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57화 (157/200)

# 157

56장 - 상담사와 가족 (3)

개별상담의 검사결과는, 내게는 새롭지 않았다.

NBSC의 [내담자 평가]와 거의 일치했기에.

베테랑인 한효준과 이용덕과 조명기 역시, 서면화된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상당 부분을 꿰뚫고 있던 눈치.

홀로 반응이 다른 건 아무래도 김지연 이등병 쪽이었다.

“이건…… 너무 달라요. NPD(자기애성 인격장애) 의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 BIG5가 진단기준은 아니지만……”

“김 선생님. 카메라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검사 관련해서는 언급을 주의하셔야 해요.”

“아, 맞다. 죄송합니다. PD님, 편집 부탁드려요. 방금 한 말은 정말 부주의하고…… 상담윤리에 어긋나는 말이었어요.”

공동상담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러지만 심리평가 내용은 방송에 나가선 안 된다.

자칫하면 소중한 진단 준거가 오염될 테니.

종이가 보이지 않도록 잘 가린 채, 우리끼리 고민하는 표정 정도만 지어야 하는 것이다.

표정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가장 올곧아 보였던 장남은, NPD가 맞다.

PDDS-A(인격장애진단검사-청소년용)을 수행한다면 분명 내현적 자기애 척도가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이리라.

세간에선 나르시시즘이라 하면 맹신적 자기애를 떠올린다.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 자부하며, 주변의 인간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우중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하지만 NPD가 꼭 그런 형태만은 아니다.

상기한 사례는 외현적 자기애의 특징.

성인보다 학생들에게서 보다 잘 관찰되는 내현적 자기애 성향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친절하게만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단회기 상담으로 알아채기는 쉽지 않은 질환.

BIG5에서 NPD의 특징적 수치를 연구한 학자도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진할 수 없는 문제다.

노트북 비밀번호 건으로 이준일의 진짜 감정이 여러 차례 표출됐기에, 김지연이 의구심을 품게 된 상황이었다.

내 경우엔 한참 전에 확신한 부분이지만.

「 내담자 명 : 이준일

평가 결과 : 위대한 꿈이 검은 물속에 자라난 이구아나. 」

물에 비친 자신을 사랑했다는 나르키소스의 은유.

검은 물속에 자라났다는 것은, 어두운 내현성의 서술이다.

그리고 이구아나는……

겁이 많지만 포상으로 쉽게 훈련되는 특성 때문이려나.

그 외의 가족구성원들에게는 인격장애의 서술이 없었다.

그저 한시적인 행동 양상들이 드러났을 뿐.

홀로 바람직하고 훌륭해 보였던 이준일이야말로, 이 옥탑방의 감옥에 가장 크게 영향받은 아이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이구아나와 잘 어울린다.

본질적으로는 자기를 과신하거나 우월감을 만끽하지 못하는 피식자지만, 오랜 포상에 길들면 겁을 상실한다는 점이.

그럼에도 그 눈은 주변의 반응을 죽어라 살핀다는 점이.

외현적 NPD는 그보다는 목도리도마뱀이리라.

자신이 우월한 입지면 그 자랑에 여념이 없고, 입장이 반대가 됐을 때는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우위에 서려 하니까.

그 과정에서 과도한 예민성과 폭발적인 부적응적 대처가 노골적인 문제행동으로 번진다.

개중 대다수는 이미 주변인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으리라.

반면 내현적 NPD 쪽은 평판이 오히려 훌륭하다.

속으로는 전자와 비슷한 감정을 품지만, 연기에 능하기에.

이준일 역시 그렇게 이미지를 지켜왔을 터였다.

그 과정이……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지점이다.

다른 인격장애처럼 NPD에도 가정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지속적인 비난의 억압, 또는 과도한 애착의 칭찬.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아가 내면화돼,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자존감을 지킬 수 없게 된 케이스다.

그렇기에 나르시시스트의 본질은 우월감 쪽이 아니다.

오히려 극에 달한 열등감.

성장환경이 강요한 이상적 자아가 지나치게 크고 높아, 자신의 실체를 직시하는 채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 타인을 깔보고 폄훼하며 자아를 지켜낸다.

이준일 역시 그랬을 것이다.

부친은 고작 한 살 차이인 동생의 기강을 잡으라고 강요하고, 걱정 많은 모친은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불안해했을 터.

동생에게 좋은 형이고자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려왔을까.

부모에게 좋은 장남이고자 몇 번이나 자신을 다잡았을까.

내 성장환경은 이준일과 달랐다.

무채색의 가난 속에서도 가족은 화목하기만 했다.

그 싱그러운 풀빛이 싫어서 반발하고 무시했을 뿐.

그런 나조차 어른이 되는 데 한참이 걸렸다.

5세 이하의 미숙한 감정 수준을 갖고 있다고 비유되는 NPD의 이준일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까.

가족을 다치게 하면서.

부적응적으로 반복해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렇게 그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을 때.

훌륭한 장남, 똘똘한 장남을 말하던 부모는, 또 얼마나 많은 후회로 자기 가슴을 찌르게 될까……

“바꿔야 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한효준이 콧소리를 냈다.

“흐음. 박 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네만……”

“압니다. 결코 무리수는 두지 않겠습니다.”

“그래. 검사결과 보기 전에도 알고 있던 문제지만, 빠른 치유를 장담하기 어려운 가정이야. 극히 주의해야 하네.”

“예. 주의하며 바꾸겠습니다.”

“후배님? 너무 그렇게 압박감 느끼지 말아요. 아빠감을 느껴요 차라리. 아빠처럼 다가가서 안아주는 게 나을 거야.”

“예. 아빠처럼 바꾸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검사결과는 시청자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이게 다 차남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

나머지 촬영 역시 그 기준 속에 이뤄져야 할 터였다.

이구아나는, 먹이사슬의 거의 최하단.

작은 상처로도 재기불능에 빠질 수 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훌륭하다며 똘똘하다며 치켜세우기만 하는 부모 아래서는 특히나.

F-19 케이스의 내담자는 이준영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득해진다.

모든 게 이준영 덕분이었는데.

이준일이 지금껏 열등감을 극복하며 사람다운 척이나마 할 수 있게 지켜준 것은, 부모도 친구도 노트북도 아닌, 모든 면에서 비교당하며 괴로워했던 ‘문제아’ 이준영이었는데.

상황실을 나서 옥탑방까지.

5분 거리의 길을 숨이 차도록 달렸다.

속으로만 ‘형새끼’라 욕하며, 어쩌면 형이 받았을지도 모를 모든 비난을 혼자서 끌어안았던 이준영을 위해서.

“아, 상담사님…… 금방 오셨네요. 이제, 또 뭐 해요?”

“어흠, 큼.”

양숙자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르는 태도로 반긴다.

이신웅은 낮에 그랬던 것처럼 헛기침으로 일관.

이준일은 곁에 앉은 동생이 불편한지 연신 힐끔거렸다.

이준영은……

얼굴을 붉힌 채, 자기 입술을 씹고 있었다.

“준영 군. 아니, 준영아. 아저씨가 촬영 전에 한마디 할게.”

“……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네가 거기에 있어줘서, 이구아나가 짓눌리지 않고 검은 물 위를 걷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네?”

아직은 무엇 하나 전달되지 않을 이야기.

네 가족이 이구아나처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렇지만 자세한 설명을 해줄 여유는 없었다.

제작진이 촬영 준비를 마치기 전에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언덕길을 롤러코스터처럼 달려온 참이니까.

“카메라 돌기 전에 간략하게 브리핑을 좀 할게요. 이제 2단계 상담까지 마쳤습니다. 집단상담에 이어서 개별상담까지 진행하게 됐던 건데, 어떠셨어요? 저희와 이야기 나누시면서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

“크흠.”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이신웅의 헛기침으로 대답을 갈음하려는 모양이지.

이 집은 계속 그래왔을 것이다.

초라한 왕이 모든 것을 관장하다가, 그가 일터로 나간 뒤에야 축 처진 이구아나가 기강의 왕관에 짓눌렸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검은 물 밑으로 잠길 것처럼.

위대한 꿈을 안고 익사할 것처럼.

그렇지만 그 꿈은, 연꽃처럼 이구아나를 지탱했다.

얼굴이 온통 붉어지도록 말을 참는……

저 드넓은 메이플 잎 덕분에.

“원래는, 이제부터 오늘 촬영된 관찰카메라 영상을 함께 살펴볼 차례입니다. 그러면서 평소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인지하는 거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게 정말 신기해요. 외부 시점에서 내 행동을 보면 부끄럽고 민망해서 참을 수가 없거든요. 많은 경우에 그것만으로도 행동 면에서 대단한 변화가 생기곤 합니다.”

“근데, 우리 애한테 소용이 있으려나. 토요일이라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있었는데.”

“그건 저로서도 확신이 안 서네요. 그래서 촬영 전에 들려드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 친구네 집 이야기예요. 중요한 포인트는 아닌데, 촬영 전에 마음을 비운다고 생각하시고 명상하듯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필요치 않은 말이다.

110의 ‘화술’에 100의 ‘환기’로 전달할 이야기니까.

[인자한 웃음]과 [차분한 음성]과 [아련한 눈빛]을 모두 발동한 채, 나는 아무도 몰라야 하는 가족을 이야기했다.

“그 집은 딸이 둘이에요. 둘째 딸 쪽이 공부를 잘하죠.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성격까지 착해서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심지어 남자애들한테까지 인기가 많고, 부모님 사랑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긴 첫째 딸이 돋보이질 않아요. 언제나 비교를 당하죠.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거든요. 매일 컴퓨터로 드라마나 보고 있죠. 거의 중독 수준이에요. 그래도 애는 착합니다. 참 착해요. 그런 집안인데…… 둘째 딸한테는 사실 복잡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들 해주는데, 그래서 참 기쁘고 신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아니거든요. 속마음은 정말 쓰레기 같거든요. 자기보다 예쁜 애가 보이면 뒷얘기를 퍼뜨리고 다녀요. 성적에서 질 것 같으면 티 안 나게 방해를 하지요. 은근히 왕따도 시켰을걸 아마? 그런데 그건 혼자 은밀하게 하는 일들이라, 가족도 모를 거예요.”

말하면서 지켜보는 방향은, 이준일 쪽.

아직까지는 표정에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110의 ‘진단’으로 보면, 이야기 속의 둘째 딸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얘기가 달라지겠지.

이준일도, 그 가족들도.

“이 아이는, 겉은 훌륭한데 속은 시궁창인 이 아이는, 도촬을 해요. 몰카라고 하죠? 여자애들 치마 밑을 찍고 다니는 거야. 이유는 몰라요. 그냥 그렇게 됐어요. 성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타인의 은밀한 비밀을 촬영한다는 행위에서 안정감이 생겼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자기 혼자만 겉과 속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걸 인정받는 기분이 들 테니까. 남들도 자기처럼 끔찍한 열등감 속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그들이 감추려는 곳을 도촬하면서 충족됐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걸 들켰네. 핸드폰을 빼앗겨서 부모님한테 연락이 들어가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 사랑하고 미워하는 부모님은, 언제나 날 칭찬해줘야 되는데.”

“크, 흠. 그게 뭔 얘긴지 대체-”

“끝까지 들으세요. 방송에는 안 나갈 이야기지만, 여러분의 다음 상담에 필요한 절차니까. 이 둘째는, 미칠 것 같습니다. 미칠 것 같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다립니다. 어머니가 도착해요. 그리고 무릎을 꿇고 사정합니다. 어미가 아이를 잘못 키운 탓이라고. 다 어미가 못나서 그런 거니까, 제발, 이 못난 어미를 욕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그렇게 비는 어머니를 보면서, 둘째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요. 간신히 합의를 하고 없던 일로 만들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이제는 부모님이 진실을 아시거든요. 이제는 완벽하지 않아요.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에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첫째보다도 한참 못난 인간쓰레기예요. 그런데 이상하죠? 부모님은 그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해요. 다 알고 있는데도, 모른 척해요. 여전히 똘똘하고 훌륭한 딸을 사랑하는 척해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래도 다행이죠? 그렇게라도, 연기를 해서라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됐으니까.”

“……킁.”

“아. 준일 군이 감수성이 풍부하네요.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이 빨개졌어.”

청자들의 분위기는……

아마 ‘화술’과 ‘환기’가 아니었다면 진작 엉망이 됐으리라.

서로를 노려보며 누가 비밀을 떠벌렸는지 수색했겠지.

그 점에서 이준영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우연의 일치를 가장하려 애썼지만, 당사자들의 화살이라면 이제 곧 차남 쪽으로 쏠릴 테니.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어요. 그 비밀은, 사실 부모님만 알고 계신 게 아니에요. 첫째 딸.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서 둘째랑 비교당했던, 그래서 둘째한테 이래라저래라 지시까지 들어야 했던 그 첫째 딸도 우연히 그걸 알았어요. 이제 어떻게 될까요? 넌 공부 좀 해라, 왜 그렇게 맨날 드라마만 보고 있냐,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아빠 보기 죄송하지도 않냐, 매너 없이 이런 소리만 해대는 둘째 딸의 비밀을 알았는데. 걔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그래요. 무서운 범죄자인 둘째한테는 여전히 오냐오냐하면서 똘똘하고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첫째한테는 매번 비난만 하시거든요. 넌 왜 그렇게 드라마만 보냐, 동생 닮아서 좀 더 좋은 애가 되면 안 되냐, 너 때문에 우리 집이 다 엉망이다, 어떻게 우리 슬하에 너 같은 못난이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공감능력 풍부한 준일 군. 진실을 알게 된 첫째 딸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준일은 벌벌 떨고 있다.

곁에 앉은 동생 쪽을 곁눈질로도 보지 못한 채.

반면 이준영은, 아직도 이게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적인 메타포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고.

저렇게 멍청한 녀석이다.

게임중독 문제아는, 저렇게나, 멍청하게 착한 녀석이었다.

“이 상황에서 첫째는…… 부모에게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도, 동생에게 핀잔을 듣고 매일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비밀을 입밖에 내지 않습니다. 내심 존경하고 있던 동생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작은 탈선에도 화를 내던 부모님이 진짜 범죄자인 동생을 감싸준 걸 알았는데도. 부모가 매를 때리고 동생이 자길 한심한 사람 취급하는데도, 그냥 묵묵히 그 말들을 감내해요. 말하면 안 되니까. 그걸 말하면, 연기로 지탱하고 있던 모든 게 무너질 테니까. 내 가족들이 나보다 더 아파질 테니까. 아픈 건 혼자인 편이 나으니까. 그래서 이 아이는…… 이 착한 아이는, 자기 혼자 덜떨어진 구성원이 되는 길을 택했어요. 참 멍청하지요? 뉘 집 자식인지 참…… 고맙고 존경스럽고,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 첫째는 천덕꾸러기래요. 계속 그럴지도 모르죠. 언젠가 가족들이 그 아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게 그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것도 몰라서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아이에게 드라마 외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간 게, 성실하고 거짓말 잘하는 가족들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마친 뒤, 거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이제는 이준영조차도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대체 무슨 수로 가족의 비밀을 알아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만 반복할 뿐.

그 분위기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조금 민망하지만, 마지막 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예. 여러분 얘기입니다. 그렇게 막내 쳐다보실 것 없어요. 저 아인 정말 비밀을 지켰으니까. 인터넷방송 시작하고 2개월 만에 공중파 예능 고정 잡는 상담사한테는 이런 능력도 있구나, 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돼요.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단, 세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50만 원짜리 데스크탑, 사주세요. 밥 먹을 땐 성적 얘기가 아니라 게임 얘기를 하세요. 아이들에게 신웅 씨와 숙자 씨의 바람을 강요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기대와 칭찬을 바라지만, 거기에 짓눌려 무너질 수도 있어요. 가정에 기강은 필요치 않습니다. 슈퍼맨 같은 장남도 필요치 않아요. 그냥 같이 행복하게 웃어야 돼요. 그런 게 가족입니다. 전 그래서 준영 군이 참 좋습니다. 머리도 나쁘고 눈치도 엉망이지만, 존경스러워요……. 이제 촬영 준비 끝났네요. 준일 군? 자, 감정 추스르고. 이제 방송에 예쁜 가족을 보여줘야죠. 이거 학교 친구들이 볼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눈물 찔끔거리면서 찍을 거야?”

그날 촬영은,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끝났다.

이신웅은 차남에게 새 데스크탑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양숙자는 성적 이야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이준일은 비밀리에 김지연의 상담소에 다니기로 했다.

이준영은……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아저씨, 독심술 해요?”

“하하. 콜드리딩이라고, 비슷한 거야. 나중에 너 커서 서울대 들어오면 가르쳐줄게. 갑자기 공부할 맛이 나지?”

“……아닌데요.”

“메이플만큼 재밌어. 정말로. 한번 천천히 생각해봐라.”

“네……. 저기, 고맙습니다. 저한테…… 존경스럽다고 해준 아저씨, 처음이에요.”

“앞으로는 많이 들을 거다. 넌 좋은 가족이니까.”

가족이란 게 그렇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무얼 희생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렇기에 쉽게도 강요와 미움이 뒤엉킨다.

그럼에도 놓치기 전에 그 신비를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상담사다.

누구보다도 멋진, 세상을 치유해줄 상담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