비스.

그 뒤에는, 퇴직하고 사업을 하고 있다거나, 딸을 조만간 결혼시킬 예정이라거나, 그런 식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파도 같은 첫 만남이 지나고 테이블에 앉은 뒤.

정호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참 속이 빤하네. 대민아, 너무 실망하지 마.”

“실망은. 나쁜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하하. 이렇다니까? 사업자금 축의금 손 벌리러 온 애들한테도, 내 친구는 하나도 불만이 없는 거 같단 말이지.”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없다.

나쁘게 보자면 동창을 이용해먹으려는 수작처럼도 여겨지지만, 그것이 사기나 착취를 목적으로 한 일만은 아니니.

인간은 각자의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나보다 일찍 퇴직하고 자영업에 투신한 이들은, 아마도 올해 초 코로나 사태로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여전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

퇴직적령기라 불리는 우리 나이에 누군들 행복하기만 하랴.

옛 추억에라도 기대어 여유를 나눠주길 바라는 것이, 단순히 악의로만 가득한 일일 리 없었다.

그런 온정이 대부분 배신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 훌륭한 사회인은 극소수.

누구에게나 내 가족이 가장 소중한 법이다.

안 갚아도 법적으로 큰 문제는 안 생기겠다 싶은 경우에는, 대다수가 경극 배우처럼 쉽게 얼굴을 바꾸고 만다.

그 행동이 만들 피해에는 죄책감 따위 안 느낀다는 듯이.

그러니 110의 ‘관계’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겠지.

처음에는 막연한 기대 속에 접근했던 동창들이지만, 적절한 태도를 취하자 곧 복잡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예전의 물색없는 박대민이 아님을 깨달은 까닭이리라.

그래도 몇몇에겐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한데……

그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신경미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도 아쉽다. 신지원 아는 애들은 없네.”

“그러게. 현실에 클리셰는 없는 탓이겠지.”

“……이제야 묻는 건데, 혹시 첫사랑이나 그런 건 아니지? 우리끼리 그 얘기도 했었거든. 대민이 네 첫사랑 얘기 아무도 모르더라? 설마 지금 와이프가 첫사랑은 아닐 거 아냐?”

내 첫사랑이 그렇게 묻는다.

알고보니 신경미도 나를 좋아했었다고 했었지.

이렇게 추억들이 얽히고설키는 자리인지라, 중1인 딸애조차도 ‘불륜 3대 스팟’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해당 없는 가능성.

어떤 이들에게는 첫사랑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어서, 그때의 감정을 추억하는 것이 큰 행복이겠지만……

내 추억은 아주 오랜 기억 속 페이지일 뿐이다.

내게 있어서 최고의 기억은 현재.

아내와 딸이 있고, 내가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일 수 있는, NBSC의 상담사인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그렇기에 첫사랑의 추억은 내게 먼 감정이었다.

태양처럼 환하긴 하지만, 결코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아니지. 아내는,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야.”

“……와. 진짜 하나도 거짓말 안 같네. 우리 나이 남자들은 대부분 결혼 후회한다던데. 너넨 결혼하지 마라, 이러면서.”

“하핫. 호성아, 넌 결혼하지 마라. 그냥 하지 마.”

음원 사이트에 재직 중이라 인터넷 유행어도 잘 안다는 이호남의 장난에, 독신인 정호성이 콧김을 씩씩 분다.

그것 역시 나는 잘 모르는 감정이다.

세상 모든 남편이 부러워할 신부와 결혼했기에.

그토록 모르는 것이 많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저감정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아직까지도 세상을 배워가는 단계.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임을.

살아만 있다면 나아질 수 있다.

끝끝내 손을 뻗는다면,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준다.

신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믿어야 한다.

세상은 믿는 이에게만 아름다운 빛으로 보답해주니까.

그런 생각 중에, 늦은 입장객이 한 명 나타났다.

이번에도 어중간하게 얼굴만 기억나는 동기.

옆자리 정호성이 입을 크게 만들며 설명해줬다.

“와 와, 송은주 왔다. 쟤 진짜 오랜만에 보네. 그렇게 연락해도 절대 안 나오더니, 너 온단 얘기 듣고 왔나봐. 대민이 너도 기억하지? 쟤가 우리 학번 퀸카였잖아.”

“퀸카라기엔, 여자는 세 명밖에 없었잖아?”

“음. 뭐 그렇지. 그래도 제일 인기 많았으니까 뭐. 지금도 봐라, 얼마나 예뻐? 누가 쟤를 40대라고 하겠냐고.”

“야, 넌 그런 얘길 그렇게 대놓고 하니? 듣는 40대 여자 기분 나쁘거든? 그래, 난 관리도 안 해서 팍 늙었다!”

신경미의 핀잔에 정호성이 사과하는 내내.

송은주라는 이름의 동창은,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왁자지껄 맞아주는 친구들에게도 잘 웃어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내 테이블에 다가와 인사할 때에만 쓰게 웃더라.

“대민아…… 진짜 왔네. 저기, 잠깐만 얘기 좀 해도 돼?”

“물론이지. 저쪽 의자 하나 가져올게.”

“아니, 잠깐만, 밖에서. 담배 한 대, 어때?”

“뭐야 뭐야? 은주 너 담배 피워? 야, 이거 신선한 뉴슨데?”

호들갑을 떨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정호성은, 이내 고개를 돌려 내 귀에 입을 가져왔다.

“이거 뭐야? 이거 뭐지? 대민아, 조심해.”

“뭘?”

“아직까지도 매혹적인 퀸카 동창의 대시를.”

“그런 거 아냐. 잠깐 나갔다 올게.”

“진짜 조심해. 불륜으로 훅 간 연예인 많은 거 알지?”

장난스레 염려해주는 친구의 지레짐작은, 틀렸다.

상담사인 나는 그것을 모를 수 없었다.

억지로 웃으며 인사했을 뿐, 송은주의 마음속은 온통 불안과 희망의 불협화음으로 차 있었기에.

그녀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꺼냈다.

그 뒤 나를 빤히 보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혹시, 사람들이 볼까봐 안 피우는 거야?”

“원래 안 피웠어. 기억 안 나?”

“아…… 그랬나? 그랬던 거 같다. 그래도 남자들은 사회생활 하면서 거의 다 피우니까, 그냥 피울 줄 알았나봐. 미안해. 나도 안 피울게. 그냥…… 잠깐 얘기 좀 들어줄래?”

어렴풋한 기억 속의 송은주는, 정호성이 말한 대로 인기가 참 많은 여학우였다.

농담이나마 공대 고소영이라고 불리곤 했으니.

그렇기에 막연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던 모양이었다.

“막 그때는, IT 쪽에 여자가 별로 없고 해서, 떠받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혼자 착각을 했었나봐. 언제까지나 인기인일 거라고. 그래서 되게 괜찮은 사람이 다가와도 다 밀어냈어. 그러다가 서른 넘기고, 거의 마흔 다 돼서야 결혼하게 됐던 거야. 그래서 노산을 참 염려했었는데…….”

“혹시……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니?”

“아, 아니. 아니…… 아니야. 그런…… 맞아. 그랬나봐. 잠깐만. 나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잠깐만……. 대민아, 비밀 지켜줄 거지? 이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하려던 건데…….”

“내 일이 그거야. 들은 이야기를 누구한테도 말 안 하는 거. 내 쪽에서도 비밀리에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 교환하자.”

“아, 하핫. 그렇게 말해주면 고마운데…… 잠시만…….”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라는 존재는, 크고도 크다.

일부는 사랑이 과해서 아이를 망치곤 할 정도로.

태어난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그 핏덩이를 미워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세상을 증오하고 삶을 비관하는 태도가 자랄 법도 했다.

그러나 송은주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신체 건강하고 참 예쁜 딸을 2년 간격으로 낳게 돼서,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졌다고 했다.

첫 딸이 네 살이 된 3년 전까지는.

“그렇게…… 애가 둘이나 되니까 아무래도 일은 계속하기 어려워서, 재택으로 프리랜서만 하면서 반쯤 주부가 됐거든. 힘들긴 해도 늘 옆에 있어주는 엄마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유튜브로 요리도 배워서 애들 해주고 그랬는데…… 애들끼리 놀게 두고 애플파이 만들고 있던 때였어. 갑자기 둘째가 우는 거야. 밥 잘 먹고 기저귀도 방금 갈아준 참이었는데. 놀라서 뛰어가보니까, 옆에 첫째가 과도를 들고 있더라. 사과 깎고 부주의하게 놔둔 걸 언제 들고 갔었나봐. 그래서 물어보니까, 자기가 찔렀대. 끝이 날카롭지 않은 과도라서 피는 안 나고, 따끔해서 울기만 했던 거야…….”

“……왜였어?”

“그냥, 둘째가 자꾸 자기 볼을 꼬집었대. 쥐고 비틀고 그런 거 좋아할 나이였거든. 그래도 오냐오냐하면서 놀아줬던 앤데, 애들은 금방 힘 붙잖아. 그날은 은근히 아팠다는 거야. 그게 미워서, 내가 테이블에 놔둔 칼을 들고 가서, 찔렀다고……. 그걸 부끄럽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자기가 아팠으니까 딱 그만큼 동생 아프게 했다고, 당당하게…….”

듣자마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그렇기에 송은주의 불안한 표정이 이해됐다.

“너…… 이거, 나한테 처음 말하는 거지?”

“으, 응. 남편한테는 말했는데, 내가 과민반응인 거라고, 애들은 원래 어른들하고 사고방식이 다른 거니까, 괜히 애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더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한때 깜짝 놀랄 정도로 잔인한 일마저 죄책감 없이 저지르지만, 부모의 양육을 통해 조금씩 사회화된다.

칼에 찔려본 적이 없다면 공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그것조차 3년 전의 이야기라고 했다.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낀 첫 사건이었을 뿐이라고.

“그때 울면서 때리고 혼내고 가르치고…… 그리고 칼도 애들이 절대 못 만지게 윗 찬장으로 옮겼거든. 그 뒤로 별일 없어서, 나도 남편처럼 생각하게 됐어. 다 잠깐이다. 지나가는 거였다. 첫 애라서 내가 잘 몰랐던 거다. 그랬는데…… 유치원에 처음 보낸 날, 전화가 오더라. 첫째가 다른 애를 포크로 찔렀다고. 다행히도 힘이 약해서 상처는 안 났는데…… 몇 번 사과하고 간신히 화해시킨 뒤에 물어봤어. 왜 그랬냐고. 그랬더니 말하더라. 너는 엄마랑 안 닮았구나, 그 말을 들었대. 아침에 버스 태울 때 나랑 애를 봐서 한 말이었다는데…… 그거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점심때 포크로 찔렀다는 거야. 아침에 들은 말을…… 점심에, 복수했다는 거야…….”

“음. 그래. 그런 일들이 또 있었니?”

“……몇 번. 그 뒤로는 무서워서 어딜 못 보냈어. 식기부터 다 뭉툭한 나무로 바꾸고, 애 둘 다 집에서 내가 가르치면서, 어떻게든 보통 애처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똑같아. 걔는…… 걔는, 대민아. 싸이코패스……인 걸까……?”

송은주는 그렇게 물었다.

급류 속에서 지푸라기를 잡듯이.

무너지는 하늘 아래서 솟아날 길을 찾듯이.

나는, 아주 조심스레 되물었다.

“첫째…… 이름이 뭐니?”

“으, 응. 지원이. 신지원.”

……현실에도 클리셰는 있는 모양이다.

드디어 만나게 된 내 내담자는……

친구의 딸인 그녀는, 아직 어떤 불행도 겪지 않았지만, 이윽고 가장 불행해질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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