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55화 (155/200)

# 155

56장 - 상담사와 가족 (1)

F-19 관찰카메라 분량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네 식구가 둘러앉은 아침식사 시간.

모 양숙자가 해물찜을 차려 냄새로 유혹한 덕분에 거실까지 걸어나왔던 이준영은, 가족들 사이에 이질감을 드리웠다.

그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주로 뉴스에 나오는 정부의 정책 등에 대해서.

그러다가 차남이 나타나자 말이 뚝 끊겼다.

20초쯤이 지난 뒤 모 양숙자가 꺼낸 이야기는, 장남 이준일의 모의고사 성적에 대한 칭찬이었다.

차남이 장남처럼 학업에 의욕을 보이길 간절히 바랐겠지.

그래서 넌지시 형을 칭찬하며 보상해준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차남도 칭찬을 갈구하리라 생각하면서.

의식적인 일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 기작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 자체가 문제행동이지만.

누구라도 의도를 짐작할 만한 칭찬이다.

차남 입장에서는 속이 빤한 수작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두 가지 요인이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자신을 바보 취급한다는 불만.

둘은, 자신이 가족 사이에서 이방인 취급당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보편적인 가족은 밥상머리에서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중학생도 그 정도 상식은 갖추고 있다.

티 나는 ‘수작’으로 자신을 바꾸려 드는 모친을 보고 있으면, 가장 착한 아이라도 반감을 키울 수밖에 없을 터였다.

촬영된 내용 역시 그랬다.

1분쯤 이어진 대화를 묵묵히 듣던 이준영은, 수저를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시끄러워 죽겠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 방으로 돌아갔다.

양숙자의 애타는 부름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반면 이신웅 쪽은 헛기침을 하며 감정을 삭였다.

카메라를 의식해 꾸지람을 참은 눈치.

어쩌다 애가 저 지경이 됐나, 속으로만 한탄했을 것이다.

그 감정이 이후의 대화에서 또 문제를 만들게 되겠지.

선후관계가 불분명한, 닭과 달걀의 딜레마.

그렇지만 악순환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어느 한쪽이든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된다.

관련해서 양숙자와 이준일의 태도 역시 염려스러웠는데……

생각 중에, 리시버를 통해 상황실의 대화가 전해졌다.

[허. 쟤가 그래도 인사를 하는구만.]

[그러게요. 가족들이 부를 때는 밥 먹자는 말도 무시하더니. 우리 박 후배님 목소리가 좀 힘이 있긴 하죠?]

[목소리의 힘이야, 대수로운 것이 아니지. 게임을 하는 아이니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겠나? 박 선생도 게임을 하니까.]

[에이, 교수님도 참 뭘 모르는 말씀. 저거 롤 아니에요. 롤이랑 딱 봐도 다르잖아요. 야구하고 농구만큼 다를 걸요?]

[어흠. 거, 그게 그거 아닌가?]

[다르다니까 그러시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요. 어쨌든, 우리 후배님이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습니다. 이대로 거실까지만 꾀어내면 될 것 같은데…… 후배님, 들리죠? 우선은 가족 전체가 잠시라도 함께 상담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정선의 구조화가 이뤄질 거예요. 5분이라도 불러내세요.]

[어허, 5분은 짧지. 관찰카메라에 대화하는 분량이 너무 없어서 지금으로선 가족역동도 확인이 어렵잖나. 10분.]

[아이고, 한 선생님. 상황의 특수성을 생각해야죠.]

[그래도 최소한 10분입니다. 그 정도는 살펴봐야 해요.]

[이 형, 누가 몰라서 그럽니까? 안 되니까 그러지. 김 선생이 한마디 좀 해줘요. 이 아저씨들이 나만 공격하잖아.]

[아, 하하하…… 글쎄요…….]

김지연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한효준 병장이야 지도교수니 좀 편하다 쳐도, 이용덕 상병과 조명기 일병 사이에 낀 상황실의 이등병 포지션.

아직은 한마디 끼어드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조금씩 적응할 것이다.

수천 시청자를 상대하는 내 방송에서도 활약하는 친구니.

조만간 조명기와 만담을 주고받으며 분량을 뽑게 되겠지.

이용덕이야 원체 방송 체질이고, 한효준 역시 인자한 간달프 느낌으로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니 내가 신경 써야 할 곳은 상황실이 아니다.

내 눈앞의 내담자들을 바라봐야 할 시점.

“준일 군, 준영 군. 우리 거실로 잠깐만 나와볼까요? 오늘 상담 관련해서 같이 얘기해볼 것들이 있는데.”

“네…….”

조심스레 대답하고 동생을 돌아보는 이준일.

그러나 이준영은 아직 키보드에 손을 붙이고 있다.

혹여 문제가 불거질까 싶어, 장남의 어깨를 잡았다.

“먼저 가 있어요. 내가 데리고 갈게요.”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텐데.

이준일이야 예의 없는 동생을 대신해서 자기가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겠지만, 지켜보는 이준영 입장은 다르다.

대리 사과라는 것이 감동을 주는 건 특수한 사례.

보통은, 자길 부속품 취급하는 느낌에 불쾌해지고 만다.

그렇지만 이준일은 방을 나서는 형에게 욕을 하진 않았다.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지만, 잘 참았다.

[암시 구조화]가 준 그리움 덕분이리라.

처음 그 기술을 사용했을 때, 나는 손바울에게 「99의 ‘슬픔’과 1의 ‘기쁨’」을 전달했다.

그로써 내 제자는 한참을 울게 되었다.

고작 1/100 스케일의 감정임에도 그럴 수가 있었다.

내 감정이 1%라면 전해지는 것은 0.01%.

그러나 10000%를 느낀다면, 100%가 전해진다.

내가 손바울에게 전해준 것은 결코 편린이 아니었다.

애초에 100%를 넘는 감정이란 게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감정에 한도를 매기는 일 역시 이상해서, 누군가의 100%가 누군가에게 10000%일 수 있을 법했다.

게임식으로 표현하자면 ‘체력비례대미지’라고나 할까.

그 가능성을 쥐고 지난 일주일간 나는 가족을 생각해왔다.

가족을 잃은 아이들과, 가족을 버린 아이들을.

그로써 내 마음에 그리움을 채워넣었다.

슬픔에 익숙한 나조차 질식할 것만 같은 밀도로.

그 결과가 이것이다.

관찰카메라 속에서 가족에게 끊임없이 으르렁대던 이준영은, 복합적인 심리로나마 자신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결코 작지 않은 그리움이 악의를 억제했기에.

원래대로라면 다수의 회기 속에서 서서히 함양했을 감정.

그렇지만 NBSC는 치트키처럼 씨앗을 발아한다.

집단상담의 제1단계가 클리어된 셈.

문제는 그 이후의 단계였다.

내담자 가족에게 내 마음을 강요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일시적인 것.

기존의 악순환이 다시금 고개를 들면, 그때는 악감정이 긍정적인 관계 형성을 저해할 터였다.

그러니 나는 이제……

조미소의 싱그러운 의견을 따라볼까 한다.

“무릉 도네요? 오, 뭐야. 제논 솔스미안? 스펙 좀 되네요?”

“……메이플 알아요?”

“아니 잠깐만. 파프니르 몇 강?”

“22강요.”

“와. 무과금이잖아요? 그런데 22강을 들어요? 미쳤네. 게임을 어떻게 한 거야? 몇 년 키웠어요?”

“7년…… 아, 제논 키운 건 2년요.”

“2년이라도 대단하네. 쥬니퍼베리 열심히 캤겠어요.”

“……농부는, 사람 할 짓 아닌 듯요.”

“하하. 끝났으면 잠깐 나가죠. 촬영 관련해서 아저씨가 설명해줄 게 있어요. 혹시 우리 방송 제작발표회…… 보셨나요?”

“풉! 아, 보셨나요 하지 마요.”

“보셨나요? 저의 10연속 베기.”

“아 하지 마요…… 쩝.”

연초에 유행했던 게임 속 대사에 마음이 풀릴 뻔했지만, 사춘기 특유의 자존심으로 다시 정색하는 이준영.

아쉽게도 게임 얘기는 그쯤 해야 할 듯했다.

리시버로 들려오는 상황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저게 지금 뭔 얘기 하는 거야? 조 선생, 좀 아나?]

[아뇨, 전혀……. 이 형은 게임 좀 알지 않아요? 왜, 게이머 친구들도 진료받으러 오고 했다면서요?]

[나야 의사로서 진료를 한 거지, 게임을 한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김 선생은 어때요?]

[저, 제가 저 게임을 해보긴 했는데요……]

[오, 김 선생이 이걸?]

[무릉이 뭔지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잘……]

[그러면, 박 선생은 저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만학도가 매일 네 시간 방송 하고 예능 출연하고 드라마 찍고 봉사활동 다니고 재단 만들고 하면서, 시간이 남았나?]

[아이고, 그렇게 살면서 시간이 남으면 외계인이죠. 이거 이따가 물어봐야 되겠네. 아, 지금 물어봐도 되나? 후배님. 저 게임은 왜 빠삭해요? 준영 군이 무슨 게임 즐기는지는 오늘 관찰카메라 보고야 알았잖아요? 혹시 따님이 즐기는 게임?]

2003년에 출시돼서 거의 20년간 유명세를 떨친, 연초에 게임랭킹 2위까지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MMORPG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애들 게임으로만 보이겠지.

물론 나도 딸도 플레이해본 적은 없다.

그저 유명 메이플 BJ가 전역한 뒤 복귀 플랜을 지원해주며 강박적으로 공부했던 지식을 써먹고 있을 뿐.

무엇보다 내담자 앞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일은 금기다.

바쁜 척 마이크만 한 차례 톡 쳐줬다.

조명기가 아쉽다는 듯 잔뜩 투덜거리더라.

그 뒤에 이준영과 거실로 나섰다.

거실이라 해봐야 조금 큰 고시원 사이즈.

그런 곳에 연식이 오래된 탁상과 TV가 있고, 쇼파도 없는 바닥에 세 식구가 앉아 있었다.

워낙 좁아서 촬영팀은 베란다로 빠져 있는 거실.

그 안에 몸을 접어 앉은 뒤, 명시적 구조화를 시작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상담 수련생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현재 상담심리학과 임상심리학과 정신건강의학의 석학들께서 리시버를 통해 제게 의견을 들려주고 계세요. 말하자면 전문가들의 아바타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반갑습니다. 이신웅입니다.”

“안녕하세요. 애들 엄마, 양숙자예요.”

“이준일입니다. 고1이에요.”

“예. 오늘 상담에 대해서 먼저 간략히 설명을 드릴게요. 우선은 저희가 먼저 관찰카메라 영상을 확인했어요. 거기서 발견된 징후들에 대해서, 이렇게 네 분과 함께 집단상담을 진행할 겁니다. 그 뒤에는 한 분씩 상황실로 모셔서 개별상담이 이어집니다. 그런 다음에 이 앞 평상에서 다 함께 관찰카메라를 볼 거예요. 그 뒤에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저와 함께 일상생활에 변화를 만들어볼 예정이고요.”

“예, 그러시죠.”

“그러면…… 집단상담? 지금은 무슨 얘기를 해요?”

부 이신웅은 근엄한 표정과 방어적인 태도.

모 양숙자는 불안한 표정과 적극적인 태도.

형 이준일은, 모친과 닮은 표정으로 부친 같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구조화된 그리움이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뿐.

그런 이들에게 처음으로 건넬 질문은 뭐가 좋을까.

상황실은 내 의사를 존중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말은……

역시 이거겠지.

“내외 분의 연애 스토리부터 들어볼까요?”

“……예?”

“저희요? 저희 연애를 왜……?”

“상담의 일환입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편하게…… 얘기할 것도 없고, 그냥 미팅으로 만났습니다.”

“미팅이요. 어디서 하셨나요? 빵집인가요?”

“그냥 뭐, 잘 기억 안 나는데.”

“서로 첫눈에 반하셨습니까? 아니면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아니, 상담사님. 우리가 이런 얘기를 왜 해야 돼요? 우리는 그냥 얘가 게임에 빠져 있어서, 신청을 한 거 아뇨?”

부모의 부드러운 모습을 함께 발견하며 분위기를 풀려 했는데, 부의 반응이 예상외로 강경하다.

상담의 전제에 괴리가 있는 까닭이었다.

가족상담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

그래서 다른 때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이준영의 표정을 보면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모친을 폭행해본 전적이 있는 아이.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상호존중부터 구조화해야 할 듯했다.

“죄송하지만, 두 분의 목적과 저희의 목적은 다릅니다.”

“그게 무슨 뜻이요?”

“두 분이 바라신 건, 가정의 질서를 회복할 해결사였겠죠. 게임중독인 아들을 치료해줄 의사였을 수도 있겠고요. 그 판단에 제가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그런 건 상담이 아닙니다. 저희는 구성원 개인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가정 자체지요.”

“……저희가 잘못해서 애가 비뚤어졌다고요?”

“넌 가만히 있어. 이봐요, 상담사님. 그게 무슨 소리요? 너무 황당한 말이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황당한 말이라.

그 한마디에 절로 가슴이 아려왔다.

이런 반응이 당연한 일인데.

누군가 내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누구나 불쾌해지는데.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쉬이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그 심정입니다.”

“예? 무슨 심정이요?”

“지금 내외 분께서 느끼신 심정이요. 그게 준영 군이 수년 동안 느껴왔을 감정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가족의 위계를 떠나, 나이의 고하를 떠나,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 없는 화목한 가정이다. 둘째만 이상하다. 둘째만 문제가 있다. 둘째가 우리 가정을 망치고 있다. 관찰카메라를 살펴보는 내내 환청처럼 그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거야, 쟤가 실제로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뇨.”

“저희 애 이야기를 듣고 고쳐주셔야죠…….”

이준영은, 다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박찰 듯이.

그를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1/100 스케일의 그리움뿐.

그 분위기를 상황실에서도 느낀 듯했다.

[태도가 상당히 일방적이군요. 이래선 답이 없는데. 한 교수님, 이럴 때는 좀 돌아가는 방법이 낫지 않겠습니까?]

[좀 곤란해지긴 했는데…… 박 선생에게 맡겨보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하. 저도 맡겨두는 데 한 표. 우리 후배님이 가정상담에서 의외로 스페셜리스트예요. 내가 그걸 잘 알지.]

[끙. 일단은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김서현 케이스 덕분인지, 신뢰가 참 큰걸.

그 기대를 배신할 순 없는 노릇이다.

조금 이르지만, 마침 [직면 선택지]도 나온 참.

이준영이 아닌 부친의 얼굴 위였다.

“신웅 씨. 죄송합니다만, 준영 군 PC는 언제쯤 사셨습니까?”

“예? 저거야…… 저게 16년이었나?”

“준일 군 6학년 때 구입하신 게 맞나요?”

“……그거보단 더 앞이었던 것도 같고.”

“부품까지 다 살펴보진 않았지만, 제가 살펴보니 케이스가 2013년쯤에 폐업한 브랜드 물건이었습니다. 최소한 8년은 됐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게 뭐요?”

“예. 보통은 진작 버리고도 남았을 물건 같습니다.”

“물건을 왜 버립니까? 무슨 갑부 집안도 아니고.”

“예. 그런데 준일 군 책상을 보면, 노트북이 있더군요. 제가 알기로 2018년 모델이고, 출시 당시 240만 원 정도였는데.”

“얘는, 장남이고. 공부하는 데 필요하다니까 사준 거요.”

“그렇군요. 그럼 준영 군에게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제가 듣기로 작년에 학교 컴퓨터실에 숨어들어서 밤새 게임을 한 적이 있다던데…… 그때 뭘 했나요?”

이준영은 다시금 볼을 붉혔다.

그 혈류의 변화는, 아까와는 의미가 달랐다.

“옵치…… 재밌대서, 해보고 싶어서요.”

“집 컴퓨터에서는 오버워치가 안 돌아가는 모양이지요?”

“돌아가겠어요? 글픽카드도 없는데.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롤도 끊길걸요.”

“그렇군요. 정리해보겠습니다. 오버워치는 아마도 지금 남자 중학생들 중 90% 이상이 즐겨봤을 유명 게임이에요. 요즘은 인기가 줄어들었지만, 그걸 안 하면 친구들과 대화 자체가 안 되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준영 군이 편하게 PC방에 다닐 만큼 용돈을 받고 있지도 않을 테고. 집 컴퓨터는 2003년에 출시된 메이플스토리 정도가 아니면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사양이고. 그래도 준일 군 노트북으로는 충분히 돌릴 수 있는 게임인데…… 그럼에도 학교 컴퓨터실에 숨어들었다. 이건 왜였지요?”

“……형이 못 하게 비번 걸어놨으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일단 사연에 명시해주신 문제 중 하나는 해소된 셈이네요. 준일 군이 노트북 빌려주게만 허락해주셔도, 더 이상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가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아니, 잠시만요. 이 얘기 설마 처음 들어보시나요?”

눈을 부릅뜬 내외와, 입술을 깨문 장남을 바라본다.

노트북 비밀번호는 이준일 개인의 규제였던 것.

아무래도 문제가 한둘이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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