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62화 (162/200)

# 162

58장 - 상담사의 의무 (2)

MBC 예능의 신성이라 불리는 유종찬 PD.

하지만 그의 프로그램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데뷔작인 <멋진 사나이>부터, 드높은 화제성이 무색할 정도로 무수한 논란을 일으켰으니까.

연예인들의 군대 체험 예능이라는 포맷이었다.

뚱뚱한 개그맨, 몸 좋은 배우, 해외파 스타, 잘생긴 아이돌 등을 소집해 군부대 내의 훈련에 참여시킨 것.

배경부터 남성들에게는 추억이고 여성들에게는 호기심이다.

포맷 그대로만 진행해도 충분히 괜찮은 방송이 될 법했다.

그러나 유종찬은 프로그램의 잠재적 가치를 훼손했다.

충분 이상의 시청률을 원했기에.

국방부 홍보물인가 싶을 정도로 실정과 괴리된 설정과, 군대 특유의 문화라며 부조리를 미화하는 전개와, 출연자의 ‘사제’ 마인드를 부각시키는 악마의 편집이 나왔다.

‘주작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했다.

이후 시즌3를 후배 PD에게 물려주고 맡은 여행예능 <트립크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주민을 섭외해 억지 설정을 만든 것이 여러 번.

출연진이 실수로 문화적 상대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그것을 편집하긴커녕 자막까지 붙여 강조하곤 했다.

덕분에 프로그램의 화제성은 늘 1위를 다퉜다.

대만편에서는 김용식의 정신질환까지 이용했었지.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고정출연자를 하차시키지 않고, 오히려 나와 한효준 등을 끌어들여, 메디컬드라마 BGM 속에서 불안증세를 극복하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염려도 많았던 인선.

신태훈 CP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다른 PD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PD는, 가장 긍정적인 소재조차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릴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종찬 PD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시청률을 위해 제작진과 출연진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인물이지만, 그라고 해서 악마일 리야.

사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유종찬 속에 살아간다.

개인정비 시간을 정말 정비 업무로 가득 채우는 지휘관.

성과를 내라며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굴리는 상사.

공감 없이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꼰대는 어디에나 있다.

단어의 원 의미인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여성이라도 마찬가지.

개인의 마음을 무시하고 집단의 논리에 파묻히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일방적이고 파렴치한 꼰대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에 일어난 행복 논란이다.

2019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포털 SNS와 협력해 한국인 105만 명의 행복지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성별, 연령대, 지역까지 세분화되는 거대한 샘플.

현대 한국인들의 정서 상태를 대변할 법한 빅데이터였다.

거기서 2030 여성의 행복지수가 주로 기사화됐다.

동일 연령대 남성에 비해 확연히 낮은 수치라며.

해외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최고 수준의 지표를 보인 점과 대비해,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를 벗어난 여성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행복을 경험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라는 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 해석에 국내의 많은 여성들이 열광했다.

역시 한국은 성차별의 나라라면서.

한국 남자들은 이걸 보고 반성해야 된다면서.

그야말로 꼰대 같은 생각이지.

그런 식으로 일반화하자면, 여성의 대다수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비구니가 되는 부탄이 그녀들의 유토피아인 셈이다.

모든 행복지수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나라니까.

통계의 착시라는 것이다.

상기한 조사를 재해석하자면, 해외에 거주하며 국내 포털 SNS를 활용한다는 전제부터가 표본 구성의 편향이었다.

대부분이 유학이나 이민으로 해외로 넘어간 집단일 터.

체감 중산층 이상일 그 표본의 행복지수가 다양한 소득분위가 산재한 국내보다 낮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도리어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해외 거주 남성의 행복지수다.

이쪽은 여성들과는 정반대로, 국내보다도 낮은 최하위.

그것을 ‘가부장적 한국사회와 달리 성평등한 해외에서 불행해진’ 남성상을 시사한다고 보아야 할까?

심리학적으로는 고개가 저어지는 진단이었다.

사실 정답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외 거주 여성들은, 그곳의 경관이나 생소한 라이프스타일을 SNS에 올려 국내 여성들에게 선망을 받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니, 설문조사에 행복하다 답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에 비해 남성들은 SNS 활용 빈도가 낮다.

대신 주로 게임 티어에서 우월감을 만끽하는데, 이런 경우엔 핑이 튀는 해외의 인프라에 짜증이 치밀 법도 했다.

낮은 행복지수를 나타낸 한국 거주 2030 여성들은, 실제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경증지수는 높고 감사지수는 낮았다.

돈을 모아 해외로 나가기만 한다면, 가부장적 사회와는 무관하게 행복해질 만한 지표들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사소함의 바깥이다.

부탄보다 한참 낮은 한국인들의 행복지수.

설문조사를 통해 비교된 행복은, 정말 행복의 지표인 걸까.

그 지점에서는 내 딸도 약간의 착시를 앓고 있었다.

“아빠 아빠, 나 팔로워 10만 됐어! 100K야! 아빠 프로 홍보하면서 계정 유명해졌나봐. 완전 인플루언서! 짱이지?”

“우리 딸, 행복하니?”

“응? 당연하지?”

“그게 왜 행복할까?”

“왜냐하면, 애들이 다 부러워하니까? 그러면 행복하지.”

“애들이 부러워하는 게, 왜 행복할까?”

“아, 왜 자꾸 그런 거 물어봐? 다 부러움 받으려고 사는 거 아냐? 애들이 오 하고 보면 기분 좋잖아?”

“기분이 좋은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르지 않을까?”

“아니…… 그냥 좀 잘됐다 해주면 안 돼?”

“안 되지. 그러면 불행해질 테니까.”

“아 왜?”

“지속 가능한 행복이 아니잖니. 남과의 비교로 만든 행복이란 건 모래성이야. 더 많은 팔로워를 가진 친구가 전학 오면? 그때는 다시 불행해질 거니? 그런 건 행복이 아니란다.”

“그럼 행복이 뭔데?”

“행복은…… 이런 거지?”

“악! 아, 하지 마!”

꼭 안아뒀더니, 짜증 가득한 소리로 투덜대며 빠져나가더라.

그렇지만 ‘진단’은 그 표현 속의 마음을 듣는다.

인정욕구보다 훨씬 따사로운 행복의 울림을.

딸의 과외선생과 교차하듯이 집을 나서며, 나는 다시금 꼰대에 대해 생각했다.

꼰대들은 집단논리에 적합한 준거를 끌어내고자 그릇된 사고에 스스로를 매몰한다.

조금만 생각해도 다른 가능성이 보이는 문제들에서조차.

그로써 왜곡을 만들고 핍박을 정당화한다.

그나마 개개인이라면 양호한 편이지.

인기 프로그램 PD 쪽은 문제의 규모가 달라진다.

수백만이 시청하는 방송의 제작을 총괄하는 직급이니.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젊은이들을 ‘군무새’라며 비하하는 여성들의 착시에, 군대를 낭만 넘치는 캠프 정도로 왜곡한 <멋진 사나이>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꼰대 같은 PD가 죄인인 것은 그래서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이룬 시청률과 화제성이 대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인플루언서’들은 알아야만 한다.

혐오 가득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들이 만들었음을.

그것을 알려주는 일이 꼰대 마스터의 의무.

가짜 행복에 빠진 PD에게는, 직면이 필요했다.

[선생님? 바쁘실 텐데 왜 또 전화를……?]

“유 PD. 내일 촬영 준비는 다 끝났지?”

[예? 어, 얼추 되긴 했죠. 왜 그러십니까?]

“내 방송 좀 보지. 두 시간 정도만.”

[어…… 갑자기 왜요?]

“이유는 없어, 그냥 해.”

[……펭수십니까? 시키시면 하긴 하겠는데…….]

유종찬의 [내담자 평가]는, 최근에 조금 변경되었다.

「‘박 선생님’을 이용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려 획책하고 있다」에서, 「존경하는 ‘박 선생님’을 이용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려 획책하고 있다」로.

‘존경하는’ 한마디라도 붙어서 다행이지.

그 덕분에 시청 자체는 쉽게 강요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

유종찬이란 인물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무려 37년 동안 제련되어 형태가 완성된 날붙이기에.

직접적인 상담으로도 하루아침에는 안 될 일이다.

애초에 드러나는 문제행동을 벌인 적이 없으니, 그 본인도 내 언행으로부터 자신을 바꾸려 들지는 않을 터.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는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한쪽으로만 날이 예리한 감수성을 품은 채……

처음부터 다시 주조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 다만 숫돌을 준비할 따름이다.

뭉툭한 칼등에 새 날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반갑습니다, 후원자 여러분. 보람찬님, 안녕하세요. 오리대리님, 오랜만이네요. 은진알통님, 어서 오세요. 자…… 여러분, 방제에도 써두긴 했는데,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

「6.25!」

「유교!」

「유교전쟁ㅋ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유교가 아니라 6.25 전쟁이 일어났던 날이지요. 그런 날인 만큼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1부는요, 군대 이야기로 꾸며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현역 장병들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에요. 전역자 분들도, 가족이나 연인의 입대를 경험해보신 분들도, 사소하게는 군대 얘기를 들었던 경험 등에 대해서도 사연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자에게는 남의 일처럼 여겨질 군대.

그렇지만 사연은 물밀듯 쏟아졌다.

최근 일반병들에게 스마트폰이 허용되어서만은 아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는 청년 남성의 90%가량이 현역으로 판정된다.

복무기간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국방의 의무와 유관한 지인 한 명 없는 한국인이란 오히려 보기 드문 존재일 터였다.

“셔리셔리님의 사연입니다. 오빠가 다음 주에 입대하는데요, 군대 가기 전이라고 친구들이랑 맨날 술 먹어서 냄새 나 죽겠어요. 근데 군대에 편지 보내주면 좋아할까요? 저는 중학생 2학년 여자입니다……. 물론 좋아할 겁니다. 비유를 해드리자면, 셔리셔리님께서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해 북한군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오빠의 편지를 받는 것만큼 반가울 거예요. 물론 이건 손편지일 경우고, 인터넷편지라면 그것보다는 조금 약한 느낌이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킹랑의갓시착ㅋㅋㅋㅋㅋㅋ」

「요즘은그정도는아닌데 ㅋㅋㅋ」

「그래도 좋긴좋음 여동생편지 귀엽겠네요」

「셔리셔리 : 앟ㅎㅎㅎㅎ 글면손편지써줄래여」

“예. 오빠가 휴가 때 맛있는 치킨 사들고 올 거예요. 다음은 벨02님의 사연입니다. 저 남친이 해군으로 섬에 갔다 와서 사람이 변했어요. 예전처럼 상냥하지도 않고 말투도 바뀌었고 술 마시면 욕도 하고 그래요. 저 헤어져야 될까요……. 해군, 수병이라고 부르지요? 도서 지역 부대였다면 아마 휴가도 자주 나오지는 못했겠네요. 연차를 최대한 붙여서 길게 나왔을 겁니다. 그만큼 사회와의 괴리감도 커졌겠지요. 벨님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휴가 때 잠깐 만나는 것과는 달리, 전역한 뒤의 남친이 몹시 달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직은 적응기일 수도 있지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벨님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길이거든요.”

「ㄹㅇ 사람 안바뀜」

「해군이면 자원했을건데 이상한애는아닐듯」

「원래 해군가면 경상도사투리 패시브로붙어나옴 ㅋㅋ」

「벨02 : 그런가ㅠㅠ 그래도 술먹고 욕하는거 넘싫은데..」

“남친한테 군대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 먼저 물어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습관적으로 욕이 입에 붙는 경우도 있지만, 해소되지 않은 어떤 상처가 술 마실 때마다 터져나오는 것일지도 몰라요. 남친의 상담사가 돼주시는 건 어떨까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께 위기를 극복한 커플은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해집니다. 시도해볼 가치는 있겠지요?”

「벨02 : 꼰마님처럼요? ㅎㅎㅎ 한번해볼게요」

물론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현역병들의 사연도 나왔다.

내 방송시간이 개인정비 시간과 꽤 겹치는 까닭.

“다음은 솔롱고님의 사연입니다. 저 현역 일병인데요, 맞고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고민이에요. 저는 고졸이고 맞고는 명문대 다니는데 제가 말귀도 못 알아듣고 멍청한 짓만 한다고 맨날 한숨 쉬어요.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요? 솔롱고님, 대체 이 황금 같은 개인정비 시간에 아저씨 인방을 왜 보고 있는 겁니까? 그것부터 말 안 통하는 행동 아니에요?”

「ㄹㅇ일병짬찌가 이걸왜보냐 ㅋㅋㅋㅋ」

「ㅋㅋㅋㅋ걸그룹직캠안봄?」

「솔롱고 : ㅋㅋ 평소에많이봐서.. 선배님들하고 달라요!」

「요 이래버리네 ㅋㅋㅋ 다나까 어디갔냐고 ㅋㅋ」

“됐고,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선물이지요. 휴가 때 뭐 사오지말임 이런 거 물어보지 마시고, 평소에 뭘 좋아하는지 관찰해뒀다가 말없이 사다 주세요. 사람이란 게 기본적으로 받은 게 있으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뇌물이지요. 역사적으로도 이게 답이었습니다.”

「아닠ㅋㅋㅋㅋㅋㅋ킹성모화백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ㄹㅇ잘먹힘 친해지기까지하려면 토크를잘해야되는데 일단좋아하는거사주면 잘해주려고노력하게됨」

「솔롱고 : 와.. 선물 한번 해보겠지말임!」

“다만…… 뇌물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마음이 이어져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진심을 이야기해보시길 추천합니다. 군대 와서 맞고님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사회 나가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이 한마디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이야기지요. 진심을 담으신다면, 뇌물보다도 훨씬 강력할 거예요.”

「진심이 되나 그게 ㅋㅋㅋㅋ」

「저거 들어보고싶었는데 아무도말안해줌」

「솔롱고 : 아 진심 아 한번 해보겠지말임!」

「ㅋㅋㅋㅋ 귀엽네 힘내세요 ㅋㅋㅋ」

「군대얘기 은근재밌네여 ㅎㅎㅎㅎㅎㅎ」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 1순위라 했다.

그 외에는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 등이 있다고.

보통 여성들은 잘 모르는 병영의 은어나 역학관계 등이 전제로 들어가기에, 내용의 이해부터가 어려운 까닭이리라.

그렇지만 일반화 가능한 호오란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 이야기도 얼마든지 재밌을 수 있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인간이란, 말 못 하는 짐승조차 사랑할 만큼 아름다운 존재.

그런데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남성과 여성을 떠나, 군필자와 미필자를 떠나, 화법만 조금 바꿔도 우리는 분명 서로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소통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조금씩 옮겨주는 현역병들의 사연은……

내게는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부모님께 투정 부리고 친구들끼리 젊음을 만끽할 시기.

그 예쁜 나이에 납치되듯이 병영으로 끌려간 아이들이다.

공감하기 힘든 국가적 사명을 위하여 젊음을 바치는 병영의 이야기가, 자꾸만 김 이병의 얼굴과 겹쳐졌다.

가장 행복해야 마땅한 희생자들.

나는 저들을 지켜야 한다.

7월의 병영 VR사업을 반드시 따내, 통신보안 걱정 없이 누구나 나와 마주해 고민을 토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음은 로그1님의 사연입니다. 저 다 끝난 일인데 이런 것도 사연 남겨도 될까요? 저 어렸을 때 동생이랑 멋진 사나이 되게 재밌게 봤는데, 동생이 거기 나왔던 부대에 가게 됐어요. 첫 면회 간 날 보니까 되게 신났더라고요. 방송에서 봤던 그 장교들 병사들 볼 거라고 하면서요. 결국 만나보진 못했대요. 전 거기서는 다 알고 지내고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대대여서 엄청 멀었다네요. 그래도 방송에서처럼 힘든 훈련도 잘 견디고 선임들하고 우정도 쌓고 그럴 줄 알았어요. 같은 부대니까요. 그래서 휴가 나올 때마다 재밌는 일 없었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걔가 자살 우려 병사가 됐대요. 국군병원 정신과로 보내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위에 선임들하고도 싸우고 장교한테도 대들었대요. 친구들하고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앤데. 두 살 차이 누나한테도 대든 적 없는 애였는데. 나중에는 그린캠프? 거기로 갔어요. 그랬는데…… 전역한 날에 자살했어요. 음. 그냥 그랬다고요. 죄송해요. 다 끝난 일이고 해결책도 없는 일인데. 이거 괜히 쓴 것 같아요. 지우기 뭐해서 올려봐요…….”

아마, 괜히 쓴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메인에 세운 화제의 예능이 <멋진 사나이> PD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니.

의식적인 일은 아닐 수 있겠지만, 그 지점에서 내 군대 상담을 보는 마음이 복잡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류의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을까 하고.

그것을 보고 유종찬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바랐기에, 구태여 바쁜 와중에 방송을 시청하게끔 강제했던 것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가슴 저린 사연일 줄은 몰랐지만.

그 사연의 행간을 바라본다.

누나가 동생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생각했을지를.

병영체험 예능프로를 함께 즐겨 시청했던 남매.

신체능력이 부족하거나 한국어가 서툰 이들도, 군인답지 않은 사제 마인드로 무장한 이들도, TV 안에서는 화목하다.

잠깐의 갈등이 있어도 결국 웃으면서 화해한다.

어디까지나 4박 5일 예능 캠프니까.

현실의 군대는 다르다.

이쪽은 예능이 아닌 다큐.

4박 5일 같은 건 혹한기 훈련에나 적용되는 기간이다.

가족과 친구와 사회와 꿈에서 유리된 청년들이,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죄 없는 죄수가 되어 갇히는 곳이다.

학업을 위해 모인 대학교에서도 사람은 괴로워한다.

돈벌이를 위해 모인 회사에서도 사람은 괴로워한다.

얼마든지 집에 들어갈 수 있고, 내키면 술집이나 게임방에서 기분을 낼 수 있는 사회에서조차, 사람은 자기 스트레스를 풀고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곤 한다.

자유를 박탈당한 청년들의 군대는 어떨까.

낭만적인 우정이 있는 행복한 캠프일 수 있을까.

<멋진 사나이>가 그렸던 그림처럼, 그 프로그램만을 믿고 ‘군대 별것도 아니네’ 말해버리는 미필자들의 생각처럼.

그곳이 정말로 예능일 수 있을까.

군대를 예능으로만 배워서, 동생의 휴가 때 재밌는 에피소드 없냐고 물어봤다는 누나.

선진화됐다는 병영에서 정신질환을 얻게 된 동생.

그리고 위로할 틈도 없었을 전역일의 자살.

그 해결책 없는 고민 앞에서……

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선진화 병영이니 뭐니 하는 것은 말뿐이고, 부대에 따라서 부조리와 악습이 만연한 곳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로그1 : 꼰마님이 왜요 ㅎㅎ 울지마세요」

“더 빨리 상담사가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것은 유종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죄가 아니다.

너무도 뒤늦게 NBSC를 발견한 상담사의 후회.

내가 이 신비로운 힘을 5년만 더 일찍 얻었더라도, 그 아이는 그렇게 홀로 괴로워하다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의무 속의 상담사.

세상이라는 연쇄살인마를 멈추기 위해서,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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