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59장 - 상담사의 콘서트 (1)
프리웍스의 신종혁 부장은, 이사가 되어 있었다.
26년의 근속 끝에 얻게 된 임원직.
명함을 건네는 손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부장님, 나 드디어 이사 달았습니다.”
“예, 이사님.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아유, 너무 철없어 보이나? 미안해요. 내가 마음 편히 자랑할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귀엽게 봐줘요, 부장님.”
“물론 저도 기쁩니다. 그보다 부장님이라고 그만 부르시지요. 존댓말도 그만하시고요. 더는 모기업 부장이 아닙니다.”
“어, 부장님은 좀 그렇긴 하네요. 그렇지만 하대를 할 수야 있나요. 프리웍스 최대 프로젝트의 주인공이신데. 부장이셨을 때보다 더 존중해야죠. 그래야 맞지 않겠습니까? 하하.”
신종혁은 나보다 네 살이 더 많은 동 직급이었다.
그렇지만 모기업과 자회사 사이의 역학관계라는 것이 있어서, 당시에는 내게 존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처지.
그게 익숙해져서 바꾸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프리웍스는, 2015년까지 프리TV의 광고와 후원 수익에 의존하고 있던 프리월드가 BJ들의 연예인화에 발맞춰 방송제작 인프라를 갖추겠다며 인수한 소규모 제작사.
그로써 웹예능이나 웹드라마 등 다양한 기획이 추진됐다.
모기업 미래기획팀장이던 나는 그 프로젝트들의 총책임자.
아무래도 자회사 사람들에게는 멀고 높아 보였으리라.
그렇지만 신종혁과는 나름대로 각별한 사이였다.
프리월드 내에서 실무진 최고참이자 최연장자로서 부담감을 느끼던 내게는, 몇 안 되는 선배 포지션이었기에.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적이 편안해지곤 했다.
신종혁 역시 비슷한 심경이었으리라.
경력 긴 베테랑임에도 고졸이라는 콤플렉스 속에 살던 이.
서울대 출신인 내가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반쯤 벗겨진 머리만큼이나 밝은 웃음으로 맞아주곤 했었다.
지금도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자부심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엿보였다.
“마지막으로 뵙고 이제 넉 달쯤 됐나요? 결코 긴 시간이 아닌데, 한 4년쯤은 지난 것 같아요. 헐렁한 코트 걸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시던 그 박 부장님이, 이젠 방송인이시라니. 그것도 프리TV 대통령 아니십니까? 프리웍스에 처음으로 공중파 협력 프로젝트를 안겨주신.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사님,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아뇨, 그렇게까지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요. 망해간다 망해간다 하지만 공중파가 어디 쉬운 상대인가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놔도 우리 같은 군소 제작사 방송이면 거저도 들고 가는 게 그쪽인데. 지금처럼 이쪽에 제작권 안겨주고 작가만 한 명 보내는 식으로 신뢰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박 선생님 덕택입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입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그래주세요. 저희도 열심히 방송 만들어볼게요. 심 작가님 저쪽에 와 있어요. 방송 시퀀스 관련해서 몇 가지 변경점이 있다고 하니까, 가서 잠깐 인사 나누시죠.”
MBC 측의 파견 작가는 심영화.
내 첫 TV 예능이었던 <웃기고 앉아있네>의 메인작가였는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적을 옮겼다는 모양이었다.
막상 마주해보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듯했지만.
“아!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제가 선생님 보고 싶어서 울고 있었던 거 어떻게 아시고?”
“……감사한 일인데, 물론 몰랐습니다.”
“하하하. 아무튼 다시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선생님 프로그램 잡히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꿈이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꿈이라고까지 하시면 너무 민망한데요?”
“후후. 사람이 과장도 좀 하면서 살아야죠? 그리고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희 업계에서 선생님은 진짜 꿈 같은 존재예요. 2%대 시청률 내던 수요일 저녁 자리에 교양 같은 프로그램 런칭하셔서는, 첫방에서 9% 돌파해버리셨으니까. 이런 분하고 프로그램 할 수 있다는 건 진짜 축복이죠. 모르는 사람들은 제작진이 능력이 있나보다 할 테니까요.”
“실제로 제작진이 잘해준 결과였습니다.”
“유 PD님이요? 그야 원래도 시청률 잘 내시던 분이긴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그분 스타일이 아니었죠. 사실상 대본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은 리얼 프로기도 하고요. 상담이라는 컨텐츠를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만든 건, 마법이에요.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모르긴 몰라도, 다른 경력 긴 상담사 분들도 그렇게는 못 하실 거고요.”
마법이라.
사실 그 표현이야말로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NBSC가 내게 쥐여준 상담 능력은, 시대를 대표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이나 그럴 수 있었을 법한 초인적인 능력.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내담자 가족의 태도가 마법처럼 느껴졌을 법도 했다.
9%의 시청률에는 그것도 꽤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도저히 트릭을 알아챌 수 없는 신비로운 마술쇼를 눈 부릅뜨고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내 상담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충동됐을 수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스타들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금세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많았을 터였다.
그리고 마법이 필요한 곳은 ‘나사없’만이 아니다.
7월 초부터 주말 심야 힐링 예능으로 편성될 <토크꼰서트> 역시, 큰 반향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프로그램.
“토요일 심야는 원래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지요?”
“네. 전참시라고, 종영 다가올 시점에도 게스트에 따라서 5%까지도 나오고 그랬어요. 사실은 좀 더 끌고 가도 되는 프로그램이었죠. 그렇지만 거기 PD님이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프로그램 내려놓으신 거예요.”
“그건 거짓말이군요.”
“……하하하. 진짜 셜록홈즈 같으셔. 사실은 다른 요인이 있긴 했죠. CP님이 살짝 압박 넣으셨다는 소문이…….”
공중파 드라마도 종종 0%대 시청률을 내는 세상.
놀러 나가는 사람 많은 토요일 밤에 5%를 내고 있다고 하면, 압박 속에 종영을 준비할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어지간한 대형 기획이 준비돼 있지 않은 이상은.
그런 프로를 밀어내고 들어가는 자리다.
그러니 성공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참시 제작진을 위해서도, 내 스타성을 믿고 위험천만한 도박을 감행한 신태훈을 위해서도.
그리고 7월 말에 심사를 마칠 병영 VR 프로젝트의 입찰을 위해서라도.
“부담이 크군요. 심 작가님의 혜안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작가님 성격에 아무 준비 없이 오셨을 리는 없으니까요.”
“네? 저요? 아무 준비 없이 왔는데요?”
“……진심이신 것 같군요?”
“진심이니까요. 작가들의 입김은 딱 콘서트 구성까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시스템 관련해서만 공부했어요.”
“그래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방송에는 방송의 언어가 있을 텐데.”
“그 말씀도 맞지만…… 언어는 변화하는 존재잖아요? 작가들의 영향은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대본이랑 상황극으로 만들어지는 TV 예능은 갈수록 시청률 줄어들고 있는데, 스트리머들의 다시보기 클립들은 오히려 수백만 조회수가 쉽게 나오죠. 그게 왜 그런 걸까요?”
“그거야, 시청 환경의 변화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도 않아요. 요즘 시청자들이 짧은 영상을 좋아한다곤 해도, 그게 아닌 케이스도 많거든요. 제작진이 트렌드 따라가서 편집 열심히 한 5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이라면 이해가 되죠. 그렇지만 토크방송 별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놔도 수백만씩 뷰가 찍히는 건 얘기가 달라요. 그쪽은 단순히 시청 환경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박 선생님 영상만 해도, 벌써 천만 가까이 나오는 게 많던데. 그것들 러닝타임 보통 한 시간씩 나오지 않아요? 한자리에 앉아서 미동도 없이 상담만 하고 계시는 시간이요.”
듣는 와중에 퍼뜩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예능의 끝은 다큐다…… 그 얘기입니까?”
“네. 그 한마디로 정리가 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시청자들 연구해서 이런저런 대본 짜고 설정 넣어서 캐릭터쇼를 만들어봐야, 요즘은 그게 더는 리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거죠. 시청자들은 진짜를 보고 싶어해요. 설정된 캐릭터쇼가 인기를 잃은 것도, 연극 스타일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자리를 잃었던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싶어요. 설정 속에서는 리얼이 나오지 못해요. 요즘 말로 ‘찐’이 필요해요.”
“그 찐이, 제 상담이라는 얘기군요.”
“맞아요. 이 방송에 관심을 갖는 시청자들은, 어디까지나 꼰마라는, 박대민이라는 인물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거예요. 거기에 제가 이런저런 살을 붙여봐야 사족에 불과하죠. 어디까지나 선생님은 선생님 스타일로 해주시면 돼요. 저는 콘서트 시스템이나 게스트 조율 정도에만 집중할게요.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게 제 결론이에요.”
확신을 품고 말하는 베테랑에게 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다만 대기실에 들어선 뒤로 고민에 빠졌다.
찐이라.
내 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NBSC의 힘으로 유명해진 내게, <토크꼰서트>를 찐 프로그램이라고 불리게 할 만한 본질은 무엇이 있을까.
10분쯤 고민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는 결론과 함께.
*
“반갑습니다. BJ꼰마, 방송인 박대민입니다.”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몇 배로 커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2천 관객들이 내 모습을 보고 더 큰 소리를 내지른 이유도 있겠으나, 객관적으로는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그 강단이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었기에.
수천 명을 상대로 무대에 오른 것이 첫 경험은 아니다.
멀게는 이용덕의 강연 중에 불려나간 일이 있고, 가깝게는 대민재단 창립식 때 창립자로서 축사를 맡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상담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상담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이 처음이다.
상담사 박대민이 2천 명의 내담자 앞에 서는 일은.
“……감사합니다. 다들 목청이 크시네요. 제가 아이돌 콘서트에도 가본 적이 있습니다. 딸애가 TOX의 팬이라서요. 이제는 저 역시 그 그룹의 팬이 됐지요. 그랬는데, 오늘 여러분 목소리가 그때 들었던 환호성보다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그 친구들이야 아이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있는 목 없는 목 다 끌어다 외친 것이었을 텐데, 여러분은 그게 아니잖아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참 많이들 쌓이신 모양이지요?”
소소한 너스레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뒤.
강단 끄트머리의 프롬프터에, 자기소개와 프로그램 취지와 진행자로서의 포부 등에 2분쯤 할애해달라는 글귀가 떴다.
방송 언어로 생각하면 필수적인 대본이다.
나 역시 첫 콘서트인 만큼 이런저런 멘트들을 준비해왔고.
“토크꼰서트 첫날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꼰대짓이에요. 이런 꼰대 저런 꼰대들이 모여서 서로 자기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콘서트 같은 경우에는 ‘직업’이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지요. 관련해서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습니다만……”
나는 왜 방송을 시작했는가.
방송인으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그 길에, 이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박대민의 이야기일 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상담사.
상담사의 찐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자기소개고 자시고 바로 상담 시작하겠습니다. 취지 어쩌고 포부 어쩌고는 제작진 분들이 알아서 자막 넣어주실 테니까요. 자, 첫 사연 받습니다. 거기. 멋진 코트를 걸치신 신사 분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아, 예. 안녕하세요? 저, 함수환이라고 합니다. 의사고요. 정확하게는 응급의학과 조교수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제, 의사들의 이미지가 참 이렇게…… 이상해졌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인성논란이라든가…….”
“예, 알고 있습니다. 수술실에서 녹음된 음성이 공개된 사례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의사들 중 성격 나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었지요.”
“예, 예. 물론 저도 이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긴 해요. 어떻게 환자를 앞에 두고 그런 얘기들을 할 수 있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의사들이 싸잡혀서…… 이렇게 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거든요. 정말 열심히…… 환자들을 위해서 애쓰는 의사들도 많은데. 정말 좋은 사람들 많은데…….”
처연한 눈빛이 바닥을 향한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또 이야기를 곱씹으며.
내 마음 역시 푸른 물빛이 되었다.
“응급의학과에 계시다면, 사망선고도 경험하셨겠군요.”
“예? 아…… 예.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예.”
“어쩌면 파병 용사들만큼 죽음을 자주 보실 듯하네요.”
“예…… 그렇죠. 하하. 이게 진짜, 환자들도 환자들이지만 그 가족들 보는 게 고역이에요.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이제 생명이 걸린 일이니까, 의사가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죠.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그것도 맞는 말씀이지만, 의사도 신은 아니지요. 의료사고가 아닌 바에야 치료에 애쓴 시점에서 의무를 다한 거예요. 사망선고가 고역이라는 이야기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건, 잔인한 일일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그런 건 있어요. 대체 언제 사망을 선고해야 하나. 심폐소생술은 인제…… 부활 마술이 아니거든요. 갈비뼈가 다 부러지고 나서도 반응이 없다면 저희로서는 더 방법이 없거든요. 그런데도 가끔은 어떻게든 살려내라고, 고소하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겠군요.”
“예…… 그런 경우도 있고요. 사고를 당한 어린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시는 부모님도 계시고, 이제, 유산 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눈을 뜨셔야 된다는 자식들도 있고, 조폭 형님인데 돌아가시면 너도 죽여버리겠다는, 그런 분들도 있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군요. 그렇게 죽음과 맞닿은 응급의학과에서 매일 환자들을 위해 애쓰고 계신데, 사회적으로는 의사라고 하면 우선 가자미눈으로 보게 되니, 마음이 무거우신 것도 당연한 일 같습니다. 저로서는 이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더 노력해주세요. 당신은…… 다른 이들이 모르는 생사의 싸움에서 환자를 대신해 싸워주는 사람입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 속 차사들보다도 위대한 존재예요. 어떤 오해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더 많이, 살려주세요.”
“……하하. 네.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좀 후련하네요.”
무엇도 해결하지 못할 이야기.
그렇지만 무엇이든 해소해줄 수 있는 것이 상담이다.
괴로워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해결이 아니니까.
“나는 손병우고, 예순인데, 택시기사요. 내가 아들놈한테 들으니까는, 택시기사들이 말 건다고 싫어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조수석에 안 타고 뒷좌석에 타서 이어폰 껴버리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거 참 너무하지 않소? 우리가 뭐 운전하는 기계인가? 물론 이제, 돈을 내고 운전사를 사는 거니까, 불편하기 싫을 수도 있지. 그래도 그런 거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잖어. 그 사람들한테는 그냥 돈 주고 부려먹는 기계처럼도 보일 수 있겠지만은, 우리한테는 혼자 외롭게 일하다가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잖어. 그러면 몇 마디 얘기 정도는 들어줘도 되는 거 아뇨? 난 요즘 청년들 너무한 거 같어.”
“예. 손병우님, 아드님에게 들으신 이야기에 많이 상처를 받으셨을 것 같네요. 그렇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원래 청년이라는 연령대는, 자기 부모님 얘기도 귀찮아하는 게 정상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손병우님도 그러셨을걸요?”
“……우리 때는, 거, 부모님이 워낙 엄하셨어.”
“예. 물론 여러 사정들이 있겠지만, 그렇게 가족이라도 세대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남남이고 또 비즈니스로 보게 된 사이라면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옳겠지요. 이해해주세요. 그 친구들도 그래야만 하는 사정들이 있었을 겁니다.”
“음,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그래도 좀 섭섭해요.”
“그 말씀도 이해합니다. 저하고는 반대시지만요. 저는 요즘 청년들하고 매일 수십 명씩 상담을 해야 되는데 말이지요. 직업에 따라서 이렇게 참 극과 극인 것 같습니다.”
“거…… 허허. 선생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구만.”
“안녕하세요! 저, 스물일곱 살 소진희구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원래도 아이들 진짜 좋아해서 지원하게 됐던 거고, 지금도 천사 같은 애들 보는 건 좋은데요…… 학부모님들하고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저희를 믿어주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자기 아이는 절대로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희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애들 하나하나 다 완벽하게 케어할 수는 없거든요.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주셔야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모든 걸 다 화내고 욕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세요.”
“그렇군요. 그럴 만도 하네요. 부모 마음이란 게 기본적으로, 내 자식은 완벽하고, 선생님은 내 애한테만 못되게 군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왜곡돼버리곤 하지요. 거기다 어린이집 근무환경 자체가 제대로 휴식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기겠어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해도, 참 힘드시겠네요.”
“네…… 계속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한번 확인해보죠. 천사 같은 아이들이 참 좋다고 하셨는데, 어떤 좋은 사례가 있었는지요?”
“네? 어…… 저, 예전에 그런 애 있었어요. 저를 되게 좋아해서, 저 일하는 것마다 도와주려고 따라다니던 애요. 더 어린 애들 외투 벗겨서 걸어주기도 하고, 밥 안 먹으려는 애들한테 식사지도 해주기도 하고요. 걔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나도 선생님 같은 어린이집 선생님 할래요……! 헤헤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계속 일하세요.”
“어, 네?”
“그 표정 보니 알겠습니다. 진희 씨는 다른 일 못 해요. 힘들고 괴로워도 어린이들을 위해 평생 애쓰실 분입니다. 제가 둘째를 갖는다면, 꼭 진희 씨한테 보내고 싶을 정도로요.”
“아…… 진짜요? 히히. 꼰순이 동생 생기면 좋겠네요!”
2019년 발표된 서울대학교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기괴한 지표를 드러냈다.
내전과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수준의 3점대가 4분의 1.
자연과 여유를 즐기는 북유럽 수준의 7점대가 4분의 1.
이게 한 나라인가 싶을 정도의 양극화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슬픔을 겪는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이들은 남들을 괴롭히길 즐기니까.
그것은 언제까지고 해결되지 않을 난제.
어떤 위대한 상담사라도, 단번에 세상을 뒤집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꼭 해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란 생물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더라도, 그 모든 괴로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니까.
그렇기에 이 콘서트는 계속될 것이다.
누구도 슬픔으로 슬픔을 만들지 않게 될 때까지.
그 해소야말로, 상담사의 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