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65화 (165/200)

# 165

59장 - 상담사의 콘서트 (2)

콘서트의 2부에는 TOX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일반적이지 않은 그들의 시각에서 관객들의 고민에 대해 상담해준 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한 옛 세대의 트롯 노래들을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학원 마치고 대기실에 와 있던 딸이 흥분한 것도 당연했다.

“와, 와, 짱이야! 아빠, 아직 두 곡 남았지? 나도 나가서 보고 싶어! 나 나갈래! 나가서 앞에 앉아서 볼래! 아빠, 아빠!”

“지수야, 대기실에만 있기로 했잖아.”

“아니 그랬는데, 답답해! 나 그냥 나가서 볼래!”

아무래도 곤란한 얘기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인플루언서 수준에 이른 딸이, 내 후광으로 아이돌 덕질에 혜택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면.

그때는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무서운 악플이 따라붙을지도 몰랐다.

그 위험성만큼은 가능한 배제하고 싶었다.

그런 불안감을 최대한 부드럽게 전달하고자 재구성하던 중에, 아내가 딸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 딸, 누구 덕에 대기실에서 TOX 볼 수 있게 됐을까?”

“어? 어…… 아빠.”

“그런데 지금 누구한테 소리 지르고 있는 걸까?”

“아니…… 응원구호 하느라 목소리 커진 거야…….”

TOX 팬카페에 전날 올라왔다는 트롯 공연의 응원구호를 밤새 외우고 또 외웠댔지.

투정을 부린 것도 그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대기실 1열의 관람을 받아들이더라.

내게는 종종 떼를 쓰기도 하지만, 아내에게는 늘 고양이 앞의 쥐가 되는 아이라서.

이후 다시 무대로 나가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산책길의 강아지가 된 딸애는, TOX 멤버들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며 감격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주민성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거의 울 기세였다.

“아, 공황장애? 괜찮아. 선생님이 다 치료해주셨거든.”

“으, 흐, 응! 오빠, 고생했어요. 오빠 짱 짱!”

“하하. 너희 아빠가 짱인데?”

“으, 응! 아빠 짱!”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염려스러운 내담자다.

딸이 다른 멤버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주민성을 이끌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객석이 텅 빈 무대가 임시 상담에 적절해 보였다.

“바빠 보이는 스탭들에겐 미안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야기 나누지요. 민성 씨, 아직 종종 전조증상이 나타나곤 하지요?”

“아…… 선생님은 그냥 얼굴 보면 아시는 거예요?”

정확하게는 얼굴이 아니라 [내담자 평가] 쪽인데.

그러나 이론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안장애가 수반된 공황장애는 일반 공황장애에 비해 예후가 훨씬 나쁜 편.

고작 두 달 만에 증상이 사라졌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내담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겠지만.

“민성 씨가 벌써 완치됐다고 하면, 모든 학회가 난리 납니다. 꼰마 그는 신인가?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는 거지요.”

“아, 하하핫! 그런 거예요? 그렇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끔 컨디션 따라서요. 악몽 꿔서 잠 설치거나 멤버들이랑 의견충돌 있거나 하면, 가끔씩 좀 아찔하기도 해요. 그때는 VR 다시보기 열심히 해야 됐죠. 그래도 약은 진짜 많이 줄였어요. 잠 푹 자고 멤버들이랑 분위기 좋은 날은, 진짜로 불안하다는 게 뭐였는지 까먹을 정도로 편하기도 하고요. 선생님 덕분에 그렇게 됐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요. 연예인 걱정이 세상 제일 쓸데없는 일이라지요?”

“하핫. 그거 레알이에요.”

“그래도 A/S는 해야겠지요. 투어 중에 겪은 이야기를 좀 해줘요. 여기서라도 간단히 들어보겠습니다.”

아시아 17개 도시의 투어를 마치고 잠시 귀국한 주민성.

그에게 두 달간의 심리 변화에 대한 자기보고를 들으며, 나는 예전과 조금은 달라진 감상을 느꼈다.

이제는 나 자신이 콘서트라는 것을 경험해본 입장이기에.

“콘서트란 것이, 참 불안한 일이더군요. 무수한 타인을 마주해야만 하니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수만 명을 매일같이 앞에 두고 있자면, 마음이 부정적으로 변할 만도 합니다.”

“아……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셜록꼰즈에게 그런 건 있을 수 없지요. 관객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일지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으로는 나름의 스킬이 있거든요.”

“아, 역시. 그거 저도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미안합니다. 이건 나밖에 못 쓰는 스킬이에요.”

“아…… 역시. 헤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믿음인데…… 그게 있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인물의 심리를 거의 확실하게 분석해내는 NBSC는, 내게서 타인에 대한 불안을 지워준 감사한 능력.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삶이 완전해지진 않는다.

심리란 것은 단방향이 아니기에.

“나 자신은 어떨 것인가. 그 지점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저기 있던 무수한 관객들…… 나를 대단한 상담사로만 믿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 때문에 자꾸만 불안감이 들더군요.”

“에이. 선생님은 충분히 해내실 수 있어요.”

“그게, 능력만으로 자신할 수 없는 문제라서요. 예를 들면…… 내게는 딸이 있지요. 만약 그 관객 중에 내 딸을 괴롭힌 사람이 있다고 쳐봅시다. 그 사람도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이 다시금 미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지…… 그 불안만큼은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어…… 저랑은 반대시네요? 전 저 미워하는 사람 있을까봐 불안한 건데……. 그렇지만 선생님, 그거는 당연한 일이잖아요? 딸 괴롭힌 사람까지 용서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미워해도 되는 일이잖아요?”

“물론 그렇지요. 그렇지만 난 상담사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상담을 수행할 수가 없어요. 가해자를 치유하지 못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게 불안합니다. 가해자를 가해하는 것을 당연시할 내가…….”

주민성은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에, 환하게 웃었다.

“히히. 선생님, 저 마음 편해지라고 해주시는 말씀이죠? 저한테는 사람들이…… 절 속으로 미워할 것 같은 사람들이 무서운데, 그런 사람들도 용서할 수 있게 되면 불안한 마음이 없어질 거라는 거 알려주시려는 거죠?”

“음.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싫다니까.”

“아, 저, 죄송합니다!”

“……이거 짤입니다. 농담한 거예요.”

“아 진짜요? 그런 게 있어요? 검색해봐야지…… 오!”

오래된 짤을 구경하며 킬킬대는 주민성을 바라본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며 해준 말.

색깔은 다르지만 누구나 불안 속에서 사람을 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그 사실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어주리라.

하지만 그 고민은 내 진짜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토크꼰서트>를 통해 매주 2천 명을 만난다.

<나쁜 사람은 없다>로 가장 까다로운 케이스들을 다루며, 프리VR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살의 고민자들을 만나며, 이제는 주말마다 시청자 수가 20만을 돌파하는 인방을 통해서 각양각색의 사연들을 읽으며.

하루하루가 콘서트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그 안의 모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해소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주민성처럼, 인간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내 마음조차 지키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 선생님, 저 이런 건 되게 좋아요.”

“이런 거요?”

“이런, 사람이 없어진 무대요. 이건 그…… 공황이나 불안장애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텅 빈 무대가 참 좋더라고요. 왜…… 노래도 있잖아요? 선생님 세대셨을 것 같은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가요다.

뜨거웠던 순간 뒤의 허전함을 그린 가사의 공감대로, 초연 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노래.

그런 노래를, 콘서트가 끝난 무대 위의 잘생긴 청년이 부르고 있다.

녹아내리는 얼음 같은 얼굴로.

“혹시…… 누군가 불러준 적이 있었나요?”

“히히. 맞아요.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 같아요. 정확하게 떠오르는 건 아닌데…… 그냥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아요.”

주민성의 친모는 우울증이 깊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끝끝내 자기 목숨까지 해치게 되었다고.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을 법한 노래였다.

“그래서 전 항상 콘서트 끝나면 이렇게 다시 무대 올라오거든요. 그러다 스탭들한테 눈총받기도 하지만요. 비어있는 객석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저기 엄마가 있었으면…….”

“……그렇군요.”

“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생각도 드네요. 저기에 꼰마님이 계셔도 괜찮겠다. 이용덕 선생님도 계시면 좋겠다.”

그건……

퀄리티월드(quality world)를 시사하는 이야기.

나와 이용덕이 이미 주민성 내면의 좋은 세계 속에 들어서, 그의 사회불안장애에 해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고맙고 기특한 이야기였다.

“그래요. 그것도 좋겠네.”

“아니면 멤버들이나…… 아, 꼰순이가 앉아 있어도 괜찮겠다. 응? 아, 진짜 그럴까요? 따님한테 특별공연 해드릴까요? 저희 어차피 바로 숙소 들어가는 일정이라 시간 많은데.”

“하하. 고맙지만 내가 사양할게요. 앞으로 유럽 남미 북미 돌려면 휴식시간이 없을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아…… 그럼 투어 다 끝나고요. 그 다음에 꼰순이를 위한 깜짝콘서트 준비해드릴게요. 멤버들한테 처음으로 부탁하는 게 그거면, 저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아서요.”

“그건 좋습니다. 설득할 수 있길 기원할게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내담자를 그렇게 돌려보내고, 이내 명현수 과장의 전화가 핸드폰을 진동시켰다.

[부장님. 진짜 부장님은, 올림픽 같은 남자십니다.]

“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34만입니다. 프리TV, 트위치, 유튜브로 부장님 꼰서트 본 시청자 수요. 이거 진짜 올림픽에서도 퀸연아 경기 아니면 안 나오던 수준이에요. 부장님은…… 이제 1인기업이 아니라 1인올림픽이라고 불릴 분이 되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명과장’다운 과장법이었다.

아직 멀었는데.

내 목표는 고작 34만이 아닌데.

아내와 딸을 차에 태워 집으로 향하며, 나는 아주 거대한 공연장을 떠올렸다.

수천만 관객이 들어선대도 빈자리가 더 많은……

누구나 들어와 즐길 수 있는, 상담사의 콘서트장을.

그리고 그때부터 날 둘러싼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

7월 1일에, 인터넷 영상 커뮤니티인 꼰미디어가 출범했다.

3선 의원 주영주의 기념 생방송과 함께.

“지금까지 6월 마지막 주의 주요 현안들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봤습니다. 제가 이 라이브방송이란 게 처음이라, 소통이 잘 됐을지 모르겠네요. 시청자 수가 벌써 3만 명인데…… 재밌게들 보셨어요? 혹시 이상한 부분은 없었나요?”

「없습니다 주의원님~」

「재밌게 보고있어요 ㅎㅎ 역시 말씀잘하심」

“박 선생님 보시기에는 어떠셨어요?”

“예. 물론, 훌륭했습니다. 솔직히 감탄했어요.”

“흠…… 고마워요. 그러면 이제, 2부라고 해야 되겠죠? ‘주영주의 눈’ 시간입니다. 원래는 30분 이상을 할애할 예정이었는데, 오늘은 어렵겠어요. 처음 하는 방송이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네요. 빨리 시작해볼게요. 오늘 주제는, 이겁니다. 공공의대. 공공의료대학의 줄임말이죠. 지난 총선의 주요 쟁점이기도 해서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간추려 설명할게요. 국민당 의사 수의 부족, 의료시설의 대도시 쏠림 현상, 그로 인해 응급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지역민들의 엑소더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액 장학 공공의대를 신설해 의무적으로 의료 소외 지역을 지원하게끔 하겠다는 정책이죠.”

여당에서 수년간 추진해왔던 정책.

그것이 계류되어온 것은, 의료계와 야당의 반발 때문이었다.

주영주가 몸담은 보수당은 공공의대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녀의 방송을 찾아온 팬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도안되는소리죠~~ 여당 포퓰리즘입니다」

「곧있으면 의사 수가 OECD 평균 추월한다던데 ㅋㅋ」

「지금 의대도 많은데 뭘 굳이 새걸 만든다는 건지~ 국민 혈세를 표 받으려고 마구 쏟아붓는 꼴이네요~」

“지금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우선 몇 가지 답변드릴게요. OECD 평균 의사 수는 3.4명이고, 한국은 2.3명이죠. 최근 의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기에 금세 추월하게 되리라는 추측도 있지만…… 사실 개중에 한의사를 제외하면 1.9명이에요. 응급의료 분야로 오면 그보다도 훨씬 격차가 커지고요. 여러분의 가족 친지가 지방 여행 중에 사고를 당하면, 시설과 인력이 갖춰진 의료시설로 이송되는 도중에 사망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예요. 표 받으려고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민 혈세로 국민의 피를 막아주려는 선의가 아닐까요? 그 지점은 억측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

「의원님 허허 말실수하시는듯 그냥 지금의대들 교육정책만 수정해도될문제를 크게벌릴 필요가없어요~」

“실수하지 않고자 드리는 말씀이에요. 지금 의대 가는 친구들, 비싼 학비 내고 남들보다 한참 오래 공부해야 되는 그 커리큘럼에 지원한 친구들, 돈 안 되고 몸 힘든 응급의료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현행 의대와 시스템 속에서 변화를 만들면 된다고요? 중증외상센터 유정국 교수님 사임하신 걸 보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나요? 이 상태로는 우리 국민들 다 대도시로 이주해야 됩니다. 살고 싶다면 말이죠. 그런다고 해도 외상센터 바이패스 걸려버리면 살릴 수 없을 거고요. 거점병원에서 닥터헬기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 나라에서, 최소한의 응급조치나마 지역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공공의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해요. 당론과 다르더라도 이 법안만큼은 통과시킬 생각입니다. 의견이 다르신 분들께서는 자유롭게 채팅 남겨주세요. 단, 타인을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 유의해주세요. 그렇지요, 박 선생님?”

“……예. 의견의 교류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표현이 발견될 경우, 저희 직원들이 곧바로 차단하게 됩니다. 거기에 법적인 조치가 더해질 수 있습니다. 모쪼록 양해해주세요.”

「아니ㅣ..」

「저기요??? 주의원님/???」

혼란스러운 채팅창 앞에 몇 마디를 보태고 방송을 마친 뒤.

주영주는 오연하게 나를 노려봤다.

“어때요?”

“난장판이 되겠네요.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시청자 수가 아쉬웠을 정도인데요? 대민 씨까지 끌어들여놓고 3만이라니, 나도 참 한심해요. 이제부터라도 대중들과 더 소통할 거예요. 5천만의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

대통령의 야심을 태연히도 입에 담는다.

당에서 제명될 것이 분명한 짓을 저질러놓고.

대선 출마도 불투명한 위기에 자신을 몰아넣은 채, 주영주는 아주 후련하게 웃고 있었다.

“……시기 면에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대선 이후였다면 상황에 따라 제명까지는 안 갔을 수 있는데.”

“섣부른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시기에 무관하게 가능성은 작은 일이잖아요? 될 대로 돼보라죠 뭐. 후회는 없어요. 이번 생은 이미 오래전에 망했으니까.”

“망했다니……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합니까?”

“내 인생에 참견 마요. 대민 씨 때문에 망한 거니까. 그래도 뭐…… 고마워요. 한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행복하네요. 그동안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이제 가세요. 그 프로그램 2화 보셔야지.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나?”

“<나쁜 사람은 없다>입니다.”

“후후. 짜증 나는 타이틀인데, 좋은 타이틀이라고 생각해요. 나쁘고 나쁜 사람들이 문득 생각해보게 될 테니까. 나는 나쁜 사람이 맞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그 고민이 미래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주영주가 바람처럼 떠나간 뒤, 손바울이 투덜댔다.

“흠. 저 여자는 진짜 마음에 안 듭니다. 감히 선생님 때문에 망했다는 소릴 지껄이다니. 빨리 제명당했으면 좋겠네요.”

“그거야 그렇게 되겠다만…… 하늘이는 어디 있니?”

“잠깐 조정실에요.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오네요.”

수천 명이 클릭하는 가십 기사의 작성자에서, 수만 명이 시청하는 인터넷 미디어의 대표이사가 된 유하늘.

그녀가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기사가 쏟아지고 있어요.”

“그래. 뭐라고들 말하고 있니?”

“포퓰리즘에 물든 중진의원…… 주영주 의원 막말 파문…….”

“프레임이 강렬하구나. 그쪽 기사도 조회수가 꽤 높겠어. 그렇지만 이쪽 영상 칼럼이 더 자세하겠지?”

“네. 저희 기자님들이야 미리 대본 작성해뒀으니까요. 그것까지 화제가 되고 나면, 꼰미디어는 단숨에 유튜브 뉴스들만큼 유명해질 거예요. 중장년층에게는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매체가 되겠죠. 이 대안언론은…… 주류가 될 거예요.”

“그래.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인 메시지들은 어디까지나 노이즈마케팅이야. 이제 우리는 이 미디어가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다루게끔 발전시켜야 해. 모든 가십 뉴스들이 기사가 아니라 꼰미디어를 통해서 유통되도록, 그로써 타인을 비방하고 악플을 양산하는 흐름이 우리 착한 꼰대들을 통해 끊길 수 있도록. 그렇기에, 너는 심판자가 돼야 한다. 어떤 프레임에도 현혹되지 않고 오직 가짜뉴스와 싸우는 심판자. 주목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힘들어질 거야. 각오는 마쳤니?”

“……네. 꼭 해낼게요. 속죄…… 시작할게요.”

결연한 얼굴의 유하늘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내 금빛 메시지가 시야 한구석을 채웠다.

「에픽퀘스트 5 “유하늘을 쓰러뜨려봐요” 완료!」

2020년 하반기.

마침내 상담사의 콘서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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